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保罗建的几个教会之间是什么关系呢?保罗建的教会和耶路撒冷教会又是什么关系呢?
咱们开始解释它是什么关系。首先我开始讲耶路撒冷教会和使徒保罗的教会。使徒保罗所建的教会的根在哪呢?根就在耶路撒冷。那怎么就长出了使徒保罗这么一个枝子呢?当年耶路撒冷教会走偏了路,走到哪去了呢?走到了凡物公用,吃大锅饭。当年中国吃大锅饭还差点把国家给吃黄了,大家就觉得:我赚的钱是大家的,你赚的钱也是大家的,大家赚的钱都是大家的。结果大家都不爱干活了!这并不是神的福音。
当年神就开始在人群当中寻找人:如果你干不了就下去,我再选一个人。教会这个行当就是神的生意,就像人们做生意一样,教会是神的企业,神要亲自管理。神看到彼得在那瞎整,就说:别再这么干了!但是人却听不见。人家就觉得把钱收来多好,凡物公用。比如说有五万人,每个人把自己在深圳、杭州、武汉、上海、北京的房子都卖了,然后把钱都拿来,大家在一起吃喝。
彼得在管理一个有史以来最大的企业,但这不是福音!结果大家吃得都闹意见了,这个人吃少了,那个人吃多了,天天就在那管饭食。结果神一看:傻孩子怎么就干成这样了?是谁让你这么干的?没人让他这么干,是他自己要这么干的。那为什么要这么干呢?谁也说不清楚,这是一件非常奇怪的事。后来我猜测耶稣的母亲马利亚一看:彼得,你下去!让我儿子来,这可是我儿子建的,肥水能流外人田吗?雅各就做了老大了。
后来神就拣选保罗,保罗这个人厉害在哪呢?他虽然根在耶路撒冷,但是他却维持了福音的纯正,耶路撒冷是保罗的母会,母会烂了但是他自己却没烂。那我拿什么东西可以比喻呢?比如苏联搞的共产国际,当时毛泽东就说他们是修正主义。毛主席不听他们的,结果自己整了一套,但还是一个社会主义国家。
保罗这个人很有智慧,不仅维持了福音的纯正,还一直很尊荣耶路撒冷教会。比如说扫罗王是大卫的岳父,也是大卫的上司,大卫在扫罗王死之前也一直尊他为王。保罗实际上是耶路撒冷教会分出来的枝,但是他却一直尊荣耶路撒冷教会。所以这个关系大家就明白了。
那后来保罗建立的几个教会之间是什么关系呢?这些教会都是耶稣基督里的肢体。不是因为保罗怎么样,因为他们信的都是神的道。你来到华人命定神学,你不是要来听我的,你要听的是神的道!在华人命定神学里面没有人名,有些人就喜欢打听:华人命定的牧师是谁?打听这东西有什么用呢?我又不是道,我们要信的是神的道!
大家千万不要跟着人走,要跟着神的道走,我们所传的福音是神的道,是生命之道!我不能给你们什么,只有神的道能够使你得着这福音的好处。教会之间的关系是什么?所有跟从神的道,在道里合一的教会,那是合一。你把一群牧师,把不同的教会都聚到一起吃一顿,那不叫合一。那叫吃一顿、拉关系。
Q2:老师,我为了传扬华人命定神学大能的福音,被当地的教会赶出来了,我这么做是不是很傻?
被赶出来了是不是很傻?你要觉得很傻,那你就再回去,你要是觉得那是聪明,那你就好好地信。我们信的是神的道!很多教会是真的不太有道。要让我说的话,很多的教会就像耶路撒冷教会,哪来的道呢?人家都把你赶出来了,那你要干什么呢?你就好好信主的道。
Q3:老师,在啥人面前就做啥人,那在淫乱的人面前就要做淫乱的人吗?
