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전할 말씀의 제목은 “금송아지의 영”입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라는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입니다. 영적 세계에 대해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더 깊이 알고, 마귀의 궤계 또한 더 분명히 분별하기 위함입니다. 영적 세계 첫 번째 강의로, 우리는 이 금송아지의 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예로부터 악령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무너뜨려 온 이야기는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오늘날의 보이스피싱처럼 사기꾼이 정말 많습니다. 며칠 전 한 자매님이 십여만 위안을 사기당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또 육십여만 위안을 사기당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느냐고 했습니다. 가진 돈을 다 쥐어짜도 갚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입니다. 사기꾼의 수는 하늘에 있는 악령의 수와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수많은 악령의 유혹에 직면하게 됩니다.
악령은 결코 여러분의 입을 억지로 벌리지 않으며, 여러분의 손을 묶어 놓지도 않습니다. 악령은 여러분을 속인 뒤, 여러분 스스로 선악과를 따 먹게 만들고,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를 망치는 것을 지켜볼 뿐입니다. 이 악령들 가운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금송아지의 영입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이를 온전히 다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어쩔 수 없이 제가 금송아지의 영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이라도 전하고자 합니다.
이전에 ‘늙은 말(老马)’에 대해 나눈 적이 있고, 지금은 금송아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누가 더 크고 누가 더 대단할까요? 며칠 전 몇몇 동역자들과 한참 토론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소가 더 큰지 말이 더 큰지는 여전히 연구 중이지만, 악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키고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사역할 때 귀신이 말을 하기 시작한 적이 있습니다. 녀석이 말하기를, “우리 대장이 나를 보낸 건 너희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 여기서 패배했는데 돌아가서 보고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녀석이 “차라리 네 손에 죽는 게 낫지, 돌아가고 싶지 않다. 돌아가도 죽고 여기 남아도 죽으니,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더군요. 귀신조차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을 압니다.
나중에 보니 이 악령은 참 흥미롭게도 도전을 아주 좋아합니다. 사실 녀석도 참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 우리 쪽으로 보내졌다가 우리에게 철저하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짓밟혔지만, 화인명정신학(중국인 사명 신학) 진영에 와서 한 바퀴 둘러보고 갔다는 것 자체를 돌아가서 영광으로 여길 정도입니다. 이 악령들을 이기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는 화인명정신학에서 매우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목사님, 저는 아직 승리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승리하지 못했다는 것도 핑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광야에서 죽은 백성들은 모두 승리하지 못한 백성들이었습니다. 사람이 승리하지 못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승리’라는 이 두 글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형제자매들은 간증할 때 “저는 승리하는 교회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다 보니, 교회의 이름 자체가 어느덧 승리하는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여러분은 반드시 금송아지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금송아지의 관문을 넘지 못하면 이 단계에서 광야에 쓰러져 죽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약속의 땅에 들어간 자들은 어떨까요?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도 금송아지를 마주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서든 약속의 땅 안에서든 시체가 들판에 가득 널브러지듯 쓰러지는 자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 속한 논리가 너무 강하고, 하나님께 속한 체계가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걸핏하면 속아 넘어갑니다. 돈 좀 뜯기는 것은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성적으로 사기를 당하고, 목숨을 빼앗기며, 장기까지 털립니다.
이 시대의 이야기들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앞뒤 좌우에 있는 이야기들만 보아도 충분합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가지면 세상에서도 속고, 영계에서도 속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속해 있으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잘 살 수 있다면 축하할 일이지만, 실상은 엄청나게 사기를 당할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속습니까? 바로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일을 꿰뚫어 본다면 어떻게 속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승리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승리하지 못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승리할 줄 알아야지요! “목사님, 어떻게 해야 승리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를 세우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운 것이 온통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라면 꿈도 꾸지 마십시오. 반드시 속게 됩니다. 재물을 털리고, 몸을 빼앗기고, 목숨을 잃고, 장기까지 털립니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참한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교회에 파마머리를 화려하게 한 예쁜 교인 몇 명이 찾아왔습니다.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교회에 마케팅 영업을 뛰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목사는 이 두 사람이 자기를 세계적인 유명 목사로 만들어 주겠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 목사가 되어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저는 정말 세계적인 유명 목사가 되어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그 교회의 일부 형제자매들이 우리 쪽으로 왔습니다. 우리에게는 먹을 영적 양식이 있고, 우리는 양육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그들이 와서 훌륭한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 목사는 세계적인 유명 목사가 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 어떻게 양육할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 모든 이야기는 그들이 제게 들려준 것입니다.
