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这章的主题稍微有点难,因为主题不在这章经文里,这章的主题是:神给人足够的恩典。永远要知道神让这些以色列人死在旷野那是活该。我们的神给人多少的恩典,数都数不完!神就是要给人足够的恩典,好让人能够避免走到灭亡里去。给你一次恩典选择相信祢,再给你一次恩典再相信你,结果最后发现是恶贯满盈。恶贯满盈就是满了,冒出来了,然后就灭亡了,神就是这样的神。
千万不要把自己里面属人的东西积攒太多,我问你,以色列人在埃及做了什么?也没做什么。在旷野里做了什么?也没做什么。但是他们做了一件事,就是照着人的意思做,不信神的大能。你说用这种话来衡量今天的基督徒也好,衡量今天的牧师也好,那就闹心了!不要说你困惑,我自己都困惑!我自己都在想,怎么会是这样?所以人一生最艰难的事就是把人的意思除掉,把神的意思放进来。人活着不是靠着人的意思,人活着乃是靠神口里所出的一切话!
人一旦把自己的意思那么坚持地紧紧抓住,对自己的看见非常执着,比如我得救了,我根基很牢,我做过很多好事,我很有追求,这些都是人的意思。人的意思是很有意思的事!我以前就在想,耶稣为什么整了这样一个大门徒彼得?整个谁不好?我现在明白了,耶稣就是整了一个体贴人意思的大门徒,好让人知道,你看看,这就是我的大门徒彼得,他也是个体贴人意思的人!
所以人一生最艰难的事,就是把人自己里面属人的意思除掉,因为体贴人的意思就是撒但。你说这东西厉害不厉害?不是杀人,也不是放火,也不是抢劫,就是体贴人的意思,就是撒但!你理解得了吗?我是很难接受的,你也没做什么坏事,怎么就这样了呢?我告诉大家为什么。如果一个人体贴人的意思,遇到了情况就三次不认主,五次不认主,九次不认主。遇到了一个挑战,就立刻把所有的事都放在神之前,把神放在老九,有的时候甚至连老九都排不上。
咱们切确地说,有多少人把神排在首位了?把神排在首位的这件事好像有点挑战,有人就说,能做到的有几个?自己做不到,不说要把这事做到,却说有谁能不体贴人的意思?你听听这话,借口一大堆。以为自己是世界最高的标准,我总比彼得强一点吧?彼得是大门徒,那我是超级门徒。比这个做什么?没有用!什么超级门徒、大门徒、小门徒,体贴人的意思就是撒但!直白吧!
这条路难走吧!其实也不难走,就是一个非常简单的事,相信神的大能!我们的神本来就是大有能力的,我们就相信本来就是大有能力的神!你说这有多难?其实一点也不难,这道不是难行的,这道就在你心里,就在你口里,多容易!我想给大家制造了点困扰,咱们就把大家的困扰拿出来,一个一个把困扰我们的东西给它拆掉。
Q1:老师,神为什么不让以色列人一起跟摩西亲近神,在山上听神的教诲,要让摩西一个人上山呢?
这话问得非常好!如果神让这些百姓一起上到山上跟摩西一起领受,你知道会发生什么事吗?有这么一个人叫亚干,还有一些人叫可拉,这些人很有意思,他们还没上到山上跟摩西一起领受神的话,可拉、大坍就要跟摩西一起平起平坐了。你说这事邪门了吧,神也够难的,神真的很难啊!神巴不得他们都来,神对这事看得很清楚,神需要在以色列人当中建立一群领袖,好让人知道顺服上面的权柄。
你说这些以色列人也很邪门, 邪门到什么程度呢?他们说:摩西,你一个人上山去,我们不敢上去,我们不能听神的声音,我们怕死。把事一推都推到摩西身上了。为什么?因为我不想干这苦差。我干这苦差干啥?上去坐在神面前,祂讲那些我能听懂吗?我不想去。就今天来说,如果告诉你这是非常有荣耀的命定,非常有荣耀的服侍,有多少人愿意付上代价?
哎呀,别找我做这苦差,我不想去。保罗,你去,提摩太,你去。那你干啥去?我过日子!其实神巴不得让以色列人都能够来到祂的面前。只要人愿意选择来到神的面前的,其实神都没有拒绝他们啊!没有人愿意啊!但是摩西不同,神怎么吩咐他,他就怎么行。而且摩西为人极其谦卑。如果让可拉、大坍这些人有机会去,我的天啊,那得狂成什么样啊!那就飞上天了!
