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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무엘하 9장 - 다윗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2023-07-21 39,954 撒母耳记下 撒母耳记下09章 撒母耳记下第九章 感恩的人 忠心的人 神所喜悦的人 聪明的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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撒母耳记下09章-大卫和米非波设
  • 1 大卫问说:“扫罗家还有剩下的人没有?我要因约拿单的缘故向他施恩。”
  • 2 扫罗家有一个仆人,名叫洗巴,有人叫他来见大卫,王问他说:“你是洗巴吗?”回答说:“仆人是。”
  • 3 王说:“扫罗家还有人没有?我要照 神的慈爱恩待他。”洗巴对王说:“还有约拿单的一个儿子,是瘸腿的。”
  • 4 王说:“他在哪里?”洗巴对王说:“他在罗·底巴,亚米利的儿子玛吉家里。”
  • 5 于是大卫王打发人去,从罗·底巴、亚米利的儿子玛吉家里召了他来。
  • 6 扫罗的孙子、约拿单的儿子米非波设来见大卫,伏地叩拜。大卫说:“米非波设!”米非波设说:“仆人在此。”
  • 7 大卫说:“你不要惧怕,我必因你父亲约拿单的缘故施恩与你,将你祖父扫罗的一切田地都归还你;你也可以常与我同席吃饭。”
  • 8 米非波设又叩拜,说:“仆人算什么,不过如死狗一般,竟蒙王这样眷顾!”
  • 9 王召了扫罗的仆人洗巴来,对他说:“我已将属扫罗和他的一切家产都赐给你主人的儿子了。
  • 10 你和你的众子、仆人要为你主人的儿子米非波设耕种田地,把所产的拿来供他食用;他却要常与我同席吃饭。”洗巴有十五个儿子,二十个仆人。
  • 11 洗巴对王说:“凡我主我王吩咐仆人的,仆人都必遵行。”王又说:“米非波设必与我同席吃饭,如王的儿子一样。”
  • 12 米非波设有一个小儿子,名叫米迦。凡住在洗巴家里的人都作了米非波设的仆人。
  • 13 于是米非波设住在耶路撒冷,常与王同席吃饭。他两腿都是瘸的。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엘하》 9장을 나누겠습니다. 9장의 내용은 비록 짧지만,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매우 예리합니다. 사실 《사무엘상·하》 전체는 몇몇 매우 중요한 인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인물은 늙은 엘리인데, 늙은 엘리와 사무엘 이 두 사람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두 번째는 사울과 다윗이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다윗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입니다. 왜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아는 것일까요? 요나단이 다윗을 보호해 주었을 때, 다윗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 아주 소중한 친구를 기억했습니다. 두 사람은 좋은 형제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동성애자라느니 다자성애자라느니 말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 수도 없고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 형제 같은 두 사람의 관계가 각별히 좋았다는 사실입니다. 동북 지방에서는 형제 사이가 유난히 좋으면 같이 목욕탕에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남방 사람들은 이에 익숙하지 않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지만, 동북의 풍습은 이렇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뜻은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가 서로 숨김이 없고 우애가 넘치는 각별한 형제이자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좋은 형제 요나단을 잊지 않았다

