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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여호수아 14장 -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약속을 얻는다

2019-09-12 39,999 约书亚记 争战 信心 应许 应许之地 盼望 神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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约书亚记14章-分配约旦河西的土地
  • 1 以色列人在迦南地所得的产业,就是祭司以利亚撒和嫩的儿子约书亚,并以色列各支派的族长所分给他们的,都记在下面,
  • 2 是照耶和华藉摩西所吩咐的,把产业拈阄分给九个半支派。
  • 3 原来,摩西在约旦河东已经把产业分给那两个半支派,只是在他们中间没有把产业分给利未人。
  • 4 因为约瑟的子孙是两个支派,就是玛拿西和以法莲,所以没有把地分给利未人,但给他们城邑居住,并城邑的郊野,可以牧养他们的牲畜,安置他们的财物。
  • 5 耶和华怎样吩咐摩西,以色列人就照样行,把地分了。
  • 6 那时,犹大人来到吉甲见约书亚,有基尼洗族耶孚尼的儿子迦勒对约书亚说:“耶和华在加低斯·巴尼亚指着我与你对神人摩西所说的话,你都知道了。
  • 7 耶和华的仆人摩西从加低斯·巴尼亚打发我窥探这地,那时我正四十岁;我按着心意回报他。
  • 8 然而,同我上去的众弟兄使百姓的心消化;但我专心跟从耶和华我的 神。
  • 9 当日摩西起誓说:‘你脚所踏之地定要归你和你的子孙永远为业,因为你专心跟从耶和华我的 神。’
  • 10 自从耶和华对摩西说这话的时候,耶和华照他所应许的使我存活这四十五年;其间以色列人在旷野行走。看哪,现今我八十五岁了,
  • 11 我还是强壮,像摩西打发我去的那天一样;无论是争战,是出入,我的力量那时如何,现在还是如何。
  • 12 求你将耶和华那日应许我的这山地给我;那里有亚衲族人,并宽大坚固的城,你也曾听见了。或者耶和华照他所应许的与我同在,我就把他们赶出去。”
  • 13 于是约书亚为耶孚尼的儿子迦勒祝福,将希伯仑给他为业。
  • 14 所以希伯仑作了基尼洗族耶孚尼的儿子迦勒的产业,直到今日,因为他专心跟从耶和华以色列的 神。
  • 15 希伯仑从前名叫基列·亚巴;亚巴是亚衲族中最尊大的人。于是国中太平,没有争战了。

제14장-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약속을 얻는다

서론

이 장을 보면서 ‘내가 이 장을 설교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상하죠. 이 장을 설교했는지 안 했는지…… 알고 보니 주일에 제가 방금 설교한 본문이 바로 이 장이었고, 주제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였습니다. 제가 조금 게으르다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를 다시 여러분에게 설교하면 되겠지만, 그러지 말고 우리 조금 더 부지런해집시다. 이 장의 주제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약속을 얻는다’입니다.

이 말 참 좋죠! 제가 《여호수아》 성경공부를 책으로 쓴다면 제목을 《약속의 땅을 얻다》라고 붙이고 싶습니다. 그러면 꽤 잘 팔릴 것 같아요. 왜냐고요? 누가 약속의 땅을 얻고 싶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원하죠!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사람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유익을 얻는 일이라면 누구나 얻고 싶어 합니다.

잘 살고 싶습니까? 그렇죠! 꿈에서도 원하죠! 늙었을 때 치매에 걸리고 싶습니까? 아닙니다! 원하지 않죠. 평생 돈이 많기를 원합니까? 원하죠! 언제든 기도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합니까? 좋습니까? 좋죠!

전심이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전심하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명문대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그렇죠! 명문대에 들어가고 싶은 일은 누가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수학 교과서를 펼치면 머릿속에는 온통 영어 생각뿐이고, 잠시 후 영어 교과서를 펼치면 머릿속에는 물리 생각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전심하지 않으면, 제가 말하는데 대학에 들어가는 것, 돈을 버는 것, 하나님의 약속을 얻는 것…… 이런 것은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펴볼 때 우리는 이 사람이 전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봅니다. 사람에게 문제가 있어도 전심하는 사람이라면 대단합니다! 전심하는 사람은 모두 대단합니다. 똑같이 목회자라 해도 전심하는 목회자와 전심하지 않는 목회자가 만들어 내는 결과는 다릅니다. 똑같이 대학생이라 해도 결과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전심으로 대학생의 삶을 살고, 어떤 사람은 전심하지 않습니다. 똑같이 혁명을 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전심으로 하고, 어떤 사람은 전심하지 않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은 전심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불교 신자라면 여러분의 보살을 전심으로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의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르십시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이 과연 전심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습니다. 전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인이고, 모두 《성경》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우리도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약속을 얻는다’고 말합시다!

