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돈주머니'라는 아주 중요한 주제를 나누고자 합니다. 돈주머니라는 말의 주제는 무슨 뜻일까요? 바로 품삯을 받아 구멍 뚫린 전대에 넣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죽어라 돈을 벌어 주머니에 넣지만, 결국 다 새어나가 버립니다. 그나마 돈주머니만 샌 것이라면 다행입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새는 정도가 아니라 눈사태처럼 새어나가 결국 온통 빚더미에 앉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돈주머니에 구멍이 났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 자매님이 해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형제자매가 온갖 속박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자매님은 맘몬의 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평생에 걸쳐 돈이 너무나도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자매님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일을 시작했는데, 일을 시작하자마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월급날만 되면 병원에 입원해서 링거를 맞아야 했습니다.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번 입원하면 꼬박 일주일씩 누워 있고, 다음 달에 또 월급을 받으면 또 병원에 들어가 링거를 맞아야 했습니다. 정말 기괴한 노릇이었습니다! 때로는 번 돈이 병원비조차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돈만 생기면 아팠고, 이후 그녀의 몸에 온갖 질병과 재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수년 전, 그녀는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을 알게 되었고 웹사이트에서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저희를 찾아왔으며, 최근에야 비로소 맘몬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방을 얻었습니다.
사실 제가 전하는 것은 이전 시리즈인 '속박에서 자유를 얻는 시리즈'입니다. 돈주머니가 새어버린 삶의 모습은, 구멍 난 주머니를 쥐고 고행승(苦行僧)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이 노래를 들어보셨습니까? 남쪽에서 북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노래를 가장 잘 부른 사람은 어느 기업가였는데, 그는 모든 것을 원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구멍 난 주머니를 쥐고 걷다 보니, 돈주머니는 다 새고 결국 거지 같은 꼴로 살아가게 됩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사람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도 불분명하고, 어떻게 돈이 사라졌는지도 모호합니다. 이는 영적으로 아주 이상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찌어찌하다 보면 돈이 늘어나고, 어떤 사람은 이것저것 하다 보면 돈이 다 사라지며, 어떤 사람은 온통 빚만 남깁니다. 한 형제님은 참 바쁘게 살았는데, 그렇게 바쁘게 일하다가 그해에 수천만 위안(천팔백만)을 날렸습니다. 그는 평생 돈을 적잖게 탕진했습니다. 사업을 하는 분이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의 관리 방식에 문제가 있어 보였지만 사실 관리 문제라기보다는 그 사람 뼛속 깊이 자리 잡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실금으로 새고, 어떤 사람은 혈루증으로 피가 새고, 어떤 사람은 항문이 새며, 어떤 사람은 돈이 샙니다. 인생에서 그 어떤 것이 새든 감당하기 힘든 고통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이 구멍 난 돈주머니를 반드시 고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구멍 난 돈주머니를 고치지 않으면 그 구멍은 점점 더 커져서, 돈주머니가 아니라 빚주머니가 되어버립니다. 빚만 가득 차서 걸핏하면 사기를 당하는데, 대체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돈주머니는 온데간데없고 주머니 전체가 하나의 큰 구멍이 되어버려 결국 빚주머니로 바뀌고 맙니다. 그 빚주머니를 가득 채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최근 제가 연구한 것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사람의 돈주머니에 구멍을 뚫어 새게 만드신 분이 누구일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최근 저는 사람이 어떻게 속박을 당하게 되는지 한 가지를 관찰했습니다. 저는 마귀가 일하는 방식을 깊이 연구하고 싶어졌습니다. 훗날 《마귀의 작동 원리》라는 책을 쓸 생각입니다. 이 마귀는 참 흥미롭습니다. 칼을 들고 여러분의 목에 들이대며 "선악과를 먹을래 안 먹을래? 안 먹으면 죽인다"라고 협박하지 않습니다. 사탄도 칼을 목에 들이대며 "나를 사랑할래 안 할래? 안 사랑하면 베어버린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그렇게 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어떻게 일할까요? 사탄은 단지 하나의 거짓말을 풀어놓을 뿐입니다.