다윗과 요나단 이 두 사람은 마음이 서로 통했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얼마나 좋았을까요? 원래 요나단은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지만, 왕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 기름부음을 다윗에게 주셨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관계는 친구를 초월하고 이익을 더욱 초월하여,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평생에 요나단과 같은 좋은 형제를 얻는 것은 정말 불행 중 다행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이 죽은 후에도 여러분은 이 좋은 형제를 여전히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왕이 된 후 공무로 매우 바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형제 요나단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처럼 조그만 변호사가 되어 온종일 정신없이 바쁘고, 회계사가 되어 정신없이 바쁘며, 작은 사업을 운영하느라 더 정신없이 바쁜 것과 같지 않았습니다. 자기 일도 다 감당하기 바쁜데 어느 겨를에 좋은 친구, 좋은 형제, 하나님을 생각하겠습니까? 진작에 까마득히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다윗이 지나온 날들은 쉽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내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안정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친구 요나단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처음에 신경 썼던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헤브론에서 왕 노릇 할 때 사울의 집안과 자주 전쟁을 벌였는데, 요나단의 동생이자 므비보셋의 삼촌인 이스보셋과 아브넬이 다윗과 7~8년 동안 싸웠습니다. 그 와중에 요나단의 아들을 돌볼 시간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이스보셋은 요나단 아들의 숙부였으니, 다행히 이 숙부를 따랐기에 적어도 먹고 입는 것은 부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 후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도 다 다윗에게 귀순했습니다. 두 회사를 통합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입니다. 장부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지도자들을 세우고, 누가 재정부장을 맡고, 누가 도지사를 맡아 어느 도를 관할할 것인지 등을 정하는 복잡한 업무들로 정신이 쏙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조금 안정이 되자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왔고, 그 지역의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냈습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웃사가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 죽자 다윗의 마음은 오만 가지 감정이 뒤섞여 복잡했습니다. 다윗의 평생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성전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정을 찾자마자 그는 곧장 절친한 친구 요나단을 떠올렸고, 므비보셋의 근황도 알고 싶어 사울 집안의 종 시바를 불러왔습니다. 시바라는 인물은 대단한 자였습니다. 사울 집안의 재산을 그가 다 집어삼켰는데,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아들이 열다섯 명이나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그에게 아내가 몇 명인지 나오지 않지만, 아들은 열다섯 명이었습니다. 야곱이 네 명의 아내에게서 열두 아들을 낳았으니, 시바의 아내가 몇 명인지는 정확히 계산하기 어려워도 대략 다섯 명쯤은 되었을 것입니다. 시바가 불려 오자 다윗은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사실 다윗은 오직 좋은 친구 요나단의 아들에게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시바는 눈치가 아주 빨랐습니다.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사무엘하 9:3)

시바는 다윗 왕과 요나단이 매우 각별한 친구 사이임을 알았기에 곧바로 "요나단의 아들이 하나 있는데 다리를 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리를 절게 된 것은 당시에 떨어뜨려 다쳤기 때문입니다. 시바는 매우 영리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사울의 다른 후손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많은 재산을 탐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돈이 많았고 종 20명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여러분 집에 가사도우미 20명을 둔다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감당 못 합니다. 지금 수준으로 상하나 북경에서 가사도우미를 쓰면 한 명에 1만 위안이니, 20명이면 한 달에 20만 위안의 월급을 주어야 합니다. 5천 위안이라 해도 매달 10만 위안을 줘야 합니다. 시바는 대단히 똑똑하고 영악했습니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사무엘하 9:4)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시바는 사울 집안의 종인데, 어떻게 므비보셋을 남의 집에 가 있게 만들었을까요? 시바가 사울 집안의 토지를 독차지하고, 그 집안의 손자를 남의 집으로 보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마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다행이며, 혹은 시바 자신이 므비보셋으로 하여금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게 조치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지혜로웠습니다. 사실 시바에게 묻지 않아도 그의 정보망을 통해 이미 상황을 훤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시바에게 물은 것은 단지 절차를 밟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합니다. 다윗은 매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반평생 목숨이 요나단 덕분이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예비하셔서 요나단을 통해 그를 도우셨겠지만, 요나단은 그의 은인이 되었습니다. 요나단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을 뿐만 아니라 은인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일찍이 다윗에게 "후에 내 후손에게 은혜를 베풀겠다고 내게 약속하라"고 했고, 다윗은 하늘을 두고 맹세하며 약속했습니다. 다윗은 말한 대로 행했습니다. 말만 하고 행하지 않았다면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배은망덕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은혜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제 마음속 생각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리더들은 모두 충성된 분들입니다. 당시 교회가 매우 황폐했을 때, 어쩌면 제가 선포한 비전과 꿈이 너무나 아름답고 그림이 너무 거창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지금까지 저와 함께 걸어왔습니다. 이 8~9년의 세월을 함께 걸어온 것에 저는 참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그들을 섬길 때 성질을 좀 낼 때도 있었지만, 저는 참으로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듯 그들을 섬깁니다. 감사할 줄 알고 충성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 저자는 《사무엘하》에서 다윗이 행한 이 사소해 보이는 일을 기록했을까요? 정말 사소한 일일까요?

