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在我们当中,如何从入门开始建立正确的信仰体系?
其实这个门不难入,这个门就在耶稣基督那里。耶稣基督就是门,耶稣基督就是真理、道路和生命。如果你再问我,耶稣基督这个门是从什么时候开的呢?是从亚伯拉罕年间开的。亚伯拉罕怎么开的呢?大家知道亚伯拉罕怎么开的吗?大家一定听我讲过很多了。亚伯拉罕怎么进这个门了?亚伯拉罕把世上活着这事看透了,觉得没有意思了。如果你还觉得这世上活着可有意思了,信靠神多累呀!服侍神多累呀!永生多累呀!你还没有进门。为啥?一个人看不透人活着是虚空,人就没有办法找到信实的东西。人如果把这世上的事看得那么认真,就麻烦了。
如果你说亚伯拉罕开了这门,他怎么看透的?我给大家举几个例子。大家要知道,我读《圣经》是很细的,也读得很专业。我研究亚伯拉罕很久了,亚伯拉罕他爸爸在七十岁时,有了亚伯兰(亚伯拉罕)、拿鹤、哈兰这哥仨儿,亚伯拉罕是老大。如果是一年生一个的话,应该是在六十七岁的时候;可能还早,可能两三年、三四年生一个,可能六十来岁就有了亚伯拉罕。他爸活到二百零五岁。
如果按他爸爸七十岁生的亚伯拉罕,这个时候亚伯拉罕是一百三十五岁。我没算错吧?是二百零五减七十是一百三十五。亚伯拉罕在七十五岁的时候离开哈兰,之后六十年的时间,他没有回去看过他爸。他爸死了他也没有回去奔丧。可能那个年代也没有电邮,也没微信,他也不知道,反正他爸死了就死了。你说这是什么儿子啊?
后来我在很多牧师的讲道里听到这样一句话,我告诉你,这个瞎子领瞎子就是这样!牧师讲到:你看雅各,他跑到他舅舅家躲避他哥哥杀他。后来他妈妈死了,他都不能回来奔丧。人家雅各也好,亚伯拉罕也好,把奔丧这事没当回事。你如果把这事当回事,你就当回事,你就不是亚伯拉罕。如果你没把这事当回事,你可能是个亚伯拉罕。这是第一点。
第二点,这亚伯拉罕厉害呀!神说你把你儿子以撒献上。他就把以撒献上了。如果看不透人活着这事,那是不可能的。
所以亚伯拉罕所走的这条路,是把生生死死都看透了。为啥?什么时候死都一样,几岁死也都一样。不管你是几岁,如果死了能回到神那里都一样。不管你是几岁,如果死了不能回到神那里也都一样,但是那样和这样是完全不同的两样。一个人不把活着的这事看透,你没办法走亚伯拉罕这条路,大家能理解吗?所以那就叫做门。
如果你没研究过,你把你的工作看得很重,丢了一个顾客就很纠结,丢了俩顾客就要死要活,丢了三个顾客恨不能要上吊。这那是亚伯兰罕?所以我常常讲虚空的虚空,虚空的虚空,就是这个意思。《传道书》是基督教信仰的根基,如果我们把生生死死都看透了,什么经济不经济的,什么世界和平不和平的,这些事跟咱没有什么太大的关系。神要毁掉这个世界,而你要转化这个世界,你不是跟神唱反调吗?
Q2:老师讲的家人拦阻我们敬拜神。我就有这样的经历,为什么?
因为这是一个属灵的事。记住,一个人要想从埃及出来,一定会有法老王拦阻你,咱现在不就在讲《出埃及记》吗?那法老王拦阻你,你要被拦住了,你就被拦住了,没拦住那也是你的造化,很正常。没有拦阻从哪知道你的信,是真的信还是假的信?也许你来了就想得着医治,那得着医治以后,该干啥就干啥去吧!我不拦着你,我也不需要人数,我需要的是像亚伯拉罕这样的人,至少进了门以后愿意献上自己。
我们的仇敌就是我们自己的家人,那是在灵界里定的规则,大街上的人拦你干啥?他拦你也拦不住啊!就是跟你最亲近的人才拦阻有效,才能在你里面制造纠结,但如果在你里面制造了这些纠结,如果你是亚伯拉罕的话你就很容易迈过去了。
Q3:老师,请分享下你读《圣经》的方法,该怎么去读?
