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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도행전 11장 - 하나님 친히 그분의 계획을 이루신다

2023-08-02 38,284 使徒行传 使徒行传第十一章 使徒行传11章 做神的见证 不讨人的喜悦 单单讨神的喜悦 寻求神的心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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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徒行传11章-向耶路撒冷教会报告
  • 1 使徒和在犹太的众弟兄听说外邦人也领受了 神的道。
  • 2 及至彼得上了耶路撒冷,那些奉割礼的门徒和他争辩说:
  • 3 “你进入未受割礼之人的家和他们一同吃饭了。”
  • 4 彼得就开口把这事挨次给他们讲解说:
  • 5 “我在约帕城里祷告的时候,魂游象外,看见异象,有一物降下,好像一块大布,系着四角,从天缒下,直来到我跟前。
  • 6 我定睛观看,见内中有地上四足的牲畜和野兽、昆虫,并天上的飞鸟。
  • 7 我且听见有声音向我说:‘彼得,起来,宰了吃!’
  • 8 我说:‘主啊,这是不可的!凡俗而不洁净的物从来没有入过我的口。’
  • 9 第二次,有声音从天上说:‘ 神所洁净的,你不可当作俗物。’
  • 10 这样一连三次,就都收回天上去了。
  • 11 正当那时,有三个人站在我们所住的房门前,是从凯撒利亚差来见我的。
  • 12 圣灵吩咐我和他们同去,不要疑惑(或译:不要分别等类)。同着我去的,还有这六位弟兄,我们都进了那人的家。
  • 13 那人就告诉我们,他如何看见一位天使站在他屋里,说:‘你打发人往约帕去,请那称呼彼得的西门来,
  • 14 他有话告诉你,可以叫你和你的全家得救。’
  • 15 我一开讲,圣灵便降在他们身上,正像当初降在我们身上一样。
  • 16 我就想起主的话说:‘约翰是用水施洗,但你们要受圣灵的洗。’
  • 17  神既然给他们恩赐,像在我们信主耶稣基督的时候给了我们一样;我是谁,能拦阻神呢?”
  • 18 众人听见这话,就不言语了,只归荣耀与 神,说:“这样看来, 神也赐恩给外邦人,叫他们悔改得生命了。”
  • 19 那些因司提反的事遭患难四散的门徒直走到腓尼基和塞浦路斯,并安提阿;他们不向别人讲道,只向犹太人讲。
  • 20 但内中有塞浦路斯和古利奈人,他们到了安提阿也向希腊人传讲主耶稣(有古卷:也向说希腊话的犹太人传讲主耶稣)。
  • 21 主与他们同在,信而归主的人就很多了。
  • 22 这风声传到耶路撒冷教会人的耳中,他们就打发巴拿巴出去,走到安提阿为止。
  • 23 他到了那里,看见 神所赐的恩就欢喜,劝勉众人,立定心志,恒久靠主。
  • 24 这巴拿巴原是个好人,被圣灵充满,大有信心。于是有许多人归服了主。
  • 25 他又往大数去找扫罗,
  • 26 找着了,就带他到安提阿去。他们足有一年的工夫和教会一同聚集,教训了许多人。门徒称为“基督徒”是从安提阿起首。
  • 27 当那些日子,有几位先知从耶路撒冷下到安提阿。
  • 28 内中有一位,名叫亚迦布,站起来,藉着圣灵指明天下将有大饥荒。(这事到革老丢年间果然有了。)
  • 29 于是门徒定意照各人的力量捐钱,送去供给住在犹太的弟兄。
  • 30 他们就这样行,把捐项托巴拿巴和扫罗送到众长老那里。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행전》 11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며, 그 안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핵심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된 것도 안디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 장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계획을 이루실 것이다, 아무도 막을 수 없다”라는 조금 거창한 제목을 붙이고 싶습니다. 이것은 주제일 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이 복음은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6-8)

당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하신 말씀을 잊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는 그저 예루살렘에 머물기를 좋아했습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사람에게는 안 좋은 버릇이 하나 있는데, 무언가 하려고만 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안중에도 없고 마음속에 늘 자기 생각만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계획이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시면 서쪽으로 가고, 하나님께서 개를 쫓으라 하시면 닭을 잡으러 가는데, 이 말은 저희 어머니가 제게 가르쳐 주신 말입니다.

