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我们讲了《创世记》三十四章,主题是《属灵的人面对羞辱的态度》,我觉得我讲通了。以前讲跑题了,说明我还在进步和成长。我觉得讲得好。我巴不得弟兄姐妹们都能够理解这些事,并且逐渐地把《圣经》中神要告诉我们的话理解明白,然后就照着做。
也就是说,你能够落实神的话的程度不会超过你对神的话的领受的程度。对神的话领受的程度跟你寻求的程度紧密有关。你寻求还是不寻求,这差别太大了。我在寻求上所下的功夫可不是一点、半点。礼拜三、五的查经我经常是冥思苦想,整不明白就默默地祷告,不断地寻求。感谢神!神常常一步一步地启示。五年前,神启示了一点,我没领受到,自以为是了一把。什么时候自以为是,什么时候都很要命。
Q1:老师,为什么在教会里受羞辱,虽然难受,但是我每次都能胜过去。但是在外面,我受到别人的羞辱,常常不服就干?
这事挺有意思。因为在教会里,你知道人家说你、训你一顿是为了造就你。可是在外面,人家都是跟你抢。也就是说,如果我们里面领受的是人家是为了造就我、爱我,即使说我、训我一顿,虽然是有点羞辱,但是很正常,因为你知道你的牧者是因为关心你的成长。这也是为什么我常常教导我们当中的这些牧者,要先建立关系。关系到了,可以整;关系不到,不能瞎整。因为有了关系,即使对方觉得被羞辱了也没有关系。因为你跟外面的人没有关系,对方羞辱你了,你就会不服就干。
说明我们对这事的领悟程度还是有点偏差。如果外面所受的羞辱是神给你安排的,你要不要跟神对着干呢?你就不要跟神干了。那么,哪件事不是神给你安排的,来训练你的呢?训练一遍、两遍、三遍,如果终于胜过去了,就挺好。
所以,雅各遇到的这些事都是神给他安排的训练,属灵的程度又再次成长了一大截。如果那真正恨你的,把你卖到埃及了,你要不要恨?要不要争这口气?不要。因为没有一件事不在神的掌管之外。如果咱们的领受都是为了我们得益处,我们需要去抓脖领子、抓头发吗?不需要。
Q2:老师,爱面子和看重自己的名声有什么区别?我不理解。
爱面子就是你在乎自己的面子,看重自己的名声在乎的是别人怎么看你。你爱完了面子,别人更加看不起你了。可能你不管,反正要保住自己的面子,觉得别人看不起我不是我的事。看重自己的名声是在乎别人怎么看我们。如果别人说我们是“小气鬼”、“坏人”、“恶人”,我们会在乎,会改。但是,很多人不管别人怎么看我,我怎么看我自己,那很重要。这两者区别老大了。
Q3:死人的遗物也是当灭之物吗?要怎么处理?
有些是,有些不是。你想怎么处理就怎么处理。
Q4:老师,对待孩子,是不是得是另外一种道?
哪一种?我没整明白。你牧养的,好好牧养,得对付他的肉体,不能像没有牧养关系的那样。都是一种道,但是,是不同的状况。
Q5:老师,我有时候被气了,就骂学生。我觉得没整好,所以被羞辱。有时候想想,是跟我里面看重的逻辑体系相关,需要不断地好好调整。老师,能不能给点意见?
有的时候,训一顿其实对孩子们是有益处的。但是,如果说是发泄,就成了老妈子了。别像个老妈子,发泄一通,名声就不好了。是瞎整。
Q6:老师,恋爱脑应该怎么改变?问题的根源是不是不信靠神?
什么是“恋爱脑”?就是不恋爱不行,很想恋爱?这是因为傻,不是信不信靠神的问题,还没有到这一步。就是傻,得先变聪明。以为有美好的爱情,其实有不少的骗子。凡是看重什么爱情不爱情的,几乎离被骗差不了多少了。
Q7:基督徒应该怎么孝顺父母?
基督徒和不是基督徒孝顺父母,都是一个孝顺法,好好地奉养父母。要知道他们是父母,所以,我们要孝敬。但是,不要被辖制,如果成了一个被道德捆绑的人,那就麻烦了。孝顺父母还得甘心乐意,不乐意做不了。
Q8:老师,看重自己的名声,在乎别人怎么看自己,做事总是想别人会怎么想。怎么不让这个辖制住?
辖制啥?这不会辖制。营造自己的名声是建立自己的诚信。提升自己的情商,不那么容易发怒,不那么容易在乎自己。在乎自己的得失,名声好不了。有的人以为在乎自己的名声就是在乎自己的得失,那就完全错了。
Q9:老师,面临冲突我们该怎么处理?如何摆正好里面的心态?如何转化冲突?
