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새 시대 기독교 변혁 세미나】(10) - 천국에는 보화로 가득하도다!

2023-01-02 5,244 新时代基督教变革研讨会 命定 信心 寻求 合一 结果子 拣选宝贝

《答疑解惑》

一, 서론

  1. 천국은 보배만 원하고 쓰레기는 원하지 않으므로, 교회는 사람의 논리대로 세워서는 안 되고, 사람 수를 추구해서도 안 되며, 교회의 헌금을 추구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교회의 거룩함과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합니다.
  2.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종류는 하나님의 진노를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되어야 합니다!

二, 성경 본문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이 가득 차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마태복음》 13:44-50)

三, 기도

四, 성경 본문의 배경

  1.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자 많은 사람들이 그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그들에게 이치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보배들이 천국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 천국 복음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전도자들은 온갖 쓰레기를 교회로 가져오는 것을 좋아하여 복음을 값싸게 만들어 버립니다.

五, 하나님은 보배를 택하신다

  1. 영원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은 보배를 택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보배이며, 믿음이 있는 사람 안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늙은 말을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하도록 안배하셔서 보배를 남겨 두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이루십니다.

六, 보배의 특징 1: 열매를 맺음

  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이런 사람이 좋은 땅이라는 뜻이며,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보배입니다! 끝내 참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쓰레기입니다.
  2. 사람 안에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있다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七, 보배의 특징 2: 찾음

  1. 하나님께서는 찾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유의 방식으로 한순간에 찾는 사람들을 가려내시고, 찾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 내십니다!
  2. 사람이 어리석은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찾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찾는 사람이 되십시오. 찾는 이는 찾을 것이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입니다.
  3. 영생의 길은 찾아야 합니다. 사람이 찾은 결과는 ‘사람이 사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귀한 보배로 찾았다면 그는 하나님의 보배입니다.

八, 보배의 특징 3: 영생의 소망

  1.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경작하고 건축하는 일에 바쁩니다.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갈 뿐이며, 영생의 소망은 전혀 없습니다.
  2.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에 소망을 둔다면 죽음에 대한 관점이 어리석게 됩니다.
  3.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에 소망을 둔다면 세상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입니다.
  4. 사람이 육신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매우 무거운 수고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九,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되는 방법

  1. 아브라함을 본받고,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의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과 같아지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관념을 대신하게 하십시오!
  2.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는 사람은 결코 살기를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결코 이 세상을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十, 결론

  1.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 내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살아 있다는 일을 멸시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되기로 선택하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이렇게 선택해야 합니다.
  3. 영원 가운데 있는 영광을 추구하면 반드시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모습으로 조각해 가실 것입니다!

핵심 단어

  1. 열매를 맺음
  2. 보배를 택하심
  3. 찾으면 찾게 됨
  4. 영생의 소망
  5. 영원 가운데 있는 영광
  6. 하나님의 눈에 보배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강의는 《새시대 기독교 변혁 세미나》의 마지막 강의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내용인 ‘천국에는 모두 보배가 있다’는 주제입니다. 이 강의를 마치고 나니 마침내 해방을 얻은 것 같고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 지난 몇 강의 동안 저는 많은 새로운 개념을 이야기했고 새로운 발견도 많이 했습니다. 이번에는 마침내 중국인 사명 신학의 정수를 하나로 연결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정리해서 《새시대 기독교의 변혁》이라는 책으로 출판하고 싶습니다. 이 시대는 변혁을 너무나 필요로 합니다. 바로 이 시대의 거짓 복음을 변혁해야 합니다.

