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当我读完《列王纪上》第四章的时候,就太羡慕所罗门了,说实话,我不是羡慕所罗门每天要吃掉三十头牛和一百只羊,而是羡慕他有极大的智慧和聪明。我想告诉大家的是,虽然我没有所罗门的的智慧,也不配讲这个,但我真的有一颗渴慕寻求神的心,就是在建立教会的这件事上,那我可是费了九牛二虎之力在寻求啊!
Q1:老师,为什么以色列三次建国都不到八十年,第一次是七十五年,第二次是七十八年,第三次到现在是七十八年,难道这就是神对以色列的惩罚吗?是因为他们没有照神的旨意行,才惹怒了神吗?
虽然你算的这些我搞不清楚,但我清楚的的是,以色列人惹神发怒这件事那是真的。第一个惹神发怒的就是扫罗王,他做王四十年,最后还是个完蛋玩意,后来撒母耳就膏抹了大卫,接替扫罗做了以色列的王。
因此我们就知道,其实神既不在乎祂的圣殿,也不在乎是这个国还是那个国,神最在乎的就是人的心,如果一个人在很富有的时候,还能欢心乐意地侍奉耶和华他的神,那真的是极大的恩典。
Q2:老师,当我想把工作做好时,就会很在乎,想把人际关系搞好。很多该尽的责任,都没有做好的时候,心就会受影响,人怎么才能看透,怎么做到心胸广大呢?
这事你得从另外一个角度来看,就拿足球运动服员来说吧,还没上场呢,就给自己很大的压力:这个机会很难得,我可得把足球踢好,可得为中国人民争光,更不能对不起我们的十四亿中国人民啊!结果一踢,连世界杯都没入圈,所以,不是你看重了就能干得好,因为这个逻辑是错的。
当你仔细观察那些学霸级的人物时,就会很惊讶的发现,他们竟然活得如此潇洒!我们一定要知道,那些真正会做工的人其实都是很潇洒的。有的人干点活就屁滚尿流的,你说他用功不用功?用功。但他不是用在把事做对上,而是把这事看得太重,结果一干就干错了。
所以,只有心里头平静安稳,才能把事做好。这个逻辑大家建起来了没有?就是我虽然把这事看透了,但还是要很认真的做,这认真不是在一个高压的心理压力下干的,在这种压力下干啥都不行。人际关系也一样,如果你很想和某人把关系处好,最后肯定处不好,为啥?因为你心理压力太大。
我们要在任何环境面前说:小样的,我还整不了你了?不是这样说完就回家睡觉去了,而是要放平心态把问题解决了。就拿查《圣经》来说吧,每次我都很认真地读,但是你问我压力有没有?我不能说完全没有,但它搅扰我那是肯定做不到的。
有一次,我们晚上八点半要查经,都七点半了我还困的不行,稿子上一个字都没有写,也不知道这一章在讲啥,我也没在乎,就趴在桌子上打了个盹,一睁眼都八点十分了,还有二十分钟时间就到了,我看看墙,墙看看我,哎呀妈呀,这可咋办?顿时我静下心来,仅用十五分钟就把稿子写出来!
更让人出乎意料的是,很多人听了我讲的还说:老师,你这次讲得太好了!这是我没有想到的结果。如果我一看,还有二十分钟时间就到了,心里就开始发慌的话,想着:我可得做好。那不就坏事了吗?因为我心里很清楚,不管我做的好不好,神的国一点亏损都没有。听明白了吗?所以我们要常常操练平静安稳的心。因为“得力在乎平静安稳,得救在乎归回安息”。大家要好好琢磨这句话。
Q3:老师,因为你之前讲过神看千年如一日,一日如千年,《创世记》六天等于六千年,七天等于七千年,也就是千禧年。我这是透过AI算出来的,《创世记》里的第一天到现在大概6030年了。我们这个时间段已经过去三十年了,耶稣基督三十三岁升天,现在这个时间段再过三年就三十三年了,6033年前四位数六千,后两位数三十三,代表啥?那您说有没有可能主耶稣基督在2029年左右降临呢?