세계적인 유명 목사가 되었습니까? 금송아지를 하나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전통적인 이론을 내세우며 “많은 사람이 선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자기 혼자만 목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목사의 권위를 대단히 중시하여 자기 말만 통하고 다른 사람의 말은 통하지 않게 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선생이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헌금을 걷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송아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한참 헛소리를 늘어놓더니 결국 만들어 낸 것은 금송아지였습니다.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어떤 목사들은 교인들의 뜻에 따라 교회를 건축하고,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며, 교인들에게 떠밀려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 결과 교회는 ‘가정 제일주의’로 치닫습니다. 언제부터 가정 제일주의라는 게 있었습니까?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알콩달콩 자기들끼리 잘 사는 것에만 매몰되어, 교회는 결혼정보업체가 되고 부부 관계를 개선하는 상담소로 전락했습니다. 그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까? 그것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성경에서 그런 것을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도대체 어디서 굴러온 성경 구절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결과 교회 안은 보험 파는 사람, 건강보식품 파는 사람, 다단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다른 교회에 다니던 한 자매님이 우리 가운데 왔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구역장(소그룹 리더)에게 사역해 달라고(기도받으러) 가지 않습니까?” 그녀가 “갔었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럼 그가 어떻게 사역해 주던가요?”라고 물으니, 건강식품을 소개해 주더랍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깟 작은 일조차 해결하지 못하신다면 어찌 예수 그리스도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목사는 자기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교인들을 현혹하고, 아주 그럴듯한 논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서 이 금송아지를 가리켜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것이야말로 가증한 일입니다! 무지한 백성들이여, 지금 당장 금송아지의 거짓말에서 벗어나십시오. 더 이상 금송아지를 믿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오직 하나님만을 믿으십시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경을 깊이 상고해야 합니다. 제가 전하는 말에 오류가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저는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 헌금을 긁어모으고 싶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와서 헌금을 내밀어도 저는 받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헌금을 걷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곳이고, 모든 사람이 축복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곳이지 사업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선지자가 말하기를, 유럽인들은 교회를 하나의 ‘전통’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전통 따위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인들은 교회를 하나의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 기독교 신앙 안에 있는 그 황당무계한 것들과 금송아지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영광을 보게 해야 합니다!
교인이 목사를 옭아매고, 목사가 교인을 옭아매며 안에서 온갖 분란을 일으킵니다. 교인이 목사를 옭아매는 것은 자신들의 집사 직분을 지키기 위함이고, 어떤 교인은 자신의 선지자적 위치를 지키기 위해 목사를 옭아맵니다. 우리 가운데는 그런 짓을 일절 하지 않습니다. 그런 짓을 하고 나면 다들 명예와 이익만 좇게 됩니다. 화인명정신학이 믿는 바는 한 가지입니다. 사람의 기쁨을 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기어 나아가며, 하나님의 진리를 점차 깨닫고 영계의 운행 법칙을 명확히 알아가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아론은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을 읽어 보셨습니까? 백성들이 말했습니다. “모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으니 우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라.” 그러자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만들 게 없어서 하필 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요. 모세가 내려와 레위 사람들을 이끌고 그 자리에서 금송아지를 따르던 교인 삼천 명을 쳐 죽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금송아지 아래의 핵심 주동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왕위를 주셨는데, 그는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을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만약 그가 이것을 단순한 금송아지라고만 했다면 그리 심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금송아지를 만들고는 그것을 가리켜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가증스럽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교회가 교회의 간판을 걸어 놓고 금송아지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근본은 결국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가?’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것들을 위해 산다면 수많은 간판을 내걸 수 있고 여러분의 가판대를 그럴싸하게 꾸밀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에 따라 그 대가를 지불합니다. 이 말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왜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큰 대가를 지불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것을 위해 살기 때문이며 이것이 저의 목숨이고 사명(命定)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가정을 위해 산다면 가정이 여러분의 금송아지가 됩니다. 여러분이 사업을 위해 산다면 사업이 여러분의 금송아지가 됩니다. 겉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소용없습니다. 자녀를 위해 살면 자녀가 금송아지가 되고, 사랑을 위해 살면 사랑이 금송아지가 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을 끌어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뜻과 욕망을 억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교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건강식품을 파는 사람은 “이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라고 말하고, 의사를 소개해 주면서 “이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게 사역(기도)을 받으러 와서는 자녀 이야기, 가정 이야기, 사업 이야기, 돈 이야기만 늘어놓고 정작 우리 하나님은 없습니다. 다른 것은 하나도 내려놓지 못하면서 하나님만은 쉽게 내려놓으니, 얼마나 가증스럽습니까? 어디서 그렇게 문제가 많은지 늘 문제투성이입니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맙니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면서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죄를 지어 스스로 진노를 쌓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하겠습니까?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 패망의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핵심 이익만 바라보는 짓을 언제쯤 끝내겠습니까? 저는 이 패망의 길에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며, 이제부터는 다시는 여로보암처럼 행하지 말고 금송아지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핵심 이익이 진정 무엇인지 점검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핵심 이익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은 분명 금송아지입니다. 여러분의 핵심 이익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해 놓고, 하나님께서 맡겨 다스리게 하셨다는 둥 온갖 핑계를 댑니다. 그러나 그런 핑계로는 가릴 수 없습니다. 종이로 불을 감쌀 수 없듯이, 여러분 내면의 얄팍한 술수를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내면의 핵심 이익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가 왜 사명(命定)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목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 돈을 벌고 싶지도 않으며, 그저 안락하게 잘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여, 온전히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기 위함이니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입니다.
