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以前做了一个关于认识的人却很不好的梦,是灵界的事吗,要注意吗?
确实是灵界的事,但是咱得知道是从哪个灵界来的。有一些东西是从神来的,有一些是从鬼来的。从鬼来的梦就是个噩梦,啥也说明不了,丢掉算了。曾经我遇到一个小孩,做了一个噩梦,他的牧师就说:这可了不得了。结果这个孩子就带着这个噩梦,天天活在恐惧当中,直到认识了我。我就告诉他:这不过是个噩梦,丢掉就算了,多言或多梦其中多有虚幻。
虚幻就是从魔鬼的灵界来的,啥也说明不了。也许是这个人太爱世界,把鬼的梦整来了,然后就照着鬼所释放的梦去成就,这一辈子活着都是鬼在导演,这不成了悲剧了吗?不要相信瞎做的梦,没啥意思,听明白了吗?
Q2:老师,梦是属灵的,《圣经》又说多梦多有虚幻,是不是要看做的是什么梦?关乎未来的,是神的心意的梦,就凭信心去相信?如果是一些不重要的事,就忽略了。这样理解对吗?
理解得很对,谢谢大家能有这样的看见。多言或多梦其中多有虚幻。大家要知道从鬼来的梦是创造不了未来的。你昨天做梦一脚踩在“黄金塔”上,然后到处蹭,甚至在梦中都能闻到一股臭味,一觉醒来都觉着很恶心。有人还给你解梦,说你要发财了。啥样的解法都有。
还有的人做梦自己死了,很苦恼,就来找我。我就告诉他:这个梦好啊!他说:为啥好呢?我说:你看,基督徒就是死不了,治死肉体就叫做死了。我们受洗就是归入耶稣基督的死,让我们有一个新生的样子。这样解梦,他还很开心。我告诉他:就算你真的死了,你也不要爱惜你的命。所以大家不要以为做那些梦会怎么样。有的人梦见棺材,就解释说要发财了。这不是瞎说吗?说完了也没啥意思。
Q3:老师,约瑟解梦会不会是神提前给解释了,他只是转述了神的话?
不知道。如果你要问我,我就告诉你,那是信心的宣告,信心的操作。信心的操作在《圣经》里写得特别好。
撒母耳长大了,耶和华与他同在,使他所说的话一句都不落空。(《撒母耳记上》3:19)。
撒母耳不是复印机也不是八哥学说话,神说啥就学啥,那没啥用。神不喜欢人做一个八哥,神喜欢人能做一个有信心的人。我说的绝对合乎《圣经》,你可以到《圣经》里看神怎么说的。
耶稣说:你们这些小信的人哪,为什么胆怯呢?(《马太福音》8:26).
没有信心是解不了梦的。神不会提前和约瑟解释梦,如果神跟约瑟说了,他只是复述一遍神的话,那就没意思了,不太好玩。神就喜欢有信心的人,所以不会提前跟约瑟说。神说了还是没说,没法认证,因为《圣经》上没写。
我之前也有这个困惑,我就去实践,结果发现我不能瞎说,瞎说的成就了就麻烦了。有神同在的人,他说出来的话老厉害了。神照着撒母耳所说的去成就。也有神告诉撒母耳的话,撒母耳就照着说的;也有撒母耳没有听到神跟他说,但是撒母耳明白神的心意,说出来的话也照样好使。
咱们弟兄姐妹可得知道,什么叫做奴才?奴才就是神跟他说啥,他就干啥,有的时候还不好好干。什么叫做朋友?就是神要有很多事要告诉他,然后跟他商量。什么叫做儿子?儿子就是深深地了解老爸的心意。大家能理解吗?所以做了神的儿子你就很了解神的心意,你就不会照着违背神的心意去瞎说了。所以凭着信心说是很好的。
Q4 :老师,能否理解约瑟的解梦是神的启示吗?
他肯定是神的启示。神怎么启示人?很多人对神的启示觉着是很玄妙。我曾经听过有些人讲什么是神的启示,讲了半天我也不知道他讲的是啥。我给大家讲讲什么是神的启示。保罗写的《罗马书》是不是神跟他讲的每一个字,他都记下来?不是。神不太喜欢这种人,神喜欢有信心的人。
使徒保罗在写《罗马书》的时候,他把他想要写的东西一而再,再而三地梳理,梳理完了以后就写出来。因为保罗深深地了解神的心意。这就叫启示。如果你理解的启示,就是听见神给你说一句,你写一句,然后没声音了,你怎么办?不是这样的。什么东西都是信心的操作。所以你了解了神的心意,跟神的关系非常亲密,像约瑟与神的关系一样,神就启示你了。
Q5:老师,进入命定的人,凭着信心说什么,神就能成就?
