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호수아기 21장을 보겠습니다. 21장 마지막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아름다운 말씀이고, 또한 우리 전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이 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요? 만일 성경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 중 80%만 이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면, 일이 곤란해집니다. 왜 곤란할까요? 우리는 아마 ‘우리가 그 20%에 해당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고, 후에 사도 베드로가 교회를 세운 뒤에도 교회에 나아와 치유를 구한 사람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나면 상당히 절대적으로 느껴집니다. 절대적인 것이 좋습니다! 절대적인 것에 진리의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동차 한 대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 자동차가 좋은 차라면 엔진이 분명히 작동할 것입니다.
어떤 자동차가 때로는 시동이 걸리고 때로는 걸리지 않으며, 가속 페달을 밟아도 어떤 때는 움직이고 어떤 때는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장 난 자동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념은 반드시 이렇게 세워져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은 한마디도 빠짐없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레위인이 기업을 얻은 이야기
여호수아기 21장에 이르러 무엇을 설명하고 있습니까? 한 가지 문제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 문제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말씀들이 이때에 이르러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21장 이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모든 사람이 땅을 분배받아 기업으로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21장에서는 누구에게 땅을 분배했습니까? 레위인에게 땅을 분배했습니다. 레위인의 땅 분배는 마지막에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가나안 땅 실로에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우리에게 거주할 성읍들과 그 성읍의 주변 목초지를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자기들의 기업에서 다음에 기록된 성읍들과 그 성읍의 주변 목초지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실 레위인은 줄곧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다른 지파들이 성읍을 분배받을 때, “여호와께서 레위인의 기업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시라니, 그러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정말 그런 뜻일까요?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기업이 되신다”는 말씀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우리의 기업이시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기업이 되신다는 이 생각과 질문을 가지고 계속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레위인에게 땅을 분배하고 나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이 일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레위인의 기업은 하나님이신데, 이때 이스라엘 자손에게 자기들의 것을 내어 레위인에게 주게 하셨습니다. 모든 지파가 이미 땅을 분배받지 않았습니까?
모든 지파가 땅을 분배받은 후, 레위 지파만 그들이 분배받은 땅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각 지파가 한 몫씩 내어 레위인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레위인이 받은 몫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저와 함께 산수 문제를 풀어 본다면 분명히 계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모두 열두 지파가 있었는데, 레위인을 제외하면 열한 지파가 남습니다. 열한 지파가 땅을 모두 분배받은 다음, 각 지파가 십분의 일을 내어 누구에게 줍니까? 레위인에게 줍니다.
각 지파가 십분의 일을 레위인에게 준다면 레위인은 얼마나 받게 될까요? 레위인의 손에는 열한 몫이 있게 됩니다. 다른 지파들은 계산해 보면 각 지파마다 아홉 몫이 있습니다. 열 몫으로 나누어 한 몫을 레위인에게 주었으니, 레위인이 더 많이 받았을까요, 적게 받았을까요? 레위인이 분명히 더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더 많이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히 얻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땅을 받았지만, 그 성읍들은 그들이 건설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땅은 그들이 개간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곡식은 그들이 심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그 지역 사람들이 세우고 가꾸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 그 사람들을 쫓아내고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얻은 것입니다.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얻는 일이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잔혹해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이런 모습입니다. 내가 얻으면 다른 사람의 몫은 줄어듭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얻으면 가나안 사람은 잃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 있지 않습니까?
