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이어서 《전도자의 언어》 제6강을 나누겠습니다. 주제는 “사람이 평생에 헛된 날을 보내면서 무엇이 그에게 유익한지 누가 알겠는가?”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사람은 일평생 스스로를 해치는 일을 자주 저지릅니다. 아, 저는 평생 동안 이런 일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 형제가 참 기가 막힌 것이,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자 중국 A주 주식 시장이 쫘악 치솟으니까, 덜컥 100만 위안을 빌려서 쾅 하고 100만 위안어치 주식을 샀습니다. 며칠 안 지나서 주가가 뚝 떨어져 30만 위안을 날렸습니다.
이 사람이 몇 년 전에도 투자에 실패해서 우울증에 걸렸던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의 평신도 사역자들이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섬기며, 결사적으로 그를 우울증에서 건져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도진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지요! 오직 스스로를 해치는 일만 골라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또 우울해지더니 그가 말하길, “교회를 떠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떠나겠다면 행운을 빌어줄 수밖에요. 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교회를 떠났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IQ가 한 자릿수인가, 아니면 마이너스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IQ가 마이너스인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사람은 도무지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지를 알지 못합니다!
저에게는 한 가지 아주 큰 약점이 있는데, 꽤 심각한 약점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가장 힘든 일이 바로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라고 느낍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잘해주어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속이려 해도 속는 줄 모릅니다. 사기꾼이 오면 사기꾼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를 세워주려고 하면 지혜가 없이는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뿐입니다.
한동안은 참 힘들었습니다. 섬기다 보면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이내 돌아서서 급히 기도합니다. ‘어이구, 나 자신아, 좀 더 꿰뚫어 보아라. 도대체 무엇이 사람에게 유익한가? 이토록 단순한 일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헛되고 헛되구나!’ 여러분, 제가 혼잣말로 탄식한다고 해서 일 터졌을 때 저를 부르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불러야 능력이 나타납니다.
지난 강의에서는 “수고하는 가운데 기뻐함”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시고, 또 자기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수고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많지 않습니다. 아주 적습니다. 어제 한 자매를 만났는데, 자기 목사님이 스스로 너무 수고하고 힘들어서 병이 났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분이 그리 대단히 수고하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하는 수고가 훨씬 더 많습니다. 아, 수고 중에 기뻐하는 사람이 참으로 적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묻기를, “선생님은 어떠신가요?”라고 하기에, 저는 “제가 바로 수고 중에 기뻐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기쁨이 온몸을 치료하는 양약임을 아십니까! 저는 무슨 일을 하든 기쁘게 합니다. 저는 화장실 청소를 할 때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합니다. 누군가 화장실을 쓰고 물을 안 내렸는데, 들어가서 보니 아이고 세상에! 상상해 보십시오, 참으로 참혹한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어찌 그리 큰 은혜인지” 찬양을 부르며 변기 물을 내렸습니다. 얼룩이 남아 있어도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변기를 닦아내며, 기쁘게 다 치웠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지으실 때 이렇게 지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이러한 능력, 이러한 은혜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쁨입니다. 어디 가서 이런 것을 따지겠습니까? 그저 기뻐하는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을 섬기면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학창 시절,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은 저를 보며 참 재미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도 별로 없고 지게 작대기로 눌러도 방귀 한 번 안 뀔 것 같았지만,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고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제가 공부 스트레스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셨지만, 그저 이 아이가 공부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보셨습니다.
