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咱们讲的这一章是《有忠心的大卫》,其实整本《撒母耳记下》都记载了大卫的一生和他身上忠心的品格。如果一个人能像大卫一样在神面前有忠心,那可了不得。神就把他立为以色列的王,在大卫身上有一种清醒的认知,就是他知道他的王位是神给他的,不是用来吃喝玩乐的,他的王位是用来管理以色列百姓的,对神忠心是非常重要的,因为这是神所要的品格。
大家要仔细听,在神面前做个忠心的人,你不蒙祝福都难啊!人的核心利益到底是啥?人的核心利益就是神,这就是华人命定神学所说的最重要的观念,就是为神而活、为神而生、为神而死,这是我们的命定!大家听明白了吗?如果神是我们的核心利益。我们就不会做扫罗王,我们就不会觉得王位很重要,神的国不重要,我们追求的是神的国和神的义。
Q1:老师好,扫罗被神击杀是因为对神不忠心,还是为了自己的利益违背了神的话?
其实扫罗对神是不忠心的。但是这个不忠心的扫罗却做了以色列的王,大卫又做了他的下属。大卫需要对扫罗忠心吗?他需不需要?对有些人来讲,不需要!对有些人来讲,需要!大卫对他自己的上司,对自己的王,对自己的领导,他为我们做了一个忠心的典范。为什么?原因很简单,不是因为你的领导配得你尊荣,你就尊荣;不是你的领导配得你忠心,你才忠心。
难就难在这里,你的领导不太配得你忠心,甚至你的老公也不太配得你忠心。如果你觉得你老公不配得你的忠心,你就到外面淫乱,那就麻烦了。咱们弟兄姐妹要开始逐渐地调整,培养自己忠心的品格,忠心是一种品格。你说吕布有没有缘由去杀董卓呢?有这个缘由!要是按着吕布的想法都是很合理的,结果他就去把董卓给杀了 。
大家要逐渐地了解大卫是怎么干的,大卫是怎么想的。你要慢慢地学,我都还没学到家呢,那你就差得更远了。我们一定要塑造自己里面那种忠心的品格,横下一条心不做这种不忠心的事。做不忠心的事是因为有一个不忠心的习惯,有了不忠心的习惯就成了一个不忠心的人。咱们开始逐渐地了解扫罗被神击杀是因为他的不忠心,因为他的核心利益是他的王位,他要把王位保护好,又保护不好,另人非常地感慨。
Q2:老师,约拿单也是敬畏神的人,他和扫罗一块儿被杀了,可以说一下约拿单这个人吗?
约拿单是扫罗的儿子,是一个很棒的人,是一个很棒的下属,他和扫罗一起去打仗,他也知道在战场上会被杀。扫罗打败了,为什么约拿单与扫罗一同被杀了呢?大家可能会困惑,约拿单这么好的人,这么爱大卫,难道神不因为大卫的缘故纪念约拿单吗?你得知道你在扫罗的下面,你就会与扫罗有差不多的命运。
如果你在一个企业里做工,而这个企业倒闭了,你就得与它一起承受这个后果。其实神对生生死死的看法和我们对生生世世的看法差别是很大的,我们别把这些事给搞混了。其实扫罗就是想把王位传给约拿单,但是为什么被杀了呢?如果约拿单还活着,扫罗的手下会怎么样?扫罗的手下会把约拿单供起来做王,整个事情就会变得更加的混乱。这事可能都是我们自己瞎说的,但是在永恒里神给约拿单的安排还是最好的,咱只能管一件事,就是我们要不要学大卫做一个忠心的人 。
Q3:老师,大卫忠心于扫罗,可是为什么他还是从扫罗面前逃开了?
你不逃的话,难道是想等死吗?千万别像那些人说的什么刀枪不入,伸手就能抓到子弹。你抓一个试试?那东西不叫忠心,那叫愚蠢!扫罗要杀大卫,他逃走了,这很正常。你如果认为这叫不忠心,那就坏了,我想这不是一个聪明的想法,何必要让扫罗试探神,使扫罗流人的血,使他罪上加罪呢?脑袋可千万别犯愚蠢。
Q4:老师,“我兄约拿单哪,我为你悲伤!我甚喜悦你!你向我发的爱情奇妙非常,过于妇女的爱情。”这句话怎么理解?