这是鬼话!在淫乱的人面前,你觉得你自己高大上,人家很污秽,你很圣洁?如果你是这么认为的,那我可以告诉你,神就会审判你,因为那叫论断!所以说不是在淫乱的人面前做淫乱的人,而是在淫乱的人面前,别在那趾高气扬。你来到咱们当中,不管你过去的背景是什么样,我都把你当做是一个有神荣耀形像的人来看的。
这话绝对不是空口无凭,但是你问这种问题,其实你里面有一种东西叫做垃圾,你需要去清理。也许是出于无知才问这种问题,但也许是你里面有一些东西需要被清理。我问你一个问题:如果一个妓女来到咱们教会,我该怎么办呢?难道就因为是妓女,就把她赶出去吗?我不赶出去,她需要的是神的话和神的道!我既不会看扁她,也不会高看她。如果有一个生意人来到咱们当中,我也不会把这个人当成圣人一样给供起来,我也用不着低三下四的认为生意人的奉献很重要。
如果一个人做了人家的小三,你要不要看不起她?这个小三破坏了人的家庭,那你要怎么办呢?你的这个问题本身就犯毛病,什么叫做在淫乱的人面前就做淫乱的人?在犹太人面前就做犹太人,犹太人有没有淫乱的?有!那你说:你要不要做一个淫乱的犹太人?这叫什么话!为什么要在犹太人面前做犹太人?因为要得着他们,让他们得着福音的好处。
如果人家是个小三,你也整个小三当吗?那人家是个小四呢?难道你也整个小四当吗?在什么人面前就做什么人,这话是说不要趾高气扬,不要觉得自己高大上。如果这个人是一个打扫卫生的,我跟他的关系也会非常好;如果这个女的是一个很淫乱的人,我跟她的关系也会非常好。你说:她这么淫乱,你怎么还跟她的关系这么好呢?她淫乱不正需要神的话、神的道吗?
Q4:老师,我原来是搞直销的,见人就卖产品,现在见人就讲我的见证,我这是不是像彼得一样专心祈祷、传道?
你要效法彼得吗?见人就讲你的见证,跟专心祈祷、传道一点关系也没有。我们里面还有很多混乱的东西,你是不是想让人得着福音的好处?就像在什么人面前做什么样的人,这一下子就让人困惑了。那以前见人就推销产品,现在见人就讲见证,其实也没有必要,可别讲到让人家讨厌你。人家听完了觉得烦,那你还不如别讲见证,所以我鼓励大家要学会有智慧!人家想听,你就跟人家讲,人家不想听,你就收敛一点别让人讨厌。
Q5:老师,我有一个同事,一直很在乎家人对她的态度,现在身上有乳腺结节的问题,我以前也给她讲过福音,她自己也会读《圣经》。她现在又来找我,讲了一些烦心的事。我把牧师的祷告发给了她,她每天晚上都听着祷告,我这么做行吗?
行,挺好的!你要让人得着福音的好处,不是再让人背一个十字架。要想让人得着更多福音的好处,到了一个阶段就要开始对付人里面属肉体的邪情私欲。
Q6:老师,犹太人都是以色列人吗?是不是都是从以色列支派来的?这一章讲的叙利亚跟现在的叙利亚有关系吗?
那时候的叙利亚和现在的叙利亚是同一个。犹太人是以色列的一个支派,为什么那个时候叫做犹太人呢?因为其他人都成了撒玛利亚人。那个时候犹太人和以色列人分成了两个支派,有一支叫做犹太人,稍微比较纯正一点;还有一支就是以色列其他的支派成了撒玛利亚人。所以现在的以色列要么是犹太人,要么是便雅悯人。
大家有没有发现,有些总理是便雅悯族的。当时的耶路撒冷分成了犹大国,其它的十个支派就变成了以色列国。以色列亡国以后那个地方的人就成了撒玛利亚人,犹太人不跟撒玛利亚人交往,他们觉得撒玛利亚人是杂种,所以犹太人就是犹大支派和便雅悯支派。
但是根据保罗所说的,不是你因为是一个以色列人就是真正的以色列人,因为真正的以色列人是拥有雅各里面那种心志的人,真以色列人传承了亚伯拉罕、以撒、雅各里面的逻辑体系。假以色列人只不过是肉身生的,但却不是真正的以色列人。
Q7:老师,在什么人面前做什么人,这句话该怎么解释呢?