일을 할 때도 기뻤습니다. 비록 더러운 일일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어찌 그리 큰 은혜인지”를 찬양했습니다. 제 평생의 유일한 취미는 바로 수고 중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제가 얻은 이것을 누리시기를 참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두 다리 뻗고 두 눈 감을 때, 손가락을 딱 튕기며 “아, 정말 좋다! 정말 멋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도를 얻은 높은 경지의 성직자가 된 것이 아닙니까? 여기서 ‘승’(僧)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실 도를 얻어 ‘높이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목사 안수를 받고 나면 단순히 Pastor가 아니라 Reverend라고 불립니다. Reverend는 도를 얻은 거룩한 사역자라는 뜻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에게도 멍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돌아서서 한참을 기도하겠습니까? 살다 보면 잊어버리고 어느 순간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합니다. 제 안에는 감지 장치가 있어서 답답해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내가 왜 답답해하고 있지? 바보 같으니, 나는 모든 것이 다 있고 부족한 것이 없는데, 할 일 없이 왜 기뻐하지 않는 거지? 바보 녀석아, 똑똑해져라. 기뻐해라!’ 그렇게 바로잡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마음을 바로잡아서 다시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당신 설교는 듣기 별로예요”라고 해도 답답해하지 않습니다. ‘그럼 다음엔 더 듣기 좋게 전해야지.’ “당신이 쓴 책은 정말 엉망이에요”라고 해도 답답해하지 않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덜 엉망인 책을 써야지.’ “당신 노래는 음정이 안 맞아요”라고 하면, ‘내가 유덕화(Andy Lau)도 아닌데 뭐.’ “그럼 당신은 누굽니까?” ‘저는 유득수(물에 빠진 사람)입니다, 엉터리지요.’ 음정이 안 맞는다고 답답해할 게 무엇입니까? 나는 원래 음정이 안 맞는 사람입니다. 바로잡는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결코 나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게 무슨 꼴이야, 꼭 발바리 개 같네”라고 합니다. 하하,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개똥 같은 존재입니다. 마음을 바로잡지 못했을 때는 답답함이 더 많지만, 바로잡았을 때는 기쁨이 훨씬 더 큽니다.
오늘 제가 어떤 사람인지 말씀드리자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바로 저 같은 사람입니다. 이것도 잘못되었고 저것도 잘못되었을 때, 저는 자주 제가 잘못 처리했다고 여깁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 특히 어떤 목회자들처럼 굴지 않습니다. 그분들에게는 틀렸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틀렸다고 말하면 말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난리가 납니다. 사람이 평생 헛된 날을 살면서,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지 아십니까? 기쁨이 당신에게 유익합니다! 저는 사역자로서 참 잘 살아가고 있고,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어제 한 자매를 만났는데, 훨씬 더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몹시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었는데, 이번에는 꽤 생기가 돌아 보여서 참 기뻤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사역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전에는 그 자매의 목사님이 자매를 돌보았는데, 이는 자매가 목사님보다 더 괴로웠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자매가 이전의 목사님을 섬기고 있으니, 이전 목사님이 자매보다 더 괴롭다는 뜻입니다.
저는 제가 두 눈을 감고 두 다리를 뻗을 때, 참 만족스러우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평생 오직 기뻐하기만 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약을 올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이 유익한지 아십니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십니까? 오늘 여러분도 이것을 꼭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제가 두 눈 감고 두 다리 뻗을 때 하나님도 만족하시고 저도 만족스럽다면, 이것이야말로 도를 얻은 사람, 높이 올라간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아주 큰 재앙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면서도 사서 고생하며 스스로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런 일을 겪어보았습니다. 특히 어떤 부부들은 집에 돌아오면 원수처럼 대합니다. 그런 얼굴이 보기 좋을 수 있겠습니까? 화장품 패키지를 아무리 많이 사도 예뻐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 화장품 살 돈을 하나님께 헌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기쁨을 받아 누리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것이 진짜 피부 미용입니다.
왜 괜히 트집을 잡으며 원수처럼 삽니까?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다 있으면서 기쁨만 없습니다. 조금 기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사서 고생하며 괴로워하다가, 죽을 때까지도 자기가 왜 살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죽을 때 두 눈 감고 두 다리 뻗으며, “아이고, 내 평생 괴로워하기만 했구나”라고 탄식합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곧 죽을 텐데, 제 평생에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덕이 부족했습니다.” 그것이 재앙이 아닙니까? 평생을 재앙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사람이 지혜롭지 못하여 꿰뚫어 보지 못하고, 일할 줄도 모르며, 사람 대할 줄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사람답게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려 하지도 않고, 기분이 조금만 나쁘면 “교회 떠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떠난다고 해서 당신의 어리석은 문제가 해결됩니까?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조차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사람의 이 헛된 평생에 헛된 것들을 위하여 근심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은 실로 재앙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을 보십시오. 누가 먹고 마실 것이 부족합니까? 물론 빚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스스로 억지로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왜 사람들에게 ‘도’가 없는지 안타깝습니다. 이처럼 기쁨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정말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다들 기쁨이 부족합니다. 사람이 인생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교회를 처음 개척했을 때, 저는 90년대 초 동남아의 도박왕이었던 한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배운 것도 없고 학교 공부를 싫어했습니다. 아버지가 도박꾼이었고 그 역시 도박꾼이어서, 남들과 카드놀이하고 돈 내기하는 것만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자라 성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영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받아들이겠느냐? 내가 들어가면 너를 백전백승하게 해주겠다.” 그리하여 그는 도박을 할 때마다 이겼습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정말 대단하고 흥미진진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다른 이들과 도박을 하다가 아주 형편없는 패를 쥐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존재가 그에게 판돈을 걸라고 했습니다. 그는 돈을 걸었습니다. 패를 뒤집었을 때 그것은 자기가 쥐었던 패가 아니라 전부 A, 포에이스였습니다. 정말 백전백승이었고, 나중에는 헬리콥터를 타고 도박을 하러 다녔습니다.
