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디모데후서 2장 - 내 아들아,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안에서 강하라!

2025-12-03 20,446 提摩太后书

相关经文

提摩太后书02章-基督耶稣的精兵
  • 1 我儿啊,你要在基督耶稣的恩典上刚强起来。
  • 2 你在许多见证人面前听见我所教训的,也要交托那忠心能教导别人的人。
  • 3 你要和我同受苦难,好像基督耶稣的精兵。
  • 4 凡在军中当兵的,不将世务缠身,好叫那招他当兵的人喜悦。
  • 5 人若在场上比武,非按规矩,就不能得冠冕。
  • 6 劳力的农夫理当先得粮食。
  • 7 我所说的话,你要思想,因为凡事主必给你聪明。
  • 8 你要记念耶稣基督乃是大卫的后裔,他从死里复活,正合乎我所传的福音。
  • 9 我为这福音受苦难,甚至被捆绑,像犯人一样。然而 神的道却不被捆绑。
  • 10 所以,我为选民凡事忍耐,叫他们也可以得着那在基督耶稣里的救恩和永远的荣耀。
  • 11 有可信的话说:“我们若与基督同死,也必与他同活;
  • 12 我们若能忍耐,也必和他一同作王。我们若不认他,他也必不认我们;
  • 13 我们纵然失信,他仍是可信的,因为他不能背乎自己。”
  • 14 你要使众人回想这些事,在主面前嘱咐他们:不可为言语争辩;这是没有益处的,只能败坏听见的人。
  • 15 你当竭力在 神面前得蒙喜悦,作无愧的工人,按着正意分解真理的道。
  • 16 但要远避世俗的虚谈,因为这等人必进到更不敬虔的地步。
  • 17 他们的话如同毒疮,越烂越大;其中有许米乃和腓理徒,
  • 18 他们偏离了真道,说复活的事已过,就败坏好些人的信心。
  • 19 然而, 神坚固的根基立住了;上面有这印记说:“主认识谁是他的人”;又说:“凡称呼主名的人总要离开不义。”
  • 20 在大户人家,不但有金器银器,也有木器瓦器;有作为贵重的,有作为卑贱的。
  • 21 人若自洁,脱离卑贱的事,就必作贵重的器皿,成为圣洁,合乎主用,预备行各样的善事。
  • 22 你要逃避少年的私欲,同那清心祷告主的人追求公义、信德、仁爱、和平。
  • 23 惟有那愚拙无学问的辩论,总要弃绝,因为知道这等事是起争竞的。
  • 24 然而主的仆人不可争竞,只要温温和和地待众人,善于教导,存心忍耐,
  • 25 用温柔劝戒那抵挡的人;或者 神给他们悔改的心,可以明白真道,
  • 26 叫他们这已经被魔鬼任意掳去的,可以醒悟,脱离他的网罗。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은 《디모데후서》 2장입니다. 저는 디모데라는 사람에 대해 점점 더 분명하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디모데를 본받지 마십시오. 성경은 결코 디모데를 본받으라고 말씀한 적이 없고, 바울을 본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의 주제는 바로 ‘내 아들아,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라’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첫 구절이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난 장에서는 ‘다시 불일듯 일어나라’였고, 이번 장에서는 ‘강건해지라’는 것입니다. 지난 장에서는 그가 식어졌음을 말했고, 이번 장에서는 그가 연약해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연약해지지 않았다면 강해지라고 하셨겠습니까?

좋은 군사가 되려면 강한 성품이 필요하다

이 강한 성품이야말로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성품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완고함이 아니라 강함입니다. 강함과 완고함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제를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강해져야 합니다. 왜 우리에게 강함이 필요할까요?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순간,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군인으로 복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 군인이 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난 아직 군대에 안 갔는데요”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것은 군인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군사로 훈련받지 않으면 마귀에게 사로잡혀 무너지게 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엄중한 현실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을 단숨에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한 부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강한 성품을 가진 자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망하는 자들입니다. 제가 어떻게 나누는지 아십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하나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강한 성도’이고, 다른 하나는 광야에서 죽는 ‘겁 많고 유약한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광야에서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광야에서 죽는 성도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겠습니까?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면 성품이 필요한데, 그 성품이 바로 ‘강함’입니다.