제가 최근에 묵상해보니, 사탄이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 사람의 마음에 거짓말을 심어놓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심을까요? 사탄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는 돈을 의지해야 해. 선악과를 먹어야 지혜로워져. 봐봐, 세상에 돈 없이 되는 게 어디 있어? 아프면 돈이 있어야 치료받잖아! 돈 없으면 어떻게 살래?" 사실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바쁘게 살아야 해, 네 자신을 의지해야 해, 능력을 키워야 해,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와 《왜 사는가》를 열심히 읽어야 해." 사람이 이러한 거짓말을 믿는 순간 망하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에 대해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현실인데요"라고 하신다면 곤란합니다. 우리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사는 것입니까? 화인명정신학은 이미 한 가지 진리를 증명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간 이식을 막으려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합니까? 신장을 바꾸고 심장을 바꾸고, 아예 머리까지 통째로 바꿔버릴까요? 머리를 이식하고 나면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를 텐데, 얼마나 돈이 많아야 그것을 다 감당하겠습니까?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없는 곤경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우리 교회에 한 어린 형제가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학원 사업을 해서 돈을 아주 많이 벌었습니다. 십오륙 년 전의 일인데, 그 형제가 제게 말하기를 "우리 아빠는 매일매일이 괴롭대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내가 너희 아버지와 이야기를 한번 해보마"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제야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손에 백만 위안을 쥐고 있었는데, 십여 년 전의 백만 위안이면 선전(深圳)에 아파트 여러 채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습니다.
제가 그분께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류 목사님, 제가 신장이 망가지면 30만 위안이 들고, 간이 망가지면 40만 위안이 듭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만약 뇌가 망가지면 그 백만 위안은 다 날아가겠네요." 그는 매일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백만 위안이 없는 다른 사람들은 매일 간이 망가질까 신장이 망가질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싶었습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믿게 되면 결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 이러한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믿고 저주 아래 놓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귀신들을 보내어 여러분을 치십니다. 간이 망가지든 신장이 망가지든, 소변이 새든 대변이 새든, 그중 하나만 새어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인데, 혹은 여러분의 돈주머니를 새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재앙을 내리기도 하시고 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사람이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맘몬과 마귀의 역사는 거짓말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귀가 칼이나 총을 목에 겨누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짓말을 따라가면 저주가 임하고, 하나님께서 귀신들을 보내어 온갖 곳에 구멍을 뚫어 새게 만드십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가 새고, 어떤 사람은 두세 가지가 새며, 어떤 사람은 네 가지나 샙니다. 어떤 분이 소변이 샌다고 하길래 제가 말했습니다. "계속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조금 지나면 대변도 샙니다. 그러면 정말 큰일 납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실금하게 되면 다 새는 것 아닙니까? 사람이 저주를 받으면, 귀신이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저는 이것이 참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서유기》에 나오는 이야기와 묘하게 일치합니다. 《서유기》에 나오는 요괴들이나, 삼장법사 사제 일행이 서천으로 불경을 가지러 가며 겪는 81가지 고난은, 그 어느 것 하나 하늘의 신선들과 무관한 것이 없으며 다 위에서 허락된 일들이었습니다.
