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为什么大卫不把洗巴杀了,而是让他和米非波设平分家产?
你问的是后面的内容,现在提出来,咱就说一下吧。你得知道,洗巴干了一件什么事?他备上驴来给大卫送吃的。这件事要是让押沙龙知道了会不会杀掉他?会啊!洗巴这小子可聪明了,他算了一笔很有趣的账,就是他知道大卫一定会回来做王,所以他就把宝押在大卫身上,没有押在押沙龙身上。为什么押在大卫身上?虽然洗巴是个不感恩的人,但是他知道大卫是个感恩的人,他心里很清楚:我一定要把这恩典放在大卫身上,现在他落难了我帮他,这绝对是最划算的明智之举!
大卫是一个感恩的人,他很感谢洗巴冒着生命危险备上驴给他送粮食,多不容易啊!墙倒众人推,更何况现在大卫是在逃亡。大卫逃亡的这些日子就像一把筛子、一面镜子、一下子就把人心给照出来了。洗巴回去以后,大卫就把扫罗的一半家产给了他,为什么呢?因为那东西本来就不是米非波设的,是大卫给米非波设的。米非波设这个人很愚蠢,被他的仆人耍了,这是他自己活该,天天跟大卫吃饭,傻不拉几的,到现在还没整明白到底是怎么回事呢。
如果米非波设里面有一种刚强的性格,应该也不至于这样。如果他骨子里是说:就是腿瘸了,我也要整上车去,我用两个胳膊也要爬上去。这不就解决问题了吗?问题是他骨子里的自卑和软弱,就是认定自己不行,这不是悲剧吗?所以大家都得变聪明!洗巴这个人厉害,虽然他贪婪人家的财产,身上还有很多的毛病,但是他在选择帮助大卫这件事上还是很聪明的。
我有一个同学很聪明,我从骨子里佩服他。要考大学了,不管考什么大学,只要考上个大学就行,要知道有大学文凭和没有大学文凭是本质的差别。体育学院能考上是不是大学?是大学!他是我家邻居,我跟他的关系还不错,他平时也不练,结果一上来就跑的挺快,肌肉很结实。
他知道自己的水平,考理工科那是扯犊子,那就干脆挑个体外考吧,贫穷人家的孩子,结果他考了个体外,肌肉练得很发达,找单位也找了个好单位。人要是笨的话,连宝都押不对,不知道那头重那头轻,也不知道感恩是一个极其聪明的选择。
我解决了大家的困惑了没有?我说的是不是这么回事?因为我琢磨很多关于这类的事。基督徒聪明的没几个,笨的多!你要是问我做生意要不要跟基督徒一起合伙?不要。那跟佛教徒呢?应该比基督徒好;那回教徒呢?也比基督徒好点;那普通人呢?那应该也比基督徒好点。为什么呢?基督徒愚蠢啊!我要做的是一件非常挑战的事,就是把基督徒变聪明。
Q2:老师,不懂得感恩的底层逻辑是什么?我们平时要如何锻炼自己变得聪明,会解决问题?
这问题问得挺好。我做过很多尝试,我觉得人要变聪明好像是这么干的,我跟谁学的呢?我最近跟这些整人工智能的人聊天,他们都在说怎么让这些GPT变聪明?就是让它大量的吸收知识,吸收也得一件事一件事的做,你不教它的话,它怎么可能知道呢?我总结出来的结果是,这个思路好像是跟训练人工智能的机器人差不多。就是让你大量的学习知识,人就会知道遇到问题应该如何处理。那应该怎么做呢?别着急,一件事一件事地学,不会的就去学,不就完了吗?不会的还不学,连会的也慢慢地变得生疏了,那不是越来越笨了吗?