예전에 저는 교회 안에 못된 사람들이 많고, 많은 전도자들도 별로 좋지 않다는 현상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왜 또 교회의 나쁜 점을 이야기하느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세미나에 참석한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탓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기까지 왔다면 여러분은 찾는 사람입니다. 다만 제가 말하는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무 모순도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저는 주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본 것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대표적인 현상들을 어느 정도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 사람들이 모두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나도 그곳에 가야 할지 정말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일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말입니다. 천국이 이런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정말 매우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이 세상은 다툼으로 가득하고 교회도 다툼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교회와 세상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모두 달러, 위안, 루블, 석유, 천연가스를 위한 것입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왜 지전(紙錢)을 훔치러 가지 않는지 의아했습니다. 상점에서 한 묶음씩 많이 팔고 있고, 달러가 인쇄되어 있으며 액면가가 모두 100위안인데도 아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 누군가 차 위에서 지전을 길에 뿌리기도 합니다. 길에서 누군가 종이돈을 뿌리는 것을 보면 밟고 싶지도 않을 텐데, 하물며 그것을 주워 지갑에 넣겠습니까?

사람은 모든 일을 살기 위해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이렇게 한다고 정말 잘 살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 의문을 품고 연구했고, 그 결과에 매우 놀랐습니다. 여러분, 이마에 인두로 ‘나는 전도자다’라고 새긴다고 해서 정말 전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연구한 결과는 천국에는 모두 보배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사람을 가려내시는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제야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나중에는 저도 사람들을 가려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오늘날의 전도자들이 하는 일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실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자주 사람들을 밖으로 걸러 내셨습니다. 교회는 보배를 가려내고,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곳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대만의 한 원로 목사님이 저에게 《에베소서》를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실행 지침서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강의의 일부도 《에베소서》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일을 일단 분명하게 정리하고 나자, 이것이 중국인 사명 신학의 근본적인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곧 천국에는 모두 보배가 있으므로 보배를 가려내고 좋지 않은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가져와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종양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암이 자라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암을 하나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이렇게 교회를 세우는 것이 《성경》에 더 부합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한 해 한 해 계속 걸어오면서 이제 또 한 가지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전도자가 되는 일이 매우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교회를 세우면 종양과 암과 쓰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가져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은 제가 이렇게 교회를 세우면 쉽게 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지식에 따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실 것입니다.

한번은 비행기에서 예전에 알고 지내던 한 전도자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는 이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을 고된 일로 여겼는데, 마침내 그 고된 일을 내려놓을 기회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복입니까? 그런데 그는 영광스러운 섬김을 고된 일로 여겼습니다. 아마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쓴 오이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전도자로 섬기면서 이렇게 기쁜 것은 보배의 원칙에 따라 교회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기독교의 새 시대를 변혁하려는 이유입니다. 저처럼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목회자들 가운데 지금까지는 저 한 사람뿐입니다. 다른 목회자들은 어떤 쓰레기든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며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전도자가 되는 일이 매우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제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사실 당시에는 아직 중국인 사명 신학을 정리하지 못했지만, 제가 전도자가 되는 것이 좋다고 말하자 몇몇 형제자매들이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교회에 와서 동역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너무 좋게 설명했기 때문에 그들이 정말 믿은 것입니다. 그때 강의를 마치고 그들이 모두 직장을 그만두고 저를 따라오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습니다. 당시 그 형제자매들도 저와 함께 전도자가 되는 아름다움을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일련의 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가 택하는 사람들은 모두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섬기고 싶다고 하면, 저는 그런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먼저 목양부터 시작하라고 권면합니다. 목양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 저는 여러분 모두가 들어와 섬김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천국에 바울이 몇 명 더 있어도 문제없습니다. 천국은 바울이 많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쓰레기가 많은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관념이 형성되고 나면 저는 매일 이것도 보배이고 저것도 보배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보배를 보면 귀한 보물을 얻은 것처럼 기뻐하고, 사람을 얻는 것을 물고기를 얻는 것처럼 여깁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이렇게 교회를 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 안의 미묘한 점, 곧 교회를 사람의 논리대로 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4:1)

