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전도자의 언어》 제10강, “우매함을 알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 주제는 조금 어렵습니다. 어디가 어렵냐 하면, 제 자신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도 부족한 데다 잘 전하지 못할까 봐 며칠 동안 꽤나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우매함을 안다’는 이 주제는 저 자신에게도 매우 훌륭한 일깨움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잘 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한 번 멋지게 솜씨를 뽐내보려 할수록 오히려 밑천만 드러나게 되더군요.
그래서 어젯밤에 글을 엄청나게 썼습니다. 방금 배워서 바로 내놓는, 그야말로 갓 구워낸 신선한 빵 같은 말씀입니다. 전도자의 사역은 쉽지 않습니다. 전도자 노릇을 제대로 해내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고 나서 여러분이 듣기 좋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맹물에 고기만 삶아내면, 고기는 고기지만 맛이 없습니다. 이런 양념 저런 양념을 더해서 맛깔나게 끓여내야 듣기에도 좋습니다. 어떻게 해야 듣기 좋을까요? 어제 저는 토크쇼를 보고 또 보면서, 오늘 저도 멋진 입담을 한번 풀어내 보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입만 열고 쇼는 망칠까 봐 차라리 원고를 제대로 쓰기로 했습니다.
지혜와 우매함을 어떻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어렵습니다. 제가 “당신은 우매한 사람이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끝장입니다. 퍽 하고 주먹이 날아와 눈에 멍이 들 것입니다. 그러니 제게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남의 것을 빌려 은혜를 나누듯, 솔로몬의 전도서를 빌려 여기 계신 ‘솔로몬’ 여러분께 바치는 수밖에요. 여러분 모두가 솔로몬처럼 총명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럼 저는요? 저는 다윗처럼 지혜롭기를 바랍니다. 슬쩍 이득을 챙겨보는 것이지요.
솔로몬은 다윗을 아버지라 불렀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 없이 여전히 형제자매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들처럼 무슨 ‘12’니 뭐니 하면서—저도 그게 12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소그룹 리더를 억지로 ‘영적인 아버지’, ‘영적인 어머니’라고 부르게 시키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게 참 버겁고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어머니가 또 생길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진짜 부모님 한 쌍만 모시는 것도 골치 아픈데, 결혼하면 두 쌍이 되어 몹시 힘들어합니다. 특히 외동자녀는 어르신 넷을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구혼 광고에는 ‘집 있고 차 있고 부모님 다 돌아가신 분’이 골칫거리가 적어 장점으로 꼽힌다고 하지 않습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줄이고, “우매함을 알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자”는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사람은 평생 우매함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 전체가 비극이 됩니다. 남이 당신에게 우매하다고 말해주는 것은 안 됩니다. 오늘 그 말을 들으면 내일 두 눈에 멍이 들어 판다가 될 테니까요. 그렇지 않고 길거리에 나가 손가락질하며 “이 우매한 사람아!”라고 해보십시오. 가만히 맞고만 있겠습니까? 그런 말은 아주 가까운 관계가 아니고서는 입 밖으로 낼 수도 없습니다. 입 밖에 내뱉으면 돌이킬 수 없으니, 결국 사람 스스로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묻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해야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까?”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스스로 “아, 내가 우매하구나”라고 말하면 아무도 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우매하다고 말씀하셔도 당신은 하나님을 때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면, 당신은 저를 때릴 수 있지 않습니까? 다행히 우리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훗날 VR 기술이 극도로 발전해 모니터 밖으로 손이 튀어나와 저를 한 대 치지 않는 이상 괜찮을 것입니다.
제가 단언하건대, 가난은 우매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일을 착실히 하고, 직장 생활을 성실히 하거나 작은 가게를 잘 꾸려간다면 어떻게 가난해질 수 있겠습니까? 빚더미에 앉을 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왜 빚더미에 떨어질까요? 다 엉뚱한 짓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기회다’ 싶어 손을 대서 10만 위안을 날리고, ‘저게 기회다’ 싶어 또 60만 위안을 날립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클릭하다가 수많은 빚을 만들어냅니다.