섬김에 대한 관념 세우기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 있다는 관념을 세우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지극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은 모든 일이 잘될 때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이 바빠지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먼저 내려놓습니다. 무슨 일이든 조금만 바빠지면 먼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 특징은 분명히 제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바쁘기 때문에 섬기지 않는 것도 아니고, 바쁘지 않기 때문에 섬기는 것도 아닙니다. 바쁘든 바쁘지 않든 저는 섬깁니다. 그리고 자주 제 일을 내려놓고 섬깁니다.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일이 정말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 늦게 자는 습관이 생겼을까요?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일이 끝나지 않았을까요? 섬기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낮에, 점심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말합니다. “빨리 와서 좀 도와주세요. 저는 이제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말합니다. “그 사람이 정말 안 된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리 오세요. 회의실로 데리고 가서 기도합시다!” 기도하고 나면 좋아집니다. 섬김을 마친 후 다시 돌아와 일을 하면 새벽 두세 시까지 일을 하게 됩니다. 밤이 되었는데 또 그 사람이 옵니다. 거의 죽을 것 같은 상태인데, 그를 섬기지 않고 어떻게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이런 일을 자주 만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일 매일 이런 일을 만난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설령 매일 이런 일을 만난다 해도 저는 여전히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일이 쌓인 채 집에 돌아와 일을 하면 새벽 3~4시까지 하게 됩니다. 다음 날 일어나 다시 출근하면 너무 피곤하고, 때로는 정말 힘들기도 합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을 접대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은 목회자였습니다. 낮에는 이 목회자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손님을 접대하는 일이니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자 그 목회자가 말했습니다. “제 아내의 귀를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물론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전화 연결해 주세요. 제가 아내와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그의 아내는 오랫동안 귀가 아팠는데, 기도하자 나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많은 책을 쓰고 이렇게 많은 일을 처리하는데 제 작업량도 매우 많습니다. 그 목회자가 떠나 집에 가서 잠을 잔 뒤, 저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새벽 네 시까지 일하고 나서 ‘빨리 자야겠다. 피곤하다. 내일은 또 그를 공항에 데려다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여섯 시에 전화가 울렸습니다. 겨우 두 시간 잠들었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그의 아내가 전화한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었을까요? 그의 아내가 화를 내며 전화를 아이의 눈에 던졌고, 아이의 눈이 즉시 멍들고 부어올랐습니다. 아내는 너무 놀랐고, 아이는 그 자리에서 크게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전화를 받아 말했습니다. “아이에게 전화를 주세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너와 함께 기도할게. 그러면 네 통증이 사라질 거야.” 기도하고 나니 이 아이가 정말 울음을 그쳤습니다. 기도를 마쳤을 때 아이의 눈도 정말 나았습니다. 그때는 이미 아침 7시 반이었습니다. 정리하고 나서 ‘이제 자지 말자’고 했습니다.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피곤합니다. 정말 피곤합니다. 때로는 너무 피곤해서 눈을 감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사실 이런 일이 매일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일 매일 이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괜찮습니다. 사람은 살수록 더욱 왕성해집니다. 제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의 일을 내려놓을 것인지 묻는 것입니다. 저라면 반드시 일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려놓지 않을 때도 있을까요? 어떤 때는 동역자 한 사람을 정해 그 일을 맡기기도 합니다. 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시라는 것입니다. 저는 제 하나님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면 제가 얼마나 많이 얻게 되었는지 물어보시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이렇게 섬기는데 어떻게 적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적게 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섬길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주신 모든 약속을 이루셨다는 이 말씀을 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이 바빠지면 섬기는 일을 내려놓습니다. 저도 그들을 이해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흐름에 맞추어 “섬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일 잘하시고, 하시는 일 잘 처리하세요”라고 말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우리 안에 실제로 담겨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100% 신실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100% 이루어질까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가 살아가는 기반이라면, 우리가 환경에 의지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해서 산다면, 사장에게 의지하지 않고, 돈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사업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십니까? 우리 안에는 정리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좋지 않게 말하면 쓰레기가 너무 많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모두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순간만 되면 자기 자신을 믿고 환경을 믿기 시작하며, 하나님의 약속만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왜 귀신들이 저를 그렇게 두려워할까요? 귀신들이 저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저는 환경도 보지 않고 제 자신도 보지 않으며,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기
여호수아기 21장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때 우리는 매우 감격해야 합니다. 수백 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을 얻었습니까?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얻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 약속을 이삭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삭은 그 땅에 거류했지만 그 땅을 얻었습니까? 얻지 못했습니다. 우물을 하나 파면 사람들이 빼앗아 갔고, 또 하나 파면 다시 빼앗아 갔습니다. 이리저리 피하다가 마침내 아무도 우물을 두고 다투지 않는 곳에 이르렀지만, 이삭은 여전히 믿었습니다. 야곱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야곱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얻었습니까?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언제 얻었습니까? 여호수아기 21장에 이르러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약속하신 모든 말씀이 이루어졌고, 하나도 빠짐없이 성취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때때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두 이루실 것입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제가 죽은 후에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거의 500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500년 후면 이미 재가 되었을 텐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말 재가 되었을까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사람들은 마음속에 매우 강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기 21장에 이르렀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영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영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이 세상의 삶이 아니라 영생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물론 우리도 그들과 같아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일반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영생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도 그들은 영적인 눈을 통해 수천 년, 수만 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든 이 일들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자신들이 직접 보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그들이 정말 보았을까요? 저는 그들이 실제로 보았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사실 저는 이런 말을 자주 반복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새로운 논리 안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오늘날까지도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 우주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 작은 일들, 여러분의 프로젝트와 일과 돈에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문제가 없습니다. 걱정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굳게 서게 됩니다. 이 말씀은 듣기는 쉽지만 믿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주 환경을 바라보기 좋아하지 않습니까?