面对什么样的冲突?跟你哥哥抢财产?还是啥冲突?有一些冲突是为了自己的利益产生的;还有一些冲突是为了造就人产生的。那差别太大了。别笼统地讲,能不能再具体一点?
Q10:第5节中,为什么雅各要等他的儿子们回来?这不是为他儿子们后面施暴创造了机会吗?他为什么不自己做决定呢?
我也不太清楚。但是我猜,雅各要等他的儿子们回来一起做决定。雅各应该是没有猜透他的儿子们要用诡计来害人。他以为让人家做了割礼,然后把女儿嫁过去就完事儿了。雅各其实是真不知道。
Q11:老师,我是做销售的。最近手上有几个大单,要下个月才能签合同。领导每天逼我,让我一定要这个月下单,哪怕给客户一些优惠。我就很不理解为什么要这么着急低价卖给客户?领导说因为这个月团队没有业绩,如果团队这个月业绩不好,就会有人被开掉,他也会被上面开掉。我心里就想关我什么事?我讨厌别人逼我。我今天就反思,我这样是不是很不负责任,很不顺服,而且是很自私的表现?
不是的,弟兄姐妹可以琢磨一下这类问题所产生的困扰。无论做什么都不要着急,千万别搞错了。你不要以为着急客户就给你了,一定要按照事物的规律去推动。就是如何能拿下这个单子。比如卖房子,房子涨价就好卖,房子跌价的时候,大家却都不买了。我听人讲过这样一件事,把折价写成了抬价,结果很多人都来买了。大家都认为折价好卖,其实不一定的。要常常吊顾客的胃口。
我妈常常跟我说:买的没有卖的精,你要比买的人精明才行。一定要照着事物的规律把事情做成。什么事都不要着急。他被开了就开了呗!也许他被开了,你上去了呢!
Q12:老师,我上中学的时候被同学欺负,以前总是想得着机会使劲揍他,咬牙切齿地恨,现在偶尔想起来也会心里不舒服。有没有办法当作没发生过呢?我也怪自己的属灵高度、眼光怎么就上不去呢?
被欺负会遗留很多对未来产生的负面影响,想起来就会恨。我真的很希望大家都变聪明,因为人笨就会产生这样一系列的反应。然后你再看,还是经常发生同样的事,都是因为邪灵背后在操控。你要选择做一个聪明的人,不再做一个傻乎乎的人。因为人傻,就不知道这么做吃亏。如果你知道恨是一个很吃亏的事,你就不会这么恨了。因为你认为恨是一个很占便宜的事,结果什么便宜也没占着,还弄了一身的病,这不是傻吗?
Q13:老师,底拿被强奸就已经名声不好了,这怎么看?
咋就不好了呢?底拿被强奸了,后来把她嫁过去了,再后来两家关系搞的还不错,人家会说:雅各这人真了不起!有问题吗?名声不好,好像是你认为的吧,雅各好像没这么认为。其实人里面的逻辑体系是非常邪恶的,常常搞反了,亚伯拉罕、以撒、雅各才是搞对的。亚伯拉罕因着老婆被抢走,至今在姐妹当中还留着坏的名声,就是因为很多人像你那么看。
Q14:老师,我以前对孩子非常的暴力,就想着吓一吓她们。牧者常常说我不要照着情绪管理孩子。我这个星期发现孩子懒惰,牧养孩子就是一点点的解决他们的问题,我就教他们一步一步地做菜,发现我自己里面的情绪对付了很多,我这是不是把情绪的问题看的更加清楚了?
我可以夸奖你一下,你真的有进步,挺好。
Q15:老师,在国外的华人总会遇到宗族歧视各种羞辱,孩子在学校也会遇到各种种族的问题,我应该如何引导孩子面对一些不友好的同学?
小孩遇到这种事,不一定能教得了,最重要的是要人能把世上的这点事看透。当妈的都看不透,孩子能看透,那就奇怪了。看不透就会产生一系列的问题。如果知道活着是虚空,还会在乎这玩意儿吗?
我就不知道人非得往那有种族歧视的地方钻,要去干吗?盼望美好的生活,这也正常,可是我们既然选择了这条路,就要接受这条路。有很多环境不是我们所能控制的,但是我们对环境的反应,那是可以控制的,大家要从自己开始做起。而且有很多事都是跟邪灵紧密相关。大家要知道,为什么倒霉的事总是发生在一些人身上,而不发生在另外一些人身上?不就是因为邪灵吗?