어제 한 동역자가 자기 교구의 소상공인들에 대해 나누었는데, 다들 똑같은 질문을 한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십일조와 헌금을 드렸는데 왜 하나님은 아직 저를 축복해 주지 않으실까요? 왜 제 사업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들으면 참으로 거북합니다. 여러분의 귀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들린다면 여러분도 그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귀에 거북하게 들리는 이유는 제가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일까요? 그의 핵심 이익은 자신의 작은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산다면, 하나님의 공급하심은 그깟 작은 사업보다 훨씬 풍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온통 자기 사업에만 쏠려 있습니다. 금송아지입니다. 사업이 그의 핵심 이익이기에 거래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나아오는 것입니다.
저는 사업하는 사람들에 대해 특유의 시각, 어쩌면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사업가들은 돈을 버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법니까? 거래를 통해서 법니다. 모든 것이 거래이고 모든 것이 이익의 계산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익의 계산이 옳습니까?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별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덧씌운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목사님 기준대로라면 어떻게 살아갑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제 기준대로 하면 왜 살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공급자이시며, 하나님은 나의 승리의 깃발이시며,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이시요 나의 치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어찌 살아가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 안에서는 사업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엮여서 사업하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서 사업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습니다.
사람은 수많은 우상을 참 잘 만들어 냅니다. 신을 만들어 무엇을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금송아지입니다. 소는 대단히 부지런하고, 착하며, 똑똑하고, 일도 잘하며 감정도 있습니다. 잡으려고 하면 눈물을 흘립니다. 소는 참 대단합니다. 밭도 갈고, 가치를 창출하며 도덕적으로도 고결해 보이지만, 결코 신은 아닙니다. 그저 사람의 뜻일 뿐이며, 사람의 핵심 이익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소는 대단히 큰 미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마지막 패망을 사람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왜 양을 쓰지 않았을까요? 양은 밭을 갈지도 못하고 일도 못 하기 때문입니다. 월가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다들 그들을 우러러보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금송아지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우리는 베드로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여로보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 말씀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열왕기상 12:25-31)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을 주옵소서. 하나님, 마귀의 궤계를 꿰뚫어 보게 하시고 주의 행하심을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마음눈을 열어 주셔서 만물이 주께로부터 말미암았음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더하사 주의 진리를 더욱 깊이 알게 하시고, 주 안에 얼마나 풍성한 은혜가 있는지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이 금송아지의 궤계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에서 벗어나 주를 의지하여 살며 주를 위해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도우사 승리로 이끄시고 주님의 승리하는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여로보암은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었으며 다른 많은 사람과 견줄 만했습니다. 그는 솔로몬 수하의 유능한 인재였습니다. 그 청년이 매우 총명하여 솔로몬이 보고는 젊은 나이에 노동과 부역을 감독하는 장관으로 삼아 중용했습니다. 훗날 솔로몬이 범죄하자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을 만나 열 지파는 여로보암에게 돌아가고 두 지파는 다윗과 솔로몬, 르호보암 가문에 남겨질 것임을 분명히 전했습니다.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의 말을 듣고는 다윗성의 무너진 곳을 수축하는 과정에서 솔로몬을 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이미 왕이 된 것처럼 여긴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다윗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습니다.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일을 꾸몄습니다. 결국 솔로몬이 그를 죽이려 하자 애굽으로 도망쳤습니다.