여러분이 《요한계시록》을 공부할 때 그 안에는 십사만 사천 명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저에게 어떻게 그렇게 적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여러분, 그것도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말씀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보배는 정말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고 교회가 거룩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기를 바라지 않고 교회가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용호상박도 없고 혼란스러운 일도 없습니다. 이렇게 전도자로 섬기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가득하고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합니다. 우리가 이런 관념을 받아들이고 나면 다른 교회들이 섬기는 모습을 볼 때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한번은 어떤 교회에 갔는데 그 교회의 목사님과 사모님이 저를 붙잡고 교회가 정말 너무 가난하다고 울며 하소연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목사님은 직접 밀가루와 고기와 채소를 힘들게 사 와서 성도들에게 먹일 만두를 빚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이건 무슨 만두소예요? 왜 이렇게 맛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목사님의 유리 멘탈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도 참 재미있는 분이어서, 아직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무슨 만두소를 먹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양하지 않고 전복 만두소를 먹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라면 분명히 “왜 나에게는 안 빚어 줍니까?”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제가 사람을 훈련하는 것은 밥벌레 무리를 훈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이것저것 까다롭게 고르는 사람은 쓰레기이므로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한 자매가 만두 냄새를 온몸에 풍기며 문을 열고 들어와, 방금 자신을 위해 딩타이펑 만두를 먹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왜 내 몫은 없습니까?”라고 하자, 그 자매는 제가 정말 만두 몇 개가 없어서 그러는 줄 알고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전도자로서 잘 섬길 수 있는 것은 제가 선택하는 사람들이 모두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쓰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끌어들여 놓고 스스로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서 《성경》을 잘 읽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도자라면 이 말을 듣고 화내지 마십시오. 어쩌면 제가 《성경》을 설명해 드릴 수 있고, 여러분도 자세히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에서 보배를 택하신다는 이 관념은 반드시 우리의 골수에 깊이 새겨져야 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 하나님의 진노를 드러내는 그릇이 되는 사람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릇이 되는 사람입니다. 한 종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이고, 다른 한 종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지켜 행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굳게 결심했습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헌금만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뜻은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고, 그 가운데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해 동안 품어 온 혼란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한 형제가 곧 죽을 사람을 위해 빨리 기도해서 그를 천국으로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결단 기도를 시키고 천국에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를 천국에 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동쪽에 있는 곳으로 보내는지 서쪽에 있는 곳으로 보내는지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사람의 삶과 죽음을 비교적 담담하게 봅니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사람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보배를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이 충분히 긍휼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살아온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신 일입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떠나보내며 많은 비극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저 살고 싶어 했고, 모든 소망을 살아 있다는 일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죽어야 했고, 숨을 거두는 일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성경》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숨을 거두기 전에 결단 기도를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따라 중국인 사명 신학은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더 부합하는 신학 체계입니다. 이 신학 체계를 따라 믿고 이 길을 걸으면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신학 체계에 따라 교회를 세우면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됩니다. 이 체계에 따라 생활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얻은 것은 영광스러운 사명이며, 교회는 《에베소서》에 따라 세워야 합니다.

성경 본문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이 가득 차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마태복음》 13:44-50)

기도

하나님, 주께서 찾으시는 것이 보배라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하소서. 우리로 이러한 뜻을 품고 주 앞에서 주의 눈에 보배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아 주의 눈에 보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고 사도 바울을 본받아 주의 눈에 보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살아 있다는 일을 멸시하고 우리의 소망을 영생에 두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평생 주의 뜻 안에서 살며 주를 믿고, 주를 바라보고, 주를 의지하며, 이 영생의 길을 달려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 본문의 배경

이 성경 본문의 배경은 매우 놀랍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절부터 마지막까지 읽어 보면,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원하시는지에 대한 내용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낮추어 보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셨을 뿐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등 온갖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이치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마태복음》 13:10-11)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모두에게 알려 주면 될 것 같은데,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만 알게 하시고 그들에게는 알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읽으면 예수님이 너무 나쁘다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보배를 택하시려는 것이었고, 보배는 여러분이며 쓰레기는 그들입니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디모데후서》 3:7)

