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听老师提到东方闪电,上网一查,中国土地上竟然有十几种邪教?
按照我的说法有点小极端,今天有多少是纯正的福音?据我观察不像耶稣的基督徒一堆。我说:你信啥?他回答说信耶稣。我再问:你信耶稣啥?他说不知道。我很诧异,教会为什么不做耶稣做的?耶稣不做的却做一堆?如果按照他们所定义异端的逻辑,他们也把自己给兜进去了。那是耶稣基督的信仰吗?不管别人喷我几回,我也不在乎,但是《圣经》白纸黑字,咱真得读明白了。
就算我没读明白,你读明白了,我听你的。如果没整对,那是啥?按照他们的逻辑那叫异端。说别人是异端的,最后把自己整得挺邪乎的。我的工作是把神的话读对,如果读不对,我就很努力去读对,然后照着神的话谨守遵行!整错的方式千千万万,我们就琢磨如何把事整对。至于谁有没有整对,那就祝他好运!
Q2:信神的人如果不听神的话,就会有更大的咒诅,那信神还是不信神好?
我觉着不信更好。信神又不谨守遵行,那你干啥来了?就好比摩西带领以色列人出埃及,如果那个以色列人跟摩西说:你们走吧,我就想留下来做奴隶。那你就留下来吧!留下来的以色列人活得比死在旷野的以色列人好还是坏呢?那应该会好一点,但最后结局也都变为尘土,也都一样。很多人信主了,却不谨守遵行神的话,你要干啥?
神要的是得胜的百姓,信主如果信到咒诅里面去,那不是悲剧吗?那是信咒诅,不是信主。我们信主就把神的话读明白,读不明白就使劲读,寻求的必寻见,我们就必得着神的应许。我们既然信了主,就做约书亚、迦勒这样的人,开始进到应许之地,能够兑现神的应许。在我们当中,主日的见证就有许多,包括我服侍的很多见证都没写。所以,谨守遵行神的话,得着应许才是关键!
Q3:老师,识别善恶的本质就是违背神的话是吗?
识别善恶的本质,就是在你有资格违背神的话的情况下,你违背了,叫识别善恶。没资格还违背神的话,那连识别善恶的边都没沾上。弟兄姐妹要知道,只要违背神的话,那都是要命的。为什么是识别善恶的树?怎么不是杀人树?抢银行树?因为那些都谈不上是识别善恶。识别善恶树的果子,看起来是很好吃,也很好看,吃完以后会很有智慧,然后眼睛就会明亮,像神一样会知道善恶。感觉好处挺多的,但是吃了果子那是违背神的话,违背神的话就不好了。
Q4:老师,身体疼痛的时候,一吃止痛药就不疼了,这是为什么?
止痛药一吃就不疼了,那就继续吃吧。那为什么身体疼痛?因为神造了人的身体,里面有神经,那神经就能感受到身体的疼痛。我认为身体里有地狱的虫子在咬人的身体,所以人会感觉到疼痛。如果你把神经整到没感觉了,身体可能就不疼了,但是那虫子还在。
Q5:老师,识别善恶也是因为悟性不通吗?专往歪里想,就是过不来那股劲儿,然后过两天会想明白点,这种状况怎么应对?
我以前讲的识别善恶是悟性不通的识别善恶,现在讲的是悟性挺通的一种识别善恶。人往歪里想那是很笨的,后来我琢磨了一下,那种层次的识别善恶是一个比较低的识别善恶。我给大家一个建议:人得知道干了这件事,是吃亏了还是占便宜了?从神的角度来看,你如果干了这件事违背了神的话,受了咒诅,那你今天受咒诅,明天受咒诅,你应该能总结出个所以然来。总结出来以后,问问自己为什么总干吃亏的事呢?因为当时觉得是占便宜,就是这么简单的道理!如果人当时就知道这是一个吃亏的事,那就肯定不干了。
Q6:老师,我想问灵修和查经的分别?有的教会教导人灵修别用查经的方式,这教导是否违背了神的话?