여로보암이 애굽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소를 숭배하는 곳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소는 대단히 훌륭한 이미지, 좋은 ‘스펙’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소의 이미지가 얼마나 좋습니까? 소가 가진 형상이 아주 긍정적으로 구축되어 있었기에 애굽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숭배했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 여로보암이 돌아왔고, 그때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이 르호보암은 참 악했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역을 시켜 궁전을 짓게 하고 인프라 공사를 끊임없이 시켰기에 백성들은 오랫동안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그의 아버지보다 더 악하여 백성들에게 더 혹독한 노역을 강요했습니다.
백성들에게 가혹한 노역을 강요할 때 누군가 총대를 메고 반역을 일으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백성들은 애굽에서 여로보암을 불러왔고, 여로보암은 야당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장로들을 이끌고 르호보암 앞에 나아가 협상했으나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이 어리석었던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결국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우리가 왜 너를 위해 고역을 해야 하느냐?”라며 유다 왕 르호보암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다른 열 지파의 족장들과 장로들의 추대를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셔왔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까?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여로보암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능력이 출중해서야. 선지자 아히야가 하나님께서 열 지파를 내게 주실 것이라 말했던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 하지만 실상은 이스라엘 족장들과 장로들이 나를 모셔와 왕으로 삼은 것이지. 내 화려한 이력을 높이 산 거야. 내가 솔로몬 밑에서 일도 잘했고, 총명과 재능이 뛰어났으니까.’ 그러면서 아히야의 예언은 까맣게 잊고 모든 것을 자기 능력으로 돌려버렸습니다.
왕이 되고 나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는 능력이 출중했고 정치경제학을 꽤 잘 배웠습니다. 비록 그 시절에 자본론을 읽지는 않았겠지만, 그 시대 나름의 정치경제학이 있었습니다. 정치와 경제, 국가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많이 배웠을 것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 바로가 그를 후대하며 치국의 이념 등을 논했을 것입니다.
이제 돌아와 왕이 되었는데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논리들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의 안에는 국가를 잘 다스리기 위한 정치경제학적 논리만 가득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 역시 나라를 잘 다스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나라가 자기 것이 되었으니까요. 만약 어느 날 여러분에게 한 지역을 다스리라고 맡겼다면 그 지역이 여러분의 집이 된 것과 같고, 한 도를 다스리게 했다면 그 도가 여러분의 것이 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는 온갖 지식을 배웠지만 바로 그 순간 두려움과 염려가 엄습했습니다. 무엇을 염려했을까요? ‘이 나라를 과연 지켜낼 수 있을까?’ 자리에 앉으니 자리에 따른 계책을 도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약 이 나라가 다시 르호보암에게 돌아간다면 내 왕위는 사라지지 않겠는가?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의 마음은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나를 죽일 것이다.’
사상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십시오. 르호보암 쪽 제사장들에게 사상 교육을 받으면 백성들의 마음이 온통 예루살렘으로 향할 텐데, 그렇다면 이 나라를 어떻게 통치하겠습니까? 여러분, 여로보암이 고민한 내용은 우리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이 연구 프로젝트를 어떻게 끌고 갈까? 내가 이끄는 팀원들의 마음이 경쟁사로 쏠려 있다면 어떻게 일하겠는가?’ 여러분 역시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는 밤낮으로 고심하며 계책을 세웠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속한 논리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금송아지의 영이 찾아옵니다. 고심 끝에 꿈에서 두 마리의 금송아지가 나타나 “너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는 제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여로보암이 속으로 깊이 고민하다가 결국 두 개의 금송아지를 부어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왜 돼지 새끼 두 마리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왜 토끼 새끼나 호랑이, 늑대를 만들지 않고 두 마리의 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영계의 계시였기 때문입니다. 사람 안에 어떤 논리 체계가 있느냐에 따라 그에 맞는 영이 끌려오는데, 그 결과 찾아온 영이 바로 금송아지의 영이었습니다. 금송아지의 영이 그에게 “나를 위해 금으로 형상을 만들라”고 속삭였을 것입니다. 제가 왜 이것을 ‘금송아지의 영’이라고 부르겠습니까? 여기에는 분명 깊은 영적 원리가 있지만 우리가 아직 충분히 다 알지 못할 뿐입니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열왕기상 12:28)
