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我在大家预备好问题之前,来做一个沙盘推演。如果亚伯拉罕不说撒莱是他的妹妹,走到哪都说:这是我的老婆。会怎么样呢?会不会有人来杀亚伯拉罕呢?大家有没有这方面的困惑?为什么亚伯拉罕非要说这是我妹妹呢?你以为亚伯拉罕是为了保守自己吗?不是的。其实是他不想惹事,因为他知道自己是很厉害的牛人。如果他说:我是先知,撒莱是我老婆,你们来动一下试试!那是要死很多人的。
因为那些人在还没等到做梦,没等到亚伯拉罕的跟前,就已经被神灭了。大家要知道我的逻辑,不是平常的逻辑。其实是亚伯拉罕不想惹事,考量来考量去,还是承认撒莱为妹妹比较好,这样就免了很多人灭亡。因为亚伯拉罕不是想要咒诅这个世代,他是想要成为很多人的祝福。属灵的人都低调,千万不要高调,不要整天招摇过市!
Q1:老师,只要是神的先知,纵使生命中有一些缺陷,比如骄傲、胆小等,也不影响神的保守,是吗?
如果你是神的先知,你会是一个骄傲、胆小的人吗?应该不会!如果是一个胆小的人,那就留在迦勒底的吾珥,或者留在哈兰,就在那过吧,一直熬死算了。所以人一旦成了神的先知,他已经把世上的事都看明白了。
如果是胆小的人,他怎么敢拉家带口的漂流在外呢?怎么敢去灭掉那四个王呢?基大老玛可是当地的恶霸。如果你是个胆小的人,你没有办法做先知,也没有办法蒙神的保守。这种缺陷是致命的缺陷。
Q2:亚伯拉罕那个年代寿命长,撒拉年轻与寿命长短有关系吗?
撒拉大概活到了一百三十岁,如果按照比例来算,九十岁了也是个老太太了。如果这么分析就麻烦了。如果那个年代都可以活到九百岁,九十岁才活了十分之一,那是可以理解的。
Q3:老师,撒拉跟罗得都曾被掳,类似的事情,亚伯拉罕的做法完全不同,同类事情不是同一个套路处理,让他作出不同决定的依据是什么?现实生活中怎么能够灵活运用不死板教条?
挺好的问题。我也不知道答得对不对,我来试试看。撒拉不是被抢去做奴隶,她是被亚比米勒接去做压寨夫人。罗得被掳去是做奴隶的。基大老玛把罗得抢去,其实那是很没有道理的,所以亚伯拉罕才出手。所以大家千万别做没有道的事。但是亚比米勒和亚伯拉罕是邻居,撒拉被接去了,如果亚伯拉罕说:这是我老婆,不能被接去。如果人家要开战,那就开打,那叫喜欢没事找事。
把打基大老玛那两下子用来对付亚比米勒,这邻居咋做呀?天天干仗?你打我、我打你,这不是一个属灵的人、先知的思维方式。先知不是好斗的。因为先知的国不是在这地上,他们的逻辑也不是一个世上的逻辑体系。因为亚伯拉罕要成为地上万国万民的祝福,地上的万族都要因亚伯拉罕得福,他得做一个好的榜样。
在我们的日常生活中怎么来应用这样的事情?多应用亚伯拉罕的这种低调、为人处世谦和,不好斗的方式。不要一整就跟人掐架,掐着、掐着就把神的同在掐没了。如果他不是为了要祝福人,他是为了自己的利益在那里硬杠,那就麻烦了。
Q4:老师,我以前就特别在乎孩子爸爸是不是把我和孩子放在第一位。一旦他把他朋友和亲人放在我前面,我就觉得是不尊重我、否定我,导致他的朋友、亲人不尊重我。我这个心态是不是也是喜欢炫耀、骄傲?