咱们教会没有灵修这个词,我也不知道这个词是从哪来的,灵修到底是个啥,我也定义不好,但是咱们华人命定神学讲的是一定要明白神的话,谨守遵行神的话。为了明白神的话、谨守遵行神的话,咱们必须得有神的灵的引导,有神的灵的引导就必须有神的灵充满我们。神的灵充满我们,我们有那种寻求的心,就能够明白神的话,就能够去谨守遵行,就能够进到祝福里头。
我以前看过很多灵修的人,我一直很诧异他们灵修完了怎么灵修到一身的病?我也不太理解,我一直没整明白他们说的那个灵修是啥?但是对我来讲,华人命定神学把在悟性上满心认识神看得是非常重的;把祷告看得是非常重的;把传福音、医病赶鬼看得是非常重的。如果不传福音医病赶鬼,很多人不得释放啊!我真的不知道他们对灵修的定义到底是啥。
Q7:老师,我一点都不想违背神的话,但是身不由己,没控制住还是违背了,然后悔改认罪,再努力,然后再违背,这样不停地努力着。这个怎么讲,算是尽力吗?
也算尽力吧。可是问题就来了:人为什么控制不住呢?后来我就发现控制不住是个很奇怪的话,有一次有一个姐妹就跟我说:我控制不住。我说:你现在控制不住自己是吗?那太好了,这是我的银行卡号,现在把你银行里的钱全转给我。她说:那肯定不行!我说:你不是控制得挺好吗?怎么说控制不住呢?她说:这个能控制住。我说:那为什么这个就能控制得住呢?因为你知道这是吃亏的事,能控制不住吗?后来她明白了,如果明白要干的那件事是吃亏的事,原来是可以控制得住的,是因为咱就是没整明白什么是吃亏啊!
什么违背不违背的,就是不知道那东西能赔多少钱!还以为占了便宜呢!有一些人就跟我这么说:老师你看,我现在好好地活在罪中,等我要死之前,我赶紧认罪悔改,我就像跟耶稣钉十字架旁边的那个强盗一样。我先在这世上享受,等到了那个时候我就一起进到乐园里去了。我说你打算得挺好啊!我就在想,人做一辈子强盗好吗?做强盗开心吗?这逻辑不太对劲。
我是在活着的时候天天经历神的恩典,经历神的祝福,还是天天经历神的咒诅?哪一个好啊?好像是经历祝福比较好吧!大家现在明白了吧,别老干吃亏的事,得算笔账。今天没控制住,违背了神,种了一个咒诅的种子;明天又种了一个咒诅的种子;今天汇出去一万,明天又汇出去一万,那不吃亏吃大了吗?所谓不好控制,就是不知道失去了多少价值。
Q8:老师,《圣经》里说,人若说爱神,却恨他的弟兄,就是说谎话;不爱他所看见的弟兄,就不能爱没有看见的神。对不信主的丈夫该怎么对待呢?
咱们教会不太管夫妻的事,我们只管一件事,就是你的成长。一旦你成长了,你的格局变大了,你活着的目标清晰了,我告诉你,很多时候你就成了一个聪明人了!我发现很多教会教的一些东西是我自己不能够领受的,尤其是看到基督徒变傻了。人好不容易来到这世上,就把这夫妻那点小屁事看得那个重要啊!
有一个弟兄很有意思,终于跟他老婆离婚了,离了就离了呗,结果他们当地的教会又给他们捏到一起去了。还有一个挺有名的人给他带到一艘船上,夫妻俩穿着婚纱宣誓一生一世、一夫一妻,结果回到家又开始了华山论剑。人这一辈子就是闲得干些没有用的事情。能过就过,不能过就离。我的逻辑很简单,活着就是为神活。你怎么对待你的丈夫我不管,我就管你怎么成长,等你成长了,格局大了,变得有智慧了,这些事你就知道怎么解决了。
我曾经服侍过一个姐妹,有一年冬天,她打包了两碗热乎乎的面,高高兴兴回家,结果门反锁了,她就在门口等。后来门开了,他老公带着另一个女的出来了。结果她一生气,当时眼睛就看不见了。其实老公愿意干什么就干什么,没有必要用别人的错惩罚自己。自己该干什么就干什么,好好活着。
Q9:老师,信主没有谨守遵行神的话,受了咒诅,是不是比不信还糟?识别善恶是建立在事实的根基上,教会没有神的能力,是因为人都识别善恶去了,是如何理解?