백성들은 정말로 가서 숭배했습니다. 백성들은 왜 숭배했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평범한 백성들의 목적은 그저 먹고사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먹고사는 것 외에 무엇을 신경 쓰겠습니까? ‘누가 통치하든, 여호와 하나님을 어디서 예배하든 무슨 상관인가?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든 말든 뭔가 하나 세워 두면 가서 절하면 그만이지. 왕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이것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는 ‘지록위마’의 이야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저들이 사슴이라 하면 사슴이고, 말이라 하면 말인 것이며, 무엇이라 부르든 입도 뻥끗하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백성들은 일상을 살아가기에 ‘여기서 예배하는 것이 훨씬 편하네. 거리도 가깝고 멀리 갈 필요도 없고, 국경을 넘는 비자를 받을 필요도 없으니 좋네’라고 여겼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물을 드리려면 수많은 양과 비둘기를 끌고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 세관을 통과하기가 얼마나 까다롭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성전에서 예배하려고 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려다가는 큰 낭패를 보겠구나!’ 그러니 한편으로는 여로보암의 통치 수단으로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사상을 통일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백성들의 입맛에도 맞아 백성들도 개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 무지는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온통 영적 무지뿐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어디론가 흩어져 버렸고 열 지파는 완전히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게 오늘날의 덴마크가 단 지파가 건너가 세운 나라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제 생각에는 황당한 소리입니다. 이 사건은 여로보암의 통치 도구로서 백성을 우롱한 것이었고, 백성은 무지하여 자신의 편의와 선호를 만족시키며 마음에 위안을 얻었을 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안 섬겼다고 말하지 마라. 내가 기도하지 않았다고, 제사 드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라.’ 그러나 실상은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린 것이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참으로 치명적입니다! 여로보암은 제사장을 세우고 절기까지 정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루살렘에 있는 것은 우리에게도 다 있어야 한다’며 짝퉁 신을 만든 것입니다. ‘남들에게 있는 건 우리도 다 있고, 남들에게 없는 것은 내가 더 추가하겠다.’ 얼마나 가증스럽습니까? 성경은 이미 구약 시대부터 선지자의 예언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인명정신학은 이 점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후에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는, 여로보암이 제단에 올라가 분향하려 할 때 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난 사건입니다. 그가 손을 펴자 그 하나님의 사람은 그것이 죄임을 선포했습니다. 여로보암이 그것을 용납할 수 있었겠습니까? ‘내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애써 짜낸 계책인데, 선지자 네가 말 한마디로 다 망쳐 놓겠다는 거냐? 내 백성이 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여호와를 경배하면 내가 이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란 말이냐?’
그가 손을 내밀자마자 손이 말라비틀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강력한 경고의 신호였습니다. 이 짓을 계속하다가는 결코 온전히 죽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경고였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신호를 받지 않은 형제자매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겪어 보았습니다. 몇 번이고 겪었음에도 깨달았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손이 마르자 그는 다시 그 하나님의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손은 회복되었습니다. 손이 회복되었다고 그가 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여전히 금송아지를 숭배했습니다. 이 관문을 넘어서지 못했고,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금송아지를 섬긴 것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그의 아들이 병든 일이었고, 하나님은 그에게 또 한 번 신호를 주셨습니다. 여로보암은 나름 머리를 굴려 자기 아내를 변장시켜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냈습니다. 선지자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 선지자는 아이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집으로 돌아와 문지방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가 죽었습니다. 즉,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자는 재앙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금송아지를 숭배하여 재앙을 겪고도 계속 숭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미 금송아지의 영에 단단히 옭아매였기 때문입니다.
금송아지의 영은 곧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입니다. 금송아지는 하나의 거짓말에 불과하지만, 금송아지를 숭배하게 만드는 그 배후의 악령은 대단히 크고 강력합니다! 그 배후의 악령이 ‘늙은 말’인지 사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선은 금송아지의 영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과 재앙을 겪을 때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금송아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것은 대단히 파괴적입니다. 우리는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금송아지는 사람이 만든 신입니다.
금송아지의 영을 분별하라
금송아지의 영은 어떻게 역사합니까? 사람 자신의 핵심 이익,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바로 그것을 통해 침투합니다. 자기가 집착하는 그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덧씌우는 것, 이것이 바로 금송아지입니다. 금송아지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분의 핵심 이익, 예컨대 여러분의 가정이나 왕위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중시할 때 온갖 하나님의 뜻을 갖다 붙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첫 번째 가정이었으나 그 첫 가정도 타락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 역시 온전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데 있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음을 알지 못하면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기 시작하고, 결국 영적 무지에 빠집니다. 여로보암이 백성을 속였든 백성이 여로보암을 속였든, 아론이 백성을 속였든 백성이 아론을 속였든 간에 그 속에는 온통 그럴듯하고 아름다운 거짓말뿐이었습니다.