我每个礼拜都带大家读《圣经》,就是这么读的。其实读得很辛苦,像读到《出埃及记》的27章,我读了不知道多少遍,我都不知道作者在说啥,我猜你也跟我一样,你也不知道他在说啥。但是读着读着,就会书读百遍其义自见!我喜欢把东西用整体来看,我不太喜欢片面的思考,所以我沿着《创世记》然后《出埃及记》,把每一章的主题连在一起一看,哎呀!这整体看起来就很清晰了。整体很清晰就不会乱讲,不会偏离了神要告诉我们的那个本意。
神就是要把这些东西隐藏起来,好让寻找的人来寻见!你说:他一下子都写出来多好啊!神不是这么干的,神就是要让人去寻求,我也很清楚神就是要找那些愿意付代价寻求的人。要读就要先建立框架,框架是怎么建立起来的?你如果把《出埃及记》、《创世记》一直到《启示录》快快读一遍,那些常常重复的东西,就是框架。一旦有了整体的框架,你回头再去看什么是救恩?就不再是那种传统意义上的死了上天堂。我不一定解释的清楚,但是我每个礼拜给大家做示范,我怎么讲,我怎么读。
Q4:老师,能不能具体的讲讲怎么建立读经、知识、智慧上属灵的体系。该怎么学习?
当我们把世上的事都看透了,我们觉得这世上的事都很无聊,什么赚钱啊,赔钱啊,没有什么意思。然后在这个根基上,再去寻找一个有意义的活法,这是最原始的东西。
我为什么会一直走到今天?我告诉大家,因为我当年信主之前,我觉得活着没有意思,我想死。可是死之前,我想知道这世上有没有一位神,于是我就走进了教会。对我来讲这个弯拐的不难,因为我想从楼上跳下去,我觉得活得无聊,早死早利索。在死之前做一个决定,就是去看看有没有神。我在找活着的意义这条路上去寻求。刚好亚伯拉罕和我差不多。我和亚伯拉罕也差不多。
然后我们再去读《圣经》的时候,就会看见整个《圣经》里面,包括耶稣的教导。对于耶稣基督的教导,千万不要只拿出一句话来讲,要看耶稣讲的整体是什么。我们读书读得快呀,唰的一下就读了好多。你就会发现,《圣经》里面有非常非常多重复的东西。尤其是《马太福音》、《马可福音》、《路加福音》、《约翰福音》里面有很多重复的的东西。一重复你就印象老深了。
你就会发现《圣经》里面所讲的,都是这几个基本概念。讲了几个基本概念,概念就是知识点。耶稣教导的知识点,然后再把这些概念和概念之间的关系,一个一个给它梳理出来。你用这套方法不但读《圣经》好使,去学习《市场营销》也好使,去学《人力资源管理》也好使。然后人就会建立一套严谨的知识体系。这些知识体系,如果我们把它灵活的应用出来,就变成了我们的智慧。这就是学习抓概念。
概念不清啥也干不了。比如说,很多基督徒你问他什么是教会?他们答的五花八门、千奇百怪,其实啥也不是,胡说八道。这就是概念不清。而且《圣经》里面,耶稣早就把教会的概念讲得清清楚楚的。但是很多人不管,为啥?他们就是愚昧。所以我们要知道,语言是构建知识体系的工具,用语言构建出来的知识体系。你就掌握了语言在这个学科里的知识。
如果你会说中国话,但基督教信仰《圣经》你不知道,你就不会讲。所以要构建我们的知识体系就是这么构建的,就是一块一块的构建。比如市场营销是一个完整的知识体系,咱们不管用华语,还是英语都能构建起来。如果说基督教信仰是一套完整的体系,然后我们去构建,概念和概念之间的关系就会很清晰,学习就会事半功倍。
有人说有点懵,我再说一下。学习的时候开始抓概念,所有的知识体系就是一大堆的概念,然后概念和概念之间的关系,如果你会听的话,你会听到我讲的102课程。我讲了很多的概念,然后把这些概念和概念之间的关系给建立起来,我大概讲的都是这样。那把这个概念讲清楚了,然后你就会把这些抓得很清楚。当你出去跟人家说的时候,实际上你讲的那个东西千变万化,但是不离那个基本概念。可是很多人不抓概念,就会产生一系列的问题。
Q5:老师,我们读《圣经》寻求,每次读都有新的观念,透过观察,是不是就是更新了一点点?