不是喜欢炫耀、骄傲,是喜欢做愚昧的事。人无知会带来很深的影响。这么做有什么意义呢?能成为别人的祝福吗?不会。光顾自己了,那是极度自私,而且讨神愤怒。人为什么活得很悲惨?因为自私。人为什么不能够从神得着恩典?因为自私。自私是一个极其让人讨厌的事。别做一个自私的人,那是神非常讨厌的,不要说恩典了,没有愤怒就已经是很怜悯你了;别再做一个愚昧的人,因为愚昧给人带来的影响是非常深远的。
Q5:老师,为什么那个年代,有活那么大岁数的人?
这是啥问题?那个年代活100多岁,现在也有人活100多岁的,很正常。摩西说:我们一生的年日是七十岁,若是强壮可到八十岁;但其中所矜夸的不过是劳苦愁烦,转眼成空,我们便如飞而去(参《诗篇》90:10)。那跟现在的状况差不多。
Q6:老师,我打算出国去加拿大打工,打工的目的就是为了换一个生活环境,追求更美好的生活。我这样做是不是很属世界?我不知道这样选择是否符合神的心意?
怎么做都行,想怎么做就怎么做。有很多人出国,后来也开始成为一个有命定的人;有些人不出国,也是一个没有命定的人,这事不太重要。
Q7:老师,亚伯拉罕看透生死,这一章亚伯拉罕担心撒拉是他妻子的缘故导致自己被杀才叫她妹子,这怎么理解?
这不难理解,我刚刚稍微解释过。你以为他怕被杀呀?他不怕被杀,他知道来杀他的人最后都很惨。因为《创世记》十二章,神就告诉亚伯拉罕,而且在这之前,亚伯拉罕就经历了很多很神奇的事。那些很神奇的事《圣经》没有记载。比如说:那些想杀亚伯拉罕的人,还没杀他,第二天暴毙了。后来他慢慢琢磨过来,不是他自己怕被杀,是怕那些想杀他的人,神把他们给灭了。这是我解释的。
你要想碰亚伯拉罕那是一件很困难的事,而且神清清楚楚的说:咒诅亚伯拉罕的要受咒诅。那杀亚伯拉罕那得是多大的咒诅!很多时候我们都不知道那些人是怎么死的。神要做事,不但可以把撒拉平平安安地送回来,也能平平安安地带着亚伯拉罕走这一生的路。就连基大老玛被打败了,从来没有回来找亚伯拉罕报仇,你不觉得厉害吗?
基大老玛不是被杀了,而是逃走了。但是我们没有看见基大老玛带着那四个王回来找亚伯拉罕的麻烦。可能是基大老玛被人给杀了,或者突然间暴毙了,啥事都有可能发生,只是《圣经》懒得记。所以说这不叫担心自己死,是担心很多人死。
Q8:老师,先知、祭司、使徒能否解释一下有啥不同?
按照《圣经》来说,先知就是有神的同在,能够传讲神的话的人。先知这个词在旧约、新约里头都有。祭司这个词在旧约、新约《圣经》也有。祭司在旧约是指亚伦他们一家,亚伦和他的后裔管献祭这事;到了新约就是指凡是侍奉神的,包括一般的基督徒都是祭司的职分。祭司的职分就是把神的能力从神的宝座那里带下来,把人的问题带到天上去,透过神的方式来解决人的问题,这叫祭司。
使徒本身既是个先知,也是祭司。那为什么冒出使徒这个名词呢?使徒这个词是指那些建立和开拓教会的人。但是现在使徒这个词给人带来很多的困惑,我们一直以为只有那十二个使徒叫使徒,其实那十二个使徒还不一定是使徒。
那什么样的人叫使徒呢?比如像使徒保罗他才是使徒,因为他是个建立教会的人。教会是建立在使徒和先知的根基上。先知是传讲神话语的人。使徒好像比先知更高一个层次,他不但传讲神的话,他还管理教会。使徒是建造教会的人,先知是跟使徒一起建造教会的人,祭司是个职分。使徒也好,先知也好,包括一般的基督徒都是扮演祭司的职分。
서론
우리가 공부하는 《창세기》 20장은 매우 흥미롭고, 비교적 논쟁의 여지도 있는 본문입니다. 저는 이 장의 제목을 《선지자가 되는 유익》이라고 정했습니다. 선지자가 되는 유익은 매우 중요합니다. 선지자가 되어 유익을 얻지 못한다면 누가 선지자가 되겠습니까? 이 장을 통해 아브라함과 롯이 타지에서 떠돌아다닌 모습이 완전히 서로 달랐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교해 보면 롯이 투자했던 재산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아내와 자녀들과도 뿔뿔이 흩어져 두 딸만 데리고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반면 아브라함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장에서 그를 선지자라고 부르셨고,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아브라함이 선지자로서 가진 매우 뚜렷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 나가 자신이 선지자라고 크게 외치며 “선지자가 왔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우 조용히 선지자의 일을 했고, 결코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진짜 선지자라면 점을 쳐서 돈만 벌어도 부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비멜렉을 불러 점을 쳐 주며 자신이 선지자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점쟁이가 되었을 뿐, 선지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선지자인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 사라는 방금 하나님께서 내년 이맘때에 그들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이며, 그 아이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셨고, 멸망하실 때 아브라함은 남방을 바라보다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온 가족을 데리고 남방으로 이주했는데, 마치 소돔과 고모라로 옮겨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선지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서 있는 곳이 소돔과 고모라라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롯으로 바뀌면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태우신 것을 보았고, 남방으로 이주하여 그랄에 이르렀습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은 사라를 보자마자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사라가 이미 90세였지만, 그녀는 20대부터 나이가 들지 않았습니다. 