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我讲的是《创世记》四十四章,主题是《试验人的神》。但是这个主题没有在经文里,我找这个主题找得也很辛苦。其实我最喜欢引用经文作为主题。这一章可能给大家带来不少的困惑,尤其是撇下才能得着。这个逻辑对于大家来说应该有点距离。我巴不得弟兄姐妹能够学会不要光动嘴巴,那样没啥用。可能很多人听我讲的已经听得耳朵都出茧子了,都知道撇下才能得着。可是知道归知道,但是能不能撇下,充其量也就是个流便、西缅、利未。大家如果有困惑的话,赶紧告诉我。我特别喜欢答疑解惑的环节,因为这个环节可以把你的问题一一回答。
Q1:老师,什么是真正的撇下?好像信主的人都在讲撇下,这撇下有什么具体的理解?
法利赛人就是能说不能行。其实我最讨厌的就是能说不能行的人,一到关键时刻就掉链子,那就是真的不行。因为教会能说的人很多,所以我一直在想办法训练弟兄姐妹,可是一直也没想到什么好的办法。有人说:老师,我很爱你。我就问:你怎么爱我呢?你看他的脸色都变了。我很感慨,人的骨子里总是有自私的成分,想要撇下自己的核心利益是很难的。神让我撇下这话多难懂啊。什么是真正的撇下?就是撇下你的核心利益。你爱什么就撇下什么,只能去爱神。你就觉着神很无情。
耶稣对银库坐着,看众人怎样投钱入库。有好些财主往里投了若干的钱。有一个穷寡妇来,往里投了两个小钱,就是一个大钱。耶稣叫门徒来,说:我实在告诉你们:这穷寡妇投入库里的,比众人所投的更多。因为他们都是自己有余,拿出来投在里头;但这寡妇是自己不足,把她一切养生的都投上了。(《马可福音》12:41-44)
这个事就很有意思了,有一些人是把零头奉献了,大头留给了自己。而这个寡妇是把大头奉献了,零头也没留下,这就叫撇下。她是怎么活下去的呢?她肯定不是第一次这么干了。她第一次这么干的时候,内心也是很挣扎的,因为她不知道明天有没有钱花。但是她只有两个铜钱,干脆都献了吧。结果第二天也不知道哪来的钱,就有钱花了。难道我们的神不能供应我们吗?能。所以撇下这事对这个穷寡妇来讲,她撇下的两个铜钱就是她的所有,她的一切。
真正的撇下就是要撇下你的核心利益。你真正看重啥,啥就要成为你的偶像,我们是不能有偶像的。撇下还用具体的理解吗?耶稣不是讲得很具体吗?是不是?千万不要像那些人,真正有的不能撇下,没有的就来一句:如果我有的话,我就撇下。那是在忽悠神,是要受咒诅的。
Q2:老师,我从小到大一直有属世界的梦想,想出名、当明星,想做人上人。最近各种各样的机会一直在破除我里面的这些东西,我里面的东西也有被动摇。我学校里的专业老师一直想让我当歌唱家,我今天上课就跟她说:我做任何工作都可以,我不管当服务员还是当老师都无所谓。她就生气了,说大四不教我了。我以为是我看透了,但我却很低落。这种情况是不是神在试验我?我是不是没有撇下世界上的东西?
这事有点难说。其实人看透了也是可以好好做的。最近我发现文学家和艺术家自杀的都挺多,但是我发现工程师自杀的不太多。除非他把楼建塌了,人要抓他,他跳楼了,因为他活没干好。所以这事很有意思。我就鼓励大家慢慢琢磨,你到底要干啥?难道我们要干啥,神不能为我们安排吗?应该能的。人就是老觉着一撇下,就瞎撇下。你以为那叫撇下,其实不是。人一旦看重某些东西,就会受这些东西的辖制,那就麻烦了。
Q3:老师,你说几乎所有的试探都是来自神,可又不认同别人说癌症是神的试探,是吗?