결국 몇 년 만에 싱가포르 달러로 약 2천만 달러, 한화로 수백억 원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영이 떠나가자, 판판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300만 달러의 빚을 졌습니다! 그는 집 발코니에 서서 그대로 뛰어내렸습니다. 세 시간 뒤에 눈을 떠보니 여전히 자기 집 발코니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믿은 후에 자신의 이 이야기를 간증했습니다. 나중에 교회에서 사역을 하게 되었고, 저도 그분을 우리 교회에 초청하여 간증을 나누게 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뛰어내렸겠습니까?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왜 굳이 그런 길을 가야 합니까? 헛된 것을 진짜인 줄 알고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 영이 오니 돈을 벌고, 영이 떠나니 돈을 잃었습니다. 사실 여러분 안에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거하신다면 돈이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악령조차도 사람에게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데, 하물며 우리 하나님께서 어찌 지혜와 지식과 기쁨을 더욱 넘치도록 더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학교에 다닐 때 온종일 남들과 비교하며 그토록 괴로워합니다. 비교해도 이기지 못하니 뒤에서 쫓아가고 또 쫓아갑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삽니다. 저는 앞서가고 있는데, 그는 뒤에서 기를 쓰고 쫓아오느라 몹시 피곤해합니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남들 뒤를 쫓아가고, 죽을 때까지 뒤만 쫓아갑니다. 자기 힘을 의지하기를 좋아하니, 참 어리석지 않습니까?
저는 많은 사역자들도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왜 비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도 목사고 나도 목사인데, 내가 왜 너한테 기도를 받느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제가 알던 목사님들 중 몇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들이 우리의 치유와 축사 사역이 뛰어난 것을 모릅니까? 압니다. 그런데도 ‘너도 목사고 나도 목사인데 내가 왜 너한테 기도를 받아? 차라리 병원에 가서 병원에 돈을 주겠다’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병원에서 고생을 좀 하십시오. 결국 병원에서 손을 쓰지 못해 관 속에 눕게 되었습니다.
화인명정신학은 참으로 하나님의 도입니다. 제가 아는 한, 어느 교단이든 마틴 루터의 신학을 포함하여, 제가 세운 이 ‘화인명정신학’이 가장 성경에 부합할 것입니다. 왜 성경에 부합합니까? 저의 판단 기준은 아주 단순합니다. 바로 이 사람이 예수님을 닮았는가 닮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그가 행하는가? 예수님께서 하지 않으신 일을 그가 행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안 하신 일은 잔뜩 하면서, 예수님이 하신 일은 하지 않습니다.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 같은 사람은 그것을 완전히 뒤바꾸어, 예수님이 하신 일은 열심히 행하고, 예수님이 안 하신 일은 그냥 내버려 두고 맙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헛된 것들이 참 많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연도 많고 헛된 것 투성이입니다. 어제도 한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악령을 증언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악령의 실재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제 들은 이야기인데, 한 기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작은 전기공에 불과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신당에 가서 우상에게 절을 하는데, 갑자기 그 우상이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내가 너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 원하느냐?” 그가 원한다고 하자, 우상이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당시 그는 20대였는데, “무슨 조건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우상이 말하기를, “너는 50세까지만 살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50세면 아주 오래 사는 것이라 여겨 그 조건을 수락했습니다.