别的教会我们不管。信主的人不谨守遵行神的话,比不信主的人还糟。大家记下来:神没有提及的中间这段,就是在世上的人。你谨守遵行神的话,神使你身居天下万民之上。你如果不谨守遵行神的话,神就使你在天上万民之下。你要不信你就去好好读《申命记》。不谨守遵行神的话,是一个极其恐怖的事。识别善恶是建立在事实的根基上,你是没有理解我的话,就是即使这件事是事实,也不可以违背神的话。就像约瑟被卖到埃及,他依然不识别善恶一样,不是别人本来对你挺好的,然后你再去挑理。
Q10:老师,按着华人命定的标准,现在很多教会每天忙得不亦乐乎,还自认为为主大发热心,这些人是不是需要人唤醒他们?还是神亲自启示他们?
你的问题挺深。大家不要搞错了,不是按着我们的标准,是按照神的标准,我们的标准就是《圣经》。你信耶稣却不像耶稣,你想像啥?你信主干什么?有一个姐妹信主好多年,我就问她:你干什么去?她告诉我:我去服侍去。我问她信了多少年了?《圣经》读到哪里了?她说她已经信主十年,但是没有读过《圣经》,就是去教会煮饭。在教会煮了十年的饭,每天忙得不亦乐乎,我不知道他们觉得对不对,但是我觉得不太对。大家一定要回到《圣经》里去看,一定要到教会里去观察。
前几天我们当中一个姐妹在街上走,突然看到很久很久以前的一个姐妹,就互相问对方的情况,结果那个姐妹就特别困惑他们教会很多都得了癌症。我们这个姐妹就把我们华人命定神学的网站推荐给她,结果她来到我们这里,现在信得还挺好。把我们大有能力的福音信成没有能力的福音了,还以为自己是正宗,多么地悲剧。神用祂大能的手托住万有。我们今天不要去捅娄子,人家愿意听就给他们讲,不愿意听就不讲。寻找的必寻见,叩门的必给他开门,爱神的人,神总可以带领他。
Q11:用神的爱,爱不信主的丈夫算违背神的话吗?
应该不算。我讲夫妻关系讲得比较少,通过我观察,要解决这些问题,就是必须提升你自己属灵的高度,你一旦提升了,这些问题就迎刃而解了。你必须被神的灵改变,满有耶稣基督长成的身量,很多问题就消失了。
만물은 모두 하나님께서 지으셨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3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저는 이 장을 벌써 6~7백 번도 넘게讲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여러분을 데리고 《창세기》 3장을 성경공부하려고 준비하다 보니, 예전에는 그 목표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선악을 분별함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그것은 이 장의 일부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아주 중요한 관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바로 이 장의 주제입니다. 《성경》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임을 아주 잘 설명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1)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세기》 3:1)
저는 매우 의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많은 마귀를 만드시고, 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 한가운데 두셨을까요? 무엇을 하시려는 것일까요? 이 일은 참 흥미롭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뱀도 만들지 않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동산에 두지 않으셨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일도 없고, 이른바 저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넓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뱀뿐 아니라 들의 다른 생물들도 만드셨습니다. 제가 치유와 축사를 하면서 보니, 뱀 외에도 아주 다양한 악령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일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 다양한 악령들은 몸에 여러 생물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여우도 있고, 족제비 같은 것도 있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제게 묻습니다. 《성경》에 어디에 족제비가 나오느냐고요. 《창세기》 3장에는 뱀 외에도 모든 들짐승이 나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뱀으로 유혹할 필요도 없이 작은 족제비 하나만으로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저는 큰 귀신을 출동시킬 필요도 없이 작은 귀신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만드시고, 이런 많은 들짐승들도 만드셨는데, 그것들이 말까지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이런 것들을 만드신 것일까요? 원래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승리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중국인 운명신학에서는 이런 말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아, 나는 구원받았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았고, 죽으면 천국에 가.” 하지만 저는 이런 사람은 뱀도 필요 없고, 작은 족제비나 심지어 작은 쥐만 있어도 완전히 쓰러질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승리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승리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패배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패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인 운명신학은 승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아담과 하와의 후손 가운데 놀랍게도 우리와 같은 작은 무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가운데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아, 나는 구원받았어. 2012년에 세례받고 구원받았어!” “아, 나는 2014년에 구원받았어. 네가 나보다 2년 늦었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승리했느냐, 승리하지 못했느냐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목적은 본래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사과인지 배인지 아무도 확실히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아니라 다른 나무를 만드셨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당신이 기어이 먹었다면 결과는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기만 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으면 승리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첫 번째는 만물이 모두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 왜 이런 것을 만드셨습니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런 것을 물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 안에는 이런 논리가 있습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왜 이렇게 하셨느냐고 묻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제가 매우 무지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근본적인 것으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지켜 행하기만 하면 승리합니다.
