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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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자 되기 제3강을 나눌 텐데요, 주제는 “제자가 되는 대가”입니다. 제4강의 주제는 “제자에 관한 혼란”입니다. 사실 제4강은 주로 앞의 세 강의를 정리하고 요약하면서, 제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부분들을 다각도로 풀어주는 내용입니다.

먼저 《제자가 되는 대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제가 《주 예수님 앞에서 셈을 치러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언젠가는 주 예수님 앞에 나아가 결산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 어떤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그리스도인도 결산을 해야 하나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당연하지요. 그때 주 예수님 앞에 가서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일까요? 당연히 사실입니다. 기업에서 일해도 업무 평가를 받고, 평가가 끝난 후에 보상을 주지 않습니까? 일을 대충대충 하면서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열심히 일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더더욱 안 되는 법입니다.

우리 중에도 대학 입시를 치러본 분이 계실 것이고, 대학 입시를 치르는 자녀를 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입시생들은 그 몇 년 동안 정말 고생이 많습니다.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공부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게 훌륭한 어머니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학교에서는 별로 열심히 안 하는 척했지만 집에 오면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우등생들은 다 이렇습니다.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니까 어머니께서 “얘야, 그만 공부해라. 몸 상할라” 하셨습니다. 대가를 치르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제 장점 중 하나는 공부하는 데에는 기꺼이 대가를 치르지만, TV를 보는 데에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TV 보는 데 대가를 치르는 것과 대학 입시에 대가를 치르는 것이 같겠습니까? 어머니는 제가 너무 힘들게 대가를 치르는 것을 보시고 공부를 그만하라고 말리셨습니다. 또 계란 후라이를 해주시거나 우유를 타주시면서 간식을 챙겨주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계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 걸까요? 무슨 일이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그 열정을 주님을 믿는 일에 쏟는다면 정말 대단할 것입니다. 우리 중에 대학 입시 준비하던 열정을 주님 믿는 일에 쏟아부은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은 주님을 믿는 이 일에 대해 많은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 데에는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엄청난 착각입니다.

1. 무엇을 하든 대가를 계산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대가를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대가를 계산하지 않는다면 큰일 납니다. 부동산 재벌을 보십시오. 아주 큰 회사를 차려서 짓기만 하면 대규모 숲속 도시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을 입주시키거나 대형 상업 복합단지를 짓습니다. 그런 재벌들은 다 셈에 밝습니다. 그러나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오면 회사가 부도나고, 그 빚은 집을 산 사람들이 떠안게 됩니다. 그 재벌은 이미 돈을 다 챙겨서 떠났고, 진작에 계산을 끝내놓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생 힘들게 번 돈인데, 어떤 사람들은 집을 샀다가 단숨에 ‘하우스 푸어’가 되어 버립니다. 짓던 아파트는 짓다 만 흉물이 되어 버리는데, 한 번 멈추면 100만 제곱미터, 또 짓다가 멈추면 200만 제곱미터나 되어 그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무엇을 하든 대가를 치러야지, 건물을 짓다가 말아서는 안 됩니다. 짓다 만 건물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장에서는 건물을 짓다 말아도 시행사는 대가를 치르지 않습니다. 그 대가를 누가 치릅니까? 집을 산 사람들이 치릅니다. 그런데 집을 사기 전에 왜 대가를 계산해 보지 않았습니까?

가끔 저는 ‘어떻게 해야 사람이 똑똑해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셈(계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자병법》이라는 책은 참 훌륭합니다. 우리는 줄곧 손자병법이 계략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략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얕은꾀나 속임수를 떠올리지만, 사실 《손자병법》이 말하는 것은 바로 치밀한 계산입니다. 속임수나 잔꾀는 하찮은 재주이고 넌센스 퀴즈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돼지와 당나귀 중 누구를 먼저 잡을 것이냐고 묻는다면, 당나귀를 먼저 잡는다고 답하겠지만 돼지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넌센스 퀴즈이자 잔꾀입니다.