Q16:老师,在乎自己的名声,是不是建立自己的品格的意思?
其实名声是很属灵的。如果人贪钱就有贪钱的名声,占便宜就有占便宜的名声,小气就有小气鬼的名声。所以在乎自己的名声,主要是这个人做出来的怎么样,在属灵的世界里跟事物的看法紧密相关。一个人虽然在乎自己的名声,但是如果目标还是赚钱,其实是在乎不了的。但是雅各敬畏神,他在永恒里有一个盼望,他知道他做出来的事都会记在他的履历当中,所以他在乎自己的名声。我们现在就开始在永恒里有一个盼望。
Q17:老师,底拿被强奸就已经名声不好了,你还说雅各要把底拿嫁过去,这怎么看?
这是啥问题?没读懂。我觉着雅各没这么认为,他不认同他儿子把人家杀了。按照雅各的意思就把底拿嫁过去算了。嫁过去活着活着也死了,没嫁过去活着活着也死了。人家雅各活在永恒里。我们为啥问这些问题?就是活在今生的逻辑体系里,好不了。所以一定要改!很多东西是毫无意义的。
Q18:老师,什么样的情况下都要在自己身上找问题,不甩锅,情绪就一定会稳定吗?
可以试一试。可能好使,可能不好使。但是我想,有一件事肯定好使,在自己身上找是不是得罪神?如果一个人把世上的事看透,他的情绪一定会稳定。如果一个人核心利益是钱、房子或者女人,一动他的钱、房子和女人,他的情绪肯定会崩溃。一个人核心利益是神,他的情绪肯定会稳定,这就是关键。一定要找属灵的问题。
Q19:老师,孝顺父母是不是要到一定的年龄?年纪大了才需要我们照顾他们。
孝顺父母不用问,该怎么做,人自有一颗良心在。
Q20:老师,我儿子三十七岁,抑郁症,不信神,我该怎么做妈妈?
好好信主。你太体贴他的肉体,都体贴成忧郁症了。你需要重新审视自己。人种什么就收什么。
Q21:老师,雅各这个当父亲的权柄怎么没起作用呢?
权柄能解决啥问题?我不太理解你问的这个问题。可能你里边有一套逻辑,你以为雅各这个做父亲的没做好,孩子没教育好,是吧?那孩子没教育好的多了去了。大卫、撒母耳这些都是伟大的先知,也没把孩子教育好。所以儿孙自有儿孙福,个人有个人的命。
Q22:老师,我是做生日蛋糕的,老板店里生意差,我最近太闲,没蛋糕做,心里非常的难受。这是怎么回事?
做生意是很属灵的事。有的时候钱就往一些人口袋里钻,有一些人就赔钱。如果你是做蛋糕的,找一个生意好的蛋糕店去做。东家不打打西家呗。
Q23:老师,为什么亚伯拉罕在撒拉被抢走的时候没用武力,侄子罗得被劫的时候用武力呢?是不是可以理解神喜悦这个人,怎么做都有神掌管呢?
你说的都挺好的,你有自己的理解非常好。亚伯拉罕的老婆被人接走,因为他跟人家讲撒拉是他的妹妹,他不希望有一天冒出来两个人把他给杀了。所以当人家把撒拉接走的时候,是把撒拉当作他的妹妹而接走的,动用武力不太合乎逻辑。亚伯拉罕的侄子罗得被抓走,是师出有名啊。所以基督徒做事需要有道。你如果做事不讲武德,没有道,那还是很乱的。别把这两件事搞混了。
Q24:老师,我告诉孩子他的名声在我们家族里不太好,让他悔改,可孩子说世人说了不算,他也不在乎世人的看法,他只在乎神的看法,只要神看着好就好。这种说法是不是不成立?
别到我这来让我给你判对错。判对错是没啥用的。我说完了,你拿我说的回去跟孩子说:你看,老师都是这么说的。你拿孩子的名声在家族里不太好这话说事,本身它就不是特别好,就很不上道。怎么才能够说孩子呢?要为了这个孩子的益处,为了造就他去说比较妥当。我们经常缺少智慧就会瞎整。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창세기》 3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과 고민을 안겨줍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야곱이 이런 일을 겪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감당하기 정말 벅찼을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영적인 사람이 수치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우리 교회는 한 걸음씩 걸어오면서 가장 많이 훈련해 온 것이 바로 억울함과 수치를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 훈련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러분에게 수치를 주면 제 마음도 괴롭고 여러분도 괴롭습니다. 한가해서 할 일 없이 굳이 여러분에게 수치를 주겠습니까? 그리고 당사자이자 목회자인 저는 여러분을 다시 이끌어 주어야 하니, 이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제가 아직 수치를 주지도 않았는데 상대방은 이미 제가 자신을 모욕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이며, 교회는 바로 훈련장입니다.