《여호수아》 14장은 누구에 대해 이야기합니까? 그 사람의 이름은 갈렙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갈렙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 갈렙도 성경 속 갈렙과 꽤 비슷합니다. 바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참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우리 가운데 자녀가 있는 분들에게 아이 이름을 갈렙이라고 지으라고 권합니다. 그런데 이 일로 조금 곤란한 점이 생겼습니다. 우리 갈렙이 조금 기분 나빠하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갈렙이라고 말할 때 혼동되지 않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면 됩니다!

여호수아는 갈렙을 데리고 성을 공격하고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을 공격하고 땅을 정복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여든다섯 살의 노인이었습니다! 여든다섯 살이면 치매에 걸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데, 그는 무기를 들고 여호수아를 따라 성을 공격하고 땅을 정복했으며, 땅을 분배하는 날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여호수아도 이제 나이가 꽤 들었고, 그 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직 얻지 못한 땅이 많이 있었지만, 괜찮습니다. 우선 얻은 땅부터 나누었습니다.

갈렙은 사실 여호수아와 좋은 친구였고, 함께 고생한 동료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에 맞아 죽을 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있었기에 살 수 있었습니다! 후에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고, 갈렙이 여호수아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전심하는 사람의 머릿속에 기억된 일과 전심하지 않는 사람의 머릿속에 기억된 일은 서로 다릅니다.

특히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기억하는 것과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기억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 이야기를 하니 저는 특히 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릴 때부터 전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는 부모님이 손님을 대접하기를 좋아하셔서 많은 손님이 드나들었습니다. 동북 지방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습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해바라기씨 한 봉지를 들고 와서 탁자 가운데 놓고, 담배를 몇 대 피우면서, 해바라기씨를 먹고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 방 안에서는 사람들이 웃다가 몸을 뒤로 젖힐 정도였고, 자오번산의 코미디 공연처럼 모두가 만담 실력을 겨루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작은 걸상 하나를 가져다가 우리 집 구석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믿어지십니까? 사람들은 이 아이가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웃고 한담을 나누는 것이 저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책을 읽어야 하면 책을 읽고, 글씨를 연습해야 하면 글씨를 연습하고,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결국 이웃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저 녀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다 알고 있어.” 전심하는 사람이 속으로 아는 것이 없겠습니까?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가면서 제 눈에 보였던 좋지 않은 일들은 거의 다 잊어버렸고, 일어났던 좋은 일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은 보지 않은 것처럼 하고, 좋은 일은 모두 보는 것입니다. 전심하는 사람은 바로 이렇습니다. 저는 이것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제가 설교할 때 무엇을 가장 많이 이야기했습니까? 강미탸오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제가 무엇을 이야기한 것이었습니까?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 설교를 듣고 나서 밥을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밥을 먹기만 하면 그 강미탸오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회개하여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계속 두 마음을 품고 세상을 사랑하는 길을 가든지 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예언 하나를 하겠습니다. 전심하지 않는 사람은 약속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또한 평생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잘 살지 못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절대로 세상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사실 저도 때로는 너무 크게 웃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데리고 식사하러 갔을 때 농담을 하나 했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밥이 넘어갑니까?” 그런데 모두 밥을 잘 먹더라고요. 제가 “이거 강미탸오 같지 않습니까?”라고 했지만, 다들 저를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와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이 저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보니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생선 머리든 어떤 요리든 모두 저와 아주 신나게 경쟁하며 먹었습니다! 강미탸오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심하는 사람입니다!

갈렙이 여호수아를 찾아와 무엇을 기억하고 있었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유다 자손이 길갈에 와서 여호수아를 만났고,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 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마흔 살이었고, 나는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마음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니 이는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음이라 하였나이다. (《여호수아》 14:6-9)

이해하셨습니까? 보십시오. 갈렙은 여호와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랐고, 모세는 기뻐했습니다! 이런 제자를 데리고 있으면 누가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전심하는 제자 한 명을 데리고 있으면 누구나 기뻐합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는 전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한 무리 데리고 있는 것입니다. 심장병에 걸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때로는 제 심장이 쿵쿵 뛰는데,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이런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나서 그렇습니다.

