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
答疑解惑
Q1:如何付代价?
答: 人爱什么,就为什么付代价。比如说爱打游戏就为打游戏付代价,爱赌博就为赌博付代价。人若爱神,会为什么付代价?为行出神的话付代价。
人如果爱神,那所追求的就是神的公义和怜悯。那我看见人被鬼压制,我会怎么做?大家要知道,不是我有这个恩赐,我从来都没有这个恩赐,因为在当地教会的时候,人家听神的声音,我听不见,人家看异象我也看不见,人家一祷告,牧师按手,大家会倒一片,我却不倒。我就觉得特别不好意思,然后为我祷告的人还安慰我说:没事弟兄,下次再来。但是我读《圣经》,我爱神的话,我也没发现这种方式有那么重要,我也不大在乎。
但是我身上有一点,就是我看见被鬼辖制的,被鬼压制的,我很想释放他们,我就一直怀揣一个渴望,如果我能够像耶稣,这该多好!我就带着这样的渴望。
以前在工作岗位上服侍的时候,瞎整,给自己找了很多借口,其实都搞错了,服侍归服侍,动机还是很好的。后来神让我没了工作,没了工作好啊,没了工作有时间啊,没了工作没了钱,但是有时间了,有时间以后就更多爱神,开始建造教会,不断的祷告,这时候仍然带着神的怜悯。我就祷告服侍那些被鬼辖制的,一天、两天、三天、一个礼拜,有的要坚持几个月才把鬼赶出去,所以我有一个逻辑就是比鬼坚持再多一分钟。
那这些付代价了吗?付代价了。就是尽心尽力尽意爱主你的神,这话很重要。
Q2:人如果会赶鬼,也不见得爱神,而是谨守遵行神的话,谁听神的话多,就爱神爱的多,罪就赦免得多?可以这样解读吗?
答:不是,因为医病赶鬼,赶鬼本身就是爱神。
问题是啥呢?问题是说我们爱神这件事,还包括很多。比如说一个人一直赶鬼,一直赶鬼,却是无知,那能行吗?还得听神的话啊。
耶稣花了一半的时间在讲道,还花了一半的时间医病赶鬼,服侍。有的人说不是一半,是六四,四六分,我们也不用管那么多,大概就是这样子,很高的比例就对了。
弟兄姐妹要知道,千万不要赶鬼就一直赶鬼赶鬼,却对神的话不了解,那不就是被鬼忽悠嘛!因为赶鬼还是靠神的话,玛利亚坐在耶稣脚前,仔细听耶稣的教导,那是选择了上好的福份。所以千万别把这些东西对立起来,把这些东西整合起来才是对的。
Q3:推罗,西顿的故事是怎么样的?
答:其实推罗,西顿这两个地方是被神重重审判的,被神重重审判的地方,那里就会有灾祸,至于什么灾祸耶稣没有说,但是肯定是一场很大的灾祸。但是如果说神行了神迹在推罗,西顿,那里的人就都会悔改,就像《约拿书》里面的尼尼微一样。
Q4:有些人过的日子就是白天读经,晚上祷告,就像玛利亚坐在耶稣脚前,这样就是爱神吗?
答:这样不是爱神,这样叫做宗教狂,叫做听道精,有的人就天天听道,其实最重要的是听了道就要去行,行什么呢?就照着耶稣基督所训练的门徒去行,人听啊听,早上也听,晚上也听,那能解决什么问题?其实玛利亚也不是整天坐在那里听,只是那个时候坐在那里听,但是就是在那个时候,马大就在忙乎别的事情。
这件事我也觉得很奇怪,有的人就是这样,我在牧养这些人的时候,我教的时候她不好好听,听录音的时候她却好好听,也挺奇怪的,她想回头消化消化, 最后却也没时间消化了。
这就很奇怪,人的优先顺利出了问题,其实不是说应该这样做那样做,最终还得是听了神的话去行。
Q5:怎么样才是不跟神识别善恶?
答:如果神击杀了一个人, 你如果说,哎呀神啊,你怎么能这样做呢?这就是跟神识别善恶了。再比如说,拿达,亚比户献凡火,其实他们献凡火,他们真的不知道,他们是真的不知道,就没有回头的机会了,神的火出来,一下子就把他们烧灭了,到死都不知道咋死的。你不会告诉人家啊?告诉不了啊!