就咱们当中一些弟兄姐妹可有意思了,他的牧者还甩他几条街,就开始看不上他的牧者了。有这种状况是吧?可邪门了,自己尾巴可翘老高了,跟个狐獴似的。你说神让他们来到神面前?不行。不让他们来到神面前?也不行。你说难不难?当然了,到了最后在神那里一分钱也不多,一分钱也不少。在旷野多死几个可拉,多死几个亚干,多死几个比干,都没关系。如果你是个可拉还是什么拉的,没关系,神那里一点损失也没有。
为什么人这么可笑呢?神这么塑造摩西的领袖地位,但真正听摩西的有几个?为什么只让摩西一个人?挑来挑去挑不出来呀!就挑出一个约书亚。就算是约书亚,神也让他在半山腰上等着。为啥?好让人知道自己是谁。人千万不能到了一个地步,自己不知道天高地厚,也不知道自己是谁,也不知道什么叫柔和谦卑,你上去见神干啥?
但是如果你真的像摩西,整一百个、两百个摩西,一千个、两千个摩西,啥问题也没有,神那里有的是位置给他。我不知道我把这个问题答得好不好,我想,神应该处于两难之间,也不容易呀!我讲一个故事,大家可能听过。有一个小伙子要跳楼,为啥?考试考砸了,就这么点出息,学习是个学渣。
有一天,他稍微混得好一点,就是混得好一点而已,其实还啥也不是。我说的啥也不是,大家得接受我的说法。就算他本人在这,我也告诉他啥也不是。如果有啥的话,是骡子是马拉出来遛遛。他推门进到我办公室,那步迈得简直了!他来到我的面前,把椅子拉过来一坐,二郎腿一翘。我就说:这是不用跳楼了?什么风把你吹来的?太阳从西边出来了。
然后他说:牧师,你应该这样这样做牧师。我说挺有意思啊,你跳楼的时候咋不告诉我怎么服侍呢?我的天啊!但是咱们还得为人谦卑一点。我说:你做过呀?他说:没做过呀!我说:那你怎么知道该怎么做呢?他说:我从书上读来的。我说:你从书上读来的就都对呀?他看着我,脸红一块白一块的。
我就飚了一句英文:just an opinion!就是一个意见,一个看法。不过是个看法呀!你拿看法到我这干啥来了?你拿你的看法到任正非那比划一下去,告诉任正非怎么建华为,你告诉马云如何建阿里巴巴,多好!你告诉马化腾如何建腾讯,多好!就你这小样,人家不得给你轰出来,要么就轰到精神病院里去了。我这是给他很多恩典啊!我就很诧异,怎么会这样?
咱们弟兄姐妹可得知道,有一些人,他的牧者服侍他,那是起五更爬半夜地服侍他。有一天稍微厉害了一点了,在他的牧者面前就扬眉吐气了,看不起他的牧者了。他不知道我是什么样的人。如果你是这样的人,我就说:这人不能用!这咋用啊?他如果姓张,我管他叫张可拉,他如果姓马就叫马可拉,最后就是个可拉,可以拉出去的。你说这怎么办呢?闹心!
Q2:请问要如何才能彻底拆毁人的逻辑体系?
相信神的话!听见没有,照着神的话好好的把神的话建立起来。因为人与生俱来自己认为的,自己的看法都没有用。比如人说:我的信仰根基可牢了。那你来干啥来了?我来你这学习的。你不用学了,你来教我多好。你信仰根基牢,我还没有这么牢呢!愿神怜悯吧!老些个这样的人了,那自以为是,大大小小的米迦,《士师记》里头造偶像的米迦。你说他没付代价吧,人家一千舍客勒的银子都没了,造偶像了。你说他付代价了吧,他造了一个偶像,老神了!
所以咱们弟兄姐妹,要开始把我们自己与生俱来的全部拆毁。就我们脑子里的这点东西,一整就跟牧者摆个架势,要争个你死我活。多可笑啊!我问他,你牧养过谁啊?没牧养过谁。那你没牧养过,那你跟你牧者争啥呢?你对啊?你怎么知道你是对的呢?我这么稍微问几句,你就肯定掉面子了!有时候我就怜悯我们当中的小牧者,那个认真的给人家讲,到我这来讲啥啊?你咋知道你是对的呢?如果你是那个摆起架势,好像要说出个所以然似的。其实你也不知道。很有意思!所以彻底拆毁我们的认知,我们自己认知的没有用!