모세는 갈렙에게 이렇게 계시했습니다.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니 이는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음이라.” 이해하셨습니까? 갈렙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사십오 년이 지나갔습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갈렙에게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이 사십오 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십오 년이라는 시간이 무슨 대수냐는 것입니다! 사실 갈렙은 억울했습니다. “나는 원래 들어갈 수 있었고, 전심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같은 전심하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불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불평하기를 좋아하는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이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아,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 이건 너무 더러워…….”
“아, 언제 약속을 얻을 수 있을까!”
“아, 숙제가 너무 많아!”
“아, 요구 조건이 너무 높아!”

어쨌든 늘 할 말이 있습니다. 정말 할 말이 있는 사람은 갈렙입니다. 저를 예로 들면, 저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빼앗은 적이 없고 그들에게서 조금이라도 이익을 취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저를 통해 많은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도 뒤에서 계속 저를 괴롭히니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기 때문에 저는 이런 것들을 보지 않습니다. 가끔 조금 이야기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기 때문에 언젠가 제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께서 영원 안에서 저를 위해 예비하신 상을 받게 될 것을 압니다. 이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제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소망입니다! 저는 날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고 싶은 것입니까?”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죽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헷갈리지 마십시오. 저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불평하려고 한다면 불평할 것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생각하다가도 그 일이 생각나지 않아서 불평하지 않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은 정말 좋으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더 큰 약속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가장 큰 소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의 가장 큰 소망은 우리 가운데 모든 형제자매가 하나님 앞에 서서 가슴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를 전심으로 따랐습니다! 나는 반드시 약속의 땅을 얻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이런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제 마음속의 이런 소망은 정말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사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제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를 전심으로 따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제 마음을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아니 백 번 상하게 해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동북 지방 말로 하면 “날콩을 백 개 먹어도 비린내가 싫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겠으면 생콩 하나를 입에 넣고 씹어 보십시오. 그 비린 맛이 한참 동안 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콩 백 개를 씹어도 비린내가 싫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저를 한 번 실망시키고, 두 번 실망시키고, 세 번 실망시켜도, 저는 여전히 그들을 축복하고 싶고, 여전히 그들을 세우고 싶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자주 감탄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제 마음속에서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힘을 의지하여 그를 축복하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최근에 한 자매가 제게 와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훈련하는 것은 그 자매가 전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매는 지난 여러 해 동안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감정을 한 번도 이겨 내지 못했습니다. 일을 만나면 돌아가려고 하고, 뛰어넘으려고 하며, 그 어려움에 직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겠습니까? 멀리 가지 못합니다! 사실 저는 제 안에 있는 생각을 꺼내서 그 자매에게 보여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 자매가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은 제가 관심을 두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 하나님은 제 마음을 아시고, 반드시 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저는 날마다 이 일을 기억하며 반복해서 거듭 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자신도 ‘내가 왜 잔소리하는 아줌마가 되었지?’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잔소리하는 아줌마면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이것은 마음속으로 자녀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기독교 안에서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을 수 있지만, 뜻은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충성된 종이 되고, 약속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몇 년이 걸리든 언젠가는 제가 섬기는 형제자매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 안에서 이런 믿음을 갖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약속을 얻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모세가 갈렙에게 한 말은 사십오 년이 지나도록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내가 발로 밟았던 땅은 헤브론입니다.” 헤브론은 어떤 곳입니까? 헤브론은 거룩한 땅입니다! 헤브론은 대단한 곳입니다. 왜 그곳이 거룩한 땅일까요? 《창세기》에 기록된 아브라함이 처음 거주한 곳이 바로 헤브론이기 때문입니다.

후에 아브라함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장막을 옮겼고, 그 땅을 두루 다니며 곳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헤브론이라는 곳, 곧 마므레의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이자 막벨라 굴이 있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창세기》로 돌아가서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헤브론에서 막벨라 굴을 샀고, 아브라함이 그곳에 묻혔으며 사라도 그곳에 묻혔고 야곱도 그곳에 묻혔습니다.