사실 사람의 일생은 길지 않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50, 60, 70이 됩니다. 연세 드신 분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다들 눈 깜짝할 사이에 여기까지 왔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60, 70대, 70, 80대가 되어도, 자매님이라면 마음속에 여전히 소녀의 마음이 있어서 늙어가는 줄도 모릅니다. 그는 당시 50세면 꽤 늙은 나이라고 생각하여 그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땅을 사고, 건물을 짓고, 술을 빚느라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그의 주류 브랜드는 매우 유명해졌지만 광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사업이 엄청나게 번창했습니다. 그러나 50세가 되자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돈을 주시면서 목숨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묻겠습니다. 50세 이전에 그 많은 프로젝트를 하고 땅을 사고 건물을 짓고 사업을 하느라 이것저것 바쁘게 뛰었는데, 수고로웠습니까, 안 수고로웠습니까? 수고로웠습니다. 두 눈 감고 두 다리 뻗을 때, 일평생을 오직 헛된 것 가운데 보내고는 귀신에게로 갔습니다. 귀신에게 가는 것이 장난인 줄 아십니까? 그곳은 결코 좋은 곳이 아니며, 고통의 날들이 이제 막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헛된 것이 많아지는 것보다 실재하는 참된 것을 얻는 것이 낫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화인명정신학의 하나님은 크신 능력이 있으셔서 모든 통치자와 권세자들보다 훨씬 뛰어나시며, 공중의 어둠의 권세들까지도 완전히 뛰어넘으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여 만물을 발아래 굴복시킬 것이니, 돈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새롭게 건축을 시작해야 합니다. 할 일 없이 괴로워하기 좋아하고 괜히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생각을 다시 조정하여, 평생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묻겠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과학 연구를 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아무런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 중의 많은 형제자매들처럼, 다리를 절단해야 할 지경인데도 여전히 선악을 분별하느라 분주합니다. 그것을 다루어 내기가 참으로 어렵지만, 이제 조금씩 벗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병든 분들이 꽤 많고 중합니다. 그것이 어디서 왔습니까? 조금 더 잘살아 보겠다고, 헛된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여기며 따지고 쫓아다니다가 생긴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투자에 실패하고 나중에 또 물리는 것을 보면,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전도서》를 너무나 읽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도대체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한가?’를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무엇이 유익한지 모른다면 헛산 것이 아닙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지혜로워져서 이 재앙들을 똑똑히 알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이러한 재앙들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
본문 말씀을 읽겠습니다. 《전도서》 6장 11절부터 12절입니다.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일이 많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전도서 6:11-12)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평생에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한지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셔서 무엇이 헛된 것이며 무엇이 참된 실재인지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지혜와 지식과 기쁨을 얻게 하옵소서. 주님이 우리 평생의 보배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배경
솔로몬은 이 《전도서》를 한 장 한 장 써 내려갔습니다. 1장에서 그는 “헛되고 헛되도다”라며 해 아래의 모든 일이 헛되다고 썼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영계의 일은 실재하며, 영계의 일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해 아래의 일은 그림자에 불과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이 세상을 주관합니까? 바로 영계의 일입니다. 이것이 화인명정신학의 매우 핵심적인 관점입니다.
2장에서는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라고 권면하는 이유입니다.