주인공은 야곱이다
성경을 읽을 때 결코 잘못 읽어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라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번 장은 야곱이 수치를 대하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초점을 세겜이 죽임을 당하고 디나가 욕보임을 당한 것에만 맞춘다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됩니다. 또 시므온과 레위가 사람을 죽인 것에 시선을 두면 더 복잡해집니다. 이 장의 주인공은 바로 야곱이며, 이러한 상황에 대처한 그의 반응은 여러분과 제가 배울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전체 본문에서 다루는 이 사건과 당시 야곱의 반응을 보면, 심지어 수십 년이 지난 후 야곱이 죽기 직전까지도 이 일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여자들을 보러 나갔더니 그 땅의 주 히위 사람, 하몰의 아들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그와 동침하고 그를 욕되게 하매 (《창세기》 34:1-2)
사람의 감정이 불안정하면 그의 영적 상태가 좋을 수 없습니다. 감정이 안정적인 것은 영적 상태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온갖 핑계를 대며 모든 것을 뒤섞어 버린다면 그것은 영적인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야곱에게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 해 전, 제가 여러분을 인도하여 《창세기》 34장을 읽었을 때 우리 모두 잘못 읽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어쩌면 5년 뒤에 다시 읽을 때 올해 읽은 것도 잘못 읽었다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을 발견했다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제가 종종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짜 욕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을 읽어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을 발견했다면 그 사람을 잘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자격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이름과 연결된 사람인데, 여러분이 그를 끄집어내어 비판하고 이러쿵저러쿵 지적한다면 큰 위험을 무릅쓰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여러분이 야곱을 저주하는 자가 될 수 있고, 야곱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 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면 영적 상태를 대략 알 수 있습니다. 아무 일도 없을 때는 다 좋습니다. 자신과 상관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을 양육할 때는 머리가 아주 맑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에 부딪히고 제가 그것을 짚어 줄 때 반응을 보면 금세 무너집니다. 제가 여러분의 반응을 보고는 얼른 말을 거두며 "괜찮아, 괜찮아. 돌아가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이 불안정한 감정은 정말 철저히 다루어야 합니다.
야곱은 감정이 극도로 안정적이었다
제 감정은 매우 안정적입니다. 저를 화나게 만들려면 상당한 수준이 필요할 것입니다. 양육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저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제가 화를 내는 것도 여러분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제가 속으로 이미 화가 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 속마음을 다 알려드려도, 나중에 제가 화를 낼 때 제 안에서 화가 난 것인지 겉으로만 내는 것인지 여러분의 수준으로는 쉽게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마땅히 이래야 합니다.
야곱은 당시 자신의 딸이 강간당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평범한 아버지라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칼을 들고 사람을 베러 갈 만한 상황이며, 집안의 명예를 위해 싸우려 할 것입니다. 문제는 강간당했다는 사건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집안의 오점이 되고 온 가문이 모욕을 당하며 가문 전체에 먹칠을 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강간당한 것도 큰일이지만, 체면을 구기는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른 일은 참아도 이런 일을 참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이 일을 듣고도 감정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어떤 일이 닥쳐도 닥친 대로 받아들입니다. 야곱은 아마도 '어찌하여 아이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미리 막지 못했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을 탓했지 현지 사람들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대다수 사람들은 일을 겪으면 자신이 잘못했다고 하지 않고 모두 남 탓을 합니다.
두 아이가 테이블 옆에 앉아 네 다리를 테이블 밑에 두고 있다가, 어쩌다 보니 슬리퍼가 상대방의 발에 신겨졌는데 상대방에게 왜 자기 슬리퍼를 신었냐고 따집니다. 저는 왜 자신에게 '왜 내 슬리퍼를 잘 챙기지 못했을까?'라고 묻지 않는지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슬리퍼를 잘 챙기지 못한 것은 자신의 문제이니 다음에는 잘 챙기면 됩니다. 많은 일에서 사람들은 남의 탓만 하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물건이 없어지면 가장 먼저 "너희 중에 누가 가져갔어?"라고 생각하지, 자신이 관리를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고 첫 반응이 '남 탓하기'입니다.