90세인 사람이 20대의 아름다운 소녀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아비멜렉도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사라가 한눈에 90세가 넘은 할머니처럼 보였다면 그에게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라가 나이를 전혀 먹지 않은 절세미녀로 보였기 때문에 그녀를 데려와 자기 것으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에게는 유익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선지자의 아내까지도 나이를 먹지 않았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였고,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의 아내라 하셨음이라(《创世记》20:1-3)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은 참 복이 많았습니다. 평생 나이를 먹지 않는 미녀와 함께했고, 90세가 되어도 20세처럼 보였습니다. 정말로 물고기가 부끄러워 가라앉고 기러기가 부끄러워 떨어질 만큼 아름다운 용모와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습니다. 만약 당신이 자매라면 선지자가 되면 나이를 먹지 않는 미녀가 될 것입니다. 성형수술을 받을 필요도 없고 히알루론산 주사를 맞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사명이 있기를 갈망하고, 사라처럼 나이를 먹지 않는 미녀가 되십시오.
이 말은 절대로 과장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자매들이 실제로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선지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선지자가 되는 데에는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온 적이 있는데, 나이가 많지는 않았지만 외모는 평범했고 세월의 흔적이 이미 얼굴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을 함부로 관리해서 얼굴 전체에 크고 작은 여드름이 가득했습니다. 스킨케어 제품도 많이 사용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정말 속상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자매들은 우리 교회에 온 후 기뻐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문제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한가할 때마다 온종일 트집을 잡았고, 세월의 흔적이 모두 얼굴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온 뒤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점점 더 사랑스러워지고, 점점 더 보기 좋아졌습니다. 사라가 나이를 먹지 않았다는 일이 그리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1950~60년대에 찍은 사진을 보면 자매들은 모두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었습니다. 후에는 그것을 가리켜 ‘민낯 미녀’라고 했는데,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유도 간단합니다. 그때는 생활이 단순했고, 지금처럼 스트레스가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중국인 사명신학에 와서 과제도 써야 하고, 목회자로서 공개 강의도 해야 하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크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는 사진을 찍을 때 필터나 미용 기능도 없었고, 모두 민낯 미녀였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선지자가 되었다면 지금도 나이를 먹지 않는 미녀가 되었을 것입니다.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작은 깃발을 들고 자신이 선지자라고 외치고 다니지 마십시오. 큰 소리로 외치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막상 보니 하나님의 임재도 없고, 얼굴에는 초조함만 가득하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을 하나 전하겠습니다. 선지자가 되는 데에는 유익이 있습니다. 자매들만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선지자가 되는 유익이 이것뿐이겠습니까? 사람이 평생 어떤 일을 만나게 될지는 정말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지자가 되는 법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열심히 배우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일하기를 좋아하며, 일을 사랑해야 한다는 뜻일까요? 사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부산물일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데리고 타지에서 떠돌며 날마다 장막을 걷고 장막을 옮겼습니다. 막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집에서 소와 양과 낙타를 기르고 이런저런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사실 매우 고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라는 즐겁게 일했고, 세월에 짓눌린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외몽골과 내몽골에 가서 날마다 장막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외모가 다소 걱정스러워 보이고 세월의 고단함이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도 아브라함과 사라의 용모를 무너뜨리지 못했으니, 참 대단한 일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면서도 떠들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길을 가는 동안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았습니다.