这个解释不难。比如说你是一个生意人,那你不得跟人家说话吗?你说生意人就爱钱,那人家跟你还谈什么呢?你就是一个爱钱的人,这话就谈不了。使徒保罗见到生意人怎么办?在《圣经》里有一个叫腓利门的人,写了一本《腓利门书》。腓利门实际上是一个奴隶主,做生意的,保罗就写信给他说:奴隶所欠你的,都记在我的账上。
保罗是怎么跟腓利门建立关系的呢?腓利门当年到底发生了什么事,我们无从查考,可能有几样人生当中的困难,要不然他怎么可能认识保罗呢?第一,腓利门可能是生意要破产了,后来碰到了保罗,保罗把他带到福音里,他就得着了福音的好处。如果你整天喊哈利路亚,圣灵感动,生意人没法跟你谈的,除非是一个宗教味很足的人。应该是保罗给腓利门出了很多的主意,所以他的生意翻转了,这是第一个可能。第二个可能是腓利门得了重病要死了,保罗带他祷告得着医治了。
也许这两种可能都有,腓利门欠保罗很多,所以记在保罗的账上。怎么记在保罗的账上呢?保罗可能说:这大老远的,你也用不着把钱寄过来,每个月的奉献就放在一边,记在我的账上。所以说这事就是在什么人面前就做什么人,有些人在小偷面前做小偷,这叫什么话?在小三面前做小三,在小六面前做小六,在原小七面前做原小八,那就麻烦了!这么解释的话,就是人的脑袋不太好使。你要看见这些人的需要,你要让他得着福音的好处,别跟人家说话的时候,话里带刺。
比如你旁边坐着一个印度人在吃饭,旁边落了一个乌鸦,你说:哎呀!这只乌鸦又黑、又丑、又脏。那个印度人听完抬腿就走了。这不是闲着没事找事吗?矬子面前不说矮话,你得学会如何做人!对面坐的是一个生意人,然后你说你最讨厌生意人,你说烦不烦?是不是脑袋有毛病?保罗所写的这些,他的目标不是为了要做一个小三,也不是为了要做一个淫乱的人。保罗是为了福音的缘故为要与人同得福音的好处。所以得把目标给整明白。
Q8:老师,什么是淫乱?哪些属于淫乱?
读过古代的小说吗?《金瓶梅》读过吗?这个就叫做淫乱。还有武大郎的老婆潘金莲和西门庆,这些都叫做淫乱。
什么是淫乱?不忠心就叫做淫乱。哪些属于淫乱?所有不忠心的都叫做淫乱。对神不忠心,三心两意,又拜玛门又拜耶稣,那叫做淫乱!如果又拜偶像又拜耶稣,桌子上整个关公、耶稣、十字架,什么都拜,谁都是你的神。你想想看,有奶就是娘这话好听吗?听起来就不好听。这个男的只要有个女人都要,这种话听起来多难听啊!这些属于淫乱的概念,所以不忠心的都叫做淫乱。
Q9:老师,希伯来人跟犹太人有什么关系?保罗看透了雅各,看透了生死,为什么药按照雅各虚伪的建议去做呢?
希伯来人是怎么来的呢?亚伯拉罕的上面有一个祖宗叫希伯,所以从亚伯拉罕出来的叫希伯来人。犹太人这事就有意思了,亚伯拉罕生了以实玛利和以撒,以撒成了希伯来人,以实玛利不是希伯来人,就成了阿拉伯人;以撒后来又生了雅各和以扫,雅各成了希伯来人,以扫就成了以东人。所以希伯来人这一支实际上指的是跟亚伯拉罕有血缘的关系,一直到雅各这里,雅各生的儿子里有一个叫犹大,犹大的后裔叫做犹太人,所以就是这么个关系。
保罗看透了雅各,看透了生死,为什么要按照雅各虚伪的建议去做呢?其实保罗就是想得着这些人,不是说虚伪了就怎么着了。千万不要因为人家要得着你,然后这个人让你把钱打到他的账号上,你就打给他了,那就是愚蠢。所以千万别犯傻,不要生搬硬套。
保罗当时是在整个罗马帝国,亚洲这一带都是非常有名的人,大家都把他当做纯正福音的代表。雅各这些人其实骨子里的东西不怎么样,《圣经》没说,当时雅各还在,《使徒行传》不能这么写,所以路加写的时候比较隐晦。保罗为什么照着去做,其实保罗本来就想这么做,不是人家设了一个圈套让他往里跳,而是他自己本身就想那么干。可能保罗老早就想得着这些人,或许彼得和雅各这些人因着保罗所做的,心里能够回转向神。像保罗这种人愿意这么做就很了不得。
Q10:老师,我脑子里常常编故事,这是怎么回事?