더 이상 연약하다는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면 반드시 마귀가 꼬이게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다는 순간 끝난 것입니다. “망했다는 뜻인가요?”라고 묻겠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왜 끝났다고 할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마귀가 여러분의 원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을 어떻게 용납하겠습니까? 어떻게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겠습니까? 이 둘은 서로 다른 두 나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마귀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 저는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리석어졌는지 참 의아했습니다. 강한 성품이 결여되어 있다 보니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 정말로 바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참으로 거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믿음을 선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믿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강해집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디모데후서 2:1-2)

이것이 무슨 뜻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가르치게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연약해졌다는 것인데, 얼마나 연약해진 것입니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디모데후서 2:3-7)

바울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당신과 내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었으니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연약함은 선택 사항이 될 수 없으며,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강해져야 합니다. 강해진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하고, 부탁할 것은 부탁해야 하며, 훈련할 것은 훈련해야 합니다. 나와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연병장에서 고난을 조금 받든지 해야지, 연병장에서 제대로 훈련받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면 죽으러 가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아예 주님을 믿지 말든지, 주님을 믿으려거든 저처럼 강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강해야 할까요? 원수 마귀를 반드시 우리 발밑에 짓밟아야 합니다. 고난을 좀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미용을 위한 잠을 좀 덜 자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지, 미용 수면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강함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실 디모데는 이미 세상일에 얽매여 있었고, 세상의 것들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바울이 “내 아들아!”라고 쓴 이 말씀의 뉘앙스가 느껴지십니까? 세상일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는데, 너는 이미 세상일에 얽매여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를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에 대해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성경 원문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모세는 《출애굽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 (출애굽기 12:51)

이 사람들은 본래 노예였습니다. 그들은 ‘내가 어떻게 여호와의 군대에서 군사가 되었지? 난 군인이 될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거기서 노예로 살고 싶은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여러분은 여호와의 군대가 나왔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민수기》에 이르면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각 지파별로 계수하여, 모든 지파를 다 세어보니 총 60여만 명이었는데, 모두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자들이었고 싸우지 못하는 자들은 계수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우리 형제자매들은 스스로를 준비시켜야 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진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해방되어 세상 속에서 구속함을 받았다면, 이전에는 어떻게 주님을 믿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했을지라도, 이제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집트에서 나왔다면 바로 왕에게 다시 붙잡혀 노예가 되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좋은 군사가 되어 군대의 군인으로 살아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 안에서 훈련을 받는다면 더 이상 세상일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 세상일을 너무 중하게 여긴다면 큰일 난 것입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세상일이 여러분의 올무가 되어 반드시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암 환자들을 섬기는 형제자매들에게 꽤 무거운 말을 전했습니다. “우리 모두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에서 군사로 복무할 때 깨어 있어야 합니다. 대소변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아, 내가 군인이었지’ 하고 떠올리지 마십시오. 그때는 이미 포로로 끌려갈 때가 다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조심하여, 자신이 이런 극심한 고통을 자초하고 나서야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온갖 신학 체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로 복무하는 것을 가르치는 곳은 아마 우리 교회가 드물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련할 때 조금 혹독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 혹독하게 다루어야 할까요? 필기를 해야 합니다. 필기하는 것이 대단한 일입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벌써 큰 도전이 됩니다. 노트 필기조차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는 요구 사항이 있는 것입니다.