왜 선량하고 아름다운 거짓말일까요? 소는 착하고 부지런하며 생산력의 상징이고 재물을 창출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재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속성이 금송아지의 영이 역사하는 방식이 됩니다. 여러분이 다른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대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십시오. 다른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한다면 여러분의 슬픔과 고통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기도를 받으러 왔는데 근심과 고통이 가득하다면, 저는 여러분이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분명히 말할 것입니다.
영계가 운행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안배하시는 경우입니다. 제 생각에 금송아지 사건은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미혹하시기 위해 금송아지의 영을 보내신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 후반부에서도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시기도 했습니다. 사실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늙은 말이든 금송아지 배후의 존재든, 하나님께서 쓰레기를 걸러내어 유황 불못에 던져 태우시고 보배를 구별해 내시기 위해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화인명정신학 체계에서는 오직 보배만을 취하며 쓰레기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우리 중 어떤 형제자매들은 저마다의 핵심 이익을 품고 찾아와 복을 받기도 하는데, 저는 그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금송아지를 품고 이곳에 와서 복을 받으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선량함, 근면함, 유능함과 같은 속성이 있습니까? 분명히 있습니다! 금송아지 안에는 그런 요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게으른 것이 아니라 꽤 부지런합니다. 그리하여 사람을 속이는 궤계가 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금송아지에게 가서 절한 뒤에 효과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확실하게 효과가 있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돈을 몹시 사랑한다면 우리 교회에 오지 마십시오.
제가 이 말을 하면 떠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나, 떠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사람들을 잔뜩 모아다 무엇을 하겠습니까? 사명(命定)도 없고 무엇 하러 왔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금송아지를 품은 마음을 가지고 오면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지 모르지만, 결국 하나님은 여러분을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물론 다른 곳에 가서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이 당장은 더 잘 통할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숭배했을 때 잘 풀렸습니까? 그들이 구했던 것은 부자가 되는 것, 경제가 살아나는 것, 집값이 오르는 것 등 모두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도록 문수보살을 찾아가 절하고는 온갖 악령을 끌어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생이 잘 풀릴 수 있겠습니까? 절대 잘 풀릴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금송아지의 영의 억압 아래 묶여 있습니다. 이 금송아지의 악령을 꿰뚫어 보는 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왕위든 사업이든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것들을 자신의 핵심 이익으로 삼고, 그 핵심 이익을 지키려 하면서도 주님을 믿고 싶어 하니 결국 금송아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금송아지의 영을 대적하라 (1): 자신의 핵심 이익을 내려놓으라
화인명정신학이 다소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이단이 아니며 이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핵심 이익을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이 진정으로 바라보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핵심 이익을 지키려 한다면 신을 만들어 내고 온갖 아름다운 핑계를 대겠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자입니다. 제자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내려놓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부모, 아내, 자녀, 형제, 자매, 집, 전토를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이것들을 버려야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단순한 신자에 머물겠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원하십니다.
사람의 핵심 이익을 내려놓지 않으면 반드시 금송아지의 영에게 억압당합니다. 왜 두려워합니까? 자신의 핵심 이익에 손해가 갈까 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여러분의 핵심 이익이라면, 그것이 바로 사명(命定)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핵심 이익을 위해 달리고 있으며, 우리 역시 우리의 핵심 이익을 위해 달립니다. 다만 우리의 핵심 이익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 기업, 가정, 사업, 직장, 학업, 심지어 왕위나 직분까지도 우리의 핵심 이익이 되기 쉽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눈앞에서 그런 것들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것들을 의지하여 산다면 그것들은 없어서는 안 될 우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것들을 의지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들에 그다지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핵심 이익을 내려놓는 것이 금송아지의 영을 대적하는 첫걸음입니다. 나의 핵심 이익이 하나님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핵심 이익이 헌금이라면, 수많은 핑계를 대고 우상들을 만들어 형제자매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당신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착각하겠지만, 실상은 많은 이들의 생각을 가스라이팅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가운데는 그런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도덕적인 옭아맴은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진리로 자유케 되는 역사만 있을 뿐입니다!