3장에 이르면 범사에 기한이 있고,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행하십니까?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모든 일은 영계에서 정해지며, 많은 일들은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연약한 인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 많은 일들이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노력만으로는 소용이 없습니다. 노력하는 사람은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시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하는 마음을 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해 아래의 일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수많은 압제와 억울한 일들로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함을 보게 됩니다. 해 아래 온갖 악한 일들이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악한 일들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이 오늘 겪고 있는 고통도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계에서 온 것입니다. 해 아래의 수많은 악한 일들은 영적인 영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럼 영적인 영역은 무엇과 관련되어 있습니까? 바로 저주와 축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불공평하다는 겉모습만 보지 마십시오. 사실은 아주 공평합니다! 두 다리로 걷지 못해 절단해야 하거나, 자녀가 자폐증이거나 농아이거나 하는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났을 때, 남들은 건강한 아이를 낳는데 우리는 왜 이런가 하며 “하나님, 하느님,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무엇을 묻습니까?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며, 모든 것은 그렇게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이 인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해 아래의 악한 일들에 대해 불평하고 따지려 들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다. 사실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라는 말은 꽤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모르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제가 인간에 불과하기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5장에서는 “사람이 수고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일 저 일에 불평하며 다니지 마십시오. 그러다 결국 자기 자신이 불평 덩어리가 됩니다. 사람이 일평생 기뻐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적습니다. 사람이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합니까? 돈을 구하고, 사업의 성공을 구합니다. 그렇게 구하고 나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참으로 비극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헛된 날들을 헛되이 보내면서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하겠습니까? 대학 입시를 치를 때는 대학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목사님, 아이가 입시를 치르는데 기도해 주세요.” 저는 “네, 실력 이상으로 잘 발휘하길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그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공무원 시험을 칠 때는 그것이 중요해 보이고, 대학원에 갈 때는 그것이 중요해 보이며, 직장에 다닐 때는 직장이 중요해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은 헛된 일들이며, 여러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매이게 되고,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요동하는 것입니다. 본래는 참 기쁠 수 있었는데, 그것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니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괴로워합니다. 건드리면 괴로워하며 평생을 괴로움 속에서 삽니다. 아, 정말 안타깝습니다.
여기까지 기록한 후, 사람이 평생 헛된 날을 보내면서 무엇이 그에게 유익한가? 이것이 솔로몬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합니까? 저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배로 여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로 여기지 않는 것을 보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다 세상의 헛된 것들입니다. 겉보기에는 아주 실재하는 것 같지만 모두 헛된 것들입니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며,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보배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제 마음이 참으로 아픕니다. 권면하자니 부담을 줄까 두렵고, 권면하지 않자니 손해를 볼까 두렵습니다. 아, 사역자가 되고 나서 드디어 괴로운 일 하나를 찾았습니다. 어찌 괴롭지 않겠습니까? 바라보면 탄식이 나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전도서 6:1-3)
이것이 재앙이 아닙니까? 사람의 일평생에 도대체 무엇이 중요합니까?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구하는 것은 다 세상적인 것들뿐입니다. 어찌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님이 되시고 나의 왕이 되셔서 내 평생을 다스려 주시고, 일평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셔서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기쁨을 얻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솔로몬은 노년에 전도자가 되어 자신의 지난 일평생을 돌아보며 깊이 탄식했습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남은 날이 얼마 없음을 보며, ‘내가 평생 수많은 일을 행하였으나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한가?’라고 돌아본 것입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던진 질문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질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배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참된 실재이십니다. 악령도 당신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지만, 당신을 일찍 죽게 만듭니다. 그러나 악령조차 돈을 줄 수 있다면, 온 우주 만물을 소유하신 지극히 부유하신 우리 하나님의 영을 얻은 당신이 가난하겠습니까? 결코 가난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강해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사람을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주제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번성입니다. 그러므로 재앙 속에 살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구하는 것을 보십시오. 어찌 하나님을 구하고 그분 안에 거하려 하지 않고, 재물과 부요와 존귀와 체면 같은 것들만 구합니까? 그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의 재앙 1: 부족함이 없으나 누리지 못함
사람이 저주를 받으면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셔서 평생 흙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흙을 드셔본 적이 있습니까? “누가 그런 걸 먹어요? 할 일 없이 흙을 먹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실험 삼아 흙을 조금 핥아보십시오. 참으로 맛이 없습니다.
무엇을 먹어도 흙을 먹는 것 같다면 병든 것이 아닙니까? 굶주려 비쩍 마른 상태에서 흙을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밥을 먹는 느낌이 마치 뱀이 흙을 먹는 것처럼 아무런 맛이 없고, 먹고 누리는 기능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평생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얻고, 사업을 일으키고 돈을 벌어 부족함이 없게 되었지만, 온몸의 기쁨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참 잘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입을 주셨는데, 제 입은 맛있는 것을 참 잘 즐깁니다. 사람들이 묻기를, “어떻게 그렇게 음식을 맛있게 드십니까?”라고 합니다. 저는 하루를 굶었으니 무엇을 먹어도 맛있지요. “선생님이 하루 굶어서 다 맛있다면, 저는 이틀을 굶었으니 저도 다 맛있겠네요.” 사실 하루를 굶어서 맛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무엇을 먹어도 맛있는 것입니다.