한번 헤아려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오시려면, 정말이지 우리 가운데 남아 있는 사람들은 성품이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월요일에는 소그룹 기도회, 화요일에는 전교회 기도회, 수요일에는 성경공부, 목요일에는 교구 기도회, 금요일에는 성경공부, 남는 것은 토요일뿐이고, 그리고 주일예배입니다. 세상에 이런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이것이 바로 연병장에서 훈련받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대가도 치르지 못하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을 손해 보았습니까? 아무것도 손해 본 것이 없고, 그저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던 시간만 쓰지 못했을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군사로 부르셨으니, 우리가 교회 안에서 훈련받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훈련을 받지 않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론 이런 훈련으로도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의 목표는 모든 형제자매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훈련하여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엇이 부족해집니까?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익만 가득할 뿐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과 완전히 다른 두 나라에 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는 것이 좋습니까, 세상 나라에 속하는 것이 좋습니까? 왜 암에 걸립니까? 왜 장폐색에 걸립니까? 왜 갖가지 질병에 걸립니까? 그 이유는 세상 나라가 원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에 속하면 병원에 가야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면 하나님의 병원에 갑니다. 이런 질병에 걸리고 싶지 않다면 하나님의 군대에서 좋은 군사가 되어 승리하십시오. 세상이란 본래 이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미 다른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기꺼이 이 대가를 치르고자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안에서 우리가 그 영광의 면류관을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광의 면류관은 경기장에서 규칙대로 겨루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디모데는 이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마도 한창 뜨거운 연애에 빠져 있었고, 미래의 장모가 주는 영향에 돈의 유혹, 거기에 세상의 온갖 일들까지 더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며 비통함을 느낍니다.

제가 알던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참 좋았고 혼자 몸이라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적지 않아 쉰이 다 되어 갈 무렵 어떤 사람을 만나 감정이 생기고 뜨거운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예순이 다 되어 가는데 아이는 아직 초등학생이었으니 불안해진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아이를 위해 재물을 모아두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러고는 온갖 고생을 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참으로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제가 그분을 섬겨보았기 때문에 압니다. 나중에는 그의 요추와 경추, 등판이 마치 무쇠솥처럼 굳어져서 몹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저는 나중에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목사님도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겠다,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고 참 좋았습니다. 그러다 쉰 살 무렵에 결혼을 하셨습니다. 세상일이 또 목을 옭아맸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그는 이미 예순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식간에 얽매여 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야, 내가 말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말 속에 뼈가 있습니다. 세상일에 얽매이는 것을 깊이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네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세상일에 얽매여 네 아내의 좋은 군사가 되고 좋은 남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이런 말은 대놓고 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바울은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그저 “이 녀석아, 내가 하는 말을 깊이 생각하고 곱씹어 보아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실 것이다”라고 완곡하게 말했습니다. 저더러 쓰라고 해도 그렇게 썼을 것입니다. 다만 얼굴을 직접 볼 때에는 저 역시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때로는 장차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 말해주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제가 사람들을 섬겨보면, 사실 중환자들을 섬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관념이 이미 단단히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에 BIOS라는 프로그램이 있듯이, BIOS가 이미 고착화되어 버렸는데 어떻게 손을 대겠습니까? BIOS를 다시 업그레이드하고 지웠다가 새로 설치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어렵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세상에 뿌리를 두고 뼈저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제가 말씀드리건대 한 사람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 고난을 받으며 좋은 군사가 되어 싸워 승리하여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하든지, 아니면 세상에서 노예가 되어 이 세상의 어둠의 권세에게 죽도록 시달리며 영광이라곤 전혀 없는 끔찍한 고통을 당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함부로 지어내는 헛된 말을 절대로 믿지 마십시오. 어떤 그리스도인이 암에 걸려 항암 치료인지 조직 검사인지 뭔가를 받아야 했는데, 그가 말하기를 “내 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는데, 내게 ‘이것은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지극한 은총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 은총은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받으시겠습니까? 그것이 지극한 은총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인데 네 곁에 서 있던 그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겠습니까? 터무니없는 헛소리입니다!

이런 일에 대해 저 역시 실제로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 시절 교회가 승리하지 못하고 참으로 비참하게 마귀에게 두들겨 맞아 엉망진창이 되고 눈물만 흘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갯소리 같지만, 꿇어앉아 기도하고 있는데 환상 속에서 밖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이 걸어 들어왔습니다. 환상이 마치 영화처럼, 현실과 너무나도 똑같았습니다. 그가 다가와 제 곁에 앉더니 “내가 예수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 꼬락서니가 이런데 예수님이 날 찾아오셨다고?’ 마치 그 암 환자가 ‘변장된 축복’이니 ‘지극한 은총’이니 하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저라는 사람은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제 눈에 보였지만 저는 ‘네가 진짜 예수냐?’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필사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속에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가짜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진짜 돈이 있으면 위조지폐가 있는 법입니다. ‘너는 도대체 정체가 뭐냐? 내 앞에 와서 폼을 잡다니, 내가 바보인 줄 알고 너를 예수라고 믿을 줄 아느냐? 집어치워라!’