여러분, 첫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이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며, 이것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성령이 베드로와 그들에게 임하시면 그들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을 진행해 나가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루살렘에 모여 먹고 마시며 날마다 카니발(축제)을 벌였습니다. ‘카니발(嘉年华)’이라는 단어는 영어의 ‘carnival’을 음역한 것으로, 육체를 방종하게 하는 축제입니다.

베드로 일행이 예루살렘에서 온종일 먹고 마시기만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계획을 잊은 것을 보시고 이방인들의 손, 즉 비그리스도인들의 손을 통해 역사를 앞으로 밀고 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사람들을 두 무리로 나누셨는데, 한 무리는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이었고, 다른 한 무리는 모세를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결국 모세를 믿는 자들이 예수를 믿는 자들을 박해했습니다. 스데반을 박해하여 스데반이 맞아 죽었습니다. 한 사람이 죽는 것, 하나님은 개의치 않으십니다. 수천, 수백 명이 죽어도 하나님은 개의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이 시작부터 이 일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하셨지만,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기다린 후에도 계속 머물러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신 후에 권능을 얻고 이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줄곧 그렇게 기다리기만 하며 예루살렘을 떠나려 하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박해를 일으키셨습니다.

여러분은 조금 둔감할 수도 있고, 더 오랫동안 둔감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멍청하게 헛짓을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계획을 잊어버릴 수도 있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계획을 아예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몇 번이고 환상을 보여주실 수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분의 계획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이 조금 무겁게 들릴지 모르지만, 온종일 축제나 행복소그룹(幸福小组) 따위나 벌이면서 하나님의 계획은 일찌감치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릇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사도행전》 11:1-3)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문제가 안 되면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밥을 먹는 것은 왜 문제가 됩니까? 하물며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교회를 처음 세울 때부터 교회를 이런 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 그 할례받은 자들이 다시 와서 그를 추궁하는데, 대체 이 할례받은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무엇을 하는 자들입니까?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은 전혀 구하지 않고, 그저 전통만을 지키려 합니다. 전통이라는 것은 사람을 꽤 해치는 것이며, 이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지위가 없었다면 감히 베드로를 정면으로 대면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 직접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 사람들은 대체로 모세의 율법을 지키던 자들이며, 이미 베드로 수준의 리더십 자리까지 기어 올라가려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베드로 앞에 서서 이래라저래라 삿대질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베드로가 이미 우두머리답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허수아비처럼 실권을 빼앗긴 모습이었고, 아랫사람들은 이미 파당을 짓고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모세 시대의 고라 당처럼 영향력이 이미 매우 강해진 상태였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이르되 (《사도행전》 11:4)

당시 베드로가 그들에게 당시 상황을 차례대로 설명했는데, 이는 리더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부하가 상사에게 보고하는 화법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짤막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자면, 사람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똑바로 정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이 사회생활을 할 때 상하좌우 저마다의 관계가 있습니다. 윗사람에게는 윗사람에 맞는 말하는 태도가 있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아랫사람이나 동료에게 말할 때도 각자의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관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윗사람에게는 몹시 당당하게 굴면서, 좌우나 아랫사람에게는 노예처럼 굴어 본말이 전도되곤 합니다. 이것은 다 리더 때문에 생기는 결과입니다. 여러분이 리더가 되었다면 무지해서는 안 되며, 맡은 일에 대해 흐리멍덩해서는 안 됩니다.