那是邪灵。
Q11:老师,保罗在《提摩太后书》提到,无论得时不得时都要传福音,对于像我们这些刚刚开始学习的人,传福音是不是还要先自己明白,悟性上通透,然后能活出来,明确活着的目标再传福音比较好呢?否则会像彼得传了一次,遭受一点挫折就逃避了,可以这样理解吗?
不是这样。传福音,无论得时不得时,你要知道那是写给谁的?是写给提摩太的,不是写给你的。提摩太是一个教会的领袖,本来是要成为保罗的接班人,要管理很多的教会,所以保罗写给他。
对于一个初信的人有初信的传法,比如讲自己身上的一个见证,就讲你当时是怎么回事就完事了,这就是作见证。你就别整一大堆神学的大道理,很多人以为传福音就传一个神学道理,这是错的。传福音其实讲的就是神在我们身上做的这些故事,千万别讲神学的那些大道理。你可能也讲不太清楚,等你把神学的大道理都整明白以后,我也不欣赏,还不如来点实在的。
Q12:老师,耶稣不是教导我们要驯良如鸽子,灵巧像蛇吗?保罗明知去耶路撒冷有危险,圣灵也有感动不让他去,那他为什么不选择一个合适的时机去耶路撒冷呢?是因当时的形势所迫吗?
这问题挺有意思。这不是最好的时机吗?保罗带了很多的捐项要送到耶路撒冷去,他不自己带那要找谁带?他也可以找一个人带,但是他带着这些捐项到了耶路撒冷,是真的很希望耶稣撒冷教会的人或许能够因着他的诚心被感动,领受福音。因为耶稣撒冷教会的人都读过保罗的书信,像《加拉太书》、《哥林多前书》、《哥林多后书》,里面都提到彼得和从雅各那里来的人。所以说我们千万不要以为是保罗傻,保罗很聪明,他选择了一个非常适当的时机。如果你给他选择一个时机,我看你也选不出别的更好的时机。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사도행전> 21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이 장을 성경공부로 다루었고 설교할 때도 인용했지만, 당시에는 초점을 온통 야고보에게만 맞추었습니다. 야고보라는 인물을 분석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데, 사실 이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연극을 볼 때는 조연이 아니라 주연을 보아야 합니다. 조연을 주연으로 착각하면 연극을 잘못 본 것이고, 연출가의 의도도 헛수고가 됩니다. 사실 이 장의 주인공은 사도 바울입니다. 본문의 내용만으로 주제와 핵심을 찾아내기란 꽤 어렵습니다. 우리는 먼저 사도 바울이라는 인물을 알아야 하고, 그가 무엇을 썼으며 무엇을 행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이 장에서는 사도 바울이 많은 일을 하고 여러 곳을 다녔는데, 겉보기에는 매우 분주하고 고생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쓴 결과는 온 성이 소동하고 사도 바울이 체포되어 쇠사슬에 결박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찍이 성령께서 바울을 가로막으시며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면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다른 서신들을 통해 이 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을 위해 유대인을 얻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고, 베드로 및 야고보와 이미 분업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가고, 베드로와 야고보는 유대인에게로 가기로 말입니다. 사역의 분담은 이미 분명했지만,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어느 정도 마친 후에도, 여전히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일하는 효율이 매우 높은 사람이었기에 수많은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저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제가 일하는 것을 보면 다들 의아해하며 '어떻게 저 사람은 저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을 빨리할 뿐만 아니라 대충 하지 않고 매우 정교하게 해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는 24시간이며, 누구도 28시간을 살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는데 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낼까요? 머리가 맑고 일의 효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몇 마디 말을 배우신다면 여러분도 분명 높은 효율을 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명확한 목표, 분명한 전략, 올바른 방법'입니다. 만약 일을 할 때 목표가 불분명하고 전략이 뚜렷하지 않으며 방법마저 틀렸다면, 머리 없는 파리처럼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과 같습니다. 몹시 바쁘기만 하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신속히 완수했고, 그 일을 마친 후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인데 왜 유대인 영역에 와서 몫을 챙기려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바울은 시장을 빼앗으러 온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도 이 복음의 유익에 함께 참여하기를 바라며 하나님을 위해 유대인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여러 번 읽어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더 깊이 이해하기
어떻게 해야 사도 바울을 더 깊이 알 수 있을까요? 그가 쓴 서신들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그 서신들은 참으로 구구절절 심금을 울립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19-23)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었기에 하나님을 위해 유대인을 얻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마치 제가 중국인이어서 하나님을 위해 중국인을 얻고자 간절히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의 이러한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그는 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을까요? 절대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결코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나뉜 적이 없으며, 단지 당시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이 계시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말했는데, 이는 이전에나 지금이나 자신의 달음질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직분을 면직당할까 염려하여 잠시 상황을 완화하고자 베드로, 야고보 같은 이들과 다투지 않고 이방인의 사도로 만족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도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원래 이방인이 부정하다고 여겨 이방인을 얻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린도서>, <갈라디아서>를 읽어보면, 사도 바울의 논리 체계 속에는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구분하는 개념 자체가 전혀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사실 그렇게 나누어서는 안 되며, 바울은 단지 이 사람들이 다 함께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이 일은 결코 겉치레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겉치레였다면 바울이 목숨을 걸고 빗발치는 총탄과도 같은 위험을 무릅쓰며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더 깊이 알고자 한다면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이 유대인을 얻고자 갈망했음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미 하나님을 위해 이방인을 얻었다
이때 바울은 마게도냐 등 각 지역에 이미 빌립보, 에베소, 고린도, 데살로니가 등 많은 교회를 세워 곳곳에 부흥의 꽃을 피웠습니다. 바울이 만약 사업을 했다면 엄청났을 것입니다. 단숨에 이런 거점들을 장악했으니 말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먼저 예루살렘에 갔다가 그 후에 로마로 가고자 했습니다. 결국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체포되었고, 이후 로마로 압송되었습니다. 바울은 원래 로마로 가려 했으니, 이렇게 되어 배삯을 아낀 셈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 농담입니다.
