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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고린도전서 4장 - 내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나 바울을 본받으라

2024-02-28 45,197 哥林多前书 哥林多前书04章 哥林多前书第四章 效法保罗 效法耶稣 神是主人 目标清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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哥林多前书04章-使徒的工作
  • 1 人应当以我们为基督的执事,为 神奥秘事的管家。
  • 2 所求于管家的,是要他有忠心。
  • 3 我被你们论断,或被别人论断,我都以为极小的事;连我自己也不论断自己。
  • 4 我虽不觉得自己有错,却也不能因此得以称义;但判断我的乃是主。
  • 5 所以,时候未到,什么都不要论断,只等主来,他要照出暗中的隐情,显明人心的意念。那时,各人要从 神那里得着称赞。
  • 6 弟兄们,我为你们的缘故,拿这些事转比自己和亚波罗,叫你们效法我们不可过于圣经所记,免得你们自高自大,贵重这个,轻看那个。
  • 7 使你与人不同的是谁呢?你有什么不是领受的呢?若是领受的,为何自夸,仿佛不是领受的呢?
  • 8 你们已经饱足了!已经丰富了!不用我们,自己就作王了!我愿意你们果真作王,叫我们也得与你们一同作王。
  • 9 我想 神把我们使徒明明列在末后,好像定死罪的囚犯;因为我们成了一台戏,给世人和天使观看。
  • 10 我们为基督的缘故算是愚拙的,你们在基督里倒是聪明的;我们软弱,你们倒强壮;你们有荣耀,我们倒被藐视。
  • 11 直到如今,我们还是又饥又渴,又赤身露体,又挨打,又没有一定的住处,
  • 12 并且劳苦,亲手做工。被人咒骂,我们就祝福;被人逼迫,我们就忍受;
  • 13 被人毁谤,我们就善劝。直到如今,人还把我们看作世界上的污秽,万物中的渣滓。
  • 14 我写这话,不是叫你们羞愧,乃是警戒你们,好像我所亲爱的儿女一样。
  • 15 你们学基督的,师傅虽有一万,为父的却是不多,因我在基督耶稣里用福音生了你们。
  • 16 所以,我求你们效法我。
  • 17 因此我已打发提摩太到你们那里去。他在主里面,是我所亲爱、有忠心的儿子。他必提醒你们,记念我在基督里怎样行事,在各处各教会中怎样教导人。
  • 18 有些人自高自大,以为我不到你们那里去;
  • 19 然而,主若许我,我必快到你们那里去,并且我所要知道的,不是那些自高自大之人的言语,乃是他们的权能。
  • 20 因为 神的国不在乎言语,乃在乎权能。
  • 21 你们愿意怎么样呢?是愿意我带着刑杖到你们那里去呢?还是要我存慈爱温柔的心呢?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어서 《고린도전서》 4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이 두 권의 성경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세히 살펴보시면 저의 언어 스타일이 사도 바울과 매우 닮아 있고, 목양하는 스타일도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주제를 붙잡아야 합니다. 저는 이 장의 주제가 과연 무엇이어야 할지 줄곧 고민했습니다. 지난번 성경공부 때는 아비와 어미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주제를 잡는다는 것은 이 장의 모든 내용을 하나로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글을 쓴 사람의 머릿속에는 분명한 주제가 있고, 각 단락을 통해 그 주제를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그가 몇 가지 핵심 포인트를 목록으로 나열하여 하나씩 나누어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약간의 혼란을 주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우리가 글을 읽거나 쓸 때 그렇게 훈련되도록 돕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장의 내용을 하나로 꿰뚫을 수 있는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는 나 바울을 본받으라.” 듣기에는 바울이 매우 큰소리를 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이 한 장 전체는 사도 바울의 어떤 점을 본받아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4:16)