그러나 《손자병법》이 말하는 것은 잔꾀가 아니라 ‘묘산(치밀한 계산)’입니다. 묘산이란 무엇입니까?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철저히 계산하고 장막 안에서 전략을 세우는 것입니다. 장수가 보기에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겠다면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처럼 할 일 없이 곰을 건드리고 장난치면 안 됩니다. 캐나다에는 산속 주택에 사는 사람이 많아서 흑곰이 자주 출몰합니다. 흑곰이 나타났을 때 건드리면 큰일 납니다. 진짜로 맞붙으면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녀석이 앞발로 한 대 치면 500kg의 충격이 가해지는데 사람이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불곰을 만나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덩치도 크고 성질도 사나워서 마치 동북 사람 같습니다. 텐진 사람과는 다릅니다. 텐진 사람들은 말투가 재미있어서 싸울 때 벽돌을 들고 치려 하면서도 “너 괜찮겠어?” 하고 상의하듯 말하지만, 동북 사람이라면 바로 내리쳤을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마치 남에게 웃음거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가가 아니지만, 일을 하기 전에는 계산을 해보아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예를 들어 언젠가 제가 급하게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의 자전거를 부딪친 적이 있습니다. 자전거 주인을 보니 머리에 칼자국 흉터가 어지럽게 나 있고 피까지 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얼른 사과하고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만약 자존심을 세우고 맞서다가 제 머리에도 칼자국이 생기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그 사람의 목숨은 값어치가 없을지 몰라도 제 목숨은 그 사람보다 훨씬 소중합니다. 목숨을 버리더라도 예수님을 위해 버려야지, 그런 사람을 위해 버릴 수는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계산해 보아야지, 저는 억지를 부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자가 되려면 계산을 해보아야 합니다. 짓다 만 미완성 제자나 패배하는 제자가 되는 것은 좋지 않으니, 제자의 대가를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모세가 사람들을 이끌고 출애굽할 때, 그들은 왜 나오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따라 나왔다가 나오고 나서 후회했습니다. 결국 조금만 힘든 환경을 만나면 애굽으로 돌아가려 하다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의 비극이었지만,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곧 제자가 되는 것이며, 단지 이름만 바뀐 것뿐입니다. 제자가 되려면 과연 감당할 수 있는지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제가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가 되는 대가를 치를 수 없다면 차라리 그만두고 애굽에 머물러 있는 편이 낫습니다. 애굽에서 열심히 일하고, 애굽인이 시키는 대로 일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제자가 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 드라마나 홍콩 드라마를 실컷 보다가 때가 되어 예수님 앞에 가서 “저는 주님의 제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한국 드라마나 홍콩 드라마의 제자 같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이것이 매우 중요한 진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가 되는 데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며, 그렇게 살다 보면 사람은 어리석어지게 됩니다.

2. 제자가 되는 것은 건물을 짓는 것과 같다

유월절 전에 수많은 무리가 예수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4:25-33)

어제 누가복음 14장 25-33절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말씀하시기를, 내게 오는 자가 자기 아내와 자녀, 형제, 자매, 그리고 자기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28절부터 33절까지의 말씀도 아주 훌륭합니다. 너희가 건물을 짓기 전에 과연 완성할 수 있을지 비용을 계산해 보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기초만 놓고 완공하지 못하면 보는 자들이 다 비웃을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건물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25-27절에서 제자 됨을 말씀하시고 33절에서도 제자 됨을 말씀하시며, 그 중간에서 건물을 짓는 구조를 말씀하고 계시니 분명 제자가 되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수중의 돈을 계산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 한 형제가 있는데, 그의 고모부가 참 특이한 분이셨습니다. 고모에게 집을 한 채 사주었는데, 계약금만 내고 월 납입금을 내지 못해 첫 달부터 연체되었습니다. 집을 사기 전에 월 납입금을 감당할 수 있는지 계산도 안 하고 샀으니, 스스로 일을 만든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모든 일에는 계산이 필요합니다. 밑천이 얼마인지를 보고 그에 맞게 일을 벌여야 합니다. 기초만 쌓아놓고 완공하지 못하면 보는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광야에서 죽는 그리스도인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지난 세월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매사를 분명하게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확실하고 당당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변호사가 되려면 훌륭한 변호사가 되고, 회계사가 되려면 확실한 회계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논리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건 구약 이야기이고,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글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전혀 다른 결과를 읽어냅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며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광야에서 죽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교회 안에서 살펴보니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젊어서부터 주님을 믿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속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짓다 만 흉물처럼 끝나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 마음 중심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수년간 저는 단 한 번도 주일 예배를 빠진 적이 없으며, 온전히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만약 친한 친구가 결혼식에 초대하면 언제냐고 묻고, 일요일이라고 하면 “주일은 절대 안 돼”라고 했습니다. 친구에게 “나는 창세 전에 이미 이 시간을 하나님께 드렸어. 이 시간은 되돌릴 수 없어.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니?” 하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그 말을 듣고 하하 웃으며 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성경공부와 기도 모임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비록 모임을 인도하는 사람이 성경공부나 기도를 엉망으로 인도했을지라도 저는 결코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자가 되는 것은 건물을 짓는 것과 같으니 광야에서 죽지 마십시오.