你问我不懂得感恩的底层逻辑。这个词好像是我常用的,这个底层逻辑叫愚蠢。其实有一些人在学习上不一定那么聪明。但是这些人里面有感恩的心,虽然不一定是百分百的感恩,最起码有百分之七、八十,百分之八、九十,那也是聪明。
你们得知道我修理人的原因。如果你是个感恩的人,那你得整明白这事。如果你不是个感恩的人,我就会说:弟兄啊,姐妹啊,耶稣爱你,我也爱你,神会看顾你,神一定会在你前面的路上引导你,这些都是官话。有的人打开《圣经》闭上眼睛用指头一摁,就说:这是神的启示!我说:你可千万别念到犹大自杀那段经文,你要是念到哪段是哪段,这纯粹就是愚蠢,悟性不通。
咱们弟兄姐妹可得知道,我遇到那些愚蠢的人,你知道我怎么处理的吗?不知道感恩的愚蠢人不是说你做事愚蠢,感恩不感恩是人骨子里的东西。如果我遇到一些不感恩的人,我就特别地小心,我只说官话,到最后就是想干什么就去干什么吧。为什么呢?太危险了!我碰那玩意儿做什么呢?感恩是很难学的,但是聪明是可以学的,感恩是骨子里很深层的逻辑,不能碰的东西叫作核心利益。
Q3:老师,我一开始没有看出来米非波设的回答有问题,现在才知道这个人的情商实在太低了,如何才能懂得人情世故、提高情商呢?
提高情商,我刚才不是跟你讲了吗?这人的情商是什么原因导致的呢?情商是因为我们把某些事看得太重,一碰那些事我们的神经就紧绷、情绪就出来了。如果你把人看的重一点,把事看的淡一点就好办了。我告诉你,企业管理最重要的就是把人管好,如果人管不好,那事就不可能管好,这逻辑是通的。所以你一旦把事看得很重以后,你就会被这些事辖制。
大家得知道我是干啥的,我是专门修理人的!我要把人给修理好,使他成为一个有用之才。有人说:你看到我做的那些愚蠢的事,你的情绪就上来了。那我得给你来点重口味,不然解决不了你的问题。其实我早就知道你身上的那几个问题,只是通过给你加点重口味这件事,让你无可辩白。如果我们整了一件具体的事,你还不肯承认,那没有具体的事,你还不得剪尖了指甲来挠我吗?
大家知道怎么提高情商吗?提高情商就是别把事看得太重。前段时间有个光头哥把人给打了,那个光头哥跟前面那辆车的司机产生了冲突,一拳打下去就把那女的打得满地找牙。就是因为他情绪一上来就变得很冲动。结果不但被拘留了,还要赔人家医药费。不要以为智商高情商就低,也不要以为智商高情商就高。其实情商不高就是智商不高!有聪明、有智慧的人,智商和情商两样都高。
给你举个例子,如果遇到一件事我有方法并且会处理,我还会抓狂、会激动吗?当然不会。就是因为不知道怎么处理才激动啊。而且也算不清楚这一拳打出去值多少钱,一拳打出去赔人家一万,也有可能一拳打出去赔人家十万,这都是明明可知的,那你为什么还要这样做呢?你要是手痒了就在自己家里找一块砖头贴在墙上打,就是把自己的手打烂了也不用赔钱,那多好啊!所以情商低、智商低,都是因为人里面聪明智慧的东西太少了,遇到问题不知道该如何处理。
Q4:老师,请问如何才能快点变聪明?
一定要会学习,千万不能图快,想要一下子变聪明是不可能的。学东西一定是一点一点地学,做事也是一件事一件事的把它整对,悟性上要通透、把事情整明白。这就是人通常说的:悟出来了!那就是突然间心里明白过来了。有些人坐禅不是坐在那瞎想就能明白的,而是在实践当中不断的去认识和了解事物的本质,才能算清楚打人家这一拳得损失多少钱,那你就明白了。
那为什么当时就脑子不好使没控制住呢?因为没有处理问题的能力才导致的,如果你清楚打人的后果,就没有必要为那点小事大打出手了。一件事一件事地弄明白,这是一个非常重要的学习习惯。
Q5:老师,若是员工比老板聪明厉害,因担心管不好,就最好不要用这样的能人了吗?
错了,最好是把自己弄成能人不就完了吗?一个愚蠢的人带着一个愚蠢的团队,一个愚蠢的猪带着一群愚蠢的猪,这不还是一群猪嘛?能力很强不是问题,能不能管得了才是问题的关键。你能不能管得了一群傻瓜蛋子?脑袋尖尖的、眼睛距离宽宽的,好像还没进化好似的。即使你能管好他们又能怎么样呢?大家得知道聪明人好管,我以前在实体教会的时候,那些牧师管我可好管了。因为我从来不给他们制造麻烦,有什么问题自己心里明白就完了。大家要知道,下面的人比老板聪明、厉害不是问题,老板聪明、厉害才是关键。你得学会做人,你要是不会做人就麻烦了。
Q6:老师,米非波设这样的人能被牧养吗?