우리 중에는 다들 성이 복성(複姓)이라 '남탓' 씨입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남 탓을 하는데, 그러니 감정이 안정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스스로를 탓할 때는 감정이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남을 탓할 때는 감정이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까? 제가 왜 감정이 안정적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저는 늘 제 탓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잘 챙기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하나의 배움으로 여깁니다. 사기를 당해도 자신이 어리석어서 생긴 일이니, 사기꾼이 왜 나를 속였는지 탓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따져 묻지도 않습니다.
얼마 전 제가 한 사람을 섬겼는데, 겉으로는 꽤 영적으로 보였지만 일만 터지면 "하나님, 왜 이렇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또 다른 사람도 똑같았습니다. 책임을 하나님께까지 떠넘기다니 참으로 담대합니다. 그들은 온갖 잘못 속에서도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며, 책임을 전가할 사람을 찾지 못하면 달을 탓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감정이 좋을 리가 없고, 달이라도 걷어차서 떨어뜨리고 싶어 합니다.
저는 어릴 때 축구를 하면 공을 한 번도 제대로 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돈을 벌면 사람마다 공을 하나씩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좋은 해결책입니까? 공을 계속 맞추지 못해도 상관없고, 남들이 비웃어도 괜찮으며 저 스스로도 웃습니다. 공이 데굴데굴 굴러오는데 발밑에 닿기도 전에 먼저 발을 찼다가 발을 거둘 때 공이 지나가 버리니, 이것은 제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제 탓입니다. 어릴 때 음치라서 쫓겨났을 때도 남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탓해서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우리 중의 한 자매가 제가 사역을 할 때 화를 냈는데, 다른 자매가 말하기를 "목사님, 그 자매에게 더 이상 뭐라 하지 마세요. 이미 자책하고 있어요. 자신이 부족해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느끼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남에게 미안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들 남이 나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상대와 맞서고 따지며 집에 가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매가 화를 낸 것은 제가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남에게 미안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은 없으며, 다들 상대가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느껴 괴로워하고 따지는 것입니다. 즉, 감정을 안정시키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남 탓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창세기》 34:5)
딸이 강간을 당했어도 야곱은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컴퓨터처럼 실행 취소(undo)를 하고 다시 실행(redo)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취소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더럽혀지고 강간당한 일은 취소할 수 없습니다. 야곱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어떤 일이 닥치면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남에게 빚을 졌으면 진 것이고, 돈을 빌려줬는데 갚지 않으면 안 갚는 것이며, 크게 얽매이지 않습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온종일 괴로워하고 집착한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 감정이 안정적인 편이 좋습니다. 몸의 온갖 질병은 감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의학 이론에서는 사람의 칠정육욕(七情六欲)이 오장육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노여움은 간을 상하게 하니, 간이 좋지 않은 사람은 걸핏하면 화를 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두려움은 신장을 상하게 하고, 지나친 기쁨은 심장을 상하게 합니다. 즉 너무 웃으면 심장이 견디지 못합니다. 슬픔은 폐를 상하게 하고, 지나친 생각과 근심은 비장을 상하게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의학 지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건강이 나쁜 것은 정서와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많은 한의학 서적을 읽고 내린 결론은, 나쁜 감정은 그 어떤 독보다도 독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감정이 좋지 않다면 자기가 먹는 것이 하수구 재활용 기름인지, 농약이 잔류해 있는지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나쁜 감정이 만들어내는 독소는 농약이나 불량 기름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쓰레기 배출원이며 늙으면 온갖 병으로 나타납니다.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 보면 어떤 형제자매들은 자기 어머니 다리가 아프다거나 할머니에게 이런저런 병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어떤 병인지 들어보면 분명 누군가를 미워해서 생긴 병임을 알 수 있고, 짚어보면 정확히 맞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의 안정이 매우 중요하며, 감정 안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근본은 남 탓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면 감정이 좋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린다면, 예를 들어 차를 도난당했을 때 그곳이 도난 위험이 높은 곳이었으니 사전에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내 탓이라 여기고, 잃어버렸으면 그저 잃어버린 것으로 넘기면 괴로워하거나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이제 여러분도 분명히 아시겠지요?
야곱에게는 혼란이 없었다
이번 장에서 야곱을 보면 저는 그에게서 어떤 혼란이나 답답함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야곱이 남 탓을 했다면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곱의 마음에 혼란이 없었던 이유는 그가 늘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본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혼란은 늘 하나님께 "왜 이렇습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만약 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여러분이라면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책임을 전가해도 저주를 받는데,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 왜 이러냐고 묻는 것은 하나님께서 실수하셨다는 뜻입니까?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귀신도 실수하지 않으며, 오직 우리 자신이 자주 잘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에게는 혼란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왜 이러냐고 묻지 않고, 자신이 바르게 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디나가 욕보임을 당한 이 사건은 야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야곱이 자녀를 잘 훈육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사실 야곱은 라헬을 깊이 사랑한 나머지 라헬의 온갖 나쁜 버릇을 다 받아주었습니다. 앞 장들에서 라반이 돌기둥을 세우고 떠났지만, 그 집의 우상은 찾아내지 못했는데 라헬이 자신의 엉덩이 밑에 숨겼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라헬은 그 우상을 야곱이 거하는 장막 안에 두고 진열하며 섬겼습니다.
