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서론
우리는 이어서 싸워 승리하는 신학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이 승리의 신학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 많은 문제가 있는 이유는 싸우지 않기 때문이며, 싸워도 승리하지 못하면 여전히 많은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십니다. 이것이 승리의 신학 제4강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시다. 여러분은 “여호와는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시다”라는 이 말씀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십니까? 바로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입을 통해 선포된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세의 인식을 아주 탁월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결코 트럼프가 중국에 가서 의장대를 사열할 때의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남루한 옷을 걸친 거지 떼 같았습니다. 옷도 찢어지고 모자도 찢어지고 모든 것이 다 해어진, 너무나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평생 노예로 살았는데 그들에게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백성들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어떤 이는 코를 후비고, 어떤 이는 때를 밀고 있는, 딱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의장대를 본 적이 있다면,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며 모세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저를 좀 봐주십시오. 이것이 정녕 하나님의 군대입니까? 아무리 봐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무리가 모세의 인도를 받아 이집트 바로 왕의 군대를 무찔렀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정말 대단합니다! 모세도 이 일에 몹시 놀랐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 모세는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여호와는 용사이시다.”
“여호와는 용사이시다”라는 말은 정말 대단한 고백입니다. 결코 이스라엘 백성이 싸운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여호와의 군대가 되었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은데, 모세가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제가 초기에 교회를 개척했을 때도 꼭 그랬습니다. 아무리 봐도 승리하는 정예병 같지 않고, 그저 초라한 무리 같았습니다. 그러니 이런 백성이 어떻게 승리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을 힘입어 승리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이 맞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모두가 멋지게 차려입고, 완벽하고 단정하며 화려한 군복을 입은 의장대처럼 나왔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가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이토록 형편없는 무리가 이집트 바로 왕을 이길 수 있었기에 우리에게도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 교회의 현재 모습을 보며 결코 자만하지 마십시오. 솔직히 말해 마음속으로도 자주 흐트러지고 나태해지지 않습니까? 늘어지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렇게 연약하고 흐트러진 자들이 바로 여호와의 군대입니다.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체력도 부족합니다. 지금의 모습도 그렇거니와 예전의 모습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예전의 모습은 정말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비록 우리가 싸워 승리하는 교회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승리는 결코 우리가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앞서 행하십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볼 때, 제 평생 가장 감사한 분은 하나님이시며, 가장 찬양하고 싶은 분도 그분이십니다.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부족하고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엉망이었습니다.
교회를 처음 개척했을 때 ‘치유와 축사 과정’ 같은 게 어디 있었겠습니까? 없었습니다. ‘성경공부 방법’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다 나중에 보완된 것입니다. 101 과정이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방대한 신학의 바다에서 닥치는 대로 건져 올렸습니다. 뭔가 하나 건져서 ‘이거 괜찮네’ 하고 책 한 권 만들고, 또 괜찮다 싶으면 만들었습니다. 정말이지 교회가 온통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어수선하고 엉망이었지만, 그럼에도 대단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거룩하지도 못했지만, 귀신 쫓는 사역(축사)만큼은 매우 강력했습니다. 다른 건 없어도 배짱 하나는 두둑했습니다. 몇몇 형제자매들을 데리고 정신병원에 당당히 들어갔습니다. 어떤 학생이 정신병원에 입원했는데, 우리 청년 형제자매들을 데리고 정신병원에 가서 결국 자유케 하고 축사해 냈습니다.
경찰이 흉악하게 날뛰는 정신질환자를 꽁꽁 묶어서 데려왔는데, 알고 보니 제 학생이었습니다. 침대에 묶여 있는데 정말 무서웠습니다.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진짜 귀신 들린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몇 사람이 손을 잡고 간절히 방언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쫓겨나갔습니다! 그때는 오직 한 가지만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그런 믿음이 어디서 났는지는 몰라도 마침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병원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아 퇴원했습니다. 그런데 퇴원했다가 또 증상이 생겨 들어가면 다시 가서 귀신을 쫓아내고 데리고 나왔습니다. 정신병원에 가보신 분은 알겠지만 접견실이 있습니다.