我说的是试验,不是试探。癌症肯定是咒诅!咒诅种多了,长成了,开始收割的时候,就收了一个癌症。因为我服侍的癌症患者多,癌症病人都是极度自私的人。自私到今天种,明天种,后天种,最后种出癌症来了。癌症长成不是试验。不用试验了,因为已经试验完了。试验了一次又一次,总是选择咒诅,最后得了癌症。那是非常辛苦的,所以弟兄姐妹千万别搞混了。
流便丧失了长子的名分,真的不太有种。西缅和利未就更糟糕了。犹大在这种状况下选择做奴隶,可不是一件开玩笑的事。犹大还是很厉害的一个人,不是选择种癌症。如果犹大和约瑟后来得了癌症,那咱们大家就别说了。在神所喜悦的人中,我真的没看到癌症患者。
Q4:老师,问一下如何撇下?我也知道神是试验人的神,道理都懂,但遇事时,常会沮丧。我该怎样去实践?
心里明白却做不到,其实还是不明白。因为总觉得是吃亏,那能做吗?觉得不断吃亏,就沮丧了。所以,千万别以为自己明白了,其实是不明白。
Q5:老师,约瑟这次选择冤枉便雅悯,就是因为便雅悯是雅各的心头肉,还有一个原因就是要试一试他的哥哥们,同时也要让便雅悯难受一下,是吗?
谁难受都正常。让人难受是很正常的。选择便雅悯是因为他们拿便雅悯起誓,跟他老爸说得好好地,约瑟都清楚。所以,一动便雅悯,全家全完了、全泡汤。
Q6:老师,流便、西缅、利未,他们说了咒诅的话,便雅悯会因他哥哥们的话受到咒诅吗?
应该不会。
Q7:老师,要怎样实际有效地对付自私?
必须在悟性上知道自私是个邪恶的东西。如果你自私,还不知道将来会辛苦难受,就继续自私下去吧。人都以为对自己有益处才自私,都是为了求自己的益处。如果不知道求自己的益处是吃亏,怎么可能改呢?
Q8:老师,犹大是如何学会撇下核心利益,摆上自己的?
问得挺好。犹大这个人在他的哥儿们当中,还是有点东西的。虽然说是因为老大、老二、老三犯错,长子的名分轮到了作为老四的他。但是一个人对神的认识是关键。如果一个人对神不认识,那就毁了。所以,大家要努力地去认识神。
Q9:老师,所有的病都是我们自己种的,不是神的试验,对吗?
神给你一个小病还不悔改,神再给你一个大病又不悔改。咒诅临到人,人自己种了咒诅,还死不悔改,继续往下种。最后神都不用再试验了,直接彰显祂的愤怒就够了。不知道为什么问这种问题?你问完了以后要得着什么?想知道什么?我很诧异人很喜欢问这种垃圾问题。凭着这种悟性,就需要好好学习。
所有的病不是你自己种的,难道是神种的?从一开始,神让你经历一点,再经历一点,但还是不敬畏神,直到神放弃。咒诅都是自己种的,或者是祖先种的,到今天也临到你,一个都跑不了。
Q10:老师,怎样做才是对孩子的撇下?对于孩子的成绩,我知道不要太在乎,但是,学校里的老师说他不爱动脑筋,我想牧养他做一个积极主动的人,但是我又不知道该如何训练和牧养他。
这个问题简单,好好学习吧。不是天天听道吗?好好学,在你的牧区里问你的牧者。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창세기》 4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일이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흥미진진할까요? 이 안에 하나님의 역사가 깊이 감추어져 있다는 점이 흥미진진합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요셉이 한 일을 보지만, 많은 사람들은 요셉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마 4, 5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 요셉일 것입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사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역사를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면 정말 큰일입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시험해 보시려는 것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요셉이 집안의 총무에게 자기 형제들의 자루를 곡식으로 가득 채우고, 각 사람의 자루에 은도 넣게 하며, 베냐민의 자루에는 은잔 하나를 넣게 한 내용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매우 혼란스러워합니다. 요셉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요셉은 이 사람들을 시험해 보고 그들의 본모습이 어떤지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매일 우리를 시험해 보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시험을 받고도 여전히 예전의 형편없는 모습 그대로이고, 어떤 사람은 시험을 받고 보니 보배요 금과 같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이런 일을 했고, 그 결과 형제들은 곡식을 나귀에 싣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강도는 만나지 않았지만, 오히려 불운한 일을 하나 만나게 되었습니다.