라헬은 야곱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도 우상을 두었으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남편이라도 아내를 지나치게 감싸고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면 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고, 말만 하면 화를 낸다는 점입니다. 야곱이 생각해 보니 디나가 강간을 당한 것은 가장으로서 자신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라헬을 너무 감싸다 보니 그녀가 우상을 두어도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영적인 야곱이 어찌하여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요? 사랑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해서 사람을 매우 눈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세겜이 이른바 사랑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더라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훗날 세겜 가문의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한 것도 한 여인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연애만 하면 지혜를 잃어버립니다. 우리 중에도 이러한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자신을 바치려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건대 그것은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는 눈이 멀지 않지만, 사람을 사랑하면 쉽게 어리석어집니다.
야곱에게 혼란이 없었던 이유는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기 때문이며, 자기 자신이 바로 문제의 근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 장에서 그는 우상을 제거하기로 결단합니다. 훗날 라헬이 아이를 낳다가 난산으로 죽은 것도 다 이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야곱이 조금만 영적 원칙을 고수했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적인 부정함은 영적 음란이며, 세상의 재앙을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결코 하나님께 왜 이러냐고 묻지 마십시오. 하나님도 실수하지 않으시고 귀신도 실수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이 잘못한 것임을 누구나 알아야 합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라헬이 우상을 두었는데 왜 불행은 레아의 딸에게 닥쳤는지 의아해합니다. 디나는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악한 영이 누구의 머리에 덮쳐올지 알 수 없습니다.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의 오라버니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니 오직 이 소녀를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창세기》 34:11-12)
사실 세겜은 진심으로 디나를 아내로 맞이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두 아들은 일부러 그들을 속여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할례를 받자 남의 위기를 틈타 그들을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조용히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창세기》 34:24-25)
야곱은 이 사실을 알고 한마디를 했는데, 두 아들의 소행으로 인해 그곳에서 자신의 명성이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창세기》 34:30)
야곱은 자신의 평판을 중시했다
영적인 사람이 수치를 대할 때의 태도는 먼저 자신의 명성과 평판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의를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도의를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늘 칼과 무력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야곱의 평생에 일어난 일들을 정리해 보면 그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야곱에게 악명을 씌우며 야곱이 남을 속이고 또 남에게 속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를 진정으로 자세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야곱이 아무도 속이지 않았고 누구의 이익도 가로채지 않았음을 압니다. 야곱은 자신의 명성을 중시했고, 오히려 야곱 자신이 남에게 이용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많았지만 무슨 일을 당해도 잠잠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논리를 알아야 하며, 야곱이 사기꾼이라는 식의 헛된 말을 결코 믿어서는 안 됩니다. 야곱의 장자 명분은 교환하여 얻은 것이고 산 것입니다. 비록 법적 문서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천사와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십니다.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이미 장자의 명분을 얻었고,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것인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야곱은 아버지의 돈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고 형 에서에게서 재산을 빼앗아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형에게 수많은 재물을 주었는데,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수억 원에 달하는 결코 적지 않은 액수였습니다. 야곱은 평생 기꺼이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의 소망은 결코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중시했는데, 자신이 걸어온 길이 장차 영원 속에서 기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야곱이 하나님 앞에 설 때는 거리낌 없이 당당하고 떳떳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죽인 것은 야곱과 손톱만큼도 상관이 없습니다. 보십시오, 야곱은 죽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창세기》 49:5-7)
야곱은 아들들의 방식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명성을 소중히 여깁니까? 만약 자신의 명성을 중시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명성을 소중히 여기고 기꺼이 약간의 손해를 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십시오. 어떤 형제가 집안의 형제자매들이 유산을 나누려 하는데 자신도 기필코 한 몫을 챙겨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자신의 몫을 그들에게 주고 다투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다투지 말라고 해도 안 되고, 빼앗으라고 해도 안 되니 알아서 잘 싸워보라고 하고 더 이상 묻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정말로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명성을 중시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다투고 빼앗는 명성이 전해진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제가 아주 중시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 부모를 공경하고 돌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점입니다. 부모를 돌볼 때가 되어 자신이 부모를 '버렸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듣기에 매우 이상하며 그것은 진정으로 버린 것이 아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버림'과 여러분 머릿속에서 이해하는 '버림'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부모를 효도로 공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버림'이 아닙니다.
