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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말라기 3장 - 하나님은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고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으시니라

2025-09-05 2,474 玛拉基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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玛拉基书03章-十分之一捐献
  • 1 万军之耶和华说:“我要差遣我的使者在我前面预备道路。你们所寻求的主必忽然进入他的殿;立约的使者,就是你们所仰慕的,快要来到。”
  • 2 他来的日子,谁能当得起呢?他显现的时候,谁能立得住呢?因为他如炼金之人的火,如漂布之人的碱。
  • 3 他必坐下如炼净银子的,必洁净利未人,熬炼他们像金银一样;他们就凭公义献供物给耶和华。
  • 4 那时,犹大和耶路撒冷所献的供物必蒙耶和华悦纳,仿佛古时之日、上古之年。
  • 5 万军之耶和华说:“我必临近你们,施行审判。我必速速作见证,警戒行邪术的、犯奸淫的、起假誓的、亏负人之工价的、欺压寡妇孤儿的、屈枉寄居的,和不敬畏我的。”
  • 6 “因我耶和华是不改变的,所以你们雅各之子没有灭亡。
  • 7 万军之耶和华说:从你们列祖的日子以来,你们常常偏离我的典章而不遵守。现在你们要转向我,我就转向你们。你们却问说:‘我们如何才是转向呢?’
  • 8 人岂可夺取 神之物呢?你们竟夺取我的供物。你们却说:‘我们在何事上夺取你的供物呢?’就是你们在当纳的十分之一和当献的供物上。
  • 9 因你们通国的人都夺取我的供物,咒诅就临到你们身上。
  • 10 万军之耶和华说:你们要将当纳的十分之一全然送入仓库,使我家有粮,以此试试我,是否为你们敞开天上的窗户,倾福与你们,甚至无处可容。
  • 11 万军之耶和华说:我必为你们斥责蝗虫(原文是吞噬者),不容它毁坏你们的土产。你们田间的葡萄树在未熟之先也不掉果子。
  • 12 万军之耶和华说:万国必称你们为有福的,因你们的地必成为喜乐之地。”
  • 13 耶和华说:“你们用话顶撞我,你们还说:‘我们用什么话顶撞了你呢?’
  • 14 你们说:‘侍奉 神是徒然的,遵守 神所吩咐的,在万军之耶和华面前苦苦斋戒,有什么益处呢?
  • 15 如今我们称狂傲的人为有福,并且行恶的人得建立;他们虽然试探 神,却得脱离灾难。’”
  • 16 那时,敬畏耶和华的彼此谈论,耶和华侧耳而听,且有纪念册在他面前,记录那敬畏耶和华、思念他名的人。
  • 17 万军之耶和华说:“在我所定的日子,他们必属我,特特归我。我必怜恤他们,如同人怜恤服侍自己的儿子。
  • 18 那时你们必归回,将善人和恶人,侍奉 神的和不侍奉 神的,分别出来。”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말라기》 3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을 연구하면서 불현듯 깨달은 것은, 이 장에서 비록 십일조와 헌금을 언급하고 있지만, 결코 헌금 자체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장의 진정한 주제는 바로 "하나님은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고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다"입니다.

여러분은 이 장 전체를 하나로 꿰뚫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핵심 주제라는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만약 주제를 단순히 "마땅히 드려야 할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는 것"으로만 잡는다면 다른 단락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제가 "하나님은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고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다"라는 것을 알면, 헌금에 대한 내용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자신의 계획을 나타내셔서, 하나님의 배치가 원래 어떠한지를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시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바로 보배는 남겨두고, 쓰레기는 내버려 불태우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쓰레기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보배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보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우리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에서 아주 중요한 발견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배를 걸러내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 마음속의 은밀한 생각들을 드러내시는데, 헌금은 사람을 시험하고 드러내는 매우 좋은 도구입니다.