所以,千万别跟神识别善恶,神做事超出我们的智慧。我们只是需要管好我们的事,神要怎么做就怎么做吧。
Q6:身边大部分人都在被鬼折磨,他们自己却觉得是正常状态,这样的情况下,医治和释放如何通过我实现?是否我越来越活出神的同在,他们就更可能改变他们自己原本的认知?
答:你永远解决不了人家的认知,连耶稣都解决不了迦百农,哥拉汛,伯赛大。耶稣在他们面前做了多少事啊,瘸子走路,瞎子看见,天生瘸腿的起来了,天生的瞎子看见了,但还是解决不了人心里的认知。
你不能代替人家选择,我们当中多少人亲身经历了神,然后多少人看了却是不明白,听了也是不明白,看是看不见,听是听不明白,油蒙了心。耶稣那个年代是这样,但是大家知道神在干一件什么事吗?神在找羊不是在找狼,神在拣选宝贝,所以千万别指望你能改变他们。
你能服侍就服侍,把他们的鬼能赶就赶,不能赶就活该啊,你问他们平安,他们接受就平安,不接受就不平安,神的国本来就这么运作。
Q7:爱神跟名记录在天上有关,我还是有点困惑,是不是爱神名就被记录在天上?
答:那当然了,一个不爱神的人,记录在天上干嘛。到天上跟神唱反调吗?所以说爱神的人,名字记录在天上,记住啊,爱神的人有一个完整的完全的根基。所以大家一定要知道,爱什么就为什么付代价,所以耶稣要的是门徒,不是信徒。有人信耶稣,但是一到付代价,却付不了,那是啥,那就是个信徒,那不是个门徒。如果连门徒都算不上,那到天上干啥去!
Q8:要收的庄稼多,是什么呢?
答:其实是指很多羊,很多要收的庄稼都熟了,指的就是属于神的百姓。我们要把属神的百姓带到属神的国度里,为什么是我们要把神的百姓带到神的国度里?神只不过是安排这样一件事,让我们跟祂一起得荣耀。其实我们一去做,神就和我们一起做,真的不是我们自己做,是神跟我们一起做,这叫做与神同行。
去收庄稼,我们还以为我们做了啥呢,其实我们只是顺从神的旨意去做,神就与我们同工,然后就把神的庄稼收回来了。
Q9:打发门徒出去,为什么不让他们带钱囊,口袋,鞋子呢?
答:一个原因就是人要亲身经历神的供应,在那件事上耶稣真的是这样吩咐他们的。结果他们缺乏了吗?什么也没缺乏。这70个人学会了一个什么功课?学会了一个信靠神什么都不缺乏的功课。
Q10:感觉赶鬼有点难,天天去赶倒是没问题,问题是人家不知道愿意不愿意,也不知道信不信。
答:你给不信的赶鬼,你在干啥呢?你在找事呢?有需要的才去赶,别天天到大街上去找有鬼的。也就是说有需要的,我们就把他们从魔鬼的手里释放出来。
Q11:玛利亚已经选择了上好的福分,是不能夺去的,是指什么?是顺从神听从神的话吗?
答:玛利亚已经选择了这上好的福分,当人做了选择谁也不能夺去,记住啊,人的选择至关重要。一旦人做了这个选择,我选择爱神,我选择为神付代价,我选择这样,我选择那样,谁能够夺去呢?只有你自己能够夺去,如果你自己把自己的福分夺去了,那不是活该吗?不能夺去的是啥意思?就是我们一旦做了选择,就是我们的选择起了关键性的作用。
Q12:我怎么努力也不能专一,包括听老师讲道,是怎么回事?
答:是因为背后有个鬼,我们把鬼赶出去就好了。怎么才能把不专一的鬼干掉呢?就是当我们做事不专一的时候,我们就对付这个不专一。专心做一件很小的事,然后不专一的鬼就会很抓狂,你就把自己的心思意念收回来了,做不到就赶鬼,很快鬼就被对付掉了。
Q13:马大心里头忙乱,她是为什么忙乱?她有侍奉神,付代价吗?
答:付的啥代价啊,就一个忙乱的代价,忙乱没有任何价值。我曾经带着人做软件,我也带着人做装修,我带人做很多的事。后来我就发现有的人帮倒忙,他不干还好,我自己干完了,一次干对就完事了。结果他一干,不干错都难,一干错还得拆,拆完了,还得丢,然后还得重新做,浪费了材料不说,还得浪费时间拆,很烦的。马大心里头忙乱,她就帮倒忙了,那叫侍奉神,付代价吗?