제가 바울이 로마에 가고 싶어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요?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로마서>를 썼는데, 거기서 장차 기회가 되면 로마에 가겠다고 했고, 훗날 실제로 갔습니다. 바울은 갔을 뿐만 아니라 황제 앞에서도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로마에 도착해서 황제에게 예수님을 전했는데, 그들이 믿든 안 믿든, 제자가 되든 안 되든 바울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황제 앞에서 예수님을 증언할 자격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황제는 국사에 몹시 바쁜데 언제 바울의 이런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당시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가로막힌 장애물들을 점진적으로 제거해 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매우 명확한 전략 하나를 사용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 사도들의 승인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아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다음 바울은 거침없이 전진하며 유럽과 아시아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튀르키예가 유럽 국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는 아시아에 속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튀르키예는 늘 유럽 쪽에 끼어들려고 하는데, 이는 인식의 문제입니다. 늘 유럽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아시아의 시대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게도냐, 스페인, 키프로스 등은 모두 유럽에 속하며, 사도 바울은 당시에 이미 하나님을 위해 이방인들을 얻었습니다. 반면 야고보의 입장은 매우 확고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명확하게 구분했습니다. 사실 이는 몹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어떻게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까? 절반은 할례를 받아야 하고, 절반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니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주 예수님은 얼굴 반쪽은 이렇고 반쪽은 저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이 몹시 타들어 갔고, 하나님을 위해 유대인을 얻기를 갈망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 유대인을 얻기를 갈망했다
바울의 내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개념, 곧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개념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며 나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고 우리 주 예수님도 유대인이셨기에 늘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백성이 도리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복음의 유익을 얻기는커녕 온갖 저주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마음에 큰 고통을 느끼며 유대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및 다른 서신들을 쓸 때 끊임없이 유대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모두 유대인이자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참 유대인이 누구인지, 가짜 유대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하나님의 약속이 유대인들에게 성취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바울의 논증은 유대인 중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대단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서신서에 기록한 내용입니다. 바울 자신도 똑같은 열심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위해 유대인을 얻고자 간절히 원했습니다. 왜 유대인을 얻고자 했을까요? 유대인들도 이 복음의 유익을 함께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저주를 받게 되었으니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바울은 자기 민족이 수많은 저주를 받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대가로 치르더라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단 한 번이라도 얻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사도행전 21:40)
저는 이러한 결단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원했고, 야고보나 베드로 같은 사람들도 깨어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야고보의 태도를 알고 있었으며, <갈라디아서>에서 야고보와 베드로를 매섭게 질책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목적은 그들을 깎아내려 가치 없는 자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야고보와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마음속으로 야고보와 베드로가 어떤 사람인지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목회하던 이방인 교회들로부터 많은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는데, 거기에는 거액의 부조금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베드로가 물질의 성의를 보아서라도 체면을 세워주며 이 복음의 진리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사실 이 일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야고보와 베드로가 모두 예루살렘에 있었고, 바울의 설교를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은 주방의 기름, 소금, 간장, 식초, 설탕이 온통 뒤섞인 것처럼 온갖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야고보와 베드로는 겉으로는 바울과 원만하게 지냈지만, 바울 자신도 성전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유대인들에게 붙잡힐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처럼 총명한 사람이 야고보가 제안한 그 생각이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님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사도행전 21:20)
이것으로 그들의 태도가 단번에 드러났습니다. 율법에 열성을 내는 것을 여전히 좋은 일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사도행전 21:21-25)