불효하는 사람과는 저는 친구가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우리 중에 불효하는 사람이 있다면 목회자는 발견 즉시 퇴출시켜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제게 자신은 다 버렸고 다 초탈했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초탈'이란 자신이 살든 죽든 신경 쓰지 않고 부모가 살든 죽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듣기에는 어찌 이리 이상하게 들리는지, 제 말을 억지로 왜곡하여 적용한 것입니다.
부모가 여러분을 낳고 길러주셨습니다. 친부모이든 양부모이든, 밥도 못 먹던 시절부터 젖을 먹이고 밥을 떠먹이며 키워낸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그렇게 키워준 사람에게조차 따지고 들며 저에게 부모의 이러저러한 이치를 따져 묻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극도로 선악을 분별하는 짓입니다. 우리 중에서 목회자는 이런 사람을 만나면 즉시 내보내야 합니다.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에게도 이처럼 대하고, 부모가 베풀어준 그 많은 은혜에 조금의 감사도 느끼지 못한다면, 저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인데 저에게 와서 일 다 보고 저를 물어뜯을 것이 뻔합니다. 그렇다면 현대판 '농부와 뱀'의 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명성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남의 이익을 탐하고 사람을 죽인 것은 전적으로 명분이 없는 짓이었습니다. 도리상 딸이 강간을 당했다면 상대가 딸을 아내로 맞이하면 그만이고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어찌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참으로 귀하게 여기시며, 사람의 피를 흘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죄를 물으십니다! 노아 시대부터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죽이시거나 멸망시키시는 것은 하나님께 그 자격이 있으시기 때문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야곱에게 결정을 내리라고 했다면 그는 정말로 딸을 시집보냈을 것입니다. 체면을 구기거나 소문이 퍼지는 것에 대해 야곱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야곱이 거리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비평하며 심지어 조롱하고 헌 신발을 집어던진다 해도 야곱은 결코 마음에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하나님께서도 그런 일에 얽매이지 않으십니다.
만일 남자가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동침하는 중에 그 두 사람이 발견되면 그 동침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신명기》 22:28-29)
성경에는 실제로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서는 그 남자가 여자의 부모에게 예물을 주고 그들을 맺어주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하셨습니다. 돌로 쳐 죽이는 것 따위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 중에는 여전히 그 여자를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의 인식과는 차이가 꽤 큽니다.
야곱은 폭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야곱은 폭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까지 역사는 기독교에 많은 먹칠을 해왔습니다. 십자군 동정이나 8개국 연합군의 중국 침략 등 온갖 어지러운 일들이 기독교의 이름 아래 뒤집어씌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같은 사람들은 결코 폭력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에서 같은 사람들이나 폭력을 인정했습니다. 즉 기독교 안에는 에서와 같은 사람들이 많지만 야곱과 같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실 악한 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처럼 폭력을 인정한다면 여러분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저주받을 사람이며 에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에서는 칼에 의지하여 살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에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권면합니다. 역사 속의 이야기들에 미혹된다면 《창세기》 34장을 읽을 때도 똑같이 미혹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영적인 그리스도인은 결코 폭력을 숭상하지 않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다 칼로 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폭력을 숭상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무장봉기를 일으키신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실 수 있으니 군량 문제도 해결되었고, 입김 한 번 불면 땅의 돌이 은화로 변하고, 입김 한 번 더 불면 원하는 것은 다 나오며, 대포든 하이마스든 대륙간탄도미사일이든 다 문제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정말 무장봉기를 일으키셨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마땅히 따라야 하겠지만, 예수님은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폭력을 숭상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은데, 그들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후손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입니다. 영계에서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사람의 분노가 일어나자 악한 영이 시므온과 레위를 부추겨 이 일을 저지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 죄명을 야곱에게 덮어씌우지만 사실 야곱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야곱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야곱을 새롭게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수치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늘 반성해야 합니다. 폭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마십시오.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코 기독교 신앙이 아니며, 결코 성경, 특히 《창세기》가 숭상하는 바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아내가 그랄 왕에게 끌려갔을 때 아브라함은 폭력으로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의 아내가 아비멜렉에게 데려가졌을 때도 폭력을 쓰지 않았습니다. 야곱 역시 폭력을 숭상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했습니다. 여러분이 귀담아들었든 그렇지 않든 지금부터 새롭게 바로잡으십시오. 여러분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창세기》 49장에는 야곱이 직접 그러한 행위를 저주하며 시므온과 레위처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자들은 다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재물로 인해 기뻐하지 않았다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의 누이가 더럽힘을 받았으므로 죽임을 당한 자들에게 와서 그 성읍을 노략하였으니 그들의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과 들에 있는 모든 것을 빼앗고 또 그들의 모든 재물과 자녀들과 부녀들을 사로잡고 집안의 모든 것을 다 노략하였더라 (《창세기》 34:27-29)
만약 어떤 사람의 핵심 이익이 돈이라면 속으로 매우 기뻤을 것입니다. 재산이 순식간에 두 배로 늘어나고 세겜 가문의 재산과 부녀자, 아이들이 모두 노예가 되었으니 이처럼 많은 소득을 얻고 틀림없이 매우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보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그의 명성을 더럽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상대가 자기 딸을 욕보였으니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과 세상에 속한 사람은 수치를 대하는 태도에서 두 사람의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창세기》 34:31)
레위와 시므온의 생각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세겜은 디나를 창녀처럼 대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은 늘 일을 과장하고 극단화하여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재물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수치를 당해도 폭력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입니다.
