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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무엘하 21장 - 죄를 제거하니 하나님이 국민의 간구를 들으셨다

2023-10-20 52,499 撒母耳记下 撒母耳记下21章 撒母耳记下第二十一章 神不听人祷告 违背誓言 了解属灵原则 寻求神

相关经文

撒母耳记下21章-扫罗的后代被处死
  • 1 大卫年间有饥荒,一连三年,大卫就求问耶和华。耶和华说:“这饥荒是因扫罗和他流人血之家杀死基遍人。”
  • 2 原来这基遍人不是以色列人,乃是亚摩利人中所剩的;以色列人曾向他们起誓,不杀灭他们,扫罗却为以色列人和犹大人发热心,想要杀灭他们。大卫王召了他们来,
  • 3 问他们说:“我当为你们怎样行呢?可用什么赎这罪,使你们为耶和华的产业祝福呢?”
  • 4 基遍人回答说:“我们和扫罗与他家的事并不关乎金银,也不要因我们的缘故杀一个以色列人。”大卫说:“你们怎样说,我就为你们怎样行。”
  • 5 他们对王说:“那从前谋害我们、要灭我们、使我们不得再住以色列境内的人,
  • 6 现在愿将他的子孙七人交给我们,我们好在耶和华面前,将他们悬挂在耶和华拣选扫罗的基比亚。”王说:“我必交给你们。”
  • 7 王因为曾与扫罗的儿子约拿单指着耶和华起誓结盟,就爱惜扫罗的孙子、约拿单的儿子米非波设,不交出来,
  • 8 却把爱雅的女儿利斯巴给扫罗所生的两个儿子亚摩尼、米非波设,和扫罗女儿米甲的姐姐给米何拉人巴西莱儿子亚得列所生的五个儿子
  • 9 交在基遍人的手里。基遍人就把他们,在耶和华面前,悬挂在山上,这七人就一同死亡。被杀的时候正是收割的日子,就是动手割大麦的时候。
  • 10 爱雅的女儿利斯巴用麻布在磐石上搭棚,从动手收割的时候直到天降雨在尸身上的时候,日间不容空中的雀鸟落在尸身上,夜间不让田野的走兽前来糟践。
  • 11 有人将扫罗的妃嫔爱雅女儿利斯巴所行的这事告诉大卫。
  • 12 大卫就去,从基列·雅比人那里将扫罗和他儿子约拿单的骸骨搬了来(是因非利士人从前在基利波杀扫罗,将尸身悬挂在伯·珊的街市上,基列·雅比人把尸身偷了去。)
  • 13 大卫将扫罗和他儿子约拿单的骸骨从那里搬了来,又收殓被悬挂七人的骸骨,
  • 14 将扫罗和他儿子约拿单的骸骨葬在便雅悯的洗拉,在扫罗父亲基士的坟墓里;众人行了王所吩咐的。此后 神垂听国民所求的。
  • 15 非利士人与以色列人打仗;大卫带领仆人下去,与非利士人接战,大卫就疲乏了。
  • 16 伟人的一个儿子以实·比诺要杀大卫;他的铜枪重三百舍客勒,又佩着新刀。
  • 17 但洗鲁雅的儿子亚比筛帮助大卫,攻打非利士人,将他杀死。当日,跟随大卫的人向大卫起誓说:“以后你不可再与我们一同出战,恐怕熄灭以色列的灯。”
  • 18 后来,以色列人在歌伯与非利士人打仗,户沙人西比该杀了伟人的一个儿子撒弗。
  • 19 又在歌伯与非利士人打仗,伯利恒人雅雷俄珥金的儿子伊勒哈难杀了迦特人歌利亚。这人的枪杆粗如织布的机轴。
  • 20 又在迦特打仗,那里有一个身量高大的人,手脚都是六指,共有二十四个指头;他也是伟人的儿子。
  • 21 这人向以色列人骂阵,大卫的哥哥示米亚的儿子约拿单就杀了他。
  • 22 这四个人是迦特伟人的儿子,都死在大卫和他仆人的手下。

