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고린도전서 10장 -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2024-04-17 57,985 哥林多前书 哥林多前书10章 哥林多前书第十章 只求荣耀神 对神有忠心 自私讨神愤怒 与神同在叫做安息

相关经文

哥林多前书10章-警戒拜偶像的事
  • 1 弟兄们,我不愿意你们不晓得,我们的祖宗从前都在云下,都从海中经过,
  • 2 都在云里、海里受洗归了摩西;
  • 3 并且都吃了一样的灵食,
  • 4 也都喝了一样的灵水。所喝的,是出于随着他们的灵磐石;那磐石就是基督。
  • 5 但他们中间多半是 神不喜欢的人,所以在旷野倒毙。
  • 6 这些事都是我们的鉴戒,叫我们不要贪恋恶事,像他们那样贪恋的;
  • 7 也不要拜偶像,像他们有人拜的。如经上所记:“百姓坐下吃喝,起来玩耍。”
  • 8 我们也不要行奸淫,像他们有人行的,一天就倒毙了二万三千人;
  • 9 也不要试探主(有古卷:基督),像他们有人试探的,就被蛇所灭。
  • 10 你们也不要发怨言,像他们有发怨言的,就被灭命的所灭。
  • 11 他们遭遇这些事都要作为鉴戒,并且写在经上,正是警戒我们这末世的人。
  • 12 所以,自己以为站得稳的,须要谨慎,免得跌倒。
  • 13 你们所遇见的试探,无非是人所能受的。 神是信实的,必不叫你们受试探过于所能受的;在受试探的时候,总要给你们开一条出路,叫你们能忍受得住。
  • 14 我所亲爱的弟兄啊,你们要逃避拜偶像的事。
  • 15 我好像对明白人说的,你们要审察我的话。
  • 16 我们所祝福的杯,岂不是同领基督的血吗?我们所擘开的饼,岂不是同领基督的身体吗?
  • 17 我们虽多,仍是一个饼,一个身体,因为我们都是分受这一个饼。
  • 18 你们看属肉体的以色列人,那吃祭物的岂不是在祭坛上有份吗?
  • 19 我是怎么说呢?岂是说祭偶像之物算得什么呢?或说偶像算得什么呢?
  • 20 我乃是说,外邦人所献的祭是祭鬼,不是祭 神。我不愿意你们与鬼相交。
  • 21 你们不能喝主的杯又喝鬼的杯,不能吃主的筵席又吃鬼的筵席。
  • 22 我们可惹主的愤恨吗?我们比他还有能力吗?
  • 23 凡事都可行,但不都有益处。凡事都可行,但不都造就人。
  • 24 无论何人,不要求自己的益处,乃要求别人的益处。
  • 25 凡市上所卖的,你们只管吃,不要为良心的缘故问什么话,
  • 26 因为地和其中所充满的都属乎主。
  • 27 倘有一个不信的人请你们赴席,你们若愿意去,凡摆在你们面前的,只管吃,不要为良心的缘故问什么话。
  • 28 若有人对你们说:“这是献过祭的物”,就要为那告诉你们的人,并为良心的缘故不吃。
  • 29 我说的良心不是你的,乃是他的。我这自由为什么被别人的良心论断呢?
  • 30 我若谢恩而吃,为什么因我谢恩的物被人毁谤呢?
  • 31 所以,你们或吃或喝,无论做什么,都要为荣耀 神而行。
  • 32 不拘是犹太人,是希腊人,是 神的教会,你们都不要使他跌倒;
  • 33 就好像我凡事都叫众人喜欢,不求自己的益处,只求众人的益处,叫他们得救。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전서》 10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크게 향상된 것을 봅니다. 이 장 전체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함을 말하고 있으므로, 주제는 바로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1. 고린도 사람들의 혼란