是的,每一次都要有新的领受。
Q6:老师,我也很想看透,但每当遇到事情时就很纠结、难受,怎么才能看透?
怎么才能看透,这事挺有意思。只是我怕我说了以后,你做不了。以前我们有个实体教会,我很想整一副棺材放在教会的讲台上。那为什么要整一副棺材放在讲台上呢?看不透的人多呀!因为看不透,我说那你进来躺一会儿,你进来后就假设你躺在里头,你就想,我已经死了,那事立刻不重要了。
所以这是不见棺材看不透。什么叫做不见棺材不掉泪?见了棺材以后,人就知道人有一个终结。你每一次想到自己终结的时候,这事还重要吗?跟你没关系了。后来咱们就彻底地变成一个网络教会,那也没关系,在网络更容易,画一个棺材不就容易了。我想一个人为什么老也看不透,就不知道几时死。有的人可能明天就死了,今天还在想着钱。他有钱干啥呢?我活得好。可是你明天就死了,钱能帮你吗?这就是概念不清。
Q7:老师,《圣经》形成的背后是神掌管吗?彼得、雅各、犹大写的书信体系,跟耶稣、保罗体系不是一样吗?那为什么放在《圣经》里,这不是误导人吗?
你看这就是没有体系的结果。体系是啥?有人帮我回答了:神是跌人的磐石。那为什么耶稣要用比喻呢?好让你们明白,让他们不明白。那为什么祂要这样做呢?好让那些人跌倒,让我们不跌倒,寻求的人就得着。
咱们来试下考题。很多人对考题玩了一点文字游戏,比如说:这个人73岁,20年以后他多大岁数?随手你就答了93,问题是他能活到93吗?他可能83就死了,可能84就死了,可能93还没死。他可能活到74,今年73,74就划上句号了,他永远活不到93,就一千年以后他也不会活到93。那这个东西就绊人啊!跌人!你说不知道,就答对了。那如果答93你就答错了,你不知道他几时死。这东西就是故意挖个坑,好让人跌倒,那看你聪明不聪明,聪明的人就得着了,笨的人就完蛋了!那神也是一样,神要找的是宝贝。
大家要逐渐了解,我所创建的命定神学,是一套体系。其中就有跌人的磐石,神就是考察谁是宝贝,然后把垃圾筛出去。你以为神是挑垃圾的啊?问题你是不是那个宝贝,那就看你的造化了。
所以《圣经》把彼得、雅各、犹大写的那些东西放在里头,那为什么我一开始不知道?因为这些书信我带着大家查,查也查不明白,我读了不知道多少遍了,把我给累惨了,整得屁滚尿流也没整明白。他没说明白,我能整明白吗?如果我在这胡说八道一通,瞎说一通,大家能明白吗?我都知道我自己没说明白,你能听明白啊?这就是问题!
后来我被迫从头到尾考察这些东西,什么人就说什么话,我就把《圣经》里的人物,在《圣经》里有记载的东西,我都疏理得清清楚楚的。我就把雅各是什么人整得明明白白,然后我才知道《雅各书》他没讲明白,为啥呢?
我被迫把耶稣讲的建立起体系,我去实践的时候是有效的;我去实践使徒保罗的教导是有效的。但是《雅各书》里写的东西我实践不了,没法整,不知道咋整。他自己也讲得很乱,大概从小上学就学得不好,从小跟耶稣长大,但是却没有耶稣的样子,这是很神的事。而且雅各的那东西实践不了,我努力去实践却实践不了,很困难!大家如果你能实践了,我跟你学!这就是建立体系以后,明白了这是个跌人的东西!
愿神祝福大家!