你这个分析挺有意思,有可能,绝对有可能。但我想说的是,大家千万别被这东西给忽悠了。很多年前,有人就说到两千年时,主耶稣就来了,那个时候在中国有一拨基督徒,他们就带着一群弟兄姐妹到山上去等,直等到花儿都谢了,主耶稣就是没有来。
那这些传道人怎么给弟兄姐妹交代呢?不要说那个时候,就是现在也交代不了。还把他们弄得挺难受的,你说怎么圆这个场?他们一块的弟兄姐妹,以后还怎么相信你讲的那个道?我可不冒这个险。
**那时,两个人在田里,取去一个,撇下一个。两个女人推磨,取去一个,撇下一个。所以,你们要警醒,因为不知道你们的主是哪一天来到。(《马太福音》24:40-42)
《圣经》里没讲要到哪个山包上等着的,有没有?没有。就是告诉每个人,不管在什么时候,我们都要正常生活,该推磨的推磨,该收割的收割,该干啥干啥,听明白了吗?祂在讲干活的要取去一个,而不是讲两个人一同在祷告,取去一个,留下一个。
主耶稣的意思是:你要好好生活,你心里头要警醒。其实,神根本不大在乎你外在做了什么,祂在乎的就是你活着的盼望到底是什么?你心里装着的那个东西到底是什么?不要说到山头等,就是到山洞里等也是很麻烦的。所以,我们活一天,就凭着信心活;活一天,就凭着对神的盼望活。
Q4:老师,我喜欢自己动手干活,一直是被人管着,感觉挺好的,因为我觉得管人太难。别说管人了,就连自己的孩子都没管好,但现在我却很渴慕有一天能管人,能给点具体操练的建议吗?
首先是要学做人,再学做事。你把事能做好,人也能做的挺好,跟人沟通,写汇报都做得不错,你就是个人才。你要知道,这世上其实是很缺人才的,老板一看,觉得你做事挺靠谱,他下边正好有几个实习生需要人管,他就会把这个事交给你来管,这不是水到渠成的事吗?
你到底要想从哪儿具体操练呢?我有一个逻辑,你为什么会管人?是因为你比他厉害,是不是这么回事?所以我认为培训技能特别重要,我在我同工的训练里头,其中有一项就是训练人做培训。如果你不好好抓住培训人的这种技能的培养,你肯定吃大亏了。
为什么?因为管理不是你坐在那块儿指挥人:你干这个,他干那个。这是瞎安排,瞎安排没有用。真正的管理其实都带着培训的成分,之所以这个人愿意跟着你干,因为跟着你干,他的价值能够增加,就这么简单的事儿。如果跟着你做牛做马,人家早就跑到别的地方去了,是不是那么回事儿?
如果这个人跟着你干,一看:哇,你这个人真聪明,真厉害,你将来肯定很了不起,你不但坐在这个位置上,将来也肯定会再上一个位置,你上去了我也跟你上去了,不是吗?你上去了我不是就能坐你这个位置了吗?人都是这么想。
所以说先训练自己做人,再训练自己做事,这就是最根基性的东西。然后训练自己做培训,训练人。你能不能把这个活描述得清清楚楚?别人跟你一起干活,人家干得就很快,很舒服,能理解吗?培训实际上是管理里头一个很重要的基本技能。你想这大学毕业生一出来你招来了以后,如果这个人很聪明,但他缺经验,如果你手里头有经验,就厉害了,你就能把经验传递出去。
Q5:老师,所罗门的智慧,以色列人几千年前就拥有了,但在《新约》世代,以色列人碰见耶稣,好像就显得很自私和愚蠢,这是人心里真的东西吗?
你以为是个以色列人就知道所罗门在讲什么吗?不是。如果他们真的知道所罗门在讲什么,耶稣来了,他们就觉得:哇,耶稣比所罗门厉害多了。他们就不至于把耶稣钉十字架了。他们哪有这智慧,哪有这脑子?他们满脑袋装的全是垃圾,也不知道是心里头脏,还是脑子里脏,如果挖出来一看应该是挺脏的,是不是?
所罗门让人从死里复活了吗?没有。所罗门让瞎子看见,瘸腿走路了吗?没有。他只是玩嘴巴功夫而已,是不是?管管这个,管管那个,出出主意,是不是?耶稣多厉害,祂说的话也比所罗门深。为什么?因为耶稣是神,是道成肉身来到这世上的。不要问以色列人怎么样,你怎么不问问现在的基督徒觉得怎么样?我是觉得不怎么样。所以说人要考察就好了,人要真读明白神的话就好了。这话很透彻,是不是?
