《答疑解惑》
Q1:老师,请问怎样才知道自己是否与神同在?需要怎么做?
大家读出这种问题的味道了吗?大家都在想我要怎么做?其实不是怎么做,因为一说我要怎么做,那你肯定就是掉到以行为为本的里面了。到底是做呢?还是信呢?你信的是什么?你在乎的是什么?这才是关键!
有的人在乎的东西比以扫还以扫,如果你在乎的是雅各所在乎的,你对世上的事物反应是不一样的。我们是怎么知道的?因为神与你同在是明明可知的。比如:神与以撒同在,以撒就在饥荒的年代有百倍的收成,特别的有钱;神与雅各同在,雅各给他舅舅放羊,得着了他舅舅的两个女儿,继续放羊,神又祝福了他很多的牛羊,使雅各成为很富有的人。怎么才能知道有神的同在?一个人有一屁股的债、常常倒霉,他不可能是有神同在的人。看看咱们自己脑袋里想的是啥?看看咱们自己所在乎的是啥?看看咱们所经历的是啥?
曾经有一个人,我在他身上赶鬼的时候,他彰显的鬼在打猴拳。后来这个人被别的牧师给挖走了,因为这个牧师让人看起来是特别好的人。有一天,这个人找我喝茶,就跟我讲他总是遇到倒霉的事。他给人做项目,人家不给他钱等等。他就问我是怎么回事?怎么总有倒霉的事都落在他身上?他以为鬼是附在整他的那个人身上。我告诉他,其实问题就是出在他自己身上,他就带着这个鬼。后来他说我不是个好人,说我是个很坏的人。
大家有没有发现,凡是觉着自己是好人的,都有一个共同的特征:好人没好报。凡是认为自己是好人的,在神眼里是个恶人。有两件事可以告诉你是不是一个有神同在的人:第一件事是身体健康,第二件事是财务蒙福。一个人又穷,又多病,应该不是有神的同在,而是有鬼的同在。我就给你个盼望,你什么时候悔改都来得及,因为《圣经》的本意就是如此。神要我们悔改,让我们知道自己过去做错了,悔改是要刮骨疗毒才能改,因为人骨子里面的东西可难改了。
Q2:老师,为啥雅各不可以在家里承受神的祝福?
其实都是神在背后导演的。雅各到他舅舅家免费打工14年,但是神却让他成为一个极其富有的人。神使人成为富有的人,那是轻而易举的事,关键就看你是不是雅各。如果你是雅各,是神喜悦的人,你不会是个穷人。雅各为什么不能在家里承受祝福?因为神就是要让他撇下很多东西,吃不少的苦头,也不后悔,照样欢欢喜喜地迎接神的荣耀。
Q3:老师,你是怎么看透人生的,这中间有没有过挣扎和进化?过程是怎么样?
没有。我很小的时候,就觉着活着没有意思。我一点儿也不忽悠大家。你问我为什么这样?我真的不知道。很多东西毫无意义,都不重要。你如果认为重要,你证明给我看。你证明不出来那些事有多重要。比如,有人要我为她祷告,让她能找到白马王子 。我看找个灰驴王子 就不错了。人就是在乎这些东西。后来嫁人了,就感谢神,把这些事看得可重了。为什么非得看得很重?其实她也不知道。很多事都证明不了,都是一拍脑袋就这么想。
如果仔细去考察,稍微下一丁点的功夫,都会觉得活着是一个不太有意义的事。如果不知道的话,就试着躺在棺材里,让人给你做个追思礼拜感受一下。有啥意思?啥意思也没有。所以,人一旦得到了这个结论,很多事都变得不再重要。
千万不要以为你觉得很重要的事情就会干得好。就是因为我觉得不重要,所以我干得很潇洒。大家如果近距离观察我,就会觉得我活得老潇洒了。我从来没有慌慌张张地,也没有那种紧张兮兮。什么东西没有就没有。如果错过航班就回家,就算了,谁知道那飞机会不会掉下来?那还得感谢神。
所以,人没有必要那么紧张。事情不重要,活着很简单。有些事没赶上就没赶上,赶上了就赶上了;做了事赔钱了就赔了,没赔就没赔,没什么了不起。你看雅各,他舅舅拉班减了他十次的薪水,他也没当回事,都是因为把这事想明白了。有的人明白得早,有的人明白得晚,有的人到死都没整明白。
Q4:为什么以扫娶以实玛利的女儿?是人的聪明,为了讨他爸爸的喜欢吗?