여기에는 다윗의 처세와 인품의 기본적인 스타일이 부각되어 있는데, 그 스타일이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매우 기쁘시게 하는 성품입니다. 어떤 이들은 나이가 어린데도 배은망덕한 마음은 매우 큽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배은망덕한 사람을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 불충한 사람도 미워하십니다. 여러분과 저도 이러한 것을 미워해야 합니다. 이런 것은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못 고칩니다. 제가 동역자들에게 나눈 적이 있습니다. "개가 똥을 끊을 수 없다. 한동안 먹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끊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변기에 쓸려 내려가 먹을 게 없어서 못 먹은 것일 뿐, 변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성격, 이런 속성을 가진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둘러볼 때마다 우리 형제자매들을 보면 저는 감사가 넘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잘 해냈든 못 해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하는 성품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섬기기를 하나님을 섬기듯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양육하는 사람들 중에 배은망덕한 사람을 만나면 각별히 주의해야 하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도 주의해야 합니다. 저는 효순(순종)이라고 하지 않고 효경(공경)이라고 부릅니다. 맹목적인 순종은 문제를 일으키고 덕을 세우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도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라면 제게는 배은망덕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분이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되기를 권면합니다. 부모 공경은 십계명의 제5계명이며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므비보셋을 불러와 그를 위해 최선의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을 위해 한 배려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되 보소서 주의 종이니이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사무엘하 9:5-7)

다윗은 왜 요나단의 아들에게 이러한 배려를 베풀었을까요?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그러한 은혜를 베풀었기에 다윗은 감사로 보답한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을 어떻게 대우했습니까? 첫째, 사울 집안의 밭을 모두 므비보셋에게 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므비보셋은 다리를 저는 사람이었기에 대신 농사를 지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울 집안의 종 시바를 배치했습니다. 비록 이 사람은 다소 탐욕스러워 스스로 부를 축적한 자였지만 말입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의 관리 능력이 다소 부족한 것을 보고 그에게 "너는 내 식탁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명하고, 시바와 그의 아들들로 하여금 므비보셋의 재산을 관리하게 했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을 대우하여 왕과 함께 식사하게 한 것은 대단히 큰 은혜였습니다. 어느 나라 정상이 방문하여 국빈 만찬으로 대접받고 함께 식사하는 것과 같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왕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말 한마디로 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이러한 보은 방식은 참으로 탁월했다고 봅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요나단의 아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다윗 왕이 왜 자신과 함께 식사하도록 배려했을까요? 집안의 사소한 잡일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함께 식사하게 한 목적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므비보셋으로 하여금 다윗의 명철함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은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보기 드문 탁월한 관리 인재였기 때문입니다. 매 식사 자리는 사실 배움의 장이었습니다. 다윗의 매 식사 자리는 틀림없이 국정을 논하고 처리하는 자리였을 것이며, 므비보셋은 곁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잘 들어야 했습니다. 다윗이 연회를 베풀어 접대하는 이들은 여러 왕들이었고, 므비보셋을 곁에 배석시켰습니다.

식사 중에 그들은 다윗에게 "어찌하여 다리 저는 사람을 우리와 함께 식사하게 하십니까?"라고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다윗은 "이 사람은 내 절친한 친구 요나단의 아들이며, 내가 그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함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지난날 요나단이 자신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풀었는지, 자신이 어떻게 보은하고자 하는지를 말한 뒤 이어서 그들과 정무를 논했을 것입니다. 사실 식사할 때 논하는 일들은 다 매우 중요한 일들입니다. 중국인들도 중요한 일은 대부분 식사 자리에서 협상합니다. 중국인과 이스라엘인은 매우 비슷하여, 함께 밥 한 끼 먹고 술 한잔 기울이면 일이 금세 성사되곤 합니다. 그러므로 므비보셋은 자기 집 종 시바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분별해야 했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시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자주 가르침을 구했어야 합니다. 시바가 므비보셋보다 똑똑했기 때문입니다. 종이 왕보다 똑똑하면 《전도서》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내가 또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 (전도서 10:7)