《答疑解惑》

서론

우리가 《사무엘하》 21장을 함께 나누게 된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왜일까요? 이 장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며, 하나님께서 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상황은 매우 흔하게 일어납니다. 저는 이번 장의 주제를 “죄를 제거하면, 하나님께서 백성의 간구를 들으신다”로 정하고자 합니다. 본문에서도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 후에야’란 무슨 뜻일까요? 바로 죄를 제거한 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지 않는 문제에 대해, 저는 오래전부터 깊은 관심을 두고 연구해 왔습니다. 과거 현지 교회에 있을 때, 제가 가장 많이 본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일은 저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경공부를 하면서 저는 확실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기도를 듣기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하나님께 “왜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십니까?”라고 묻는 일이 드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한 젊은 청년이 갑작스러운 열정으로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암에 걸렸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의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 약을 써보겠습니다. 환자의 60%에게 효과가 있는 약입니다.” 그러나 투약 후에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하필 제가 그 안 듣는 40%에 속합니까?”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왜 자신이 그 40%에 속했는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아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좀 비싸긴 하지만 90%의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약이 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을 쓰고 나서도 그는 효과가 없는 10%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또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왜 제가 그 10%입니까?” 이 이야기는 한 그리스도인 친구가 저에게 해 준 것인데, 듣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왜 이토록 어리석을까요? 하나님께 “왜 그렇습니까?”라고 묻지 말고, 자신에게 먼저 “왜 그럴까?”를 물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는 데에도 분명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은 수천수만 가지로 다양하지만, 이번 장에서 다루는 원인은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비교적 잘 들어주시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죄와 사람 안에 있는 악습을 매우 단호하게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는 ‘따지기 좋아하는 습관(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는 태도)’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사람을, 내일은 저 사람을 섬기며 그 따지기 좋아하는 악습을 철저히 꺾어버렸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미련합니다. 오프라인 교회에서 암에 걸리는 목사님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 공동체에 온 지 몇 년 된 한 자매님이 계셨는데, 제가 “처음에 왜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으로 오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자매님이 대답하기를, “목사님, 모르셔서 그래요. 제가 예전에 있던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이 암으로 돌아가신 뒤, 사람들이 저를 사역자로 추대하려고 했지만 저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후 한 젊은 청년이 사역자가 되었는데, 그 청년도 위출혈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어요! 그러자 교인들이 또 저를 사역자로 세우려 하길래, 너무 무서워서 이곳으로 도망쳐 온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사람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는데, 다른 사람은 다 틀려도 자기 자신만큼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핑곗거리를 찾지 못하면 달 탓, 별 탓, 해 탓을 하며, 자기 자신은 마치 절대 진리인 양 행동합니다. 이런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기도를 듣지 않으실까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생각대로 행하기 때문이며, 그중 대표적인 죄가 바로 ‘맹세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왜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아시겠습니까? 사람은 맹세해 놓고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맹세를 어기고 나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것은 구약 이야기 아닙니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신약의 하나님과 구약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십니다. 맹세하는 일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헛된 맹세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많아 온 세상 교회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음을 알아야 하며, 결코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어찌하여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재앙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서 실수하신 것도 아니고 마귀가 실수한 것도 아닙니다. 바로 본인 자신이 잘못한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그런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상태를 깊이 들여다보았기 때문입니다.