어떤 사람은 60세가 넘었으니 저축이 좀 있어야 마땅한데, 온몸에 빚만 가득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손에 수십만 위안이 있을 때는 걸음걸이부터 달랐습니다. 그 친구가 걸어가는 모습만 봐도 수십만 위안은 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 이것이 우매함입니다. 그렇게 많은 빚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질병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그 많은 질병 중에, 우매함과 관련 없는 질병이 어디 있습니까? 전부 우매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참으로 안타깝고 애가 탑니다. 왜일까요? 너무나 다급하고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아주 절친한 크리스천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가 암에 걸렸을 때 제가 이리저리 이끌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관계가 꽤 깊어졌다고 생각하고 제가 말했습니다. “이 암은 저주네.” 끝장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진 듯 저에게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수탉이 싸우려 할 때 털이 곤두서는 것 보셨습니까? 털이 바짝 섰습니다. 세상에, 저는 털이 없어서 곤두세울 털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는 그것이 저주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까닭 없는 저주는 임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록 제 페이스북에는 여전히 그 친구의 계정이 자주 뜨지만, 그의 페이스북은 다시는 업데이트되지 않은 채 그 해에 영원히 멈춰 있습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그의 페이스북이 업데이트된다면 귀신이 곡할 노릇일 것입니다.
때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묘한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는 한 친구가 어느 날 저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프로그램 하나만 개발해 줄 수 있어?” 제가 “무슨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하고 물으니, 죽은 사람들을 위한 페이스북을 개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죽은 사람의 페이스북이라니요! 산 사람의 계정도 업데이트를 안 하는데, 죽은 사람의 것을 누가 업데이트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질병이라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아야 합니다. 손발 저림 같은 많은 사람의 질병은 심장이나 뇌와 긴밀하게 연결된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이는 모두 우매함이 불러온 화근입니다. 사람이 우매하지 않고 지혜가 있다면 어찌 이런 지경에 빠지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계신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사실대로 말씀드린다고 해서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진실을 말씀드리는 까닭은 여러분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기록한 《전도서》에 자신을 잘 비추어 보며, 우리가 얼마나 우매한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처세술을 모릅니다. 청나라 때 사방을 정벌한 대단히 뛰어난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가 황제를 알현하러 돌아왔는데, 황제를 뵐 때는 예도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제를 뵈면서 예의를 모르면 되겠습니까? 저 같으면 저 앞에 황제가 계시면 그 모습이 미처 다 보이지도 않고 황제께서도 저를 아직 보지 못하셨을 때, 얼른 말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것은 태도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장군은 말을 타고 ‘따각따각’ 소리를 내며 다가왔습니다. 황제가 바로 앞에 서 계시는데, 그야말로 종놈은 말을 타고 황제는 걸어가는 형국이었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당연히 화를 자초하는 불씨가 되었고, 이런 것을 우매함이라고 합니다. 결국 그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부하 노릇을 할 줄 모르고, 직장 생활을 할 줄 모릅니다.
제가 가끔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십시오”라고 권하면, 그들은 “저 아주 잘하고 있는데요”라고 말합니다. 제가 “다시 한번 깊이 돌아보세요”라고 하면, “아주 좋습니다. 저 아무 문제 없고 하나님을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답합니다. 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쑥 들어갑니다. 스스로에 대한 판단이 그야말로 완벽합니다! 완벽한 우매함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우매함이 불러오는 재앙은 너무나 많으며 역사 속에도 부지기수로 널려 있으니, 부디 배우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한 자매님이 계셨는데, 그녀의 예전 목사님은 유명한 스타 목사가 되고 싶어서 이리저리 무리수를 두며 일들을 벌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모든 것이 우매함 그 자체였습니다. 우매한 목사가 우매한 형제자매들을 이끄니 재앙이 어찌 끊이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다고 여깁니다. 그 자매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왜 유명해지고 싶어 하지 않으세요?” 저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제 이름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자매님이 “목사님은 참 지혜로우시네요”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하마터면 저도 우매함에 빠질 뻔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60만 위안의 빚을 진 사람, 300만 위안, 450만 위안의 빚을 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이 우매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암에 걸리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일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사람을 총명하게 만들고 지혜롭게 만드는 이 사역이 참으로 엄청난 도전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저는 동역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우는 교회는 일종의 ‘연구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배워서 총명한 자가 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어떻게 배움을 터득하여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에는 몇 가지 큰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이것은 연구 기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므로, 계속해서 깊이 파고들고 끊임없이 탐구하여 알아가야 합니다. 저는 교회가 반드시 이 말씀 연구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직 온전히 다 알지 못합니다. 둘째,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도 연구해야 합니다. 예전에 전했던 《능동적 학습》 같은 것들이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또한, 교회는 반드시 독창성을 지녀야 하며 우리의 지식재산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콘텐츠는 매우 독창적이며, 모두 우리 자신의 고유한 산물입니다. 우리는 복잡한 것들을 반드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날마다 복잡한 일들을 단순하게 풀어서 전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거기에 유머와 토크까지 곁들인다면 더욱 좋겠지요.