什么叫做进入命定?就是从此以后为神而活,愿意将自己生命完全献给神的人。你如果做出这样的决定,说明你对人活着这件事有很清晰的判断,你就知道神是何等的宝贵,然后选择为神而活,为神而死,神就与你同在,你开口说的话神就会成就。神也一定会引导你。况且全宇宙万物都在神的掌管之中,难道你的心思意念神不能掌管吗?法老的心思意念,朝廷重臣的心思意念,以扫的心思意念,都能被神掌管。你还担心啥?
我曾经看到很多人对神非常的没有信心。我举几个例子。比如方言祷告求神赐下圣灵。就有人说不能求圣灵,求圣灵邪灵会来。这事神都不能管,神还叫神吗?那还叫创造宇宙万物的神吗?连说方言祷告这件事神都管不了?我觉着这些人不信神也太离谱了吧!对神这么没信心。说得好像鬼很厉害似的,比神还厉害,好像神都搞不定魔鬼,让我们去搞。那不开玩笑吗?
有了神,靠着耶稣基督在十字架上得胜,我们可以践踏魔鬼仇敌。这不是神的话吗?因为他们看到了一个现象,然后就靠着不信的心去解释;我看到了一个现象,就靠着信的心去解释。差别有点大。愿大家在神的面前,凭着信心讨神的喜悦,成为一个有梦想、有神同在的人,凭着信心成为一个创造未来的人。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창세기》 40장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이 장의 말씀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우리가 장마다 계속해서 말씀을 배워가면서, 믿음의 훈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원숙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에게 “《창세기》에서 누구의 믿음이 가장 큽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요셉의 믿음이 가장 크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셉의 믿음은 야곱을 뛰어넘었고, 야곱의 믿음은 이삭을 뛰어넘었으며, 이삭의 믿음은 아브라함을 뛰어넘었습니다. 믿음이란 세대마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성장했다면, 우리의 믿음도 요셉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요셉 이후에 다른 사람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여기서 멈추는데, 이는 그의 믿음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더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믿음은 《성경》에서 가히 최고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요셉과 같다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꿈 해석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점치는 일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어떻게 미래를 미리 알 수 있을까? 참 신기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사람이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주식이 오르고 어떤 주식이 내릴지 안다면 돈이 부족하겠습니까? 당연히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은 돈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모두 작은 문제일 뿐이며, 믿음은 결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꿈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다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으면 미래를 예견할 수 있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으면 미래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과 함께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앞선 장들에서 나누었습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시다》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아주 잘 전해드렸는데, 왜냐하면 선악을 분별함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어도 선악을 분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떠나가십니다. 지금 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던 그날부터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얼마나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한 입 베어 물고는 끝장났습니다. 게임 오버(Game over)가 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러분이 광주리째로 그것을 먹어댄다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열매를 하루에 한 바구니씩 광주리째 먹고, 냉장고마다 선악을 분별하는 열매로 가득 차 있어서 냉장고 문만 열면 꺼내 먹는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미래를 향한 한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야 합니다. 미래를 향한 사람의 믿음을 바로 ‘꿈’이라고 부릅니다.
꿈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과 함께하시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미래가 그렇게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미래가 실제로 그렇게 될지 아닐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증명할 수 없습니다! 단지 멀리서 바라보며 아련하게 보일 뿐이며, 안개 속에서 꽃을 보듯 할 뿐입니다. 아련하게 보이는 것은 선경(신선이 사는 곳)과 같습니다. 왜 안개가 자욱하고 연기가 피어오르며 신비한 기운이 가득하겠습니까? 모든 것이 희미하고 몽롱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희미하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내다볼 수 있다면,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미래에 관한 일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며, 여러분은 바로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미래는 무엇으로 창조합니까? 꿈으로 창조합니다. 그러나 이 미래를 여러분은 얼마나 멀리까지 볼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3년, 5년 앞을 내다보면 잘 보는 것이고, 어떤 사람은 30년, 50년을 내다봅니다. 그러나 300년, 500년 뒤를 내다본다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자신의 유골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유골함이 어느 곳에 놓여 있고, 누군가 향을 피워주거나 꽃을 놓아둘 수도 있으며, 아니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어떤 곳에 묘지가 있고 500년 전의 무덤이 있다면, 그 무덤의 주인을 누가 알겠습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의 꿈은 영원 속에 있는 꿈입니다. 여러분은 3천 년, 5천 년 앞을 볼 수 있습니까? 《상하오천년(上下五千年)》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중화민족의 역사를 다룬 책인데, 앞선 2천 년은 다소 허구적인 부분이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 수만 년 전으로 가면 북경원인 시대에 이릅니다.