사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위대한 구속의 계획을 이루실 것임을 거듭해서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타클로스'처럼 오시는 것이 아니라,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고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은 분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깨달아야 합니다. 멸망할 자는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어야지, 무조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기만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보배를 택하고 계시며, 그 보배가 과연 어떤 모습인지는 우리가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 초기부터 이렇게 계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한다면 혼란에 빠져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왜 선악과나무를 지으셨을까? 그것도 생명나무 바로 옆에 두시다니! 하나님, 선악과나무를 안 만드실 수는 없었나요?" 그러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생명나무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선악을 분별하는 길을 갈 것인지 분명히 드러내시며 보배를 걸러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대 모든 세대의 보배들을 거듭해서 걸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문제는 바로 '내가 보배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구약을 만드셨을까? 구약에서 하나님도 별수 없으셨잖아. 이스라엘 사람들을 봐, 율법을 온전히 지킨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으십니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신약》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키며, 교회는 바로 보배를 걸러내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에서 실패했을지라도, 바로 그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 이방인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약속을 받고 함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존재하기 전에도 그렇게 계획하셨고, 이스라엘이 생긴 후에도 그렇게 계획하셨습니다.

《신약》에 이르러서도 여러분은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야말로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이요, 표백하는 자의 잿물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보배를 걸러내고자 하십니다.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아주 분명한 계획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어떤 분은 "선생님, 우리가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배우기 위함이 아닌가요?"라고 묻습니다. 맞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가 될 것인지, 아니면 쓰레기가 될 것인지 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가 되고 싶다면 보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만약 하나님 보시기에 쓰레기가 된다면 그 모습은 어떠할까요?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말라기》 3:1-5)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이 보이십니까? 이것은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가 우리에게 계시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어떻게 강림하셨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신기하고도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사실 주 예수님은 겉모습이 화려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유하거나 잘생긴 모습이 아니었고, 목수의 가정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셨으며, 생애 첫 몇 년간은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몇 년 뒤 복음을 전하러 나오셨을 때도 대단한 학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 하나님이라는 표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상상대로라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 머리 위에 찬란한 영광의 광채가 비추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오시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분 위에 임하셨지만, 세례 요한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얼마나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일입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다리 저는 자를 걷게 하시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셨으니,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그토록 구하던 주님이 갑자기 임하셨음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혼란스러워하며 "하나님,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보배를 걸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제거될 것이며, 하나님은 원래 그렇게 계획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이렇게 따져 물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칼을 들고 싸울 수 있는 자가 60만 명이나 되었는데,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좀 봐주실 수는 없었나요?" 여러분,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오직 보배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불의하고 불공평해 보이는 현상을 보더라도 혼란스러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실 것이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 반석 위에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옛날과 고대와 같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이미 이처럼 위대한 계획을 세우셔서 심판을 행하시고, 쓰레기 같은 자들은 쓰레기장에 던져 불태우시기로 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중에도 신앙생활을 할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워하는 형제자매들이 있는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이 거치는 반석은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에 걸려 넘어진다면, 참으로 큰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인데, 누구에게 가서 따지겠습니까? 마음에 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계획은 말라기를 통해 명확히 드러났고, 비추어 보면 "아, 하나님의 계획이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상대할 마음조차 없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행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교인으로 끌어들이려고 사방으로 찾아다니셨습니까? 아닙니다! 오고 싶으면 오고, 싫으면 떠나라는 식이었습니다. 비록 표현이 거칠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뜻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하나님은 보배를 골라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보배가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택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보배가 되기를 원치 않고 쓰레기로 남기를 좋아하며 넘어지기를 좋아한다면, 그냥 넘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양육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목자님, 저는 목자님이 하신 그 말 한마디 때문에 걸려 넘어졌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은 한 번도 일어선 적이 없는데, 어찌 내가 넘어뜨렸다고 말합니까? 차라리 주 예수님이 당신을 넘어뜨렸다고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넘어졌을 때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넘어질 자는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넘어뜨렸을 수도 있고, 주 예수님 때문에 넘어졌을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 때문에 넘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인 자신이 넘어질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넘어졌는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화가 있는지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셨을 때 화가 임했습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은 다른 뜻이 있으니 천천히 묵상해 보십시오. 이번에는 이 부분을 길게 다루지 않겠습니다.

