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지막 세대에 사람은 땅에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늘에 있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가 믿는 복음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임하는 것은 승리하는 교회와 하나님께서 택하신 보배로운 사람들로 이루어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며, 사람과 함께 걸어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믿음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바로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사람은 계속해서 창조하는 법을 배우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택하셔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이 되어 땅에서 왕권을 행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원을 통해 우리를 창조하실 때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회복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뜻을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성경》으로 돌아가 온전함에 이르기까지 힘써 추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약속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허무하게 보내는 인생 가운데서도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하십니다.
서론
우리가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을 읽고 나면 어떤 일을 발견하게 됩니까? 이 마지막 세대에 사람은 땅에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늘에 있는 것입니까? 사람은 땅에 있습니다. 앞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 모두 보배라고 말했는데, 이번 장에서도 21장의 내용이 많이 반복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번 장은 하늘에 관한 것입니까, 아니면 땅에 관한 것입니까? 이때 우리는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에 강한 근거가 있습니까?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낙원에 들어가셨는데, 낙원이 천국입니까? 이런 것들은 아무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임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더 분명한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주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원래 우리가 믿는 복음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임하는 것은 하나의 승리하는 교회 또는 승리하는 교회 공동체와 하나님께서 택하신 보배로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 큰 무리의 보배로운 사람들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이루며, 이 성은 사람들의 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래 오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며,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깊이 생각해 볼 만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며, 땅에 임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이 장에서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땅에 있을 때 하나님의 모습을 살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요한계시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땅에서 그분의 영광을 살아 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형상이 우리를 통해 흘러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또 내게 말했습니다. “이 말씀들은 신실하고 참되다.”(《요한계시록》 21:5, 22:6 참조)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는 모두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신실하고 참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요한계시록》 22:7)
하나님께서 그분의 보배를 계속 선별하신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처음과 마지막이고, 시작과 끝이다. (《요한계시록》 22:13)
우리가 이 성경 구절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자세히 헤아려 봅시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를 말합니다. 시작도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마지막도 하나님으로 끝납니다.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보배를 선별하게 됩니다. 오늘 이렇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죽은 후 천국에 가기를 갈망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 내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 내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와 함께 땅에서 왕이 되실 것입니다.
성 안과 성 밖
《요한계시록》 22장을 읽을 때 또 하나의 의문이 있습니다. 성 안과 성 밖이 구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또 내게 보여 주니,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와 성의 길 가운데로 흐르는 생명수의 강이 있는데, 수정같이 맑았습니다. 강 양쪽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나뭇잎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시는 저주가 없고, 성 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으며,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있을 것입니다.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5)
자기 옷을 씻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생명나무에 나아갈 권세를 받고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4)
이 말씀은 새 예루살렘 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나의 천사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그의 자손이며, 밝게 빛나는 샛별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합니다. “오라!” 듣는 사람도 말해야 합니다. “오라!” 목마른 사람은 오십시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십시오. (《요한계시록》 22:16-17)
새 예루살렘이 임할 때 성 밖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선별하신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들을 택하시고,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을 택하신다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배롭게 여김을 받는 백성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 밖에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잠시 제쳐 두겠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 결론을 얻습니다. 우리가 땅에서 하늘과 같이 사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자세히 헤아려 본다면 우리의 마지막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시대의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보배를 선별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왕이 되어 땅의 만민을 다스릴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왕이 될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과 함께 땅의 만민을 다스릴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나 자신도 계속 새롭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원래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낸다면, 이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이루신 구원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내 안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이 정말 그런 것입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땅에서 왕이 되어 온 땅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창세기》를 돌아보면 무엇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창세기》는 성경 전체의 기초입니다. 《창세기》의 기초는 앞의 11장이고, 앞의 11장의 기초는 처음 세 장이며, 처음 세 장의 기초는 1장입니다. 1장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땅에 창조하셨고,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셔서 이 땅을 다스리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표하여 이 땅을 다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이곳에서 왕이 되어 온 땅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중요하게 여기고 갈망하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민족들을 치실 것입니다. 그가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실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실 것입니다. 그의 옷과 다리에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 가운데 서서 공중에 날아가는 모든 새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이십시오.” (《요한계시록》 19:15-17)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실제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을 다스린다고 하면서 하루 종일 할렐루야만 외치고 실제적인 일은 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입니까? 그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승리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표하고 구원을 베풀며 온 땅을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헤아리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이 원래 우리로 하여금 이 시대에 왕이 되어 영원히 다스리게 하시는 것임을 알아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것은 완전한 창조가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완전한 창조에 아담과 하와가 필요했습니까? 하나님의 창조가 불완전했단 말입니까?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땅에서 그분을 대표하여 왕권을 행사하고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 일을 생각할 때, 실제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하루 종일 할렐루야만 외치면 충분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며 하나님과 함께하도록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땅에서 며칠 동안 지낸 후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땅의 모든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그들을 다스렸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땅에 있을 때 하루 종일 할렐루야를 외치며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그는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림으로써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아담과 하와가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대표하여 땅의 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를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의 뜻이 바뀌었습니까? 