我稍微多啰嗦一点,你知道在过去这些年,我原以为企业管理那套东西可以用到教会当中,因为企业管理这东西我研究的特别的深,谈不上非常的高深,反正一般的人那是没我研究的深。怎么管人?怎么管这些事?怎么弄这些?怎么管一个项目?我可以说的清清楚楚的。后来我就说,是不是应该把这个企业管理这套东西应用在教会上?后来被我彻底的推翻,那东西纯粹是属人的。
企业管理能用神迹来管吗?企业管理没有神迹,企业管理没有神的大能,那不过是人的逻辑体系。如果用企业管理,那就麻烦了!有一个教会请了一个主任牧师,那个主任牧师以前是企业的高管,然后他在教会里推行所谓的企业管理那套东西。大家知道企业管理的那套东西是啥吗?有一种东西叫做KPI,就是衡量人的工作业绩,绩效。用这套东西咋管?发明了一系列的,很复杂的KPI。后来又改成OKR了,后来又改成PPC了,后来就一直改,反正就一大堆这玩意。但是这堆东西为什么不能用在教会上,因为它没有神迹,没有神的大能!你能干就好好干,不能干一脚给你踢开,大概就是这么个意思。
所以咱们弟兄姐妹你要知道,我已经彻底的把这些东西给推翻了,凡是教会用这套东西来管的话,全完蛋!大家要确切的知道,我用什么来管?靠的是神的大能,摩西那套东西,使徒保罗那套东西。如何拆毁人的逻辑体系?这话是一个非常深的话题。你想,企业管理,科学管理,那多厉害啊!科学管理那听起来多高大上,可照着神的大能就差老远了,想都不用想。
你说人的东西败坏不败坏?败坏。如果咱们教会,你有用我给你弄进来,没用给你踢了,你觉得这教会像个教会吗?那就麻烦了。所以咱们教会,不管你在哪个台阶上,只要愿意成长,我们都愿意用心的去培养。我告诉大家,我们教会这套管理绝对可以应用在企业上,有的人说,不可以,企业要赚钱。但是企业赚钱要靠啥?靠人!
如果我把这个人都能够训练好,把人都能够建造起来。他值一块钱,我让他值两块钱,他值一千我让他值两千,他值一万我让他值两万。我问你,这个企业有没有竞争力?绝对有竞争力!不管他是什么人,除非他态度有问题,不想成长,那你滚蛋!你自己好好滚蛋,你只要想在这里你必须成长。你对自己要负责任!你自己对你自己都不负责任,我怎么帮你?
所以我们就要知道,一群被训练好,有异象有梦想的人,他一定是一个很优秀的员工!我们这么训练人,他一定会成为社会的正资产,不是社会的负资产!我还在跟一个同工说,你说我们这消耗资源多少?我们消耗社会资源最少了。一有病祷告好了,不用去医院了,你省下来医院的位置给人多好啊!有神的大能!你看你做工,有人看着你好好做,没人看着你也好好做,多好!
你来教会听讲道也好,听查经也好,听完了以后要把斤斤计较那点玩意都丢掉,变成大气的人。除了创造价值就是创造价值,除了造就人就是造就人。我问你,哪个地方会不把你当个人才?有的人除了吃有本事啥也没有本事,那不闹心吗?除了消耗社会资源,一身的肉啥也没有。那不就麻烦了吗?咱们当中有胖子的,你不要怪我,我不是说你。我们要改造成一个人才,就要彻底的拆毁我们里面属世界的逻辑体系。你如果一天只吃一顿饭,你看消耗资源多少呀。吃得少,睡的不太多,就是干活多。你说这有多好。
Q3:老师,靠近耶和华真的会死吗?
真的会死。为什么?因为神是圣洁的神。如果我们里面不彻底拆毁属世界的逻辑体系,来到神面前你没有办法站立。人没有办法站立,就需要披戴耶稣。披戴了耶稣就可以来到神面前。为什么?你的过犯归到了耶稣身上,这就是恩典啊!你和我都可以披戴耶稣都可以来到神面前,然后我们还不肯改造自己,你说可恶还是不可恶啊?