교회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바로 우매한 사람입니다! 저는 지난 세월 동안 교회 안에서 수많은 비극을 목격했습니다. 대만의 어떤 교회 목사님은 교회 동역자들에게 고소를 당해 법무부에 넘겨졌고, 나중에는 우울증까지 걸렸습니다.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였습니다. 훗날 그 목사님이 강단에서 간증을 나누며 눈물 콧물을 흘리시는데, 아래에 앉아 있던 저도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 눈물이 날 뻔했다면서 왜 웃으면서 말씀하세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아래에 앉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이게 대체 무슨 꼴입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교회의 비전과 사명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를 세운다면서 온갖 쓰레기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육에 속한 우매한 자들을 가득 데려온다면 무슨 선한 열매가 있겠습니까? 우매한 목사가 우매한 성도들을 이끌면 필연코 피비린내 나는 암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가운데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그런 자가 들어온다면, 저는 즉시 그를 처리하고 그 배후에 있는 귀신을 완전히 쫓아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조차 우매한 사람을 두려워하셨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예수님께서 가장 꺼리신 것은 바로 돼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십니까?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얼마 전 어느 마을에 멧돼지가 나타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심하게 들이받았습니다. 요즘 참 별일이 다 있습니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표범이 나타났다, 이제는 멧돼지까지 나타납니다.
“아이고, 멧돼지가 나타났다!” 급히 방으로 달려가 서랍을 뒤지고 상자를 뒤져 진주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아마 그 진주는 서태후의 입에서 꺼낸 야명주일지도 모릅니다. 번쩍번쩍 빛나는 야명주를 들고 뛰쳐나와 외칩니다. “멧돼지야, 이건 진짜 진주(眞珠)다!” 멧돼지는 어리둥절합니다. ‘이게 뭔 소리야? 왜 진짜 돼지(眞猪: 중국어 발음이 진주와 같음) 타령이지? 진짜배기 멧돼지는 바로 나인데!’ “내가 너한테 진짜 돼지 맛을 보여주마!” 쾅 하고 들이받아 쓰러뜨려 버립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멧돼지가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교회에 멧돼지가 들어왔을 때 진주를 들이밀며 “여기 진주가 있다!” 해보았자, 교회의 그 멧돼지도 “내가 진짜 돼지다!” 하고 날뛸 뿐입니다. 게다가 야생동물 보호법 때문에 어쩌지도 못합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벙어리 냉가슴 앓듯 고통을 호소할 데도 없습니다. 야생동물 보호법은 사람을 보호하지 않고 오직 야생동물만 보호하니까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다행히도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운데는 모두 솔로몬 같은 분들뿐이라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교회 안에 멧돼지는 없고 모두 진주뿐입니다.” 멧돼지가 아니라 보배로운 진주들입니다. 모두가 귀한 보배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매함을 알고, 자신을 비추어 보며, 머릿속에 든 돼지 같은 생각을 제거하십시오. 남이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야 합니다. 평생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게 됩니다. 의인과 지혜자는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어 인생이 찬란하고 참으로 훌륭합니다! 어떤 일을 만나든지 다 합력하여 선이 될 것입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 다들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제 설명을 들어보십시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왼쪽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 때부터 모든 사람은 우매하며, 육으로 태어난 인간은 다 우매합니다. 그렇다면 다들 ‘민폐 동료’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다 민폐 동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반드시 심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옮겨와야 합니다. 이것이 쉬운 일일까요? 어렵습니다,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삿된 고집을 제거하며, 우리 내면의 육에 속한 사악한 기운을 제거해야 합니다. 마음에 왼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을 꺾어 돌려 영적인 사람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육체 가운데 있는 악함을 제거하고 영적인 사람이 되어, 평생을 다해 전력으로 우매함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이 헛된 세월 속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제가 연구를 거쳐 내린 결론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자신의 IQ를 탓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IQ는 아주 훌륭합니다. 제 연구는 매우 중요하며 여러분에게 확신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능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하드웨어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 안의 소프트웨어가 수많은 우매함의 독에 감염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우매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육에 속한 사람으로서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만 결국 자신은 한 줌의 배설물에 불과함을 증명할 뿐인 데에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모든 힘을 쏟아 우매함을 제거하고 학습 방식을 조정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이치를 꿰뚫어 볼 수만 있다면 참으로 대단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이란 무엇입니까?