그렇게 기도하자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서 역사하셨고, 그 흰 옷이 ‘쏴아’ 하고 벗겨져 내려가는데 보니까 이리였습니다. ‘아이고, 내 분별력이 좋아서 날 속이지는 못했구나.’ 이런 짓을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만약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시다면 교회가 이토록 황폐하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그게 정말 예수님이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실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이런 것들을 믿지 마십시오.

그래서 그때 이후로 저는 사람들에게 무슨 이런 환상 저런 환상을 보았다는 둥, 이런 꿈 저런 꿈을 꾸었다는 둥 하는 것을 믿지 말라고 자주 가르칩니다. 그런 꿈을 꾸었다 한들 집어치우십시오! 헛된 짓 하지 마십시오! 그런 걸 믿어서 무엇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나 제대로 읽으십시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디모데후서 2:2-7)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따위를 별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섬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은사가 따르게 마련인데, 믿으십니까? 골방에 숨어서 온종일 은사 타령이나 하지 마십시오. 은사를 받아서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은사를 가지고 놀려는 것입니까? 은사가 그렇게 장난감 같습니까? 은사는 섬기라고 주신 것이지 장난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릴까요? 자유케 되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은사는 놀이용이 아니라 섬김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맹인과 다리 저는 자들을 자주 섬기고, 암 환자들을 자주 섬겨 보십시오.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깊이 생각하고, 주께서 총명을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총명’이라는 두 글자가 나왔으니 말씀드리자면, 어제 제가 한 자매를 섬기면서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가 제게 메시지를 보내기를 “목사님, 이제 알겠습니다. 목사님이 제게 가르쳐 주신 것은 위선이군요”라고 했습니다. 뭐라고요? 제가 언제 사람들에게 위선하라고 가르쳤습니까? 이 자매는 참 엉뚱합니다. 호되게 훈련을 받았는데, 제가 언제 위선하라고 가르쳤습니까? 저는 지혜롭고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때로는 해야 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필요할 때는 뱀처럼 지혜로워야 합니다. 어떤 때는 뱀 같아야 하고, 어떤 때는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합니다. 뱀 같으면서도 비둘기 같은 것, 그것을 지혜와 총명이라고 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깊이 생각하여 주께서 총명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으로 살아가기를 구하십시오. 마귀와 이 영적 전쟁을 치를 때 뱀처럼 지혜로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씨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알라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은 강건함의 기초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의 후손으로,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한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나신 참으로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를 대표하여 어둠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수 있으셨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 세상에 계실 때 행하신 일들도 전무후무한 역사였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보게 하시고, 날 때부터 다리 저는 자를 걷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것이 무슨 복음입니까? 이것은 실로 엄청난 복음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자들은 모두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야 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음에서 살아나는 길을 열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 능력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이 한 가지 사실을 깊이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 능력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 부활의 능력이 훗날 사도 바울에게 임하였기에 사도 바울은 참으로 강력했습니다. 그가 쓰던 손수건만 얹어도 사람들이 치유받아 예수님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모습을 살아내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추구이며,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이자 ‘강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강해지는 우리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사람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사흘 만에 우리 안의 잘못된 기초를 산산조각 내셨습니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육체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까? 육신이 살아있는 것만이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육신은 살아 있으나 이미 참된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지식도 없고 영적 안목도 없어, 모두 마귀에게 속아 육에 속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능력이 여전히 우리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갈망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맹인이 눈을 뜨고, 다리 저는 자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 이런 역사가 전혀 없으면서 “나는 거듭나 구원받았습니다”라고 한다면, 제가 말하길 “그만두십시오. 아무리 뜯어보아도 당신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예수님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예수님은 한 분뿐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왜 거듭났다고 외칩니까? 정말 거듭났다면 예수님을 닮아야 마땅한데, 왜 보면 볼수록 이기적인 모습만 가득하여 마치 마귀를 닮은 것 같습니까?