우리는 점차 꿈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요셉을 본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미래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까? 요셉은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그를 죽여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 그러나 죽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방해하든 꿈은 성취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번 장에서 요셉의 꿈은 곧 이루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결코 버텨내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고, 미래에 대한 꿈도 없으며, 긍정적인 판단도 없습니다. 설령 꿈이 있다 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게 다 뭐야, 개꿈이지. 가문의 구원이 된다느니, 장자의 축복이라느니 다 헛소리야’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렇게 불신으로 가버리면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사라져 버리는데, 어찌 미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수년 전 저의 꿈이 오늘날 이미 이루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십수 년이 흘렀습니다. 십수 년 동안 저의 꿈은 한 걸음 한 걸음 성취되었고, 저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일에 큰 열정을 품어왔습니다. 당시 어느 노목회자께서 저에게 “열심히 기도하고, 스스로 낳아 스스로 기르십시오(자립하고 자생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노목회자님의 이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제가 가장 잘 실천했습니다. 어쩌면 저보다 더 잘 실천한 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알기로는 제가 가장 철저히 실천했습니다. 그분이 영광스러운 교회의 비전을 전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에베소서》를 펴보니, 과연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비전에 대해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에베소서》를 읽을 때 글자는 다 알겠는데, 왜 한데 모아놓으면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도 공감하십니까? 책에 있는 글자는 모르는 글자가 하나도 없는데, 한데 모아두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가 기록되어 있었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그분의 지혜와 전능하심을 나타내실 것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이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천천히 해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조금씩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표현대로 하자면 조금씩 앞으로 꼬물거리며 기어가는 것입니다.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저 역시 그곳에서 천천히 기어가며 조금씩 꼬물거리며 나아갔습니다. 믿음만 있다면 미래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사람이 제가 직접 낳아 기른 사람들입니다. 비록 매우 힘들었지만, 자식을 기르는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믿음은 미래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여러분은 저에게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의 꿈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의 논리적 분석 속에 있지 않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미래에 대한 판단이 매우 부정적입니다. 환경이 좋으면 믿음이 생기고, 환경이 나쁘면 믿음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쓸모없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만약 누군가의 폐부를 찔렀다면 양해를 구합니다. 혹시 비슷한 점이 있다면 순전히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믿음의 작동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10전을 쥐고서 “이것은 10전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헛소리입니다! 지금 1원을 쥐고서 “이것은 1원이다”, 100위안을 쥐고서 “이것은 100위안짜리 인민폐다”라고 말한다면, 굳이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거기에 무슨 믿음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 데에는 믿음이 필요 없습니다. 믿음은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미래에 대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소망이 없다면 미래도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꿈조차 하나 없다니요.
만약 여러분이 “목사님, 저는 정말 꿈이 없습니다”라고 한다면, 저는 “우리 함께 눈을 감고 꿈을 하나 만들어 봅시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꿈을 꾸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질병의 고통 중에 있을 때, 저는 그에게 “당신은 반드시 치유받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건 불가능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우리는 미래를 향한 꿈을 품기 시작해야 합니다. 단지 이생뿐만 아니라 영원 속에서의 꿈이어야 합니다. 제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그날은 어떤 날이겠습니까? 제가 가장 바라는 날은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그날입니다. 여러분은 “그거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겠지만, 아닙니다. 그것은 멀리 내다보는 원대한 안목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죽으려 하는 것이 근시안적인 어리석음입니다. 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겠습니까? 멀리 보는 안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꿈속에서는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의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이 일을 생각하면 온몸에 힘이 솟구치고, 삶이 매우 흥왕해집니다! 보통 사람들은 저를 만나면 제가 참으로 생기 넘치게 살고 온몸에 에너지가 넘친다는 것을 압니다. 원대한 비전이 없는 사람은 차라리 죽는 것만도 못합니다!