인도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은 “인도 음식은 손으로 먹는 것 아닌가요?”라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숟가락과 포크로 먹어도 됩니다. 손으로 먹으라고 하면 손으로도 먹을 수 있습니다. 인도식 로티 프라타도 참 맛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인도 음식을 꼭 드셔보십시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일대에는 락사(Laksa)라는 음식이 있습니다. 드셔보셨습니까? 정말 맛있습니다! 싱가포르는 동서남북 온 세상의 음식이 다 모여 있는 미식의 천국인데, 먹을 줄 아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먹을 줄 몰라서 인도 음식을 보면 “어휴, 끈적끈적해서 못 먹겠다” 하고, 락사를 보면 “저 누르스름한 게 뭐야, 못 먹겠어”라고 합니다.
저는 《전도서》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음식을 즐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얼마나 번거로운가 생각했습니다. 농사짓고, 추수하고, 밀가루를 빻고, 이것저것 만드는 것이 참 귀찮았습니다. ‘하나님, USB 포트로 충전하게 하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이브리드처럼 한쪽으로는 기름 넣고 한쪽으로는 충전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나중에 보니 하나님께서 참 잘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평생 맛있는 음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잘 활용하여 이 삶을 멋지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수고 중에 기뻐하게 되고, 수고의 열매를 누리게 됩니다.
씨를 뿌리고 자라기를 기다립니다. 다 자라면 추수하고, 추수한 밀을 타작하여 가루로 빻습니다. 모든 과정이 기쁨입니다. 직접 기른 채소로 만두소를 만들고 피를 밀어 만두를 빚고 삶아낸 뒤, 식탁에 앉아 술 한 잔 기울이며 만두와 함께 마시면 참으로 풍성하고 좋습니다.
어떤 분이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사람이 인생을 제대로 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인생을 꽤 잘 사는 사람입니다. 사역자라고 해서 무조건 바보 같은 고행승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도를 얻은 높은 사역자이지 고행승이 아닙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 이것을 주십시오, 하나님 저것을 주십시오” 해서 다 주셨더니, 결국 온종일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재앙입니다. 사실 사람이 평생 먹고 마시면 얼마나 먹고 마시겠습니까? 맛있는 것 먹고 즐기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한가할 때 술 한 잔 따르고 땅콩 한 접시 놓고 누리는 것입니다. 통조림 하나를 따서 맛있게 먹고 잘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당신을 향해 가지신 선하신 뜻입니다.
인생의 재앙 2: 마음에 낙을 누리지 못함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지 깨닫지 못하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상장 기업을 갖는 것이 유익이 아니라, 맛있게 먹고 달게 자는 것이 유익입니다. 재앙 둘째는 마음에 낙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재앙입니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전도서 6:3-5)
‘아내를 한 명 얻고, 또 한 명 얻어야지’ 하다가 아내를 그렇게 많이 얻으면 배신당하고 속 썩는 일이 많아 괴로워집니다. 자녀를 백 명 낳아도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사실 그 자식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백 명의 아들들은 ‘이 늙은이가 왜 이렇게 안 죽지? 빨리 집이나 물려주고 죽지’라고 여깁니다.
그들은 이 노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많으니 유산을 겨우 1%밖에 못 받겠네. 어떻게 2%를 챙길까, 3%를 챙길까, 50%를 챙길까, 어떻게 다 가로챌까’만 계산하느라, 그 늙은 아버지를 돌볼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이고 세상에, 마음속에 근심과 번민만 가득합니다!
그 백 명의 아들 중에 오늘은 이 녀석이 나가서 남의 차를 들이받아 합의금을 물어줘야 하고, 내일은 저 녀석이 사고를 쳐서 감옥에 들어갑니다. 묻겠습니다. 아들이 백 명이면 속 썩을 일이 많겠습니까, 적겠습니까? 골치 아파 죽을 지경입니다. 평생 낙을 누리지 못하고 마음이 괴롭습니다.