저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이 단번에 완성되는 줄 압니다.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생명에 속한 모든 것은 조금씩 자라나는 법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어둠의 권세를 이기셨다면, 제가 깨달은 바를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질병은 영계에서 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며 죽이는 것도 영이니, 육은 무익합니다. 모든 것이 영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왜 암에 걸립니까? 암의 영 때문입니다. 왜 뇌경색에 걸립니까? 뇌경색의 영 때문입니다. 왜 심근경색에 걸립니까? 심근경색의 영 때문입니다. 왜 다리를 멉니까? 다리를 절게 하는 영 때문입니다. 왜 귀가 먹습니까? 귀머거리의 영 때문입니다. 왜 눈이 멉니까? 맹인의 영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정말로 그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 세계에서 우리를 위해 승리하셨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넉넉히 이기고 이 모든 것을 능히 정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중병에 걸린 모든 환자분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면의 이러한 생각들을 새롭게 세우고, 영적인 눈을 다시 떠서 이 일들의 진상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진상을 알게 될 때 비로소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 못 하는 자, 귀먹은 자, 맹인, 다리 저는 자를 다 고치셨습니다. 그 시대에 암 환자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 안에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셨음을 확신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사망을 이기는 길을 열어놓으셨음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강해지는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강해져야 합니다! 비록 여러분이 맹인일지라도 눈을 떠 보게 될 것이며, 암 환자라 할지라도 치유받기 시작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귀신들이 우리 몸에서 쫓겨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믿으십시오! 귀신의 거짓말을 절대로 믿지 마십시오.

현재 기독교회의 주류는 이런 것들을 잘 믿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주류는 마치 대승불교와 같습니다. 그들은 이론만 설명할 줄 알지 능력이 없어서, 크고 능력 있는 복음을 아무 능력도 없는 복음으로 만들어 믿고 있습니다. 평안할 때는 그런 교회에 다니다가, 막상 문제가 생기면 그 교회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말하며, 병 고치고 귀신 쫓는 것을 미신 취급합니다. 그들은 미신을 믿지 않고 오직 과학과 병원만을 믿습니다. 이것이 무슨 복음입니까? 그것이 복음입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하면 기분 나빠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은 바로 후메내오와 빌레도와 같은 부류입니다.

주와 함께 죽으면 주와 함께 살리라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디모데후서 2:11-13)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이토록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말씀을 읽고 나면 ‘이 어찌 대단하지 않은가!’ 감탄하게 됩니다. 이것은 실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부활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를 위해 고난을 받는다 해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비록 원수 마귀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대적일지라도, 내가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가질 때 마귀도 내 발아래 밟히게 됩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이 세상에 선포할 수 있습니다. “마귀야, 이 세상은 내 안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사탄아, 와서 영적인 규칙대로 한판 겨루어 보자!”

여러분과 제가 이런 담대한 심령을 품는다면, 모든 마귀는 우리 발밑에 짓밟힐 것입니다. 마귀는 이미 예수님께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살아있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가끔 권투 경기를 즐겨 보는데, 왜 보는지 아십니까? 제가 매일 저 링 위에서 놈들과 싸우는 상상을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마귀에게 맞아 얼굴이 멍투성이가 되기도 하고, 걷어차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빠져나와 마귀를 KO 시킵니다.

작은 놈 하나를 KO 시키면 중간 놈이 나오고, 중간 놈을 KO 시키면 큰 놈이 덤벼드니 참으로 힘든 싸움입니다.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제가 언제 딴청을 피울 틈이 있겠습니까? 영적 전쟁터는 MMA요, UFC요, 태권도와 같은 온갖 격투기 장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법대로 규칙을 세우면 귀신도 영적인 법에 굴복해야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는 하나님이 참으로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제가 어떻게 부딪치든, 하나님께서는 결국 저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저의 하나님은 너무나도 신실하십니다! 여러분도 한번 도전해 보십시오. 부딪쳐 보면 매번 승리할 텐데, 믿으십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매 판마다 승리할 것입니다. 저는 차라리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와 함께 살기를 원하며, 살아서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서도 주를 위해 죽을 것입니다. 저는 이 영광의 면류관을 반드시 얻을 것을 확신합니다! 영원 속에 우리를 위해 예비된 영광의 면류관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온갖 관문을 뚫고 마귀를 산산이 무찔러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영적인 세계에서 대단히 유명해질 것입니다. 나중에 ‘라마’라는 귀신이 제게 와서 “나는 지난 수천 년 동안 패배해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래서 어쩌라고? 나한테 자랑하냐?”라고 하니, 그놈이 “너한테 패배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놈은 참으로 악한 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이토록 훌륭한 복음이 있습니다!