대만에서 온 한 여성이 싱가포르로 와서 금융 투자 관리 일을 했습니다. 그녀는 한 고객을 위해 20가지 주식과 투자처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주었는데, 그중 19개 종목에서 수익이 났고 단 1개에서만 손실이 났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큰 수익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객은 그녀를 고소했습니다. 손실 난 부분은 그녀가 물어내야 하고, 번 돈은 온전히 고객의 몫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제 앞에서 눈물 콧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듣는 저도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또 대만 집에 있던 일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녀의 안방 침실 바로 윗집이 리모델링을 하면서 그 자리에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렸고, 윗집이 무소음 변기를 쓰지 않아 소음이 심각했습니다. 윗집에서 물을 내릴 때마다 아래에서 잠을 자던 그녀는 극심한 불쾌감과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윗집을 법원에 고소했지만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침실 위에 화장실이 들어서는 기막힌 일을 누가 겪겠습니까? 유독 그녀에게만 그런 불운과 골치 아픈 일들이 계속 일어난 것입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할 때 제가 기도를 인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그녀가 하나님의 십일조와 헌금을 떼먹었다”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혹시 하나님의 헌금을 가로채거나 떼먹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대뜸 제게 화를 냈습니다. 제가 “당신이 하도 불행한 일만 겪기에 물어본 것뿐인데 왜 화를 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헌금을 가난한 자들과 거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진짜 거지가 어디 있습니까? 대부분 사기꾼 아닙니까?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그런 사람들에게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얼마나 주었는지도 알 수 없으며, 그것은 결코 헌금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떻게 재앙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몇 번 사역을 해주었지만, 결국 그녀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의 죄를 끊어내려 했으나, 그녀 자신이 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결국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고, 끝까지 고난 가운데 머물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죄를 제거하면, 하나님께서 백성의 간구를 들으신다”라는 이 주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여러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데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으며, 우리 공동체 안에서 고난을 겪고 있다면 영적 원리를 거스르지 않았는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1)

어떤 아이가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투렛 증후군(틱 장애) 환자가 목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근육을 떠는 모습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아이 자신에게 똑같은 병이 찾아왔습니다. 이것이 재앙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남을 비웃고 조롱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을 비판하면 반드시 자기도 비판을 받게 됩니다. 많은 자매들이 어머니를 싫어하며, ‘딸을 낳는 것은 연적(정적)을 낳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봅니다. 짧은 영상들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 어머니를 미워하다 보면, 결국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미워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똑같이 변해갑니다. 그 이유는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면 반드시 그대로 돌려받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결코 남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마십시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과응보 아닙니까?”라고 하겠지만, 인과 법칙은 불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정확하게 작동하는 세상의 영적 자연법칙입니다.

맹세를 어기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지 않습니다

맹세를 어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시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다만 그 맹세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를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3년 동안 기근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3년 동안 아무도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첫날부터 사람들은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들으시지 않았고, 결국 3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윗은 왕궁에 있었으니 굶지 않았겠지만, 3년의 자연재해 속에서 백성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기도를 듣지 않으셨을까요? 바로 맹세를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 맹세는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 묻자,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이 기근은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을 죽였을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억울하여 날마다 사울을 저주하고, 하나님께 신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사울이 우리 동족을 수없이 학살했습니다!” 마치 폴 포트가 캄보디아인 수백만 명을 학살한 것과 같은 만행이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사울은 왜 그들을 죽였을까요? 과거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속여 언약을 맺었을 때, 이스라엘은 그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즉, 맹세로 세운 언약은 결코 깨뜨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기브온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섞여 사는 것이 꼴 보기 싫다’는 대중적 여론(민심)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때로 매우 편협하여 다른 민족은 다 부정하고 오직 자기들만 깨끗하다고 여겼습니다. 겉으로는 위생 습관이 좋았을지 몰라도 마음의 생각은 더러웠습니다. 사울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브온 사람들을 싫어했고, 그래서 그들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사울은 왜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했을까요? 백성들의 여론에 영합하고, 민심을 얻기 위해 열심을 냈던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누구에게 피해를 주었습니까?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며 통쾌해했겠지만, 그것이 저주를 불러오며, 맹세를 저버린 무서운 죄라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그러므로 대중의 뜻(민심)을 따르는 것은 종종 비극을 낳습니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어떤 분위기에 휩쓸려 와글와글 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면, 분별력을 잃고 어리석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또 다른 히틀러가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독일은 다시 과거로 돌아갈 것입니다. 당시 독일 백성들은 히틀러를 숭배하며 신처럼 떠받들었고, 결국 히틀러는 독일을 2차 세계대전의 파멸로 몰고 갔습니다. 이처럼 군중심리는 어느 시대에나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대중의 뜻(민심)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사울 왕에게는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백성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는 민심을 따르려다 수많은 기브온 사람을 학살했고, 기브온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께 공의를 세워달라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원해 주시기까지 수년 동안 그들은 끊임없이 탄원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맹세를 해놓고 그 맹세를 어겨 상대방이 날마다 여러분을 원망하며 부르짖는다면, 여러분의 기도는 응답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맹세를 어기는 것과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합니다. 삶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 말수를 줄이고 엄격해야 합니다. 합당하지 못한 말은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시기 때문이며, 그 원인을 깊이 찾아보아야 합니다! 고난의 날에는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3년 동안 기근이 지속되자 어떤 이들은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사울이 저지른 일인데!”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울이 왜 그런 일을 저질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여론에 영합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백성도 함께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굶어 죽은 자들에 대해 하나님이 실수하신 것도 마귀가 실수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잘못한 것입니다. 이 논리는 화인 사명 신학의 중요한 영적 통찰입니다. 이제부터 주의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면, 반드시 자신을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계시해 주십니다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사무엘하 21:1)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납니까?”라고 소리치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불평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처사는 절대적으로 공평합니다. 다시 말해, 그 일이 자신이 직접 저지른 일이 아닐지라도 조상과 분명한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찾고 구할 때 하나님과 따지려 들었습니까? “하나님! 이 사람들을 죽인 것은 사울인데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깊이 생각했습니다. 당시 사울은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완전히 멸절시키려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할 때 비로소 이 계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사무엘하 21:2)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그릇된 열심으로 기브온 사람들을 멸하려 했던 사실을 다윗에게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기근의 원인은 과거의 맹세를 어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맹세를 저버리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이에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찾아가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지 않으신다거나 알려주기 싫어하신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문제의 근원을 너무나도 알려주고 싶어 하십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들으려 하느냐입니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듣지 못하는데, 사람이 말해준들 알아듣겠습니까?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사무엘하 21:3)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상황은 너무나 많습니다. 과거 제가 헌신했던 교회에서도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게 무슨 교회인가? 이 교회는 뭔가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응답을 받으려면 반드시 죄를 제거해야 합니다.