여러 해 전에 저는 그리스도인을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부류는 하나님을 따라 애굽에서 나오지 않고 애굽에서 노예로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이들도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둘째 부류는 기분 내키는 대로 얼떨결에 애굽을 나왔으나 왜 나왔는지도 모르고 모세가 외치니 그냥 따라나선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광야에 이르러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원치 않다가 결국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셋째 부류는 애굽을 나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제 나눔을 듣는 모든 분이 저와 같이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는지 계산해 보십시오. 마치 건물을 지을 때 수중의 자금을 계산하듯, 반드시 완공해야 합니다. 그 밑천을 제자가 되는 일에 두어야 하며, 그 밑천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바치는 것입니다. 이 대가는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대가입니다.

목숨을 대가로 제자가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승리하는 길이며, 이 대가를 치르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입니다. 가끔 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셈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데, 따져보고 계산해 보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건물을 짓다가 중단되지 않게 하듯, 그리스도인과 제자의 삶도 중도에 멈춰 서서는 안 됩니다. 중도에 멈추면 웃음거리가 됩니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온갖 질병에 시달려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다른 엉뚱한 것에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 어느 쪽이 이득이고 손해인지 똑똑히 계산할 수 없습니까? 제자가 되기 위해 대가를 치르면 세상의 제자가 되기 위해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누구와 맞설지언정 하나님과 맞서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적인 마귀 사탄과 맞설지언정 결코 하나님과는 맞서지 않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마귀와 다릅니다. 마귀는 사람의 육체는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육체도 죽이실 수 있고 영혼도 멸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장난이 아니니 반드시 똑똑히 계산해야 합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건물을 짓는 것과 같으니, 중도에 멈추지 말고 잘 계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목사님, 보시다시피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하기에,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불교도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예수님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 것 같다고 권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묻기에, 제가 말해주었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면 틀림없이 중도에 포기할 것이고 대가를 치를 수 없으니, 차라리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곳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생명을 대가로 요구하는 곳인데, 이 대가는 너무나 무겁습니다.

평소에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일에만 관심이 있고, 다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곧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얼른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다 죽어가는데 어떻게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제자가 될 수도 없는데 제게 무슨 관심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은 안 된다며 천국에 보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자를 훈련하는 사람이지 사람을 천국에 보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천국 입장권을 파는 사람이라면 벌써 큰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는 이런 내용이 없는데, 많은 사람이 이런 일에 매달리기 좋아합니다. 전도할 때도 암 환자에게만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하려 하지만, 그래봤자 짓다 만 건물이 될 뿐입니다. 평생 짓다 만 건물만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하나님도 그들을 바꾸지 못하시는데 제가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는 편이 낫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 위의 강도를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이며,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건물을 짓는 것과 같으므로 대가를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수중에 가진 밑천이 얼마인지, 어떤 자본을 쥐고 있는지 똑똑히 계산해야 합니다. 그 자본은 바로 자신의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3. 제자가 되는 것은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4:31-33)

제자가 되는 것은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길 수 있다면 싸우고, 이길 수 없다면 일찌감치 항복하여 협상하고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어리석게도 이기지 못하면서 억지로 싸우려 하지 말고, 먼저 깊이 생각하고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예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는 시작할 때부터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자가 몇 명인지를 계수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셈하지 않았습니다. 칼을 차고 싸울 수 있는 이스라엘 군사는 대략 60만 명이었습니다. 제자로서 전쟁의 대가를 치를 수 없다면, 함부로 건드려 마귀와 한판 붙겠다고 덤비지 마십시오. 결국 마귀에게 바닥에 내쳐져 짓밟히고 맙니다. 왜냐하면 부모, 아내, 자녀, 형제, 자매, 그리고 자신의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정예 군사가 되었다면 이러한 얽매임과 염려가 없어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정예 군사가 되었는데 마귀가 어머니를 건드리자마자 즉시 물러선다면 어떻게 전쟁을 하겠습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건드리지도 마십시오. 마귀는 틀림없이 당신의 어머니와 아내, 자녀를 공격할 것입니다.