이전에 제가 이 본문을 묵상할 때는 바울이 속아 넘어간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바울은 속으로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며 이미 결박당할 것이라는 예언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는 가야만 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유대인들도 이 복음의 유익을 함께 얻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마치 황지광이나 동존서가 자기 몸으로 총구를 막고 벙커를 폭파했던 것처럼, 자신의 생사를 돌보지 않은 것입니다. 마주할 상황이 계략이든 함정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유대인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을 얻기를 갈망했고, 또한 야고보와 베드로 같은 사람들을 얻고자 했습니다. 사실 야고보와 베드로도 <갈라디아서>를 읽어보았고, 바울이 세운 이방인 교회들이 극도로 부흥하는 것을 보며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야고보는 <갈라디아서>를 읽은 후 <야고보서>를 썼는데, 사실 한 조항씩 대조해 보면 서로 맞물리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야고보가 바울의 <갈라디아서>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화기애애해 보였지만 사실상 원수를 대하는 듯했습니다. 야고보는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동생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넓은 마음을 품지는 못했습니다. 야고보는 굳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반으로 쪼개어, 절반은 유대인의 예수로, 절반은 이방인의 예수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복음의 유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는 이미 찢어지게 가난해졌고, 이후로는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어 재정이 바닥났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의 모금액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전달하며, 그들이 바울의 진심에 감동하기를 바랐으나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우리는 야고보 같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고백한 것처럼 바울을 배우는 데 방향을 두어야 합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22-23)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가 복음의 유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며, 복음 진리의 순전함을 위해 비록 <갈라디아서>를 써서 야고보와 베드로를 호되게 비판했을지라도, 여전히 그들 또한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만약 저 같았다면 이런 사람들을 상대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에 비하면 저의 도량은 땅콩만 하고 머리는 호두알만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본보기입니다. 여러분 모두 공감하신다면, 우리 함께 사도 바울을 본받아 이 복음의 유익에 동참합시다. 병 고침을 받는 데 돈이 들지 않고, 재정의 축복을 누리며,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영원한 영광의 소망이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복음입니까!
어떤 위험도 가로막을 수 없다
비전과 꿈과 목표가 있는 사람은 어떤 위험도 가로막을 수 없으며, 이는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서두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목표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모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떤 사람들은 큰 뜻 없이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살며 직장 다니고 입에 풀칠이나 하기를 바랍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목표를 그런 수준으로 정해버리면, 그들이 살아내는 인생의 결과 또한 매우 낮은 차원에 머물게 됩니다.
저는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몇 달 전 70대의 상당한 부자를 만났는데 몹시 고단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고단함을 다른 사람들은 모를 뿐이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식사를 대접하기에 이야기를 나누며 제가 가진 가장 좋은 것, 곧 이 복음의 유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당시 제가 그분에게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경험이 그렇게 풍부하신데, 그 경험을 젊은 세대에게 전수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싫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것은 대화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대화 중에 그분은 자기가 골프 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은근히 자랑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골프라는 게 쳐봤자 작은 공 하나 날아가는 것뿐인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물론 폼나게 스윙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잘 부르십니다. 하지만 사람이 날마다 그렇게만 산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 후 몇 달간 그분을 보지 못했는데, 한번은 호텔에 묵다가 밤에 불을 켜지 않고 일어나다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소파 팔걸이에 부딪혀 갈비뼈 두 개가 부러져 몹시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아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제가 행한 기적들을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데, 그들도 저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그들이 팔선 조각상이나 온갖 우상을 얼마나 모아두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고, 오직 그들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그분은 제가 하는 일처럼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젊은이들을 훈련하고 싶다고 말하며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그분이 복음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사람들 가운데 살아가면서 일생의 목표를 '사람들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는 것'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사람에게 절로 영적 아우라를 띠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돈 버는 생각뿐인데, 그럴 거면 차라리 집에서 돈을 찍어내지 그 고생을 하며 돈을 법니까? 제 말을 들으니 자신의 차원이 너무 낮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 같은 사람은 오직 사람들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만을 바라며, 이는 실로 강력한 침투력을 가집니다. 저는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얻고자 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설령 위험이 따를지라도 저는 그가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한다는 매우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라는 비전을 받았을 때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목표를 갖고 삶의 이유를 알게 되면 온몸에서 사람을 감화시키는 영향력이 흘러나옵니다. 당신을 만나는 사람마다 기뻐하게 되며, 함께 술 한잔 기울이는 것보다 훨씬 더 즐거워합니다. 입을 열어 복음의 유익을 전하면 참으로 강력한 파급력이 있습니다.