怎么不能?他很谦卑啊!只是大卫太忙了没时间整他,让他去学习,他自己不学。人不学习是一个非常要命的事,只要愿意学习的人什么都好整。不愿意学习的人都不好整,自以为是的人最难整。人一自以为是就觉得自己没问题!没错怎么整呢?那就没法学习了,没法成长了。你要是跟我近距离相处一段时间,我一定会把你整到一种让你知道自己常常犯错的状态。那种状态是我要营造的,要不然我还整不明白你的问题在哪,你也不明白自己的问题在哪,那咱俩在干啥呢?难道是在这玩小孩的游戏?捉迷藏、跳跳绳、跳皮筋,那不是扯淡吗?
我们最重要的是在牧养当中解决人身上的问题,看是在哪个地方需要学习、需要进步。如果我不能证明你在哪个地方需要学习和进步,那我怎么使你成长起来呢?咱们得慢慢琢磨这事,如果我笨的像头猪似的,那你们得成啥了?教会就不可能吸引你们这些聪明的人,而是吸引了一群啃猪头的人,我就被你们啃了。你们在原来的教会一看那里的状况不太好,不都跑过来了吗?
Q7:老师,洗巴在大卫落难的时候给他送吃的,是因为知道大卫懂得感恩,所以洗巴这样做是为了将来有回报,这种算不算是真心帮助大卫?即使大卫知道他的心思依然应该报答他吗?
那当然了,他聪明啊!只有做出来的才算数,至于人家是这么算计还是那么算计,算计对了,是人家厉害!所以我通常不要求人顺服我。人家愿不愿意顺服,那不重要。整完了以后,人家要是愿意这么做,那是聪明啊!谁不想活得好啊!我做完了这件事我活得不好,我信主信完了,信得很惨了,你要不要?我是不要!你如果没算计过这事,这不是傻瓜蛋子吗?没算计过这事就照着人本来的心态,那不是有智慧的方式,而是照着自己属肉体的逻辑体系。
Q8:老师,现实生活中我们要存有感恩的心,但如果遇到那种特别讨人厌,身上特别多违背神旨意的人,我们对这种人要存有感恩的心吗?
你得学会感恩!你怎么做是你的事,人家怎么领受是人家的事,你可以照着人家能领受的感恩。
Q9:老师,说话太直接,不会转弯,容易得罪人,怎么变聪明?
那得教你学中国话了,学中国话你得多看点小品,跟着赵本山、范伟、马大帅他们学,他们话讲的老好了。那得天天练脑筋急转弯啊!“树上七只猴,打掉一只猴,还剩几只猴?”人说话太直接、不会转弯、容易得罪人,这叫凡事不知道,照着结果走。你想想:我得罪这个人做什么呢?闲着没事招人嫌!要是我牧养他,得罪一把也无妨,得帮他解决问题。
所以见什么人说什么话。我先给你出一个主意,人在这社会上有四种关系:一种是跟上面人的关系,一种是跟下面人的关系,一种是跟左面人的关系,一种是跟右面人的关系。跟上面的人,下面的人怎么说话。左面和右面的人跟你是平级的,你怎么说话,你自己多琢磨思考。
比如你跟上司讲:过来,跟我倒杯水!如果你这么说的话,那你明天就不用来上班了,这就是你不知道分寸。如果你跟下面的人点头哈腰的,这样行吗?那就是王子走路,奴才骑马,地都会震动。所以我们得分清关系是什么?该说什么话?这不就变聪明了吗?有一些人像炕头王似的,就会跟家里人耍横,广东人叫“门槛猴”。
Q10:老师,智慧和聪明是天生的多一些,还是后天学习得来的多一些?