영원 속에 꿈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꿈은 장자의 명분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것을 직접 얻지는 못했지만, 그는 장자보다 더 큰 꿈을 추구하여 얻어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장자의 직분 외에도 더 큰 직분을 창조하실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입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을 때, 싱가포르에는 대략 1제곱킬로미터마다 교회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더 개척하겠습니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충만한 교회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제가 매우 오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마땅한 교회를 찾지 못했고, 여러 교회를 가보았지만 다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있던 어떤 사람들은 떠났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가 “왜 다시 돌아왔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거기는 무슨 교회인지 문서 사역 하나 없고, 웹사이트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처음에 우리 가운데 오는 사람들은 대개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우리 함께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교회를 세워갑시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비록 제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바르게 세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 눈높이가 너무 높다고 말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교회는 원래 이러한 모습입니다. 제대로 되지 않으면 헐고, 헐고 다시 시작하여, 마침내 제대로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울 믿음이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믿음 없는 사람이라면 미래를 가질 수 없고, 하나님의 함께하심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없는데 어디서 꿈을 해석하는 능력이 나오겠습니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으면 꿈을 해석하는 능력이 생긴다
알아야 할 것은, 꿈을 해석하는 능력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설명하는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미래에 이렇게 될 것이고 저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대단한 일이며, 거의 신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에게 와서 이 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꿈을 해석하는 것은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입을 열어 선포하면 꽤 잘 들어맞고, 나중에 정말로 선포한 대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사흘 뒤에 목이 베여 죽게 된 것이 요셉의 해몽이 그의 미래를 결정지은 것인지, 아니면 그가 꾼 꿈이 미래를 결정지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요셉이 그가 복직될 것이라고 선포했다면, 어쩌면 정말 복직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요셉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 되십시오. 에휴, 제가 또 자랑을 늘어놓고 은근히 뽐내기 시작했으니 잠시 참아주십시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요셉이나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라고 묻겠지만, 정말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꿈이 있으면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임합니다. 영계에 속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꿈을 품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일들이 한 걸음씩 제가 믿은 대로 성취됩니다.
때때로 제가 사람들의 꿈을 해석해 줄 때가 있는데, 이 꿈 해석은 믿음의 작동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요셉이 사흘 뒤에 떡 굽는 관원장의 목이 잘릴 것을 정말 눈으로 보았습니까? 술 맡은 관원장이 사흘 뒤에 복직될 것을 정말 보았습니까?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으로 선포한다”는 이 말에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말하는 패턴을 파악하고는, 제가 “앞으로 당신은 참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고, 당신에게는 아름다운 미래가 있습니다”라고 하자, “목사님, 그거 믿음으로 하시는 말씀이죠?”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물어보면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닙니까? 그는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을 되는대로 지어내는 헛소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지어낸다고 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장차 당신은 탁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설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그만두십시오. 제가 그 말을 거두겠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앞으로 평범하고 찌질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저는 여러분이 믿음으로 선포하기를 권면합니다. 그것은 대단히 긍정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으면 꿈을 해석하는 능력이 생기며, 꿈을 해석하는 것은 믿음의 작동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는 “목사님, 이직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지금 얼마 받습니까?”라고 묻자 2,000위안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새 직장을 구할 때는 3,500위안을 요구하십시오.” 그가 “그게 될까요?”라고 묻길래, 저는 “당신은 분명 3,500위안의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구직에 나섰고, 정말로 3,500위안을 주는 직장을 구했습니다. 그 사람이 저에게 빚을 진 것 아닙니까? 그 3,500위안은 제가 믿음으로 선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허황된 말을 한 것입니까? 세상의 눈에는 헛소리 같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믿음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선포한 말은 미래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목사님, 일자리를 구하려고 합니다”라고 하길래, 저는 “3,500위안짜리를 찾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막 졸업하고 나와서 일자리를 찾을 때는 초봉이 2,000위안 정도라 꽤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3,500위안짜리를 구하라고 했는데, 이 결과는 제가 믿음으로 선포하여 나온 것입니다. 최근에도 몇몇 형제자매를 만나 “직장을 옮기려면 최소한 한두 단계는 건너뛰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다 인재이니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하기를 참 좋아합니다. “아! 