정신병원 환자복을 입고 나오는데, 얼굴 가득 귀신에 억눌린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우리는 그 병원 접견실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기도를 했습니다. 결국 귀신이 쫓겨나갔는데, 저 자신도 너무 놀라웠습니다. 이토록 연약하고 문제투성이인 교회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사실 우리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온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시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때는 오직 뜨거운 열정 하나로, 마귀보다 딱 1분만 더 버티자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전 버전의 102 과정인 ‘예수님처럼 치유와 축사 사역하기’를 들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오직 그 뚝심 하나였습니다. 깨달음이나 지혜는 부족했을지 몰라도 그저 마귀보다 1분 더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귀보다 1분 더 버티라’는 개념이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제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목사님, 알고 계십니까? 저희가 마귀보다 딱 1분 더 버텼더니 제 병이 나았습니다! 예전에 이것저것 수련하다가 온몸에 귀신이 가득 찼었는데, 귀신들이 다 쫓겨나가고 굴복했습니다.” 그는 몹시 놀라워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분별과 지혜를 갖추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분별을 갖추는 것은 좀 어렵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실제로 귀신이 쫓겨나갔으니까요. 결국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평생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이 생각을 결코 바꾸지 마십시오. 영원히 바꾸지 마십시오. 들으셨습니까? 여러분이 제법 괜찮아졌다고 느껴지더라도 절대 바꾸지 마십시오. 늘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저는 영원히 부족합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싸워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좀 괜찮아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부터 영원토록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싸우시며 우리를 위해 승리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십니다. 이번 설교의 주제는 “여호와는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시다”입니다. 출애굽 때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가 아니라, 오히려 성장의 원동력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신학적 개념은 바로 우리의 행위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자신의 행위를 의지해 보면 무엇이 보이겠습니까? 그저 때 묻고 지저분한 모습뿐이지 않습니까? 가장 타락한 신학은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더 타락한 신학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일해 드리고 그분을 돕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타락 중의 타락입니다. 어떤 목회자가 하나님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망하겠구나, 문제가 생기겠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부족했기에 우리에게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이삭과 야곱이 부족했기에 우리에게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택하신 열두 제자가 턱없이 부족했기에 우리에게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모두 지극히 완벽했다면 우리에게 어떻게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선택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끝장났을 것입니다. 그들이 부족했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두 제자를 훈련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 열두 제자가 훌륭해 보입니까? 제자들을 겨우 석 달 남짓 훈련하시고는 귀신을 쫓아내라고 파송하셨습니다. 사실 귀신을 쫓는 사역은 기독교에서 가장 단순한 일입니다. 왜 석 달만 훈련하셨을까요? 제자들은 석 달 훈련받았을 때는 물론이고, 3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엉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려 할 때도 그들은 누가 더 크냐, 누가 예수님의 우편에 앉을 것이냐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제자들의 머릿속은 온통 헛된 생각뿐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헛되이 들었던 것입니다. 다 듣고 나서도 여전히 그 모양이었습니다. 3년이 지나도 그 모양이었는데, 겨우 3개월 훈련받았을 때는 어떠했겠습니까? 훨씬 더 형편없고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열두 제자가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고 돌아와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그들의 놀라움은 과거 저의 놀라움과 비슷했습니다. “와! 이렇게 역사가 나타나다니! 귀신들도 우리에게 굴복하는구나!”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들뜬 마음을 경계하셨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앞서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귀신을 많이 쫓아냈다고 해서 그것이 여러분의 의를 증명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깃발이심을 나타낼 뿐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하나님만이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십니다. 결코 그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스스로에게 공을 돌리는 순간 “와, 내가 참 잘했구나!” 하며 무너지게 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칠십 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전에 성경을 읽을 때 제게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왜 이렇게 엉망일까?’ 하지만 나중에는 의문이 풀렸습니다. ‘아, 다행히 그들이 엉망이었기에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는 거구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엉망이었습니까? 