这句话指的是这两个人的关系太好了,约拿单爱大卫,已经超越了男女之间两情相爱的感情。通常我们描述的是友情、爱情、夫妻间的感情。但是大卫与约拿单是完完全全超越了这种两情相悦的感情。这种爱情是啥呢?有点像使徒保罗和耶稣之间的爱,就是保罗说自己为耶稣的爱而癫狂,就是一个人把情感全都投在这个人身上了,而这种情感绝对不是同性恋、异性恋、生死恋那玩意儿 。
因为约拿单爱大卫,大卫也爱约拿单,两个好兄弟的爱情是建立在对神有同样的认识上,是从神而来的,惺惺相惜、志同道合的爱。两个人都知道神要做啥,他们寻求的都是神的义,真是太棒了!我很希望咱们弟兄姐妹之间也有这种纯洁的爱,这种爱就是一同寻求神的国和神的义,一同寻求在耶稣里的命定。这种在神的国里的情感,绝对不是男男女女那种油油腻腻的爱,而是超越了爱情。
Q5:老师,大卫是王,撒母耳是先知,可以理解为他们都是以色列民的牧者吗?
不管撒母耳的职分是先知,还是大卫是王,扫罗是王,神给他们的职分是非常清楚的,就是管理以色列的百姓,把以色列的百姓带到神的面前,让他们更多的认识神。神立我们,不管是什么样的职分,都是在管理神的百姓,也就是牧养。有人说:老师,你可以牧养,但是我牧养不了。如果你在耶稣基督里是一个三岁的小孩,就一定要在耶稣基督里成长。如何成长呢?在家里帮着爸爸妈妈做家务,一起成长,这就叫做服侍。你可能担当不了什么,但是你可以在你的位分上担当一些,那是一点问题都没有的。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사무엘하》 1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는 《사무엘상》 성경공부를 마쳤고, 이제 이어서 《사무엘하》를 나눕니다. 《사무엘상》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충성된 제사장을 세우고자 찾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충성'이라는 두 글자는 줄곧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충성'을 더욱 소중하고 무겁게 여기기를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충성되지 않은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충성되지 않으면 음란해지고, 영적인 음란은 더욱 치명적인 음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동시에 맘몬을 숭배하고, 돈을 사랑하면서 하나님도 사랑하려 하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저 돈을 좀 더 얻기를 바란다면, 이것이 얼마나 큰 혼란이겠습니까?
《사무엘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 곧 다윗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대대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말씀이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누구누구가 자신의 조상 다윗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더라.' 다윗은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왜 다윗이 우리가 본받을 본보기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가 충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충성'이라는 두 글자는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분의 보좌에 앉으셔서 아래를 굽어보시며 충성된 자가 있는지를 살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충성이 없다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것을 '음란'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중국인들은 대대로 한간(매국노)을 각별히 증오해 왔습니다. 지금도 어느 곳에는 두 개의 동상이 놓여 있습니다. 이 두 동상은 누구일까요? 바로 진회(秦桧)와 그의 아내가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그곳에 가서 보고 말합니다. "이자가 바로 진회다!" 수백 년 동안 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역사에는 결코 매국노가 부족하지 않았으며, 근대 역사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징웨이(汪精卫)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 수하의 몇몇 핵심 인물들도 다 매국노였습니다. 한족이 충성하지 않으면 한간(매국노)이 되고, 하나님의 종이 충성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가 되며, 러시아 사람이 충성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배신자가 됩니다. '배신자/간신'이라는 글자는 듣기에 좋지 않고, 매우 흉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충성심이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간악한 자요, 평생이 비참한 일입니다! 비록 사울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을 많이 행했지만, 매국노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서였든 자신을 위해서였든, 그는 전장에서 전사하기까지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켰습니다. 이 점은 여전히 우리가 탄복할 만합니다. 영웅이란 무엇입니까? 죽더라도 돌격하는 전장에서 죽는 것입니다. 사울 역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비록 사울이 온전치 못했을지라도, 그는 정말이지 뒤로 숨는 비겁한 배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충성'이라는 이 두 글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충성된 다윗》입니다. 참 듣기 좋습니다. 《사무엘하》 전체는 다윗의 일생을 기록하고 있으며, 충성은 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품격이었습니다.
충성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저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여러분이 저를 때려죽인다 해도 저는 배신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 충성된 사람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품격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제게 "당신은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저는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시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제가 한 일인데, 제가 스스로 모를 수 있겠습니까?"