다시 말해 그곳은 과거에 아브라함이 다녔던 곳이며, 갈렙이 정탐꾼으로 갔을 때 걸었던 땅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 땅은 갈렙만 걸었던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도 그와 함께 걸었던 땅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갈렙이 먼저 나서서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내 발바닥이 밟았던 헤브론을 제게 주십시오. 제가 이곳을 잊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사십오 년 동안 갈렙은 날마다 그 땅을 얻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것이 전심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마음속 깊은 말을 한마디 하겠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약속이 아무리 많더라도 저는 하나하나 모두 경험하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 욕심이 많습니까? 하지만 이런 욕심은 좋은 욕심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얻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저는 약속에 관한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제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일에 우리가 시편 91편을 설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이시며,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십니다. 천 명이 내 곁에서 쓰러지고 만 명이 내 오른편에서 쓰러져도 나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낮의 전염병도, 밤의 두려움도 내게 닥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실제로 정말 그렇습니까?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원하고, 여러분도 원한다는 것입니다! 갈렙이 “제가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제가 원합니다!

갈렙은 이런 소망을 품고 사십오 년을 살았습니다! 그 사십오 년 동안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이제 끝났어. 내 인생은 끝났어. 이미 마흔 살인데, 사십 년만 더 지나면 여든 살이야.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여든 살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어?” 그러나 갈렙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여든 살이든 백 살이든 약속의 땅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갈렙은 그것을 얻었습니다!

갈렙은 날마다 이런 뜻을 품고, 날마다 영원 안에 있는 소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인격이 있는 사람은 모두 이렇습니다. 갈렙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보다 키가 몇 배나 큰 사람들과 싸워서 올라가자마자 이겼습니다. 여든다섯 살의 노인 갈렙이 아낙 자손과 싸웠습니다. 아낙 자손은 모두 거대한 사람들이었지만, 결국 갈렙이 모두 쓰러뜨렸습니다. 거인을 이긴 사람은 갈렙이며 다윗입니다. 누가 갈렙을 승리하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갈렙을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그의 손에 넘겨주셨으니, 승리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여호와를 전심으로 따르는 사람은 상대의 덩치를 전혀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권투 경기를 볼 때 80킬로그램인 선수도 있고 60킬로그램인 선수도 있습니다. 60킬로그램인 사람이 80킬로그램이나 100킬로그램인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상대의 덩치가 아무리 커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여러분 앞에서 죽게 하시면, 그는 절대로 살아서 돌아가지 못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의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려 한다면,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고 들어가 그 땅을 기업으로 얻기만 하면 반드시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한 후원자이시다

갈렙이 “헤브론을 제게 주십시오”라고 말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곳을 자기에게 달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좀 쉬운 곳을 고르면 안 됩니까? 왜 하필 정복하기 어려운 기럇 아르바를 택합니까? 아낙 자손은 모두 거인들이었습니다. 냉병기 시대에는 덩치가 큰 사람이 이기는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칙 안에서는 하나님의 기적이 물리적인 자연 법칙보다 강합니다. 물리적인 자연 법칙은 소용없고, 기적이 소용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아낙 자손은 매우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용맹한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렙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평생 이런 일을 자주 보았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 번은 제 어머니의 몸에 악령이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제 어머니는 원래 힘이 아주 셉니다! 어머니가 여든이 넘으셨지만 제 누나보다도 힘이 셉니다.

제 누나는 체구도 작고 힘도 없었습니다. 팔도 아주 가늘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귀신이 어머니의 손을 통해 제 누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싸움이 벌어졌을 때, 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 누나가 어머니의 팔을 붙잡았는데, 그 손에서 전기처럼 강한 힘이 흘러 어머니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고, 아이고……” 하시더니 온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후에 악령을 쫓아내고 나니 지금은 어머니가 아주 정상적이십니다.

다시 말해 이 일은 참 신기합니다. 어머니가 악령에게 통제받고 있을 때는 밤에 자주 일어나 제 누나를 바로 옆에서 목 졸라 죽이려고 했습니다. 베개 밑에는 가위나 칼 같은 것도 자주 놓여 있었습니다. 정말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제 누나는 그것이 자신을 죽이려고 쓰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무서워서 죽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사실을 말했습니다. “정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어.” 제가 “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까?”라고 묻자, 어머니는 “다가갈 수가 없었어. 강한 힘이 막고 있었어”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우리 남매가 모두 이런 일을 겪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둘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 번은 키가 1미터 90센티미터이고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인 거구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태권도 고수였는데, 그가 제 앞에 서니 저는 마치 난쟁이 같았습니다. 그 악령이 얼마나 무서운지, 저를 때리려고 다가와 손을 막 들었는데, 갑자기 신비한 힘이 “쾅!” 하고 그를 쓰러뜨렸습니다. 그는 바닥에 세게 넘어졌습니다.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주변에 있던 동역자들도 모두 직접 보았습니다. 원숭이권법을 하는 모습이 마치 공연처럼 아주 멋졌습니다. 후에 저는 점점 깨달았습니다. 무술을 연마하여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무술이 그 사람에게 붙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최고의 무술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다시 일어나 저를 공격하려 했는데 또 “쾅!” 하고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한 번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한 번 있었습니다.