허구한 날 이것 원망하고 저것 불평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을 쳐부순 과정은 한 가지 진리를 계시합니다. 바로 여호와는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해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지, 여러분이나 제가 스스로 승리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행하시며 총알을 막아 주시는 것은, 우리가 온전히 그분만을 신뢰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십시오. 여러분이 연약하고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완벽하다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며, 세밀한 믿음의 과정이 기초가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할 때, 모세 한 사람의 믿음이 이스라엘 대군 전체를 지탱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없는 모습을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믿음을 이어받아 모두가 믿음의 용사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으로 지탱하시며 제자들이 본받기를 바라셨습니다. 훗날 교회를 세울 때도 바울의 믿음이 교회를 지탱하며 우리가 바울을 본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사도 바울을 본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자 하는 백성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이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저는 연약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저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본받으십시오. 모든 승리는 은혜이며, 모든 승리는 우리가 변화되는 계기이며, 모든 승리는 믿음의 훈련입니다. 오늘 믿음을 굳게 세우십시오. 이러한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위대한 구원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쥐고 계시며, 우리에게 승리를 주셔서 마귀를 짓밟고 뱀과 전갈을 밟게 하셨습니다. 그 누가 우리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정예병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 파죽지세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바꾸고 있으며, 교회의 신학적 관점을 바꾸고 있고, 이 세대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는 백성,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무리, 여호와가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심을 믿는 승리의 군사들이 역사를 바꾸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사명 신학이 다음 세대에 미칠 영향력은 마틴 루터를 훨씬 뛰어넘을 것입니다. 마틴 루터의 신학은 승리의 신학이 아니었지만, 우리가 믿는 것은 싸워 승리하는 신학입니다.
일어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하나님은 여러분을 승리하게 하실 수 있으며,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목사님, 저는 어제도 불평했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어제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도 계속 불평하겠습니까? 불평하는 악한 습관을 끊어내야 합니다. 더 이상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말고,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성경 말씀
그때에 아말렉이 와서 르비딤에서 이스라엘과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출애굽기 17:8-16)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의 마음눈을 열어주셔서 우리의 육신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보게 하옵소서. 우리가 육신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주님을 힘입어 육신을 이기고 우리 안의 아말렉을 쳐부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안에서 주님의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사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믿음, 아브라함의 믿음, 이삭과 야곱의 믿음을 살아내게 하옵소서.
하나님, 주께서 반드시 우리를 일으키사 육신의 행실을 죽이게 하시고, 이 세대에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를 인도하사 주님의 승리의 깃발을 보게 하시고, 주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지극히 크신 능력이 주님 안에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연약하고 흠 많은 우리가 주님을 의지할 때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변화됨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이러한 은혜를 주사, 주님을 힘입어 끊임없이 영적 전쟁을 치르며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고 주님 안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이스라엘의 역사는 곧 원망과 불평의 역사였습니다. 출애굽하여 걷다 보니 홍해 앞에 다다랐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이렇습니다. 출애굽할 때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았으면서도, 홍해에 이르자 불과 2~3일 만에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이집트 군대의 위용을 아십니까? 울퉁불퉁한 근육과 손에 든 무기들을 보면 정말 위압감이 넘쳤습니다. 중국의 의장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바로 왕의 화려한 복장을 보십시오! 반면에 우리 쪽을 보면 모세라는 노인 하나뿐이었습니다. 이 모세라는 노인이 어떻게 바로 왕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의 왕들은 모두 일류 무사이자 대단한 강자였습니다. 우리 이스라엘 백성의 꼴과 이집트의 군대를 비교해 보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막강한 이집트 군대가 무기도 없는 백성들을 당해내지 못한 것입니다. 출애굽을 이루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단번에 그들의 장자들을 다 치셨습니다. 장자를 치지 않으셨다면 그들이 이스라엘을 놓아주었겠습니까? 