对。以扫以为讨他爸爸喜欢就解决问题了,其实不是。讨神的喜欢才解决问题。讨他爸爸喜欢没啥用。最后他爸爸想给他祝福都没祝福着。他爸爸想给以扫祝福,但是,被雅各给截胡了。怎么就截胡了?神导演的。你别讨我的喜欢,你一定要讨神的喜欢。讨我喜欢有啥用?我要那干啥?我都看透了,没啥意思。
所以,人里头的想法很愚昧,就跟亚比米勒一样,跟以撒、亚伯拉罕立约,整一大堆没用的事。自己直接去找神不就完了吗?你里面的意念、看法跟神的意念、看法一样,不就解决问题了吗?所以,千万别整二手的。
Q5:老师,神的同在还有喜乐,对吗?
神的同在是有喜乐。可是,如果你遇到雅各遇到的这种事,你会不会喜乐?你不会。因为,钱都没了,东西都被哥哥吞了。能喜乐吗?为啥不喜乐?因为看重的事不一样。如果人看重的东西都是属天的、神的荣耀、神的殿、天的门,地上的事和很多的东西都不能剥夺你的喜乐,你能不喜乐吗?
Q6:老师,雅各离开家的时候,什么都没有带,在那睡觉的地方浇的油指的是什么?
大家的信心太迟钝了。神让亚伯拉罕献以撒的时候,那羊哪来的?羊不是神预备的吗?雅各出来的时候会带着一瓶油吗?我想应该没有。在那个地方,神就不能让它出一瓶油吗?能的。我们不要那么迟钝!好像那瓶油就成了我们的困惑似地。不用。就是从那地里头冒油,行不行?行。从那地里头冒水行不行?行。那地方冒出来一只羊行不行?行。从石头里冒出一个人来行不行?咋就不行呢?对神来说有多难的事?没那么难!
我们人经常问一些很奇怪的问题。灵界的事,不要说神可以,就算是黄皮子的灵都可以搞很多神奇的事。你不要看神,就看世上这些跳大神的,可以把鸡头拧下来又长回去了,都是我们不太理解的。
弟兄姐妹要逐渐进到神的意念里,以神的意念为我们的意念,以神的逻辑为我们的逻辑,以神的渴望为我们的渴望。神多么想与我们同在!但是,如果我们不是雅各,神不可能与我们同在。
Q7:保险到底保不保险?
怎么不保啊?比如说,你买了车,开车在路上一定会刮刮蹭蹭的,如果你不买交通强制保险,也不能上路。问题是保险保的是马后炮 ,就是事情发生了以后才起作用。那马前的呢?比如说,你买了一个重病险,如果得了会死人的病,它给你理赔,但是罪还得你自己遭。像我就不买,我要真得了那种病,死了就死了。但是你不是我,别学我,别真遇到这事就不知所措了,你也没那个体量。要学会不太在乎这个。
Q8:老师,前段时间看到一个悲剧:清华才女遭到了同学的嫉妒,被人两次下毒,成了七岁智商的残疾人。她的姐姐是多才多艺成绩优秀的才女,顺利考入北大,在学校组织的一场春游中不幸失足身亡。这一家人都很善良,为什么悲剧就好像盯着他们家一样?世上为什么这么多悲剧?