만약 여러분에게 대단히 똑똑한 부하가 있는데 여러분 자신은 매우 우둔한 상사라면, 감당하기가 몹시 힘들 것입니다. 통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가? 통제할 수 없다면 맡지 말아야 합니다. 훗날 시바는 므비보셋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므비보셋의 집안에서 그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습니다. 이번 장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다음 장에 나오듯, 므비보셋은 시바에게 농락당하고 허수아비가 되었으며, 다윗이 피난할 때 시바는 주인을 배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우리는 과연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날마다 다윗과 함께 있으면서도 지혜롭지 못하다면 그 얼마나 비극입니까? 다윗에게 "저는 잘 모릅니다. 저를 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하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 다윗의 집에는 스승이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입니다! 주인이 되어서도 지혜롭지 못하면 주인의 역할을 할 수 없고, 기업을 경영하면서 지혜롭지 못하면 관리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잘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할 수 있겠습니까? 상대방이 무엇 때문에 여러분을 위해 성실히 일하겠습니까? 속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속임을 당했다면 본인이 지혜롭지 못해서 당한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므비보셋은 실권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이 다윗 앞에서 보인 반응은 나름 지혜로운 듯 보였습니다.

그가 다시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사무엘하 9:8)

사실 이 말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다윗이 자신에게 이렇게 대우해 주는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 근원은 요나단과 다윗이 절친한 친구였다는 사실이지, 므비보셋 자신의 공로가 아닙니다. 죽은 개 운운하는 말은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감사할 줄 알고 지혜로우며 충성된 사람이라면, 다윗이 "내가 므비보셋 너를 보아 은혜를 베푼다"고 했을 때 "저는 죽은 개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제가 제 아버지의 아들인 것이 참으로 다행이며 감사합니다. 제게 이런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가 왕과 생사를 함께한 사이셨기에 이제 제가 왕의 아들이 되겠습니다!"

죽은 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왕께서 제 아버지를 기억하시고 제게 은혜를 베푸시니, 이제 제가 왕 앞에서 아들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반응입니다. 절대로 "저는 죽은 개요, 이토록 우둔합니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이때는 관계를 가깝게 맺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므비보셋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왕이시여, 저를 아들로 받아주시니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아주신 자들이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스스로를 죽은 개라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죽은 개이든 아니든 하나님께서 그것에 연연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 앞에서 감사할 줄 알고 충성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입술의 말을 바르게 훈련하고 생각 속의 쓰레기들을 치워버려야 합니다.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이유는 머릿속의 생각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 어리석은 것들이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입에서 지혜로운 말이 나오겠습니까? 여러분을 향한 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이 지혜로운 결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왜 굳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려 하십니까? 여러분이 우리 공동체에 온 이상, 저는 여러분이 더욱 지혜로워지고,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되며, 더욱 번성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므비보셋의 대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는 마땅히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아, 제가 아버지의 아들인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비록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두 분의 관계 덕분에 제가 이런 은혜를 입게 되었으니, 저도 아버지를 본받겠습니다!"

사울 집안의 종 시바

이 일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울 집안의 종 시바는 부자였습니다. 시바는 사울 집안의 청지기 같았는데, 관리하고 관리하다 보니 사울 집안의 재산이 다 자기 명의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가 충성스러웠을까요? 아닙니다, 불충했습니다. 훗날 아들 열다섯 명과 종 스무 명을 두었는데, 그 돈이 다 어디서 났겠습니까? 다 사울 집안의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당시에 그다지 지혜롭지 못하여 이 종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나단이 이 일을 관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므비보셋의 시대에 이르러 므비보셋은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으로 도망쳐 그곳에 얹혀살며 보살핌을 받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사울 집안의 재산이 시바에 의해 '사유화'된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유화'입니다. 서류 절차도 밟지 않고 꿀꺽 삼켜버린 것입니다. 이는 시바라는 인물이 감사할 줄도 모르고 충성심도 없었음을 증명합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시바는 매우 영리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저주받은 자였습니다. 남의 재산을 탐내는 것은 '십계명'에서도 치명적인 죄입니다.