게다가 그 백 명의 아들 중에 자폐증이 5명, 우울증이 5명, 못된 마음 품은 녀석이 5명, 나가서 사고 치는 녀석이 5명, 성전환해서 아들이 딸이 된 녀석이 5명, 온갖 일이 다 생깁니다. 아이고 세상에! 사람이 평생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낙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것이 헛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며 재앙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웃 사람들이 와서 “댁의 아이 좀 보세요…” 하고 항의하면, “아이고 말도 마세요, 골치 아파 죽겠습니다” 하게 됩니다. 명문대에 들어간 녀석도 있고 못 들어간 녀석도 있으며, 경비원 유니폼을 입은 녀석도 있고, 아이고 세상에! 그것이 재앙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평생 낙을 누리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수많은 일들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고, 수많은 헛된 일들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재앙 3: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름
사람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어떻게든 더 살아가려 하는 것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은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지 알지 못하는 비극 속에 살면서, 자식을 백 명 낳으면 유익할 줄 알고 노후를 보장받을 줄 알지만, 결국 돌봐줄 사람도 없고 죽어서 묻어줄 사람조차 없게 됩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평소 연구하는 것을 좋아해서 지금도 제 앞에는 연구 과제들이 잔뜩 놓여 있습니다. 저는 평생 저희 아버지처럼 늘 일거리가 있습니다.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대단한 재주가 있어서, 우리 집안은 노동절에도 일하고 국경절에도 일하며 평생을 기쁘게 일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을 반드시 연구해야 합니다. 이 연구는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의 많은 일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연구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도 연구해 보아야지 제 말만 들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이것을 깊이 연구하여 무엇을 발견했는지 아십니까? 죽기 싫어도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인생의 거대한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죽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손가락을 셀 필요도 없고,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으며,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도 없이 발뒤꿈치로 땅을 한번 쾅 구르기만 해도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제게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라고 해도 저는 저주로 여기지 않습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가장 무겁고 골치 아픈 재앙은 사람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전도서 6:6)
《전도서》가 점잖게 기록하고 있지만, 결국 다 죽는다는 뜻 아닙니까? 제가 연구를 계속 이어가 보았습니다. 다 죽는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죽기 싫어도 죽어야 합니다. 아이고 세상에! 그리하여 저는 사람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발견했습니다. 영생이 없다면 모든 것은 촛불이 꺼지듯 완전히 무의미해집니다. 그렇다면 결론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영생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게 죽음이 두렵냐고 묻는다면, 제가 그런 것을 왜 두려워하겠습니까? “백수(百壽)를 누리십시오”라는 말은 저주가 아닙니까? 백 년을 살든 만 년을 살든 소용없으며, 영원 속에 거하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생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알고, 그 능력을 얻게 되었을 때 참된 보배를 얻은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 자신에게 유익합니까? 살기에 급급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천 년을 살고 또 천 년을 산들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결국 다 죽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을 통계 내보면 100% 다 죽었습니다.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거꾸로 된 잘못된 말입니다. “죽음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삶을 알겠는가”가 맞습니다. 종착지가 어디인지 반드시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보면 그곳은 끝이 아니라 환승역에 불과하며, 다른 지하철로 갈아타는 것, 파란색 노선에서 노란색 노선으로 갈아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사물에 대한 인식, 영계에 대한 인식이 깊어짐에 따라, 죽음은 더 이상 우리의 염려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삶을 가볍게 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기쁨을 주십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알기에 영생을 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화인명정신학은 이 세대의 가장 능력 있는 신학이며, 우상 숭배의 능력보다 훨씬 더 큽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제가 얼마나 많은 귀신을 쫓아냈습니까! 한번은 귀신을 쫓아낼 때 환상 중에 귀신 떼를 보았는데, 1미터 남짓한 작은 귀신들이 원숭이처럼 생겨서는 자기들끼리 “아이고, 이 사람을 만나다니 정말 재수 없다, 빨리 도망치자”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영생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영생의 도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도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덧입은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위세를 떨치며 승리하는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귀신이든, 어떤 영이든, 이 세상 공중의 어둠의 권세를 잡은 자들은 모두 우리 발아래 밟히게 됩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이미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한지를 압니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모르고 늘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참으로 괴로운 인생을 삽니다.