1. 서론
- 고립되고 단편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영적인 진리는 완전한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완전한 체계를 세우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가 있게 됩니다!
- 완전한 체계는 목표를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엔지니어의 이념과 설계도, 시공 방안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에는 교회를 세우는 완전한 건축 체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2. 완전한 체계가 있어야 한다
- 사람은 하나님의 성막을 건축하는 것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관한 완전한 체계를 세우면 어떤 일이 중요한지, 어떤 일이 중요하지 않은지 알게 됩니다!
- 사람이 다른 일을 교회를 건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면 하나님의 임재가 없게 됩니다. 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관한 완전한 체계를 세우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3. 입문해야 한다
- 지성소로 가는 길은 사람이 성결을 추구하는 길을 상징합니다. 여러분은 성막 문밖에 있을 수도 있고, 성막 뜰에 있을 수도 있으며, 성막 안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서로 다른 영적 수준을 나타냅니다. 사람은 서로 다른 영적 수준에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올라가야 합니다.
-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영적인 입문에서 아직 한참 멀리 있고, 지성소의 뜰 문에도 이르지 못했으면서 자신이 이미 구원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4.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되라
-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거룩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일입니다. 자신을 드리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며, 살아가는 것이 수고와 슬픔이 됩니다!
5. 결론
- 사람에게 완전한 체계가 없으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큰 편차가 생기며, 완전히 자신이 지어낸 것이 됩니다. 결국 모두 바리새인이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됩니다!
- 완전한 신앙 체계를 세우면 살아가는 일들을 꿰뚫어 볼 수 있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게 됩니다. 사람은 대가를 치르게 되고, 자신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됩니다!
핵심 단어
- 완전한 체계
- 성결의 길
- 제사를 드리는 사람
- 자신을 드림
- 대가를 치름
- 하나님의 임재
- 하나님의 성막
- 지성소에 들어감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출애굽기》 27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를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여러분도 발견하셨습니까? 산에서 본 양식대로 만들었다고 하면, 말해도 별로 재미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 하나 만들고 저것 하나 만드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누어서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궤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후 지성소와 성소, 상과 금등잔대, 해달의 가죽과 뜰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뜰을 다 만든 후에도 안에는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 있습니다. 제단에 대해 말씀한 후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이 되는 것과 성막 안의 등불을 관리하는 일을 말씀합니다. 등불은 항상 켜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서로 분리해서 보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략적인 모습을 이미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때 모세가 27장까지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산 위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떻게 명령하셨는지를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기록을 마치고 돌아온 후 자신이 정리했습니다. 25장, 26장, 27장은 이 성막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25장, 26장, 27장을 서로 분리하지 않고 연결해서 본다면, 성막을 건축하려면 완전한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때 하나님께서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것을 어떻게 만들지 설명하신 것은 실제로 설계도를 그려 주신 것입니다. 훗날 30장 이후에 가면 모세가 또 한 번 반복해서 기록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출애굽기》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일들을 두 번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7장에서 28장으로 넘어가면 제사장과 제사장이 입는 옷에 대해 말씀합니다. 27장에서는 이미 이 그림이 아주 분명하게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완전한 성막입니다. 성전이라고 부르든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것은 완전한 성막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절대로 이것을 존귀하지 않은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물건에는 좋은 물건도 있고 나쁜 물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물건이 아니라면 문제가 됩니다! 이 성막에 대해서는 우리가 완전한 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여기서 하는 모든 일을 서로 분리해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완전한 체계가 없다면 이러한 것들을 설명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나중에 저는 사람이 체계 없이 생각하고, 문제를 분리하고 고립시키며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매우 악한 나쁜 습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립되고 단편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나쁜 습관이 있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고 맙니다.
완전한 체계가 있어야 한다
전체적인 체계의 관점에서 이 성막을 보면 지성소와 성소, 뜰, 제단, 문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아주 분명한 깨달음이 생깁니다. 실제로 여러분은 지성소로 가는 길이 갈수록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고, 갈수록 더 존귀해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장은 도대체 무엇을 말씀합니까? 이것은 사람이 성결을 추구하는 길을 상징합니다. 사람이 지성소에 이르면 성결하게 된 것입니다.