죄를 제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자신이 충분히 선하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설령 자신이 옳다 하더라도 윗세대가 온전치 못했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도 악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러분보다 더 악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완악했을지라도 세상 전체를 놓고 보면 가장 나은 편에 속했습니다. 세상에는 그들보다 훨씬 더 악한 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스라엘 사람의 자리에 있었다면 그들보다 나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있으며, 잘 지키든 못 지키든 여전히 그것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법을 어떻게 지켜왔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홍수가 났을 때 어떤 집안에서 키우던 소가 온 가족을 태우고 나와 익사를 면하게 해주었습니다. 홍수가 끝난 후 그 가족은 다시는 소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2대에 이르자 아무 거리낌 없이 소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맹세가 대수냐? 그냥 먹자!”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이며,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죄를 제거할 수 있을까요?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은 반드시 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맹세를 해놓고 잊어버리지만, 영적 세계와 악한 영의 세계에서도 똑같은 영적 원리가 작동합니다.

한번은 제가 축사 사역을 할 때 귀신이 드러나 제게 말했습니다. “너의 넷째 외삼촌 이야기를 아느냐?” 제게 외사촌 삼촌이 한 분 계셨기에 안다고 했습니다. 귀신이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자(그 옛날 시절에 차에 치여 죽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귀신은 자기가 그를 죽였다고 했습니다. 왜 죽였는지 아느냐고 묻더니, 그의 조상 중 한 여인이 왕의 후궁으로 들어갔을 때(어느 왕조인지는 모르겠으나 황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가족이 어떻게 하겠다고 맹세를 해놓고 그 서원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그 집안을 치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씻어내야만 합니다.

귀신은 또 제게 “외숙모에 대해 아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외숙모는 젊은 나이에도 늘 목에서 천식으로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하셨고, 결국 6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귀신은 그 천식 증세도 모두 자기가 일으킨 짓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왜 귀신의 말을 듣느냐?”라고 묻겠지만, 영적 실상을 들여다보면 실제로 그렇게 역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은 사람의 허물과 불의를 철저하게 저울질하여 옭아맵니다. 저울눈을 속여 파는 것이 다 저주가 되듯이, 죄가 있으면 귀신이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기브온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되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꾀한 사람의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 (사무엘하 21:4-6)

죄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어떻게 해야 속죄할 수 있습니까? 기브온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사울의 집안사람 일곱을 우리에게 넘겨주어, 그들이 피 흘려 대가를 치르게 하소서.” 기브온 사람들은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울의 집안에는 남은 사람이 몇 없었기에 일곱 명을 채우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일곱 명을 찾아내어 하나님 앞에 속죄 제물로 내어놓음으로써 그 죄를 씻고,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위해 복을 빌게 하려 한 것입니다.