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으로서, 그 육체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살아납니다. 어떤 교회들처럼 분무기로 물을 뿜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물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이제 살아 있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세상에 대하여 나는 죽은 자요, 이 세상 또한 나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으니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데 지혜롭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더는 IQ 탓을 하지 마십시오. “아이고, 나는 부모님의 총명함은 못 물려받고 우매함만 물려받았어.” 저는 하늘을 탓하고 땅을 탓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동북 지역 진흥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국내의 많은 친구는 “동북이 발전하지 못하는 건 중앙정부의 정책이 나쁘기 때문이야”라고 말합니다. 누가 그럽니까? 멀쩡하던 동북을 오늘날 이 꼴로 만들어 놓고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을 보십시오. “굵은 금목걸이에 작은 금시계 차고, 하루 세 끼 꼬치구이나 구워 먹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기대어 일이 되겠습니까? 정말 강소성, 절강성, 상하이 사람들의 근면함을 따라가지 못하니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정책이 어떠니 저쩌니 따지지 말고 하늘도 탓하지 말고 땅도 탓하지 말며, 오직 자기 자신만을 탓하라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가 중에는 ‘달빛의 탓’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있더군요. 오늘 달에게 잘못이 있든 없든, 태양에게 잘못이 있든 없든, 부모님에게 잘못이 있든 없든, 정부에 잘못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탓하려면 자기 자신을 탓하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 지혜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생을 주관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
전도서 10장 1절에서 3절 말씀: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에도 지혜가 부족하여 고하는 모든 자에게 자기가 우매함을 말하느니라 (전도서 10:1-3)
기도
하나님!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항상 우리 자신을 보게 하시고, 거울을 들여다보듯 주님의 말씀에 우리를 비추어 보아 우리의 우매함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우리 안의 우매함을 제하여 버리게 하시고, 우리가 얼마나 우매한 존재인지를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의 평생에 전력을 다해 육에 속한 사람에서 영에 속한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추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를 도우사 지혜를 주시고,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며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전도서》 10장은 참으로 명문입니다. 《전도서》에 기록된 이런저런 지혜들은 언뜻 너무 어려워 보이고 우리와는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매함이라는 녀석은 우리와 몹시 가깝고, 지극히 가까우며, 바로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9장에서 “의인들과 지혜자들은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해야 지혜자가 될 수 있을까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어떻게 해야 지혜자가 될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가 《전도서》 10장을 쓸 때의 심정은 아마도 어젯밤 제가 죽기 살기로 원고를 쓰느라 끙끙 앓던 모습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너무 괴로워서 글이 잘 나오지 않다가 마침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끝에 가까스로 써 내려갔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글이 써졌을까요? 파리 한 마리가 향기름에 빠진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파리가 향기름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그 기름 속에 구더기까지 깠습니다. 그 구더기가 부화하고 나니 ‘세상에, 여기가 이렇게 좋은 곳인가, 이렇게 향기로운가!’ 하며 파리와 구더기가 아주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랐습니다. 사람이 그걸 보면 ‘세상에, 이게 무슨 향기름이야’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향기름 속에서 자란 구더기는 단백질 덩어리라 먹을 수도 있을 법합니다.
이 일은 사람의 지극히 작은 우매함 하나가 이러한 결과를 낳고 수많은 구더기를 키워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알고 보니 이 세상에는 본래 지혜로운 사람이란 아예 없구나.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태어날 때는 다 똑같이 한 덩어리의 고깃덩이에 불과하다.’ 여러분이나 저나 태어났을 때는 다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모든 것을 다 아는 아이가 있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요괴일 테니까요!