위대한 사도가 되려면 이 공동체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행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당시 베드로의 상황은 이미 엉망진창이었는데, 이를 리더십 실패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베드로 같은 리더는 중책을 맡기기에 부적합했고, 게다가 더 깊은 층위의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그의 내면에 두려움이 있어 이 사람들을 무서워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그가 이 사람들을 무서워한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며, 그에게는 두려움이라는 유전병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에 이르러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결과는 여전히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이 불분명하고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그를 비판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단지 이 일의 전말을 여러분에게 명확히 설명해 드리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 택함받은 그릇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잘 구해야 합니다.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여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본즉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사도행전》 11:5-7)

어떤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왜 할례받지 않은 사람의 집에 가서 밥을 먹었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만약 질문을 받은 사람이 저였다면, 저는 반드시 그들에게 도대체 누가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을 주었느냐고 반문하며 당장 비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안다고, 도대체 누구에게 배운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른단 말입니까? 교회에 이런 사람들로만 가득하다면 그 교회가 온전하겠습니까?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적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그의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사도행전》 11:8-16)

베드로가 입을 열어 그들에게 차례로 설명함으로써 단번에 하나님을 노엽게 해드렸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 택함받은 그릇이 해명을 해야 한다면, 하나님께 해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고 있는지 하나님께 여쭤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해명하느라 바빴으니 태도가 잘못되었고, 이는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움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사도행전》 11:17)

이제 여러분도 아시겠지요? 저는 베드로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의 이면에 있는 원인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때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이유는 그에게 일종의 억압감이 있었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세 번이나 말씀하셨으니 매우 중요하다는 뜻인데, 그 이후로는 응당 이방인을 찾아다니며 식사를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의 뼛속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바리새인들의 방식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릇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에 민감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 시대에 하나님이 품으신 뜻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중화권(화인)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기독교 신앙 안의 터무니없는 것들을 하나씩 몰아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과거 사도 바울을 택하셨듯이 오늘날 우리를 택하셨다면, 저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을 행할 것입니다.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이 길을 걸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십시오. 만약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을 밖으로 쫓아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체면을 한껏 세워준 것입니다. 돈이 많은 것도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돈이 있어도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함께 걸어가고 함께 뜻을 구하며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그분의 영광과 계획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지켜봅시다.

사람의 기쁨을 구하려 했다면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은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으며, 방해가 매우 큽니다. 전통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들이 침을 뱉으면 저를 빠뜨려 죽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비난하고 헐뜯는 것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기독교 신앙 안에 있는 터무니없는 것들을 제거하고자 하십니다.

기독교 신앙 안에는 터무니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아무리 없애도 끝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제게 와서 퇴짜를 맞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게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어서 기도해 달라거나, 그 임종 직전의 사람을 천국으로 보내 달라고 합니다. 이는 저를 천국 입장권을 파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니, 저는 기독교 안의 수많은 터무니없는 것들을 제거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이 복음의 진리를 다시 회복하고자 하십니다.

사실 베드로는 당시 말을 마친 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형제자매들에게 계속 전진하자고 외쳤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유독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함께 우리 안의 터무니없는 것들을 제거해 나갑시다. 특히 여러분이 주님을 믿은 지 얼마간 되었고, 집 근처의 전통 교회에 다녔다면 제대로 된 것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릇을 택하신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습니까? 만약 베드로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신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그는 어디로 갔습니까? 훗날을 논할 것도 없이, 이번 장에 와서 벌써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릇을 택하시며,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분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우리의 계획, 우리의 영역, 우리의 파당을 이루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마음에 합한 그릇을 택하시며, 반드시 이런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 길을 가느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며칠 전, 한 자매님이 예전에 다리에 관절염이 있었는데 우리 교회에 온 후 하나님께서 고쳐주셨고, 지금은 하나님께서 직장도 마련해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행해야 한다고 계속 당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분의 계획을 이루실 텐데,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릇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만 있다면, 비록 작은 자리 하나를 차지할지라도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기쁨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기쁨만을 구하는 그릇을 택하십니다.