충성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품이며, 이것은 제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훗날 제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 가장 듣고 싶은 말씀은 바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그 한마디입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때로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게 힘을 더해 주셔서, 마음만 있고 힘이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하나님 보시기에 충성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도 충성해야 합니다. 충성은 하나의 품격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인 《삼국지연의》를 보면, 한 번은 여포가 적토마를 타고 방천화극을 든 채 나타났습니다. 장비는 그에게 참 재미있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바로 '세 성씨를 섬긴 종놈(三姓家奴)'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삼성가노'라는 말의 출처가 어디일까요? 알고 보니 여포의 첫 번째 주인인 정원이 그에게 죽임을 당했고, 두 번째 주인인 동탁 역시 그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포라는 인물은 걸핏하면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천성을 지녔기에, 역사 속에서 여포를 '삼성가노'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여포는 처음에 정원을 양아버지로 삼았다가, 나중에는 동탁을 양아버지로 삼았고, 그 후에는 또 누구를 섬겼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어쨌든 충성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충성된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좀 우둔해도 괜찮고, 일을 아주 그럴듯하게 잘하지 못해도 괜찮지만, 충성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충성된 사람이 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결코 자신의 핵심 이익 때문에 충성이라는 품격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충성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역사에서는 그런 '삼성가노' 같은 자들에 대한 편견이 가득합니다. 또한 '두 성씨를 섬긴 신하'라는 것도 있는데, 이 '이성(二姓)'에 대한 글을 누가 썼을까요? 바로 건륭제가 쓴 것으로 '이신론(二臣论)'이라고 합니다. 건륭제는 만주족이었는데, 만주족에 항복한 한족 관료들을 가리켜 '두 주인을 섬긴 신하(이신, 二臣)'라고 불렀습니다. 누군가를 가리켜 '참 어수룩하다(挺二)'고 말하면 듣기 좋습니까? 듣기 좋지 않습니다. 제 생각엔 바로 이 '이신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곧 불충(不忠)을 뜻합니다. 이 시대에는 불충이 마치 하나의 흔한 질병처럼 번져서, 이 세상에서 유독 잘되는 사업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친자 확인 유전자 검사입니다. 이 아이가 도대체 누구의 아이인지 확인하고, 검사가 끝나야 비로소 자기 친자식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참으로 답답합니다!
저는 거듭거듭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저는 평생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고 착한 종이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상을 받기를 갈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성경》을 읽을 때 목숨을 걸고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깨달으려 하는 이유이며,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우리가 매국노를 중화민족의 왕으로 뽑는다면, 어떻게 들어도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다윗은 매우 충성된 사람이었고, 훗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왕의 이력서에 한동안 매국노 노릇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면 정말 어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의 이력은 참으로 잘 써 내려가야 합니다. 장차 언젠가 여러분도 자신의 성적표와 이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 제가 왔습니다"라고 아뢰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며, 장난으로 여길 일이 아닙니다.
이전에 저는 다윗이 권위를 존중했다고 설교하곤 했는데, 사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충성된 성품을 갖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매우 중히 보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충성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결코 '세 주인을 섬기는 종'이나 '두 주인을 섬기는 종'이 되지 말고,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기분이 조금 상했다고 해서 떠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교회를 몇 군데나 옮겨 다녔습니까? 이는 영적으로 치명적인 일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희 교회로 오고자 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원래 있던 교회에 남아 있으라고 계속 권면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충성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원래 있던 교회에서 그곳이 참된 교회가 아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저희 교회로 오신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볼품없고 말투도 거친 저라는 사람 때문이나, 그 어떤 사람 때문에 저희 교회로 오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곳에 오신 것이 저를 도와 교회를 짓는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이 되기를 권면합니다. 충성의 품격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충성된 사람이었을까요? 바로 자신의 핵심 이익과 맞닥뜨렸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충성은 자신의 이익 앞에서 드러난다
다윗의 이 이야기는 참 흥미롭습니다. 《사무엘하》 1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블레셋 왕이 이스라엘을 치러 가려 할 때 다윗은 겉으로는 블레셋 왕을 따라 이스라엘을 치러 가겠다고 고집했지만, 진심으로 가려던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던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셨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그가 참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단번에 다윗을 도와준 셈이 되었습니다. 블레셋 왕이 이스라엘을 치러 갔고, 상대는 바로 사울과 요나단이었습니다. 사울은 전장에 나가기 전에 신접한 자를 찾아가 땅에서 사무엘을 불러올려 그와 말하려 했습니다. 마음이 너무나 괴롭고 이 전쟁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인데, 결국 그 신접한 영은 사울이 전장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사울의 죽음은 하나님의 역사였을까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 사람의 논리로 본다면 다윗은 고소해해야 마땅했고, 우리는 다윗이 "사울이 죽었으니 다들 와서 술을 마시며 축하하자"라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울었습니다. 