글을 읽을 때 반드시 주제를 찾아야 한다고 여러분께 권면하고 싶습니다. 주제를 잡지 못하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 장을 읽다 보면 이 말 저 말을 두서없이 늘어놓는 것 같아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지고, 사도 바울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제를 찾고 나면 모든 내용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오늘 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본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무엇을 본받으라고 하는지 보십시오. 이 16절 이전의 말씀들은 모두 본받아야 할 점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라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려 하고, 성도가 몇 명인지에 집착하며 사람이 많으면 대단한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남김없이 다 보여주셨습니다. 본받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먼저 전수와 계승을 말해야 합니다. 화인사명신학(华人命定神学)을 자세히 알아보시면, 본받음과 계승이 매우 중요한 두 가지 핵심 개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인지, 바울이 한 일인지를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만약 아니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본받고 있는 것입니까? 마귀를 본받는 것이라면 패망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매우 훌륭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며, 오직 우리 하나님만이 주인이십니다. 앞 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하나님의 성전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조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바로 성전을 짓는 사람이었으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섬김과 책임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의 주인이 아니라 성전을 짓는 자에 불과했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신 것입니다. 신약 성경 전체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일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행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이요 조심하여 건축하지 않아도 화가 미칠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 세대에 왜 수많은 비극이 목회자들에게 일어납니까? 그들이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우리도 알 수 없으며, 성경적 근거도 찾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제가 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할지 모릅니다. 저의 연구 결과가 다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는 함부로 엉뚱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늘 스스로에게 경고합니다.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향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가라.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시는 일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평생 하나님을 섬겼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나를 모른다고 하신다면, 도대체 무엇을 한 것입니까? 저는 사도 바울을 본받으려고 참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예수님을 본받으려고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을 닮지 않게 일하고 나서 얼굴이 흉측해지고 영적으로 비뚤어진 눈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자업자득입니다.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바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무엇입니까? 그 비밀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목사로서 저는 사실 많은 사람보다 훨씬 더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인데, 그렇게 열심히 해도 제대로 맞게 해낼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 안에는 온갖 것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치명적인 것이 바로 육신입니다. 육신에 속한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세상적인 안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가 어떤 꼴로 살아가겠습니까? 재앙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이 귀신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그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유튜브에 댓글을 남겼습니다. 마침내 이렇게 좋은 자료가 있는 곳을 찾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저의 성경공부와 설교 듣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데, 며칠 전 유튜브 댓글에 위가 아파서 제가 가르쳐준 대로 기도했다고 적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위가 풀리고 위통을 일으키는 귀신은 물러가라고 명령했더니, 방귀를 몇 번 뀌고 나서 위가 풀렸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작은 일에 충성하면 큰일에도 충성하게 됩니다. 반드시 발을 땅에 딛고 하나님의 교회를 굳건히 세워야 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본받음과 계승입니다. 계승이란 완전히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며, 곧 충성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을 온전히 본받는 것인데, 사도 바울이야말로 예수님을 가장 훌륭하게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포인트에서 말하는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세워야 하며, 예수님을 본받고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린도전서》 4:1-2)

2. 판단받는 것은 매우 작은 일이다

예수님을 본받고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판단받는 것을 대단히 큰일로 여긴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선악을 분별하는 함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종종 다른 사람들의 ‘훠궈 안줏거리’가 되곤 합니다. 모임이 끝나자마자 몇몇 사람이 훠궈 집에 가서 처음에는 소고기, 양고기를 넣고 끓이다가, 점차 저를 안줏거리 삼아 잘근잘근 씹어댑니다. 만약 제가 선악을 분별하며 반응했다면 욕을 퍼붓고 괴로워하지 않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제가 뒤에서 욕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의아해하지만, 누군가 고자질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내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보고했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지극히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판단받는 것은 매우 작은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신선도 아니고, 얼굴에 털이 난 것도 아니며, 머리에 뿔이 돋거나 등 뒤에 날개가 돋아난 것도 아닙니다. 겉모습도 볼품없고 말도 투박하며, 하는 일마다 이러쿵저러쿵 지적받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판단하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어떻게 말하는지 보십시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고린도전서》 4:3)