바울은 한동안 예비용 타이어처럼 다소에 가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친히 바나바를 일으키셔서 다소로 가 바울을 찾게 하셨습니다. 바나바는 사실 뼛속 깊은 곳에서는 베드로와 비슷했습니다. 이때 그가 일어서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교회 내의 그 세력이 꽤 강해서, 안디옥이라는 곳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분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바나바를 시켜 다소에서 바울을 데려오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사도행전》 11:19)

여기까지 말하면 참으로 기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는 홍등가와 같이 매우 형편없고 음란한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입장에서 사마리아는 어떤 나라들의 유명한 홍등가와 같아서,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러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곳에 복음을 전하러 가는 목적 자체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 이미 부패했음을 보셨습니다. 제가 연구해 보니 역사는 늘 매우 비슷하게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으나 결국 빗나갔고, 하나님께서 노아의 여덟 식구를 구원하셔서 그들이 방주 안에서 홍수가 그 시대의 모든 사람을 쓸어버리는 것을 직접 목격했으나, 나중에 함과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사람은 조금만 방심하면 빗나가며, 바른길을 걷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사도행전》 11:20-23)

안디옥에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온 베드로나 야고보가 아니었고, 바나바도 아니었으며, 구레네 사람들과 구브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이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분명 교회 안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추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박해가 닥치고 스데반이 맞아 죽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그분의 마음에 합한 그릇을 택하셔야만 했습니다.

제가 일전에 존경하던 몇몇 목회자분들에게 화인 사명 신학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그분들은 저처럼 목회하면 교회가 망하지 않겠느냐며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는 게 왜 안 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가다가 어떻게 빗나가게 되었는지 묻습니다. 사실 그것이 바로 제 갈 길로 치우쳐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평생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을 구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선악을 분별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말을 안 듣고 기어이 선악을 분별하다가, 나중에 머리가 어지럽다며 제게 사역을 받으러 옵니다. 제가 그에게 “선악을 분별했지요?”라고 물으면, 그는 “통제가 안 돼요”라고 합니다. 제가 진작부터 선악을 분별하는 길로 가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기어이 그 길로 갑니다. 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러줘도 사람들은 기어이 그렇게 합니다. 그래놓고 제게 와서 따지려 드는데, 자기가 옳았음을 증명하려는 것이라면 그만두라고 합니다. 일만 터지면 제게 해명하려 드는데, 저는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 역사를 진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그릇을 택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들이 도리어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했고, 바나바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골치 아픈 뜨거운 감자라 여겨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다소에 바울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그를 데려와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바나바 자신은 베드로, 야고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계속 외식을 행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뜨거운 감자를 기꺼이 맡으려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갈등을 대처할 고유한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어떤 목사님이 저를 특별집회에 초청하여 참석한 적이 있는데, 아래에 앉아 들으면서 그들이 전하는 내용이 도대체 어디까지 삼천포로 빠진 것인지 한탄스러웠습니다. 그들은 저더러도 강단에 올라와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입을 열면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어이 저를 강단에 세웠습니다. 제가 올라가자마자 정말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 듯 핵심을 찔렀습니다. 제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자, 저를 초청한 목사님이 아래에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짓으로 멈추라는 사인을 보냈습니다. 기왕 저를 불러 올렸으니 저는 끝까지 전해야 했습니다. 제가 전한 것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사역을 하려면 진심으로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강단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목사님은 제 손을 잡고 저처럼 사역하면 이 교계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들의 바닥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의 영역 안에 머물고 싶을 뿐, 다른 교계 바닥에는 있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마음에 합한 그릇이란 바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입니다. 늙은 엘리 제사장 시대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택하셨고, 사울 왕 시대에 다윗을 택하셨으며, 야곱 시대에 요셉을 택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벌집을 쑤셔놓는 것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이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그릇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은 반드시 그런 자를 택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사 온 땅을 두루 살피시며 깨닫는 자가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보십니다. 