콧물 눈물을 쏟으며 통곡했고, 결국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함께 울었습니다. 마치 친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처럼 울었는데, 사실 실제로도 그의 장인어른, 곧 아버지와 같았습니다. 다윗의 모습은 실로 우리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또한 한 아말렉 청년이 전장에서 사울이 창에 엎드러진 것을 보고는 다가가 한 번 더 칼을 꽂았습니다. 그는 다윗과 사울이 원수지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은 사울이 죽으면 다윗이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일등공신이 되고자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다윗에게 가서 공을 세웠다며 사울을 자기가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스스로 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으나, 다윗이 충성된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몰랐고, 결국 오히려 다윗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이 사울이 누구인지 어찌 알았겠습니까? 사울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사실을 몰랐고, 다윗이 사울을 장인으로, 자신의 왕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만약 사울이 죽었을 때 다윗이 축하 잔치를 벌였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치신 것일지라도, 다윗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이제 드디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다고 자축했다면 완전히 망쳤을 것이며, 아마 또 하나의 '사울 2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명명백백하게 꿰뚫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누가 누구를 쳐 죽였다고 해서 고소해하지 마십시오.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될 수 있게 되었음에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다윗은 하나님께서 충성된 자를 찾으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충성이 여러분의 핵심 이익과 충돌한다면, 여러분은 여전히 충성을 택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충성된 사람을 찾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 가운데도 충성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걸핏하면 충성심을 저버린다면 세 주인을 섬기는 종이 될 것이고, 목이 달아나 자신이 어느 성씨인지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핵심 이익과 충돌할 때, 여전히 충성된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포라면, 충성된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자신의 핵심 이익이 침해당했다고 해서 충성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충성된 사람인지 아닌지는 여러분 내면의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를 보면 압니다. 만약 자신의 핵심 이익이 침해당하거나 심지어 핵심 이익도 아닌 일에 침해를 받았다고 해서 안색을 바꾸고 분노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렇게 되면 욥이 되지 못하고 아합이 되고 말 터인데, 얼마나 치명적인 일이겠습니까?
충성은 자신의 핵심 이익과 충돌할 때 가장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사람이 왜 세 주인을 섬기는 종이 됩니까?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했기 때문입니다. 저로 말씀드리면, 설령 제 이익이 침해당할지라도 저는 충성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제 마음의 생각입니다. 다윗은 이 일을 참으로 훌륭하게 행했고, 대대로 전해질 만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충성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런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충성의 길을 가는 데는 도처에 시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한 번 시험해 보시고, 저 또한 여러분을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대단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그는 모든 시험을 이겨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존중했다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임 당함으로 말미암아 저녁때까지 슬퍼하며 울며 금식하니라 (《사무엘하》 1:11-12)
사람 중심의 충성 여부는 매우 중요합니다. 다윗이 그 아말렉 청년을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도 아니었고, 스스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손수 죽였다고 말하며 공을 치하받으러 왔기에 다윗은 그 자리에서 그를 죽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존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사울을 기뻐하지 않으셨지만, 다윗에게는 그를 죽일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결코 죽이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베고서도 마음에 자책을 느꼈습니다. 만약 사울이 반항하다가 실수로 사울을 찌르기라도 했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한 것인데, 마치 교통사고가 날 뻔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후회했고, 이 일이 결코 온당치 못하며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결과가 좋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절대적으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존중했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요 이스라엘의 왕이며, 자신은 이스라엘의 백성이자 신하이고, 그는 자신의 장인이자 자신이 그의 조정에서 신하로 섬기고 있으니, 결코 배신자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져도 결코 그를 죽일 수 없었고, 손을 대어 해칠 수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두 번째 기회가 있었을 때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전장에서 전사했을 때조차 다윗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하하지 않고 도리어 애통해하며 울었습니다. 다윗은 '만약 내가 사울 곁에 있었다면 반드시 그를 잘 보호하여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지 않게 했을 텐데, 단지 그가 나를 받아주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맹세할 정도로 충성스러웠습니다.
세 번째로 사울은 전장에서 스스로 죽음을 맞았고, 누군가 그에게 칼을 더 꽂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절대적으로 존중했기에, 다른 사람이 사울을 죽였다 할지라도 결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생각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저더러 그렇게 하라고 해도 참 어렵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을 위해 노래를 지어 《야살의 책》에 수록되게 하였는데, 이를 '활 노래'라 부르며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내면의 생각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의 생각과 같아야 하며, 만약 다르다면 우리 안의 생각을 조정해야 합니다.