집안의 총무가 뒤에서 말을 타고 그들을 따라잡아 말했습니다. “모두 멈추어라! 우리 주인께서 점치는 데 사용하는 은잔 하나를 잃어버리셨다.” 이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보니 시험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집안의 총무에게 대답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한 말은 맹세하듯 확신에 차 있었지만, 사실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우리 주께서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이 종들이 이런 일을 결단코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하니(《창세기》 44:7)
네가 그런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네가 무엇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와 상관없이 이 일은 여전히 네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자루에서 발견한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가지고 와서 주께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주인의 집에서 은금 도둑질을 하리이까? 주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도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창세기》 44:8-9)
이 사람들이 어리석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들이 보지도 못했고, 뒤져 보지도 않았고, 확인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마치 자신들은 아주 결백한 것처럼 말합니다. 많은 일은 여러분이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잔을 여러분의 자루에 넣으셨다면 어디로 도망가겠습니까? 그렇게 큰 확신을 갖지 마십시오.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다”라고 한 이 말을 읽고 나면, 여러분은 이것이 옛날에 야곱이 라반에게 쫓길 때 했던 말과 비슷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매우 비슷합니다. 그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적절했을까요? 그다지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루를 뒤지자, 결국 베냐민의 자루에서 잔이 발견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옷을 찢었습니다. 수색은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을 뒤졌는데 나오지 않자 안심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에게서도 나오지 않자 “드디어 내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의 본모습을 보십시오. 어쨌든 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제 정말 큰일이 났습니다. 그들은 곡식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가 요셉을 만났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였습니다. 그는 그때 아버지에게 했던 약속을 떠올렸습니다. 요셉에게 당시의 일을 설명하자, 이 사람들은 완전히 얼이 빠졌습니다. “이제 일이 터졌구나. 우리 아버지는 비참하게 음부로 내려가시게 되겠구나.” 야곱에게 요셉은 이미 없어진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 베냐민마저 없어지면, 그가 사랑하던 아내가 낳은 아들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고, 그가 사랑하던 아내도 이미 죽었습니다. 늙은 야곱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이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날 수 없나이다. 떠나면 그의 아버지는 죽으리이다.’ 하였더니(《창세기》 44:22)
여러분, 이 일이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많은 부모들도 이와 같습니다. 자기 자녀를 아주 귀하게 여깁니다. 유다가 말했습니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창세기》 44:33)
이렇게 시험하자 유다가 나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자주 사람을 시험하십니다. 밀물이 빠져나가면 누가 벌거벗고 있는지 드러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 때 여러분도 함께 돈을 벌었다고 해서 그것이 여러분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과 큰 관계가 없습니다. 사실 많은 경우 돈을 버는 일은 여러분과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 지역의 집이 살기 좋고, 판매자 중심의 시장이며, 아주 잘 팔리고 잘 임대된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집 열 채를 팔았다고 해서 그것이 여러분의 능력과 관계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여러분이 해낸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장이 바뀌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그때 진짜 실력을 보게 됩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선생님과 큰 관계가 없지만, 학생이 공부를 못하면 분명 선생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말이 듣기에 왜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울까요? 중요한 순간이 되면 사람이 무엇을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는지도 통제할 수 없고, 자루 안에 은잔이 있는지도 통제할 수 없으며, 언제 어떤 일을 만날지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요셉의 어머니가 베냐민을 낳다가 난산으로 죽은 것도 여러분이 통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남편이 여러분을 매우 사랑해도 결국 죽는 것은 막을 수 없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가 강조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역사를 깊이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험한 후에는 여러분이 포기할 것인지 보십니다. 사람을 시험할 때는 반드시 여러분의 핵심 이익까지 건드립니다. 반드시 한 번은 억울하게 만드십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뒤에 요셉에게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습니까? “고발하겠습니다”라고 해도 어디에 고발하겠습니까? 요셉을 고발하겠습니까? 어떻게 고발합니까? 고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주 우리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십니다. 예를 들어 사람 안의 이기심은 매우 깊은 뿌리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목양하면서 자주 사람의 이기심을 다룹니다. 