你怎么知道他们善良?除非你是他们家邻居、亲戚,你跟他们家交往很深。大家要知道,你不要以为人好,鬼就不搞你,即使人好,鬼也搞你。我们最需要的就是天的门、神的同在和神的保佑,最需要的就是神。你不要以为你是善良的人,就能够逃过鬼的搅扰,更何况也不是那么善良。人解决不了倒霉的问题。我警告我们当中的,好好省察自己。你如果没有神的同在,你觉着你很善良,那我只能祝你好运,不要等到事情发生了,才想起神的同在,就有点晚了。
我经常遇到人说自己是个善良的人,但是一点也不善良,其实就是没碰到你的核心利益,一旦碰了你的核心利益,你肯定完蛋。为什么毒她,不毒别人?我接触过一些人,在宿舍里跟人关系都不好。谁的问题?为什么别人都没问题?唯独她有问题?就是不会做人。千万别以为善良可以解决问题。有人说被投毒这人非常自私,整个宿舍的人都非常讨厌她。
Q9:老师,雅各的目标非常坚定,为了神甘心付代价。自己常常会低落,一对比跟雅各差远了,跟老师比也差远了,跟牧者比也差很多,自己还在竭力对付,自己里面的信心常常会跑偏,自己就整一套了,心里就不好受。
那就好好整对呗。我很奇怪为什么我们当中一些人,就喜欢瞎整。你能不能把雅各研究透,就不会差那么远了。问题是我们对雅各的了解差得太远了。我们里面在乎的东西要一个一个丢掉,然后我们把雅各在乎的东西一个一个捡起来。也不要去比,比来比去也比不出个所以然来,就脚踏实地了解雅各多少就落实多少,落实多少就开始向下一个台阶迈进,不就很简单了吗?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창세기 28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이 장을 여러 번 설교했고, 5년 전에 전했던 설교를 다시 들어보았는데 참 잘 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대가를 치르는 것에 매우 중점을 두었는데, 이번 설교는 대가를 치르는 내용을 유지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바로 《이것은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라》입니다.
우리는 야곱, 에서, 이삭, 리브가와 같은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진리라고 생각하며, 평생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분투하고 대가를 치르며, 심지어 체면을 구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비행기 표를 사서 밴쿠버로 날아가 어느 목회자에게 접대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총살당할 뻔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듣기에는 꽤 끔찍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기꺼이 그를 대접했습니다. 그 후 그는 뉴질랜드, 캐나다, 대만 등지를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돈을 빌리고 무료로 숙식을 해결했습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로 와서 기어이 저를 찾아오려 했습니다. 이번에 그는 제대로 임자를 만난 셈인데, 저는 그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남에게서 이득을 취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이곳에 오더라도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를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줄 것이며, 아무 이야기나 늘어놓는다고 해서 저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우리 목회자들을 훈련할 때, 반드시 한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철저히 살피도록 훈련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돈을 극도로 중요하게 여긴다면 주의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관리가 되면 탐관오리가 될 것이고, 상인이 되면 악덕 상인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을 대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열 마디 중 여덟아홉 마디는 본업을 벗어나지 않듯이, 사기꾼은 반드시 사기 치는 간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반드시 말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광둥에 가면 광둥 사람들은 애프터눈 티를 마실 때 어디서 돈을 벌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동북에 가면 어떤 차를 마시든 다들 모여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진지하게 한 이야기조차 농담처럼 들립니다.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숨길 수 없습니다.