훗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요. 여러분이 불행을 겪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이 너무하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팔을 꺾을 수 없습니다. 팔이 다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허벅지로 하나님의 새끼손가락을 대적하려 해도 이길 수 없는데, 하물며 팔로 다리를 꺾으려 하겠습니까? 우리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방법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면, 제가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태어났는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절대적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머리에 구멍이 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머리는 여전히 여러분 자신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영적 법칙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을 받고 어떤 사람이 저주를 받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어떤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며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지 정해 두셨습니다. "하나님! 그렇다면 저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사실 저의 논리 체계는 아주 단순합니다. 우리는 저주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저주 가운데 살면 아무리 애써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참 재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저는 제 자신이 꽤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재주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깟 재주로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도구를 쓰실 필요도 없이, 단 한 번에 저를 완전히 꺾으셨습니다. 얼마나 재수가 없게 하셨는지 돈주머니는 매일 새어나갔고 마음은 몹시 괴로웠습니다. 훗날 저는 하나님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했을 때 저는 한 가지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찾아 나아갔고, 마침내 제 삶의 저주를 끊어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오프라인 교회 시절이라 주일이면 교회에 가야 했습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이 버스 저 버스 갈아타며 교회에 도착하면 한 시간 반이 걸렸고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습니다. 싱가포르의 날씨는 매우 무덥습니다. 다행히 교회 안에는 에어컨이 있어 아주 시원했습니다. 하지만 설교가 끝날 때쯤이면 몸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여서, 나중에는 패딩을 챙겨 교회에 다녔습니다. 밖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다가 안으로 들어가면 패딩을 입어야 했습니다. 패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주가 끊어졌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주일 예배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으로 인해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 집의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저는 그런 일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의 하나님으로 인해 사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교회에 다녀온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수년 동안 저는 단 한 번도 주일 예배를 빠진 적이 없습니다. 제 뼛속 깊이 내가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모든 것은 내려놓을 수 있어도, 결코 나의 하나님만은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어제 제가 어떤 간증문을 수정했는데, 오늘 방송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간증이 너무 많아서 창고에 잔뜩 쌓여 있습니다. 간증이 쏟아져 들어오다 보니 몇 주 동안 방송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간증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간증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한번 방송하면 40분 넘게 걸렸는데 그러면 안 되기에 지금은 15분 안팎으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 중에 한 형제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불타오르자 사업이 저절로 굴러들어 왔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어떻게 사업이 저절로 들어왔을까요? 자초지종을 간단히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그의 사업 파트너가 이익을 독차지하려고 몰래 고객과 직접 연락하여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어떤 대표가 이 소식을 듣고 훨씬 파격적인 가격과 조건으로 그 사업을 가로채 버렸습니다. 결국 동업자는 헛수고만 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 대표가 사업을 따내고 계약까지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인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대표가 바로 우리 형제님의 친구였습니다. 그가 형제님을 찾아와 상의하는데, 알고 보니 바로 그 고객의 프로젝트였습니다. 결국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형제님에게로 돌아온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동분서주하며 정신없이 뛰었지만, 이 형제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는 온종일 무엇을 했을까요? 종일 양들을 목양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려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열심이었는데, 결국 목양을 하다가 큰 계약을 따냈고, 그것도 아주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양은 곧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업을 빼앗아 여러분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시면, 누가 그것을 가로챌 수 있겠습니까? 헛된 일에 바쁘게 뛰어다니게 만들어 그들의 돈주머니에서 새어 나온 재물이 이 형제님의 돈주머니로 흘러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믿음의 결단입니다. 이 형제님은 돈주머니가 새는지 안 새는지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나는 온 힘을 다해 목양할 것이며,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라는 믿음을 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처럼 겉으로는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갈등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으로는 가게 매출을 걱정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 믿음이 없고, 늘 '목양도 해야 하고 사역도 해야 하지만, 내 가게는 어쩌고, 내 사업은 어쩌고, 내 계약은 어쩌지?'라는 생각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겠습니까? 그것은 귀신의 손만 움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서 반드시 믿음으로 전진해야 하며, 그래야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건축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반드시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돈주머니가 새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주머니에 구멍을 뚫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빚주머니를 안겨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돈주머니는 온데간데없어지고 구멍이 너무 커져 빚더미로 변해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서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저주입니다. 신명기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된 책입니다.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은 축복을, 15절부터 68절까지는 저주를 말씀하며, 이는 그리스도인을 향한 경고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내리셨던 질병뿐만 아니라 애굽 사람에게 내리지 않은 모든 질병까지 여러분에게 더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풍족할 때에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어 여러분을 치실 것입니다. 우리는 매사를 면밀히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2. 본문 말씀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말씀은 학개 1장 6절입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 1:6)