그래서 그는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이 욕 한마디 섞지 않고 우리 모두를 우매한 자라고 꾸짖은 셈이지만, 사실 이것이 진실입니다. 그는 이어서 말합니다.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탄핵당한 어느 대통령이 걸어갈 때의 모습을 여러분도 눈여겨보셨습니까?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사람들에게 “나는 우매한 사람입니다, 나는 멍청이입니다, 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듯했습니다. 그가 지나가기만 해도 사람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이 남았습니다. 마치 ‘나는 우매한 사람’이라고 적힌 팻말을 높이 들고 가는 것 같았습니다. 왜일까요? 우쭐거리며 거들먹거렸기 때문입니다. 그 특유의 으스대는 태도로 뒤뚱거리며 걷는 모양새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세월 동안 돈을 좀 만지게 되면 사람이 변하고, 돈이 생기면 걸음걸이부터 달라지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어지는 이 한 장 전체에서 우매함의 양태들을 총정리하여 사람들에게 무엇을 알려줍니까? 이런 것들이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간다는 사실을 경고합니다. 그가 정리한 내용이 얼마나 완전합니까? 저는 아주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10장에서 이것들을 제대로 배울 수만 있다면 실로 엄청난 유익이 될 것입니다. 제가 본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순함이 큰 허물을 용서받게 하느니라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재난을 보았노니 곧 주권자에게서 나오는 허물이라 우매한 자가 크게 높은 지위들을 얻고 부자들이 낮은 자리에 앉는도다 또 내가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주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소용이 없느니라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왕은 어리고 귀족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방백들은 취하려고가 아니라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전도서 10:4-20)
긴 본문을 읽었습니다만, 저는 솔로몬의 이 연구가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의 연구는 솔로몬이 연구해 낸 결과를 깊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기록한 《전도서》는 대단히 심오한 논문과 같아서, 우리가 이것을 온전히 소화해 낸다면 솔로몬처럼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다윗처럼 되기를 더 소망합니다. 다윗의 방식이 솔로몬의 방식보다 한층 더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우매함 첫 번째: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에도 무지함을 드러낸다
사람의 걸음걸이에는 깊은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이 걷는 모습만 보아도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 무지함을 온몸으로 드러냅니다. “나는 무지한 자입니다, 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나는 우매한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걸을 때부터 거만하고 요란스럽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에 ‘에르메스 벨트 형님’이라 불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찬 허리띠는 에르메스 제품으로 대단히 비쌌습니다. 저는 평생 가도 그런 벨트는 사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당당하게 걸어갔는데, 사진이 기가 막히게 잘 나왔습니다. 트럼프가 총격을 당했을 때 찍힌 사진만큼이나 폼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끝났구나’ 싶었습니다. 명품 벨트를 차고 손에는 ‘와, 나는 우매한 사람입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든 꼴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우매했음이 만천하에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걷는 모습만 보아도 요란스럽게 거들먹거리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인생길에서 수많은 선택을 마주할 때, 갈림길에 서서 앞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선택하는 것만 보아도 그 사람이 총명한지 아닌지, 지혜로운지 우매한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피조물인 인간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한낱 사람임을 아는 자는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됩니다.
《잠언》에 기가 막힌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잠언 3장 5절부터 7절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잠언 3:5-7)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공사가 중단된 미분양·미완공 아파트가 160만 채에 달해, 160만 가정이 파탄 났다고 합니다. 얼마나 가증스럽고 악합니까? 참으로 가증스럽습니다.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 무지함을 드러내므로, 사람은 일생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얼마 전 싱가포르 뉴스에 한때 ‘석유왕’이라 불리던 사람의 소식이 나왔습니다. 싱가포르에 석유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싱가포르는 동남아 최대의 정유 시설을 갖춘 대단한 곳입니다. 그는 대단한 석유왕이었지만 결국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형량에 그의 나이를 더하면 거의 100세에 육박합니다. 훗날 사람들이 그를 평가하기를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지나치게 대담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담대함이 없으면 돈을 벌지 못하지만, 무모하게 간만 크면 돈을 버는 대신 그 무모함이 가져올 끔찍한 대가도 함께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 무지함을 드러낸다는 말은, 당신이 일생 동안 어떤 선택을 내리며 살아가는지를 보면 안다는 뜻입니다.