天生的全是没用的。我问你,哪个字不是你学来的?哪个是你发明的?如果是你自己发明的,考试的时候算错别字,这错别字就是你发明的。所以大家要知道,咱们从小生下来都是学来的,只不过有些人学坏了,有些人学聪明了,有些人学笨了。为什么会学笨呢?这个事跟天生有点关系。天生他有这个喜好,比如喜欢吃,拼命吃,变成大胖子。有的人不太喜欢吃,当爷爷奶奶的天天在那儿使劲喂,但是怎么吃也不胖,把爷爷奶奶急得够呛。
咱们得知道天生的有一点倾向,后天学的才重要。所有的东西都是跟后天学的有关系,只不过学同样的东西有的费点劲,有的省点劲。就拿踢足球来说,我天生就踢不好,但是如果我能苦练的话,我也能够练出来。要多学习,千万别指望天生的,因为天生那东西不好使。
Q11:老师,要怎么学习管理知识?我没有管理的智慧,我想学习如何管,知道什么事能管,什么事不能管。我现在做生意一直没敢请员工。
首先要知道管理到底是啥?管理就是管人、管事。管事是管啥?就是把事做对,你得很清楚的知道这件事是怎么做的。比如说你是个会计,会计这账你得会做。将来你升职了,下面这个会计你得管理好,让他把这个活干好。管理怎么学习呢?先从做事开始。一个业务不通的人不可能会管理的,你管的人是把那事做好。你自己做那事都做不好,你管的人就能把那事做好吗?不可能。你如果不懂那个业务,就被那个人给忽悠了,反正你也不懂。像人工智能,我不懂,人家就可以忽悠我,忽悠完了,我也不知道,我还得邀请人家继续忽悠我。
虽然人工智能里面的算法我不是太清楚,但是里面的哲学和概念我得清楚。他讲的偏了,不上道我应该是清楚的。所以大家要知道,管理就是管人和管事,最重要的就是那个事,如果你不能清楚那个事是什么?你怎么管呢?你都不知道这个人干的好不好,你怎么能够拿到一个好的结果呢?他拿一个坏的结果给你,那不就把你给忽悠了吗?
所以管人管事是我的最基本的管理哲学。比如说:我请了一个只值一千块钱的人,后来我把他训练成能干两千块钱的活,我就赚一千。我如果请来一个值一万块钱的人,如果我不会管他,他只会干五千块钱的活,我不是赔五千吗?我得跟大家讲一件事,管理这东西,如果你想管好人的话,你首先得回答一个问题:人家凭什么跟你好好干?然后你再邀请人家忽悠你,瞎整一通,让底下的人看笑话,没有人告诉你,这就是皇帝的新衣,傻了。
Q12:老师,如何理解忘恩负义?比如说在我人生最低谷的时候,走进了一间灵恩教会,也确实得着了一些恩典,但是后来知道教会有问题就出来了,很多人就说我忘恩负义。
这题把我难倒了。难道你在那儿就不叫忘恩负义了?我们在那儿也好,不在那儿也好,都可能是个忘恩负义的人,也可能是个感恩的人。但这些人也不能道德绑架你吧?反正我是不道德绑架人,好像非得让人家跟咱们在一起似得。
咱们当中有一些人,我说的非常直白,你们愿意自己出去干的,我不会说你是忘恩负义,我还会说你有命定呢。咱们逐渐的开始了解,君子报仇十年不晚,君子报恩十年晚吗?也不晚,一直在心里记着呢。大卫那些年也离开扫罗了,忘恩了吗?没有。十三年以后大卫做王了,他忙得也没时间照顾米非波设,他忘恩了吗?没有。是因为他没这个体量。后来大卫有空了能腾出手来,就把这个问题解决了,其实他心里有数。
所以说离开了就叫忘恩负义,我不觉着这个逻辑是对的。你们离开我也不说你忘恩负义,我还说你曾经为教会做过了巨大的贡献。其实我说句实话,有时候很想请他们吃顿饭,因为在教会很艰难的时候他们跟我走过来了,虽然后来离开教会了,但我真的很想谢谢他们。人各有志,这很正常。离不离开我根本就没放在心上。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엘하》 9장을 나누겠습니다. 9장의 내용은 비록 짧지만,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매우 예리합니다. 사실 《사무엘상·하》 전체는 몇몇 매우 중요한 인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인물은 늙은 엘리인데, 늙은 엘리와 사무엘 이 두 사람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두 번째는 사울과 다윗이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다윗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입니다. 왜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아는 것일까요? 요나단이 다윗을 보호해 주었을 때, 다윗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 아주 소중한 친구를 기억했습니다. 두 사람은 좋은 형제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동성애자라느니 다자성애자라느니 말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 수도 없고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 형제 같은 두 사람의 관계가 각별히 좋았다는 사실입니다. 동북 지방에서는 형제 사이가 유난히 좋으면 같이 목욕탕에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남방 사람들은 이에 익숙하지 않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지만, 동북의 풍습은 이렇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뜻은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가 서로 숨김이 없고 우애가 넘치는 각별한 형제이자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좋은 형제 요나단을 잊지 않았다
다윗과 요나단 이 두 사람은 마음이 서로 통했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얼마나 좋았을까요? 원래 요나단은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지만, 왕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 기름부음을 다윗에게 주셨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관계는 친구를 초월하고 이익을 더욱 초월하여,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평생에 요나단과 같은 좋은 형제를 얻는 것은 정말 불행 중 다행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이 죽은 후에도 여러분은 이 좋은 형제를 여전히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왕이 된 후 공무로 매우 바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형제 요나단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처럼 조그만 변호사가 되어 온종일 정신없이 바쁘고, 회계사가 되어 정신없이 바쁘며, 작은 사업을 운영하느라 더 정신없이 바쁜 것과 같지 않았습니다. 자기 일도 다 감당하기 바쁜데 어느 겨를에 좋은 친구, 좋은 형제, 하나님을 생각하겠습니까? 진작에 까마득히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다윗이 지나온 날들은 쉽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내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안정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친구 요나단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처음에 신경 썼던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헤브론에서 왕 노릇 할 때 사울의 집안과 자주 전쟁을 벌였는데, 요나단의 동생이자 므비보셋의 삼촌인 이스보셋과 아브넬이 다윗과 7~8년 동안 싸웠습니다. 