Q14:22节的意思是我们信神是神的拣选,加上自己的选择吗?
答:其实《圣经》里的一个根基讲的是信心,人信什么就选择什么。《圣经》白纸黑字写了这么多,很多牧师都读,读完了他说,啊,那是两千年前,今天神已经不那么做了。他就相信神不那么做了,问题在哪?问题就在于其实自己心里头啥都明白,就是选择糊涂。
其实神怎么可能拣选假装糊涂的人呢!为什么这些人假装糊涂呢,我跟大家稍微说一下,有些传道人啊,他不赶鬼还好,他一赶一祷告,病人没好不要紧,还变严重了;不服侍还好,一服侍一祷告病人死了。这些人,他们身上有个坏的习惯,就是不相信神的话,他不相信神的话其实在他身上体现的淋漓尽致。
一个人不相信神的话,他怎么可能服侍出耶稣的形象呢! 因为他用很多的逻辑,很多的理由给自己找一大堆借口。人们常常说,我没有这个恩赐,他有这个恩赐,他用恩赐做自己不信的遮羞布,其实哪有这回事,只要追求都一定得着。
那你说圣灵照着自己的意思将恩赐分给人,其实这70个人,还有那12个人,其实不是说这70个人里面,35个这样,35个那样,不是,是70个人都这样。咱们弟兄姐妹都要知道,神要的就是这样的人。那我们说,好,我就选择做这样的人。我问你神会不会给你?神就会给你。
神的拣选是神拣选宝贝,有信心的人就是宝贝,没有信心的人在神的眼里就是垃圾。所以大家要学会读了神的话就去相信,就去行。
Q15:给传统教会的人赶鬼,怎么赶?他们也有查经,只是祷告效果没那么好。
答:别赶,赶啥呢?人家都不信有鬼,我看连祷告都免了吧,为啥呢?因为人家不需要,听见没有。我给大家一个建议,你会发现我有的时候比较冷漠,不是因为我冷漠,是因为那个被服侍的人冷漠,我就冷漠,我是照着他的渴慕服侍。
人信什么就得着什么,人没遭够罪就继续遭罪,你用不着体贴。当我们开始传讲神的话,给他做见证,然后他还是选择他那套东西,那就继续遭罪吧。
我服侍过很多这样的状况,有一个传统教会的人,其实他信的是很不合乎道理的,10年前他自己得癌症,后来插了根管子,一直靠液体食物来养活自己,10年后,自己的老婆也得了癌症,然后这些年养了个儿子,10岁多一点,很惨的。
然后我告诉他,他不是约伯,结果他跟我发火,他觉得他是约伯。那好吧,那你就做约伯吧,你可以做约伯,人家约伯得了医治,后来牛羊加倍,但是他得了啥呢?得了癌症,癌症加倍。
Q16:没有神的话,忙来忙去没有意义是吗?
答:是的,没有神的话,你忙来忙去,忙啥呢。行政管理? 管啥呀。我也不知道为什么很多牧师这么忙,我也不觉得忙是件好事。我觉得做事有效率,做事有神同在比较重要。
Q17:神在创世已先就拣选了我们吗?有的人注定没有被拣选吗?
答:是的,有的人注定没有被拣选,你比如说雅各和以扫,以扫就是注定没有被拣选的。这是神奇妙的作为。大家千万不要以为神是圣诞老人,什么都要。不是,神不是收破烂的,神是找宝贝的。有的人就是有信心,有的人就是没信心,没信心就活该。
Q18:没有人知道父是谁,那个年代的以色列人不知道神吗?
答:如果知道,他们就不把耶稣钉十字架了,耶稣就是神道成肉身来到这世上,但是那些人就是不知道,其实他们也是故意不知道,这很有意思。
Q19:旧约里面都是神找人,今天我们不能找到神吗?
答:是的,问题在于神找什么样的人,神找渴望的人,我们里面如果渴望,如果渴望见到神,神一定会找到你。神在天上人间到处寻找,看有寻求的没有,看有明白的没有,就是这个意思,就是到处找。神很忙的,到处找,但神找的不是忙乱的马大。神在找宝贝,神到处在找宝贝,所以今天你是否愿意做宝贝!
Q20:现在听说很多人得忧郁症,自闭症,以前都没有听说过,是现在的人比以前的人更会过小日子吗?
答:有一个人,她服侍了很多忧郁症,自闭症患者。用她的话说,她没有这方面的恩赐,她也很辛苦,服侍这些人很辛苦的,一身的鬼能不辛苦吗?