耶稣已经为我们而死,为我们流出宝血,我们今天可以披戴耶稣,就是我们可以来到神的面前,以前的人是不能够来到神的面前。今天我们能,因为我们的罪都归到耶稣的身上,但是并不代表你来到神面前,你就可以一直消耗神的恩典。
Q4:老师,新约的祭坛指什么?
新约祭坛指的是教会,新约圣殿指的是教会,耶路撒冷指的是教会,锡安山指的是教会。祭坛是怎么搭成的?祭坛是我们这些人搭出来的。我们每个人把自己献上,那就是祭坛。如果你为自己活你建立不了祭坛。
Q5:老师,神让亚伦帮助摩西,为什么他还会造金牛犊?他不知道这样做会招来神的愤怒吗?
他知道,但是迫于百姓的压力啊。我问你,有多少人不怕老百姓呢?今天教会牧师怕百姓就是亚伦造金牛犊,就是这么一个状况。有一些人给我一个很坏的外号,大家知道什么外号吗?如果不放个秦字的话还麻烦呢,大概就是秦始皇。啥意思呢?那就是一手遮天。
其实我遮那玩意干啥?大家理解了吗?更何况遮也遮不住。问题在哪?问题是我不能做亚伦啊!我如果做亚伦不但把自己败坏了,我把大家也都败坏了,你说咋整?我还没有一手遮天呢,我巴不得大家都上天,就是大家都能通天。
很多教会都是民主体制,大家知不知道,我从年轻的时候我就不太赞成民主体制,有很多人被民主体制这种东西洗脑,很多人以为我被收买了。那个民主制度能干啥啊?我是不知道能干啥。我亲眼目睹的这些事,后来的历史几十年过去了,历史证明了《圣经》教导的我们要顺服权柄。
《圣经》从来没有煽动我们闹事,如果他是闹事的基督徒,他应该没有好好读《圣经》。别闹事!做好公民,要顺服执政掌权的,要遵纪守法!我们不一定非得完全没有政治的这种观念,受一些东西影响也理解,要学习顺服权柄。
在上有权柄的,人人当顺服他;因为没有权柄不是出于神的,凡掌权的都是神所命的。所以抗拒掌权的,就是抗拒神的命;抗拒的必自取刑罚。(《罗马书》13-1-2)
我来讲这亚伦,亚伦是迫于老百姓的压力,那七十个长老在神面前吃喝,也都是迫于老百姓的压力。为啥?可拉那些人多厉害啊!可能说了!要竞选,那家伙嘴巴叭啦叭啦的肯定选上。摩西的嘴巴是说不过他们的,结果亚伦没招。这给我们一个极大的启示!
我知道大家要问那个时候的亚伦,但是我不想讲那时候的亚伦,我想讲今天的教会。今天有多少不是亚伦的这种牧师?我曾经非常的挣扎,我挣扎什么呢?到底讲道的东西是顺着大家的意思讲呢,还是顺着神的意思讲。你说是不是很挑战?但是我要告诉大家,你听我讲道听久了以后,再听别人的你听不了。不是我说大话,为啥?原因很简单,那些人讲的有好些时候按人的意思讲,我告诉你,我曾经从那条路上走过来。
我常常就在想,我到底是顺着人的意思讲呢,还是顺着神的意思讲呢;到底按着高标准讲,还是按着低标准讲。现在我是可以按着高标准讲,能听就听,不能听就算了吧!为啥?无论如何,凡是对大家有益的没有避讳不说的,但是说了得罪人那就得罪吧,但大家知道我良苦用心。
所以亚伦这样的人多不多?我问你彼得是不是个亚伦?大家说说看,彼得就是个亚伦。这就给我们提个醒,耶稣的大门徒彼得尚且如此,今天我们要何等的小心。后来神没办法了,兴起一个保罗,幸亏兴起一个保罗,要不然就完蛋了。所以你如果说是有心,我鼓励大家跟我一起效法使徒保罗,效法耶稣基督!不体贴人的意思,单单体贴神的意思。我知道我是谁,我真的知道我是谁,我也感谢神,是神使我成为这样的人。
愿神祝福大家!