훗날 하나님께서는 사람 마음의 은밀한 생각을 따라 심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 마음의 생각을 다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엄청난 권세를 떨치며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로마의 황제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관직을 하나씩 나누어 주셨다면, 과연 그분 때문에 걸려 넘어질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아무도 넘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목수의 아들이었고, 경전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았으며, 바리새인들의 엄격한 훈련을 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업신여겼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이 사람은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싶어 예수님을 향해 "지난달까지만 해도 우리 집 인테리어 공사를 하더니, 어떻게 지금 나와서 설교를 하고 있는가? 도대체 당신이 누구란 말인가?"라며 따졌고, 매우 당황해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이나 배경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이 행하는 열매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넘어지는 길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약 넘어졌다면 이 사람 저 사람 탓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탓하십시오. 자신이 넘어질 만한 사람이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 보십시오. 자신이 요셉과 같은 사람이라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가도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요셉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집트에 팔려 가지 않더라도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보배를 분별해 내실까요? 어떻게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고 표백하는 자의 잿물처럼 역사하실까요?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마땅히 드릴 봉헌물은 보배와 쓰레기의 분수령입니다

마땅히 드려야 할 온전한 십일조와 봉헌물은 보배와 쓰레기를 가르는 분수령이자, 저주와 축복을 가르는 분수령입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말라기》 3:6-7)

그들은 하나님께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했습니다. 선지자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라기》 3:8-9)

저주가 임했는데 어떻게 보배가 될 수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쓰레기입니다! 저는 '사람이 왜 이렇게 될까? 사람은 과연 하나님을 의지해 사는 것인가, 돈을 의지해 사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우리 중에 돈과 직장과 사업을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이 수두룩하지만, 하나님께서 아직 그 일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무엇을 의지하여 살고 있는가?" 만약 돈을 의지해 산다면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길 것이고, 헌금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올바른 헌금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하나님께 다시 드리는 것은 대단한 헌신이 아니라, 마땅히 드려야 할 바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진정한 헌금이 무엇인지 모르고, 본성적으로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그대로 지니고 살아갑니다. 돈은 단번에 사람을 시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지혜로우십니까!

하나님은 금을 연단하는 불이요, 표백하는 잿물과 같으신데, 어떻게 사람을 가려내실까요? 바로 헌금을 통해서입니다! 사기꾼에게는 돈을 잘도 주면서 왜 하나님께는 드리지 못합니까? 사기꾼은 큰 보상을 약속하니까 그 꾀임에 넘어가 돈을 주지만, 결국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합니다.

제가 왜 당당하게 "당신에게는 헌금할 자격을 주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헌금의 개념을 너무나 혼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금이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일 뿐이며, 결코 대단한 공로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물며 재물이란 불의한 재물에 불과한데, 그것을 쥐고 있어서 무엇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처럼 많은 것을 주셨음에 감사하며 십분의 일을 헌금으로 드리는 것은, 단번에 사람의 생각과 논리를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돈이 자기가 피땀 흘려 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땅에서 장사를 하면서 모든 돈을 자기가 힘들게 벌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그렇습니까?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이 그런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당신이 돈을 벌 수 있었겠습니까? 어쩌면 북한 사람들처럼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생각이 명확해야 합니다. 결코 이 돈이 자기가 애써 번 것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중국에 살지 않았더라면 한번 그렇게 벌어 보십시오. 벌 수 있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런데 헌금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렵겠습니까?