많은 경우 조금 어려워 보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사람을 시험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핵심 이익으로 삼지 마십시오. 성경은 여러분에게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합니다. 내려놓지 않고 하나님과 게임을 하려 한다면, 여러분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컴퓨터와 게임을 해도 이기지 못하면서 하나님과 게임을 하려고 합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시험해 보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일이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 저는 자주 효도하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을 매우 싫어합니다. 사실 제 마음속에는 늘 맺힌 것이 하나 있었는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충분히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은 매우 깊은 저주를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십계명에 나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며칠 전 한 자매가 있었는데, 본질적으로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핵심 이익은 돈과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 자매는 남편의 아버지를 집에서 내쫓으려고 했습니다. 아직 내쫓기도 전에 일이 터졌습니다. 저는 이 일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을 거스릅니까? 남편의 아버지를 내쫓으려는 것은 천 가지 이유가 있어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십만 가지 이유를 들어 논쟁한다고 해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십계명에 기록된 것은 조건부가 아니라, 무조건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집안에 일이 생기고 재산을 잃었으며, 그 자매의 남편이 운전하다가 사람을 치었습니다.
하필이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낙제하면 어떻게 됩니까? 낙제하면 탈락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시험하려 했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이 아버지의 핵심 이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사실 요셉은 형들과 아버지 사이의 대화를 듣자마자 알고 있었습니다.
늙은 야곱은 베냐민을 보배처럼 여겼습니다. 보배처럼 여긴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보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없이 보배처럼 대우받는다면, 그것은 버릇이 나빠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요셉이라면 지나치게 사랑해도 망가지지 않지만, 요셉이 아니라면 지나치게 사랑하는 동안 버릇이 나빠지고 완전히 타락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녀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분들이 있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요셉이 하는 것을 보았느냐? 요셉이 한 일은 내 마음에 맞는 일이었다.” 여러분, 괴롭습니까? 괴롭습니다! 괴로워야 합니다. 여러분을 괴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괴로운 일을 겪어 본 적이 있습니까? 몸부림치지 않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평생 살아가는 것은 괴로움과 씨름의 연속입니다. 여러분이 요셉이라면 이런 일을 겪은 후 이집트의 총리가 될 것입니다. 요셉이 아니라면 계속 시험을 받아도 끝입니다. 조금만 일이 생기면 무너지고, 평생 괴로워하게 됩니다. 괴로운 일을 겪을 때마다 무너지고, 또다시 괴로운 일을 겪어도 여전히 무너집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계속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치 제가 여러분을 해치려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말한 대로 살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말한 대로 살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래도 살아가 보십시오! 하나님 외에 사람의 핵심 이익이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요셉처럼 행동할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요셉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는 말합니다. “하나님, 요셉 같은 사람이 많지 않지만 저도 요셉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수천 년에 한 명 나오는 사람이니, 요셉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시험해 보고 여러분의 반응을 보라
요셉의 형들은 마치 맹세라도 하듯 말했습니다.
“주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도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창세기》 44:9)
그 은잔이 자기들 가운데 없다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확신했습니까? 결국 발견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녀도 그렇게 하게 됩니다. 야곱이 “발견되는 자는 죽을 것이다”라고 한마디 말했기 때문에 결국 야곱의 아내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저는 정말 이 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함부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죽을 것이다”, “어떻게 되면 벼락을 맞아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결정할 수 없으니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벼락에 맞아 죽는다고 해도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이 땅에 사람이 한 명 더 있거나 한 명 적은 것이 지구 전체로 보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화장터에서 한 명 더 화장하거나 덜 화장하거나 결국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반응을 보십시오. 일이 생기지 않았을 때는 말을 아주 자신 있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늘 제가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시죠?” 저는 “저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진심으로 말한 것입니다. 저는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유명해져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차라리 이름 없이 조용히 이 땅에서 제 길을 빨리 다 가고 싶습니다.