1. 서론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 것을 이미 알고 계셨지만, 그래도 그들을 믿기로 선택하셨습니다. 한 번 또 한 번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예비하셔서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도록 준비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은 아무리 큰 은혜를 경험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잊어버립니다. 문제가 생기면 여전히 사람의 논리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것을 붙드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2. 사람의 논리는 사람을 망할까 두려워하게 한다
사람의 믿음이 지혜롭고 교묘한 말에 세워져 있다면 반드시 망합니다! 조금만 어려움을 만나도 곧바로 어찌할 줄 모르고 멍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큰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문제는 모두 아주 작은 문제입니다. 사람의 믿음이 하나님의 큰 능력 위에 세워져 있지 않으면, 사람은 이것도 두려워하고 저것도 두려워하며 두려워할 것이 한없이 많아집니다.
3. 하나님의 큰 능력이 기적과 이사를 가져온다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논리를 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과 함께하시고, 날마다 기적과 이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날마다 매우 놀라운 상황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기적과 이사는 사람의 논리와 물질의 법칙을 완전히 초월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지혜롭고 교묘한 말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큰 능력이 증거하는 것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사람에게 속한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다
사람의 뜻은 곧 사탄의 뜻입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당연하다고 여기는 논리 체계를 반드시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사람의 뜻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큰 능력을 의지하는 것은 얼마나 많습니까? 성령의 능력으로 큰 소망을 품고 있는 것은 얼마나 많습니까?
5. 결론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 문제의 근원입니다. 사람은 자기 뜻으로는 계속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우리 안에 있는 사람의 뜻을 따르는 마음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날마다 기적과 이사 가운데, 하나님의 큰 능력 아래에서 살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핵심 단어
사람의 뜻
사람의 논리
사람의 믿음
하나님의 논리
하나님의 은혜
기적과 이사
하나님의 큰 능력
금송아지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계속해서 《출애굽기》 24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문장 속에서 찾으려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뒤에 나오는 장들을 연결하지 않고 이 장만 따로 보면 매우 어렵습니다. 뒤에 나오는 장을 함께 살펴보면, 모세가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함께 사십 주야를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십 주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왜 그들을 이렇게 대하셨을까요? 그러므로 이 장이 기록하는 내용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충분한 은혜를 주셔서 사람이 우상을 숭배하지 않도록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준비시키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충분한 은혜를 주셨고, 모세를 사십 주야 동안 산에 올라가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성막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알려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지난 여러 해 동안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충분한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이 매우 어리석다는 것을 아셨을지라도, 결국 사람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리석게 행동할 것을 분명히 아셨고, 장차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숭배할 것도 아셨지만, 그래도 그들을 믿기로 선택하시고 충분한 은혜를 주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내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라.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못하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못할지니라.” 모세가 내려와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백성이 한 목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출애굽기》 24:1-4)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출애굽기》 24:10-11)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을 산으로 올라오게 하셔서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며 얼마나 존귀하신 분인지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을 먹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에서 음식이 어디서 났겠습니까? 음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산에 올라간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이 하나님을 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래에서 기다리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세심한 배려가 보이지 않습니까? 정말 세심한 배려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반복해서 기록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한 것은 오직 그들이 아래에서 모세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십 주야 정도는 기다릴 수 있지 않습니까? 사십 주야 동안 기다리면 되지 않습니까? 직접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는데,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과정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까? 그런데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잊어버리고 계속 자기 길을 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크고 두려우시며 크게 존귀하신 하나님, 얼마나 광대하신 분인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기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조금 어려움을 만나고 사십 일을 기다린 뒤에 마음이 바뀔 수 있었습니까? 전에 그 자리에서 한 번 또 한 번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해 놓고, 눈 깜짝할 사이에 준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온 때부터 지금까지 경험한 기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집트에서 하나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직접 보았고, 이집트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서 있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이끌어 내실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능력은 전무후무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일이 생기면 곧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전능하심으로 우주 만물을 붙드실 수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전능하심으로 우리를 이집트의 바로 왕에게서 해방시키실 수 있으며, 사람에게 충분한 은혜를 주십니다.
사람이 날 때부터 가진 논리는 타락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 능력을 알지 못합니다. 무슨 말을 하든 전부 사람의 논리로 생각합니다. 매주 보고 듣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고, 매일 기도를 통해 치유를 받는다고 해도 상관없이, 조금만 어려움을 만나면 곧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이것이 정말 재미있는 일이 아닙니까? 우리 모두 함께 생각해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굳게 맹세하며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왜 여전히 이렇게 되었을까요?