우매함 두 번째: 위의 권력자가 네게 분을 낼 때, 속에서 치미는 삿된 혈기가 바로 우매함이다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순함이 큰 허물을 용서받게 하느니라 (전도서 10:4)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제 동역자들이 해놓은 일이 마음에 차지 않을 때 그들을 지적하곤 했습니다. 제가 나무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제 권위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면 제가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한마디 하고 나면 그 얼굴빛이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도 “어찌하여 안색이 변하느냐, 어찌하여 분을 내느냐?”라고 묻지 않습니까? 아, 제가 말씀드리건대, 그 삿된 고집과 혈기가 왈칵 치밀어 오르며 안색을 싹 바꾸는데, 마치 제가 자기에게 큰 빚이라도 진 것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우매함이라는 것은 건드려서는 안 될 대단히 사악한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두십시오. 그것은 저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해치는 짓입니다. 우매한 자는 무엇이 자기에게 유익하고 무엇이 해로운지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다른 장에서는 무엇이 네게 유익한지를 알라고 가르칩니다. 어제 제가 몇몇 동역자에게 오늘 이 말씀을 나눌 것이라고 이야기했더니, 한 동역자가 “목사님, 제 이야기를 예화로 들어주십시오”라고 하더군요. 이것이 바로 총명함이며 지혜입니다. 지나간 우매함의 날들은 떠나보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아랫사람 노릇을 할 줄 모릅니다. 윗사람과 부딪히기만 하면 관계를 망쳐버리고 도무지 분별할 줄 모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당신의 상사가 당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아주 쉽습니다. 굳이 해고하지 않더라도 날마다 당신의 속을 긁어놓기만 하면, 당신은 견디다 못해 어느 날 스스로 사표를 던지게 될 것입니다. 우매하지 않습니까? 왜 상사에게 대들고 맞서려 합니까? 권력자에게 순종할 줄 모릅니까? 당신 위의 지도자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분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목사님, 저는 왜 매번 이런 직장 상사만 만나는지 너무 재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당신이 우매하기 때문입니다. 채찍으로 호되게 내리치지 않으면 당신이 뜯어고치겠습니까? 쓰라린 고통을 맛보지 않고서야 고치겠습니까? 그래서 보십시오, 제가 덤으로 여러 기업의 인사 관리 노릇까지 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당신 위에 있는 권세는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매번 그런 사람들을 붙여주실까요? 그런 사람들을 붙여주어도 고치지 않는데, 좋은 상사를 붙여준다고 고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아랫사람으로서 처신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어리석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제가 알려주어도 듣지 않고 스스로 대단히 똑똑하다고 여깁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사역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가 바로 저와의 관계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저는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는 편입니다. 어떤 이들은 저와의 관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아랫사람들과만 뜨겁게 어울려 지냅니다. 그것이 무슨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때때로 우리 인간에게는 이런 우매한 구석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우리 동역자들 중에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할 사람에게는 5시간씩 쏟아부으면서, 정작 저에게는 5시간조차 내어놓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가 왜 그들의 시간을 요구하겠습니까? 그 5시간을 통해 제대로 된 목양의 방법을 훈련시켜, 엉뚱하게 헛발질하지 않도록 바로잡아 주기 위함입니다.
주권자가 당신에게 분을 내거든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교훈을 배워야지, 그 사악한 반발심과 혈기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그 삿된 고집이 바로 우매함이며, 당신을 망가뜨리는 독입니다. 그러므로 태도를 바꾸십시오. 온유함과 공순함이 큰 허물을 면하게 합니다. 마음을 온유하고 겸손하게 낮추어 ‘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부터 먼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매함 세 번째: 높은 지위에 앉아 있을지라도, 그것이 당신이 우매하지 않음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재난을 보았노니 곧 주권자에게서 나오는 허물이라 우매한 자가 크게 높은 지위들을 얻고 부자들이 낮은 자리에 앉는도다 또 내가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 (전도서 10:5-9)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매한 자를 높은 자리에 앉히시기도 합니다. 한때 높은 자리에 올랐을지라도 그 자리에 걸맞은 인격과 그릇(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떨어질 때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자기 그릇의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참 재미있는 말을 했는데, 저는 그 말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남편이 그녀에게 “당신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잖아”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 일을 잘못 처리했네요.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하면 끝날 일 아닙니까? 그런데 그녀는 “내가 저번에 그 일은 똑바로 잘했잖아!”라고 대꾸했습니다. 저번 일을 잘했다고 해서 이번 일도 잘했다는 증거가 됩니까? 저번 일을 잘했어도 이번 일은 여전히 잘못한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해괴한 논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것도 증명해 주지 못합니다. 돈이 많다는 것도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현상입니다. 우매한 자가 높은 지위에 오르고, 부유한 자가 낮은 자리에 앉습니다. 종들이 말을 타고 왕자 같은 고관들이 종처럼 땅을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이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언뜻 하나님께서 실수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셔서, 그 사람이 스스로 판 함정에 스스로 빠져 죽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자신이 판 함정에 스스로 빠져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죽기 살기로 일하고 악착같이 거대한 제국을 세우더니, 결국 자기가 판 웅덩이에 스스로 빠져 죽고 맙니다.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릴 것이요, 돌을 캐내는 자는 돌에 상할 것이며, 나무를 쪼개는 자는 위험을 당할 것입니다.