이 예표를 말할 때 우리는 완전한 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체계’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것은 사명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어떤 것이든 완전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막을 건축하여 세우면 지성소와 성소가 있고, 금등잔대가 있으며, 지성소 안에는 궤가 있습니다. 이것은 한 층 한 층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완전한 체계는 하나의 영적 진리를 계시하며, 이 영적 진리는 완전한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다소 거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을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복음주의든 오순절주의든, 개혁교회든 루터교회든 감리교회든, 어떤 신학 체계에서도 완전한 체계를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체계가 있는데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체계를 분명히 이해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출애굽기》 40장에 이르면 하나님의 체계를 따라 건축할 때 한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성막 가운데, 혹은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전이라는 사실을 또한 예시합니다. 하나님의 전과 성막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체계를 따라 건축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묻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고 밥을 먹여 줍니까? 그것은 밥보다 훨씬 낫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가 뭐가 그렇게 좋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 사람에게 별명을 붙여 주겠습니다. 그는 장삼도 아니고 이사도 아니며, ‘밥통’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성은 밥이고 이름은 통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이름을 지을 때처럼 성이 무엇이고 이름이 무엇이며 자가 무엇이라고 한다면, 그는 성이 밥이고 이름이 통이며 자는 쓰레기입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하겠습니까? 그는 밥을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수준은 매우 낮아서 만나기만 하면 “밥 먹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마치 밥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인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사람을 만났을 때 “밥 먹었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당신은 밥통입니까?”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별로 체면이 서지 않는 말입니다.
이 장의 주제는 완전한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일을 계시하실 때, 완전한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막을 건축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매우 정교한 공사입니다. 지성소와 성소가 있고, 지성소 안에는 무엇이 있으며 성소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깥에는 뜰이 있고, 뜰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체계는 오늘날 우리에게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서로 다른 영적 수준에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올라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뜰 안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은 아직 뜰 밖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뜰에 들어간 후에는 성소에 들어가기를 추구해야 하며, 성소에 들어간 후에는 지성소에 들어가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설계도를 주의 깊게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씀하셨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설계도에 따라 분명하고 정확하게 건축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가 성막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체계가 없는 것은 건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 우리가 이 일을 매우 열심히 말해야 하는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완전한 체계를 건축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명 신학의 매우 큰 특징입니다.
비행기를 만들면서 완전한 체계가 없다면 그 비행기는 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체계 없이 우주 정거장을 만들었다가 우주 정거장에 들어간 후 돌아오지 못한다면 큰일입니다. 날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려면 반드시 완전한 비행기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완전한 비행기의 설계도를 먼저 그려야 합니다. 설계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습니다. 머릿속으로 갑자기 생각났다고 곧바로 만들기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설계도를 제대로 그리지 않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가, 일을 마친 후 다시 해체하고, 해체한 후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이것을 무턱대고 일한다고 합니다. 머릿속이 풀죽처럼 뒤엉켜 있으니, 해 놓은 일도 풀죽처럼 엉망입니다. 완전한 체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종이에 그려 놓고 보면 아주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런 다음 잘 건축해야 합니다. 완전한 체계가 있으면 마지막에 이루어야 할 목표가 분명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비행기를 만들었는데 날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행기 모형일 뿐입니다. 만들었는데 날 수는 있지만 착륙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불꽃놀이가 되어 버린다면 그것도 안 됩니다. 종이에 그린 것이 모두 불꽃놀이라면, 버튼을 누르는 순간 반드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완전한 체계를 가지고 건축해야 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를 건축하는 목회자에게 설계도가 없으면 이것을 어떻게 건축하고 저것을 어떻게 건축하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로도 분명히 설명하지 못하는데 건축한 것이 분명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건축하려면 엔지니어의 이념이 있어야 합니다. 엔지니어의 이념이 무엇입니까? 시공과 설계도, 시공 방안이 있어야 하고, 그런 다음 각종 재료와 여러 가지 물건, 가공 기술과 솜씨 등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비행기에 비유한다면, 날 수 없을 경우 아무리 잘해도 모형 하나를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행기를 만들었는데 날 수는 있지만 날개가 없다면, 기껏해야 불꽃놀이 하나를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엔진 위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면 자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명 신학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건축하시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어떤 것들을 설명하셨는지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그것을 완전한 교회 건축 체계로 형성합니다. 