야곱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인가
이 장에 이르러 야곱은 이미 75세가 되었습니다. 75년 동안 연애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직 한 가지 일만을 추구했는데, 바로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동행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우리 평범한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에게 "그게 밥을 먹여 줍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것이 밥보다 훨씬 맛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야곱이 추구한 것은 얼핏 듣기에 매우 기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이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도 "그의 후손이 무슨 상관인가? 이번 생만 잘 살다 가면 그만이지,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밥을 먹여 주는가, 하나님의 언약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야곱에게 무엇을 추구하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묻는다면 그 역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그저 "그것이 좋다"고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도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사업을 왜 더 크고 강하게 키워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야곱의 시대에는 야곱처럼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추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가 들려준 이야기를 들은 후,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처럼 추구하지 않았고, 잘 먹고 잘사는 따위의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추구할 때,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중요한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인생이란 살아봤자 별 의미가 없으며, 살다 보면 결국 죽게 되고,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많은 일들이 사실 그리 대단한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 저도 성숙해졌는데, 누군가 저에게 사역을 받으러 오면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의미가 있나요?"라는 말입니다.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남에게 빚을 졌으면 진 것이고,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과거에 누군가 기꺼이 돈을 빌려주었으니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많은 일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위를 따고, 취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리 중요하지도 않으며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라는 사람의 생활 방식은 꽤 무료해서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일에는 일절 손대지 않고, 여행도 재미없으며, 마작이나 골프 같은 것도 다 따분하게 느껴집니다. 일하고 사역하는 것 외에는 다른 무엇을 해도 별 재미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사역 결과물이 엄청나게 많은 이유입니다. 저는 이 일만을 사랑하기 때문인데, 이를 어디에 대고 설명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저와 대화하는 것이 너무 피곤하다고 느낍니다. 제가 입만 열면 다 중요하지 않다고 하니,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돌아가면 마음이 괴롭고 금세 치열한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이 일평생 살아가는 이 일을 분명하게 꿰뚫어 보지 못하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추구하기 어렵고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기도 어렵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언약이나 다른 이들의 축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그저 하나님의 지켜주심 정도로만 생각해야 겨우 들을 만하다고 여깁니다. 사실 사업을 크게 키우고 상장하는 것은 저에게 아무런 매력이 없습니다. 야곱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영계와 영생이 없다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더욱 의미가 없습니다. 살다가 결국 죽는데, 죽을 때는 죽기 싫어하고, 죽기 싫어도 죽어야 하니 참으로 비극입니다.
야곱이 추구한 것은 영원 속의 하나님이었고 마침내 그것을 얻었으며, 그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이 땅의 모든 민족의 축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이것을 필요로 합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재산 때문에 에서를 속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삭의 유산 중 야곱은 단 한 푼도 취하지 않았는데, 그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집안은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유산을 차지하려고 피 터지게 싸우는데, 그들은 살아가려면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야곱은 바르게 선택했고 많은 사람들은 바르게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애써봤자 결국 헛수고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를 따라 세상적인 일로 치열하게 아등바등 살기를 원치 않고, 오히려 마음이 활짝 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자유함을 누릴 수 있을지는 여러분의 몫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온종일 이 세상의 일로 아등바등 살지 않기를 권면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늘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살아가는 일 자체를 무의미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목사님, 저도 목사님과 같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제가 내려놓으라고 할 때 저와 달라져서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저는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변함없이 사역했고, 나중에 직장을 정말로 잃었을 때도 잃으면 잃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제가 하는 말을 여러분은 농담처럼 듣더라도 적을 수 있는 것은 적어두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되, 이해하지 못하면 그만두십시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일도 아니며,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것은 다 사소한 일입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결국 죽는데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얼마 전 한 목회자가 코로나로 사망했습니다. 저는 그의 가족에게 제가 그분보다 1년 먼저 코로나에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델타 변이에 걸렸고 그분은 오미크론에 걸렸습니다. 제가 감염된 바이러스가 훨씬 더 심각했지만 저는 여전히 살아 있고 그는 관 속에 누워 있습니다. 이런 말이 듣기에 거북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역시 관 속에 눕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아직 저를 데려가지 않으실 뿐입니다. 그들은 간절히 살고 싶어 했지만 결국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추구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처럼 다릅니다.
야곱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영생이었고, 영원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었으며,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었는데, 이는 우리에게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는 이를 위해 지극히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75년 동안 연애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낳지 않은 채 날마다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비록 집안의 둘째였지만,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권리를 얻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얻어 땅의 모든 민족의 축복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손해를 감수할 줄 압니다. 야곱은 돈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떠나보낼 때도 굵은 금목걸이를 몇 개 걸어주거나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아무것도 없이 지팡이 하나만을 짚고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아버지가 이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집안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양 백 마리를 딸려 보내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갈 때, 이삭은 아마 빵 한 조각조차 주지 않고 보냈을 것이니, 참으로 신기한 부자지간입니다.