만약 이 재물이 다 자기가 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단 1원도 몹시 아깝지 않겠습니까? 저 역시 과거에 헌금할 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명확한 계산법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저를 가르쳐 주시던 어르신이 계셨는데, 싱가포르의 큰 부자였습니다. 그 집안에 주유소가 아주 많아서 차들이 92옥탄, 95옥탄, 98옥탄 휘발유를 넣으려고 줄을 섰습니다. 그 집 주유소에 가서 기름만 넣으면 그분에게 돈이 들어오는 구조였습니다.

그 어르신이 저에게 "자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이라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교육을 마친 후 그분이 제게 헌금에 대해 이야기하셨을 때, 저는 몹시 갈등했습니다! 갈등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정말 속이 쓰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계산한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그래, 나는 복이 정말 필요해." 그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가 무엇인지 깊이 알지 못했지만, 내게 하나님이 너무나 필요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계산해 보았습니다. '내 직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하나님께 드리자. 나는 헌금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가 될 것이다.' 저는 지금까지도 이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십일조와 마땅히 드릴 제물은 보배와 쓰레기를 가르는 기준선입니다. 쓰레기가 되고 싶다면 아주 쉽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세상 사람들의 논리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저주와 축복은 쓰레기와 보배를 나타내는 명백한 표식입니다.

제가 사람들을 축복할 때 가장 좋아하는 말은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지 않기로 작정하신다면, 그저 혼자 마음대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천진 방언으로 "가서 혼자 놀아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버려지지 말고 하나님의 보배로 돌아와야 합니다. 어리석게 살지 맙시다.

사람이 헌금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의 돈을 탐내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들의 뇌리에 무엇이 들어차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은 "너희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온 나라 사람이 다 쓰레기 같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이스라엘 백성을 억지로 바꾸고 싶어 하셨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일에 연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평소에 "제 남편을 위해, 제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예수님 믿을 수 있게요"라는 기도를 잘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자체를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마음속에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을 때, 그들은 원래 이집트의 노예였습니다. 돈도 자기 것이 아니었고, 자기 몸도 자기 것이 아니었으며, 주인의 재산에 불과했습니다. 도망치다 붙잡히면 주인이 마음대로 처분해도 법정에 갈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나 소와 같아서 남이 훔쳐 갈 수도 없는 소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셔서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힘이 좀 생기자 돈이 다 자기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무엇 하나 자기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노예 상태에서 해방해 주신 것입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얼마나 가증스러웠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빌론에서 그들을 인도해 내셨지만, 그들은 그 은혜를 새까맣게 잊고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사유재산제도는 참으로 놀라운 발명품입니다. 단번에 사람 마음속에 있는 것을 낱낱이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 재물이 정말 여러분의 것 같습니까? 두 눈을 감고 다리를 뻗고 숨을 거두는 날에는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참하게 살고, 물질에 깊이 얽매여 결국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돈을 사랑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돈을 섬기든지 하나님을 섬기든지, 맘몬을 섬기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든지 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형제자매들의 기억력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목회자의 영적 상태가 어떠하든 간에, 그가 당신을 붙들고 필사적으로 기도해 주어 병이 나았는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잊어버리고, 아주 사소한 일로 목회자와 선악을 분별하며 걸려 넘어집니다. 그러면 목회자의 선한 점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악한 점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말라기》 3:10-12)