우리 중국인 운명신학은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아주 분명하게 나눕니다. 한 종류는 저주받은 사람이고, 다른 한 종류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복 받은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저주받은 사람이 되겠습니까? 스스로 선택하십시오! 저는 어리석은 사람이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 꼭 저주를 선택하고, 저주를 선택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미안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느 정도까지 저주를 받느냐 하면, 암에 걸린 뒤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받고, 인공 항문을 만들거나 그 밖의 온갖 치료를 받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고생하고도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조금 고친다 해도 그 뿌리 깊은 것이 너무 사악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는 당신의 이해가 정말 필요해요!” 저는 말합니다. “그래요, 제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신이 말하는 이런저런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저주를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시험하셨지만 결국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고, 그래서 저주가 들어온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보면 하나님께서 뱀과 같은 생물을 많이 지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족제비, 뱀, 작은 여우, 여러 종류의 지렁이, 지옥의 벌레, 작은 게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지켜 행하지 않으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이것은 중국인 운명신학의 두 가지 기본적인 이분법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6-40)
《성경》으로 돌아가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은 자신을 위해 많은 이유를 쉽게 만들어 내고, 죄를 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뒤에도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고난을 겪어야 회개하는 법을 배우게 될까요?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저주는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죽는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정말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지는 하나님께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지는 가장 큰 계명,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켜 행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사무엘상》을 읽을 때 사울과 같은 사람은 제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과 어떻게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사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악령을 보내 사울을 괴롭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이 이 정도까지 이른다면 정말 비극입니다. 한번은 제가 어떤 사람에게 저주는 모두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말했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성경》을 어떻게 읽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조차 모르다니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고 매우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신명기》 28:1-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신명기》 28:15)
그러나 오늘날 눈을 들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많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전하고 추진하는 것들이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찾은 것이 있다면 제게 말해 주십시오. 그것은 저에게도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말로 대체한 것이므로 분명히 저주를 받게 됩니다. 중국인 운명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다. 제가 아무리 큰 용기를 낸다 해도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와서 제 설교를 오랫동안 듣다가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서 전하는 많은 설교가 《성경》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분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근거가 없고 저것도 근거가 없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설교하는 것은 반드시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동방번개나 여호와의 증인이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 교회 사람들보다 《성경》을 더 익숙하게 읽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들어온다 해도 저는 여전히 자신이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저보다 《성경》을 더 잘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을 매우 익숙하게 읽습니다. 그가 저와 이야기를 나누면, 말하다가 스스로 모순에 빠질 것이고, 그들의 주장은 분명히 설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국인 운명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많은 관념이 우리의 기존 관념과 크게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가 말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말한 것 중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제게 말해 주십시오. 저는 반드시 고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념을 가지고 오늘날의 많은 교회를 바라보면, 그들에게 저주받은 상황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이같이 속히 떠나 너희를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이에게서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6-8)