사람들에게 판단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가 되는 것에 비하면, 다른 일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이렇쿵저러쿵 떠들어대며 바울이 돈을 갈취한다고 말하는 것도 흔한 일이었고, 사람들이 저더러 돈을 긁어모은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이 제가 정말로 돈이 아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나중에는 헌금의 의미를 모르면 아예 헌금하지 말라고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왜 헌금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자격도 없으면서 한참을 고민하다 헌금하고 나서는 마음속으로 괴로워합니다. 헌금의 의미도 모르고 바치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제가 당신의 헌금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속이 쓰릴 텐데, 굳이 왜 그런 짓을 합니까? 목회자로서 사람들에게 판단받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며, 저에게는 밥 먹듯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앞에서 험담을 하다가 제가 뒤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뒤돌아보고는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것들은 다 사소한 일입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린도전서》 4:4)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남들이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이 길을 걷고, 릭 조이너의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The Final Quest)》을 읽으면서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평지에서 피 흘리며 싸우고 얻어맞아 멍투성이가 되면서 늘 패배하곤 했습니다. 그때 남들의 판단에 너무 신경 쓰면 몹시 고통스럽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반드시 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하며 판단받는 것을 아주 작은 일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린도전서》 4:5)

여러분이 바울을 본받는다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이며, 많은 일들이 명백히 드러날 것입니다. 저의 생각과 뜻은 하나님 앞에서 투명할 뿐만 아니라, 귀신 앞에서도 투명하며 길가의 개들도 다 압니다. 믿기지 않는다면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모를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무엇을 바라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목표를 잃어버리곤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고린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을 어떻게 험담하고 모함했는지가 바울의 귀에까지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울을 돈을 사랑하고 돈을 갈취하는 자라고 말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사실 바울은 그들에게서 실오라기 하나 취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두 손으로 자신뿐 아니라 동역자들의 생계까지 책임졌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목표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람은 살아갈 때 반드시 목표가 명확해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해지면 갈팡질팡하지 않게 되고, 전략 또한 명확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수많은 명확한 전략에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목표의 명확함, 전략의 명확함, 방법의 올바름’입니다. 목표가 확고하면 목표와 전혀 상관없는 일들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됩니다. 남들이 째려보든, 침을 뱉든, 한마디 던지든 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이런 일들을 다 겪지 않으셨습니까? 방금 말씀드린 목표의 명확함, 전략의 명확함, 방법의 올바름이라는 세 마디를 꼭 기억하십시오! 어떤 분들은 제 말이 사업에도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하시는데, 저 역시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하시니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심을 받은 것은 사람의 마음에 품은 은밀한 생각들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드러내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고 직설적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우리가 행하는 일들을 통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에게 계속해서 불행한 일만 생긴다면, 보나 마나 마음과 생각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수많은 질병에 걸려 낫지 않고 반복된다면, 그 역시 마음과 생각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은 마음과 생각의 반영입니다. 만약 체면을 차리는 것과 같은 온갖 세상적인 것들에 얽매여 있다면, 반드시 눌리게 되고 귀신을 불러들여 온갖 질병을 앓게 됩니다. 혹은 남에게 손해를 볼까 봐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부당한 이득을 챙기면 좋아하다가 챙기지 못하면 안달하는 사람이 바로 고통스러운 사람입니다. 집안에서나 사회에서나 인간관계가 온전할 리 없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스스로 교만해지지 말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4:6)

어떤 사람은 대단하고 어떤 사람은 형편없다고 생각한다면, 자기가 무슨 재판관이라도 된 줄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안목으로는 아무것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를 참 잘하셨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기는 깨닫지도 못했다면, 이것이 얼마나 교만한 상태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청지기일 뿐 심판관이 될 수 없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똑똑히 듣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점차 훈련을 받아, 밖에서 무언가를 보고 들을 때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 경영 기법을 하나님의 말씀인 양 여기며 그럴듯하게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기업 경영 기법으로는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지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이 풀이나 나무나 짚으로 교회를 세운다면 불이 나타나 태워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불 가운데서 건져냄을 받아야 하며, 건져내지 못하면 완전히 불타버릴 것입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고린도전서》 4:7)

이것이 바로 제가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스스로 발명해낸 적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글자 하나도 여러분이 만든 것이 없으며, 만약 있다면 그것은 분명 오타일 것입니다. 발명한 적도 없고 모든 것을 배워서 얻었으면서, 도대체 무엇을 자랑하며 교만해한단 말입니까?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4:8)