사람을 창조하신 때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분과 함께 왕이 되어, 그분을 대표하여 땅에서 왕권을 행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영과 진리로 우리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계승해 온 신앙 체계는 매우 실제적입니다. 어느 정도로 실제적입니까? 형제자매 모두 정당한 일을 해야 하며, 하루 종일 할렐루야만 외쳐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 기도할 때 내 안에 매우 강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 바울은 천막을 만들며 자신의 손으로 자신과 동역자들을 먹여 살렸고, 교회는 점점 더 흥왕해졌습니다. 만일 바울이 그렇게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기도하고 설교만 했다면, 나는 그가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바울은 매일 일하면서도 기도하고 설교했는데, 매일 기도하고 설교했던 베드로보다 더 잘했습니까? 실제적인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우리가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실제적인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실제적인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래 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신앙의 근본적인 것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과 창조의 형상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은 완전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끊임없이 창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땅의 만물을 다스리는 데 사용할 것들을 계속 창조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은 우리가 주님을 믿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다
앞으로 우리는 땅에서 왕이 될 것입니까, 아니면 하늘에서 왕이 될 것입니까? 나는 성경에서 여러분이 하늘에 올라가 왕이 된다는 말씀을 정말 읽지 못했습니다. 하늘에 올라가 왕이 되면 무엇을 다스리겠습니까? 실제로는 새 예루살렘 성이 땅에 임하고,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땅의 많은 것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 밖에서는 무엇을 합니까? 성 밖에도 우리가 다스려야 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실제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할렐루야만 외치는 사람이라면,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나눈 말을 들었다면, 여러분은 여러 해 동안 예수님을 믿으며 받아들였던 것들을 다시 헤아려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한마디를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들어갑니까?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왕이 되고 싶지 않고 청소하는 사람이나 되고 싶습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에는 청소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청소할 위생 시설이 없으니까요.” 이제 나는 깨달았습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 안에는 모두 보배로운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어떤 집을 지을 수 있겠으며, 내가 안식할 곳이 어디 있겠느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므로 다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돌보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하고 통회하며 내 말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이다.” (《이사야》 66:1-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며, 영광스럽고 두려운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지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지켜 행하기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사는 동안 승리하는 모습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낼 수 있겠습니까?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요한계시록》 22:7)
최근 며칠 동안 나는 매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반드시 다루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살아 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겠다.”
며칠 전 나는 한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내가 알고 지내던 한 목회자의 아내였습니다. 사모님은 관 안에 누워 계셨습니다. 5년 동안 암으로 고통받으며 수많은 고난을 겪으셨고, 결국 관 안에 누워 계셨습니다. 나는 곁에 서서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 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겠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떤다’는 말은 매우 깊은 뜻이 있습니다. 나도 때로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품습니다. ‘아, 별것 아니야.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가 조금 연약하면 안 되나?’ 그러나 관 안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생각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고, 영광스럽고 두려운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라!”
나는 정말 조금씩 두렵고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이미 완전하고 거룩해졌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품는다면 가장 무겁고 큰 재앙과 가장 오래 지속되는 질병을 제게 더하여 주십시오. 이제부터는 온전히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겠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으며,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누릴 때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곧 하나님과 함께 땅에서 왕이 되어 왕권을 행사하고, 세세토록 다스리겠습니다!” 이 말씀은 신실하고 참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그것을 증명하지 않으십니다. 믿고 싶으면 믿고,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나는 믿기를 선택합니다. 내가 믿기로 선택했을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나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나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실 때까지 나를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신실합니까!
여기에는 매우 두렵고 떨리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한다. 누구든지 이 예언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다.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을 빼면 하나님께서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서 그의 몫을 빼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22:18-19)
이 말씀을 읽고도 내가 떨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늙은 요한만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모세 시대에도 이미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된다는 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모세 시대에 《신명기》가 기록되고 후에 늙은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면, 그것은 더한 것입니까, 더하지 않은 것입니까? 사실 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의 체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은 완전한 체계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성경》의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완전한 체계를 정리해 내야 합니다. 성경 전체의 중심 줄기는 바로 승리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본래 우리에게 주신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는 것이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땅에서 왕이 되어 왕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땅에서 왕권을 행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전임 사역자들은 모두 실제적인 일을 해야 하며, 기도와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일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가운데 한 형제가 최근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가 계속해서 인테리어 공사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기도했고, 그는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자유함을 얻은 후에도 큰 진전은 없었습니다. 최근에 우리는 그를 데리고 인테리어 일을 시작했고, 벽에 퍼티를 바르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삶 전체가 변화되고 일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자녀의 변화를 보고 하나님께 매우 감사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종교의 억압에서 벗어나야 하며, 모두 실제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제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도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매우 엄격합니다. 이 완전한 체계는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신앙을 살펴봅시다. 만일 여러분이 다른 교회에서 왔다면, 여러분이 들은 이런 종류의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보십시오. 어떤 것이 더해졌고 어떤 것이 빠졌는지 살펴보십시오. 정말 수없이 많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 반드시 성경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고 떠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성경의 말씀을 하나씩 우리의 삶 가운데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살아 내라
어떤 사람은 나에게 구원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은 성경에서 정말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살아 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회복하고 계십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기초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통해 여러분과 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지음받을 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야 합니다.