어떤 목회자가 하나님을 꽤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암에 걸렸다면, 그가 전한 내용을 진지하게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많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가 기록한 《마태복음》이든, 나중에 노년의 요한이 기록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든, 복음에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빼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복음을 믿고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 것이므로, 제가 여러분을 잘못된 복음에서 돌이키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선악을 분별함의 본질
선악을 분별함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일에 나타납니다. 제가 선악을 분별함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선악을 분별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이 말은 “모욕적인 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4-5)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은 절대적으로 사실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창세기》 3:22)
그들이 먹은 후에 정말 눈이 밝아졌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이 이제 우리와 같이 선악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귀신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든 현실이든 진실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여전히 저주를 받습니다. 왜 제가 여러분에게 선악을 분별할 자격조차 없다고 말할까요? 여러분이 말하는 것들이 사실조차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제가 한 자매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어머니를 몹시 미워하고 있었고, 어머니가 자신에게 백만 위안을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자매가 암에 걸린 후 어머니는 치료비로 이미 수십만 위안을 지출했습니다. 그 돈은 모두 어머니가 낸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화가 나서 홧김에 한마디 한 것을 듣고, 자매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베푼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어머니가 이미 수십만 위안을 지출했는데도, 자매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백만 위안을 요구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이 자매는 정말 선악을 분별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나중에 저는 선악을 분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요셉과 같은 것입니다. 요셉은 정말 애굽에 팔려 갔고,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으며, 앞날을 망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요셉은 선악을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제가 목양하는 많은 사람들이 저와 선악을 분별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요셉을 본받아야 해요.” 그러면 저는 말합니다. “당신에게 요셉을 본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요셉은 애굽에 팔려 갔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본받겠다는 것입니까? 아직 애굽에 팔려 가지도 않았는데 제가 당신을 조금 세워 주려고 하면, 당신은 저와 선악을 분별하려고 합니다. 당신에게는 요셉을 본받을 자격조차 없습니다!” 마귀가 말한 것처럼, “너희가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이것은 모두 사실입니다”라고 말할 때, 사실 많은 경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목회자들은 아직 목양하는 사람을 애굽에 팔아넘기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생각이 조금 빗나간 것은 아닐까요?
제가 여러분을 데리고 《사무엘상》을 공부할 때 매우 놀라운 일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이세벨에 대해 읽을 때, 저는 이세벨이 매우 위대하고 똑똑하며 포용력 있는 여성이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집을 매우 잘 다스렸습니다. 아합의 눈에는 분명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들었던 상상 속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예전에는 이세벨을 남편을 휘어잡는 사나운 인상의 사모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런 모습은 이세벨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이 이세벨처럼 되려면 아주 똑똑해야 합니다.
정말로 선악을 분별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일어난 일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 모든 것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뱀이 다른 생물보다 더 간교하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열매가 맺혀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좋은 것입니다. 선악을 분별함의 본질은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여전히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닌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다면, 그것은 머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초등학교로 돌아가 다시 공부해야겠어요!”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간 것은 사실입니다. 요셉이 선악을 분별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면, 우리는 천천히 자세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했고,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하와가 아담을 유혹했고, 아담도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었습니다. 이유와 원인을 찾으려 한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원인과 이유를 찾는 것이 바로 선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일 때에야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있는 것이고, 원인이 있을 때에야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도 아닌데 모두 머릿속으로 지어낸 것이라면, 그것은 머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생긴 것입니다! 머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입니다!