그런 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보배와 같고, 열 명, 백 명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천사들도 하늘에서 환호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그릇을 택하여 친히 그분의 계획을 완성하시려는 목적은 순전한 복음이 보존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에게 바울의 서신서가 있어 읽을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며, 하나님께서 바울을 택하셔서 순전한 복음을 보존하게 하셨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두 베드로를 따라 외식해야 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 것이 진짜인지조차 모르게 되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사람들과 밥을 먹다가 야고보 쪽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당장 도망치는 꼴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같은 사람을 택하사 오직 하나님의 기쁨만을 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분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사용 가능한 그릇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전체를 보는 거시적인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도대체 무슨 일을 행하고자 하시는지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분명히 깨달은 후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을 따라 걸어가면 쉽게 빗나가지 않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에서 《창세기》 1장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모두 상실했습니다. 구원이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처음에 우리를 지으셨을 때 본래 가졌어야 할 그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의 뜻을 구하려 하거나, 절반은 사람의 뜻이고 절반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결국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이 화인 사명 신학이라는 이 울타리 안에서 함께 가고자 한다면, 줏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세상을 사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태도를 버리십시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그분의 계획을 《성경》에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릇을 택하실 때 거듭해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보게 하십니다. 베드로 역시 하나님의 뜻을 보았지만, 성경 전체에서 오직 베드로만이 롯을 의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롯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원래는 아브라함을 따르다가 나중에 소돔으로 들어가 비참하고 황폐한 삶을 살았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11:24-26)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바울을 찾아 그곳 교회에 함께 모여 많은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안디옥에서부터 제자들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는 것은 사실상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이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도록 한 것입니다. 이제 그 복음이 우리 화인에게까지 전해졌으니,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품으신 뜻을 짊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계획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 어디를 가든지 머리 위에 광채의 면류관을 써야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든 사업을 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우리에게 나타났고,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택하셨으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라는 두 글자는 베드로 시대에 이미 더럽혀졌습니다. 그때부터 아무나 다 제자라고 불렸는데, 그것을 제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보기에 이 개념이 이미 혼란해져 ‘제자’라는 말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자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세 글자가 다시 더럽혀졌습니다. 우리는 다시 ‘제자’로 돌아가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친구가 집을 사면서, 그 동네 주변이 온통 향을 피우고 우상을 숭배하는 인도인들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차라리 그리스도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이미 외식과 위선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의 한 형제님이 집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민원을 넣은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이 형제님은 인테리어를 합리적이고 합법적이며 도리에 맞게 진행했고 온갖 허가증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은 자기가 야간 근무를 하고 낮에 잠을 잔다는 이유로, 우리 형제님이 낮에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시끄럽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밖에 나가서 자신이 그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라거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십시오. 저는 누군가 자기 이웃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속으로 ‘제발 그 사람 때문에 더럽혀지지 말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직원을 채용할 때 어설픈 그리스도인은 절대 뽑지 말고, 뽑으려거든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을 뽑으십시오.