산을 개척하든 다리를 놓든,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평생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을 누린다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농사일을 하고, 양을 치면서 장막을 걷고 세웠습니다. 손재주도 좋았고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어떻게 해야 여러분이 선지자가 되기를 갈망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듣기에는 마치 판매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그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값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사나 사모가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목사와 사모라는 두 이름을 얼굴에 새긴다 해도 하나님의 임재가 새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에는 확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타지에서 떠돌아다녔지만, 세월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려는 유익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중국인 사명신학의 비전과 사명을 함께 선포하자고 말할 때, 이 비전과 사명은 비결이라는 사실을 천천히 묵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온종일 자신을 지키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 주시지 않는다면, 자신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롯과 늙은 엘리와 사울 왕은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렸을 때 모두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습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자연히 아름다운 아내도 얻고 황금으로 지은 집도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가 주는 유익이 어찌 이것뿐이겠습니까? 사람이 평생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 가서 좋은 삶을 사는 것보다 차라리 하나님의 임재를 얻기를 원했습니다. 사막을 걷는다 해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실제적이고 아름다운지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들이 그랄에 도착하자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 일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일 때문에 아브라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까닭 없이 미워하게 된 자매들도 많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정말 아브라함과 결혼했다면 사라의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사라라면, 아비멜렉이 여러분을 데려갔는데 남편 아브라함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남편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뭐예요? 아내를 빼앗겼는데도 상관하지 않다니요!”라고 원망할 것입니다.
그러면 완전히 반대로 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세월의 고단함이 여러분의 얼굴에 기어 올라오게 됩니다. 사라는 데려가졌지만 그냥 데려가진 채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으니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녀와 남편은 모두 선지자였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으므로 두려워할 것이 없었습니다. 꿈 하나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사라는 아무 일 없이 다시 돌려보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시는 일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 일을 사람이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면 너무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네가 그를 만지지 못하게 함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创世记》20:6-7)
하나님께서는 꿈속에서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이 선지자이며, 아브라함이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작은 깃발을 들고 헛되이 소리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이 선지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선지자라고 칭하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전혀 없다면 온 거리를 다니며 소리쳐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기 시작하고 선지자가 되면, 꿈 하나로도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신하를 불러 그 일을 다 말하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创世记》20:8)
아브라함이라는 선지자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전략 핵무기를 가진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다면 이 일은 정말 처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결국 아내는 쉽게 돌아왔고, 은과 가축 등 많은 것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야 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소와 양과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아비멜렉이 또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한 모든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라 네가 모든 사람 앞에서 책망받을 일이 없게 되었느니라(《创世记》20:14-16)
어떤 사람이 선지자가 될 수 있는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이래, 그가 애굽에 가든 그랄에 가든 그곳의 왕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알았습니다. 중동 일대, 곧 시리아에서 애굽까지 사람이 갈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아브라함의 이름이 전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롯인지 아브라함인지도 모른 채 혼자서 계속 애쓰다가 결국 ‘아롯’이라는 혼합체가 되고 맙니다. 마치 건강하지 못한 상태와도 같습니다.