그전까지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날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며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 동족을 이렇게 학살했습니까?” 당시 수십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면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위해 헛된 열심을 냈던 것에 대해, 오직 사울의 집안사람 일곱 명만을 요구했습니다.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사무엘하 21:1)

이스라엘 온 백성은 사울 집안의 일곱 사람이 피를 흘림으로써 마침내 죄를 제거받았습니다. 이 장 전체의 이야기는 매우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랜 옛날 이스라엘과 기브온 사이에 맺은 맹세가 사울 시대에 깨어졌고, 그 결과 다윗 시대에 이르러 3년 기근이라는 재앙으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면 기근은 4년, 5년, 7년, 8년, 9년으로 이어져 결국 완전히 망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다윗이 하나님을 찾고 구했기에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셨고, 다윗은 사울의 자손 일곱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주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한 맹세를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사무엘하 21:7)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 맹세했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살려두고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다윗이 므비보셋을 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한 가지 죄를 속죄하려다 또 다른 맹세를 어기는 죄를 짓게 되어, 맹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해결 불능의 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맹세의 올무에 얽매이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섯 번째로 나눌 내용은 다윗이 요나단에게 한 맹세를 기억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맹세의 엄중함을 명확히 알았기에 한번 맹세한 것은 철저히 지켰습니다. 이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닌 엄중한 영적 원리입니다.

그리하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다윗이 한쪽의 맹세를 풀기 위해 다른 맹세를 깨뜨렸다면 더 큰 재앙이 닥쳤을 것이며, 기근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과거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맺었던 그 맹세를, 다윗은 왕이 된 지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잊지 않았습니다.

왕궁에서 기름진 것을 먹고 누리며 솔로몬이 자라나는 동안에도, 자신이 한 맹세를 기억하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맹세를 어기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맹세해 놓고 지키지 못해 화를 자초하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는 재앙들 중에는 맹세를 어긴 죄와 피 흘린 죄와 관련된 것들이 많으며, 이는 매우 치명적입니다.

리스바와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했습니다

리스바는 누구입니까? 사울의 첩이었던 아야의 딸입니다. 그녀가 행한 일은 매우 특별합니다.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바위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의 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사무엘하 21:10)

리스바라는 여인은 참으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사람이 이미 죽었는데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에게도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 존엄은 죽은 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가 행한 일이 다윗에게 알려지매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가져가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블레셋 사람들이 벧산 거리에 매단 것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가만히 가져온 것이라 다윗이 그 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사무엘하 21:11-14)

이 말씀의 영적 논리가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울은 배은망덕하고 불의한 자였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의 논리라면, 이스라엘에 3년 기근을 가져온 원흉이라 하여 사울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훼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리스바의 행동을 보고 감동하여 사울과 요나단의 유골을 가져와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정중히 안장했습니다. 사울이 비록 이스라엘에 큰 재앙을 안겨주었지만, 다윗은 그를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안에는 스스로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논리들이 많지만, 그것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라면 저주를 부르는 논리가 됩니다.