她就问我得这些病的根源是什么?得这些病的根源,包括癌症等各种疾病,大家一定要知道,这些病的根源叫做识别善恶,体贴肉体,爱世界。如果一个人识别善恶,体贴肉体,爱世界到了临界点,就会得很多奇奇怪怪的病,如果一个人爱钱,爱世界,就会招来很多的鬼,这就导致了这些问题。
有人跟我说啊,咱也没做过统计,他说深圳越来越多的人患有学习障碍啦,自闭啦等等这种疾病。我小时候都没听说过。据说在那些发达国家,这种状况更普遍,学校里面到处都是。就是因为日子好了,人体更贴肉体了,人更爱世界了。
Q21:那个邻舍的故事,人说``是怜悯他的”,是故意这么说的吗?是因为他自己做不到吗?
答:不是,其实他心里啥都明白,这个邻舍是指,谁是他的邻舍,就是怜悯他的。这话,耶稣要表达的意思很深刻,神让我们爱邻舍如同爱自己,就算我们走路,都会遇到很多这样被压制的人,也就是说我们的邻舍其实有很多。
Q22:耶稣说:不要禁止他,因为不抵挡你们的就是帮助你们的,这句话是什么意思?
神有丰富的恩典,神巴不得更多的人能够得释放,有的人不是信耶稣的,但他要赶鬼,那就赶啊,没关系的,奉耶稣的名赶鬼是很好的。
Q23:新冠瘟疫又抬头,老师怎么看?
答:我会不会碰到敏感话题我就不知道了。新冠瘟疫是个邪灵,瘟疫嘛,大家都知道,古代人把瘟疫看成是一种属灵的事。这几天瘟疫又抬头,因为邪灵一直在操纵这件事,所以大家开始琢磨,其实新冠瘟疫抬头不抬头,跟我们关系也不大。
如果你觉着人家得了新冠,人家就得了;但是如果你得了新冠,我给你一个好消息,这新冠其实不难搞。可能我一说这话,应该很多人会喷我,会说,人家医生都搞不好的,你怎么能搞?其实医生搞不了的我能搞的事多了,我能搞的很多医生搞不了,医生能搞好的咱就不用搞了。
问题是,很多疾病医生搞不好,别人咱不管,你既然在咱们当中,你要有问题的话,我告诉你个好消息,这种事,我也不知道他们是不是新冠,反正有那些新冠症状的人,我祷告都好了。
总结
今天的问题就回答到这里,希望每个礼拜都跟大家有一段答疑解惑的时间,大家预备好自己的问题,我们把信仰里的困惑一样一样去解决,如果不能解决,咱就实实在在一起来探索。我相信神一定会越来越多的向我们启示祂自己,愿神祝福大家。
성경공부: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누가복음》 10장을 함께 성경공부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복음》 9장에서 한 가지 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 대가를 치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누가는 분명한 흐름을 따라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10장에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누가가 표현하고자 한 내용을 최대한 읽어 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옛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위험한데, 전체적인 관점을 갖지 못하는 습관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관점이 부족하면 《누가복음》에서 아무 구절이나 뽑아서 읽어 주어도 매우 당황하게 됩니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자매가 이 장의 한 구절을 매우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바로 다음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누가복음》 10:3-5)
우리가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따라 하기만 한다면, 돈을 가지고 나가지 않고 갑자기 어떤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당신의 집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분명 우리를 쫓아낼 것입니다. “이 사람 미친 사람 아닌가?”라고 할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한 보도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필리핀에 홍수가 났는데,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이 홍수 앞에 서서 강을 건너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넌 일을 떠올리고, 기도하면서 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결국 모두 홍수에 빠져 죽어 이 세대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 즉 문맥을 무시하고 일부만 떼어 내어 해석하는 사고방식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누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누가는 이 장에서 “사람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위해 대가를 치를지 선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가를 치르기로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대가를 치르지 않기로 선택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는 왜 어떤 일을 위해 대가를 치르거나 치르지 않기로 선택할까요?
얼마 전 좋은 소식이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7년 연속으로 원가계산사 시험에 응시한 끝에 마침내 합격했습니다. 그녀는 이를 위해 매우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왜 7년 동안 계속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을 매우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격증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고, “사람이 살아가려면 이런 것이 있어야 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7년 동안 계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한 사람을 7년 동안 계속 섬긴 적이 있습니까? 매우 어렵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누가가 강조하여 표현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위해 대가를 치를지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것이 주제입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 주제를 어떻게 찾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이 주제를 발견한 후, 성경 전체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고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이 바로 누가가 당시 기록한 틀을 붙잡은 것이며, 주제를 파악한 것입니다.