그 와중에 요나단의 아들을 돌볼 시간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이스보셋은 요나단 아들의 숙부였으니, 다행히 이 숙부를 따랐기에 적어도 먹고 입는 것은 부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 후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도 다 다윗에게 귀순했습니다. 두 회사를 통합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입니다. 장부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지도자들을 세우고, 누가 재정부장을 맡고, 누가 도지사를 맡아 어느 도를 관할할 것인지 등을 정하는 복잡한 업무들로 정신이 쏙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조금 안정이 되자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왔고, 그 지역의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냈습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웃사가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 죽자 다윗의 마음은 오만 가지 감정이 뒤섞여 복잡했습니다. 다윗의 평생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성전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정을 찾자마자 그는 곧장 절친한 친구 요나단을 떠올렸고, 므비보셋의 근황도 알고 싶어 사울 집안의 종 시바를 불러왔습니다. 시바라는 인물은 대단한 자였습니다. 사울 집안의 재산을 그가 다 집어삼켰는데,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아들이 열다섯 명이나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그에게 아내가 몇 명인지 나오지 않지만, 아들은 열다섯 명이었습니다. 야곱이 네 명의 아내에게서 열두 아들을 낳았으니, 시바의 아내가 몇 명인지는 정확히 계산하기 어려워도 대략 다섯 명쯤은 되었을 것입니다. 시바가 불려 오자 다윗은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사실 다윗은 오직 좋은 친구 요나단의 아들에게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시바는 눈치가 아주 빨랐습니다.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사무엘하 9:3)
시바는 다윗 왕과 요나단이 매우 각별한 친구 사이임을 알았기에 곧바로 "요나단의 아들이 하나 있는데 다리를 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리를 절게 된 것은 당시에 떨어뜨려 다쳤기 때문입니다. 시바는 매우 영리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사울의 다른 후손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많은 재산을 탐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돈이 많았고 종 20명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여러분 집에 가사도우미 20명을 둔다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감당 못 합니다. 지금 수준으로 상하나 북경에서 가사도우미를 쓰면 한 명에 1만 위안이니, 20명이면 한 달에 20만 위안의 월급을 주어야 합니다. 5천 위안이라 해도 매달 10만 위안을 줘야 합니다. 시바는 대단히 똑똑하고 영악했습니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사무엘하 9:4)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시바는 사울 집안의 종인데, 어떻게 므비보셋을 남의 집에 가 있게 만들었을까요? 시바가 사울 집안의 토지를 독차지하고, 그 집안의 손자를 남의 집으로 보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마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다행이며, 혹은 시바 자신이 므비보셋으로 하여금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게 조치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지혜로웠습니다. 사실 시바에게 묻지 않아도 그의 정보망을 통해 이미 상황을 훤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시바에게 물은 것은 단지 절차를 밟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합니다. 다윗은 매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반평생 목숨이 요나단 덕분이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예비하셔서 요나단을 통해 그를 도우셨겠지만, 요나단은 그의 은인이 되었습니다. 요나단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을 뿐만 아니라 은인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일찍이 다윗에게 "후에 내 후손에게 은혜를 베풀겠다고 내게 약속하라"고 했고, 다윗은 하늘을 두고 맹세하며 약속했습니다. 다윗은 말한 대로 행했습니다. 말만 하고 행하지 않았다면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배은망덕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은혜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제 마음속 생각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리더들은 모두 충성된 분들입니다. 당시 교회가 매우 황폐했을 때, 어쩌면 제가 선포한 비전과 꿈이 너무나 아름답고 그림이 너무 거창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지금까지 저와 함께 걸어왔습니다. 이 8~9년의 세월을 함께 걸어온 것에 저는 참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그들을 섬길 때 성질을 좀 낼 때도 있었지만, 저는 참으로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듯 그들을 섬깁니다. 감사할 줄 알고 충성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 저자는 《사무엘하》에서 다윗이 행한 이 사소해 보이는 일을 기록했을까요? 정말 사소한 일일까요?