“물가에 자주 가다 보면 언젠가는 신발을 적시게 마련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작을 한 번 쪼갤 때 ‘딱’ 하고 아무 일 없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제 파편이 튀어 오를지 모릅니다. 나무를 패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인데, 나무토막이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돌을 캐낼 때도 돌이 어디로 튈지 모르며, 운전할 때도 언제 사고가 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언제든 일어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으며 단지 언제 터질지 모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파멸의 함정인지 아니면 축복인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저에게 참으로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런 실력도 자질도 없는 사람이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버젓이 세월을 보내고 제 할 일을 해나가는 모습을 저는 오늘날까지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 지도자 개인의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와서 “부장님,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면 “좋아!” 하고, “저렇게 하겠습니다” 하면 “안 돼” 하면서 제멋대로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해도 하루하루는 굴러갑니다. 그래서 뉴스를 보면 엉터리로 일 처리를 하다가 점차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지도자들의 모습이 자주 나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총명함을 배우고 지혜를 터득하여, ‘내가 이 일을 옳게 처리했으니 저 일도 잘했을 것이고, 저 일을 잘했으니 이번 일도 맞을 것이다’라고 결코 착각하지 마십시오.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틀린 것은 바로잡으면 됩니다. 비록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지라도 그것은 당신의 능력과 무관할 수 있습니다.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모든 것은 때와 기회에 달려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자신이 우매하지 않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마음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돌려놓는 것이야말로 우리 평생의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리는 허공을 치는 자처럼 무방비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쳐 복종시키는 자들입니다.
우매함 네 번째: 입의 말이 우매함과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전도서 10:12-13)
오만함이라는 것은 대단히 사악합니다. 예전에 싱가포르를 몹시 깔보던 어떤 노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싱가포르를 ‘좁쌀만 한 땅’도 아니고 ‘콧물딱지만 한 곳’이라고 불렀습니다. 콧구멍을 파서 튕겨내면 그만일 정도로 하찮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군함 한 척만 보내면 멸망시킬 수 있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결국 싱가포르는 망하지 않았고, 도리어 그 노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모른 채 허풍을 떤 것입니다. 손에 함대라도 쥐고 있어서 실제로 군함을 보낼 권한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군함은커녕 집 안 식탁 위에 콧구멍 딱지보다도 작은 장난감 군함 한 척 올려놓은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하며, 절대로 교만하고 망령된 말을 내뱉지 말아야 합니다. 말의 시작은 우매함이요, 그 끝은 사악한 광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며 자기 사후에 일어날 일을 누가 알려주겠습니까? 며칠 전에는 군함을 보내겠다고 큰소리치더니, 며칠 뒤 병원에 가보니 암 진단이 나왔습니다. 자기가 당장 내일 무슨 일을 겪을지도 모르면서, 말할 때는 자기가 천하무적인 양 구는 것입니다.
제가 단언하건대, 세상 사람들이 오만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치명적입니다.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극도로 기고만장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오만함을 심히 미워하셔서 다윗의 마음을 격동시켜 인구를 계수하게 하셨습니다. 인구를 조사하자마자 모든 것이 무너졌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죄를 범한 후 하나님께서 세 가지 재앙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시자, 다윗은 오직 한 가지, 즉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합니다”라고 구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7만 명을 치셨는데, 단 한 사람도 억울하게 죽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와, 대단하다 우리 조국이여!” 하며 교만해지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나라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날뛰고 오만을 떨어보았자, 수많은 일들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있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따라서 입에서 우매함과 교만의 말을 쏟아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자신의 입술을 철저히 다스리는 법을 배우십시오. 미래의 일을 당신은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마십시오. 당신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으며,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지 못합니다.
우매함 다섯 번째: 수고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든다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전도서 10:15)
에서가 멧돼지를 쫓아 멧돼지보다 더 빨리 달리느라 넋이 빠질 정도로 지쳐서 돌아왔을 때, 그는 목이 타고 굶주려 있었습니다. 아마 멧돼지를 잡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잡았더라면 야곱과 장자의 명분을 거래할 필요도 없었겠지요. 돌아와서 굶어 죽을 지경이 되자 결국 장자의 명분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는 제 손의 칼에 의지해 살아가는 저주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사람의 헛된 수고가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까닭은, 자신의 손에 쥔 칼만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 손의 칼을 믿고 하나님의 축복을 믿지 않으니, 수고할수록 피곤에 찌들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대단히 오묘한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시스템 속에서 가인의 길을 걸어간다면, 겉으로는 대단한 업적을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사는 내내 고통스럽고 삶을 누리지도 못하며, 몹시 지쳐서 성읍으로 들어가는 길조차 찾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노동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사람은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사람은 공부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만약 공부하는 것이 지옥 같고 일하는 것이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는 지혜자가 아니라 우매한 사람입니다. 어디가 우매합니까?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만 더 듭니다. 지혜도 없으면서 무딘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어대니, 땀을 뻘뻘 흘리며 기진맥진해도 반나절 동안 나무 한 그루 제대로 넘어뜨리지 못하고 힘만 듭니다. 지혜가 없으면 이 꼴이 됩니다.