3.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우리 자신을 어떻게 돌아보아야 하는지 알게 하시고 주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심을 깨닫게 하옵소서. 또한 주님의 역사를 깊이 깨달아 은도 주의 것이요 금도 주의 것임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부어주셔서 우리 자신을 살피게 하시고, 우리의 돈주머니에 구멍이 뚫려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 자신을 성찰하여 우리의 마음이 오직 주님께 있는지, 주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기를 원하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주께서 학개 시대에 이 일을 행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이 시대에도 우리 가운데 동일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오늘 우리 마음을 감동하시고 격려하사 우리 자신의 행위를 똑똑히 보게 하옵소서. 우리 안의 믿음을 보게 하시고, 오늘 주께로 돌이켜 주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게 하사,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 크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전대이시며, 우리의 모든 것 되십니다. 우리를 기억하시고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주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주의 기이한 역사를 나타내사,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이 땅에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고 번성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의 배경
이 말씀은 《학개서》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학개서》는 단 두 장으로 이루어진 아주 짧은 성경입니다. 이 책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온갖 비참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많이 뿌렸으나 수확이 적었습니다. 곡식더미에 다가가 이십 고르를 기대했으나 십 고르뿐이었고, 농업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분명 이십 고르는 나올 것이라 여겼는데 막상 거두어보니 십 고르에 불과했습니다. 참으로 기괴하지 않습니까? 포도즙 틀에 오십 발을 길으러 갔으나 이십 발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폐풍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치셨으니, 이것이 바로 새어 나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나마 《학개서》에서는 다른 것들이 새는 일, 요실금이나 혈루증 같은 것은 언급되지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대대로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습니다. 그들이 살인이나 방화, 강도질을 해서가 아니라, 오직 한 가지, 늘 하나님의 일에 쓸 시간을 아껴 자기 배를 채우는 데 쓰려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도 그렇다면, 여러분의 돈주머니를 살펴보십시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행사를 도무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모세 시대를 지나 여호수아 시대에 이르러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리는 건 시간 낭비야! 초막절? 너희들이나 먼저 지켜라, 우리는 나중에 지킬게." 왜 그랬을까요? 비용을 아끼려는 계산이었습니다. 명절 성수기에는 호텔이 하루에 천 위안이지만, 초막절이 지나고 나면 백 위안이면 되니 잇속을 챙기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잇속을 챙겨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잔머리를 굴리다가는 돈주머니에 구멍이 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얄팍한 이득을 보려다가 결국 돈주머니가 다 새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악습이 쌓이고 쌓이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어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고 결국 나라는 망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후, 하나님께서는 70년이라는 기한을 정해 주셨습니다. 70년이 지나면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 시기의 역사가 《다니엘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70년의 기한이 차가는 것을 깨닫고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계시를 받아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스룹바벨이 백성을 이끌고 귀환하게 되었는데, 그는 포로로 잡혀갔던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 곧 유다의 엘리트 계층을 이끌고 돌아왔습니다. 스룹바벨은 유다로 돌아와 '총독'이라는 관직을 맡았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한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 장관이었습니다.
스룹바벨과 함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대한 집회를 열었고, 집회가 끝난 후 다들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은 여전히 황폐한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황폐한 성전을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은어떻게 말했습니까?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를 망하게 하시고 여러분을 바벨론으로 보내셨다가, 이제 다시 기회를 주셔서 바벨론에서 건져내셨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으로 바뀌었고, 페르시아의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스룹바벨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 곧 유다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입니까? 기회가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집을 꾸미느라 바빠서 성전을 건축할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과거의 악습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교회의 요구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제가 왜 높은 기준을 요구할까요? 여러분이 더 많은 축복의 기회를 얻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구멍 난 돈주머니를 쥐고 헛된 일에 동분서주하다가 결국 빚더미에 앉는 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스룹바벨의 사역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나아오라! 다 함께 하나님의 성전을 짓자!"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시간이 없었습니다. 무엇을 하느라 바빴습니까? 자기 집을 단장하느라 바빴습니다. 시간이 없다고요? 그렇다면 페르시아 제국에서, 그 바벨론에서 돌아온 목적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보이십니까? 사람의 마음 중심이 얼마나 더러운지요! 오늘날 우리 교회는 스룹바벨 시대와는 다릅니다. 당시에는 외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은 여전히 황폐한데, 이스라엘 백성은 날마다 자기 일에만 바빠 자기 안락한 삶만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년 전부터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안일한 일상에 갇혀 살아서는 안 되며, 반드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여러분이 바쁘게 뛴다고 하나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바쁘게 살아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부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사, 그 바쁨의 결과가 빚더미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분주하게 살았지만, 결국 많이 뿌려도 거둔 것이 적었고,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셔도 흡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품삯을 받아도 구멍 뚫린 전대에 넣는 꼴이 되었습니다.