여기에는 다윗의 처세와 인품의 기본적인 스타일이 부각되어 있는데, 그 스타일이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매우 기쁘시게 하는 성품입니다. 어떤 이들은 나이가 어린데도 배은망덕한 마음은 매우 큽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배은망덕한 사람을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 불충한 사람도 미워하십니다. 여러분과 저도 이러한 것을 미워해야 합니다. 이런 것은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못 고칩니다. 제가 동역자들에게 나눈 적이 있습니다. "개가 똥을 끊을 수 없다. 한동안 먹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끊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변기에 쓸려 내려가 먹을 게 없어서 못 먹은 것일 뿐, 변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성격, 이런 속성을 가진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둘러볼 때마다 우리 형제자매들을 보면 저는 감사가 넘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잘 해냈든 못 해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하는 성품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섬기기를 하나님을 섬기듯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양육하는 사람들 중에 배은망덕한 사람을 만나면 각별히 주의해야 하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도 주의해야 합니다. 저는 효순(순종)이라고 하지 않고 효경(공경)이라고 부릅니다. 맹목적인 순종은 문제를 일으키고 덕을 세우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도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라면 제게는 배은망덕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분이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되기를 권면합니다. 부모 공경은 십계명의 제5계명이며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므비보셋을 불러와 그를 위해 최선의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을 위해 한 배려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되 보소서 주의 종이니이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사무엘하 9:5-7)
다윗은 왜 요나단의 아들에게 이러한 배려를 베풀었을까요?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그러한 은혜를 베풀었기에 다윗은 감사로 보답한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을 어떻게 대우했습니까? 첫째, 사울 집안의 밭을 모두 므비보셋에게 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므비보셋은 다리를 저는 사람이었기에 대신 농사를 지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울 집안의 종 시바를 배치했습니다. 비록 이 사람은 다소 탐욕스러워 스스로 부를 축적한 자였지만 말입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의 관리 능력이 다소 부족한 것을 보고 그에게 "너는 내 식탁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명하고, 시바와 그의 아들들로 하여금 므비보셋의 재산을 관리하게 했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을 대우하여 왕과 함께 식사하게 한 것은 대단히 큰 은혜였습니다. 어느 나라 정상이 방문하여 국빈 만찬으로 대접받고 함께 식사하는 것과 같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왕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말 한마디로 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이러한 보은 방식은 참으로 탁월했다고 봅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요나단의 아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다윗 왕이 왜 자신과 함께 식사하도록 배려했을까요? 집안의 사소한 잡일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함께 식사하게 한 목적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므비보셋으로 하여금 다윗의 명철함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은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보기 드문 탁월한 관리 인재였기 때문입니다. 매 식사 자리는 사실 배움의 장이었습니다. 다윗의 매 식사 자리는 틀림없이 국정을 논하고 처리하는 자리였을 것이며, 므비보셋은 곁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잘 들어야 했습니다. 다윗이 연회를 베풀어 접대하는 이들은 여러 왕들이었고, 므비보셋을 곁에 배석시켰습니다.