고린도 사람들의 혼란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것을 먹은 후에 병에 걸리지는 않을지, 몸에 해롭지는 않을지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이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먹을 때는 기를 쓰고 먹는 것도 이기심이고, 먹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것도 이기심입니다. 다 먹고 나서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것 역시 이기심이며, 모두 자기 자신만을 신경 쓰는 데서 비롯됩니다. 제가 보기에 이기심이란 것은 예로부터 정말 다루기 힘든 문제였고, 이미 우리 삶의 모든 작은 구석구석까지 가득 차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의 혼란에 대해 응답을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일을 행하는 원칙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마치 우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처럼, 자기가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해도 되는지,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묻는 것인데, 결국 근본은 자기 자신만을 너무 신경 쓰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자매인지 형제인지 모르겠지만, 양심의 확신이 없으면 섬기러 가지나 말지, 굳이 남들을 따라 축사 사역을 하러 갔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돌아와서는 온몸에 병이 나자, 귀신을 쫓아낸 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며 제게 반복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아무 상관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사실 그는 귀신을 쫓아내지 않았어도 원래 그 모양이었을 텐데, 자기 자신을 너무 신경 썼기 때문입니다. 왜 귀신이 그 사람에게 들어갔을까요? 귀신을 쫓아낸 뒤 마음에 귀신의 영향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다가, 결국 귀신을 불러들인 것입니다. 이기심은 대단히 사악한 것이며, 심지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사람이 이기적인 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사면 큰일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끔찍이 사랑하는 것을 보시면, 작은 귀신 하나를 보내어 그를 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악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두신 법칙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면 더 이상 이기심 가운데 살지 않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은혜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조금씩 이기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로부터 이기심은 다루기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악덕 상인이 되거나 탐관오리가 되는 것도 다 이기심 때문이며, 이는 대단히 사악합니다. 사람이 악해지면 하나님께 징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새끼손가락 하나를 내미실 것도 없이 털 한 가닥만 여러분 앞에 세우셔도 하늘을 찌르는 큰 나무 같은데, 하나님과 겨루고 힘겨루기를 해서 어디까지 가겠습니까? 고린도 사람들의 이기적인 문제는 모두 자기 자신만 신경 썼기 때문이었고, 이것이 그들의 패망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가 결국 죽었습니다. 예전에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 바울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인데, 지금은 누구의 가르침을 받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볼로인지, 베드로(게바)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모른 채 고린도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바울은 이에 대해 그들에게 답변을 준 것입니다.

2. 바울의 응답

기본 원칙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을 얼마나 행했습니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핑계 대지 마십시오. 사실은 마음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힘이 부족한 것입니다. 사람이 오직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구한다면, 그것은 우상 숭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이 이기적인 것이었고, 얼마나 많은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한 것이었습니까?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린도전서 10:24)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고린도전서 10:33)

바울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두 번이나 말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원칙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않는 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진노를 살 만한 일을 잔뜩 행했다면 반드시 괴로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영적인 원칙을 어기면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미 귀신이 들어와 있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보내실 필요가 없겠지만, 귀신이 아직 오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귀신 하나를 보내실 텐데, 이것을 바로 시험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이기적이 되면 양심이 망가집니다.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고린도전서 10:27)

어떤 사람들은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진 것인지 아닌지에 얽매여, 제물로 바쳐진 것이라면 먹지 않으려 합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상대방이 초대해서 이미 갔다면 기쁘게 먹을 것이지, 굳이 그렇게 물어보는 것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피를 먹지 못한다는 아주 사악한 습관이 있는데, 안 먹는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니니 피가 없는 부분을 골라 먹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고린도전서 10:28-29)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는 것을, 바울은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고린도전서 10:25)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음식이 유기농인지, 유전자 변형(GMO)인지 따위의 질문을 많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음식물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것을 묻는 이유는 그 안에 이기심과 사악함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않기 위함인데,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칙을 다시 요약하자면,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3.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고린도전서 10:23)

이 말의 뜻은 우리에게 자유가 있어서 무슨 일이든 행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그것을 행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을 세워주는 것도 아니며, 다 유익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익은 여러분 자신의 유익이 아닙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터무니없을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은 암에 걸리기 쉬운 성격입니다. 우리 가운데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앓았던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기심이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 들어왔다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린도전서 10:16-17)

우리는 다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갑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결코 교회를 세울 수 없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도 없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될 뿐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기적이고 육에 속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러했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그보다 강한 자냐 (고린도전서 10:22)