어떤 이들은 기업 경영 기법을 조금 배우고 사람의 지혜를 약간 얻었다고 해서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도 된 줄 압니다. 최근에 저는 ‘능력 중심주의’에 대해 깊이 연구해보았습니다. 능력 중심주의를 숭상하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축사를 통해 자유케 될 것이지만, 물론 많은 이들이 그런 영에 사로잡혀 떠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능력 중심적인 사람이라면, 자유케 되든지 아니면 쫓겨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스스로 교만해지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능력 중심적이라서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낙심하고 괴로워하며 제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괴로워하는 이유는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이며, 다툼과 비교와 시기심이 모두 교만해지려는 욕망 때문에 떼를 지어 몰려드는 것입니다.

어떤 목회자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늘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세우려 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꾸며 유명한 목사, 곧 ‘스타 목사’로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안에 있는 지혜는 유명한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오직 전심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는 것뿐입니다. 남에게 판단을 받든 말든, 능력이 크든 작든 그것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저 역시 스스로 교만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내가 지금 바르게 하고 있는가? 제대로 하고 나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늘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에, 결국에는 바르게 고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체면 따위를 추구하지 않으므로 교회 밖으로 나가도 걱정이 없습니다. 애초에 어떤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애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성경을 열심히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 교회를 세우는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교만해져서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마십시오. 누군가는 제가 늘 다른 목사님들을 비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분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뿐입니다. 실제로 자신을 유명한 목사로 만들려는 이들이 있고, 엉터리로 목회하는 이들도 정말로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과 함께하지 않으시므로 여러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린도전서》 4:9)

우리가 가장 끝자리에 놓여 모든 사람을 섬기게 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 동역자들이 본받고 계승하도록 훈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우리 목회자 동역자들이 저를 많이 닮았다면, 그것은 다 저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실력이 뛰어나 직접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고자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저 역시 본받기를 원하며, 어쩌면 제가 그들보다 잘 본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아 예수님과 바울을 직접 본받기 힘들다면, 저를 본받으십시오. 어떤 이는 제가 너무 큰소리친다고 탓할지 모릅니다. 말이 다소 과격하게 들릴지라도, 결코 저의 교만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교만하지 않은 모습을 본받으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4.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리석은 자가 되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린도전서》 4:10-13)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리석은 자로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기꺼이 손해를 보려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으려면 기꺼이 손해를 보는 법을 본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똑똑함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이 관리가 되면 좋은 관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탐관오리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부패한 관리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겠습니까? 세상에는 똑똑한 자들이 많아서, 돈을 좀 횡령해도 괜찮고 돈은 남의 손보다 내 손에 있는 게 낫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똑똑함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간사한 상인들이 참 많습니다. 미장일을 하던 사람이 나중에는 자기가 중간 브로커가 되어 일감을 따오고 사람들을 부려 수수료를 챙기며 장사꾼이 되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고 생각합니다. 상인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돈을 벌지 못하면 상인들은 목사를 바보 취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있으며,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돈을 벌 수 있는데도 벌지 않는 것을 바보 같다고 여기며, 바울에게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돈은 벌었을지 몰라도 영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지, 돈을 낚는 것이 아닙니다. 물고기가 돈이고 돈이 물고기라면,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쏟는 그 열정과 정성만큼 영혼을 얻는 데 쏟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하늘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주리고 목마르며, 욕을 먹고, 째려봄을 당하며, 친히 손으로 일하며 온갖 수고를 겪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행히 저는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약 게으른 사람이었다면 너무나 고통스럽게 살았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와 그에 합당한 가치관을 확립하십시오. 세상에 속한 가치관을 세우지 마십시오. 세상적인 가치관을 세우면 세상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충성스러운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생각을 새롭게 조정하고, 자신이 과연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분주하게 살다가 하나님의 축복을 다 잃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최근 어떤 분이 고객을 만나느라 바쁘다고 했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 대신 일을 선택했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그에게 권면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의 열매는 바로 우리 논리 체계의 결과물입니다. 진정으로 목양에 마음을 쏟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만약 목양에 있어서 진정으로 바울을 본받고 그러한 목표와 뜻을 품고 있다면, 여러분이 가장 먼저 내려놓는 것은 사업이나 직장일 것이며 가장 먼저 붙잡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일 것입니다. 이 말이 여러분 내면의 가치 체계와 너무나 심하게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어떤 논리 체계가 유익합니까?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돈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5. 아비와 어미의 마음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계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4:14-16)