항상 배우지만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 사람들은 여러분입니까, 아니면 그들입니까?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사야》 6:9-10)

이 말씀이 이사야의 예언을 그대로 성취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 말을 제가 만들어 냈다면 사람들은 분명 저를 몹시 미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이고 이사야가 한 말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처음부터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 이미 염려하셨습니다. 후대의 목사들과 전도자들이 엉망으로 하여 쓰레기를 교회 안으로 가져올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마태복음》 13:49-50)

쓰레기는 소각장으로 보내 태우고, 보배는 천국에 거두어야 합니다. 이 관념이 세워지지 않으면 목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을 것이며,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떠나려고 할 때 우리는 절대로 비굴하게 그에게 남아 달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 떠나려고 해도 저는 목회자와 동역자들을 한 무리 데리고 그 사람의 집에 찾아가 앉아서 귀찮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보배를 찾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떠나려 하면 떠나게 두면 됩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도 이런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떠나기 전에 저에게 인사할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조용히 혼자 떠나도 됩니다. 여러분이 이런 메시지를 보내도 저는 읽지 않습니다. 설령 읽더라도 여러분이 떠났으니 저는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거슬린다면, 우리는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이 샴페인을 터뜨리십시오. 제가 노래 한 곡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가씨, 대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요, 앞으로 나아가요! 당신은 당신의 양관대로 가고, 나는 나의 외나무다리로 갈게요.”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이렇게 존귀한 직분을 그토록 천하게 수행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점차 알아야 합니다. 어떤 자매가 우리 가운데 오려고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들의 목사와 장로들이 그 자매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평소에 그 목사들과 장로들이 필요할 때는 찾을 수 없었는데, 사람이 떠나려 하자 모두 나타났습니다. 이게 천한 일이 아닙니까? 어떤 목사들은 이 말을 듣고 분명 불편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신 것을 우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떠나려면 빨리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일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을 때, 사람들은 다음 빵이 언제 나오는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빵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요한복음》 6:55-57)

예수님의 피와 살을 음식으로 먹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삼장법사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떠나갔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한복음》 6:67-68)

제가 말하는 것들은 사실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만 당시 교회를 세울 때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행복 소그룹 같은 것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별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행복 소그룹이 끝난 후 목사도 밑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그 한 끼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닭구이, 오리구이, 햄, 장조림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면서 파리와 모기 떼를 끌어모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어떻게 교회를 세우고 어떻게 그분을 본받아야 하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고, 오늘날까지도 교회에 사람이 많은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에 십사만 사천 명만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말하자면, 십사만 사천 명도 믿음으로 말씀하신 숫자입니다. 찾고 또 찾아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 중국인 사명 신학은 전 세계에서 보배를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려내셨으니 우리도 가려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대로 우리도 합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며 분명 하나의 변혁입니다. 보배의 원칙에 따라 보면 우리는 어렵게 이 사람들을 가려냈습니다. 어떤 교회의 전도자들은 우리 가운데 있는 말단 목회자들의 기도도 잘 응답되는데 자신들의 큰 목사들의 기도는 잘 응답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보배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마태복음》 13:24-26)

이 성경 본문의 배경에는 씨 뿌리는 비유와 가라지와 곡식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가라지와 곡식이 교회 안에서 함께 자란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밭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이고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이 아니고 세상도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곡식과 가라지는 교회 안에서 함께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함께 자랍니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13:38-40)

세상 끝날 때 가라지와 곡식은 각각 묶일 것입니다. 가라지는 쓰레기이므로 불못에 던져져 불에 타게 될 것입니다. 보배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려져 들어갑니다. 이것은 중국인 사명 신학의 매우 중요한 관념입니다. 사람이 이 관념을 붙들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배를 택하신다