저는 아브라함과 롯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참으로 사명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런 사소한 일들을 모두 꿰뚫어 보고, 영생에 들어가기를 갈망했습니다. 영생에 들어가기를 갈망하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사람이 이생에서만 소망을 둔다면 모든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는 살아 있는 채로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린 것이니, 참으로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최근 2~3년 동안 저는 점점 더 꿰뚫어 보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가 괴로워하기 때문에 저는 늘 같은 말을 반복하며 그를 깨우쳐 줍니다. 남편이나 자녀의 일이 잘되지 않으면 자신이 괴로워하기 시작합니다. 아내의 일이 잘되지 않아도 따라서 괴로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냈습니다. “Wife happy then life happy!” 아내가 기뻐야 삶도 기쁘고, 아내가 기쁘지 않으면 집안에 먹구름이 낀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선지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뒤늦게 알고 뒤늦게 깨닫는 사람도 되지 못하고, 그저 무지한 사람이 되어 버리니 비극입니다. 그래서 중국인 사명신학은 한 가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모두가 사람의 일생을 철저히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꿰뚫어 보지 못하면 선지자가 될 수 없고, 선지자가 되지 못하면 선지자의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자매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주름이 기어 올라오고, 형제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풍상이 나타나니, 듣기만 해도 비극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꿰뚫어 본 후 영생을 구하고, 사명을 구하며, 삶의 의미를 구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점은 그가 꿰뚫어 본 후에는 도덕의 지배도, 사람의 지배도 받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선지자의 유익을 얻을 뿐입니다. 그것은 지배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큰 소리로 여러분에게 간증하며, 모두가 선지자가 되는 유익을 알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어떤 자매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듣자 그 점만을 바라보고 선지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면 끝난 것입니다. 머릿속에는 온통 얼굴과 미용과 나이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뿐입니다.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선지자가 되는 유익만 생각하면 선지자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만 생각하면 은혜를 얻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복만 생각하면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선지자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참으로 함께하십니다.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호하시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선지자의 방식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선지자가 행한 방식에는 칭찬할 만한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브라함의 행동에 대해 여러분과 논쟁을 벌였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이 문제를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이 옳았는지 그르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보호하셨을 것입니다. 선지자인 아브라함이 사라를 아내라고 말하든 누이라고 말하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하십니다. 이 점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도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서 겪은 것과 똑같은 일을 경험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매우 먼 거리였고, 식솔들을 이끌고 가는 길에는 강도가 자주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그의 아내를 빼앗으려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재산을 모두 빼앗으려 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 길을 지나왔습니까? 우르에서 하란으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다시 가나안으로, 그리고 또 아비멜렉을 만났습니다.
《성경》에는 이 두 사건만 기록되어 있지만, 그 길에서 얼마나 많은 강도와 늑대와 벌레와 호랑이와 표범을 만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무송보다 무예가 뛰어나서 호랑이를 잘 잡았던 것일까요? 사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는 길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호하시기로 하셨으니, 누가 감히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가 이렇게 해야 했는지 저렇게 해야 했는지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속에서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선지자였기 때문에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해야 했습니다. 이 꿈은 매우 영적인 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더 이상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행동했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라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라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게 하시고 떠돌아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노라(《创世记》20:11-13)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말할 틈도 없었던 곳이 많았습니다. 그가 밖에서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말한 이유는 아브라함의 아내가 당시의 절세미녀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부분을 보고 아브라함은 참 복이 많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현숙한 아내를 얻었으니 남선지자가 되는 것도 참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여기지 마십시오. 이 선지자가 어떻게 행동하든 하나님의 보호하심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믿음으로 말해야 합니다. 저도 지난 여러 해 동안 자주 잘못된 결정을 내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일을 통해 아브라함은 그랄에서 거주하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습니다. 아비멜렉과 그 주변 사람들 중 누구도 감히 아브라함을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만약 어떤 강도가 아브라함에게 재산이 많은 것을 보고 그를 털려고 했다면, 그 강도도 그날 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아무도 전하지 않은 꿈을 꾸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도둑에게도 그가 죽을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은 선지자이므로 아브라함을 건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도둑을 매우 비참하게 죽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강도도 그 꿈 때문에 아브라함의 재산을 노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는지는 여러분 자신의 상태가 결정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여러분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는 그다지 큰 관계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선지자가 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그곳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라 때문에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나라는 의로운 나라였고, 아비멜렉은 의리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이 좋은 왕인지 아닌지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영향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 땅의 사람들이 어떠한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선지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여러분 