힘써 하나님의 기쁨이 되라

우리는 강해져야 합니다! 작은 고난이 왔다고 물러서지 말고, 연애 좀 한다고 유약해지지 마십시오. 폭풍우 속의 바다제비처럼 “폭풍우여, 더 거세게 몰아쳐라!” 하고 외쳐야 합니다.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디모데후서 2:14-19)

이 말씀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행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사도 바울이 어떻게 가르쳤는지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 말씀은 대단히 엄중한 말씀입니다! 사역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잊어버리고 눈앞의 사소한 일에만 매달려 어리석어지고,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를 잊은 채 말다툼이나 벌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왜 대승불교처럼 변질되었습니까? 온통 이론과 논리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런 쓸데없는 이론 따위가 결코 아닙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탁월합니까? 저와 함께 《고린도전서》 2장 4절에서 5절을 펼쳐 보십시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4-5)

바울은 오래전 고린도전서에서 이미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잡한 논리와 이러쿵저러쿵하는 이론만 잔뜩 늘어놓고 능력이 없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능력이 없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아닙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마귀는 너무나도 간교합니다. 어느 정도로 간교한가 하면, 그럴듯한 헛된 논리를 잔뜩 늘어놓게 하면서 능력은 전혀 없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터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입니다. 사도 바울이 쓴 서신들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했고, 예수님께서도 육은 무익하니 살리는 것은 영이요 죽이는 것도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했으니,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기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어둠의 권세를 이기신 것이 우리의 기초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원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이미 승리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이 마귀의 거짓말을 믿는 순간 마귀가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마귀의 거짓말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강력한 증거만을 받아들인다면, 마귀는 속수무책이 되며 제아무리 강력해도 우리 손에 패배하고 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참으로 좋은 말씀입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고 세워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보배로운지를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교회를 세워온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한 역사였으며, 지난 세월 동안 거의 매일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하고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한때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큰 고통 속에 있는 분이 계시다면 제 경험을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저 역시 과거에 승리하지 못해 너무나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수년간 교회를 세우면서도 여전히 씨름하며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싶었으나 어떻게 해도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은 너무 고통스러워 눈물이 뚝뚝 떨어져 생수병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절망적이었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몰랐을까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고통스러운 가운데 하나님의 영께서 제게 감동을 주시며 “릭 조이너의 《마지막 싸움(The Final Quest)》을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책을 가져다 읽으며 ‘높은 곳으로 오르는 길’에 대한 대목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영적인 고지를 끊임없이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는 “이것을 언제 다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하며 몹시 힘겨워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반년이 흘렀고,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도 놀라운 감각이 찾아왔습니다.