你问的问题,几千年前就有了,但是真正能读懂的有几人?《道德经》几千年前就有了,真正能读懂的、照着做的有几人?《圣经》两千年前就有了,是不是?三千五百年前摩西开始写,后来到了使徒保罗他又接着写,那也是将近两千年了。从三千五百年前到两千年前,那有人照着做吗?
我也很诧异,我怎么还能捡个漏?到了咱们这个世代,就现在这个基督教的神学体系,你觉得怎么样?我觉得不怎么样,完全不成体系。那怎么还能轮到我捡个漏?到了这个年代能创立华人命定神学,真的不是我吹牛,我吹那个干什么?我是说真的能够成立、能够有一个完整体系的神学,那不在于是两千年还是三千年的事,而是人读了神的话就去行,这个好使,是不是?人不去行,为什么?因为不信。仅凭考察有什么用?
愿神祝福大家!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열왕기상 4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주제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심히 큰 지혜와 넓은 마음'입니다.
솔로몬이 신하들을 택하다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그의 신하들은 이러하니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시사의 두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요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사령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지방 관장의 두령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제사장이니 왕의 벗이요 아히살은 국내대원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노동 감독관이더라 (열왕기상 4:1-6)
우리 모두는 솔로몬에게 지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관리하는 사람이 되고자 할 때 지혜가 없다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솔로몬이 이 신하들을 택할 때 과연 어떻게 택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신하를 뽑을 때 그가 우둔하면 다루기는 쉬울지 몰라도(사실 우둔하다고 다루기 쉬운 것도 아닙니다), 일을 해내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을 뽑는다면 그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한 기업의 지능지수는 그 기업의 오너, 즉 최고 책임자를 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을 때, 아랫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솔로몬이 척 보면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는지 단번에 알았습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신하들이 일할 줄 모른다면 그들을 어떻게 관리하겠습니까? 솔로몬이 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상하고 영특한 인재들이었습니다.
‘지방 관장의 두령’이라는 직책을 예로 들어 봅시다. 이는 모든 정부 관리를 총괄하는 직책입니다. 그 일이 쉬울까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밑에 있는 관리들보다 지혜와 역량이 부족하면 그들에게 휘둘리고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두령이 속아 넘어가기 시작하면 밑의 사람들도 ‘어라, 속일 수 있겠네?’ 하고 다들 속이기 시작할 것이고, 그러면 온통 난장판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최고 리더에게 지혜가 없으면 이 관장들의 두령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능력 있는 두령을 세웠는데 그가 왕까지 좌지우지하려 든다면 그것도 안 될 일입니다. 또 왕에게 지혜가 없어서 지혜 없는 두령을 세운다면 그 아래 조직 전체가 엉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심히 큰 지혜와 총명, 그리고 넓은 마음을 주셨고, 솔로몬은 영특한 인재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들을 뽑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사람을 뽑았을까요? 첫째, 반드시 일을 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일을 할 줄 모른다면 아무리 청렴한 관리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청렴할지는 몰라도 역량의 무게감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청렴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되며, 일할 줄 모르는 것을 결코 장점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따라서 이 나라가 잘 다스려질 수 있었던 것은 솔로몬에게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고, 도량이 있어서 그 영특한 신하들을 능히 다스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심히 큰 지혜와 총명, 그리고 넓은 마음이 지닌 중요한 의미입니다. 이 장은 참으로 훌륭하며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최고 관리자에게 하늘로부터 임한 지혜와 총명이 있고, 적재적소에 맞는 신하들을 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 어떤 곳의 관리가 극도로 혼란하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어느 호텔에 들어갔는데 엉망진창이라면, 그 문제는 직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위에 있는 관리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만약 교회 안에 파벌 싸움과 다툼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교회의 리더에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많은 프로젝트가 추진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최고 책임자의 몫입니다. 최고 책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그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은 제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최고 지도자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구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지혜를 주셨습니까? 그 영특한 신하들을 통솔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떤 일들은 참 묘한 구석이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에게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떤 학설이 있었는데, 그 관점이 완전히 맞는지 아닌지는 깊이 연구해보지 않았지만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나라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를 거쳐 가경제에 이르렀을 때, 가경제는 화신(和珅)을 처형했습니다. 