저의 유일한 핵심 이익은 저의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의 핵심 이익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사업입니까, 지위입니까? 여러분은 날마다 그런 것들을 떠받들고 있는데, 계속 떠받들다 보면 내려놓지 못하게 됩니다! 한 형제가 제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싸구려 암탉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집닭이든 들닭이든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안 됩니다. 내가 들닭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자신을 마치 전투기처럼 만들어 버리는데, 제가 보기에는 투계가 된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오래 가르쳤는데도 왜 배우지 못했는지 마음이 참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서 무엇을 증명하려는 것입니까? 증명하고 나면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저를 보고 개 같다고 하면 저는 “감사합니다! 개 같으면 좋지요. 저는 그저 개똥일 뿐이고, 특별한 개똥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들닭 같다고 하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저 닭똥 한 무더기일 뿐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일이 간단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늘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만 증명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증명하려 합니까? 자신이 형편없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조금 자랑하자면, 지금까지 저는 대략 백여 권의 책을 썼고, 모두 합치면 적어도 1천만 자에서 2천만 자 정도 됩니다. 압력 관리, 직업 설계, 프로그래밍 관련 책은 더 많습니다. 앞으로는 기업 관리에 관한 책도 하나 만들 생각인데, 그것도 백 권쯤 될 것입니다. 제가 첫 번째 책을 썼을 때 사람들은 “당신 같은 사람이 무슨 책을 쓴다고 그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책 한 권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꽤 좋았습니다. 제가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을까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책을 한 권 썼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기네스북에 심사를 신청했지만 아직 선정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반응을 보시려고 시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들닭이라고 하시면, 그냥 “저는 닭똥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미친 개라고 하시면 “저는 미친 개의 똥입니다”라고 하십시오.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줄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살면 얼마나 피곤합니까! 늘 무언가를 떠받들고 있다가 내려놓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게는 고치지 못하는 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누군가를 부를 때 이름 앞에 어떤 호칭을 붙이는데, 저는 사람의 이름을 그냥 직접 부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면 충분히 좋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최근 더우인에는 누가 체포되었다는 사건들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관리들은 위세를 부리고, 느긋하게 누워 있거나 게으르게 누워 있는 자세를 취하면서 자신들이 아주 대단한 사람인 줄 압니다! 정말 눕고 싶다면 휠체어라도 가져와야 그럴듯하지 않겠습니까? 거기 누워 있는 모습이 마치 호킹 박사처럼 보이고, 손은 이렇고 입은 저렇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시험은 여러분의 반응을 보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처음에 어떻게 말했는지 보십시오.
“주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도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창세기》 44:9)
말할 때는 얼마나 용감했습니까! 그러나 나중에는 모두 줄행랑을 쳤습니다.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자 “노예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노예가 되면 얼마나 괴로운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르우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므온도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겨우 감옥에서 나왔는데 다시 나를 돌아가게 하면 안 된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레위도 꽤 교활했습니다. 마치 밥을 먹고 지갑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이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다른 사람이 계산을 마치면 나오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 세 형제를 보니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방금 전에는 그렇게 용감하게 말하더니, 막상 실제 상황이 되자 휴대폰도 방전되고 사람도 방전되고 머리도 푹 숙여졌습니다. 말만 잘한 것입니다!
최근에 이런 농담이 떠돌았습니다. “내게 1억이 있다면 전부 너에게 기부하겠다.” 참 재미있는 말입니다. 1억이 있다면 정말 전부 기부할 수 있을까요? 10억이 있다면요? 물론 기부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100억이 있다면요? 물론 기부한다고 할 것입니다. 최고의 자선가보다 더 훌륭해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상대방이 말합니다. “그럼 네 차를 기부해.” 그러자 차를 바라보며 “안 돼”라고 합니다. 앞에서 한 말은 “만약”이라는 조건이 붙은 말이었습니다. “만약”이라는 말은 사람을 속이는 데 사용됩니다. 1억, 10억, 100억이 있다고 가정하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차는 안 됩니다. 실제로 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1억이 있다면 그것도 말할 수 없고, 기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는 순식간에 풀이 죽었습니다. 이제 유다가 주인공으로 나설 차례였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꽤 용감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바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고,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중요한 순간을 맞으면 서둘러 앞으로 나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주 시험하시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무엇을 하든 늘 가장 앞에 나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피곤하지 않습니까? 피곤합니다.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합니다. 그러나 일은 반드시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야 하며, 하나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숨지 마십시오. 책임을 져야 할 때는 책임을 지십시오.