식사 중에 그들은 다윗에게 "어찌하여 다리 저는 사람을 우리와 함께 식사하게 하십니까?"라고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다윗은 "이 사람은 내 절친한 친구 요나단의 아들이며, 내가 그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함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지난날 요나단이 자신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풀었는지, 자신이 어떻게 보은하고자 하는지를 말한 뒤 이어서 그들과 정무를 논했을 것입니다. 사실 식사할 때 논하는 일들은 다 매우 중요한 일들입니다. 중국인들도 중요한 일은 대부분 식사 자리에서 협상합니다. 중국인과 이스라엘인은 매우 비슷하여, 함께 밥 한 끼 먹고 술 한잔 기울이면 일이 금세 성사되곤 합니다. 그러므로 므비보셋은 자기 집 종 시바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분별해야 했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시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자주 가르침을 구했어야 합니다. 시바가 므비보셋보다 똑똑했기 때문입니다. 종이 왕보다 똑똑하면 《전도서》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내가 또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 (전도서 10:7)
만약 여러분에게 대단히 똑똑한 부하가 있는데 여러분 자신은 매우 우둔한 상사라면, 감당하기가 몹시 힘들 것입니다. 통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가? 통제할 수 없다면 맡지 말아야 합니다. 훗날 시바는 므비보셋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므비보셋의 집안에서 그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습니다. 이번 장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다음 장에 나오듯, 므비보셋은 시바에게 농락당하고 허수아비가 되었으며, 다윗이 피난할 때 시바는 주인을 배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우리는 과연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날마다 다윗과 함께 있으면서도 지혜롭지 못하다면 그 얼마나 비극입니까? 다윗에게 "저는 잘 모릅니다. 저를 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하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 다윗의 집에는 스승이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입니다! 주인이 되어서도 지혜롭지 못하면 주인의 역할을 할 수 없고, 기업을 경영하면서 지혜롭지 못하면 관리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잘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할 수 있겠습니까? 상대방이 무엇 때문에 여러분을 위해 성실히 일하겠습니까? 속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속임을 당했다면 본인이 지혜롭지 못해서 당한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므비보셋은 실권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이 다윗 앞에서 보인 반응은 나름 지혜로운 듯 보였습니다.
그가 다시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사무엘하 9:8)
사실 이 말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다윗이 자신에게 이렇게 대우해 주는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 근원은 요나단과 다윗이 절친한 친구였다는 사실이지, 므비보셋 자신의 공로가 아닙니다. 죽은 개 운운하는 말은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감사할 줄 알고 지혜로우며 충성된 사람이라면, 다윗이 "내가 므비보셋 너를 보아 은혜를 베푼다"고 했을 때 "저는 죽은 개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제가 제 아버지의 아들인 것이 참으로 다행이며 감사합니다. 제게 이런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가 왕과 생사를 함께한 사이셨기에 이제 제가 왕의 아들이 되겠습니다!"
죽은 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왕께서 제 아버지를 기억하시고 제게 은혜를 베푸시니, 이제 제가 왕 앞에서 아들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반응입니다. 절대로 "저는 죽은 개요, 이토록 우둔합니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이때는 관계를 가깝게 맺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므비보셋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왕이시여, 저를 아들로 받아주시니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아주신 자들이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스스로를 죽은 개라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죽은 개이든 아니든 하나님께서 그것에 연연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 앞에서 감사할 줄 알고 충성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입술의 말을 바르게 훈련하고 생각 속의 쓰레기들을 치워버려야 합니다.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이유는 머릿속의 생각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 어리석은 것들이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입에서 지혜로운 말이 나오겠습니까? 여러분을 향한 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이 지혜로운 결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왜 굳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려 하십니까? 여러분이 우리 공동체에 온 이상, 저는 여러분이 더욱 지혜로워지고,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되며, 더욱 번성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므비보셋의 대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는 마땅히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아, 제가 아버지의 아들인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비록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두 분의 관계 덕분에 제가 이런 은혜를 입게 되었으니, 저도 아버지를 본받겠습니다!"
사울 집안의 종 시바
이 일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울 집안의 종 시바는 부자였습니다. 시바는 사울 집안의 청지기 같았는데, 관리하고 관리하다 보니 사울 집안의 재산이 다 자기 명의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가 충성스러웠을까요? 아닙니다, 불충했습니다. 훗날 아들 열다섯 명과 종 스무 명을 두었는데, 그 돈이 다 어디서 났겠습니까? 다 사울 집안의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당시에 그다지 지혜롭지 못하여 이 종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나단이 이 일을 관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므비보셋의 시대에 이르러 므비보셋은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으로 도망쳐 그곳에 얹혀살며 보살핌을 받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사울 집안의 재산이 시바에 의해 '사유화'된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유화'입니다. 서류 절차도 밟지 않고 꿀꺽 삼켜버린 것입니다. 이는 시바라는 인물이 감사할 줄도 모르고 충성심도 없었음을 증명합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시바는 매우 영리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저주받은 자였습니다. 남의 재산을 탐내는 것은 '십계명'에서도 치명적인 죄입니다.
