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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열왕기상 16장 - 이상하게도 사람은 늘 저주 가운데 살아간다

2014-06-05 36,557 列王纪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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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王纪上16章-以色列王以拉
  • 1 耶和华的话临到哈拿尼的儿子耶户,责备巴沙说:
  • 2 “我既从尘埃中提拔你,立你作我民以色列的君,你竟行耶罗波安所行的道,使我民以色列陷在罪里,惹我发怒,
  • 3 我必除尽你和你的家,使你的家像尼八的儿子耶罗波安的家一样。
  • 4 凡属巴沙的人,死在城中的必被狗吃,死在田野的必被空中的鸟吃。”
  • 5 巴沙其余的事,凡他所行的和他的勇力,都写在以色列诸王记上。
  • 6 巴沙与他列祖同睡,葬在得撒。他儿子以拉接续他作王。
  • 7 耶和华的话临到哈拿尼的儿子先知耶户,责备巴沙和他的家,因他行耶和华眼中看为恶的一切事,以他手所做的惹耶和华发怒,像耶罗波安的家一样,又因他杀了耶罗波安的全家。
  • 8 犹大王亚撒二十六年,巴沙的儿子以拉在得撒登基作以色列王共二年。
  • 9 有管理他一半战车的臣子心利背叛他。当他在得撒家宰亚杂家里喝醉的时候,
  • 10 心利就进去杀了他,篡了他的位。这是犹大王亚撒二十七年的事。
  • 11 心利一坐王位就杀了巴沙的全家,连他的亲属、朋友也没有留下一个男丁。
  • 12 心利这样灭绝巴沙的全家,正如耶和华藉先知耶户责备巴沙的话。
  • 13 这是因巴沙和他儿子以拉的一切罪,就是他们使以色列人陷在罪里的那罪,以虚无的神惹耶和华以色列 神的怒气。
  • 14 以拉其余的事,凡他所行的,都写在以色列诸王记上。
  • 15 犹大王亚撒二十七年,心利在得撒作王七日。那时民正安营围攻非利士的基比顿。
  • 16 民在营中听说心利背叛,又杀了王,故此以色列众人当日在营中立元帅暗利作以色列王。
  • 17 暗利率领以色列众人,从基比顿上去,围困得撒。
  • 18 心利见城破失,就进了王宫的卫所,放火焚烧宫殿,自焚而死。
  • 19 这是因他犯罪,行耶和华眼中看为恶的事,行耶罗波安所行的,犯他使以色列人陷在罪里的那罪。
  • 20 心利其余的事和他背叛的情形都写在以色列诸王记上。
  • 21 那时,以色列民分为两半:一半随从基纳的儿子提比尼,要立他作王;一半随从暗利。
  • 22 但随从暗利的民胜过随从基纳的儿子提比尼的民。提比尼死了,暗利就作了王。
  • 23 犹大王亚撒三十一年,暗利登基作以色列王共十二年;在得撒作王六年。
  • 24 暗利用二他连得银子向撒玛买了撒玛利亚山,在山上造城,就按着山的原主撒玛的名,给所造的城起名叫撒玛利亚。
  • 25 暗利行耶和华眼中看为恶的事,比他以前的列王作恶更甚。
  • 26 因他行了尼八的儿子耶罗波安所行的,犯他使以色列人陷在罪里的那罪,以虚无的神惹耶和华以色列 神的怒气。
  • 27 暗利其余的事和他所显出的勇力都写在以色列诸王记上。
  • 28 暗利与他列祖同睡,葬在撒玛利亚。他儿子亚哈接续他作王。
  • 29 犹大王亚撒三十八年,暗利的儿子亚哈登基作了以色列王。暗利的儿子亚哈在撒玛利亚作以色列王二十二年。
  • 30 暗利的儿子亚哈行耶和华眼中看为恶的事,比他以前的列王更甚,
  • 31 犯了尼八的儿子耶罗波安所犯的罪;他还以为轻,又娶了西顿王谒巴力的女儿耶洗别为妻,去侍奉敬拜巴力,
  • 32 在撒玛利亚建造巴力的庙,在庙里为巴力筑坛。
  • 33 亚哈又做亚舍拉,他所行的惹耶和华以色列 神的怒气,比他以前的以色列诸王更甚。
  • 34 亚哈在位的时候,有伯特利人希伊勒重修耶利哥城;立根基的时候,丧了长子亚比兰;安门的时候,丧了幼子西割,正如耶和华藉嫩的儿子约书亚所说的话。

사람의 기억은 선택적이어서, 늘 선배들이 저지른 실수를 잊고 교훈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눈은 계속 아주 작은 한 부분에만 고정되어 한순간만 누리고 싶어 합니다.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현세의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이며, 그 결말은 반드시 매우 비참합니다.

생각해 볼 문제:

  • 당신은 기억력이 좋습니까? 어떤 일을 기억하면 사람이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되고, 어떤 일을 기억하면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까?