어떤 청년은 스모 선수였는데 몸무게가 150킬로그램이나 되었습니다. 그가 저를 엉덩이 밑에 밀어 넣고 앉으면 제 숨이 끊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원래 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가 제게 와서 자신을 해방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사역을 시작하자, 와! 그가 두 손을 벌리고 제 앞에서 저를 목 졸라 죽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목을 조를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20센티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할 뿐이었습니다. 제가 귀신을 쫓아낸 후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묻자 그가 말했습니다. “제 안의 귀신이 당신을 목 졸라 죽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그런데 왜 못 졸랐습니까?”라고 하자, “조를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저 열 명이 있어도 그가 목 조르는 것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갈렙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낙 자손 가운데 가장 강한 용사들, 모두 거인들이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들고 다니는 창은 보통 사람은 들지도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보통 사람이 들 수 없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아십니까? 50킬로그램이나 100킬로그램이 넘는 물건은 정말 큰일입니다! 그것을 몸에 휘두르면 망치로 못을 박는 것과는 다릅니다. 직접 해 보십시오. 제가 예전에 4킬로그램짜리 큰 망치를 하나 산 적이 있는데, 벽돌벽을 내리치니 “쾅!” 하고 떨어져 나갔습니다. 정말 힘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100킬로그램짜리 망치를 내려치면 무엇이 막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갈렙은 이 사람들을 모두 쓰러뜨렸습니다. 이 사십오 년 동안 갈렙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며 끊임없이 연습했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계속 훈련했으며, 무예를 매우 뛰어나게 연마했습니다. 무예가 아무리 뛰어났어도 그는 여전히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힘을 의지해서는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불평하지 않았고, 계속 노력하며 준비했습니다. 마흔 살 때의 무예가 뛰어났고, 여든다섯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뛰어났으며, 어쩌면 마흔 살 때보다 더 뛰어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약한 힘으로 강한 힘을 제압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그날에 당신도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여호수아》 14:12)

형제자매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정복하기 어려운 곳일수록 사람들이 살기를 좋아하는 곳이고, 사람들이 살기 좋아하는 곳일수록 좋은 곳입니다. 새도 배설하지 않는 황무지 같은 곳은 아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뤄부포에 집을 지으면 팔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뤄부포에 와서 아파트를 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전시 중심가라면 비쌉니다! 베이징 중심가도 한번 보십시오. 모두 엄청나게 비쌉니다!

갈렙이 싸운 곳에 왜 아낙 자손의 거인들이 살고 있었습니까? 그곳이 좋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와 원수를 만날 때마다, 쫓아내기 어려운 귀신일수록, 상대하기 어려운 귀신일수록 보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눈앞에는 오직 하나님만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든 우리 앞에 와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우리의 발아래 밟혀야 합니다. 칼날 위를 걷고 불바다를 지나야 한다 해도,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아무 문제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갈렙은 대단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불평은 없고, 오직 준비만 있으며, 오직 소망만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선한 계획을 이루실 것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전심입니다.

저는 전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이 꽤 전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전심하는 사람이 되기를 권합니다. 절대로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자신이 아주 전심한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누가 나 같은 일을 당했으면 나보다 더 잘 반응하지 못했을 거야!”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까? 여러분의 수준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갈망해야 합니다. “나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라

절대로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전심하는지 아닌지는 여러분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입을 열자마자 불평하고, 입을 열자마자 어려움을 말하고, 입을 열자마자 환경 탓을 하고, 온 세상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하며, 입을 열자마자 “나는 운이 나빠……”라고 말한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심하지 않는데 인생이 잘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 데는 매우 전심이라면, 평생 어떻게 되겠습니까?