시바는 남의 재산을 탐냈는데, 이제 다윗이 말합니다. "너는 사울 집안의 모든 재산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라. 네가 전에도 이 일을 맡아 관리했으니, 이제 계속해서 므비보셋을 대신해 관리하라." 이때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겠습니까? 다윗 왕 앞에서 조금이라도 까불었다가는 다윗 왕이 개미 한 마리 짓밟듯 그를 짓밟아버릴 것입니다. "이 괘씸한 녀석, 은혜도 모르고 불충하더니, 내가 이제 네게 일자리를 주니 제대로 일해라. 너와 네 집의 종 스무 명이 할 일은 므비보셋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한 수입니까! "제대로 일해라! 므비보셋은 내 곁에서 식사할 것이다. 조심해라, 므비보셋이 네 잘못을 한마디라도 고하면 너는 뼈도 못 추릴 것이다."

하지만 므비보셋은 역량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므비보셋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시바의 마음이 편안했겠습니까? 전혀 편하지 않았고, 온종일 복수할 궁리만 하느라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마음에 갈등과 번민이 가득했습니다. 밭에 나가 일하면서도 괭이질을 하며 욕을 해댔습니다. 기분이 몹시 나빴던 것입니다. 이전에는 드디어 상류층에 진입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종의 신세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부자가 되어 벼락부자가 된 줄 알았는데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빈털터리가 된 것입니다. 천성적인 불충과 배은망덕이 훗날 충성으로 바뀌겠습니까? 단지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며, 결국 그는 훗날 주인을 배신하고 맙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양육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양육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는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알아봅니다. 어쨌든 제 입에서는 듣기 좋은 말이 별로 나가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여러분께 비밀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람이 배은망덕한 것은 흔한 일이며, 은혜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문 보배입니다. 모래 1톤에서 금 5그램을 캐낸다면, 그 5그램의 금이 보배이고 1톤의 모래는 흔한 것입니다. 어떠하든 여러분은 늘 조심해야 합니다. 한 움큼 쥐었을 때 그 안에 금이 얼마나 들어 있겠습니까? 금은 많지 않습니다. 가령 세 자녀를 길렀는데 그중에 금과 같은 자녀가 몇이나 됩니까? 제가 본 많은 부모의 자녀들은 속을 썩입니다! 자녀들이 날마다 부모의 재산에만 눈독을 들이지, 어느 겨를에 부모를 봉양하고 효도하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것이 똑똑한 것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똑똑한 것이 아니라 미련한 것입니다.

이러한 배은망덕한 사람들은 자식이든 길거리의 행인이든 흔하디흔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희귀한 보배를 가려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오면서 모인 인원이 이 정도인데, 그중 적잖은 수가 여전히 서서히 걸러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확고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머릿수만 많이 모으고 싶지 않습니다.

《사사기》에서 기드온이 3만 명을 모아 싸우러 가려 했을 때, 하나님은 "안 된다! 오합지졸들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 무슨 바람만 불어도 이들이 먼저 도망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도망치면 다 따라 도망치고 마귀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결국 걸러내어 2만 명이 되고, 2만 명에서 1만 명이 되고, 1만 명에서 300명이 걸러졌습니다. 그 결과 이 300명은 싸울 때마다 승리했습니다! 만약 제게 3만 명을 택하겠느냐 300명을 택하겠느냐 묻는다면, 물론 3만 명이 헌금은 더 많이 하겠지만 300명의 충성심이 훨씬 큽니다. 제가 헌금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저는 오직 충성심을 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충성과 감사는 일종의 명철함이며, 명철하지 못한 사람은 해낼 수 없습니다. 물론 목공 일을 할 때 손재주가 좀 둔한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와 충성은 영적인 지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것은 목공의 영리함과는 차원이 다른,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충성되고 은혜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바라는 인물을 통해 이 세상에 이런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롭게 분별해야 합니다. 입으로는 충성을 외치지만 뼛속까지는 불충한 자들입니다. 사실 뼛속까지 충성된 자가 진정한 보배입니다. 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바로 이것을 걸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말이 좀 거칠게 나갈 때도 있는데, 그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난 후 나타나는 이런저런 반응들을 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크고 작은 목회자들은 모두 배워야 합니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그다음에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분별해낼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다윗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쁘다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아무리 바빠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전에 약속했던 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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