지금도 그 은혜는 여전합니다! 갑자기 찾아온 그 감각은 속이 활짝 열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릭 조이너가 환상 중에 받은 계시 가운데 그 영적 고지에 이르는 한 단계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저는 제가 드디어 이 단계에 도달했음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영적 단계를 끊임없이 올라간다는 것은,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의미를 깨달음으로 명확하게 아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부활이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 높이가 너무 낮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부지런히 추구하십시오. 힘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영적인 정상에 오르기를 끊임없이 추구하십시오. 더 이상 말다툼을 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헛된 말은 악성 종양과 같아서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그분은 주님이시며, 우리 하나님께서 만유를 다스리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마귀 따위를 상대하실 필요조차 없으십니다. 애초에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마귀가 우리와는 조금 겨룰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귀신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인 헛된 이야기나 말다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제아무리 화려하게 말을 잘한다 해도 소용없으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이 그들에 의해 변질되면 능력을 잃어버리며, 그것은 참된 복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깨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터 위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귀히 쓰는 그릇이 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이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에게 승리의 터와 강건함의 터가 세워졌으니, 우리는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부활하기로 결단하고, 인내하여 주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강함과 끈기로 힘써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법을 배워 마침내 귀히 쓰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큰 집에서 금 그릇과 은 그릇이 될 것입니다. 물론 금으로 요강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귀한 그릇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겉이 금이라 할지라도 밤에 소변을 받는 요강일 뿐입니다. 금으로 변기를 만든다 한들 귀한 그릇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귀히 쓰는 그릇이 되는 것은 우리가 강해진 결과입니다. 세상의 헛된 말을 따르면 결코 귀히 쓰는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귀히 쓰는 그릇이 되기를 사모하십니까? 사모하신다면 강해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에서 좋은 군사가 되십시오. 우리의 터이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으십시오. 부활의 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와 함께 살고 주와 함께 죽으며, 힘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디모데후서 2:20-26)

바울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다투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다투는 것은 미성숙하고 유치하며 철이 없기 때문입니다. 온유하고 부드럽게 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온유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고 내면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내면에 강함과 지혜가 없으면 반드시 이성을 잃고 흥분하게 됩니다. 걸핏하면 이성을 잃고, 펄펄 뛰며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속에 지혜가 없고 무력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길게 썼겠습니까?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사실 배경을 깐 것이며, 핵심은 바로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젊을 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의기양양합니다. 스무 살, 서른 살에 다단계나 장사를 좀 해서 돈을 만지면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큰 사업만 벌이려 합니다. 그러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되며, 어느새 환갑을 맞이한 노인이 됩니다. 그때서야 청년 시절의 경솔함과 사욕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를 깨닫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철없는 젊은 시절에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노련해져야 하며, 경솔함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디모데에게 바로 이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앞서 《디모데전서》에서도 큰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고 싶어 했고, 복근을 만든다고 운동하다가 결국 미쉐린 타이어처럼 뱃살만 나왔는데, 여자친구가 싫어하니 왕자 복근을 만들겠다고 애를 썼습니다. 청년의 정욕으로 마음이 높아지니 남들과 다투고 변론하여 기필코 이기려 들었던 것입니다. 사실 나중에도 디모데는 이런 습관을 다 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분노와 감정적인 폭발은 인간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본질을 명확히 안다면 왜 이성을 잃고 흥분하겠습니까? 왜 길길이 날뛰겠습니까? 여러분이 강하고 지혜로우며 대처할 방법이 있다면 감정적으로 날뛸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내면을 강하게 하고 지혜를 갖추도록 스스로를 훈련하여 바람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면 굳이 남을 이기려고 다투며 자신이 대단하다고 뽐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저 요강에 불과할 뿐입니다. 밤에 일어나 급한 볼일을 해결하는 요강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더럽기 짝이 없습니다. 골동품처럼 모양이 예쁘다고 해서 그것으로 차를 마시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이 그 그릇으로 오랫동안 차를 마셨는데, 감정 전문가가 와서 “이것으로 무엇을 하십니까?”라고 묻자 “차를 마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전문가는 “이것은 요강이지 찻잔이 아닙니다. 소변을 받는 그릇입니다”라고 하여 차를 마시던 사람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존귀한 자들이므로 펄펄 뛸 필요도 없고 다툴 필요도 없습니다. 다투어 이겼다고 해서 존귀해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비천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비천한 일을 버리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귀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 변론하고 다투는 것은 어리석고 무식한 짓이니,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십시오.

그런 사람들에 대해 바울은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실까 함이라”고 썼습니다. 이 구절을 깊이 묵상해 보면 완곡한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온유하게 권면해 보고 들으면 다행이지만, 듣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을 억지로 하나님의 나라로 끌고 올 시간이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만민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배를 찾아낼 뿐입니다.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바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다시금 강건해지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어두운 권세를 잡은 자들과 싸워 승리할 때까지 나아가, 주께 귀히 쓰임 받는 그릇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