이삭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인가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창세기 28:1-4)
이삭이 중요하게 여긴 것도 우리는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안부를 묻거나 옷을 더 챙겨 입으라거나 돈을 더 가져가라고 하지 않았고, 도적 떼나 맹수를 만날 것에 대비해 스위스 아미 나이프나 튀르키예 칼 한 자루 쥐여주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요즘 부자지간에 이렇게 했다면 아들은 매우 불만스러워했을 것입니다. 우리 중의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의 아버지가 여러분을 떠나보내면서 지팡이 하나만 주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면 당장 불만을 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너무 인색하다고, 보물함에 있는 굵은 금목걸이 하나쯤은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것만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큰일입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이삭이 중요하게 여긴 것이 같습니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마찬가지이며,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없는 사람 또한 무언가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자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오직 하나님의 동행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시기를, 전능하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셔서 네가 가는 길에서 너를 축복하시고 네가 이 땅을 기업으로 얻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비록 그리스도인이라 하지만, 제가 처음에 언급했던 그 사람처럼 도처를 다니며 사람들을 속이고 남에게서 이득을 취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만약 그가 저에게 와서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어림도 없습니다. 밴쿠버, 뉴질랜드, 싱가포르, 대만을 돌아다니며 여행이라도 하듯 배낭여행을 잘도 즐겼습니다. 그는 그 돈이 다 빌린 돈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는 것도 대단하지만 정작 바른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자기를 대접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면 완전히 오산입니다. 이런 사람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신학을 공부하겠다며 저에게 와서 후원을 바라는 자들도 저는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그가 원한다면 저는 화인 사명 신학을 값없이 거저 줄 것입니다. 이삭과 야곱 같은 사람들의 내면에는 매우 분명한 개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다면 돈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돈보다 훨씬 더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없다면 무엇을 가졌든 가지지 못했든 다 똑같습니다.
우리의 영적 높이와 관점과 통찰은 임칙서(林則徐)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임칙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내 아들이 나와 같지 않다면 그에게 돈을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돈을 주어봤자 탕진할 뿐이다. 만약 내 아들이 나와 같다면 그 아이 자신이 곧 돈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누군가와 교제할 때 그가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보게 된다면 조심하십시오. 언제 여러분을 속일지 모릅니다. 그는 돈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한 사람을 축복할 수 있으면 한 사람을 축복하고, 두 사람을 축복할 수 있으면 두 사람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은 방금 말한 그 온 세상을 날아다니는 사람을 축복하지 않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그의 나쁜 습관을 방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고치고자 한다면 저는 기필코 그를 도울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에게 속아 넘어간 뒤에 돕는 것이 아니니, 그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제 마음속에는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장부가 있어서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습니다. 누군가 저와 세 마디, 다섯 마디만 나누어 보면 그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기에 듣기만 해도 압니다.
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중요하게 여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여러분에게 옷을 얼마나 입었는지 시시콜콜 챙겨 묻지 않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없다 해도 괜찮습니다. 밥을 굶고 있다면 밥 한 그릇 주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깊이 돌아보십시오. 건드리기만 하면 미치도록 괴롭고 힘든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의 나라가 부흥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황폐하여 마음이 괴롭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괴로워하는 이유를 보면 다 고객을 빼앗겼거나, 자녀가 잘 안 풀리거나, 사장이 월급을 올려주지 않아서입니다.
얼마 전에는 더 어처구니없는 일을 보았습니다. 사장이 그에게 보너스를 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었더니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입니다. 사장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준 것이 자기와 무슨 상관이며, 무슨 자격으로 괴로워하고 기분 나빠합니까? 저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고 생각이 바르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시대는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없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없으며, 하늘의 문이 보이지 않습니다"라며 이 때문에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저는 그와 함께 괴로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귀한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고, 늘 여기가 아프네 저기가 아프네 하는 것은 다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을 잘못 두었기 때문입니다.