앞에서 우리는 영원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은 택하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도 택하심이 나타납니다. 그물을 끌어올려 좋은 것을 그릇에 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쓰레기라면 무엇이든 그릇에 넣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배를 택하신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의 눈에 보배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습니다. 이제 그것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택하시는지 알면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관념이 세워지면 일이 쉬워집니다. ‘나는 이미 결단하고 주님을 믿었고, 이미 은혜를 받아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아 구원받았다고 해서 모두 보배라는 말이 누가 했습니까? 보배에게는 보배의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사 그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택하시는지, 어떤 사람이 보배라고 여기시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께서 보배를 택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위대한 일을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면서도 그들을 창조하신 것은 보배를 택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 아브라함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그 후 이삭을 택하셨고, 다시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이들은 모두 보배였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난 쌍둥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택하시고 에서를 버리셨습니다. 야곱이 보배였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보배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둘째 아들이었지만 장자의 명분을 얻을 것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안에는 ‘불가능’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비극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다시 깊이 생각하고 헤아려 보십시오. 우리 안에 믿음이 없다면 큰일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은 모두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요셉의 믿음은 야곱의 믿음보다 컸고, 야곱의 믿음은 이삭의 믿음보다 컸으며, 이삭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보다 컸습니다. 하나님의 안배는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전체 계획은 보배를 골라내고 쓰레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누가 합니까? 얼마 전에 저는 마귀가 저를 도와 교회를 세운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늙은 말로 쓰레기를 수거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어떤 사람이 저에게 모자를 씌우며 제가 마귀와 함께 동역하여 교회를 세운다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여 교회를 세우는 것이고, 마귀의 일은 쓰레기를 가져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마귀든 천사든 모두 종입니다. 마귀는 타락한 천사이고, 타락하지 않은 천사도 모두 종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는 일을 돕습니다. 이 논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셨습니다. 마귀에게는 마귀의 위치가 있습니다. 마귀의 첫 번째 일은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이고, 두 번째 일은 우리의 대련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주 좋은 대련 상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보배의 특징 1: 열매를 맺음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누구든지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3:18-23)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 것은 여러분에게 뿌리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씨를 뿌리신 후 그 씨는 여러분의 마음에도 떨어지고 제 마음에도 떨어집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뱃속에 귀신이 있어서 마음에 뿌려진 씨를 귀신에게 빼앗기고 귀신이 먹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돌밭에 뿌려져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지만, 마음에 뿌리가 없기 때문에 잠시 동안만 받아들입니다. 그러다가 조금만 환난과 박해를 받으면 즉시 넘어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열매를 맺으며,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것이 보배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항상 배우지만 오랫동안 참된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쓰레기입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뿌리신 씨도 있고 귀신이 뿌린 씨도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우리 전임 동역자들을 포함해서, 여러분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이 세상의 것인가, 아니면 영생의 것인가? 모든 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을 위한 것인가? 여러분이 맺은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이 맺은 것입니까, 아니면 마귀가 뿌린 씨가 맺은 것입니까?

사람에게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있다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결국 쓰레기로 불못에 던져져 불살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산타클로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이지, 그들에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산타클로스라서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않으시며,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 여러분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이라고 고집한다면, 여러분이 천국에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은 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배의 특징 2: 찾음

우리 교회는 끊임없이 배움을 장려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어떤 사람들이 배움을 거짓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탐구하고 찾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중국인 사명 신학이 배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배울 때 찾는 마음을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국인 사명 신학을 세운 것도 제가 찾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교회에서 수많은 혼란을 보았고, 그래서 저는 《성경》 안에서 끊임없이 찾았으며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저에게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어떻게 계시하셨는지, 저에게도 그렇게 계시하셨습니다. 제가 받은 것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며, 어떤 대가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닙니다. 찾은 결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셔서 찾는 사람이 있는지, 깨닫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십니다. 찾지 않고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쓸모없게 되며, 그들은 모두 쓰레기입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마태복음》 13:10-11)