금송아지의 영을 대적하라 (2):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음을 알라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비극이 시작됩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일군 것이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많은 기업가들이 사업을 시작할 때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어제 한 영상을 보았는데,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이생에 창업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참 그럴듯한 말입니다. 왜 죄를 지었다고 하겠습니까?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창업이란 마치 황무지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적고 너무나 힘겨워, 기쁨이란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됩니다.
마윈이 한 말과도 비슷합니다. “사람은 통장에 수백만 위안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지, 수천만 위안이나 몇억 위안이 생기면 몹시 괴롭다.” 저에게 갑자기 1억 위안을 준다면 저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모를 것입니다. 관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투자를 안 하자니 가치가 떨어지고, 투자를 하자니 다 날릴까 봐 두렵습니다. 온종일 이런 일로 골치를 앓는 것입니다.
만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묻겠습니다. 여로보암의 왕위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여로보암의 왕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그를 모셔와 왕으로 삼은 것입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면 왕위를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왕위를 얻었다면 왜 그것을 지키려고 안달합니까? 하나님께서 그 왕위를 지켜주실 수 없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그 왕위가 여러분의 핵심 이익이 되었습니까? 그것이 핵심 이익이 되자 결국 금송아지의 영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금송아지라는 술수로 백성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인 것 같았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을 속인 것이었고 결국 묻힐 곳조차 없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왕위 때문에 자기 자식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였습니까? 왕위 때문이었습니다. 왕위가 목숨을 지켜주지 못하며, 사업도 목숨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왕이 되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어야 왕 노릇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일입니다.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을 확립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세우지 못하면 대단히 고달프게 살아가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공급하시며, 그것은 여러분의 능력으로 얻어낸 것이 아닙니다. 소처럼 부지런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 봐야 한 마리 소에 불과하며, 늙으면 도살당해 고기가 되는 운명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공급하심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조차 못 하신다면 어찌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능력 중심의 사고방식은 모든 것을 자기가 벌어들였다고 믿는 것입니다. 어떤 사업가가 “내가 번 1원 한 푼 모두 내 피땀으로 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정부가 들으면 언짢을 일입니다. 정책적 지원이 없었다면 벌 수 있었겠습니까? 덩샤오핑 주석의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당신에게 차례가 돌아갔겠습니까? 멍청하게 굴지 마십시오. 많은 것들이 결코 여러분의 능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능력이 여러분을 감옥으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금송아지의 영을 대적하라 (3):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라
여로보암은 자기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생의 삶을 그토록 무겁게 여겼을까요? 그럴 필요가 있었습니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 돈, 재산, 집, 자녀, 차, 사랑, 가정, 직위, 왕위 등 이생의 온갖 일에 고정되는 순간 끝장입니다! 이런 것들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핵심 이익이 자리 잡게 되고, 자신의 능력과 두 손을 의지해 살아가며 저주 가운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영생만이 가장 실재적인 것이며 이생의 것은 헛되고 헛되며 안개와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뜬구름 같다는 것을 알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립니다. 그 내면의 체계가 이생의 논리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이생과 영생의 논리 체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제가 마태복음을 강해하며 두 나라와 두 가지 논리 체계에 대해 전한 것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를 세우면 핵심 이익이 하나님이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를 세우면 자신의 핵심 이익을 내려놓게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를 세우면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를 세우면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를 세우면 이생이 헛되고 헛됨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생이 헛되고 헛됨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사명(命定)의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제가 이 말을 수없이 반복했음에도, 여러분은 일만 생기면 이 진리를 잊어버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다시 이생을 꿰뚫어 보곤 합니다.