주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다면 술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직 마술을 부리기도 전에 독뱀에 물려버렸으니, 뒤늦게 마술을 부려본들 헛수고입니다. 이처럼 우매한 요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는 법입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꼴이 딱 이렇습니다.
이 우매함의 파괴력은 실로 엄청납니다. 우선순위조차 분별하지 못하니, 먼저 도끼 날부터 갈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제 손의 칼만을 의지해 살아가면서 일하는 것조차 즐기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고, 일이 왜 이렇게 많아!” 하며 게으름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멍청하고 게으르며 육에 속한 사람은 결코 잘될 수가 없습니다.
우매함 여섯 번째: 해 아래에서 희락(기쁨)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수고가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고통스럽습니다. 비록 가인이 성을 쌓았을지라도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우리 하나님께서는 기가 막히게 설계하셔서, 사람이 우매하면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당신은 살면서 고통을 겪고 싶습니까? 사람이 우매하면 해 아래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우매한 자가 되지 마십시오.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전도서 10:19)
보십시오, 잔치를 베풀어 놓고도 온갖 잔머리를 굴리고 왜곡된 술수를 부리며 암투를 벌입니다. 잔치는 본래 다 함께 기뻐하고 웃으며, 농담도 주고받고 유쾌하게 떠들썩해야 마땅합니다. 식탁에 앉기 전에 재미있는 농담이나 이야기 열 개쯤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때때로 써먹으십시오. 설령 상대방이 “여보게, 그 농담은 벌써 세 번째 듣는 걸세”라고 하더라도, “세 번이나 했나? 내가 깜빡했네. 하지만 괜찮아, 나는 해 아래에서의 기쁨만큼은 잊지 않았거든” 하고 웃어넘기면 됩니다.
수고를 즐거워할 줄 아는 것이 곧 지혜입니다. 잔치는 웃음을 위해 베푸는 것인데, 돈은 돈대로 쓰고 음식은 차려놓았으면서도 전혀 기뻐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온갖 근심 걱정과 한탄만 늘어놓습니다. 술은 사람의 마음을 유쾌하게 만드는 법인데, 제가 보니 속상해서 마시는 쓰라린 술만 많고 기쁨으로 마시는 유쾌한 술은 드뭅니다. 돈은 만사를 유용하게 만든다(마음에 응하게 한다)고 했는데, 제가 부자들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이 가진 돈이 만사를 다 마음먹은 대로 형통하게 해줍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만사가 뜻대로 풀린다면 그에게 지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돈이 있어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온갖 추잡한 일들만 꼬리에 꼬리를 무니, 얼마나 피곤한 인생입니까? 우매한 자는 해 아래에서 희락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저와 함께 있다면 여러분은 마땅히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것만큼은 제가 절대적으로 보장합니다. 그 어떤 것도 저에게서 기쁨을 빼앗아갈 수 없으며, 저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저에게도 한 가지 큰 고민이 있긴 합니다. 우매함이 쉽게 뿌리 뽑히지 않아 애를 태울 때가 있다는 점입니다.
우매함 일곱 번째: 왕과 부자를 저주하기를 좋아한다
제가 사람들을 훈련할 때 반드시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정부를 탓하지 말고, 왕을 저주하지 말며, 마음에 그런 악한 생각을 품지도 마십시오. 그 어떤 정부나 제도 아래에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켜주시고 당신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당신이 넉넉히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이것저것 탓하지 마십시오.
침실에서조차 부자를 저주하지 마십시오.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환경을 탓하지 말고 오직 한 가지만을 점검하십시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일생을 친히 연출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고, 당신의 삶을 눈부시게 찬란하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제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결론
이처럼 수많은 우매함의 모습들을 제대로 배우셨습니까?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며 자신의 우매함을 하나하나 제하여 버리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조금씩 철저히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죽은 파리가 향기름을 썩어 악취가 나게 만들듯, 지극히 작은 우매함 하나가 지혜와 존귀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십시오. 스스로 ‘나는 우매하지 않다’고 자부하는 것은 결코 통달한 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당신이 우매하지 않다고 여길 천 가지 만 가지 이유를 댈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의 심장은 여전히 왼쪽에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심장은 지금 오른쪽에 있습니까, 왼쪽에 있습니까? 여전히 왼쪽에 머물러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우매한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는 세상의 풍조가 가득 차 있고, 육에 속한 논리 체계가 가득하며, 세상의 거짓말들이 꽉 차 있어서 스스로의 삶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질병을 보고, 우리 손에 들린 빚더미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지혜를 얻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아멘!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