  • 여로보암의 비참한 결말을 보면서도 왜 바아사, 시므리, 오므리, 아합은 여전히 같은 실수를 저질렀습니까?

  • 당신이 아합 이후의 왕이라면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스리겠습니까?

사람의 기억은 선택적이다

“사람”은 참 흥미롭습니다. 《출애굽기》 시대를 보면,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주신 만나를 막 먹고 나서 곧바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저는 사역하면서 또 다른 부류의 사람도 보았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며칠 전 한 달 동안 아팠던 목을 위해 기도해 주었고 치유를 받았는데, 돌아서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왜 한 번도 하나님을 경험해 보지 못했을까요?” 제가 그 사람을 보며 말했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당신을 위해 기도했고 치유받지 않았습니까?” 사람의 기억은 참 흥미롭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선택적이며, 무엇을 선택할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신이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게 하는 일들을 기억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하는 일들을 자주 기억합니다.

사람은 늘 앞선 사람들의 결말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 장은 참 흥미롭습니다. 계속해서 왕위를 찬탈하고 살해당하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로보암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기억한 것은 여로보암이 22년 동안 왕으로 누리던 영광뿐이었습니다. 바아사 때가 되자 사람들이 본 것 역시 “가문을 빛내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바아사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나도 가문을 빛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시므리는 기회가 생기자 그의 왕을 죽였고, 그를 죽인 뒤에는 “가문을 빛내는” 그 7일 동안 사실 꽤 즐거웠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불에 타 죽는 순간을 맞이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 후 오므리 때가 되었는데, 오므리라고 달랐겠습니까? 그가 몰랐을까요? 사실 그는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사람의 기억이 참 흥미롭고, 매우 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의 눈은 그저 작은 부분들에만 주목합니다. 이것도 조금 보고 저것도 조금 보다가, 결국 그 왕이 어떻게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사실은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저주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리고 성을 건축한 일은 사실 저주를 받은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저주받을 일을 행하면서도 자신은 알지 못합니다. 저는 또 매우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오므리 집안, 시므리 집안, 바아사, 여로보암과 같은 사람들인데, 그들은 모두 자신이 매우 지혜롭게 행동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가 내 자리에 앉더라도 다 이렇게 결정하지 않겠어?” 여로보암이 생각했던 것도 이와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스라엘 백성이 유다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할 수는 없어.” 그 결과 그는 곧바로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사고방식도, 기억력도 매우 이상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사역할 때 이런 일들을 만나더라도 더 이상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저주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저 아주 작은 한 부분, “가문을 빛내는” 그 순간만 봅니다.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현세의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나중에 저는 또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현세의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현세의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순간, 매우 비참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은 돈을 벌고 가문을 빛내게 되면 먹고 마시고 즐기며 마음껏 누립니다. 그러다가 재앙이 닥치면 이미 늦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현세를 삶의 목표와 목적으로 삼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일단 이 사고방식을 따르게 되면 반드시 맹목적인 상태에 빠져 눈앞의 어떤 것도 보지 못하게 됩니다. 한 형제가 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버지의 눈에는 “나는 차를 한 대 사야 해”라는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차 한 대뿐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나를 전혀 이해해 주지 않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내 좋은 친구뿐이야.” 그 좋은 친구가 차를 사자는 자신의 생각에 동의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결말을 중요하게 여기고, 다윗을 본받으며, 영생을 귀하게 여기자!

사람이 일단 “현세를 삶의 목표로 삼는” 상태에 빠지면 그 결말은 반드시 매우 비참합니다. 그래서 《잠언》은 일을 볼 때 그렇게 작은 한 부분, 가문을 빛내는 그 순간만 보지 말고, 행위와 삶의 결말을 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의 행위와 삶의 결말이 좋지 않다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꽤 잘 지내고 가문도 빛냈는데, 결국 사형 집행 유예 판결을 받게 되었다면 그것이 좋겠습니까? 좋지 않습니다. 결말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만 탐하며 현세의 것들을 자랑하다가, 결국 죽을 때 비참하게 죽습니다. 죽고 싶지 않아도 죽어야 하고, 눈을 감지 못한 채 눈을 크게 뜨고 숨을 거둡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의미 있게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이제부터 인생의 생사에 관한 일들을 꿰뚫어 보기 시작하기를 권면합니다. 여로보암의 집안은 결말이 한눈에 보이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보지 못합니다. 이 시므리는 왕이 된 지 7일 만에 불에 타 죽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에게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면, 같은 결정을 하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다시 시작해도 나는 같은 결정을 할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불에 타 죽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죽음의 방식입니다. 사실 성경은 사람이 행위와 삶의 결말을 보게 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결말을 보게 되면 머리가 매우 맑아지고, 세상의 많은 일들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도 사람의 결말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아직 인생의 과정 가운데 있지만, 우리가 다윗을 본받는다면 우리의 결말은 반드시 아름다운 결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인생의 길을 다 걸어갈 때, 인생의 생사에 관한 모든 일을 꿰뚫어 보고 기쁨으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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