놓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집안의 금은보화를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쥐여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시자 이집트인들은 넋이 나가서 "가져가라, 가져가라! 내 아들이 다 죽었으니 제발 빨리 떠나라!" 하며 내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백성이 홍해를 건너지 못하겠습니까? 그런데도 홍해 앞에서 원망했습니다. 그들이 원망했음에도 하나님은 권능의 팔로 홍해를 가르셨고, 이스라엘은 바다를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 모세는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 “여호와는 용사이시니, 그가 우리 앞서 행하신다.” 그리고 이집트 바로의 군대는 바닷속에 수장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바로 왕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려 했을까요? 머리에 이상이 있지 않고서야 어찌 그랬겠습니까? 결국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홍해를 건넜으니 이제 믿음이 세워졌을까요? 상식적으로는 세워졌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라에 이르러 물이 쓰자 또다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묻겠습니다. 이집트 군대도 물리치시고 홍해도 가르신 하나님께서 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시겠습니까? 그런데도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불평하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저 같았으면 좁은 속으로 그들을 다 쓸어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데, 사람은 어찌 이리도 하나님을 믿지 못할까요? 물 문제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믿음을 갖는 일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지 않으셨고 물을 마시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신 광야에 이르러 먹을 것이 떨어지자 또 잊어버리고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이집트에서는 고기 가마 곁에 있었는데, 왜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죽게 하느냐?” 많은 성도들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 안 믿을 때가 더 좋았는데.” 안 믿을 때가 그렇게 좋았다면 교회에는 왜 왔습니까? 삶의 한계에 부딪히고 막히니까 교회에 온 것 아닙니까? 예전이 좋았던 게 아니라, 그저 불평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문제만 생기면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시고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메추라기 고기를 먹을 때 코에서 넘쳐날 정도로 탐욕스럽게 먹다가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도착한 곳이 바로 르비딤입니다. 르비딤에 이르러 또 물이 없자 다시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 르비딤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한심합니까? 그저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썩어빠진 상태였습니다. 그때 아말렉 사람이 쳐들어와 이스라엘과 싸우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패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여호수아가 사람들을 택해 나가 싸우고 모세는 산에 올랐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결국 아말렉 왕과 그 백성을 칼로 쳐서 무찔렀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심판하실 권한이 없으시겠습니까? 당연히 권한이 있으시며,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이 전쟁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모세가 산꼭대기에 서서 손을 들기만 하면 승리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강한 것입니까, 아니면 모세의 손이 강한 것입니까? 당연히 모세의 손이 강한 것입니다. 모세의 손은 하나님의 깃발을 들어 올리는 것을 상징합니다. 전쟁터에서는 깃발을 흔들며 함성을 질러야 합니다. 깃발을 흔드는 것은 진격의 신호요, 깃발을 내리는 것은 퇴각의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십니다.
이 전쟁은 과연 모세가 싸운 것입니까, 아니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싸운 것입니까? 결코 여호수아의 칼이나 이스라엘의 무기가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모세가 산 위에서 손을 들었을 때, 영적 세계에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천군 천마와 천사들이 이스라엘을 위해 대신 싸워준 것입니다.
손을 내리면 천군 천사가 퇴각 신호로 알고 물러섰고, 그러면 아말렉이 반격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모든 싸움이 영적 세계의 전쟁임을 알아야 합니다. 영계에서 이미 승리했다면, 이 세상에서 승리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영적 세계에서 싸워야 합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의 한 자매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우울증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연약한 자매를 섬기며 매일 두세 시간씩 꾸준히 기도로 섬겼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직장에서 직원들을 관리하는 일이 너무나 힘들고, 직원들이 걸핏하면 감정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골치가 아팠는데, 영적으로 싸워 승리하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출근하여 일하는데 매출이 급상승했습니다. 본인은 별로 한 것이 없는데도 실적이 올랐고, 직원들의 감정도 안정을 되찾아 문제가 사라졌습니다.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승리하지 못하면, 아무리 죽어라 일해도 아말렉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직장에서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의 두 손으로는 결코 세상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손을 여러분의 두 손으로 어떻게 당해내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적으로 먼저 승리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승리하지 못하면 세상 길을 걷느라 날마다 문제를 해결하느라 끝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 자매 한 사람만의 경험이 아니라 수많은 성도들의 공통된 간증입니다.