사람이 주님을 믿으려면 반드시 헌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헌금하지 않는 사람은 늘 저주 가운데 살아갑니다. 때로는 돈을 꽉 잡은 것 같지만 손가락 틈새로 다 빠져나가고, 손을 펴보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열심히 돈을 모아 두면 무슨 일이 터져 돈이 싹 사라지고, 또 모으면 또 사라집니다. 그것은 헌금하는 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제가 제게 "목자님, 저는 수입의 90%를 헌금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월급이 얼마입니까?"라고 물었더니 "2,000위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90%를 헌금하면 남은 200위안으로 어떻게 삽니까? 생활비도 안 되는데요!" 그러자 그는 "아, 제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왜 90%를 헌금하려 했을까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왜 90%를 요구하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은 돈을 탐내시는 분이 아니며, 십분의 일만으로도 당신을 시험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십분의 구는 시험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헌금으로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하나님께 드려보면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실험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수많은 실험을 해보았고, 효과가 있는 것은 붙잡고 효과가 없는 것은 버렸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처음 했던 실험은 아무것도 헌금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초신자 시절에는 모르는 척 가만히 있어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제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아니, 이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처음부터 은혜를 주시는가?' 여러분도 분명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나와 함께 믿기 시작한 어떤 사람들은 1%, 2%를 냈지만, 저는 처음부터 10%를 온전히 드렸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대충대충 부실공사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시험해 본 것입니다.

당시 교회의 한 리더가 제게 헌금에 대해 권면했습니다. 저는 그가 부자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 '당신 돈이나 좀 나눠주지, 그러면 내가 덜 쪼들릴 텐데? 나한테 헌금을 가르칠 게 아니라 당신 돈을 내게 주면 내가 바로 부자가 될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이 무슨 이유로 내게 돈을 주겠습니까?

그 후 저는 1년 동안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한 달에 200위안씩 헌금하면 1년이면 2,400위안이고, 2년이라 해도 5,000위안이 채 안 됩니다. '내가 5,000위안을 들여 시험해 보고, 만약 역사하신다면 투자 대비 수익이 얼마나 큰가!' 하고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의 결과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제 월급이 로켓을 탄 것처럼 쑥쑥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이 실험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단순한 실험일 뿐 최종 목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시험해 보고 역사가 일어남을 알았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 보시기에 보배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 최종 목표는 분명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물질의 십분의 일을 바치며 시험해 본 결과,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씨름하지 않고 온전히 제 자신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나니 마음이 얼마나 든든하고 평안한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이것 한번 해봐라!"고 유혹해도 저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몇만 위안을 다단계 판매에 쏟아붓는 것은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며, 우리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무엇이 좋고 나쁜지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헌금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의 목회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중국인이 많습니다." 제가 "몇 명이나 됩니까?" 하고 물으니 "40명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작은 교회에 중국인이 40명이면 꽤 많은 편입니다. 저는 당시 성도가 몇 명 없었기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 40명이 다 예배에 참석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아닙니다, 10명만 참석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럼 나머지 30명은요?"라고 묻자 "설날에 만두 빚을 때만 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만두를 먹으러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예배에 참석하는 10명 중에 헌금하는 사람은 몇 명입니까?"라고 물었더니 "2명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40명이나 된다고 해서 부러웠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첫날부터 모든 성도가 헌금을 드렸으며, 우리 가운데서 헌금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놓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축복을 놓치면 정말 큰일입니다.

설날에 만두 빚을 때나 오는 사람을 온전한 신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우리 교회에서도 통닭이나 오리구이, 소고기 장조림을 대접할 때 사람들이 무리지어 몰려오던 생각이 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들이 축복을 받고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가 되는 길을 결코 가로막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보배와 쓰레기의 분수령입니다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고통스럽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쓰레기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말라기》 3:13-15)

이런 광경을 보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듭니까? 사실 그들이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재앙을 면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며, 재앙을 면치 못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악인이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람들의 안목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오래 살아보면 그들이 행한 대로 하나님의 저주가 반드시 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기업인들이 한때 잘나갈 때는 얼마나 대단해 보였습니까! 걸음걸이마다 위풍당당했고, 파리와 모기 떼 같은 무리가 앞뒤로 호위하며 수조 원의 재산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게 되었을까요? 그 많던 돈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인과응보를 받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멋대로 산 대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치러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기필코 갚게 하십니다! 사천 지방의 말로 "속옷 한 장 건지지 못한다"고 하듯이, 하나님은 반드시 보응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심판받지 않는다 해도 음부에 가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멀리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저렇게 악한 사람이 어떻게 저리도 잘나갈 수 있는가?"라며 함부로 말합니다. 혼란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이런 일 몇 가지만 보면 금세 헷갈려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친히 연출하시고 배치해 두신 것입니다.