32장에 이르면 모세가 산에서 사십 주야를 지내고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을 보게 됩니다. 누가 앞장서서 만들었습니까? 모세의 형 아론이었습니다. 그는 장로 칠십 명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함께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이것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신이라고 하며, 우리가 여호와를 위해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충분한 은혜를 주셔서 계속해서 보게 하셨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고, 이집트 바로 왕의 정예 군대는 모두 홍해 아래 묻혔습니다. 그런데 왜 눈 깜짝할 사이에 잊어버립니까? 우리 가운데에도 이런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잊어버립니다.
암에 걸린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경험한 뒤, 상황이 조금 나빠지면 곧바로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갖 질병이나 생활 속의 여러 환경을 만나고, 사장이 한마디 소리치기만 해도 즉시 쩔쩔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늘 이렇게 자신에게 일깨워야 합니다.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사실 때로는 섬김을 마친 뒤 사람이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매우 괴롭기도 합니다.
사람 안에는 사람의 논리 체계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제가 ‘체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사람 안에 사람의 논리 체계가 자리 잡으면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사람의 논리로 생각하게 되고,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하나님의 논리 체계로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지 못한다면 논리 하나를 믿고 몇 마디 말을 믿는 것에 불과하며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안에 여전히 사람의 논리 체계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면 몇이 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을 누구에게 갖다 놓아도 누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누구에게 갖다 놓아도 누가 선악을 분별하지 않겠습니까? 모두 자신이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안에 들어 있는 논리 체계가 철저히 무너지지 않으면, 사십 일이 지나기도 전에 조금만 일이 생겨도 곧바로 어찌할 줄 모르고 멍해집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본래 매우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놀라운 삶이란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날마다 기적과 이사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기적과 이사는 인간의 논리를 완전히 초월하며, 이러한 화학 법칙도 완전히 초월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큰 능력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 위에 믿음을 세우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어디에 세워져 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이 수많은 글자 위에, 지혜롭고 교묘한 말 위에 세워져 있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반드시 망합니다! 유대인과 이스라엘 백성은 온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인데도 오히려 이러했습니다. 이제 함께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까? 얼마 전에 제가 《제멋대로 행함》이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무엇을 제멋대로 행한다는 것입니까? 자기 뜻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뜻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뜻입니다. 사람의 뜻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뜻은 사탄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해 보면 정말 소름 끼치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논리, 즉 너무나 합리적이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계속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이 지혜롭고 교묘한 말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큰 능력이 증거하는 것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왜 우리 가운데서 자주 기적을 보다가도 조금만 일이 생기면 곧바로 무너집니까? 사람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두 자매가 계속 먹고 또 먹다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얘야, 엄마가 숨을 쉴 수가 없으니 빨리 전화해서 목회자님을 찾아!”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숨을 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이도 정말로 전화를 걸었고, 우리 목회자가 그 자매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은 우습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숨을 쉴 수 없을 때까지 먹었다니,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늙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숨을 쉴 수 없게 하는 것은 늙은 마귀의 역사이며, 통제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안의 논리 체계를 하나님의 논리 체계로 바꾸지 않으면, 생각할 때마다 사람의 논리 체계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충분한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길고 넓고 높고 깊은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에게 하나님을 직접 보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지도자들에게 큰 존귀를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백성은 올라올 수 없었지만 이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음식을 그 자리에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 지도자가 하는 역할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지도자가 백성에게 순종하고 백성의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 안에 있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과 직접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기 안의 체계와 충돌할 뿐 아니라 아래에 있는 모든 백성 안에 들어 있는 것과도 충돌합니다. 그들은 전에 입을 모아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준행했습니까? 막상 때가 되면 믿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주 만물을 붙드실 수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생활의 작은 일, 이런 사소한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수 있습니까? 하실 수 있습니다! 왜 못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어제부터 지금까지 살아 있지 않습니까? 어제부터 오늘까지 살 수 있었다면 오늘부터 내일까지도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어느 날 더 이상 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염려합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아주 간단한 일이 아닙니까?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지도자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지도자가 한 무리 가운데서 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지도자도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의 뜻을 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데리고 다니신 열두 제자는 어땠습니까?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맏형인 베드로는 사람의 뜻을 가장 잘 헤아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의 뜻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사람의 뜻이 아닌 것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큰 능력을 의지하는 것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큰 소망을 품고 있는 것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많은 은혜와 기적을 보았다고 해도,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오고 홍해를 건너며 만나를 먹고, 광야에서 밭을 갈거나 추수하지 않아도 굶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일을 경험했다고 해도, 일이 생기면 곧바로 사람의 논리 체계를 따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속한 우리의 논리 체계를 철저히 무너뜨려야 합니다. 입으로만 말하지 마십시오.