한번은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관 속에 제 친구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죽는 것이 두려워 병원에 갔지만, 저처럼 죽고자 하는 사람은 잘 죽지도 않습니다. 그 친구는 저보다 1년 늦게 코로나에 걸렸고, 저는 그보다 1년 일찍 걸려 거의 죽을 뻔했으나 저는 병원에 가지 않았고 그는 병원에 갔습니다. 지금 그는 관 속에 누워 있고 저는 관 밖에 서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고 싶어도 잘 죽지 않으며, 이 세상을 떠나 내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것은 진실이며,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인생의 재앙 4: 평생의 수고가 오직 입과 배만을 위함
《전도서》 6장 7절에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선생님이 먹고 마시며 누리고 맛있는 것을 즐기라고 해놓고, 왜 사람의 수고가 입을 위한 것인데 만족함이 없다고 하며 재앙이라고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인생의 목적은 기쁨에 있으며, 기쁨은 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만족을 얻는 것이야말로 참된 기쁨입니다.
우리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인생이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뱀도 배를 채우기 위해 먹지만, 마음에 만족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재앙입니다. 인생이 그저 먹기 위한 것뿐이라면 재앙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일평생 가장 큰 유익이 마음에 만족을 얻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오직 생사를 꿰뚫어 보고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 안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쁨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먹든, 무엇을 마시든,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하게 만드니, 이것이야말로 천국을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의 재앙 5: 자신이 인간임을 알지 못함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누군가 당신더러 “사람도 아니다”라고 한다면 참 듣기 거북하지 않겠습니까? 땅의 모든 만물에는 이름이 있지만,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름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그들은 인간입니다. 땅에는 두 가지 존재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짐승, 곧 동물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이 사람이고 무엇이 짐승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은 자신이 인간임을 알아야 자신의 능력이 대체로 인간의 한계 범위 안에 있음을 압니다. 사람이 인간이기에 자신의 힘이 크지 않음을 알고, 하나님과 겨루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 자신이 인간이기에 당신의 책임은 기껏해야 몇몇 짐승을 다스리는 정도이며, 영계의 일은 당신이 주관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매우 유한한 육에 속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영계 속에서 버티며 영 안에서 자기보다 힘이 센 존재와 다투려 한다면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을지조차 통제하지 못합니다.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지 알고, 짐승처럼 살지 말고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당신 안에 거하시면 사람답게 살게 됩니다. 귀신의 영이 당신 안에 거하면 짐승처럼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가고,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 하나님과 함께 거합니다. 당신이 인간임을 안다면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짐승이라 여긴다면 아무것도 필요 없고, 뼈다귀와 동물의 사체와 고기만 필요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억지 부리지 마십시오.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한지 분명해졌습니까?
인생의 재앙 6: 헛된 일을 더함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일이 많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전도서 6:11)
헛된 일들을 잔뜩 더한들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실상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유니콘 기업을 만들고 싶다면 아주 쉽습니다. 소뿔 하나 사서 머리에 얹으면 끝납니다. “제가 말하는 유니콘은 그런 유니콘이 아닙니다”라고 하겠지요. 당신이 말하는 유니콘은 무엇입니까? 상장 기업, 기업 간의 경쟁입니까?
수많은 헛된 일들을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묻겠습니다. 샤오미 같은 기업을 일구는 것이 수고롭습니까, 안 수고롭습니까? 수고롭습니다. 제재를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받습니다. 월스트리트의 거물이 되는 것이 수고롭습니까, 안 수고롭습니까? 수고롭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이 수고롭습니까, 안 수고롭습니까? 수고롭습니다. 무슨 일을 한들 수고롭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이 세상에서 모두 수고로우며,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수고롭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헛된 일들은 우리의 일평생을 지탱해 줄 수 없습니다. 헛된 일이 더해져도 소용없고 유익이 없으며, 오직 한 가지만이 가장 중요하니 곧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리하여 솔로몬은 평생 헛된 날들을 그림자처럼 보내며, 휙 지나 60, 70이 되고, 휙 지나 70, 80이 되며, 휙 지나 두 눈 감고 두 다리 뻗게 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사람의 평생에 도대체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합니까? 평생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이심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치료자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능력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반석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위로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기쁨이심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합니까? 헛된 것들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결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무엇이 내게 유익하지 않은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만히 관찰해 보기만 해도 사람들의 삶의 고통은 모두 헛된 일들이 더해졌기 때문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그 헛됨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분만이 참된 실재이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