여기서 비유로 말씀하심으로써 단번에 찾는 사람을 안으로 걸러 내고 찾지 않는 사람을 밖으로 걸러 내셨습니다. 찾는 사람은 여러분이고, 찾지 않는 사람은 듣고 나서 모두 헛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목사는 특별히 다른 전도자들의 나쁜 점만 이야기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다른 목사들이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여러분의 느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찾는 사람인지 아닌지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말한 것 중 잘못된 부분을 조사해서 알려 준다면 저는 반드시 고치겠습니다. 저는 헛소리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쩌면 저도 모르게 헛소리를 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찾으면 반드시 찾게 되고, 문을 두드리면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본래 이와 같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7:7-8)

사람이 자기만 옳다고 여기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제가 하는 말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저도 여러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만 알게 하시고 그들에게는 알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곧 찾으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마침 그들 편에 속해 있다가 지금 제 나눔을 듣고 이런 생각을 품게 되었다고 합시다. ‘안 되겠다. 나는 찾아야겠다. 주 예수님께 이 비유가 무슨 뜻인지 여쭤 봐야겠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얻은 것입니다.

사실 찾고 찾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죽자 살자 예수님을 따라가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가 무슨 뜻인지 계속 물어야 합니다. 흙이 얕고 돌이 많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싹이 가장 빨리 나지만 해가 뜨면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시덤불에 떨어져 가시가 자라나 싹을 막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좋은 땅에 떨어져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주님, 저는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좀 어리석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설명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어리석은 것은 두렵지 않지만, 찾지 않는 것은 두렵습니다. 여러분이 찾으면 주 예수님께서는 매우 인내심 있게 이 일을 설명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말하는 것은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보배이기 때문에 일부러 여러분이 찾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찾기만 하면 보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사람을 시험하십니다. 누가 보배인지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중국인 사명 신학에는 예전부터 체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체와 도구를 만들어 자동화된 선별 과정에 넣어 보배를 가려낼 것입니다. 중국인 사명 신학의 학습 자료는 매우 많습니다. 누구든지 들을 수 있고, 삼 년이나 오 년을 들어도 다 듣지 못할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찾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그곳에서 탐구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압니다. 저에게는 데이터와 레이더 화면이 있어서 이것도 보배이고 저것도 보배라는 것을 발견하면 서둘러 주워 옵니다.

어떤 사람이 대나무 막대기 두 개를 팔자 모양으로 만들어 사과를 크기별로 분류했습니다. 작은 쪽 입구에서 사과를 막대 위에 올려 아래로 굴리면 작은 사과는 작은 구멍에서 떨어져 아래 바구니에 들어가고, 큰 사과는 계속 굴러 큰 쪽에서 떨어집니다. 가장 큰 사과는 계속 아래로 굴러 가장 앞에 도착한 뒤 떨어집니다. 이 도구를 발명한 사람은 꽤 대단합니다. 단순한 막대기 두 개로 사과를 쉽게 분류했습니다. 물론 큰 사과와 작은 사과의 판매 가격도 분명 다릅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에게 노트를 쓰게 하고, 문제를 풀게 하고, 사역을 하게 하는 것은 여러분이 보배인지 아닌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보배에게 힘을 쏟습니다. 보배에게는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고, 보배가 아닌 사람에게는 비유로 말합니다. 보배가 아닌 사람이 듣고 반쯤 이해하거나 반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웹사이트에 자료가 많으니 천천히 보고 들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배를 택하시며, 이 영생의 길은 찾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찾아야 하는 것은 하나의 결과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주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일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아무 의미도 없다고 여기십니다. 여러분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아닙니다. 계속 탐구하고 찾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귀한 보배로 발견하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지극히 귀한 보배로 여기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귀한 보배로 여기는 사람은 반드시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깁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보배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설물처럼 여긴다면, 예수님의 눈에 여러분은 배설물입니다. 이 논리는 매우 분명합니다.