모든 백성이 한목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아침 일찍이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게 하고 소로 여호와께 화목제를 드리게 하였더라. 모세가 피를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려주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애굽기》 24:3-7)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았고, 제사를 드리고 제단을 쌓고 피를 제단에 붓고 백성에게 피를 뿌렸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항상 자신에게 일깨우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큰 능력이 있으시고 두려우신 분이며,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반드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레위기》, 《신명기》에 기록된 것은 모두 시체가 들판에 가득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죽어도 사람의 논리 체계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이 기적과 이사를 내리다
이스라엘 백성은 보고 알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맹렬한 불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내려와 이스라엘 백성의 눈앞에서 맹렬한 불처럼 산을 태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이 큰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의 일과 생활과 모든 것은 하나님께 작은 문제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문제가 산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작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큰 능력을 얼마나 믿기 어려워합니까!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산에서 사십 일 사십 야를 있으니라.(《출애굽기》 24:16-18 )
우리 모두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믿음을 하나님의 큰 능력 위에 세웁시다. 하나님의 큰 능력 위에 세우지 않으면 이것도 두려워하고 저것도 두려워하며 두려워할 것이 한없이 많아집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많은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큰 능력을 알고, 하나님께는 능하지 못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면 반드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깊은 뜻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마음속으로 우리 자신에게 말합시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은혜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교회에 있다면 이해합니다. 오랫동안 조금의 은혜만 보았거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서는 낮에 기도할 때 많은 사람이 치유받고, 밤에 기도할 때도 많은 사람이 치유받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리고 토요일과 주일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경험합니다. 주일에 전하는 간증은 우리가 경험한 것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입니다. 특히 제가 섬겼던, 다루기 어려운 질병을 가진 환자들 가운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믿음을 자기 경험 위에 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우리를 치유하시는 일이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우리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제 마음속에는 한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날마다 기적과 이사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의 큰 능력 가운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의 논리 체계 가운데 살지 말고, 사람은 기적과 이사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중병에 걸렸기 때문에 기적과 이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을 때에도 기적과 이사는 여전히 우리를 따릅니다. 사로잡힌 사람을 놓아주고 억압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보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깊은 뜻과 세심한 배려를 가지고 계신지 직접 보게 합시다. 우리 하나님은 조금도 인색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날마다 보고, 날마다 그분의 능력 아래에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분하고도 넘치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때문입니다. 지도자는 강하게 서서 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육체를 따르고 사람의 뜻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아 마귀 사탄을 꾸짖고 물러가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육체를 따르고 사람의 뜻을 따른다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큰 능력을 의지하여 그것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도전에 직면하고 여러 가지 곤경을 만납니다. 그러나 여러분, 알고 있습니까?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믿음을 지키다
여러분이 제게 “왜 지금까지도 치유받지 못했습니까? 벌써 삼십팔 일이 지났습니다”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왜 아직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산 위의 불은 여전히 타고 있습니다. 모세가 산 위에서 불에 타 죽은 것은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속은 것입니까? 자, 금송아지를 만듭시다. 여러분은 그 배후의 악한 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습니까? 그 배후의 악한 영은 우리를 조금씩 유혹하여 하나님에게서 벗어나게 합니다. 유혹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결국은 하나님께 멸망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7-10)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하나님, 언제 치유받을 수 있습니까?”와 같은 말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원래 다음 날 치유받으려고 했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사십 일이 더 연장됩니다. “언제 끝납니까?”라고 말하면 끝이 없어집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분한 은혜를 주십니다. 말해야 한다면 우리 안의 악한 생각을 철저히 처리해야 합니다. 우리 안이 얼마나 더러운지 보십시오. 정말 말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내게 이런 은사와 기름 부으심이 있는가? 나는 없는 것 같은데?” 왜 믿음을 지키지 못합니까? 우리 안에 믿음이 있다면 이 은사와 기름 부으심이 반드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능력 아래에서 살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기적과 이사가 우리를 따르기를 간절히 원하시며, 기적을 내려 주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그러한 믿음이 있습니까? 그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까? 이 직분을 받았다면 낙심하지 마십시오**.