여자는 그 나무의 열매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정말 그런 일이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으며, 보기에 사랑스러웠고, 먹으면 지혜를 얻어 선악을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악을 분별함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제가 이세벨에 대해 말한 것처럼, 정말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하는 선악 분별은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고, 열매도 보기 좋고, 맛도 좋고, 보기에 탐스럽고, 먹으면 지혜롭게 되며, 먹은 후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여전히 저주를 받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먹은 것이 좋지도 않고 맛도 없으며, 먹고 나서 어리석어졌다면, 이것은 명백히 어리석은 일인데도 자신이 선악을 분별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선악을 분별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은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짓입니다.
저주의 반응
여러분에게 선악을 분별할 자격도 없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저주를 받았다면, 그 저주에 대한 반응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의 반응과 같습니다. 저주의 첫 번째 반응은 두려움입니다. 우리 가운데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바퀴벌레를 무서워하거나, 밀집공포증이 있어서 보기만 해도 괴로운 반응이 나타난다면 그것이 바로 저주입니다. 사람 안에 수치심이 있거나, 여성에게 생식기 질환, 생리통과 같은 생식기관과 관련된 질병이 있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남자로서 일을 매우 힘들게 하는 것도 저주입니다. 저주를 받으면 땅이 열매를 잘 내지 않고, 무슨 일을 하든 매우 힘듭니다. 이것이 모두 저주의 반응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고 흙을 먹는 것처럼 느끼는데, 이것도 저주입니다.
여러분은 저주의 반응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저주의 반응이 반드시 선악을 분별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저주를 받으면 원인이 무엇이든 그 안에는 반드시 두려움이나 수치심이 있습니다. 무엇을 보든 좋지 않은 것만 보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 매우 힘들며, 여자는 생식기관과 관련된 문제를 겪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세기》 3:14)
여기서 흙을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15-16)
사람이 저주를 받으면 통제와 억압 속에서 살아가게 되고, 아무 일도 없는데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3:17-19)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요? 일을 하기만 하면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이 저주라면, 도대체 무엇을 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 것일까요? 나중에 제가 연구하면서 발견한 것은, 하는 일에 귀신이 끼어들기만 하면 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귀신이 와서 방해한다면 그것이 바로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 친구를 제 사무실로 데려왔습니다. 저는 그 사람 뒤에 20~30마리의 귀신이 따라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 바로 뒤에 있는 귀신이 가장 컸고,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차례로 늘어서서 긴 꼬리처럼 따라붙어 있었습니다. 마지막의 작은 귀신은 마치 쥐 한 마리 같았습니다. 제가 눈을 깜빡이며 자세히 보니 그것은 환상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그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지만, 사실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를 데려온 사람에게 그가 평소에 무슨 일을 하든 자주 일이 잘 풀리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다고 대답하며 제가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육감으로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불운을 가져오는 귀신이 따라붙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저는 많은 사람이 일을 하면서 계속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귀신이 그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귀신이 계속 그와 함께한다면 평생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귀신이 그와 함께하는 원인은 사람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고, 저주를 받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귀신이 그 일을 벌여 사람을 매우 힘들게 합니다.
우리 중국인 운명신학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을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겪은 일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든 다른 것이든, 아무리 맛있어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으면 먹지 말아야 합니다. 중국인 운명신학의 논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절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라고 하신 것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중국인 운명신학에 와서 제 말을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데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않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매우 이상합니다. 제가 한 그리스도인에게 중국인 운명신학은 예수님을 닮기를 추구한다고 말했더니, 그는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전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닮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닮겠다는 것입니까? 설마 마귀를 닮겠다는 것입니까? 지켜 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지켜 행하지 않으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저주를 받은 후에는 반드시 저주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중국인 운명신학은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행하도록 권면합니다. 이는 지켜 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유가 있으면 지키고 이유가 없으면 지키지 않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자신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까? 나중에 저는 복의 반응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것이라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가 노예가 된 것은 분명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나중에 감옥에 갇힌 것도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선악을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감옥에 갇히고 노예가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보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하겠다’고 하자 하나님께서도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노예로서 가장 훌륭한 노예가 되었고, 죄수로서도 가장 훌륭한 죄수가 되었습니다. 사실 환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자격조차 없는데도 거역합니다. 만약 자격이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 거역해야 하겠습니까?