절대로 문맥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돈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고 해서 따라 하고, 다른 사람이 홍수 속으로 들어가 강을 건넌다고 해서 따라 하며 함부로 행동하지 마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땅속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캐나다에서 다시 나타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러분이 다시 나타나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보통은 다시 나타나지 못합니다. 아마 장차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우리 모두가 갑자기 변화되어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으로, 영광이 없고 육체에 속한 것이 영광스럽고 영적인 것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어쩌면 벽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은 절대로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코가 납작해질 때까지 부딪히고도 제가 말해 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기로 선택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공급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있으니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42)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기를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1-12)
이 장에서 누가는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위해 대가를 치를지 선택한다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세상의 일을 내려놓고 시간을 내어 주 예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들었으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좋은 복을 선택했습니다. 그 복은 세상의 어떤 것도 빼앗을 수 없는 복입니다. 누가는 또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첫 번째 부류는 그 칠십 명이고, 두 번째 부류는 그 성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에 있는 사람들은 다시 두 부류로 나뉩니다. 제자들을 영접한 사람들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 칠십 명은 주님의 보내심을 받아 둘씩 나가서 주님의 추수를 거두기로 선택했습니다. 어린 양이 이리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리의 먹이가 되지 않겠습니까?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 예수님은 그들에게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칠십 명이 나갔을 때 그들의 밭과 자녀와 아내와 부모는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들이 주님의 추수를 거두러 나갔다면 자기들의 추수는 어떻게 했겠습니까? 분명 내려놓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하기로 선택했을까요? 그들이 추구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였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전에 열두 제자가 훈련을 마치고 나갔을 때 귀신들도 그들에게 복종했습니다. 또 칠십 명의 제자를 세워 내보내셨는데 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왜 나갔을까요? 사실 사람은 선택해야 합니다. 이 칠십 명은 가장 좋은 복,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선택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을 따르고 대가를 치르기로 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월급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월급을 주지 않으셔도 하루 종일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전대도 배낭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그런데 정말 가능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염려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면 “누가 여러분을 먹여 살립니까? 여러분이 직접 돈을 벌어 자신을 부양합니까, 아니면 누군가가 여러분을 부양합니까?”라고 의심합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부유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믿는다면, 주님의 추수를 거두러 나가기로 할 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부유하시며, 우리를 공급하시는 방법도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제 안에는 이런 관념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매우 가난하게 산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매우 가난하게 사는 현상을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매우 가난하게 사는 것이 옳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부유하시고,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 부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것이 사실임을 안다면, 이 칠십 명의 생활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실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공급을 직접 경험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저의 동역자들 가운데 가난을 겪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공급하시는 방법은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실 수 있다
이 칠십 명이 나가서 전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이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값싸게 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을 전하러 나가는 것은 이리를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추수와 하나님의 양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이 이리 가운데로 들어간다는 것은 이리에게 잡혀간 양을 찾으러 간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그 성에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에 대해 자주 말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서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에 임합니다. 어떻게 양을 데려올 수 있습니까? 성 안에 있는 병자들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 안의 병자들을 치료할 때, 마귀와 원수, 사탄의 어둠의 권세를 철저히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에 있는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을 따라갑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든 우리는 그들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쳐 주셨지만, 마지막에 돌아와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나머지 아홉 명의 나병환자를 다시 부르지 않으셨을까요? 그들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선택은 아무리 생각해도 매우 유익한 선택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유익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이 칠십 명은 이런 선택을 했는데, 그들이 무엇을 잃었습니까?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영접한 사람들도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무엇을 얻었습니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위해 대가를 치를지 선택합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힘과 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선택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있습니다. 다만 그 시간을 어디에 사용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그가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면, 사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식사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마라탕 가게의 여주인이 웹사이트에서 우리를 검색해 찾아왔습니다. 평소 장사가 가장 안 될 때에는 하루 주문량이 겨우 20건이었습니다.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임대료도 내야 했고, 밖에는 갚지 못한 식재료 대금도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일했지만 돈도 별로 벌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우리 가운데 온 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섬기는 방식에는 개선할 점도 있었지만, 마라탕 장사는 점점 더 잘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사람이 마라탕 장사를 중요하게 여기면 마라탕 때문에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면 하나님께서 재정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저의 이해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많은 유익이 있는데, 그 유익에는 몸의 건강도 포함됩니다. 우리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면 몸에 생기는 많은 문제를 줄일 수 있습니다. 병이 나면 정말 많은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질병으로 10만, 20만, 심지어 100만 위안이 들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의료보험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해도 병드는 대가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병에 덜 걸릴수록 많은 고통을 덜 겪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몸의 건강을 가져오며, 재정의 건강도 가져옵니다! 몸과 재정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을 위해 대가를 치르게 된다