시바는 남의 재산을 탐냈는데, 이제 다윗이 말합니다. "너는 사울 집안의 모든 재산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라. 네가 전에도 이 일을 맡아 관리했으니, 이제 계속해서 므비보셋을 대신해 관리하라." 이때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겠습니까? 다윗 왕 앞에서 조금이라도 까불었다가는 다윗 왕이 개미 한 마리 짓밟듯 그를 짓밟아버릴 것입니다. "이 괘씸한 녀석, 은혜도 모르고 불충하더니, 내가 이제 네게 일자리를 주니 제대로 일해라. 너와 네 집의 종 스무 명이 할 일은 므비보셋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한 수입니까! "제대로 일해라! 므비보셋은 내 곁에서 식사할 것이다. 조심해라, 므비보셋이 네 잘못을 한마디라도 고하면 너는 뼈도 못 추릴 것이다."
하지만 므비보셋은 역량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므비보셋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시바의 마음이 편안했겠습니까? 전혀 편하지 않았고, 온종일 복수할 궁리만 하느라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마음에 갈등과 번민이 가득했습니다. 밭에 나가 일하면서도 괭이질을 하며 욕을 해댔습니다. 기분이 몹시 나빴던 것입니다. 이전에는 드디어 상류층에 진입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종의 신세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부자가 되어 벼락부자가 된 줄 알았는데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빈털터리가 된 것입니다. 천성적인 불충과 배은망덕이 훗날 충성으로 바뀌겠습니까? 단지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며, 결국 그는 훗날 주인을 배신하고 맙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양육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양육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는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알아봅니다. 어쨌든 제 입에서는 듣기 좋은 말이 별로 나가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여러분께 비밀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람이 배은망덕한 것은 흔한 일이며, 은혜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문 보배입니다. 모래 1톤에서 금 5그램을 캐낸다면, 그 5그램의 금이 보배이고 1톤의 모래는 흔한 것입니다. 어떠하든 여러분은 늘 조심해야 합니다. 한 움큼 쥐었을 때 그 안에 금이 얼마나 들어 있겠습니까? 금은 많지 않습니다. 가령 세 자녀를 길렀는데 그중에 금과 같은 자녀가 몇이나 됩니까? 제가 본 많은 부모의 자녀들은 속을 썩입니다! 자녀들이 날마다 부모의 재산에만 눈독을 들이지, 어느 겨를에 부모를 봉양하고 효도하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것이 똑똑한 것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똑똑한 것이 아니라 미련한 것입니다.
이러한 배은망덕한 사람들은 자식이든 길거리의 행인이든 흔하디흔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희귀한 보배를 가려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오면서 모인 인원이 이 정도인데, 그중 적잖은 수가 여전히 서서히 걸러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확고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머릿수만 많이 모으고 싶지 않습니다.
《사사기》에서 기드온이 3만 명을 모아 싸우러 가려 했을 때, 하나님은 "안 된다! 오합지졸들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 무슨 바람만 불어도 이들이 먼저 도망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도망치면 다 따라 도망치고 마귀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결국 걸러내어 2만 명이 되고, 2만 명에서 1만 명이 되고, 1만 명에서 300명이 걸러졌습니다. 그 결과 이 300명은 싸울 때마다 승리했습니다! 만약 제게 3만 명을 택하겠느냐 300명을 택하겠느냐 묻는다면, 물론 3만 명이 헌금은 더 많이 하겠지만 300명의 충성심이 훨씬 큽니다. 제가 헌금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저는 오직 충성심을 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충성과 감사는 일종의 명철함이며, 명철하지 못한 사람은 해낼 수 없습니다. 물론 목공 일을 할 때 손재주가 좀 둔한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와 충성은 영적인 지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것은 목공의 영리함과는 차원이 다른,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충성되고 은혜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바라는 인물을 통해 이 세상에 이런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롭게 분별해야 합니다. 입으로는 충성을 외치지만 뼛속까지는 불충한 자들입니다. 사실 뼛속까지 충성된 자가 진정한 보배입니다. 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바로 이것을 걸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말이 좀 거칠게 나갈 때도 있는데, 그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난 후 나타나는 이런저런 반응들을 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크고 작은 목회자들은 모두 배워야 합니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그다음에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분별해낼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다윗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쁘다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아무리 바빠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전에 약속했던 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