그런데 화신을 죽이고 나자 일 잘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화신은 비록 탐욕스러웠지만 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처리했고, 역사 기록에도 그의 업무 수행 능력은 대단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니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참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탐욕이 없고 매우 청렴하지만, 너무 우둔하여 일할 줄 모릅니다. 그러면 국가 경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솔로몬이 택한 이 신하들이 얼마나 청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분명히 일을 똑 부러지게 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을 해내는 능력, 이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신하가 국가의 상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하 위에 있는 왕이 그 국가의 높이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의 지혜, 기업의 최고 경영자의 지혜, 교회의 최고 리더의 지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들을 보면 참 기이합니다.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은 자신이 세운 교회에 분쟁이 너무 많고 하나 되지 못한다고 저에게 한참을 불평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나에게 이런 불평을 하시다니, 그 문제는 바로 목사님 자신에게 있습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총명, 그리고 그 뒤에 따르는 ‘넓은 마음’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사실 제 마음도 솔로몬만큼 넓지는 못하기에 저는 솔로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보통 사람들보다는 넓습니다. 왜 제 마음이 보통 사람들보다 넓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제 마음이 충분히 넓지 않았다면 온갖 비난과 공격에 벌집처럼 쑤셔지지 않았겠습니까?
넓은 마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이 넓지 않으면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는 생사와 이 세상의 하찮은 일들을 이미 초연하게 꿰뚫어 보았습니다. 때로 제가 여러분에게 “나 같은 사람은 5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라고 너스레를 떨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이런 일들을 진정으로 꿰뚫어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때로는 좁은 시야에 갇힐 때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금 그 한계를 뚫고 넓게 보려고 애씁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넓은 마음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마음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는 각자의 훈련과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소갈머리가 좁으면 지혜를 담을 수 없습니다. 눈앞의 지극히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만 바라보다가 작은 일 하나에 욱하고 성질을 부린다면, 그것은 정말 고쳐야 합니다. 고치지 않으면 지혜를 얻기 어렵습니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심히 큰 지혜와 총명과 넓은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신하를 뽑을 때도 마음이 넓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밑에 있는 신하들이 관리하는 일들을 보십시오. 허점과 실수가 많겠습니까, 적겠습니까? 많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일일이 다 간섭하겠습니까? 도지사가 된다고 해서 모든 세세한 것을 다 들여다볼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팬데믹 시기에 도지사가 바이러스 연구소나 군인 체육대회 같은 세세한 곳까지 일일이 다 챙겨볼 수 있었겠습니까?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마음이 크지 않으면 그런 지혜가 생기지 않습니다. 마음이 커야 대국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서로 물고 뜯는 식의 파벌 싸움이 없습니다. 그것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지혜와 총명, 그리고 넓은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사람들을 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제 자리에 앉아보시면 마음이 넓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이 열두 관장을 세워 왕과 왕실의 양식을 공급하게 하다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 위에 열두 지방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되 각기 일 년에 한 달씩 양식을 공급하였으니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브라임 산지에는 벤훌이요 마가스와 사알빔과 벧세메스와 엘론벧하난에는 벤데겔이요 아룹봇에는 벤헤셋이니 소고와 헤벨 온 땅을 그가 주관하였으며 돌 높은 땅 온 지방에는 벤아비나답이니 그는 솔로몬의 딸 다밧을 아내로 삼았으며 다아낙과 므깃도와 이스르엘 아래 사르단가에 있는 벧스안 온 땅은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았으니 벧스안에서부터 아벨므홀라에 이르고 요그느암 바깥까지 미쳤으며 길르앗 라못에는 벤게벨이니 그는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의 아들 야일의 모든 마을을 주관하였고 또 바산 아르곱 땅의 성벽과 놋빗장이 있는 육십 개의 큰 성읍을 주관하였으며 마하나임에는 잇도의 아들 아히나답이요 납달리에는 아히마아스니 그는 솔로몬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삼았으며 아셀과 아롯에는 후새의 아들 바아나요 잇사갈에는 파루아의 아들 여호사밧이요 베냐민에는 엘라의 아들 시므이요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나라였던 길르앗 땅에는 우리의 아들 게벨이니 그 땅에서는 그 한 사람만 지방 관장이 되었더라 (열왕기상 4:7-19)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는데, 솔로몬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솔로몬은 일 년 내내 왕실의 필요를 공급받았는데, 1월에는 한 사람이, 2월에는 다른 사람이 공급하며 단 하루도 빠짐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소비한 음식의 양은 엄청났습니다. 솔로몬의 하루 음식물은 가는 밀가루가 삼십 고르요, 굵은 밀가루가 육십 고르요, 살진 소가 열 마리요, 매일 소 열 마리를 먹은 것입니다! 양이 백 마리이며,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어떻게 이 많은 것을 다 먹었겠습니까? 그가 먹으면 몇 입이나 먹겠습니까? 매일 이런 음식들을 혼자서 얼마나 먹을 수 있겠습니까? 다 먹지 못합니다. 손님들을 대접하는 자리가 그만큼 많았던 것입니다. 이 열두 관장이 매달 거르지 않고 양식을 공급했습니다. 30일이면 양 삼천 마리요, 소 삼백 마리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양입니까?