고라신아 네게 화가 있을지어다 벳새다야 네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 중에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13-16)
이 칠십 명을 영접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누가복음》에서는 평안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 칠십 명을 영접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했습니다. 가버나움과 고라신과 벳새다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도 보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한 기적과 놀라운 일도 보았지만, 여전히 못 본 척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별것도 아니야. 나는 그냥 내 삶을 잘 살아가면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이며 영생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목표가 현세의 논리 체계에 있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생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가버나움과 고라신과 벳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선택이 있었지만, 그 길은 음부로 통하는 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은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위해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을 위해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전에 한 친구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같은 선진국에는 자폐증과 지적 발달 장애, 우울증을 가진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친구의 목회자는 15세에서 35세 사이의 이런 환자들을 많이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목회자는 그들을 매우 사랑했지만, 자신에게는 이 분야의 은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이 사람들의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매우 의아해했습니다.
사실 문제는 세상을 사랑하고 육체를 배려하며 선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극에 달하면 암으로 발전합니다. 가버나움과 고라신과 벳새다 사람들처럼 예수님과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행하는 것을 보고도, 결국 돌아서서 자기 삶을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있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멸망하여 음부로 내려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대가를 치르고,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을 위해 대가를 치릅니다. 이것이 바로 《누가복음》 10장이 논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해야 한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누가복음》 1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누가복음》 10:19-20)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좋습니까, 좋지 않습니까? 본래는 어린 양이 이리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고, 이리 떼는 마귀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리 떼가 어린 양에게 패배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런 권세를 가지면 음부와 지옥과 죽음의 영을 밟고,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를 이기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보물이 아니겠습니까? 돌아온 칠십 명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님, 제가 이런 권세를 얻을 수 있다니요! 이 가장 좋은 복을 선택했구나. 본래 우리는 연약했는데 이제는 이리처럼 사나운 귀신도 제압할 수 있구나!”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것을 보물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가장 좋은 복음은 사람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선택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습니다. 한 사람은 제 동역자가 목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에 세 자녀가 있었는데, 그중 한 아이에게 습진 문제가 있었습니다. 피부가 심하게 헐어 있었지만 우리의 섬김을 통해 완전히 나았습니다. 아이의 피부가 아직 낫지 않았을 때에는 그 자매가 계속 필기도 하고, 모임에도 참석하고, 과제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피부가 나은 후에도 모임에는 참석했지만 과제는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바쁜지 우리도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 평범한 삶을 살아가러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우리에게 연락해 왔습니다. 아이의 피부 문제가 다시 생겼기 때문입니다! 피부 문제는 그저 작은 습진일 뿐인데도 그것을 이기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여러분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사실 그 자매도 매우 힘들어합니다. 자신의 이해에 따르면 집에서도 핍박을 받고, 우리 가운데서도 힘겹게 따라오면서 자신이 조금 뒤처진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뼛속 깊은 곳에서 이 가장 좋은 복을 선택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권세를 붙잡고 일어나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타협하기로 선택한다면 타협해야 할 곳은 끝없이 많습니다. 이 칠십 명은 대부분 남자였을 것이고, 여자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결혼했을 것이며, 아내를 두려워하는 습관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아내를 두려워했다면 아내가 분명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을 것입니다. 귀를 잡고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당장 집에 돌아가서 프린터 고치고 집 컴퓨터 고쳐!” 결국 아내에게 귀를 잡혀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런 일은 사실 저도 많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미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능력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를 얻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지혜롭게 선택하겠습니까? 중화권 하나님이 주신 사명 신학이 말하는 것은 열두 제자와 칠십 명의 제자가 예수님께 파송되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천국의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입니다. 그러나 이 선택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누가복음》 10:20)
사람의 이름이 어떻게 하늘에 기록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도 알고 싶고 저도 알고 싶을 것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과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남편과 결혼했는데 남편이 여러분을 매우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여러분을 위해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셔서 나가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억압받는 사람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얻게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들에게는 숨겨지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난다