저주와 죽음
저주라는 것은 매우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은 후 곧바로 죽지는 않았습니다. 하와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봐, 먹었는데도 죽지 않았어. 꽤 괜찮네. 당신도 먹어 봐. 한 입 먹어 봐.” 뒤의 내용에서도 아담은 900년 넘게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 살까지 오래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백 살도 부족하고 천 살도 부족하다며 늘 “만세, 만세, 만만세!”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누가 만 세까지 살았습니까? 실제로는 만 세까지 살지 못하고, 많아야 백십여 년을 살 뿐입니다.
문제는 하와가 먹고도 맛있다고 느꼈으며 죽지 않았기 때문에 아담에게도 먹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죄를 지어도 괜찮아. 어제 하나님을 거역했지만 오늘도 괜찮고 아무 일도 없잖아. 여전히 멀쩡하잖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순간 죽음이 사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시간이 지나야 나타납니다. 무엇인가를 심으면 자라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앞장에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씨앗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심을 때 죽음의 씨앗 하나를 심은 것입니다. 죽음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나면, 여러분에게는 사실상 돌이킬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심었던 씨앗이 오늘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열매가 맺힙니까? 암과 통증이 맺힙니다. 우리 안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선생님, 저를 좀 이해해 주세요. 앞으로는 저에게 늘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저는 말합니다. “당신은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받을 시간은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시간은 없군요. 저더러 당신을 이해하라고요? 저는 이해하지 않겠습니다. 사람이 과거에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저주를 받았다면, 오늘 그 잘못을 바로잡을 필요가 없습니까? 그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사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저주와 죽음은 씨앗 하나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열매를 맺을 때가 되면 여러분에게는 이미 돌이킬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혹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목을 곧게 세운 채 “저를 이해해 주세요”라고 요구한다면, 좋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이해한다고 합시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여러분을 이해한다고 합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해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고, 저주 뒤에는 반드시 죽음이 옵니다! 죽음이 오기까지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은 여러분이 그 시간 동안 잘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도 잘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단 죽음 속으로 달려 들어가면, 사람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자격을 잃게 됩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영입니다! 영이 죽으면 무엇이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얼마 동안 수명이 연장될 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중국인 운명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죽음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고 싶다면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이해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모든 사람이 여러분을 이해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해하지 않으시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생을 사는 것이 비극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해되십니까? 아마 여러분이 이해한다면 오늘 아직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이해한다면 오늘 아직 한 줄기 희망이 있습니다.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길을 걷지 마십시오. 계속 제멋대로의 길을 걷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뱀이 여자에게 “너희가 반드시 죽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거짓말입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나머지 말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신 이유입니다. 과거 우리가 알지 못했을 때 그분께서 짊어지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후에도 고의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다면 누가 여러분을 대신해 담당하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천천히 담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문제가 생기면 매우 심각하고 더욱 치명적인 이유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이 말을 깊이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받아들였다면 조금씩 지켜 행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죽는 것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너는 본래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원래 한 덩이 비료에 불과했으니 죽어도 그만이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정말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한 무리, 또 한 무리가 계속 죽음을 향해 달려가도 하나님께서는 정말 개의치 않으십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시는 길에서도 한 무리, 또 한 무리가 죽었습니다. 수천, 수만 명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실 것 같습니까? 그저 흙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승리하는 백성,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시면, 여러분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생각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선을 하나 그읍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데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리로 들어갑시다. 선악을 분별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충분히 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말했습니다. 설령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자격이 있다 해도 거역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자격조차 없다면 더욱 지켜 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3장 말씀
3:1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3:2 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6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3: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3: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3: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부르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