복음의 본부가 안디옥으로 옮겨지다

원래 이 복음의 본부는 예루살렘에 있었으나, 예루살렘 사람들은 모두 할례를 지키느라 바빴습니다. 그들은 생식기에 작은 수술 하나를 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은밀히 본부를 안디옥으로 옮기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큰 깃발을 이어받았습니다. 이때의 바울은 아직 일개 졸병에 불과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복음의 본부가 안디옥으로 옮겨졌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며, 마치 두 개의 사령부가 생긴 것과 같았습니다. 겉보기에는 대사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바나바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기에 복음의 본부가 예루살렘에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 안디옥으로 옮겨졌고,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실권을 박탈당한 상태였습니다. 안디옥은 사실 사도 바울 주변의 소수 무리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이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고자 했습니다.

이후 사도 바울은 아시아와 유럽으로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전했고, 안디옥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선지자들도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내려왔고, 성령을 통해 천하에 큰 흉년이 들 것이라 예언했으나, 그것이 안디옥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루살렘은 큰 타격을 입었는데, 하나님의 영이 안디옥으로 떠나가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사도행전》 11:27-30)

제가 교회사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자면, 사도 바울은 로마 제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서신서를 썼고, 스페인, 로마, 이탈리아 등지의 사람들을 포함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나 아직 땅끝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인도하사 먼저 유럽을 복음의 본부로 삼으셨고, 이후 복음은 미국으로 전해졌으며, 지금은 다시 아시아로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그 시대에 자신들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감당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본부를 우리 화인에게로 옮기셨습니다. 과거 누군가가 싱가포르가 안디옥이 될 것이라고 선포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때 제게 큰 고민을 안겨주었는데, 싱가포르라는 곳은 아무리 보아도 안디옥 같지 않았고, 교회 안의 수많은 개념이 극도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시 도대체 무엇이 안디옥인가를 깊이 묵상했습니다. 알고 보니 안디옥은 정부가 복음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바울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안디옥이 된 것이었습니다. 훗날 저는 싱가포르가 안디옥이 된다는 것은 사도 바울처럼 순전한 복음을 이곳에서 전하는 소수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택함받은 그릇이 될 기회를 주시고, 제가 있는 이곳이 안디옥이 되게 하셨으니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안디옥이 형성된 것은 사도 바울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며, 안디옥의 정통 역사 속에서는 사도 바울 일행의 존재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수도 적었고 이름도 없었습니다. 사실 그곳에 대형 교회가 얼마나 많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미친 소수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0년 전 사람들이 선포했던 싱가포르가 안디옥이 될 것이라는 그 환상에 대해, 저는 그 환상이 이미 성취되었다고 말합니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화인 가운데서 소수의 사람을 일으켜 복음의 진리를 회복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저는 그 소수가 바로 우리라고 말했습니다. 설령 여러분이 아니라고 한들 저는 논쟁하지 않겠습니다. 논쟁해 봐야 결론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충분히 오래 사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이 화인 사명 신학을 통해 성취되고, 복음의 본부가 우리에게로 옮겨졌음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흥함과 쇠함

여러분 스스로 관찰해 보십시오.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사람은 일어나고 어떤 사람은 넘어지며, 수많은 자가 흥하고 수많은 자가 쇠한다는 결론을 어렵지 않게 도출할 수 있습니다. 과거 영국은 세계의 패권국이었으나 이후 미국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영국 이전에는 포르투갈이 있었고 다른 여러 나라들이 있었는데, 사실 이 세대가 그렇습니다. 영국인들이 복음의 사명을 감당했을 때 유럽은 당시 세계 1위였습니다. 왜 그 당시에 과학이 그렇게 발달했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께서 복음의 본부를 그곳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후 미국이 발전한 것 역시 당시의 제도 때문이 아니라, 복음의 본부가 미국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화인이 왜 이토록 발전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복음의 본부가 화인들에게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있는 곳마다 흥왕하게 됩니다. 흥함과 넘어짐에 대해 누군가 예언하라 한다면, 이제는 화인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세속적인 역사 방법론으로도 저마다의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신학적인 역사관의 관점에서 이 일을 바라본다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화인들을 일으키고 계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면 반드시 흥왕하게 되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기 뜻만 구하거나, 하나님의 뜻과 자기 뜻을 반반씩 섞어 구한다면 쇠퇴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흥함과 쇠함에는 역사의 자연법칙이 있으며, 이 법칙은 하나님의 뜻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하나님을 구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흥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는 기근이 들었지만 바울이 있는 곳에는 기근이 들지 않았는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 무리가 온통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지 않고 온종일 먹고 마시며 즐기기만 하니, 아무리 든든한 밑천이 있어도 이런 낭비를 견뎌낼 재간이 없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모금한 돈을 예루살렘에 있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가져다주었는데, 그곳이 그들의 뿌리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후로 바울이 실수한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예루살렘 교회가 다른 이들의 구제를 받아야 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복음의 본부가 옮겨졌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이 넘어집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찾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나의 뜻으로 삼고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의 계획으로 삼겠다고 하나님께 고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조금 욕심을 부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셨으니 다른 사람은 찾으실 필요가 없다’고 독점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사람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십사만 사천 명을 채우는 것이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제가 바로 그 십사만 사천 명 중 한 사람입니다. 저는 이미 한자리를 차지했으니, 이 엄청난 복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기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그곳에서 시간이나 때우며 적당히 살지 말고, 간절히 사모하며 머리를 들이밀어서라도 기필코 하나님의 나라로 비집고 들어가야 합니다. 택함받지 못했다면 기필코 택함받도록 만들어야 하고, 설령 스페어타이어 같을지라도 훗날 반드시 장착될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믿음을 가지고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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