당신의 사업은 점점 더 잘될 것입니다!” 요셉이 어떻게 꿈을 해석했습니까? 그는 믿음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작동시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망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은 모든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얻게 되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으면 꿈을 해석하는 능력이 생기고, 꿈을 해석하는 능력이 있으면 믿음의 작동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며, 미래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큰소리를 탕탕 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허풍을 아주 크게 떤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큰소리친 것들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멋진 호언장담입니까! 선포하고 나면 다 성취되었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바로 제가 그렇게 믿음으로 선포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저에게 빚을 진 셈인데, 갚아야 하겠습니까? 갚을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 빚을 갚고 싶다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바로 갚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고, 믿음의 사람이 되는 간증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어떤 자매는 매우 유능하지만 선전(심천)에서 일하며 한 달에 겨우 7,000위안을 벌고 있었습니다. 살기가 참 팍팍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매는 그 도시의 대입 시험 수석 출신이었습니다. 이런 인재가 월 7,000위안을 받고 일하다니 누가 하겠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적어도 2만 위안 이상은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정말로 한 달에 2만 위안 이상을 벌게 되어 제게 밥을 사겠다고 합니다. 사실 제게 밥을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믿음으로 전진하십시오. 꿈이 있는 사람, 믿음이 있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듣기만 해도 힘이 나지 않습니까?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 매일 성실하게 잘 해냈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일을 잘해서 옥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옥을 관리하는 일은 사실 고된 노동입니다. 감옥 관리자나 수감자나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매일 출근해서 남들이 갇혀 앉아 있을 때 자기도 앉아 있어야 하고, 밥조차 싸가지고 다녀야 하니 매우 힘든 노릇입니다. 결국 옥을 맡은 자가 진력이 나서 말했습니다. “요셉, 네가 맡아서 해라. 내 일을 네가 대신해라.” 요셉이 “그럼 당신은 무엇을 합니까?”라고 묻자, 그는 “난 너 하나만 관리하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요셉은 감옥을 총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관리하다 보니 꿈을 해석해야 할 필요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 일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 애굽 왕에게 득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창세기 40:1-3)
만약 요셉의 여주인이 그를 모함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곳에 들어올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이곳에 갇힌 사람들은 모두 거물들이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 떡 굽는 관원장, 총독, 장관 같은 자들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앞날을 봐주고, 저 사람의 꿈을 해석해 주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요셉이 이런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는 모르지만, 바로 이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 술 맡은 관원장의 직책을 결코 얕보아서는 안 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매우 막강한 고위직입니다. 느헤미야도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왕과 가장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온갖 기밀을 다 알고 있었고, 특히 각지의 고관대작들을 접대하며 술을 마실 때 술 맡은 자가 항상 배석했으므로 모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일이 참으로 기묘하게 배치된 것입니다.
꿈은 영계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영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눈에 돈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영적인 맹인입니다. 돈만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파멸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의 배후에는 악한 영(老马)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 영이 여러분을 죽도록 몰아가지 않겠습니까! 꿈은 영계에서 오는 것이며, 꿈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사람이라면 영계에서 어찌 작겠습니까?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사람들이 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더 길게 이야기하면 여러분은 제가 현혹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꿈은 영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만약 ‘영계가 어디 있어?’라고 여긴다면, 그런 생각이야말로 무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영계를 모르면 다 무지한 것이며, 세상은 알면서 영계를 모르는 것 역시 무지하여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가을 뒤의 메뚜기처럼 얼마 뛰지 못하고 겨울이 오면 다 끝나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영계를 모르면 비극입니다. 우리 중에 영계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 전, 우리 교회의 한 교구장이 자기 구역원을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호통을 치지 않으면 멍청하게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매는 남편의 아버지, 즉 시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아버지를 다른 곳으로 쫓아낼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악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해치는 짓입니다! 그 저주가 얼마나 깊겠습니까! 영계를 모르고, 축복을 모르며, 영적인 일에 너무나 무지하여 눈앞의 몇 푼 돈에만 눈이 멀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간섭하자니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렵고, 내버려 두자니 그녀를 망칠까 두려웠습니다. 우리도 참 힘듭니다!