이 완전한 교회 건축 체계가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있으면 치유와 축사의 문제가 해결되고, 질병의 문제도 해결되며, 재정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없습니다. 핵심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를 중요하게 여기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면, 어찌 직장이 없겠습니까? 어찌 무엇을 해도 잘하지 못하겠습니까? 어찌 매우 고통스럽게 살다가 많은 병을 얻게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에게 “왜 병이 생깁니까?”라고 묻습니다. 우리가 지금 지성소를 향해 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이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후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성막을 건축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를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 우리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분명합니까? 예를 들어 나에게 양가죽 한 장이 있거나, 우리 집에 해달의 가죽 한 장밖에 없다고 합시다. 그런데 모세가 이 성막을 건축하려면 해달의 가죽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해달의 가죽을 모세에게 드려 성막을 건축하게 해야 합니까, 아니면 집에 보관해 두었다가 아내에게 해달 가죽 치마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까? 어느 일이 중요한지는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 시험을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왜 우리가 여러분에게 대가를 치르도록 밀어붙입니까? 밀어붙였을 때 대가를 치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직장이 더 중요하고, 사업이 더 중요하며, 가정이 더 중요하고, 아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니 문제가 그렇게 많은 것 아닙니까? 수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도 계속 자신이 원래 가던 길을 간다면, 그것은 살아가는 것에 관한 완전한 체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해되십니까?
저는 완전한 신앙 체계를 세우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건축을 마치면 어떤 일이 중요하고 어떤 일이 중요하지 않은지 알게 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곤란을 일으키든 상관없이, 여러분이 배우고 생각할 줄 아는 체계를 세우고 완전한 체계를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체계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는 완전한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7장에서 우리에게 한 가지 계시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전체 성막이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27장 전체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완전한 체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한 사람의 성결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그 성막의 문밖에 있을 수도 있고, 성막의 뜰 안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으며, 성막의 성소 안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고, 성막의 지성소에 들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서로 다른 영적 수준을 나타냅니다.
절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은 매우 위험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방금 세례를 받고 주님을 믿는 길을 막 시작했으며, 아직 뜰 문에도 이르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모습을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제가 그에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라고 묻고 몇 가지 질문을 더 하면 헛소리를 합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임재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직 한참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하지만, 첫걸음을 떼자마자 멈춘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겠습니까?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완전한 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입문해야 한다
중국 속담에 “입문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 입문하지도 못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비극입니다. 계속 뜰 밖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만드신 것이 참 흥미롭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이 하나 있고, 문 안과 문 밖의 차이가 매우 큽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성경공부를 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러자 여러분은 “압니다. 남자와 여자 아닙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로 나누면 지금 시대에는 나눌 수 없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 남자 반 여자 반인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낮에는 남자이고 밤에는 여자입니다. 옷 입은 것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스무 살 전에는 남자였다가 스무 살 후에는 여자입니다. 온갖 경우가 있어서 여러분도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나눌 수 없습니다.
두 종류의 사람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과 지켜 행하지 않는 사람, 저주받은 사람과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뜰 안에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뜰 밖에 있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십시오. “나는 사명이 있고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외칠 때는 목소리가 우렁찹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집에 있는 해달의 가죽을 건드리기만 하면 안 됩니다. 왜 안 됩니까? “이것은 남겨 두었다가 아내에게 해달 가죽 치마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입으면 얼마나 멋집니까! 해달 가죽으로 청바지를 만들면 체격과 몸매가 얼마나 멋져 보이겠습니까! 밖에 나가면 정말 멋질 것입니다!” 모임에 참석하는 시간이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지니 사명은 그만두자는 것입니다.
중국인 사명 신학의 설계에는 완전한 체계가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대가를 치르지 못한다면 그만두십시오! 그리스도인이 파룬궁 신자들이 치르는 대가조차 치르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싱가포르에 어떤 장소가 있는데, 매일 파룬궁 신자들이 그곳에서 전단지를 나눠 줍니다. 몇 년 동안 한결같이 계속했습니다. 제가 가기만 하면 반드시 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 이렇게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노트 하나 쓰는 것도 돼지를 잡는 것처럼 힘들어하는데, 그것이 되겠습니까?