에서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인가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그의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사람의 딸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창세기 28:6-9)
에서는 아버지가 야곱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보내 그 집안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하는 것을 듣고, 아버지가 자신의 현재 아내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니 이스마엘 집안의 딸을 하나 더 맞이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에서는 혈통으로 볼 때 이스마엘이 라반보다 아브라함과 더 가까우니, 더 가까운 쪽에서 맞이하는 것이 좋겠다고 계산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었으며, 그는 완전히 잘못 짚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하나님의 전과 하늘의 문, 하나님의 동행하심,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언약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서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참으로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깨닫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과연 에서입니까, 아니면 야곱입니까? 그러나 에서는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자기 생각대로 이스마엘 집안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는, 그것이 기뻐할 만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사실 기뻐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저주받은 자의 전형적인 모습일 뿐이며,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그가 잘못 짚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장은 하나님의 전과 하늘의 문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전을 얻고 하늘의 문을 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야곱은 해를 거듭하며 75세가 될 때까지 기다렸고, 마침내 꿈을 꾸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위해 대가를 치를 때 결코 계산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형제들이 그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머리를 쥐어짜며 기가 막힌 수단을 씁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위해 몸싸움을 벌이고 목숨까지 거는데,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자 합니다. 사람이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유니콘 기업을 만들거나, 회사를 상장하거나,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어떤 일들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다 그것들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중요하게 여긴 것을 중요하게 여길 줄 모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에서가 중요하게 여긴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축하드리며 행운을 빕니다. 사실 사람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중요하게 여기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모셔오게 되고, 다른 헛된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 모두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전이자 하늘의 문이 되고 있습니까? 화인 사명 신학은 이 날을 추구하기 위해 막대한 대가를 치렀으며, 그 과정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고 추구하는 것을 위해 대가를 치른다
야곱은 75세가 되도록 연애도 하지 않았고 여성을 유혹해 본 적도 없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을 공략했는데, 바로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해 그의 형 에서를 공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수십 년을 살면서 도대체 무엇을 추구해 왔습니까? 여러분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를 보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입으로 말하기는 다 쉽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을 위해 내려놓는 것은 각자의 몫에 달려 있습니다. 때때로 저는 사역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당신은 대상을 잘못 중요하게 여겼습니다"라고 탄식하곤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500년 뒤에는 다 잿더미가 될 것입니다. 500년까지 갈 것도 없이 100년 뒤면 대부분 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발 저로 하여금 "어리석은 사람아, 제발 더 이상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십시오. 왜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고귀한 보물로 여기고 만물을 배설물로 여기지 못합니까? 야곱은 이를 위해 대가를 치렀고, 지팡이 하나만을 짚고 집을 떠나면서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고 형 에서도 원망하지 않은 채 황량한 산야를 홀로 걸어갔습니다. 먼 골짜기에서는 늑대와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치고, 누워 잘 때면 언제 맹수가 덮칠지 모르며, 독사 한 마리만 나타나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니,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가 참으로 처량해 보입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세기 28:10-11)
사실 야곱의 생각은 우리와 달랐습니다. 그는 마침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것만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그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공부를 할 때 야곱을 비판하기 좋아하며, 야곱이 형제 관계를 망쳐놓았다고 말합니다. 야곱과 이삭은 그런 것을 개의치 않았으며, 그런 것들은 그들의 눈에 동전 한 닢의 가치도 없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성경공부를 하면서 야곱이 리브가가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러 돌아오지도 않았다고 비판하지만, 사실 이삭이나 야곱이나 심지어 리브가조차 그런 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그 목회자 혼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일 뿐입니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삭과 야곱이 중요하게 여긴 것과 완전히 다른 주파수에 있었습니다.