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더 답답해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저주 가운데 사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을 다시 한번 감동시키셔야 했습니다. 왜 감동시키셔야 했을까요? 그 역시 온전치 못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격려하시고 감동시키셔서 백성을 이끌고 성전을 건축하게 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해 그들이 왜 저주 가운데 살고 있는지를 밝히 알려주셨습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번 보십시오. 각자 바쁜 일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룹바벨은 왜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야 했을까요? 백성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굳세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총독 스룹바벨의 사역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성전은 황폐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더러워지니, 결국 귀신들이 찾아와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복을 도둑질해 갔고, 모든 것이 새어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거룩함이고 무엇이 부정함입니까? 사람은 너무나 쉽게 부정해집니다. 거룩함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새하얀 수건에 검은 먹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 사람들의 눈에는 오직 그 검은 먹물 자국만 보입니다. 부정한 것은 순식간에 온통 더럽혀집니다. 전체가 깨끗해야 비로소 온전히 깨끗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으며, 불신이야말로 가장 큰 부정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사람은 반드시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담대하게 요구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담대하게 이렇게 결단하고 행할 수 있습니까? 우리 화인명정신학이 걸어온 이 길은, 곧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끝까지 걸어왔습니까? 그렇습니다. 걸어왔습니다. 저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설령 나 혼자 남는다 할지라도 나는 끝까지 이 길을 갈 것이다." 감사하게도 혼자 남지 않았고, 저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함께 남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많은 목회자들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에 대해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들은 "그건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왜 불가능합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은 마땅히 거룩한 요구를 받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 다윗 한 사람이 일어나면 온 나라가 다윗의 나라가 되고, 사무엘 한 사람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백성이 사무엘을 따르는 법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구역장(소그룹 리더)으로서 몇 사람을 목양할 때, 그들에게 담대하게 요구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여러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여러분과 함께 복을 받게 됩니다. 만약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간다면요? 떠나간 사람은 우리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니, 교회는 오히려 더 거룩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맘몬의 저주와 맘몬의 속박을 완전히 깨부수고,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 곧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 클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 전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이곳에 내가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러분은 금도 하나님의 것이요 은도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계십니까? 만약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 스스로 지켜보십시오.
사람이 돈에 속박되어 사는 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가장 비참한 일이 무엇일까요? 온 우주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극이며, 그 결과는 헛수고뿐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점차 깨달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필요로 해서 성전을 짓자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이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여러분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왜일까요? 여러분의 돈주머니는 새고 있지만, 제 돈주머니는 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항문이 새지만, 제 항문은 새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비행기 날개에 묶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이 길로 끌고 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을 때 반드시 복을 받게 되며, 하나님의 나라에는 가난한 자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믿지 못하고 자신의 분주함만을 의지하다가 온몸에 빚만 가득 짊어지게 되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분주하게 사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시간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릴 용의가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데 드릴 마음이 있으십니까? 걸핏하면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그 시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저 자기 일에만 매달려 바빴으니 어찌 밑 빠진 독처럼 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자라면 한 가지 분명한 특징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사 인장(도장)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게 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자들이 곧 인장이 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인을 치게 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께서는 인 치심을 받은 자들을 온갖 재앙과 고통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제3차 세계대전이라도 일어난다면 그것은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핵폭탄이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끔찍한 파멸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인 치심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위험한 지경에서 여러분을 건져내실 것입니다. 이 재앙들은 여러분을 위해 예비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 말씀의 배경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스룹바벨 시대가 지나간 후 성전은 다시 황폐해졌습니다. 기이하지 않습니까? 또다시 자신들의 안일한 일상으로 돌아가 버렸고, 그래서 기록된 책이 바로 《말라기서》입니다.
수십 년이 흐른 후 에스라가 돌아와 하나님 중심의 삶을 다시금 강조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잇속만 챙겼고 하나님의 마음은 또다시 찢어졌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일으키사 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보내 성벽을 재건하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뼛속까지 자기 안일한 삶에만 집착하여, 자식 문제, 집 문제, 차 문제 등 오직 자기 일에만 얽매여 살아갑니다. 그 길이 곧 멸망의 길임을 정녕 모른단 말입니까? 그 길이 멸망의 길이라는 것은 성경이 이미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한마음으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며, 아주 드문 일인 동시에 매우 귀한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장으로 삼아 주님의 백성들을 인 치실 것입니다. 바라건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크게 들어 쓰시고 일으키사,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5.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여러분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합니다. 무엇을 살펴야 할까요? 자신의 돈주머니가 새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야 합니다. 돌아보면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 바로 내 이야기구나."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충분한 은혜를 주셨고, 우리 또한 각자 분주하게 매달리던 일들을 내려놓을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바쁘게 살다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아등바등 살다가 온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분주하게 살다가 온 신경이 곤두서고 지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온갖 질병에 시달리지 않았습니까?