바울의 목표는 매우 명확했습니다. 그렇게 행하는 데 위험이 따랐을까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을 위해 이방인들을 얻었고,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유대인들을 얻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영역이 사도 베드로와 야고보에게 배정된 구역이었을지라도 상관없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이 장을 보면 성령께서도 그를 만류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성령이 옳았을까요, 아니면 바울이 옳았을까요? 많은 사람은 바울이 성령의 권고를 어겼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으실 수는 없습니다. 만약 계속해서 이 길에 위험이 있다고 알려준다면 그래도 가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이미 우리에게 명백히 계시되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행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까? 당연히 압니다!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사도행전 21:4)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이 더 정확할까요, 아니면 우리의 목표가 더 정확할까요? 당연히 우리의 목표가 더 정확합니다. 제게도 이런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목표가 세워지면 그 푯대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며, 피곤해 쓰러질지언정 멈추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연히 피곤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쑤셔서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여러분이 보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면 이내 생기를 되찾습니다. 저는 바로 이 일을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세운 교회가 왜 '순전한 복음'이 아니라 '사명 신학'이라 불릴까요? 저는 이를 위해 태어났고, 이를 위해 살며, 이를 위해 이 세상에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때까지 이 길을 달려갈 것인데, 어찌 빛이 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반드시 목표를 명확히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은 목표가 생기면 고도로 집중하게 됩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쉽게 마음이 흐트러져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잊어버리고 툭하면 스스로 흔들립니다. 바울의 목표는 대단히 확고하여 제자들의 감동으로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 예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하셨다고 말합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인다고 해서 바울이 그 감동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울처럼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마귀가 속이기 어렵습니다. 감동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도 명확한 목표가 중요하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울을 말리지 못하자 결국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제야 제자다운 말을 한 것입니다.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되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사도행전 21:8-11)
여기서 빌립의 네 딸이 모두 처녀로서 예언하는 자들이었다고 특별히 언급합니다. 나이가 몇 살인지는 나오지 않지만, 시집가지 않고 하나님께 헌신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예언을 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언하는 자라고 명시된 이상 분명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해를 당할 것을 예언했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이것도 통하지 않자 이전에 예언했던 아가보라는 인물이 다시 나타납니다. 아가보는 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발을 묶으며 바울이 이처럼 결박당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바울이 들을 줄 알았지만, 바울은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의 목표가 돈을 버는 것이라면 흔들림 없이 돈을 열심히 버십시오. 상인이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의 목표가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목표가 있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의 삶의 방식이며, 결코 시류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돌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제가 말씀드리는 목표에 따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하다면 돈 몇 푼 더 벌자고 목표를 바꾸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돈을 더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저의 목표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을 할 때 수익이 생길까요? 당연히 생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덤으로 더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빌립의 네 딸과 아가보를 비롯해 수많은 선지자가 바울에게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이들은 당대의 저명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찾아와도 바울은 듣지 않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우리 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므로 누구도 말릴 필요가 없습니다.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심령에 강력한 침투력이 있어 어디를 가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며 다른 군더더기가 필요 없습니다.