몇 년 전, 제가 온 힘을 다해 목양했고 저를 따라 몇 년 동안 믿음의 길을 걸으며 저와 함께 귀신을 쫓던 부부가 있었습니다. 귀신을 쫓는 일을 계속하던 중 그 부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사실 그들의 결혼식도 제가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서 영원히 성장할 수 없습니다.” 아, 저는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제자들이었는데, 제가 어느 눈이 멀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들은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떠나기로 이미 결심했으니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그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성장했습니까? 성숙해졌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데는 전심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전심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을 사랑하는 데는 전심했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데는 전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잘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제 말을 한마디만 들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천히 지켜보십시오. 그들이朋友圈에 올린 글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보고 나면 마음이 아파서 ‘왜 저 사람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을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는 그가 저와 함께 걸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가장 부흥한 시절에는 그가 그곳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너무 큰 손해를 본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저는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에게 반드시 전심하는 사람이 되라고 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전심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심해야 할 곳을 잘못 택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돈을 버는 데 전심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데 전심하고, 육체를 기쁘게 하는 데 전심하고, 이기적이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데 전심한다면 모두 소용없습니다. 오직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만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직업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다른 것은 감히 자랑하지 못하지만, 저는 제 능력이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은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합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을 보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능력이 저보다 훨씬 부족한데도 오직 자기 자신만 의지합니다. 여러분에게 무슨 자격으로 자신을 의지합니까? 정말 고생스럽습니다!

앞으로의 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여러분은 잘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본받을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하나님을 섬긴 지 이렇게 오랜 세월이 되었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약속의 땅을 얻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리 가운데 모든 형제자매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아름다운 일은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기로 뜻을 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아낙 자손의 거인들이나 산처럼 큰 어려움이라도 하나님과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앞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땅이 전쟁에서 쉬었더라.” (《여호수아》 14:15 참조)

평안한 날을 보내고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계속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나라가 평안하고 전쟁이 없기를 원한다면 길은 하나뿐입니다. 원수를 물리치고 약속의 땅을 얻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전심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여든다섯 살이 되어도 여전히 강건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비교가 없으면 상처도 없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과 몇몇 목회자 친구들은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와 함께 서 있으면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너무 편애하시는 것 아닙니까? 보십시오. 저 사람에게는 이렇게 잘해 주시고, 저 사람이 기도하면 바로 들어주시면서 제가 기도하면 들어주시지 않고 문제만 더 많아집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전심하는 자질이 핵심입니다!

한 형제가 제게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병원에 가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싫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나면 사람이 죽는데, 그러면 제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합니까?” 이 말을 보십시오. 그가 그 일을 두려워할수록 오히려 그런 일이 더 일어납니다. 나중에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제가 병원에 가서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만 하면, 기도가 끝난 뒤 환자의 상태가 더 심각해집니다.”

미국에서 온 한 형제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노인성 치매를 고쳤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똥을 가지고 벽에 바른다’는 표현이 있는데, 똥을 가지고 노는 것을 뜻합니다. 그의 집에서는 아버지가 똥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저를 찾아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려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심하는 자질이 있습니까? 전심하는 자질이 있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요 며칠 어머니가 아주 많은 농담을 하십니다. 말씀도 잘하시고, 잘 웃으시며, 웃다가 몸을 뒤로 젖힐 정도입니다. 저도 함께 크게 웃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족 간의 행복이고,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누군가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저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분네의 아들처럼 되는 것이 좋습니까? 좋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엇입니까? 전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여호와 여러분의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르지 않기 때문에 생깁니다!

입에는 불평과 쓴 뿌리만 가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많은 문제를 만들어 놓고는 하나님을 탓합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문제가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에게 묻고 싶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 문제들을 만든 사람이 아닙니까? 성경은 정말 좋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업을 얻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두 배의 기업을 얻습니다. 안팎으로 그 차이가 얼마나 큽니까?

그러므로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제가 이 말을 다 하고도 혹시 헛되이 말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으며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원문은 ‘그들에게’임) (《이사야》 61:6-7)

하나님을 섬기고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그분을 전심으로 따르고 그분을 전심으로 섬기면, 우리가 갑절의 유익을 얻게 되지 않습니까? 사실 여러분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좋은 일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일이라면 왜 그렇게 따르기가 어렵습니까?

또 이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똥을 강미탸오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똥을 강미탸오로 여기면 정말 비참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고 그분을 굳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누군가가 우리의 약속의 땅을 얻는 일을 지연시켰다 해도, 열 명의 정탐꾼이 우리를 사십오 년 지연시켰다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세우신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사십오 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른다면 사십오 년이 무엇이 대수겠습니까? 언젠가 우리는 우리의 발바닥이 밟은 곳에 서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은 영원히 나와 내 후손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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