트럼프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성대한 연회가 베풀어지자 미국인들이 그 엄청난 광경에 놀라워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규모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남아시아의 작은 왕들이 황제를 알현하러 중국에 왔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왕궁은 아주 작습니다. 그러나 천안문에 들어서는 순간 압도당합니다. 단문(端門)까지의 거리가 까마득하여 군대를 훈련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오문(午門)을 지나 태화전으로 들어서면 그 웅장함에 넋을 잃고 맙니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인민대회당에 들어설 때도 그 거대한 규모와 위엄에 감탄하곤 합니다.
솔로몬을 두고 그가 매우 검소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는 검소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의 비범함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는 통 크게 먹고 통 크게 베풀었습니다. 조회가 열릴 때마다 연회가 베풀어졌고, 외국 사절이 올 때마다 성대한 주연이 열렸으며, 신하들과 회의를 할 때도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매머드급 스케일이었습니다. 여러분, 도량이 크지 않으면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한다면 소갈머리가 좁아서는 결코 큰일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검소한 것이 미덕일까요, 아니면 이런 통 큰 대범함이 미덕일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외국 사절이 찾아왔는데 방 세 개짜리 좁은 아파트로 안내해서 식사할 자리조차 마땅치 않다면 되겠습니까? 대범하고 당당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쩨쩨하고 인색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쩨쩨하면 큰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양 백 마리, 소 열 마리는 고사하고, 양털 한 올, 닭털 하나까지 따지며 아까워하는 속 좁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것을 두고 ‘사소한 일에 얽매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실의 음식을 전담하여 관리할 열두 관장을 두었습니다. 후궁이 300명이고 각 후궁마다 시종이 3명씩 붙는다면 총 4명씩 해서 1,200명입니다. 1,200명이 식사하는 자리가 얼마나 거대하겠습니까?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문제 삼으셨습니까?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솔로몬의 마음보다 훨씬 더 크시며, 하나님의 스케일은 솔로몬보다 훨씬 더 웅장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스케일과 위엄이 없이 어떻게 큰일을 행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씀씀이를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인색하고 쩨쩨한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솔로몬이 열두 관장을 세웠을 때, 관장들이 ‘일 년에 한 달씩이나 왕실에 이렇게 많은 것을 바쳐야 하다니, 이걸 어디서 다 구한단 말인가?’ 하며 괴로워했을까요? 자신이 다스리는 땅에서 그 정도도 조달해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관장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지혜와 총명, 그리고 넓은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옹졸한 사람은 매사에 인색해지기 마련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입니다. 다윗이 이처럼 웅장하게 베풀었습니까?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윗도 이 부분에서는 솔로몬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사울 왕은 얼마나 검소했습니까? 사울 왕은 다윗과 달리 매우 검소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지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열두 관장이 그 정도의 물량도 조달하지 못한다면 어찌 관장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솔로몬이 매관매직을 한 것 아닌가? 뇌물을 받고 착복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의 그릇이 작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마음이 좁으면 결국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호방하고 대범한 기개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대장부다운 대범함과 호방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 좁습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제 사무실에 와서 “이 책 좋네요” 하더니 그냥 가져가 버렸습니다. 제가 돈 주고 산 책인데, 좋다는 말 한마디에 그냥 들고 가버린 것입니다. 마음이 넓지 못하면 ‘가져가려면 다 가져가라’는 태도를 가질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와 가까이 지내시면서 솔직히 제 마음이 크다고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마음이 넓지 않으면 남을 축복할 수도 없고, 축복을 담아낼 수도 없습니다. 열두 관장 역시 마음의 그릇이 커야 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오늘 우리는 마음의 도량을 넓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도량이 넓어져야 지혜와 총명이 생기고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소한 일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면 그 그릇의 크기를 알 수 있습니다. 열두 관장은커녕 작은 직책 하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재물이 넘쳐나므로 인색하고 쩨쩨하게 굴 필요가 없습니다.