자신이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선지자이면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비멜렉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라를 돌려보내지 않고 이미 마음먹은 대로 그녀를 곁에 두려고 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를 상대할 방법을 가지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방법이 많습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정도로 영적인 일들을 경험합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영적인 일을 경험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특히 사람이 왕이 되거나 기업이나 팀을 이끌 때에는 많은 경우 하늘을 의지해 먹고살듯이, 사람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많습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한 은행이 직원 한 명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미국의 한 대형 부동산 기업도 하급 직원 한 명 때문에 문제가 터졌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 일이 누구 때문에,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생각합니다. 사실 많은 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그렇게 배치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대에 어떤 사람들은 황제가 되기 전 많은 이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지만, 아무리 죽이려 해도 아무도 그를 죽일 수 없었고 결국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만약 그가 어느 한 고비라도 넘기지 못했다면 모든 것이 끝났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이 능력이 있어서 그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가 아니었지만, 여러분이 선지자가 된다면 참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크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아브라함의 이름을 크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집안에 있는 아내들과 첩들이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고, 그날부터 집안의 모든 여성들이 생리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비멜렉은 다급해졌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통치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 아들을 여러 명 낳는 것에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를 위해 얼마나 오래 기도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 아비멜렉은 자기 집안의 여자들이 모두 임신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아브라함에게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며, 기도하자 모든 생식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들을 치료하셔서 그들이 출산하게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여인의 태를 닫으셨음이더라(《创世记》20:17-18)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매우 위대하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널리 알리셨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된다면, 여러분의 상사가 여러분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고 여러분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아브라함이라면 사업을 할 때 고객도 여러분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선지자가 되는 유익이 얼마나 큰지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뿐 아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사람은 선지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입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니라(《马太福音》10:41)
사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한다”는 말씀은 《창세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기 시작하라고 권면합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이 된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결론
어떻게 해서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명 밖에는 보호하심도 없고 하나님의 임재도 없으며, 하나님의 복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저주하실 것입니다. 강단에서 아브라함을 자주 비판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저주하는 것인지는 여러분이 천천히 판단해 보십시오. 어쨌든 이 시대에 많은 이상한 일들이 그런 목사들에게 일어나는 이유는, 목사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을 제대로 본받지 않고 아브라함을 끌어내어 이러쿵저러쿵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했어야 한다거나, 분명 자기 아내인데 어떻게 누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에게 조언까지 하려고 합니까? 저주를 받지 않도록 차라리 멀리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创世记》12:1-3)
어떤 일들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지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사람이 저주를 받습니다.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저주하시고,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과 같이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명을 위해 살아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20장 본문
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였더라.
20:2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라.
20: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의 아내임이라.
20:4 아비멜렉이 아직 사라를 가까이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르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20: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또한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나이다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20:6 하나님이 꿈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네가 그를 만지지 못하게 함이니라.
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20:8 아비멜렉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모든 신하를 불러 그 일을 다 말하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20: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지었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로 큰 죄를 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20: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20: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므로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라.
20: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라.
20: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게 하시고 떠돌아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노라.
20:14 아비멜렉이 소와 양과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냈더라.
20:15 아비멜렉이 또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20:16 또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한 모든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라 네가 모든 사람 앞에서 책망받을 일이 없게 되었느니라.
20: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들을 치료하셔서 그들이 출산하게 되었더라.
20:18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여인의 태를 닫으셨음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