다윗이 이 노래를 지어 사울과 요나단을 칭송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일까요? 사울과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아 하나님께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다윗은 어째서 사울과 요나단을 칭송했을까요? 사실 다윗이 칭송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사울을 택하셨기에, 사람이 자신의 왕과 지도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시가가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행보는 우리 중화민족 수천 년 역사에 전해 내려오는 기록들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중화민족의 뼈속에는 여전히 충성심이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비록 역사 속에서 수많은 배신자들이 나왔지만, 중화민족의 문헌과 역사 속에서는 여전히 순수한 관점을 지켜왔습니다. 제갈량이 유비를 보좌한 이유는 그가 '유황숙'으로서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다른 세력들은 다 반역 세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도덕적 최고봉의 입장에 선 것이라 하든 다른 어떤 입장이라 하든, 실상은 충성입니다. 그의 충성은 어떤 충성입니까? 바로 충성에 대한 찬양을 드러낸 것입니다. 도원결의의 유비, 관우, 장비처럼 이들은 모두 충성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다윗도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그 자신 또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였기에,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본을 보인 것입니다. 그는 시가를 지어 사울과 요나단을 칭송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왜 전장에 나갔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영토와 백성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윗의 울음이 하나님의 백성의 충성을 기억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이 그의 직분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죽임을 당했으니 어찌 슬퍼하며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스라엘의 군왕이었고, 그것은 군왕의 품격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았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임 당함으로 말미암아 저녁때까지 슬퍼하며 울며 금식하니라” (《사무엘하》 1:12)
목회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고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목회자들은 삯꾼과 같아서 하나님 앞에서 충성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들을 바싹 마르도록 굶주리게 내버려 두는데 그것을 충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지 않고, 온종일 우리 쪽에 와서 양식을 좀 얻어가 자기 백성을 먹이려 합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돌본다면 반드시 이를 위해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자기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을 제대로 돌보며 목양하지 않으면서 어찌 충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충성된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며,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을 돌봄으로써 우리에게 훌륭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 자체가 바로 군왕의 품격입니다.
《성경》에는 매우 흥미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참조 《마태복음》 20:16). 여러분은 이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잘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여러분이 모든 사람의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니 어찌 뒤에 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뒤에서 이리가 나타났는데 목자가 빠르게 도망치며 양들을 뒤에 내버려 둔다면 되겠습니까? 양을 치는 목자는 양들보다 앞서 달아나는 자가 아니라, 뒤에서 이리가 올 때 양들의 뒤를 지키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영적인 양식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생계와 일하는 법, 처세술, 말하는 능력 등을 훈련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풍성한 공급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충성된 백성으로 훈련시키고자 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제가 겉으로는 수월하게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 정말 피곤합니다. 그러나 피곤해도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저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건강하게 성장하십시오. 끊임없이 자신의 충성된 품격을 빚어 나가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하나님의 영광에 반드시 여러분의 몫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군왕의 품격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목양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가난할 때는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알다가도 살림이 좀 나아지면 하나님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을 결코 본받지 마십시오. 드디어 세상을 사랑하고 먹고 마시고 즐길 여유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의 핵심 이익으로 삼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교회는 결코 여러분이 소일거리나 하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배불리 먹고 마시며 호의호식하다가 삶이 별 재미가 없으니 와서 시간이나 때우는 그런 곳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된 백성들의 무리를 찾는 곳입니다. 어떤 이들은 돈도 부족하지 않고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교회에 와서 영향력이나 좀 행사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지만, 속마음은 그저 소일거리 삼아 온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핵심 이익이 아니라 한낱 취미나 소일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대가를 치르라고 하면 결코 감당하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립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입니다.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이 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며, 우리는 이를 위해 태어났고 이를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어쩌면 다윗이 행한 일들이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충성의 관점에서 다윗을 바라본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핵심 이익은 결코 왕위가 아니었습니다. 왕위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왕위를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잘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제 이름을 날리고 싶지도 않고, 유명한 목회자가 되고 싶지도 않으며, 돈을 긁어모으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하나님의 칭찬을 얻어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민 가운데 저를 택하셔서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주시고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며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 일입니까! 제 이름을 드높여서 무엇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크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 대해 외부에서 종종 "이 교회의 담임목사가 누구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왜 그런 것을 묻는지 모르겠습니다. 알아내서 무엇하겠습니까? 만약 정말 알고 싶다면 그의 이름이 ABC이든 123이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 앞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일입니다.
결론: 충성의 반대말은 바로 음란이다
음란은 심히 가증한 것이며, 듣기에도 매우 흉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하며, 더 이상 음란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편으로는 세상을 사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을 음란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세상을 사랑할 수 없고, 세상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상 앞에서 충성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충성된 다윗은 진실로 우리가 본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