솔로몬 혼자서 얼마나 먹었겠습니까? 그 모든 것은 왕실의 가족들과 신하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나라의 국빈들을 대접하는 국연(國宴)에 쓰였습니다. 지혜가 있어야 신하를 바르게 뽑을 수 있고, 지혜가 있어야 직책을 나누어 위임할 수 있으며, 관장들은 일 년에 한 달씩 왕실을 섬기는 작은 대가를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변 나라들이 솔로몬에게 조공을 바치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솔로몬이 그 강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그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겼더라 (열왕기상 4:20-21)
주변 나라들이 왜 조공을 바쳤을까요? 조공을 바치지 않으면 혼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조공을 바치지 않는 것은 온당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주변 나라들은 해결하기 힘든 분쟁이 생길 때마다 솔로몬을 찾아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왜 솔로몬을 찾았을까요? 그에게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작은 나라들끼리 허구한 날 싸움을 벌일 때, 솔로몬은 이스라엘 내부의 소소한 시비거리들—누구의 아이인가 하는 창기들의 다툼 같은 송사—을 명쾌하게 판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 간의 복잡한 국제 문제들까지도 지혜롭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바로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입니다. 지혜와 총명이 있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두 나라가 평화 조약을 맺고 ‘당분간 전쟁을 멈추고 각자 평안히 생업에 종사하자. 서로 침략하지 말자’라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중심을 잡고 중재하자 모든 문제가 평정되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자 모든 나라가 “와, 솔로몬은 참으로 대단하다!”라고 감탄했습니다. 《서유기》에서 온갖 요괴들이 제천대성 손오공을 왕으로 모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강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가 솔로몬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 조공을 바치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솔로몬이 도와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참으로 탁월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지혜는 군사 한 명 피 흘리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이었으며, 다윗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나라들이 조공을 바쳤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군사를 부리는 지혜도 뛰어났지만, 무력이 아닌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성경에 그 세세한 내막이 다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다 기록했다면 성경이 열 권도 넘어서 우리가 다 읽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고 평안히 살다
솔로몬이 어떻게 이 지혜를 얻었는지 아십니까? 그에게는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진심으로 잘 다스리고자 하는 순전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호의호식하고 장수하며 원수들을 멸망시키기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이스라엘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한 지혜를 구했습니다. 왕이 되었으나 백성을 다스릴 줄 몰랐기에 지혜를 구했던 것입니다. 그가 왕이 된 것은 성전을 건축하려는 마음 때문이었고, 왕이 된 후 백성을 다스리는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지혜를 구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후, 뛰어난 지혜를 가진 왕답게 열두 관장을 훌륭하게 세웠고, 그들은 모두 유능하게 일했습니다.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고, 산업 단지를 조성하며 나라를 번영시켰습니다. 솔로몬은 비범한 지도자였고, 그가 발탁한 신하들 또한 비범한 인재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국가 경제가 어찌 번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온 나라가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평안히 거하며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습니다. 어디서 이토록 뛰어난 왕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한 나라의 백성이 평안히 거하며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은 거저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지혜의 열매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지혜가 으뜸임을 알고 반드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고 리더로 세우십니다. 리더가 되면 관리해야 하고, 관리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지혜를 얻으면 열왕기상 4장과 같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평안의 때가 임하게 됩니다.