과거에 제가 한 일들은 모두 책임져야 할 때 책임을 지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습니까! 그렇다고 몸이 망가지거나 죽을 정도로 지치지는 않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자주 제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중요한 순간에는 잘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 보이지 못하면 얼마나 손해입니까! 유다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만약 유다가 무너지고 동생이 나섰는데 유다도 풀이 죽어 버렸다면, 방금 전까지 맹세하던 모습은 끝입니다. 그러면 장자의 명분은 유다와 아무 관계가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편의 연극을 연출하고 계셨습니다. 요셉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시험했을 때 유다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시험하자마자 무너졌다면, 결국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연극을 연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반응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게 1억이 있다면 다 기부하겠다” 같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최근 한 암 환자를 위해 사람들이 차례로 그와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선생님은 왜 오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번 차례는 여러분 아닙니까?” 그래도 여러분 차례가 되면 저도 들어가서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데 보니 늘 발바닥에 기름을 바르고 아주 빠르게 빠져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주 옆에서 지켜봅니다. 때로는 저도 요셉의 역할을 해 봅니다. 곡식 자루에 은잔을 넣고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보십시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시험하시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걸핏하면 맹세하고 옷을 찢으며 굵은 베를 입고 재를 뒤집어쓰지 마십시오. 자신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항상 강해지고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베냐민도 참 재미있습니다. 야곱에게 지나치게 사랑받아 버릇이 나빠졌고, 일이 생겨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크게 놀라 다리가 풀렸고, 요셉의 방에 들어갈 때는 바지에 오줌을 쌀 정도였습니다.
뒤에 일어날 일은 아무도 모른다
“어리석은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그 후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전도서》 10:14)
아무도 뒤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뒤에 일어날 일”은 여러분이 죽은 후의 일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을 뜻합니다.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돈을 벌 때는 자신이 매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다가, 돈을 잃고 나서야 자신이 별로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많은 경우 사람들을 지켜보는데,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었어도 가까이 지내 보면 특별한 장점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많은 시험을 겪게 하셔서 당황하게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당황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가 일이 자신에게 닥칠 줄 알겠습니까? 누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시험하실 줄 알겠습니까? 그런데 시험을 받고 나서 자신을 대단한 음식처럼 여기고 늘 떠받들고 있으니 괴롭지 않겠습니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공부 본문은 《전도서》입니다.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는 것 외에는 모두 의미가 없습니다. 돈이 있어도 의미가 없고, 돈이 없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알고 있습니까? 저는 돈이 없을 때도 비굴하게 굴지 않았고, 돈이 있을 때도 거만하게 굴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장래에 어떤 일을 만날지에 대해 자신이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언제 머리가 아플지도 통제할 수 없고, 언제 배가 아플지도 통제할 수 없으며, 언제 심장에 문제가 생길지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잘 배우십시오.