다윗은 참으로 탁월한 사람입니다. 사울이 신의를 저버렸을지라도 다윗은 그를 후하게 장사 지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위해 피 흘려 죽은 사울의 일곱 자손의 시신도 정성껏 수습해 주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평생 영적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은 비극입니다! 사울은 영적 원리에 극도로 무지하고 혼란스러웠지만, 다윗은 영적 원리를 매우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습관적으로 “내가 이 고생을 하는 것은 다 저 사람 때문이야!”라고 남을 원망하고 비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말이 사실일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의 도(말씀의 원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리스바는 죽은 자에게도 도리를 다했는데 하물며 산 자에게는 어떠하겠습니까? 다윗은 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이후에 리스바를 선대하지 않았겠습니까? 당연히 선대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의로운 자였고 도리에 합당한 일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감동하여 사울을 정중히 장사 지냈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과 관계가 있었을까요? 당연히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다윗이 “우리가 당하는 이 고통은 다 사울 때문이다”라는 백성들의 원망 섞인 여론을 그대로 따랐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모든 것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인 사명 신학은 결코 대중의 뜻(민심)에 영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따릅니다. 어떤 이들은 제가 독단적이라고 말하지만, 제가 왜 단호하겠습니까? 군중의 뜻이라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사도 바울을 본받아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 하나 거리낌 없이 다 전합니다. 설령 여러분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라도 전해야 할 것은 전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떠나겠다면 어디든 가도 좋으나, 제가 행하는 것이 여러분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안다면 이것이 복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 교회에는 사람의 여론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과거의 많은 교회들이 왜 기도 응답을 받지 못했을까요? 민심에 영합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투표하고 선거하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사람의 뜻입니다. 대중의 뜻을 따르다 보면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되며, 결국 사울 왕과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제 사역 방식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결국 따라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성도들에게 《창세기》를 가르치고 기도를 인도하며 사역을 추진하려 할 때, 아내와 자녀들이 눈치를 주며 반대하자 즉시 기가 꺾여 물러섰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족이라는 여론과 도덕적 굴레에 얽매였기 때문입니다! 리스바와 다윗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죽은 자마저 놓아주지 않고 끝까지 선악을 분별하며 정죄합니다. 반면 다윗은 결코 사람의 뜻을 따르지 않았고, 결코 선악을 분별하여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 땅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지, 왜 수많은 간증이 끊이지 않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죄에 대해 매우 깊은 인식을 가지고 철저히 다루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는 죄에 대해 설교하면서 죄를 ‘귀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왜일까요? 죄는 영적 세계에 속한 실체이며, 곧 악한 영(귀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7)

우리가 이 단계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우리 안에 깊이 뿌리박힌 죄를 뿌리 뽑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죄와 싸우기 시작하면 귀신이 정체를 드러내며 발악하다가 떠나가고, 여러분은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울과 같은 자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선악을 분별하며 정죄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인간적인 열심을 내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오직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이제부터는 결코 죄와 거짓에 굴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백성의 간구를 들으실 것이며, 우리 가운데 어린아이의 기도조차도 강력한 역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죄를 제거하면, 하나님께서 백성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다윗이 그 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사무엘하 21:13-14)

다윗은 우리에게 훌륭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본을 겸손히 배워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싸울 때에 후사 사람 십배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죽였고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싸울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을 죽였는데 그의 창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사무엘하 21:18-22)

그 시대 블레셋 군대에는 거인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권투에서 100kg은 헤비급이라 하고 60kg은 페더급이나 라이트급이라 부릅니다. 체급이 다르면 경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수준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거인들은 어떠했을까요? 몸무게 300kg, 키 3m에 손가락 발가락이 6개씩 달려 당근처럼 굵직한, 거인족의 후손들로 매우 강력했습니다. 그들이 든 무기는 크고 무거워 보통 사람은 들기조차 힘들 정도로 위압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먹으로 한 대 쳐보아야 그들에게는 모기에 물린 정도겠지만, 그들이 손바닥으로 한 대 치면 백 수십 킬로그램의 가공할 충격이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강력했습니다! 용사 몇 명이 나가서 그 거인들을 거뜬히 쓰러뜨렸습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셨고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무술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싸움 가운데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고 다스리셨기 때문입니다.

영화 《신용문객잔》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천하의 무공 중 오직 빠른 것만이 깨지지 않는다(天下武功,唯快不破).” 상대의 키가 170cm이든 180cm이든, 빠르고 민첩하면 거인을 쓰러뜨리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영적 세계의 싸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 무술을 깊이 연마한 사람들도 어떤 영의 힘을 받아 기이한 위력을 발휘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수많은 거인을 쳐 죽이고 승리하게 하신 것은, 백성들이 죄를 제거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배후에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부터 결코 죄 가운데 머물러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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