저는 늘 제 자신을 다룹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저 자신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의 약함을 자랑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섬길 때마다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형제자매를 바라보면 마음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인데, 그만두자!”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특히 형제자매가 목회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면 저는 “안 된다”라고 말하며 먼저 스스로 씨름한 뒤, 사탄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합니다! 사람의 뜻도 물러가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런 씨름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아십니까?
한번은 섬기면서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괴로우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형제가 대장암 환자를 섬겼는데, 섬김을 마친 뒤 그 사람이 완전히 나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 정말 완전히 나았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나은 뒤에는 다시 연락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그의 시간을 낭비한 것처럼, 마치 우리가 그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너무나 필요로 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사람의 뜻대로라면 저는 그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역겨웠습니다. 마치 쇠똥구리를 먹은 것 같았습니다.
한 달 뒤에 그 사람이 다시 목회자를 찾아왔습니다. 그의 목회자도 저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암이 다시 재발한 것입니다. 그 목회자는 매우 힘들어했고 혼자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가운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목회자를 동원하여 교대로 그를 섬기게 했습니다. 그때 저는 설교든 성경공부든 모두 뒤로 미루고 그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그의 안에 있는 사람의 논리 체계를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큰 은혜를 경험했는지 아십니까? 당시에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자 많은 것을 토해 내고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몸에 힘이 없었지만 기도한 후 힘이 회복되었습니다. 힘이 조금 생기자 돈 이야기를 시작했고, 결국 죽을 때까지 돈 이야기만 했습니다. 스물네 시간 후면 죽을 상황인데도 자신은 알지 못하고 여전히 돈 이야기만 했습니다. 살아가는 이런 작은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까! 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도 정말 부족합니다.
사람에게 속한 논리 체계를 제거하다
사람 안에 있는 사람에게 속한 것을 제거하고 그의 믿음을 하나님의 큰 능력의 기초 위에 세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섬긴다 해도 결국 장래의 베드로에 불과합니다. 저의 가장 큰 소망은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 모두가 바울처럼, 바울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보배가 있습니다. 이 깨진 질그릇 안에 보배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형제자매 모두에게 기적과 이사가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모두가 사도 바울과 같은 보배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형제자매에게 세우는 기준이 조금 높은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느리게 걷는 것은 괜찮습니다. 문제는 여러분 안의 태도가 악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태도가 악하면 이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닌다고 말하면서 물이 없을 때, 먹을 것이 없을 때, 재미가 없을 때 늘 불평하고, 머릿속에 온통 더러운 생각만 가득하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형제자매의 믿음을 꺾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의 뜻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이 자기 뜻만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 하러 이곳에 왔습니까?
교회에 필요한 것은 강하고 담대한 지도자들의 무리입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경험하여 사람의 뜻을 돌이키고, 목양받는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의 뜻도 돌이키며, 결코 사람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목양받는 많은 사람이 제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저를 이렇게 섬겨 주셔야 합니다!” 제가 생각해 보면, 그렇게 섬긴다면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형편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시면서도 그들을 그렇게 은혜롭게 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한 번 또 한 번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한 번 또 한 번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선택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면 목회자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정말 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섬길 때 하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육체를 다루고 우리 안에 있는 사람에게 속한 뜻도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겠지요! 하나님은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 말을 가지고 저를 판단하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은혜를 주신다면, 목회자님은 왜 제게 더 많은 은혜를 주지 않습니까?”라고 말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많은 불평의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결론
사실 조금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사역의 반장으로 추천받은 사람들과 시간이 있을 때는 연락이 되지만, 시간이 없을 때는 전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분명히 저에게 연락하지만, 제가 그 사람에게 연락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일을 하다가 이삼일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고, 아예 신경 쓰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일을 하느라 바빠졌기 때문입니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고, 바쁘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내려놓습니다.
그들은 일을 첫째 자리에 두고, 가정을 둘째, 아들을 셋째, 하나님을 아홉째 자리에 둡니다. 여덟째 자리는 술을 조금 마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까? 우리는 깨어나야 하며,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까? 너무나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쓰러진 뒤에야 “하나님,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언젠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도 다 소모하고 자신의 생명도 다 소모하게 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지 않습니까?
우리의 보고를 다시 살펴봅시다. 말하기만 하면 우리의 일에 관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는 사람의 논리가 가득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문제는 모두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하나님의 큰 능력이 들어 있다면 우리가 보는 모든 문제는 작은 문제입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에서 굳게 맹세하며 “우리가 모두 준행하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결국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