이 말씀은 대단히 진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라는 음성이 여전히 우리 귓가에 맴돕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생선을 구워 드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1:15-17)

예수님께서는 세 번 연속으로 양을 치라, 먹이라, 어린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직접 귀로 들었던 베드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듯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던 바울은 그 세대를 뛰어넘어 친히 예수님을 뵙고 그분의 분부를 들었습니다. 저 역시 이 시대를 뛰어넘어 예수님의 분부를 들었으며, 그것은 바로 아비와 어미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라는 것입니다.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않습니다. 아비와 어미의 마음을 품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린도전서》 4:15)

하나님께서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를 세우는 모든 목표가 단순히 스타 목사 하나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완전히 무의미해집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역의 열매입니다. 그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우리가 정말로 충성스러운 청지기인지, 하나님의 양 떼를 제대로 먹이고 잘 돌보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먹이라’와 ‘치라(목양하라)’는 이 두 단어는 저에게 커다란 자극을 줍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오늘날까지도 저는 우리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어떻게 목양하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스승이 되기는 좋아하지만, 아비나 어미가 되기는 싫어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성장하기를 바라기에 그 과정에서 반드시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내가 너를 성장시키려 하는데 네가 성장을 원치 않는다면 몇 마디 꾸짖게 될 것이고, 그 말은 듣기에 결코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않습니다. 화인사명신학 안에서 우리 모든 목회자들은 이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아비와 어미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여러분 또한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6.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어 판단받는 것을 지극히 작은 일로 여기고, 교만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리석은 자가 되고, 아비와 어미의 마음으로 섬기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권능이 여러분의 삶에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짊어질 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권능에 있습니다. 이 시대에 누가 말을 제일 잘하느냐고 묻는다면 누군가는 저를 꼽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사기꾼들의 말솜씨를 당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기꾼들이야말로 말을 제일 청산유수처럼 잘합니다. 아비와 어미의 마음으로 하는 말은 듣기에 매우 거북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나간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능이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교만하게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증언해주셔야만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어디를 가든지 여러분의 몸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광채가 머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고린도 교회로 달려가 자신이 유명한 목사라고 떠벌리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의 행동을 보십시오. 사기꾼이 말을 제일 잘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행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과 닮았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그 사람도 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문제를 얼마나 명쾌하게 정리했는지 보십시오. 오늘부터 우리도 바울을 본받기 시작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임재와 권능이 반드시 여러분의 삶에 나타날 것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제 마음에는 늘 깊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한 형제가 결혼한 후 교회를 떠나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있는 것이 자신들의 단란한 가정생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떠날 때 제가 그 형제에게 암에 걸린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그분들은 우리 교회에 남겨두겠다고 했습니다. 전부 제게 떠넘긴 것입니다. 2년도 채 되지 않아 여든을 넘어 아흔이 다 된 노인분이 온몸이 찢어질 듯 아프다며 가족을 시켜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이미 2년 동안이나 통증에 시달렸는데, 그 외손자와 외손녀 중 누구 하나 돌보지 않았고 함께 기도해 주기는커녕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거나 돌볼 능력이 없어서, 이런 작은 귀신 하나조차 쫓아내지 못한다면 그저 무능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능력이 있으면서도 돌보기 싫었던 것이든, 아니면 돌볼 능력이 없었던 것이든 간에 두 경우 모두 대단히 악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권능에 있습니다. 제가 기도해 드려 그분이 나았지만, 이후에는 또다시 돌보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런 자는 자기 어머니와 외할머니조차 안중에 없고 오직 자신의 안락한 삶과 노인의 돈을 어떻게 자기 주머니로 빼돌릴까 하는 궁리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전서》 4:20)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고린도전서》 4:19)

행동으로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행하지 못하는 자는 그저 허풍만 떨며 자신이 대단하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은 그런 허풍선이들의 말을 듣고 바울이 가르친 도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쓸 때까지도 그들은 여전히 육신에 속한 자들이어서 육신에 속한 사소한 일들만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태복음》 16:23)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적인 삶만 좇을 뿐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곧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권능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본받았을 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여러분이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를 이처럼 본받는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능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7. 목양의 대화법