우리가 찾는 것은 영생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아직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껏 소망하십시오. 아직 살아 있을 때 묘지를 하나 사고 화장함도 하나 준비하십시오. 다만 누군가 여러분을 위해 불태워 주고 처리해 줄 사람이 없을까 염려될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위대해서 화장한 후 유골을 강이나 바다에 뿌립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뜻조차 품지 못합니다. 무산계급 혁명가들의 뜻보다도 못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의 평생은 모두 헛되고 헛됩니다. 영원 가운데 있는 영광을 찾지 않고, 이 세상에서 재물의 유혹과 온갖 얽매임에 막혀 있다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보배의 특징 3: 영생의 소망

제가 과거에 섬기면서 보니 어떤 사람들은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말하면 눈이 빛났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말하면 눈을 감았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자녀를 기르는 것이고, 계속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소망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람은 세상에서 살아가며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경작하고 건축합니다. 그저 살아갈 뿐이고 결국 모든 소망이 세상에 떨어집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만 소망을 가진다면 세상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입니다. 라사로라는 사람이 죽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급히 예수님을 찾으러 보냈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일부러 지체하셨습니다.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더라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한복음》 11:1-6)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요한복음》 11:11-14)

그 사람들은 머릿속에 나사로가 죽었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기 계셨다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속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어리석구나. 내가 여기 있었다고 해서 나사로가 죽지 않았겠느냐? 그날 살아났어도 앞으로는 다시 죽을 것이다.” 지금 나사로를 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사실 나사로는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났지만, 실제로는 꽤 불운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들린 도구가 되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두 번 숨을 거두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병들어 숨을 거두었고, 두 번째에는 어떻게 숨을 거두었는지 모릅니다. 숨을 거두는 일 자체가 원래 매우 힘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의 반응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우셨는지 계속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신 것은 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모든 소망을 이 세상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것은 좋은 일이었는데, 그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이 죽은 것처럼 반응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관점이 혼란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아직 잘 살아 있을 때 저는 여러분에게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사람이 이 세상에 소망을 두면 죽음에 대한 관점이 어리석게 됩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한복음》 11:21)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요한복음》 11:32)

나사로가 죽은 후 그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마음이 매우 슬펐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불러내셨지만, 나사로 자신은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예수께서 마리아가 우는 것과 또 그와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복음》 11:33-35)

여러분, 나사로는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도구로 사용하셨고, 그를 다시 불러내는 일을 두고 매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여기서 우셨다는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 세상에만 소망을 두고 있는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사로가 두 번 죽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시니 정말 미안한 마음도 드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부르셨으니 나사로는 원하지 않아도 돌아와야 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나사로가 나왔을 때 여러분이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숨을 거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카메라 앞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떠나보냈고, 마음속으로는 사실 매우 슬펐습니다. 너무 직설적으로 죽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정말 막힙니다. ‘왜 이렇게 죽기를 싫어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의아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왜 사람을 죽으라고 저주하시는가?’ 사람은 세상에서 수고를 그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나 세상에서 많은 죄를 겪은 사람들도 계속 살고 싶어 합니다. ‘죽는 것보다 구차하게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은 모두 잘못된 논리 체계입니다.