왜 이 성막을 건축하여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며, 왜 이렇게 번거롭습니까? 이것도 찾아야 하고 저것도 찾아야 합니다.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얼마 되지 않는 금은보화를 거의 다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에는 순금을 쓰고 저것에도 순금을 씁니다. 마치 여러분의 심장과 간을 건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정한 설계입니다. 대가를 치르지 못하겠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여기서 어울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 뜰 안에 있고, 여러분은 뜰 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들어오지 않아도 됩니다. 밖에 있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체계가 없으니 그들은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고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고만 말합니다. 아무리 반복해서 보고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뜰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구원받은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모습이 조금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단을 세우고 문 안으로 들어가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제사는 성결의 길입니다. 제단 위에서 자신을 드리고,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은 자신을 드리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거룩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일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은 지성소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전에 성막을 건축하고, 성막의 뜰을 건축해야 합니다. 다 건축한 후 뜰 안으로 들어가 제사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제사를 드린 후에도 그것은 성결의 길의 시작일 뿐입니다.
자신을 드리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제사를 드리는 것은 마치 돼지 피를 바치는 것과 같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개의 목에 할인표를 거는 것과 같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가 쉽게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잘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성은 밥이고 이름은 통이고 자는 쓰레기인 존재이기 때문에 밥통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간이 있으면 모두 휴대폰을 보는 데 사용하고, 시간이 있어도 하나님께 드리려 하지 않으며, 생명도 하나님께 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밥통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 왜 이렇습니까? 하늘이여, 왜 이렇게 불공평합니까?”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완전한 신앙 체계를 세우는 일이 어렵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완전한 신앙 체계를 세우면 대가를 치르겠습니까?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이것이 어렵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일을 잔뜩 하면서도 저주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아직 뜰 밖에 있어 문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했는데, 문에 들어와 보니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자 고개를 돌려 달아나 뜰 밖으로 나갑니다. 하나님의 임재요? 됐습니다. 빨리 도망치는 것이 낫겠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되라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아브라함이 걸어간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여러분은 가장 낡고 쓸모없는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까? 이게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정말 어리석습니다! 이런 머리로 무슨 일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머리로 무엇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조차 분명히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아브라함이 걸어간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오기 전부터 아브라함이 있었고, 그때 아브라함은 이미 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모세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친히 모세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막을 어떻게 건축해야 하는지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막을 건축한 후 이스라엘 백성은 온종일 성막 주변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늘 성막 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계시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도 계속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살아가는 일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완전한 체계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주 어리석은 말을 하며 이집트로 돌아가 계속 종살이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명 신학의 논리 체계를 세우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는 아내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고, 배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사용할지, 머릿속에는 온통 그런 것뿐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꿰뚫어 보고 영원한 관점에서 이 칠팔십 년의 삶을 바라본다면, 사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이 칠팔십 년을 가득 채우는 것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사람이 왜 이 세상을 위해 기도합니까? 완전한 신학 체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가나안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여리고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그러십니까? 하나님께서 멸하시려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까? 오늘날 이 시대에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런 체계가 없어서 세계 경제를 위해 기도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자녀의 학업을 위해 기도합니다. 관심을 두는 것은 모두 이런 일들입니다. 잘못된 신을 믿고 있기 때문이며, 자신 안에 체계가 없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들은 정말 좋은 일 하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께 속한 체계가 아닙니다. 그들이 이것을 알았다면 이런 일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성막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왜 가나안이나 이집트에 가서 모금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 모든 일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크게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모두 자신이 지어낸 것이며 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체계 없이 주님을 믿든, 구약의 하나님을 예배하든, 신약의 하나님을 섬기든, 체계가 없으면 결국 모두 바리새인이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됩니다. 저는 사람들이 경제를 위해 기도하고 자녀의 학업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이런 기도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려면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그들 가운데 가져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마다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의 등불을 관리해야 합니다. 등불에는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 등불을 관리하는 일은 밤부터 아침까지 매일 야간 근무를 하는 것입니다. 996도 아니고 007도 아닙니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등잔의 그릇은 매우 작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왜 이렇게 번거롭게 하셔서 제사장을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잠깐 조는 것도 오래 잘 수 없게 하십니까?”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여러분에게 훠궈를 먹으면서 이 집 저 집 이야기를 하고 쓸데없는 잡담을 하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임재라고 합니까? 그것은 귀신의 임재입니다!