제가 어떤 사업가를 접대한 적이 있는데, 그가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는 모두 우리 팀이 개발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다른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주 예수님을 위해 그가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사업가가 기업 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기에 경영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그러자 그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는 그가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도 바울이 행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과 판박이처럼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고난당하시는 것을 가로막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가로막으려다 무안만 당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막아섰지만 역시 무안만 당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속이기 어려우며 사람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우리 가운데에는 이런 무의미한 것들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있습니다. 몇 년 전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툭하면 선지자를 들먹였습니다. 선지자가 하는 말이 진짜인지 누가 압니까? 어떤 교회에서는 무심코 "당신은 사도입니다" 하면 사도가 되고, "선지자입니다" 하면 선지자가 되며, "복음 전하는 자입니다" 하면 복음 전하는 자가 되는 등 이른바 5중 직임이라는 것을 남발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이런 허황된 것들이 없습니다. 그 선지자라는 사람은 얼마나 황당하던지요.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마귀의 화살이 저쪽에서 날아온다고 했는데, 눈을 떠보니 자기를 가리키고 있어서 기겁을 하고 부랴부랴 회개했습니다. 정작 자기가 왜 화살을 쏘는 자가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저는 지난 수년간 수많은 선지자를 만났지만, 저의 기준으로 판단해 보건대 참선지자라 부를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거짓 선지자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것도 겸손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조차 제대로 모르는데 무슨 선지자 노릇을 한단 말입니까? 제가 강조하는 것은 목표가 분명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사례가 몇 가지 있습니다. 온몸의 관절이 아프던 사람이 저를 찾아와 기도받고 모두 나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치유를 받자마자 그의 집 근처에 있던 그 선지자가 나타나 저 같은 목사를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관절을 낫게 해 준 사람은 조심하고, 자신의 관절을 고치지 못했던 그 선지자의 말은 귀담아듣더군요. 이런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입니까? 어쨌든 저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서는 누가 선지자라는 식의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아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선지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만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가로막았지만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본받고 있음을 마음속으로 알았고, 오직 하나님을 위해 유대인을 얻고자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고,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되며,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 같이 되고, 사업가에게는 사업가 같이 되며, 기업가에게는 기업가 같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직 그들로 하여금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 몇 사람이라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목표는 너무나 중요하며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게도 약간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 바울만 한 그릇이 되지 못하여 끊임없이 배우는 중입니다. 목회자들을 섬기러 갈 때면 매우 망설여지는데, 그분들을 섬기기가 참으로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다들 자기만의 방식이 확고합니다. 그들에게 틀렸다고 지적한들 30년 동안 사역해 온 분들이 수긍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제아무리 말씀을 잘 전한들 자기 혼자만 옳고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상대가 누구이든 오직 하나님을 위해 몇 사람이라도 얻어 그들로 하여금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게 해야 합니다. 비록 힘들고 완고할지라도 기회만 있다면 저 자신부터 변화되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이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얼른 피해버렸지만, 이제는 그들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랍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저것 비판하기만 바빠서 귀신과 싸우지 않고 목회자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우리는 그들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야 합니다.
결론
이 장에는 제가 미처 다 읽지 못한 내용들이 있으니 여러분이 직접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사도행전 21:28-31)
성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들이 바울이 거룩한 성지를 더럽혔다고 주장했기 때문인데, 이는 실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성지에 가지 마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성지를 더럽혔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찌 죽게 될지조차 모릅니다. 성지에서는 종종 사람이 밟혀 죽는 사고가 발생하니 그런 소동에 끼어들지 마십시오.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사도행전 21:26-27)
제사장이 그들을 위해 제사 드리기를 기다리는 데 7일이 걸렸는데, 사실 바울은 이런 의식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7일 동안 사람들은 이미 사전에 모의하여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폭동을 꾸몄습니다. 바울을 잡기 위해 온 성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빼앗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는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감이러라 (사도행전 21:32-36)
만약 이 천부장이 일찍 와서 바울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바울에게 침을 뱉어 질식시키거나 발로 밟아 죽였을 것입니다. 누가 이런 대가를 치르고자 하겠습니까? 바울은 복음을 전할 기회 한 번을 얻기 위해 목숨의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나누기 위해 그리했으나, 결국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바울이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유대인 중에서도 이것이 참 복음임을 믿은 자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후 바울은 그곳에서 설교를 한 편 전했고, 2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다시 로마로 이송되어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현지의 총독, 고위 관료, 분봉왕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이는 오직 사람들로 하여금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복음의 유익을 얻을 수 있을지는 여러분 각자의 몫에 달렸습니다. 입을 열어 전할 것인지, 사람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나눌 것인지 또한 여러분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