넘어지고자 한다면 너무나 쉽게 넘어질 수 있습니다. 잘나가는 사람이 영원히 잘나갈 것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의인과 악인이 당하는 일이 똑같아 보인다고 해서 당황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보배라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생각과 이해를 따라 판단하다 보면 금세 혼란에 빠집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돈도 많고 주님도 안 믿는데, 어떻게 나보다 부자일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 헷갈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대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상에 이런 일들이 나타나게 하신 것은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선악과나무를 보면 그 열매가 얼마나 탐스럽고 아름답습니까? 온몸에 가시가 돋친 두리안보다는 훨씬 보기에 좋았을 것입니다.

선악과의 열매는 아마 눈부시게 빛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나무를 그렇게 아름답게 지으셨을까요? 만약 두리안처럼 냄새가 고약해서 원숭이조차 코를 쥐고 달아날 정도였다면 얼마나 피하기 쉬웠겠습니까? 두리안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냄새는 정말 고약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는 처음 본다. 먹으면 지혜로워지기까지 한다니!"라고 감탄할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도 먹으면 지혜를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지고 싶다면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선악과를 실컷 먹으면 될 것 같지만, 정말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선악과를 그렇게 지으셨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먹겠습니까? 보기에 좋다고 해서 덥석 따먹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고 하나님께 따져 묻지도 마십시오. 당신에게도, 내게도 그럴 자격이 없으며,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주님을 경외합니다. 비록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주님의 역사임을 압니다. 주께서 저를 시험하신다면 제가 이 시험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저는 주님 보시기에 보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 확인함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말라기》 3:16-17)

여러분이 보배라면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끼듯 여러분을 아끼실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존귀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이해하기 힘든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혼란스러운 일을 가지고 "하나님, 왜 이렇습니까?"라며 따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시험하여 걸러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금을 연단하는 불이요, 표백하는 잿물과 같으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거치고도 여전히 굳건히 서 있다면 당신은 보배이며, 하나님은 당신을 아들처럼 대우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왕자와 공주가 되는 것인데, 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천국의 열쇠를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다리 저는 자를 걷게 하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있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며, 하늘의 모든 자원을 끌어다 쓸 수 있습니다. 자원을 겨룬다면 하나님의 자녀만큼 풍성한 자원을 가진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말라기》 3:18)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쪽은 쓰레기, 저쪽은 보배로 나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배들은 주인의 영광에 참여하겠지만, 쓰레기들은 내버려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험상궂은 마귀들을 시켜 쓰레기를 끌어다 저 깊은 곳에 내던지실 텐데, 그 악취가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은 과연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쉽게 시험에 들고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부족하고, 마음속에 치워야 할 쓰레기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말라기 선지자는 이 장을 참으로 명확하게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가 어떤 모습인지를 이제 깨달아야 합니다! 혼란스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이 얼마나 훌륭한 말씀입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주님의 행하심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을 행하시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 되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주님의 반석 위에 굳게 서서 평생 주님만을 바짝 따르고 본받겠습니다. 선악과 열매가 아무리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워 보여도 결코 먹지 않겠습니다! 내게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가 있어도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하겠습니다! 제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워 어떠한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겠습니다. 주 예수님을 힘입어 굳건히 서서 영적인 정상을 향해 힘써 달려가며, 영적인 지각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가겠습니다."

사람의 지각이 열려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역사가 바로 이러합니다. 하나님, 우리 형제자매 모두가 주님 보시기에 보배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가운데 놀라운 역사를 이루사, 주님 눈의 보배처럼 우리를 연단하셔서 순금과 같이 빚어 주옵소서. 우리는 주님 보시기에 참된 보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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