어떤 사람의 목에 생선 가시가 걸렸을 때 제가 기도하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나았습니다. 그날 제가 큰소리로 자랑한 직후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사람이 저를 찾아왔고, 기도하자마자 나았습니다. 나중에 또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임신 중에 구토하는 사람들, 너무 심하게 토해서 창자와 위가 다 나올 것 같은 사람들도 제가 기도하면 모두 낫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기도를 인도했는데, 어떤 임산부에게 문제가 있었고 또 다른 임산부에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도한 후 모두 나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금등잔대를 관리하는 사람이고,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제 손은 하나님의 보좌에 닿을 수 있고, 발은 땅에 서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 땅으로 내려오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복을 내려오게 하여 땅의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사람으로서 이런 사람이 되십시오.
절대로 “이렇게 번거로운데 어떻게 하지? 조는 시간도 오래 가질 수 없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잠시 후면 등불의 기름이 없어져서 보충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방금 혁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자마자 제가 혁신을 해 보겠습니다. 관을 하나 연결하고 기름통을 하나 더 연결해서, 기름통을 곧바로 북계 2호에 연결하면 어떻습니까? 이것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게으름을 피우는 것입니다! 혁신이 아니라 타락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대가를 치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설계하셨습니까? 우리가 대가를 치우는 법을 배우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존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성소에 들어가고, 입문하고, 제사를 드린 후에야 이 등불을 관리할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자격이 없다면 천천히 해 보십시오. 이것을 위해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다른 일을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아들을 키웠는데 아들이 도박을 하고 마약을 하며 말썽을 일으킨다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그렇게 살다가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결론
지금부터 이 자격을 얻어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등불을 관리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얻으며,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를 갈망합시다. 이것이 제가 살아가는 목적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등불을 관리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제사장이 되기 위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아무나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이 와도 그들이 받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이것이 번거롭다고 생각합니다. 그 번거로운 일을 여러분에게 맡기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영광스러운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영광스러운 사명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여러분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아내와 남편, 아들과 딸, 직장과 사업입니다.
우리가 굳게 결심하여 하나님의 등불과 하나님의 전을 관리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한다면, 이것이 바로 나의 사명입니다. 그 결과 내 사업도 지장을 받지 않고 생활과 가정도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이것도 얻고 저것도 얻어야 합니까? 여러분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기 위해 여기서 그만 말하겠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의 이것저것을 찾아가십시오.
사람이 어렵게 이 세상에 와서 뜰 밖만 돌아다니고 문도 만져 보지 못한 채 문밖에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쓸데없는 말을 하는 시간을 모두 하나님의 임재를 관리하는 데 사용한다면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관리하여 이 땅의 축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조금 주면 그들을 축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사로잡힌 사람을 놓아주고, 억압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내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관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이며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나오게 하여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만, 어떤 승려보다도 잘하지 못하고 결국 저주를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체계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매우 실제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이렇게 됩니까?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모두 멸망에 이르는 무지 가운데 죽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남편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막습니까? 왜 남편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게 하려고 합니까? 이것은 무지입니다. 이것이 저주이며 멸망의 길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더 두려워하여 이것이 멸망의 길이라고 아내에게 말하지 못한다면, 함께 멸망하면 됩니다.
저에게는 이런 성격이 있습니다.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하게 하십시오. 누가 나를 막으면 나는 그 사람을 버립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의 숫자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교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산 제물로 바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육체의 악한 습관을 죽이고,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논리와 육적인 논리 체계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논리 체계로 바꾸기를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인생의 청사진을 그리십시오. 그것은 이생이 아니라 영생을 위한 청사진이며,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아가는 청사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