이제부터 살아 있다는 일을 멸시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보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고, 사람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살아서 주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고,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 가운데 있습니다. 늘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너무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이것은 두 나라의 다툼입니다. 하나는 영원한 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나라입니다. 이 세상의 나라에서 사는 것은 참으로 헛되고 헛되며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보면 아이가 아직 어리고 손주도 아직 어립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보면 증손주도 너무 어립니다. 이렇게 보면 모두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보면 젊은 엄마가 아직 살아 있고, 심지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아직 살아 있습니다. 마음속에 많은 염려가 있어 죽고 싶지 않습니다. 죽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저는 눈물이 흐르려 합니다. 할아버지가 된 사람도 죽고 싶어 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있는 사람도 죽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끊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있다면 세상 사람보다 더 불쌍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눈에 보배가 되기를 원합니까? 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진 모든 것을 버리기를 원합니까? 영원 가운데 있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아직 그 영광을 보지 못했지만 믿습니다. 그리고 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 기적과 표적이 계속해서 저를 따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웹사이트에서 도우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는 모두 이 세상의 일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를 대가를 숭배하듯 숭배합니다. 사실 저는 그런 대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일로 느끼는 바가 많고, 때로는 울고 싶기도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이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모두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육신 가운데서 탄식하고 수고하며 영원 가운데 있는 영광을 얻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제가 하는 말을 듣고 여러분도 ‘정말 좋은 것 같다. 살고 싶어 하지 않으면 오히려 잘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살아 있는 것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저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평안하게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잠들었다가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화장실에서 나와 침대에 누웠는데 숨이 돌아오지 않아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제가 정리해 보니 이런 사람들은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원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살기를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염려가 없었습니다. 죽으면 아주 편안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 내고 싶다면 이 세상의 소망을 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영생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막아도 막을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떠나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사실은 정말 훨씬 더 좋습니다. 제 친구 중 한 사람은 전도자인데 죽고 싶어 하지 않는 설교를 합니다. 그런 설교가 어디 있습니까? 그 사람 자신도 죽고 싶어 하지 않고 이 세상에 대한 소망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합니다. 결국 병이 들어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관을 삽입하고, 인공 폐와 인공 심장과 인공 신장과 인공 간까지 사용합니다. 차라리 인공 뇌까지 만들지 그러냐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고생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제 말을 한마디만 들으십시오. 살아 있다는 일을 멸시하십시오. 여러분이 살아 있다는 일을 멸시하기 시작하면 직장에서 월급이 올랐는지, 다른 사람의 보너스가 얼마인지, 내 보너스가 얼마인지 같은 일로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럴듯하게 “죽으면 천국에 못 갈까 봐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런 식으로 사는 사람은 분명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온갖 비열하고 부정한 일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되는 방법

어떻게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아 여러분의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과 같아지면 사람은 이 세상에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도자라면 기쁜 전도자가 되고, 그리스도인이라면 기쁜 그리스도인이 되며,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을 멸시하게 되고, 위선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가난하지도 않고 많은 병에 걸리지도 않으며 많은 죄를 겪지도 않을 것입니다. 설령 고난을 겪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것이라면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되는 방법입니다. 마지막에 여러분이 이 길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에게 놀라운 능력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기를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영원히 살기를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못 갈까 봐 두려워하든 지옥에 못 내려갈까 봐 두려워하든, 이 세상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결코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절대로 보배가 아닙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관념을 대신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 내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되는 것은 여러분과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지 않으셨더라도 저는 머리를 깎아 세우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시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는지 알면 저는 굳게 결심하여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지 않으셨더라도 저는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은 모두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는지 택하지 않으셨는지는 알 수 없고 증명할 수도 없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코 여러분의 소망을 이 세상에 두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나는 성장하고 싶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이 세상을 위한 것이라면 안 됩니다. 사실 성장은 부산물입니다. 영원 가운데 있는 영광을 추구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장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서 놀라운 일을 하시고,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조각해 가시며, 여러분의 생각과 뜻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와 상관없이 여러분과 저는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큰 집에는 많은 그릇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귀한 그릇이 되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천한 그릇이 되기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계속 조각하시며 우리 안의 악습을 다루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 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얻기 원하시며, 우리도 하나님을 얻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두 환호할 것입니다. 땅 위에 하나의 운동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을 닮는 운동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닮기를 갈망하고, 예수님과 하나 되기를 갈망하며,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새시대 기독교의 변혁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