이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뒤를 건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고사하고 큰 곰의 뒤만 건드려도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어코 시험을 해보다가, 한 번 일을 치를 때마다 고통을 겪는데, 이 괴로움의 빈도는 사람의 이기심의 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행한다면, 그렇게 많은 질병이나 그렇게 많은 문제를 겪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시간이 다 어디에 쓰였는지 보십시오. 오늘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어제, 그저께, 그끄저께, 나아가 지난 일주일간의 시간을 어디에 썼으며, 행한 일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여러분, 펜을 들고 한번 적어보십시오. 십분의 일이라도 하나님께 드렸다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일에는 늘 시간이 없으면서, 육에 속하고 세상에 속한 일에는 언제나 시간이 있으니 참으로 기이한 노릇입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겠다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간조차 드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로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의 양심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을 많이 해야 하며, 그것은 여러분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어느 모로 계산해 보아도 남는 일입니다. 예전에 어떤 목회자가 자신은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두고, 가정을 둘째 자리에 두며, 사역을 셋째 자리에 둔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둔다는 말은 허울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첫째 자리는 없고 오직 둘째 자리만 있으며 사역을 셋째 자리에 둔 것이니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직 섬김(사역)만이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양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어떤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목사를 찾아갔는데, 그 목사가 월요일은 자신의 안식일이니 성도들에게 방해하지 말라고 한다면, 이 말이 왠지 익숙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어떤 유명한 목사가 강단에 서서 바로 그렇게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안식일이 있었지만, 성전에 나와 섬기는 제사장들에게는 안식일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구약뿐만 아니라 신약에 와서도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가지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3년 반 동안 내내 사역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바로 안식이지, 그곳에서 편히 쉬는 것이 안식이 아닙니다. 그 목사는 강단에서 뻔뻔스럽게 자신의 안식일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는데, 거칠게 말하자면 그날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연락이 닿지 않을 정도이니 얼마나 이기적인 것입니까? 그러면서도 성경 구절을 인용해 가며 논증까지 했습니다. 물론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등뼈는 과연 똑바로 서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며, 저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터무니없을 정도로 사랑합니다. 친구의 부탁으로 뇌종양에 걸린 어떤 목사를 섬기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 어쩌다 뇌종양이 생겼느냐고 물었더니, 목사로서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지 못해 과로로 생긴 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것으로도 모자란다니, 저는 20대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보고 너무 지나치게 열심이라고 말하지만, 직장인들은 주일에 교회에 오면 쉴 시간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느라 자기가 충분히 쉬지 못해서 뇌종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 거짓말이며, 문제는 자기 자신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꼈다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게으르면 조금만 일해도 많다고 느끼며,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은 가장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성경》은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모든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남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 더 먼저 나오는 말씀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데 대가를 치르지 않고 되겠습니까? 여기까지 듣고 반성문을 쓴다면,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누구를 섬겼고 누구를 세워주었는지 돌아보십시오. 지금 문제를 깨달았을 때는 고칠 기회가 있지만, 주님을 뵙게 될 때는 고칠 기회가 없습니다. 다만 그때 주님의 얼굴을 뵙게 될지, 귀신의 얼굴을 보게 될지 알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모든 사람의 유익을 구합니다. 우리는 또한 어떤 일들이 주의 진노를 일으키는지 알고 있습니다. 병이 많거나 재수가 없다면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지극히 큰 은혜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견주어 볼 수 있겠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균형을 맞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4.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우상 숭배이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고린도전서 10:7)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바로 우상 숭배인데, 저는 이런 경우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내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자녀를 둘째 순위에, 자기 자신은 셋째에, 직장을 넷째에, 교회의 성도를 다섯째에 둡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예전에 어떤 자매는 제게 기도를 부탁하러 올 때마다 직장 문제 아니면 남자친구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저도 그런 사람들을 섬기는 데 요령이 생겨서, 차라리 절에나 가보라고 권합니다. 절에 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지도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구합니다. 절에 가서 세계 평화를 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자기 자식이 대학에 붙게 해달라거나, 향을 피우며 아들이 참한 며느리를 얻게 해달라고 비는 등, 어찌 됐든 자기의 유익만을 구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곧 이기심이며, 이기심이 바로 우상 숭배라는 논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누가 이기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그 이기적인 사람들의 결말을 똑똑히 보십시오. 만약 아직도 그 이기적인 사람들의 결말을 보지 못했다면 오늘부터라도 보십시오. 우리 자신이 바로 이기심의 명백한 증거이며, 그러한 일들은 우리 스스로도 적잖이 겪어보았습니다. 잠을 잘 잘 수 있는지조차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여전히 자기 유익을 구할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기적인 사람이 참으로 많고 그리스도인 중에도 마찬가지라 할지라도, 광야에서 쓰러져 죽은 그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매우 이기적이었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는 그리스도인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행위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지 않고 사람의 말을 한다면 그것은 사탄의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입에서 사탄의 말이 나오고 그것이 진정 여러분의 본심이라면, 여러분은 주님의 진노를 산 것이니, 제게 와서 힘들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 ‘자업자득’이라고 말할 뿐이며, 제가 힘들다 해도 저 역시 자업자득입니다. 이기심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이며,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이 바로 이 이기적인 논리입니다. ‘열심히 아등바등 살지 않고 어떻게 성공하느냐’는 것은 세상의 논리이며, 그리스도인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의 기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사실 그것은 순전히 귀신의 소리일 뿐입니다. 더 이상 주님의 진노를 사지 마십시오. 주님의 진노가 아주 조금만 쏟아져도 만 명이 죽었습니다.