영업직에 종사하는 또 다른 소그룹 리더도 열심히 귀신을 쫓아내고 기도로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섬김을 대가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적 전쟁을 치른 것입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계약이 성사되고 매출이 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신 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모든 일은 영적 승리에 달려 있습니다. 영이 흥왕하지 못하면 아말렉에게 처참하게 깨지고 맙니다.
승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영적 세계에 있습니다. 승리가 누구의 손에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 대적하여 설 수 없습니다. 모세가 산 위에서 손을 들자마자 승리가 임했던 것처럼, 우리가 싸우는 싸움은 바로 영적 전쟁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영업하면서 계약을 따내는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 덕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까지 신경 쓰실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의 모든 세세한 일에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모세가 해가 질 때까지 손을 들고 있자, 여호수아가 아말렉의 왕과 군사들을 무찔렀습니다.
돌아와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보십시오. 여전히 낡은 옷을 입은 초라한 무리요, 여전히 불평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아말렉을 이길 수 있었던 까닭은 모세가 산 위에서 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나는 승리하는 교회에 다닌다”라며 안도합니다. 그러나 승리 이후가 진짜 시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의 교훈을 배웠습니까? 그 믿음은 모세의 믿음이었고, 모세의 믿음이 군대를 지탱했을 뿐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믿음을 배워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됩니다.
결국 그들은 아말렉을 무찔렀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다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끝내 믿음의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오직 불평하는 악습만 되풀이했습니다. 어려움만 닥치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제 힘으로 발버둥 치다가 지쳐 쓰러졌습니다. 그렇게 애를 쓴들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말렉을 보내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첫째, 불평하는 자들에게 아말렉을 보내어 정신을 차리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 모세가 손을 드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를 배우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겸손한 자가 듣고 기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겸손이란 내가 잘난 척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나는 지극히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도 못하고 하나님도 못하고 아무도 못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못 하실 줄을 여러분이 어떻게 압니까? 여러분이 세상의 기준입니까? 내가 못 해도 세상에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뛰어난 기술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세상 지식으로도 우리는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승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님을 알고, 승리를 통해 믿음의 길을 걷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이 우리 앞서 본을 보여주셨으니 우리는 그들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저 “나는 승리하는 교회에 속해 있다”라는 안일한 생각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광야에서 죽어간 자들처럼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믿음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여러 번 참아주실 수 있지만, 기회가 무한정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홍해에서의 불평, 마라에서의 불평, 신 광야와 르비딤에서의 수많은 원망을 참아주셨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믿음이 없이 두려움과 불신에 빠져 있다면 결국 광야에서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리라
아말렉은 누구입니까? 에서의 후손입니다. 이스라엘은 누구입니까? 야곱의 후손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한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였습니다. 하나는 저주를 받았고, 하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사람 안에 두 가지 세력이 존재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는 아말렉의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세력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입니다. 반면에 에서는 칼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자였습니다. 에서의 저주가 가장 깊이 대물림된 자들이 바로 순전히 육신에 속한 아말렉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평생 아말렉과 싸운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 안의 영에 속한 부분과 육신에 속한 부분이 서로 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귀신의 싸움이 아닙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베드로나 열두 제자에게도 지극히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육신의 악한 행실을 쳐서 복종시키는 싸움은 매우 치열합니다. 이토록 치열한 싸움임에도, 하나님은 연약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오늘날 우리가 성령을 힘입어 육신의 행실을 죽여야 하며, 우리의 육신과 정욕은 반드시 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부정적인 생각, 늘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완고한 태도를 꺾어야 합니다. 온갖 불평을 일삼으면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육신을 따라 살다 보면 아말렉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아말렉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관문을 넘어서지 못하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안에 아직 얼마나 많은 아말렉과 육신의 소욕이 남아 있습니까?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대로 아말렉과 싸운다는 것은 바로 이 육신과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육신을 죽이는 싸움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첫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여호수아가 이겼습니다. 