본받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본받은 바를 분명하고 똑똑하게 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고린도전서》 4:21)

바울의 이 목양적 대화법은 상당히 매섭습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4:8)

왕 노릇을 하고 나서도 수많은 문제가 터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서 벗어났으니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참으로 왕이 되기를 원한다고 비꼬며 말했지만, 그들을 남다르게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이러한 대화법에는 강인함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바울이 이런 말을 할 때 듣기에 다소 씁쓸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씁쓸함이야말로 약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읽고도 거꾸로 받아들여 자기를 칭찬하는 줄 착각하지만, 이 말의 참뜻을 제대로 깨달을 때 비로소 변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냥 ‘착한 사람’으로만 남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으며, 목양의 사명을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부모 된 분들은 자녀를 훈계할 때 똑 부러지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에 권위와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이러한 대화법을 실제 사례들을 통해 하나하나 가르쳐 드릴 것입니다. 우리 내면이 강건해지면 이런 말들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울이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겠느냐고 한 것처럼, 단호하고 매서워야 합니다. 본받음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권능이 당신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고, 누구에게도 대가를 바라지 않았기에 하나님을 힘입어 내면이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반드시 강건해야 합니다. 아비와 어미의 마음으로 말한다는 것은 빈말이나 사탕발림이 아니라, 진정한 부모의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훈육하는 데 문제가 있음을 봅니다. 우리 교회의 한 사역자가 자녀를 데리고 기도하고 성경공부 하는 것을 왜 못 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안 되는 이유는 분명 요구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집에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고, 가정의 기둥이며, 영적 권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자녀는 부모인 당신의 손으로 양육을 받고 있으니, 당연히 그들에게 바른 요구를 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부모들이 아비와 어미가 아닌 그저 스승 노릇에 머물고 있으며, 더욱 한심한 것은 스승의 역할마저 포기한 채 학교에 외주를 줘버려 아이들을 점점 더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변해야 합니까? 바울의 화법을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단호하고 독해져야 합니다!

저는 이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번 모진 말을 쏟아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일도 없습니다. 하늘은 제가 떠받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원한다면 나를 따라 제대로 가십시오. 만약 함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싫다면, 가고 싶은 만큼 멀리 떠나가도 좋습니다. 축복합니다.” 뒤에서 결코 저주하지 않겠지만, 스스로 저주를 자초하는 것은 저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왜 이토록 연약해져서 마치 남에게 빚이라도 진 것처럼 굽신거립니까? 우리가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 진짜로 그들에게 무언가를 빚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에 어떤 것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바울의 대화법입니다.

어떤 집에서는 부모가 손자처럼 쩔쩔매고 아이가 집안의 아버지 노릇을 합니다. 엄마는 하녀처럼 굴고 아이는 상전처럼 행세하니 모든 질서가 엉망진창입니다. 그러니 귀신이 그 집안에서 판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제 권면을 한마디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을 우리의 사명으로 삼으십시오. 이것이 나의 생명입니다. 다른 것은 다 타협할 수 있어도, 오직 이 한 가지만은 결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한 번뿐인 인생을 살러 왔으니, 오직 우리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의 노후와 마지막을 책임져 주시는 분이며, 청년의 때나 장년의 때나 노년의 때나 주님의 얼굴을 뵙는 그날까지 우리가 의지할 유일한 분이십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으며, 복잡한 얽매임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다가 도중에 본질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저 역시 바울의 대화법을 본받아 따끔한 말을 덧붙이겠습니다. 오늘날 여로보암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나라의 통치에만 정신이 팔려 나라를 다스리는 데만 골몰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 누구를 섭섭하게 하더라도 하나님을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나 쓴소리를 할 수 있지만, 오직 나의 하나님만을 두려워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까지 저를 지키셨고 아무런 탈도 없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기만을 원하며 남에게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아무것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이 세상도, 세상에 속한 정욕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거하십니다. 아멘! 오늘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본받음과 계승이 화인사명신학의 핵심 가치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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