어떤 사람은 너무 바쁘게 살다가 항문이 새게 되었고, 어떤 사람은 바쁘게 살다가 빚더미에 앉거나 심지어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지금 우리의 상태가 어떠한지 점검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매일 성찰의 글을 쓰라고 하지 않습니까? 비록 매일 쓰는 반성의 내용이 똑같다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사실 여러분의 문제는 그리 많지 않으며, 고작 몇 가지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생각의 틀을 새롭게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하는 모든 수고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학 1:10-11)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의문을 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너무 가혹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하느니 차라리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해왔는지 점검하는 편이 낫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목양 상태를 점검하여, 목양이 황폐한 지경에 놓여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도대체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우울증이 오고 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 가운데서 치유를 받았습니다. 고침을 받고 난 후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려는 마음을 품었습니까? 아닙니다. 여전히 자기 밥그릇 챙기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세월 동안 무엇을 얻었습니까? 구멍 뚫린 돈주머니만 남았을 뿐 아무런 상급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철저히 성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드리는 이 말씀에 많은 분이 찔림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우리가 그동안 오직 내 일에만 바빴구나.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해진 것은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심령의 성전이 황폐해졌기 때문이구나.'
사실 저는 몇 번이고 일부 사람들을 내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자가 아니라면, 굳이 우리를 따라다니며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거룩한 요구를 할 수 없거나, 요구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면 제가 여기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 찬 성전을 짓고 싶지 않습니다. 엉뚱한 사람들이 교회에 섞여 들어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오직 거룩함과 일치, 동일한 비전과 사명으로 하나 되어,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때로는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가도 다시 마음이 약해지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저를 강하고 담대하게 하옵소서." 물론 회개하고 다시 돌이키길 원하는 분들에게는 언제든 문이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문제입니다.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핵심 이익이 있듯이, 저에게도 저의 핵심 이익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핵심 이익이 돈을 버는 것이고, 저의 핵심 이익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면, 우리는 애초에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각자의 길을 갑시다. 헤어집시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가십시오. 여러분이 롯의 길을 가겠다면 저는 기꺼이 아브라함의 길을 가겠습니다. 여러분이 좋은 것을 택하십시오, 저는 제 길을 가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제 목숨과도 같은 사명이기에 죽어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깊이 성찰하십시오.
6.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
사람은 늘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돈주머니가 새는 것은 눈에 보입니다. 통장에 돈이 조금만 들어오면 일이 터지고, 돈이 모일 만하면 사고가 터집니다. 그때서야 '아, 내 돈주머니에 구멍이 났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아주 기이한 현상이 있습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마셔도 흡족하지 않으며, 입어도 따뜻하지 않고, 품삯을 받아도 구멍 뚫린 전대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늘 모자라다고 느낍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은 그날부터 통장의 잔고를 볼 때마다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늘 제 생각보다 돈이 더 많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째서 이렇게 많지?' 싶어 마음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원래 이만큼 있어야 할 돈이 '왜 이렇게 적지? 왜 또 줄었지?'라고 느껴진다면 마음이 몹시 괴로울 것입니다.