야곱은 기쁨으로 이를 위해 대가를 치렀고, 자리에 눕기 전에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시기를 원했고, 이미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았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그 말씀을 자신에게도 해주시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갈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와 그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가 어디로 가든지 지키시며 그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하셨으니, 이 땅은 하나님께서 그의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약속하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의 차례가 되어 그는 이 바통을 이어받아 나아갈 것이며, 그의 자손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고 그와 그의 자손은 땅의 모든 족속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야곱은 돈을 얻지 못했다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잣집 도련님에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살아가는 것은 매우 단순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돈이 있든 없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을 대가로 치르시고 기쁨으로 영광의 날을 맞이하셨습니다. 사람이 이러한 중심을 가지면 차원이 다른 인생을 살게 되며,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됩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제 생각 이상으로 저와 분명하게 함께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갈망하고 추구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치른 대가 역시 제가 원한 것이고 저의 선택이었으니, 저는 세상의 이러한 일들에 별다른 흥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대가를 치르고 있는 그 일들이 과연 의미가 있습니까? 야곱은 이 지경에 이르렀어도 괴로워하지 않고 다가올 영광을 기쁨으로 맞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그날이 이르기를 고대하며 소망을 품고 앞을 향해 달려갔으니, 비록 지치고 목마르며 맹수들의 울음소리가 들려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치 대학 입시를 위해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이 그 순간 목숨을 걸다시피 하듯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도 그만한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에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보물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마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영원 속의 영광을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얼마나 보배로운지를 깨닫는다면, 약간의 시간을 들이는 것은 물론이요 생명까지도 대가로 바치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마침내 꿈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은혜를 입었다
야곱은 돌 하나를 가져다 베고 누워 잠이 들었는데, 기도하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비록 지금은 이 땅을 떠나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약속하신 이 땅을 자신에게도 약속해 주실 것을 구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이러한 갈망을 품음으로써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논리로 보면 엄청난 손해를 본 것 같지만, 영계에 속한 하나님의 논리로 보면 모든 이득을 다 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실 평소에 꾸는 꿈들은 다 쓸데없는 개꿈이고 뒤숭숭한 꿈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진지했고, 하나님께서 꿈에 그에게 보여주신 것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8:12-15)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여러분의 반응은 어떠하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반드시 가르쳐 드리고자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하신다면, 일평생의 문제뿐 아니라 영원한 문제가 다 해결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못되고 황당한 성경 해석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이 꿈은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인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행위를 인정하시고, 야곱이 중요하게 여긴 것과 그가 추구한 것을 인정하셨다면, 우리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이러쿵저러쿵 흠을 잡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습관처럼 야곱을 무턱대고 비난하고 헐뜯지만, 화인 사명 신학은 야곱을 매우 높이 평가합니다. 사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늘의 문을 열 수 있었고, 그가 누운 곳이 바로 하나님의 전이었습니다. 이는 여러분이 야곱과 같은 중심을 갖기만 하면 그곳이 하나님의 전이요, 그곳이 바로 하늘의 문이 된다는 뜻입니다.
제 안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성품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행한 방식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그런 꿈을 꾸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아십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선포하시는 꿈을 얼마나 꾸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직 꾸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믿음 안에서 저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임을 알고 있으며,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는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야곱과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며, 그럴 때 하늘의 문이 우리를 향해 열릴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당신은 그런 꿈을 꿔보지도 못하지 않았느냐"고 하겠지만, 저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야곱이 얻은 것을 얻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런 꿈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저와 함께하시니,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더 이상 잘못된 성경 해석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께서 야곱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아무도 야곱을 저주할 수 없으며 야곱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대단한 인물들입니다. 75년 동안 밤낮으로 꿈꾸어 왔던 것이 마침내 야곱의 꿈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깨어난 후 불평하지 않았으며, 그가 추구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야곱과 동일한 추구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전을 건축하기를 갈망하는 자에게는 그곳이 바로 하늘의 문이 되며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왜 이곳에 이토록 많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지 묻는다면,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야곱과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자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깨달음: 이것은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이 꿈을 기억하고 몹시 흥분했으며, 흥분을 넘어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세기 28:17)
그는 그 장소 자체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이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은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곳입니다. 이곳에는 예표가 담겨 있는데, 이삭처럼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야곱처럼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가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늘의 문을 열 수 있습니까? 신약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복음 16:19)
영어로 읽어보면 그 열쇠(keys)가 복수로 되어 있어 거대한 열쇠 꾸러미임을 알 수 있는데, 그 열쇠가 바로 하늘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이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운 사람이었으니 그곳이 하늘의 문이었고, 다윗과 솔로몬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한 사람들이었으니 그곳이 하늘의 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시며,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할 때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 됩니다. 천국 열쇠가 우리에게 주어질 것인데, 아직 받지 못한 수많은 열쇠 꾸러미가 더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추구하기를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제가 말씀드리는 이러한 일들을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긴다면 여러분이 묻는 그런 질문들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으며, 결국 여러분과 함께 유골함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다 진실입니다. 장래에 우리 모두 똑같이 저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극히 가볍고 잠시 받는 환난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저는 이를 위해 태어났고, 이를 위해 살며, 이를 위해 죽을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저와 함께 있을 때 제가 웃고 떠들며 자주 농담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보겠지만, 저의 마음은 하늘에 있으며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늘의 문을 열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장래에 제가 하늘 문의 입장권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일 것입니다. 천국의 문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자들이 모여 열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닥다리가 우리 가운데 서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됩니다.