예수께서 여러 성에서 많은 권능을 행하셨으나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 중에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떨어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오늘까지 남아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심판 때에 소돔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태복음》 11:20-27)
어떤 사람이 이것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안의 선택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선택은 매우 지혜로워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지혜롭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가 매우 지혜로운 선택을 하도록 하십니다. 절대로 하나님과 선악을 분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본래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본래 모두 어리석고 둔해 보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선택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매우 지혜롭고 총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지혜와 총명함 때문에 자신의 말씀을 숨기십니다. 마치 가버나움과 벳새다와 고라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본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사실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그 시대에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보고도 매우 담담하게 여기며 자신들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일처럼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9:62)
《마태복음》이든 《누가복음》이든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방금 소 열 마리를 샀으니 돌아가서 보아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제가 방금 집을 샀으니 먼저 돌아가서 집을 수리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겉으로는 매우 지혜롭고 총명해 보이지만, 그들의 총명함과 지혜는 모두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납니다. 어린아이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사실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나타내시는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어느 정도로 단순합니까?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와! 이것이 가장 좋은 복이구나. 이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자 내가 가장 필요한 것이구나!”라고 말하는 정도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이치에 맞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느니라.(《누가복음》 10:23-24)
얼마 전 한 교회의 자매가 웹사이트에서 제 설교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지역 교회의 목회자가 전하는 설교는 그 자매의 표현에 따르면 영양분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 사람이 설교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설교한 것을 듣고 나면 영양분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얻는 것이 있고 배부릅니다.”
저도 처음 배운 표현이었습니다. “영양분이 있다”는 말이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평가해 주니 저도 듣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가 이 영양분 있는 말씀을 다른 자매에게 보냈습니다. 다른 자매는 그것을 듣고 자기 목회자의 설교와 다르다고 느꼈고, 제가 설교한 것을 그들의 목회자에게 보냈습니다. 그러자 그 목회자는 이것이 이단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자매는 점점 담대해져서 자기 목회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물론 여러분도 저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제가 헛된 말을 한다면 여러분은 저에게 도전해도 됩니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중화권 하나님이 주신 사명 신학은 우리가 가진 것이 진리의 전부라고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추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전하는 설교에 영양분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지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끊임없이 조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읽고 있습니다.
그 자매가 목회자에게 “몇 편이나 들어 보셨습니까?”라고 묻자, 그 목회자는 “많이 듣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몇 편 듣지도 않고 어떻게 이단인지 알 수 있습니까? 사실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는 “방언을 통역하지 않으면 이단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통역했다면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제가 통역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보고 들었던 것을 두고 예수님은 그들의 눈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 시대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세례 요한조차 제자들을 보내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입니까?”라고 묻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겠느냐?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 곧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볼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특별히 큰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 많은 사람이 치유되고 해방됩니다. 많은 사람이 “이것이 나았습니다. 저것이 나았습니다”라고 글을 남깁니다. 저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권능이 있는 복음이 복음입니다. 권능이 없는 복음은 은사의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입니까? 한 사람이 자기 안에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저도 매우 놀랍습니다. 저는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으면서도 감히 자신이 정통이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정통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이상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섬김을 본받는 것이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으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25-37)
우리는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십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을 우리도 행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을 행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신 본보기입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또한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신 본보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 주신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선택에서 우리의 선택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것을 위해 대가를 치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을 매우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하게 되면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절대로 하나님을 속이지 마십시오!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러 와서 물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영생을 얻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영혼을 해방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몇 명을 해방했습니까? 어린 양이 이리 가운데로 들어갔는데 오히려 이리 떼를 이겼습니다. 여러분은 이리 떼에게 패배했습니까, 아니면 이리 떼를 이겼습니까? 귀신을 제압했습니까, 아니면 귀신에게 제압당했습니까? 