여호수아 자신의 힘으로 싸운 것이 아니라 그저 순종하여 나아갔을 뿐입니다. 이 싸움은 영적 전쟁입니다. 아말렉 배후의 영은 마귀이며,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천군 천사가 개입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승리는 영적 세계에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얻어집니다. 천군 천사가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면 마귀나 육신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령을 의지하여 우리 안의 육신과 아말렉을 쳐서 죽여야 합니다. 이것은 영적 전쟁이므로 결코 육신의 수단과 인간적인 지혜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 전쟁은 오직 믿음으로 치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연약하기에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승리해 주셔야 합니다. 이러한 중심을 가질 때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의지하다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몇 번 패배했을지라도, 오늘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권면해 드립니다. 방언으로 깊이 기도하십시오. 방언으로 충분히 기도하면 심령에 하늘의 능력과 힘이 공급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영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과 깊은 비밀을 나누며 힘을 얻게 됩니다. 오늘 일어나 영적 승리를 쟁취하십시오. 그러면 게으름이나 육신의 정욕, 어리석은 생각들이 쉽게 해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할 때 그분은 반드시 여러분을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승리의 깃발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모세처럼 손을 들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육신의 행실을 죽이십시오.
우리 안에 육신의 연약함이 남아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십니다. 손을 들고 담대하게 오직 그분만을 신뢰하십시오.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비록 승리하는 군대 같지 않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으로 하여금 아말렉을 이기고, 불평과 게으름과 육신의 정욕을 넉넉히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나태하고 불평투성이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이 필요했습니다. 출애굽도, 홍해를 건너는 것도, 마실 물과 양식을 얻는 것도, 아말렉을 물리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승리한 후에는 육신의 악한 습관과 불평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시라는 고백은 모세의 평생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르비딤에서 아말렉을 물리치며 모세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호와는 영원한 승리의 깃발이십니다. 직장이나 가정에 문제가 많습니까? 영적 전쟁을 선포하십시오. 여러분에게는 이 승리의 깃발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대열에서 이탈하지 말고 하나님의 군대를 따르십시오.
우리 안의 아말렉과 같은 육신의 악습은 영혼을 파멸로 이끕니다. 아말렉은 여러분을 무너뜨리려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영적 전쟁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육신의 싸움을 하겠습니까? 아말렉은 제 손의 칼을 의지해 사는 자들의 전형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힘만 의지하다가 아말렉의 편에 서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승리가 절실히 필요한 자들입니다. 우리 자신의 행위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주님만이 나의 승리의 깃발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나아갈 뿐입니다. 내가 온전히 변화되고 의로워져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그릇된 신학은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율법적 행위를 강조하는 틀에 갇히면 아무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중병에 걸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행위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을 때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닙니까? 그런데 왜 다시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여 율법의 저주 아래로 들어가려 합니까? 행위와 율법을 의지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입니다.
아브라함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믿음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온전해서가 아니라, 모세가 손을 들고 하나님의 군대가 싸워주셨기에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행위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부족할수록 더욱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탓하지 않으시고, 그 깊은 수렁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승리하게 하십니다. 얼마나 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평생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십시오. 연약할 때 도우신 주님 앞에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날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덧입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며 승리의 깃발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연약할지라도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십시오. 모세처럼 승리를 선포하십시오. 이것은 영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승리의 기초입니다
오직 믿으십시오. 수없이 하나님을 실망시켰을지라도 이제는 돌이켜 믿음으로 서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의 전철을 밟지 마십시오. 그들은 수많은 은혜를 경험하고도 두려움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싸우는 줄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믿기만 하면 승리합니다. 우리 힘으로 싸우면 패배할 뿐입니다.
왜 삶에 열매가 없고 실패를 거듭합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이며, 제 손의 칼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삶의 방식을 바꾸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사십시오. 나의 부족함에 얽매이지 말고, 여호와가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심을 굳게 믿으십시오. 이 깃발을 높이 들 때 주의 천군 천사가 우리 앞서 싸우실 것이며, 반드시 승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