저는 살아 있는 것 자체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먹을 수 있으면 질 낮은 식용유로 만든 음식도 먹습니다. 여기서 다시 어려운 문제를 내어 여러분의 반응을 보겠습니다. 어떤 그릇에 방금 대변을 담았다가 깨끗이 씻었다면, 여러분은 그 그릇을 사용하겠습니까? 저는 사용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사용하지 못한다면 심리적인 장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식탁 위에는 날마다 대변을 담는 것과 같은 대장이 한 접시 놓여 있고, 사람들은 맛있다고 합니다. 제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 외삼촌이 말하기를 “나는 돼지 대장을 너무 깨끗하게 씻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씻고 나면 향이 없어져”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변을 담았던 그릇은 깨끗이 씻어도 사용할 수 없다고 하면서, 늘 대변을 담는 것은 배 속에 넣습니다. 저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대장이든 소장이든 다 먹습니다. 어디에서 자는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누울 자리만 있으면 잘 수 있습니다. 사는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다만 늘 일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뒤에 어떤 일을 만날지 모르고,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우리가 결정할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약해졌을 때 일본군이 쳐들어오면 피난을 가야 합니다. 그때는 대장이든 소장이든, 대변을 담았는지 아닌지를 따질 겨를도 없습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은 지루하고 쓸데없는 일을 잔뜩 벌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때는 사람들이 사소한 일과 아주 작은 일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처리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정작 일을 하는 것은 잘하지 못합니다. 일을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괜찮은 것도 아닙니다. 일을 잘하면서도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다면 곤란해집니다.
사람은 잘 견디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요셉처럼 10년 동안 노예로 살아야 한다면,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사람은 상황에 맞게 처신할 줄 알고, 말할 줄 알고, 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요셉의 자리에 이르렀는데 그런 능력이 없다면 끝장입니다. 평생 감옥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데 귀신이 함께한다면 끝난 것 아닙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것들에 지배당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의 핵심 이익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많이 말했는데 핵심을 붙잡았습니까? 뒤에 일어날 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사람의 일생이 모두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경우 우리의 선택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뤄청의 점괘”라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마오궁은 어떤 사람입니까? 당 태종의 책사로서 위로는 천문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를 알아 제갈량이 다시 살아난 것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뤄청이 73세까지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뤄청이 또 한 점쟁이를 만났는데, 그 점쟁이는 그가 23세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의 핵심 이익을 위해 해로운 일을 한 번 할 때마다 수명이 10년씩 줄어들고, 모두 다섯 번의 해로운 일을 해서 50년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3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더 줄어들었다면 사람 자체가 사라졌을 것이고, 진작 죽었어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시험하실 때 그 일에는 우연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에 저주를 너무 많이 심었다면 이제 그것을 삼키고 천천히 감당해야 합니다. 자신이 심은 것을 자신이 먹는 것입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시험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뒤에 일어날 일을 여러분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일 일도 알 수 없습니다. 노인들이 흔히 말합니다. “오늘 양말을 벗었어도 내일 다시 신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자신의 능력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다는 기꺼이 자신을 드렸다
“이제 청하건대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창세기》 44:33)
유다는 말했습니다. “제가 노예가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유다는 손해를 본 것입니까, 아니면 이익을 얻은 것입니까? 유다는 이미 이 일을 분명히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정말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다가 왜 장자의 명분을 얻었습니까? 이때 정말 용감하게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노예가 되면 집에 있는 다말은 어떻게 합니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셀라와 베레스는 어떻게 합니까? 역시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다말이 잘 돌보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돌아가서 내가 이집트에서 노예가 되었다고 소식을 전해 주십시오.” 여러분이라면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유다는 쉽지 않은 상황에 있었습니다. 두 아들이 죽고 하나 남은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막내아들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야곱과 비슷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말이 창녀로 변장하여 그와 관계를 맺고 셀라와 베레스를 낳았습니다. 이제 유다가 노예가 될 차례였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자신을 드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유다는 몸부림쳤습니까? 몸부림쳤습니다. 누가 몸부림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유다는 한바탕 몸부림친 후에도 승리를 선택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바탕 몸부림친 후 도피를 선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사람이 되면 정말 큰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천천히 알아가면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한 사람이 되고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닭을 훔치고 개를 훔치는 사람처럼, 언제 어디서나 발바닥에 기름을 바르고 도망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늘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배가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유다 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을 내려놓으십시오.