이것은 우리 뼛속 깊은 곳에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승리하지 못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이라는 말은 번역하고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도 모임에 참석하고 기도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의 본뜻은 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묻습니다. “치유와 해방 사역을 할 때 돈을 받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나는 치유와 해방 사역을 하면서 돈을 받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치유와 해방 사역을 하면서 돈을 받으니, 제가 하는 치유와 해방 사역도 돈을 받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치유와 해방 사역을 하면서 한 번도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정말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치유와 해방 사역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대가를 치르며 섬기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제가 기꺼이 섬기고, 섬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마음과 힘을 다하여 나의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억압받고 묶인 사람들을 마귀의 손에서 빼앗아 오고, 이리 떼의 손에서 양을 빼앗아 옵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양을 돌볼 때 이리가 오면 이리를 쫓아냈고, 사자가 오면 사자를 쫓아냈던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사자가 양을 물고 가기도 했지만, 다윗은 따라가서 사자를 죽이고 양을 되찾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 일 중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분의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의 권세를 의지하여 마귀와 원수를 공격하고, 사로잡힌 사람들을 해방하며,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유를 얻도록 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비된 사람들, 소아마비에 걸린 사람들,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 걸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나병환자들과 피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깨끗함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래 눈에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 오늘 모두 치유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이러한 치유가 모두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반드시 하나님의 진리를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진리만이 진정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잠시 여러분을 해방하시는 것은, 여러분도 이 사람들을 본받아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복이며, 빼앗길 수 없는 복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마귀에게 짓밟힌 사람을 보았을 때, 우리 안에 긍휼이 있습니까? 한 번은 제가 설교하러 갔는데 그들이 꼭 제가 설교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강단에 서서 마음과 뜻과 힘과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제가 설교할 때 몇몇 목회자들은 아래에서 자기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말만 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리고 괴로워했습니다. 교인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대가를 치르는 사람인데, 그렇다면 그들은 대가를 치르고 있었습니까?
우리가 마귀에게 억압받고 짓밟힌 사람들, 가난의 저주에 묶인 사람들, 질병의 영에게 지배받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저에게는 이런 은사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은사가 필요합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다시 도전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해방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긍휼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뿐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들은 귀신에게 억압받고 귀신에게 짓밟힌 사람들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사냥을 사랑하며, 어떤 사람은 낚시를 사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섬김은 내려놓으면서 취미는 다시 붙잡습니다. 예수님에게 낚시하는 취미가 있었던 것을 우리가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스포츠카를 타거나 경마를 즐기셨습니까? 없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고 일꾼은 적으니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를 보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품었습니까? 우리가 그들을 해방한 후 그들이 떠날 수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해방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기로 선택하는 것은 가장 좋은 복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38-42)
예수님께서 섬기실 때 마르다와 마리아라는 두 자매가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조용히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지만, 마르다는 그곳에서 분주했습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무엇 때문에 바쁜 것입니까? 무엇이 그렇게 바쁩니까? 모두 예수님의 말씀과 진리를 들으러 왔는데, 마르다는 할 일이 많아서 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빴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차를 내오거나 물을 대접하라고 요구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녀는 예수님께 나아가 말했습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섬기게 두는데도 신경 쓰지 않으십니까? 제 동생에게 저를 도우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매우 조급한 사람입니다. 마르다는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했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마르다의 선택은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까? 많은 사람이 마르다와 같습니다. 복이 없는 사람이며 분주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어지럽고 분주한 사람이 일을 망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사실 그녀가 하는 일이 중요합니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들으니 그들의 목회자가 행정 일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무슨 행정입니까? 교회에 무슨 행정이 필요합니까? 저는 행정 직원을 둔 적이 없고 비서도 두지 않습니다. 이메일은 제가 직접 읽고, 전화도 제가 직접 받고, 비행기표도 제가 직접 예약하며, 글도 제가 직접 씁니다. 비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비서를 고용하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제가 또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시간이라면 제 일은 벌써 다 끝냈을 것입니다.
저는 마르다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주했는지 늘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녀의 분주함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선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집에서 요리하기로 선택하면 하루 종일 바쁠 수 있습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점심을 준비하고, 점심이 끝나면 저녁을 준비해야 하니 매우 바쁩니다. 저는 일을 매우 빨리 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모두 생략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것을 위해 대가를 치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분을 더 많이 알아가도록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이것이 보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도 영양분을 얻어 저와 같은 선택을 하고, 이것이 얼마나 좋은 복인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저는 음부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권능 없이 살고 싶지도 않고, 세상에서 귀신에게 억압받고 싶지도 않으며, 세상에서 귀신에게 억압받는 사람들을 보고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과 생각을 다하여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나의 일생을 완전히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기로 선택하면 그분의 제자가 됩니다. 우리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되고, 기쁨으로 영생의 은혜와 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을 위해 대가를 치르면 음부로 내려가게 되고,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본래 이와 같습니다. 모든 문제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