우리의 추구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모든 문제는 하늘의 문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녀 걱정, 사업 걱정, 가족이 안 풀릴까 걱정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마저 망쳐버리는데, 이는 참으로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늘의 문이 된다면 이러한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양을 칠 때 그 양 떼가 번성했던 것처럼, 모든 문제는 하늘의 문과 관련이 있으며 여러분이 진정으로 야곱과 같은 사람인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이를 위해 대가를 치르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의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을 다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제가 진심을 다해 쏟아내는 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야곱이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서원은 사람이 구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나타낸다
여러분이 서원하려면 하늘의 문과 하나님의 전에 관한 서원을 하십시오! "하나님, 저와 함께하시고 저를 하나님의 전과 하늘의 문이 되게 하시면, 제가 주님을 저의 하나님으로 삼겠습니다!" 사람들의 서원 내용을 보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천만 위안을 주시면 오백만 위안을 헌금하겠다고 서원합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생각을 바꾸어 "하나님, 헌금할 오백만 위안은 그냥 하나님이 가지시고 저에게는 나머지 오백만 위안만 주시면 됩니다"라고 하니, 계산은 참으로 밝게 합니다. 그러고는 또 후회하며 "그때 1억 위안을 구할 걸 그랬다. 하나님이 5천만 위안을 가지시면 될 텐데"라고 하니, 이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세기 28:20-22)
야곱이 구한 것은 먹을 양식과 입을 옷뿐이었으며, 큰 부귀영화나 명성을 구하지 않았으니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별미인지 아닌지, 좋은 것을 먹는지 나쁜 것을 먹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 것이었고,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시는 것만을 갈망했기에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있기만 하면 족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이 구하는 것을 보십시오. 다행히 여러분이 저에게 알리지 않아서 망정이지, 제가 알았다면 한바탕 혼을 냈을 것입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야곱이 참으로 위대한 인물임을 진정으로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야곱의 믿음은 이삭의 믿음을 뛰어넘었고, 이삭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뛰어넘었으며, 훗날 요셉의 믿음은 야곱의 믿음을 뛰어넘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믿음은 요셉, 야곱, 이삭, 아브라함의 믿음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물론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해서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는 뜻은 아니며,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먹고 마시면 됩니다. 먹을 음식과 입을 옷만 주시면 족하며, 사람들이 추구하는 샤넬이니 에르메스니 하는 것들은 저는 탐내지 않습니다. 에르메스 양복을 입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지만 속에는 더러운 오물만 가득하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사람은 겉옷으로 존귀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것으로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에르메스도 필요 없고 샤넬도 필요 없으며, 평범한 옷 하나면 충분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원하며,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며, 심지어 어디서 사는가도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전이며, 하늘의 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우리 가운데를 오가며 끊임없이 하늘의 능력과 하늘의 보물을 가지고 내려올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세상에서 마귀 대적을 짓밟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고난을 조금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땅에서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하나님의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어, 땅의 모든 백성이 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 부릅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그곳으로 가져가고, 누구를 섬기든지 사람들을 야곱의 사명 안으로 이끌어 하나님의 전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이 저의 갈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기억하시고 함께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어디를 가든지 하늘의 문을 열어 수많은 사람의 축복이 되기를 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야곱의 성품을 끊임없이 배워나갑시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창세기》 28장 말씀
28: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8: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28: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28: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8:5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족속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28:6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28:7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28:8 에서가 또 본즉 그의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사람의 딸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는지라
28: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28:13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28: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8: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8: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