내려놓는 사람이 얻는다
왜 이 장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지 않으시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귀신이 와도 여러분을 한 번 시험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일을 다스리지 못하시겠습니까?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께서 신자라는 사실만으로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주님을 믿으면 대단합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내려놓아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마가복음》 10:29-30)
여러분은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나 남편의 아버지를 집에서 내쫓지는 마십시오. 제가 어머니의 간증을 몇 번이나 이야기했습니까? 제 어머니는 매우 효성이 깊었습니다. 세상에서 제 어머니처럼 효성 깊은 며느리는 정말 몇 명 찾기 어렵습니다. 정말 복된 사람입니다. 제가 아무리 말해도 여러분은 많이 들은 뒤에 해야 할 일은 하고, 무너질 사람은 계속 무너집니다. 중요한 순간에도 여전히 자신의 핵심 이익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시 강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시험하셨을 때 이삭은 사람들과 우물을 두고 다투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사람의 핵심 이익입니다. 야곱도 외삼촌 라반과 일일이 따지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속한 것을 더해 주셨습니다. 요셉도 자기 가족과 따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유다의 차례가 되었고, 마침내 책임을 질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집안에서 첫째는 요셉이고 둘째는 유다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이 이런 영적 원칙을 붙잡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평소에 훈련하지 않으면 그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작은 일도 내려놓지 못하면서 큰일을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내게 1억이 있다면 기부하겠다”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것은 단지 “만약”일 뿐입니다. 정말 1억이 생겼을 때 후회하면 곤란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배웠습니까? 요셉은 가족을 시험하기 위해 모의 실험을 했습니다. 가족들은 그가 요셉이라는 사실을 정말 몰랐고, 앞으로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정말 몰랐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믿음으로 걸어가십시오.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망칠 수 없습니다. 오직 여러분 자신의 선택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길게 말했는데, 듣기 좋았습니까?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44장 성경 본문
44:1 요셉이 집안의 총무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이 사람들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 사람의 돈도 각 사람의 자루에 넣으며,
44:2 내 은잔과 그 소년이 양식을 살 때에 낸 돈도 그의 자루 아귀에 넣으라.” 하니, 총무가 요셉의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44:3 아침이 밝을 때에 그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를 보내니라.
44:4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집안의 총무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을 따라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44:5 이것은 내 주인이 마시며 점치는 데에 쓰는 잔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행하니 악하도다.’ 하라.”
44:6 총무가 그들을 따라가서 그들에게 이 말을 하니,
44: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우리 주께서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이 종들이 이런 일을 결단코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44:8 우리 자루에서 발견한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가지고 와서 주께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주인의 집에서 은금을 도둑질하리이까?
44:9 주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도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44:10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대로 하라.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내 종이 될 것이요, 나머지는 죄가 없으리라.” 하니,
44:11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각기 자루를 여니,
44:12 그가 큰 자부터 시작하여 작은 자에게까지 수색하였더니,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었더라.
44:13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나귀에 짐을 싣고 성읍으로 돌아가니라.
44: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곳에 있더라. 그들이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44: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44: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님께서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44: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에게로 올라가라.”
44: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종에게 한 말씀을 아뢰게 하시고,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44:19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에게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44: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늙었고, 그 노년에 얻은 작은 아들이 있습니다.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는 그만 남겨 두었으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합니다.’ 하였더니,
44:21 주께서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내가 그를 직접 보리라.’ 하셨나이다.
44:22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날 수 없나이다. 떠나면 그의 아버지는 죽으리이다.’ 하였더니,
44:23 주께서 종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의 막내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44: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더니,
44:25 우리 아버지가 이르시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 오라.’ 하시기에,
44: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면 내려가겠나이다. 막내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였나이다.
44:27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는데,
44:28 하나는 내게서 나가 버렸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정녕 찢겨 죽었다.” 하였고, 지금까지도 그를 보지 못하였거늘,
44:29 너희가 이 아이마저 데리고 가다가 그에게 재앙이 닥치면, 너희가 내 흰머리를 슬픔 가운데 스올로 내려가게 하는 것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44:30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그 아이가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면,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44:31 우리 아버지가 아이가 없는 것을 보시는 즉시 죽으리니, 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의 흰머리를 슬픔 가운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이다.
44: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이 아이를 담보하였으며, 이르기를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아버지 앞에 죄를 지리이다.’ 하였나이다.
44:33 이제 청하건대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
44: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앙이 내 아버지에게 미치는 것을 보게 될까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