사람이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 하나의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밥을 다 먹고 났는데도 속이 더부룩하고 뒤숭숭하여 기분이 좋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그 느낌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사람이 평생 무엇을 가졌든 간에 날마다 번민과 갈등 속에 살아간다면, 비록 돈이 아주 많고 자녀가 많으며 집이 여러 채이고 부리는 하인이 많을지라도, 매일 우울하고 낙심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질병이요, 우울증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뼈를 깎는 고통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생 얽매여 사는 삶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하나님께서 불어 버리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만약 이런 느낌이 있다면 맞습니다. 바로 여러분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자신의 느낌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 느낌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바로 거짓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맘몬이 퍼뜨린 거짓말은 "잘 먹고, 잘 마시고, 열심히 돈이나 벌어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참으로 기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름에도 춥다고 솜바지를 입습니다. 그렇다면 겨울에는 무엇을 입을까요? 겨울에는 솜바지를 세 겹씩 껴입습니다. 사람의 감각이 온전치 못한 것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챙겨야 한다는 거짓말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성전을 돌볼 시간이 어디 있어? 교회를 세울 시간이 어디 있어? 그건 류 목사님 일이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나는 그저 곁다리로 콩고물이나 얻어먹고 복이나 좀 받으면 그만이지." 그러므로 늘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자신의 신앙의 기초를 철저히 점검해야 합니다.
7. 많이 바랄지라도 얻은 것이 적음이라
여러분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소망을 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매번 실망으로 끝납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다는 말을 알고 계십니까? 그런데 왜 저는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더 적을까요? 저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여러분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마시고, 더 많이 누리기를 바라며, 돈이 더 많아지고 통장 잔고가 불어나기만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기대는 기대일 뿐, 찾아오는 것은 뼈아픈 실망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겠습니까? 속박이 아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을 깊이 성찰하십시오. 여러분의 내면에 도대체 무엇이 담겨 있는지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아름다운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누가 더 잘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누가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제대로 잘 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쉬우나, 참되게 잘 사는 법을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달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먼저 그곳에 갈 능력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작은 새처럼 제자리에서 깡충깡충 뛰어봤자 높이 날아오를 수 없듯이, 헛된 바람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 미국인이 쓴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마다 돈을 생각하면 부자가 된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돈을 벌어야지, 부자가 되어야지"라고 생각만 한다면 결국 돈주머니에 구멍만 날 뿐입니다. 헛된 소망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영적인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논리는 그리스도인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논리는 그리스도인에게 강력하게 역사하며, 세상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헛된 거짓말 속에 살지 마십시오.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살지 마십시오. 마귀의 거짓말 속에 살면 하나님께서 귀신들을 보내어 여러분의 돈주머니에 커다란 구멍을 뚫으실 것이며, 여러분의 헛된 욕심이 큰 만큼 구멍도 더 크게 뚫릴 것입니다.
8. 내 집이 황폐하였음이라
사람이 왜 피땀 흘려 번 품삯을 구멍 뚫린 전대에 넣는 어리석은 짓을 할까요?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온갖 핑계를 대며 이것저것 탓할지 모르지만, 이유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하면 주님의 백성은 손해를 보고, 하나님의 성전이 흥왕하면 주님의 백성은 복을 받습니다. 우리 한번 시험해 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시간을 온전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보십시오. 여러분은 "목사님, 저는 더 이상 무리입니다. 이미 매주 15시간씩 드리고 있습니다"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두 배로 늘려 30시간을 드려보십시오. 시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설마 이 작은 일 하나 책임져주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모든 문제는 단번에 해결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면 모든 것이 골칫거리로 변합니다. 사실 거창한 시험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각자 하나님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자가 어찌 감히 하나님과 잇속을 따지며 계산하려 하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여전히 암세포 수치가 치솟는 상태라면 일할 기력이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일할 건강과 기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수많은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불면증과 고통, 무기력함과 만성 피로, 온갖 종양과 혹들을 치유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넘치는 은혜를 경험했는데, 어찌하여 우리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세상의 쓰레기 같은 생각들만 가득 차 있는 것입니까?
오늘 여러분은 저와 동일한 중심과 뜻을 품으시겠습니까? 장담하건대 저의 이 결론은 영적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흥왕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에 주님의 영광을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6-9)
이 말씀이 깨달아지십니까? 금도 하나님의 것이요 은도 하나님의 것이라면, 우리가 왜 세상에서 목숨 걸고 금과 은을 쥐려고 발버둥 쳐야 합니까? 그저 하나님을 굳게 붙잡는 것이 훨씬 복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만국을 뒤흔드실 것입니다. 바로 오늘날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세상이 어떤 지경에 처해 있는지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는 완전히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누가 덜 망하는가를 겨루는 파멸의 시대입니다.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누가 더 악착같이 버텨내는지의 싸움이며, 버티지 못하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모두가 절망적인 시대입니다.