5. 시험은 당신의 이기심을 시험하는 것이다

시험이란 하나님께서 귀신 하나를 보내어 당신의 이기심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이겨내면 상을 받겠지만, 이기지 못한다면 행운을 빌 뿐입니다. 우리는 배울 만큼 배웠으니, 더 이상 거듭해서 하나님께 죄를 짓거나 우리의 이기적인 동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온갖 핑계를 찾지 마십시오. 이기심은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다소 격앙되어 말씀드리는 이유는, 형제자매들이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것을 눈뜨고 보려니 마음이 너무나 괴롭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왜 하나님을 시험합니까? 한 번 시험해 보고 나서 이기적으로 굴어도 별일 없으니, 또 한 번 이기적으로 굴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마치 신호위반을 한 번 해도 사고가 안 났고, 두 번 해도 괜찮으니 문제없다고 여기는 것과 같지만, 사실은 죽음이 머지않은 것입니다.

만약 지금 이기심이라는 것이 내 안에 전혀 없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얽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험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기심은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튀어나옵니다. 제 목양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종종 일부러 사람을 자극하는 말을 하거나 시험해 보고, 억울하게 몰아세워 보면서 그 사람 속에 있는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확인해 봅니다. 그러나 시험해 보면 금세 본색이 드러나 이를 드러내고, 조금 더 억울하게 하면 사람을 물어뜯기 시작합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축사 사역을 받을 때 정말로 흉측한 얼굴로 사람을 물어뜯기도 하는데, 우리 가운데 저와 함께 사역하다가 물린 형제자매도 있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12)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면, 온갖 이유를 늘어놓은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제 동역자들은 제가 자주 하는 말을 듣습니다. 저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원하는 사람은 함께 가고, 원치 않는 사람은 그만두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오직 제 동역자들에게만 하는 말이며, 성도들에게는 하지 않는데 여러분이 이 말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시험 가운데 살지 마십시오. 핵심은 우리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하지 않는 것이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26-27)

하나님께서 제게 이토록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제 안에 바울의 중심이 있기 때문이며, 산다는 것은 그렇게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을 내려놓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다 이기심 때문이며 자기 일만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자마자 남편, 아내, 자녀, 부모, 직장, 사업, 남자친구, 여자친구만을 위해 구하니, 우상 숭배와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6. 광야에서 멸망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의 본보기이다

고린도의 이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만을 챙기던 자들은, 무엇을 먹을 때도 그것이 자기 몸에 해롭지는 않을지를 가장 먼저 생각했고, 사람을 섬길 때도 귀신이 자기 몸에 옮겨붙지는 않을지 하는 따위의 하찮은 일들만 먼저 생각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고린도전서 10:1-5)

그들이 왜 광야에서 멸망했습니까? 오직 자기 자신만을 신경 쓰며 하나님의 진노를 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이시는데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남겨두신 것만 해도 감사해야지, 계속해서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10:6-10)

이것은 목숨이 걸린 중대한 문제입니다. 즉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이 우상을 숭배한 목적은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 뛰노는 것이었으니, 다 자기를 위하고 자기의 하찮은 일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말씀해 보십시오. 우리 안에 과연 이러한 것들을 위한 마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고린도전서 10:8)

음행은 충성이 아닙니다. 사람이 음행의 죄를 범한 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여인들과 음행한 것과 같습니다. 당시 육체의 느낌은 마른 장작에 불이 붙듯 아주 좋았을 것이며, 소설 속 묘사처럼 불타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셨고, 하루에 2만 3천 명이 쓰러져 죽었습니다. 충성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있습니까? 육적인 일에 불충하고 영적인 일에도 불충하다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하루에 2만 3천 명이 죽었는데, 우리 역시 그 2만 3천 명 중 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회개해야 할 부분이 아직도 많습니다. 육신을 너무 위했기 때문입니다. 느낌은 참 좋았을지 모르나, 오직 자기 느낌만을 위하는 것은 목숨을 앗아가는 일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고린도전서 10:9)