오늘의 신앙이 이 관점에서 변화된다면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반드시 흥왕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쇠퇴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언 기도를 금하지만, 성경은 “너희는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재앙이 사람에게 임하는 것은 사람이 계속해서 더하고 빼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의 뜻을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뺄 자격도 없고 더할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자격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해야 할지 모른다면 본받는 법을 배우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본받으십시오. 본받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지켜 행하기를 선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매우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일이 있습니다.
그가 또 내게 말했습니다.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봉인하지 마라. 때가 가까이 왔다.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계속 불의를 행하게 하고, 더러운 사람은 계속 더럽게 하며, 의로운 사람은 계속 의를 행하게 하고, 거룩한 사람은 계속 거룩하게 하라.” (《요한계시록》 22:10-11)
이 말씀을 읽고 나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늙은 요한에게 이 말씀을 하신 뜻은 그들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오직 한 가지 일이 있는데,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자녀를 위해 매우 조급해하며, 자녀가 변화되도록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성경에서 그런 일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이때 천사가 늙은 요한에게 말한 것은 사람이 반드시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선택하기 원하면 믿으면 되고, 믿지 않기를 선택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일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이면 그들의 집에 들어가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면 됩니다.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러했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오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그대로 두십시오.
오늘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뜻을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변화될 때까지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말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일을 행하면서, 우리 가족의 선택을 지나치게 염려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안의 많은 것들이 다시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하나씩 다루어져야 합니다. 온전함에 이르기까지 힘써 추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깊이 헤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자기 뜻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셨다면,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됩니다. 누구든지 우리가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차갑게 대하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잘해 주어서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자주 그것은 일방적인 바람이 되고 맙니다. 사실 보배로운 사람은 보배로운 사람이고, 보배롭지 않은 사람은 쓰레기입니다. 쓰레기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존귀한 복음
오늘 우리 교회는 한 가지 일을 했습니다. 교회에 어떤 사람도 억지로 붙잡아 두지 않습니다. 가고 싶은 사람은 마음대로 가고, 남고 싶은 사람은 마음대로 남습니다. 남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와서 생명수를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원하지 않는 사람은 그만두어도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자유를 잃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존귀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믿는 구원은 능력 있는 구원이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존귀한 복음입니다. 존귀한 복음을 값싼 복음으로 만들지 말고, 비천한 복음으로 만들지도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존귀하고 영광스러우십니다. 그분께서 종의 형상을 취하셨지만 종이 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지극히 존귀한 대가이며,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래 큰 능력이 있고 지극히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이 존귀한 형상을 살아 내기 시작해야 하며, 복음을 값싸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우리가 믿는 복음은 지극히 보배롭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주님을 믿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나 역시 밖으로 나가 비천한 모습으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하는 말은 더욱 성경에 부합해야 합니다. 믿으면 믿고, 믿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치유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오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그대로 두면 됩니다.
이 시대에는 더욱 성경에 부합하는 복음이 필요하며,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한 단계씩 개혁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계속해서 영적인 정상에 올라가 하나님을 더 알아가며, 하나님의 얼굴을 뵐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 낼 때까지, 마귀와 원수를 철저히 공격하여 승리할 수 있을 때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라
오늘날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여전히 혼란스럽고 무질서하여 승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교회가 승리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에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로 결단할 수 있습니까? 작은 삶을 선택한다면 사람들의 눈에는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어떨지 말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 계속 힘을 쏟아야 하며, 실제적인 일을 하는 데에도, 종교의 영을 다루는 데에도 계속 힘을 쏟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세워져 있을 것입니다. 나는 많은 교회를 접하면서 많은 목회자들이 암과 심장병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교회를 매우 필요로 합니다. 더 이상 타협하지 말고, 더 이상 마음대로 교회를 세우지 말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데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보배로운 사람들을 그릇에 담고 쓰레기는 버려야 합니다. 그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하나님의 보배로운 사람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이전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4)
얼마나 아름다운 약속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허무하게 보내는 인생 가운데서도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하십니다. 아멘!
요한계시록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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