이러한 경제 상황을 보십시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께서 만국을 흔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만국을 흔드신 후에 무엇을 하시려는 것일까요? 만국을 뒤흔들어 온 나라의 보배를 주님의 성전으로 끌어모으시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자신이 곧 가장 귀한 보배임을 알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열방을 흔드실 때, 제 마음에는 아주 강력한 감동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경제가 좋을 때는 저마다 자기 일에 바쁩니다. 하지만 경제가 바닥을 치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바쁘게 뛰어도 소용이 없고 할 일조차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애를 쓸수록 손해만 커지니,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흔들리게 되며, 그때 하나님 눈에 보배로운 자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복을 받을 때이며, 은혜를 입기 시작할 때요, 참된 축복의 시대입니다. 겨우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남는 때가 아니라, 원수의 것을 약탈하는 승리의 시대입니다.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흔들고 계시지 않습니까? 얼마 전 코로나19 팬데믹 때에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강하게 흔드셨습니다. 그때 무엇을 흔드셨을까요? 바로 교회를 흔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탈을 쓴 수많은 거짓 교회를 친히 무너뜨리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애초에 참된 교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모두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을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께서 만국을 뒤흔드실 때 건져내신 보배들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라는 보배들을 성전으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영광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강하고 담대함만 있다면 주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습니다. 낙심하거나 약해지지 마십시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강건해지며,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여러분이 만약 사업을 하는 분이라면 더욱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해야 하며, 찢어진 돈주머니를 기워 메워야 합니다. 구멍 난 주머니를 쥐고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전이 황폐하면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됩니다.
9. 하나님의 성전이 영광으로 충만하리라
제가 처음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할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아십니까? 성도들의 형편을 보니 너무나도 처참하고 비참했습니다. 셋방을 살며 집주인과 허구한 날 갈등을 빚고, 일자리를 구하면 직장 상사와 불화가 생기며, 취업 자체가 너무나 어렵고, 무슨 일을 하든 막히고 꼬였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제게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자원이 있다 한들 그 수많은 난제를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문제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저는 한 가지 절대적인 결론을 얻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전이 영광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집 문제도 깨끗이 해결되고, 직장 문제도 풀렸으며, 학업 문제도 해결되었고, 그 많던 문제들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영광으로 충만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한 달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기도회를 여는 교회가 아니라 날마다 기도회를 엽니다. 기도가 여러분의 일에 방해될까 봐 염려가 되십니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영광으로 가득 차면, 은도 하나님의 것이요 금도 하나님의 것이기에, 주께서 만국의 보배를 성전으로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당시 직면했던 모든 고난을 기도로 돌파해 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사라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심히 황폐했던 시절, 당시 세워졌던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예배가 끝나면 진수성찬을 베풀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 줄 알았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저주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자리에는 아무리 화려한 만찬이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직장을 잃고 실직자가 되었으며 심각한 중년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어떤 인도인 선지자가 제게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당시의 예언 녹음 파일은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선지자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주 길고 캄캄한 어둠의 터널을 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끝에서 당신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한마디 말씀은 제게 엄청난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참으로 길고 긴 칠흑 같은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그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 서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이 세워지기를 사모하는 믿음 하나로 버텼습니다. 수많은 눈물과 땀방울을 흘렸지만 끝내 이겨냈습니다. 숱한 상처와 아픔을 겪었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고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명백히 함께 계심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지금 제 눈앞에 펼쳐진 교회의 모습은, 바로 그 어둠 속에서 제가 꿈꾸고 갈망했던 바로 그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훨씬 더 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욱 기이하고 위대한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당시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는 참으로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 많았습니다. 삼십 대에 실직하여 막막해하는 모습을 보며 차마 모른 척할 수 없어 약간의 생활비를 지원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곧 교회에 충만하게 임하자, 형제자매들의 재정과 사업이 놀랍게 풀리고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믿음으로 전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코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 근시안적으로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 일어나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여러분의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가 요구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강해져야 합니다. 반드시 방해와 영적 전쟁이 뒤따를 것입니다. 우리 내면의 갈등과 고뇌를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마음에 갈등이 일어날지라도, 우리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굳은 결단을 내리고 나아갈 때, 마침내 우리는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의 더 크신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살아생전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간증이 되겠습니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