솔로몬의 명성이 널리 퍼져 열방이 그의 지혜를 들으러 사람을 보내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지만 소식은 오늘날보다 더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스라엘에 솔로몬이라는 왕이 있는데, 그에게는 하늘로부터 임한 지혜가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졌고, 주변의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기 위해 앞다투어 이스라엘로 찾아왔습니다. 3천 년 전, 중국의 상나라나 주나라 시절에까지 그 소식이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솔로몬의 명성은 온 세상에 널리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혜를 귀하게 여기기에 사람을 보내어 지혜를 배우고자 합니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 일행이 서천 극락세계로 불경을 가지러 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지혜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경전을 구하려 했던 것은 그것이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솔로몬에게 지혜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았고, 열방의 왕들이 그의 지혜를 들으려 사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솔로몬은 자신의 잠언과 지혜의 말씀들을 기록하여 인쇄하듯 찍어내는 공방을 두고, 찾아온 이들에게 두루마리에 담아 전해주어 가져가게 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명성은 온 세상에 자자했습니다. 사람에게 지혜가 있으면 그 지혜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지 않습니다. 돈은 많으나 지식과 지혜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재물이야 너도 많고 나도 많을 수 있으며, 이곳에서 네가 최고 부자라면 저곳에서는 내가 최고 부자일 수 있으니 그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은 지혜입니다.
각국의 왕들이 직접 오기는 어려웠기에 사절을 보냈지만, 에티오피아의 시바 여왕은 직접 신하들을 이끌고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찾아왔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솔로몬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잉태하여 에티오피아로 돌아갔고, 지혜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후손을 낳았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솔로몬은 그녀에게 언약궤의 모형을 선물하여 오늘날까지 에티오피아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명성은 실로 멀리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솔로몬이 잠언 삼천 개와 시 천다섯 편을 짓다
솔로몬은 참으로 탁월하여 많은 시를 짓고 수많은 잠언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잠언》이 바로 솔로몬이 기록한 책입니다. 전해지는 잠언이 정확히 삼천 개에 달하는지는 다 세어보지 않았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은 글과 책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노자의 《도덕경》, 공자의 사서오경, 상앙의 《상군서》, 한비자의 《한비자》처럼 뛰어난 인물들은 모두 저작을 남겼습니다. 솔로몬 역시 잠언 3천 개와 시 1,005편을 지었으며,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벽에 자라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모든 식물을 논하고,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해서도 논했습니다.
솔로몬은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고, 공중의 새와 땅 위의 짐승과 바다의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해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솔로몬이 기록한 《잠언》과 《전도서》를 읽어보면 사람의 마음을 깊이 꿰뚫어 보고 인생의 본질을 명쾌하게 파헤쳤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지혜는 생물학과 물리학 등 온갖 분야를 망라했습니다.
지혜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오늘날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전도서》와 《잠언》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이번 주일에는 솔로몬이 기록한 《전도서》를 설교할 예정입니다. 《전도서》는 사람의 내면을 너무나 깊이 파헤쳤고, 인생의 참된 의미를 명쾌하게 밝혀낸 놀라운 책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측량할 수 없는 지혜와 총명과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참으로 사모하는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나에게 이러한 지혜와 총명을 주실까? 언제 내 마음의 지경을 솔로몬처럼 넓혀 주실까?’
물론 저에게 소 열 마리나 양 백 마리가 매일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살진 소 열 마리와 초장의 소 스무 마리, 도합 서른 마리의 소라니 하루 양식이 실로 엄청납니다! 그러나 제가 진정으로 사모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혜이며, 꿈에서라도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장차 관리하고 다스리는 사역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든 원치 않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다스리고 관리하는 자리에 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이 청지기로서 관리하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아십니까? 그러나 사람에게 지혜와 총명과 넓은 마음이 없다면 다스리는 사역을 감당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훈련하는 지체들을 향해 품은 원대한 꿈이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장차 솔로몬을 본받아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기를 열망하고,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며, 지혜와 총명과 넓은 마음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마음의 그릇을 넓혀야 합니다. 좁쌀만 한 옹졸한 마음을 가지고는 큰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나서 받은 교훈을 다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듣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소 서른 마리의 재물에만 눈독을 들이고 계십니까? ‘하루에 소 서른 마리면 돈이 얼마인가’ 하며 물질에만 정신이 팔려 자신의 좁은 지혜를 돌아보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그 엄청난 번영과 풍요가 어디서 왔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총명, 그리고 넓은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사람을 품고 일을 감당하는 청지기로서의 다스림을 사모하십시오. 하늘로부터 임하는 지혜와 총명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는 법을 배워 마침내 사람과 일을 능히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