꿈은 영계에서 옵니다. 사람이 꿈을 가지는 것은 영적인 사람이라는 증거이며, 믿음으로 꿈을 해석하는 것은 영적인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며, 미래의 영원 속에 있는 일까지도 환히 깨닫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복을 받습니다! 시아버지를 쫓아내다니, 패망할 짓 아닙니까? 나중에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자기도 쫓겨나 온전치 못할 것입니다. 저주는 대대로 대물림됩니다. 그녀의 시아버지가 과거에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당신이 그 악행을 저지른다면 당신 역시 결코 잘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증언할 수 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1962년에 돌아가셨는데, 저희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지극한 효성을 다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며느리이셨고, 시아버지를 너무나 잘 모셨습니다. 효심 깊은 좋은 어머니를 둔 것에 대해 저 역시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땡전 한 푼 없이 가난하셔서 우리 집에 오셨을 때 거의 거지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모시며 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빨래를 해드렸으니, 온 천하에 이토록 훌륭한 며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복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 후에 저를 낳으셨습니다. 어머니에게 제가 생긴 후로는, 돈이 없으시면 제가 돈을 드렸고, 편찮으시면 제가 기도해 드려 곧 낫게 해드렸습니다. 노년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고생도 겪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영계에 대해 잘 모르셨지만, 어머니가 행하신 그 일은 지극히 영적인 일이었습니다. 꿈은 어떻게 오는 것입니까? 꿈은 영계의 작동입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날 어머니는 꿈을 꾸셨는데, 거대한 구렁이가 피를 흘리는 듯한 큰 입을 벌리고 어머니를 삼키려 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고, 그 후 제가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늘 제게 “아들아, 너는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그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훗날 어머니가 점쟁이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 점쟁이가 우리 집에 오자마자 저를 가리키며 “이 아이는 장차 큰 복을 누릴 팔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복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꿈은 영계에서 옵니다. 만약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꿈을 꾸었다면, 영계에 혼란스러운 것들이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꿈을 ‘이상(환상적인 꿈)’이라 부르고, 마귀에게서 오는 꿈을 ‘악몽’이라고 부릅니다. 마귀에게서 오는 꿈은 미래를 논할 가치도 없으며, 그저 혼란스러운 쓰레기 더미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해석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꿈을 해석할 기회도 주신다
이 세상에서 벼슬하는 사람들은 점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승진하여 재물을 얻을 수 있을지 늘 미래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국가급 최고위 관료 두 사람이 요셉과 함께 엮여 알게 되었고, 감옥에서 동료 수감자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서로 전혀 모르던 두 사람이 우연히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면 동창이 되어 만남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두 사람이 군대에 입대하여 마침 같은 중대, 같은 내무실을 쓰게 되면 서로 알게 됩니다. 원래는 서로 아무 상관 없는 사이였는데,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요셉이 관리하는 감옥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그 감옥을 일사불란하게 잘 관리하고 있었기에,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모두 요셉의 관할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요셉은 감옥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종종 이 사람의 운세를 짚어주고, 저 사람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하루이틀 해본 일이 아니라 늘 해오던 일이었고 매우 숙련되어 있었기에, 이런 일은 그에게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그런데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들어왔으니, 다른 지방 장관 같은 자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고관대작들과 요셉이 함께 지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이곳에 갇힌 자들은 모두 고위 관료들이라 마치 중국의 진청(秦城) 고위직 교도소와 같았습니다.
어느 날 떡 굽는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이 각각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무슨 뜻인지 몰라 몹시 근심에 잠겼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이 꾼 꿈을 털어놓았습니다. 요셉이 말했습니다. “그런 것은 내가 풀 수 있습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합니까? 내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으니, 당신들의 꿈을 해석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그는 나중에 출옥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참으로 지혜로워서 술 맡은 관원장에게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나가거든 반드시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손에 잔을 드리게 되리이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창세기 40:9-14)
이것으로 연줄이 생긴 것 아닙니까? 국가급 고위 관료와 줄이 닿았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술 맡은 관원장은 오늘날로 치면 최고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최고위급 관료와 같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 술 맡은 관원장과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연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술 맡은 관원장과 관계를 맺었지만, 훗날에는 바로 왕과도 관계를 맺게 될 것이며, 이 역시 꿈 해석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훗날 술 맡은 관원장조차 요셉의 관할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일이 어찌 이토록 절묘할 수 있단 말입니까?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바로에게 죄를 짓고 정확히 요셉이 관리하는 감옥에 갇혔으니, 이 일을 두고 어디 가서 따지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연출이 아니라면 누구의 연출이겠습니까? 틀림없이 하나님이 연출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관계가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꿈을 기가 막히게 해석해 주자, 줄을 지어 너도나도 요셉에게 꿈을 해석해 달라고 찾아왔습니다. 길게 줄을 섰겠지만 《성경》에 다 기록할 수 없어 대표로 두 사람만 기록한 것이며, 결국 이 사건이 남게 되었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꾼 꿈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여러분도 머리에 떡 세 광주리를 이고 있는데 새들이 와서 광주리의 떡을 쪼아 먹는 꿈을 꾼다면, 그것은 개꿈인 줄 아십시오. 요셉이 그렇게 해석했기 때문에 효력을 발휘한 것이지, 요셉이 그렇게 풀지 않았다면 그 떡 굽는 자는 정말로 죽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꿈은 하나님께서 명백히 이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간 때부터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 총괄 관리자가 되기까지,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집안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그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나중에 여주인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지만, 요셉은 감옥에서도 관리하고 꿈을 해석하다가 마침내 조정의 중신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이는 3단 도약이었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연출하시며 꿈 해석의 기회를 주신 것인데, 중요한 것은 누구의 꿈을 해석해 주느냐 하는 점입니다.