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이 믿든 믿지 않든 모든 것이 이 말씀 안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을 경험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서 있고, 하나님의 약속은 한마디도 빠짐없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믿음과 불신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과 함께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고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기도하기 전에 이미 믿기로 작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마디도 빠짐없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참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 안에 있는 믿음은 반드시 밖으로 나타납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표적과 기사가 따릅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한마디도 빠짐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섬기는 가운데, 또는 목회자들 사이에서 믿음에 대해 아주 흥미롭게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50%를 믿는 사람도 있고, 80%를 믿는 사람도 있고, 20%를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100% 모두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왜 제 기도가 응답됩니까? 바로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왜 제 섬김이 효과가 있습니까? 바로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왜 제가 제가 하는 일을 누릴 수 있습니까? 믿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이 괜찮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약속을 얻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속성이 본래 그분의 말씀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말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그때까지 이르러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첫 세대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고, 그 후 세대의 사람들은 광야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과연 이것을 받을 자격이 있었을까요? 사실 그들도 자격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그분이 약속하신 말씀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이제 이 말씀을 믿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은 누구나 고침을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한마디도 빠짐없이 이루어진다고 믿기 시작하십시오.
한동안 사무엘기를 읽다가 특별히 좋은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말씀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사무엘이 말한 말은 하나님께서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일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무엘이 말한 말도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말하면, 지금 이 말씀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닙니까? 내가 말한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더라. (사무엘상 3:19)
한번은 한 사업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원래 자신의 프로젝트로 바빠야 했는데, 프로젝트가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를 찾아온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는 일이 모두 잘될 것이며, 실적도 반드시 좋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간 후 입찰에 실패하여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이틀 동안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 말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일까요, 아니면 이루어진 것일까요? 사실 제가 한 말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충분히 오래 산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한마디도 빠짐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시간의 축으로 이 일을 바라보느냐에 있습니다. 십 년, 이십 년의 시간으로 바라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약속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수백 년 후에 바라보면 그들이 정말 그 약속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 보통 사람들의 시야는 칠팔십 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멀리 바라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그 칠팔십 년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제 말을 믿으십니까? 칠팔십 년이라는 시야에만 머물러 있다면, 여러분은 그 칠팔십 년도 잘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로 작정하기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천상의 길을 힘써 달려갈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있다 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영원 가운데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위해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사업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그 차이는 매우 큽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으면 곤란해집니다. 사실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이루어지지만,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지 않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도 빠짐없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자세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약속의 땅을 얻은 이스라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그들이 약속의 땅을 얻도록 한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되기를 원합니까?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후손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살아 있을 때 그 땅을 얻지 못했지만, 믿음 안에서는 이미 얻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후손에게 복이 되는 것, 이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주신 말씀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성읍과 그 성읍의 주변 목초지를 얻었다 해도 마지막에 하나님을 버린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자주 권면합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우리의 후손에게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분명히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기 원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와서 치유를 받은 것은 이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면 어떻게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그들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교회를 함께 세우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사람이 될 때에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눈에 유익을 얻는 것만 보인다면 그것은 매우 곤란한 일입니다. 그러나 유익을 얻는 것 뒤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저는 깊은 감회를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약속의 땅을 얻는 사람만 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우신 언약을 이어 가는 사람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을 얻은 근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우신 언약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오늘까지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시체가 널려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 세대의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약속의 땅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의 것으로 취하려면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살아 있는 동안 그 땅을 얻지 못했지만, 500년 후 그들의 약속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가문의 복이 되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자신을 내어주고 가문의 복이 되기를 원할 때, 우리가 말하는 말에는 권세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기만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입니다.
예전에 지도자 훈련을 할 때 저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고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질고를 담당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붙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약속입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레위인입니까?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가장 많이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선은 그들이 많이 얻은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많이 얻게 되는 데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을 섬길 때 가장 많이 얻게 됩니다. 많이 얻기 위해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는 언약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서 한마디도 빠짐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