사람이 주님을 시험하는 이유는 이 일을 해도 별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신호위반을 해도 감시 카메라가 없을 것이라 여기며 요행을 바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태료를 무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사람이 죽어 마침표가 찍히면 그 뒤는 없습니다. 음행을 저지른 첫날 바로 멸망당한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지속된 결과였습니다. 남들도 다 하니 나도 괜찮겠지 하며 미디안 여인을 집으로 데려와 동침했다가, 결국 멸망당한 2만 3천 명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며, 오직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고 자기의 느낌만을 위하는 것은 곧 주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시험한 일은 아직도 많습니다. 저의 인내는 주님의 인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주님의 인내가 참으로 크시니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인데, 주님께서 우리를 언제까지 참아주셔야 하겠습니까? 저 역시 많은 형제자매들을 섬기면서 정말 하나님을 섬기듯 섬겨왔지만, 때로는 입에서 나가는 말이 듣기 거북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섬김을 받는 사람이 음행의 죄를 지었거나, 주님을 시험했거나, 육신을 너무 위하거나, 혹은 그것이 바로 이기심이고 우상 숭배이며 자기 자신만 아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말들은 듣기에 좋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런 말을 해주고 나서 도리어 쏘아붙임을 당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고린도전서 10:10)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도 원망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왜 아직 고쳐주지 않으시는지, 언제쯤 복을 주실지 자주 묻지만, 하나님께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여러분을 고쳐주시고 축복해 주셔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멸하신다 해도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렇게 광야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화인사명신학(华人命定神学)의 위대한 발견 중 하나는 광야에서 쓰러져 죽는 것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자신이 암 환자보다는 낫다며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보험을 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깨어 경계하며,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해야 합니다. 일을 행하기 전에 이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자문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라면, 왜 하나님의 진노를 살 일을 반복해서 행합니까? 얼마 전 어떤 자매는 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다가 결국 불면증에 걸렸습니다. 다음 날 제가 억지로 데리고 기도해 주는데, 무슨 말을 해도 자기는 다 이유가 있고 옳다고 하길래 제가 하나하나 바로잡아 주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상대가 누구든 오직 그의 유익만을 구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큰 은혜입니다.

우상 숭배하지 말고, 음행하지 말며, 주를 시험하지 말고, 원망하지도 마십시오. 사람이 원망하는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여기서 이토록 간곡하게 권면한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사람들은 이를 보고도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바울이 이 편지를 쓴 후 고린도 사람들은 그와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어 관계를 회복하려 했으나 디모데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디도를 보내고 나서야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일들을 명확히 해명할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애타는 마음으로 말했음을 깨달았고, 자신들이 도리어 바울에 대해 선악을 분별하며 대적했음을 알고는 비로소 자신들이 너무 지나쳤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 결단하십시오.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무거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온종일 남과 선악을 분별하며 멱살을 잡고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싸우고, 심지어 위챗(WeChat)을 하면서도 참지 못해 괜히 사람을 차단해 버리는 것은 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사람은 그러다 직장을 잃거나, 불면증에 걸리고, 우울증에 걸리며, 심지어 뇌종양에 걸리기까지 합니다. 겉치레는 하기 쉽지만, 뼛속 깊이 깃든 그 중심을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목회자들의 말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물론 저 자신도 포함하여—뼛속 깊은 중심이 과연 바울과 같습니까?

7. 결론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이 말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제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저는 늘 이 말씀으로 제 자신을 일깨워 왔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의 섬김을 받아본 적이 있다면, 제가 사역할 때 고생을 좀 하는 것은 개의치 않지만 결코 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으며,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바란 적도 없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가장 잘 알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내어주기만을 바랐으며,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제게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은 모두 제가 세운 교회를 통해 은혜를 얻었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교회를 세우는 법입니다. 여러분을 섬기는 목회자들은 모두 제가 훈련시킨 자들이며, 그가 여러분에게 치른 대가는 바로 제가 과거에 그에게 치렀던 대가입니다.

저는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고 주인의 영광에 참여하라는 한마디 말씀을 듣기를 진심으로 사모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겪는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몹시 힘들어도 상관없고, 어차피 죽으면 그뿐입니다. 언젠가 제가 ‘어느 날 한 곳을 찾으리’라는 찬양을 불렀을 때 다들 깜짝 놀라, 제가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하려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훗날 제가 여러분에게 80일간 금식 기도하겠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제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화인사명신학을 세우는 것이 저의 소망이 아니며, 교회로부터 무언가를 얻는 것 또한 저의 추구가 아닙니다.

제가 구하는 바는 영광 중에 나의 주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이 한평생은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마음과 생각, 뜻을 형제자매들에게 전하여, 모든 형제자매가 주를 위해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심지어 자기의 체면도 구하지 말며, 자신의 이미지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거기에 연연하고 나면 귀신이 찾아오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반드시 괴로워질 텐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기를 간절히 열망합니다. 아멘!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