황제 곁에서 가장 신임받는 총신의 꿈을 해석해 주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요셉에게 기회를 연출해 주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참으로 좋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보다 더 좋은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좋으나 하나님의 함께하심만은 잃어서는 안 됩니다. 돈, 집, 자동차는 없어도 되고, 그 어떤 것도 없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함께하심만큼은 결코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이미 선택한 가장 좋은 몫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으면 너무나 좋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는 수많은 기회가 열리게 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계획을 그르치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술 맡은 관원장으로 하여금 요셉을 잠시 잊게 하셨을 뿐이며,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바로 왕의 집을 다스리는 총리로 삼으시려는 더욱 위대한 계획을 준비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온 애굽을 다스리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실로 위대했습니다! 나중에 《성경》을 한 걸음씩 읽어 내려가다 보면, 결국 요셉의 꿈이 온전히 성취되지 않습니까? 만약 요셉이 가나안 땅 야곱의 집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그 작은 웅덩이 안에서 무슨 큰 인물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애굽으로 건너가 거대한 망망대해로 들어가 큰 물고기가 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애굽이라는 광활한 무대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은 한 걸음씩 성취되고 있었으며, 요셉이 꾼 꿈을 따라 한 걸음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영적인 세계 속에서 하늘에 속한 꿈을 소유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한 걸음씩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기 시작하고, 여러분이 믿는 바대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누구라도 여러분을 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를 잊지 않으시니, 우리의 사명과 삶이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통해 그분의 큰 능력을 나타내시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꿈이 있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꿈을 해석하는 능력, 곧 미래를 창조하는 능력을 소유하기 시작하십시오. 다른 모든 것은 없어도 되지만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우리를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이 한마디를 마음 깊이 새겨둔다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볼 때 아무리 보아도 형편없고 초라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하늘에 속한 꿈을 소유해야 합니다. 요셉처럼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십시오. “나는 이를 위해 태어났고 이를 위해 죽으며, 이를 위해 나의 모든 대가를 지불하리라. 설령 노예가 되고 감옥에 갇힐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사실 조금도 어렵지 않으며,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삶 속에서 한 편의 위대한 드라마를 연출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한 그릇으로 빚어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최근에 제가 전한 몇 편의 설교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면서 매우 큰 흥분을 느꼈고, 이번 장을 공부하면서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과 제가 영원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소망을 품고 있으며, 추구함과 갈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꿈이며,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걸어가는 매 걸음마다 하나님의 기이한 행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결론
결론을 맺겠습니다. 이번 장이 강조하는 한 가지 사실은 바로 ‘믿음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도, 어떠한 사람도 여러분의 미래를 빼앗을 수 없으며, 오직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 혹은 불신앙만이 미래를 결정합니다. 믿음은 여러분의 미래를 성취하거나, 불신앙은 여러분의 미래를 망쳐놓을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3년을 보냈고, 보디발의 집에서 10년 동안 노예살이를 했습니다. 그는 감옥 밑바닥에서 인생을 끝내지 않고, 오히려 감옥을 딛고 일어나 총리가 되었습니다. 믿음이 미래를 다스릴 수 있고, 미래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영적 법칙입니까!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믿음을 가지는 데 돈이 듭니까? 1원 한 푼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해 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창세기》 40장 본문
40:1 이 일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 애굽 왕에게 득죄한지라
40: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40:3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0: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40: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40: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40: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40: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40: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40: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40: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40: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40: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손에 잔을 드리게 되리이다
40: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40: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40: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40: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40: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40: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40:20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40: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40: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