저와 끊임없이 다투며 선악을 분별하는(识别善恶) 사람들을 보면 모두 이생의 논리 체계에 갇혀 있습니다. 왜 귀신에게 억압당합니까? 이생의 논리 체계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생이 헛되고 헛됨을 확신한다면,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는 것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하지 않습니다. 감옥에 갇히는 것이 그리 대단합니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말에는 행간마다 이생의 논리 체계가 묻어납니다. “아이고, 이번 생은 망했어!” 망하긴 뭐가 망합니까? 이생은 본래부터 무너져 있는 것이며, 이생에서 대단한 것을 이룰 수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의지하여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를 세운 자이며,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삼지 않는 자입니다.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삼는 자는 자신의 핵심 이익만을 위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겪는 고난은 그날로 족합니다. 어떤 사람은 수십만 위안의 빚을 지고 갚지도 못하면서 “목사님, 왜 저를 동정해 주지 않으십니까?”라고 합니다. 제가 당신을 왜 동정합니까? 제 빚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남의 빚까지 신경 쓰겠습니까? 물론 저는 빚질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생의 것들 때문에 구멍을 파고 또 파며, 웅덩이 하나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또 다른 웅덩이에 빠집니다. 때로는 빠져나오기도 전에 웅덩이가 더 깊어집니다. 날마다 스스로 무덤을 파니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단순한 일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은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쉰 살이 다 되어 아이를 낳았습니다. 제가 그를 알았을 때 그는 환갑이 다 되었고 아이는 겨우 열 살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육은 뒷전으로 미루고 식당을 차리고 찻집을 열며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교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투자금을 모으더니 결국 사업이 망해 교인들에게 고소를 당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헛되고 헛된 것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사람은 이것이 헛됨을 알아야 하며, 더 나은 본향을 찾고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바로 ‘사명(命定)’이라 부릅니다. 살아가는 의미를 궁극적으로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 또한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어떻게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제가 죽은 후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실 것입니다. 저는 이생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싶지도 않고, 제가 세운 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것을 통제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실 것입니다. 저는 이생에서 살아가는 일들을 이미 다 꿰뚫어 보았기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형제자매들을 현혹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형제자매들이 영적인 지혜와 지식 안에서 끊임없이 자라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금송아지의 영을 분별하는 데 자라가고, 선악을 분별하는 영을 꿰뚫어 보는 데 자라가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을 얻어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로부터 중국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독특한 논리가 있었고, 교회를 세우는 데도 교회를 세우는 논리가 있습니다. 사람을 우매하게 만들어 속여 넘기면 다스리기는 쉬울 수 있고,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면 다스리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 화인명정신학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 곳입니다. 저는 지혜로운 사람이 다스리기 쉽고, 어리석은 사람이 다스리기 어렵다고 봅니다. 왜일까요? 어리석은 사람은 선대해 주면 자기를 해치려는 줄 알고, 이용해 먹으려 하면 자기를 돕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이용해 먹을 생각이 없습니다.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무엇 하겠습니까? 우리는 사람들을 지혜롭게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자들로 세우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지혜와 지식 안에서 끊임없이 자라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대해 주면 그들은 그것을 압니다. 만약 잘 대해 주는데도 자기를 해친다고 여긴다면 이곳에 오지 마십시오. 이곳은 당신에게 맞지 않는 곳입니다.
금송아지의 영을 대적하라 (4): 영적인 지혜와 지식을 얻으라
여러분은 “저는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영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라고 합니다. 영적인 지식이 없어 온통 세상적인 안목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핵심 이익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도 영적인 지식과 지혜가 없고, 금송아지가 여러분을 어떻게 망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지식은 어디서 옵니까? 제가 발명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성경에 기록해 두신 것입니다. 구약성경이든 신약성경이든 영원한 진리를 끊임없이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 진리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거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 안에 있는 사명(命定), 영원한 더 나은 본향을 추구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또한 악령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마귀의 궤계를 어떻게 간파하는지, 하나님을 힘입어 어떻게 승리하는지를 압니다. 사람이 영적인 지식과 지혜가 없다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승리할 수 없습니다. 왜 억압당하고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합니까? 저는 “목사님, 스스로 절제가 안 됩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저는 통제가 안 된다면서 왜 영적인 지혜와 지식을 배우려 하지 않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혜가 없고 지식이 없으니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이 있으면 타인의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 나의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 알게 되며, 그 내면의 논리 체계를 분석해 보면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논리 체계를 세운 사람들입니다. 직장도 내려놓을 수 있고, 사업도 내려놓을 수 있지만, 하나님만은 결코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어도 하나님만은 내려놓을 수 없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의 논리입니다. 지금까지 이 방식이 옳다는 것이 계속 증명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정말 그런 일이 있는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여긴다면, 관찰하고 배우며 다시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결국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며 영적인 지혜와 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요약
금송아지의 영은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집약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의지하면 사람은 반드시 재앙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수조 원짜리 기업이 무너지고, 또 다른 거대 기업이 무너지고, 또 다른 대기업이 무너집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어떤 대기업 총수가 사망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패망의 길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금송아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자 중에 어찌 잘된 자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우리 안에 진정 무엇이 담겨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고작 눈앞의 일들에 불과하다면, 그 모든 것은 곧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깊이 재고해 보기를 권면합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진 자들인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들입니다! 미련한 자들이 금송아지에게 절하다가 결국 스스로 어리석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