저는 어느 목사님의 사모님을 사역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온몸이 아프고 질병이 많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젊은 시절에 귀신을 쫓아내곤 했는데, 나중에 그의 아이가 마귀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후로 그 목사님과 사모님은 다시는 귀신을 쫓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만약 나라면, 마귀가 내 사람 하나를 해치면 나는 마귀 놈 열을 박살 낼 것입니다. 어차피 저는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부모, 아내, 자녀, 형제, 자매, 그리고 제 자신의 목숨까지 저에게 속한 모든 것은 이미 지불한 대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제자가 되는 것은 귀신과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을 때, 저는 이것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귀신이 어머니를 건드리러 왔으니, 어머니에게 붙은 치매 귀신을 바닥에 내리치고 짓밟아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비록 치매를 앓으셨지만,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전반적인 상태가 매우 좋으셨습니다.

왜 어머니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할까요? 귀신이 어머니를 괴롭히러 오면 저는 귀신을 쳐부수어야 하는데, 다행히 제가 어머니를 온전히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내려놓았다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방치와는 다릅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침대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제 죽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보니 영적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어머니를 온전히 내려놓았기에 어머니가 저를 얽맬 수 없었습니다. 저는 “내 자신이 죽는 것도 두렵지 않은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도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옷을 붙잡고 일어나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기운이 없으시길래 제가 억지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잠시 기도하고 나니 어머니는 바닥에 내려와 거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셨고, 마귀는 약이 바짝 올랐습니다. 만약 제가 내려놓지 못했다면, 일반적인 드라마처럼 주인공이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하거나, 드시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 못다 이룬 소원이 무엇인지 물었을 것입니다. 음악까지 깔리면 참 감동적인 장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인생의 대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대본입니다. 내가 죽는 것도 상관없고 당신이 죽는 것도 상관없으며,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선포하고 기도하자 단번에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만약 이 싸움에서 제가 졌다면 비참했을 것입니다. 제 어머니만 귀신에게 짓밟히는 것이 아니라 저 역시 귀신에게 짓밟혔을 것이고, 오늘날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도 없었을 것이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제게 와서 억지를 부려도 통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이길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아서, 귀신과 싸우려면 반드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죽음이 두렵다면 싸울 수 없습니다. 제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귀신이든 저는 두렵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씩 삶에 적용해 나갔습니다. 그 누구도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자격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저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제 목숨을 하나님께 드렸으며, 그것이 바로 대가입니다. 입으로 말할 수 있는 대가라면 저는 전부 치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몫이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건물을 짓되 짓다 말지 않고, 싸우되 반드시 이기는 맑고 깨끗한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철저히 준비하십시오. 건물을 짓다 중단하지 말고, 패배하는 전쟁을 하지 마십시오. 제자가 되는 데는 대가가 필요하지만, 그 대가를 치르고 나면 승리하게 됩니다.

4. 대가를 치를 수 없다면 차라리 제자가 되지 않는 편이 낫다

대가를 치를 수 없다면 차라리 제자가 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이것이 제가 많은 이들에게 주는 권면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관찰한 현상이 있는데, 대가를 치를 능력도 없으면서 주님을 믿은 많은 사람이 광야에 쓰러져 죽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어떤 교회에는 중년 여성 성도들이 많았는데, 검사만 했다 하면 암이 발견되어 목사님이 감당하느라 녹초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을 천국으로 배웅하기도 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람이 암에 걸려, 목사님이 감당하느라 혼비백산했습니다. 사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광야에서 죽는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얼마 전에 제가 《열 정탐꾼의 비극》이라는 설교를 하면서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전염병 재앙으로 치심을 받아 죽었습니다. 대가를 치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은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축소판입니다. 그것을 다 읽고 난 후, 저는 생명을 대가로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서 갑절의 기업을 얻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접 기도하고 주님을 믿었으니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데, 제발 그만두십시오! 우리 중에 여전히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저는 반대합니다. 《성경》에는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식의 단순한 논리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접하고 믿는 것은 출애굽을 한 것과 같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로 결단하는 것만이 옳습니다. 제자가 되는 데에는 대가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영접하여 믿는 것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것과 비슷하니, 대가를 치를 수 없다면 애굽에서 나오지도 마시고 그리스도인도 되지 마십시오. 차라리 자신과 인연이 닿는 다른 것을 찾아가십시오.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원수가 될 지경이면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되려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저주는 주님을 믿는 자들을 향해 기록된 것이지, 세상 사람들을 향해 쓴 것이 아닙니다(비록 세상 사람들도 그 법칙을 따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명령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이지 이방인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대가를 치를 수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야 저주라도 덜 받을 것입니다.

5. 이 대가는 곧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여러분은 매우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고 남는 일이며, 보상도 큽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바로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제자가 되는 대가입니다. 머리로 셈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철저히 계산해 본 후에는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 최고의 선택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마땅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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