결론
여러분은 야곱의 생각과 일 처리 태도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사람이 지녀야 할 높이와 품격입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저의 이번 나눔이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34장 본문
34:1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여자들을 보러 나갔더니
34:2 그 땅의 주 히위 사람, 하몰의 아들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그와 동침하고 그를 욕되게 하매
34:3 세겜의 마음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깊이 연연하며 이 소녀를 사랑하여 달콤한 말로 위로하고
34:4 세겜이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이 소녀를 아내로 얻어 주소서 하였더라
34:5 야곱이 세겜이 그의 딸 디나를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 아들들이 들에서 가축 떼와 함께 있으므로 야곱이 잠잠하여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더라
34:6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야곱에게 나와 그와 의논하려 하였고
34:7 야곱의 아들들이 이 일을 듣고 들에서 돌아와서 각 사람이 심히 분노하고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이스라엘 집에서 수치스러운 일 곧 야곱의 딸과 동침하여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34:8 하몰이 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의 마음이 이 소녀를 사모하니 구하건대 그를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34:9 너희가 우리와 서로 통혼하여 너희 딸들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 딸들을 취하라
34:10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이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오직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고 재산을 얻으라 하매
34:11 세겜이 딸의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 눈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다 주리니
34:12 내게 아무리 많은 혼수와 예물을 요구할지라도 너희가 말한 대로 다 주리니 오직 이 소녀를 내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라
34:13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이 그들의 누이 디나를 더럽혔으므로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간사한 말로 대답하여
34:14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할례 받지 아니한 자에게 우리 누이를 주어 아내로 삼게 하지 못하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34:15 오직 한 가지 조건으로만 허락할 수 있나니 만일 너희의 모든 남자가 우리와 같이 할례를 받으면
34:16 우리가 우리 딸들을 너희에게 주고 너희 딸들을 취하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둘이 한 백성이 되려니와
34:17 만일 너희가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우리 누이를 데리고 가리라 하였더라
34:18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이 말을 좋게 여기므로
34:19 그 청년이 이 일을 행하기를 지체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야곱의 딸을 사랑함이었으며 그는 그의 아버지 집에서 가장 존귀한 자였더라
34:20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그 성문에 이르러 그 성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34:21 이 사람들은 우리와 화목하니 그들로 이 땅에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라 이 땅이 넓어 그들을 용납하기에 넉넉하니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로 삼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34:22 다만 우리가 반드시 행해야 할 한 가지 일이 있나니 그래야 그들이 허락하여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백성이 될 것이라 곧 우리 가운데 모든 남자가 그들과 같이 할례를 받는 것이라
34:23 그들의 가축 떼와 재물과 모든 짐승이 다 우리의 것이 되지 아니하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리하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 하매
34:24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남자가 다 할례를 받았더라
34:25 제삼일에 무리가 심히 고통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곧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차고 뜻밖에 성중에 이르러 모든 남자를 죽이고
34:26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리고 나왔더라
34:27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의 누이가 더럽힘을 받았으므로 죽임을 당한 자들에게 와서 그 성읍을 노략하였으니
34:28 그들의 양 떼와 소 떼와 나귀와 성읍과 들에 있는 모든 것을 빼앗고
34:29 또 그들의 모든 재물과 자녀들과 부녀들을 사로잡고 집안의 모든 것을 다 노략하였더라
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 가운데서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내 인구가 적으니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와 내 온 집이 멸망하리라 하니
34:31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