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咱们讲了《创世记》的第五章,第五章讲了人活着活着就死了,讲了一大堆的人名。反正我也不认识他,你也不认识他,咱们大家谁也不认识谁。这些人名读完了有啥意思?其实就总结出来这几条:人活着没有什么盼望,活着活着就死了,活多少年都差不多一样。只有一条路就是与神同行!人辛苦的原因就是神咒诅地,所以神要给我们安慰,就是要解决咒诅与祝福、生和死的问题。
我猜大家肯定会问一件事:挪亚成了我们的安慰?洪水来了就挪亚一家八口活了,还成为我们的安慰?好扯啊!大家有没有这种困惑?大家是不是觉得,人都死了还安慰啥?我告诉大家,就是因为都死了才安慰呢!那个世代只有挪亚一家活下来,其他人都被神用洪水给干掉了。
挪亚一家怎么就成为安慰了?因为挪亚一家活下来了,这不就成了安慰吗?大家得知道,神要的就是挪亚这样的人。挪亚一家八口,就因着挪亚是一个讨神喜悦的人得救,然后其他的人就都被灭掉了,你说挪亚是安慰不是安慰?幸亏有了个挪亚,要没有挪亚,今天咱们都没了。也就是说那是一条活路,其他的都不是,挪亚成为了我们的安慰。
那你说其他人都死了咋办?关你啥事?如果你活在那个世代,包括今天这个世代,你不是个挪亚,还真够你喝一壶的。你还打抱不平呢?你跟神较什么劲呢?将来这个地方不再是丢臭鸡蛋、臭鸭蛋,这个地方丢的都是核弹、氢弹啊,反正什么弹都够你喝一壶的。那为什么呢?因为人活得太认真了!人活得太认真了就去丢了一个核弹,我让你欺负我。我给你丢一枚,你丢我也丢,丢完了以后大家都完蛋。如果你活得还挺有盼望,我活得也挺有盼望,咱们就坐下来商量商量别丢了,丢完了以后大家都得完蛋。
所以咱们开始琢磨一件事:走挪亚的那条路才是一条活路。挪亚是耶稣来之前的人,现在耶稣已经来了,你要走哪条路?走耶稣那条路!就是效法耶稣,效法使徒保罗。我们华人命定讲的就这么点东西,真的没啥玩意,也真的谈不上什么高大上或者太复杂的东西。如果你在世上很有盼望,你就好好去追求你的盼望。我要给你浇一瓢冷水多不好意思啊!你还要上哈佛大学,耶鲁大学呢,还要上顶尖的大学呢;还要追求梦想呢!有的姐妹还梦想找到自己的白马王子呢;然后照一照镜子,发现自己的脸也不这么好看,就等着赚够了钱去整容;整完了容,好找一个白马王子!脑袋里装的全是这个。
刚才我解决了一个困惑,大家继续把困惑拿来。如果你不是挪亚,你是挪亚世代的那些不信的人,也差不多。挪亚的那个年代,洪水来之前,大家都在干啥?要去买地,要去发展高端产业园,要去买个产业,要去开垦这块土地,要去使股票上市……就是干这些,结果洪水一来,全玩完。如果是今天这个世代,主耶稣来了也都一样全完。
挪亚的日子怎样,人子的日子也要怎样。那时候的人又吃又喝,又娶又嫁,到挪亚进方舟的那日,洪水就来,把他们全都灭了。(《路加福音》17:26-27)
所以说华人命定神学不太讲究吃喝,也不太讲究又嫁又娶。你愿意嫁你就嫁,你愿意娶就好好娶,我们讲究的只有一件事:与神同行,成为一个有命定的人,服侍这个世代。我们千万不要掉到又耕种又建造的里面去。后来我发现人越想着那些东西就越容易沮丧。
Q1:老师,我想有命定,但我总胜不过我的肉体,怎么办啊?
这东西容易啊!人只要想胜过肉体,神一定帮助你,神一帮助你,你就胜过你的肉体。这不是一件很难的事,千万不要在那喊:我要有命定!我要有命定!最后这个想要命定的心就把自己给卷了。轻松一点好不好?放松一下,如果实在不行的话你就跟我学,心里默念:老子,老子,老子。
如果人心里头不难受,那活得多有盼望啊!人活在肉体当中难受是很正常的,就算我们有圣灵果子的,也时常在肉体当中感慨,这很正常。咱别生气、别卷,其实你那股劲我能理解,那股劲就是今天我们说的卷,就是较劲。其实不用,一看透了,很多东西就不重要了。然后我们就找一个很重要的事。
你不是想有命定吗?就得需要继续把那些东西看透。为啥难受呢?就是又看不透那些东西了。跟我一样,我就是一会看透了,一会又看不透了。看透了轻松了,看不透的时候就纠结这个那个的,一会人就乱了套了。所以你们说得对,人就是不能够离开神的话,人离开神的话一会就懵了。你只要活在神的话当中,你就会发现越来越好;人一离开了挪亚这条路,一活得很认真了就完了。老板说什么了,老板为什么把这个客户给他不给我,为什么这个顾客被他给抢去了,为什么这个,为什么那个,一会儿就闹腾死了。为啥?就是不知道活着活着就死了。
也许明天洪水来了,这些东西就算了,那洪水还没来,就不能算。你抓我脖领,我抓你脖领;你揪我头发,我揪你头发的。不但人和人掐,国家和国家也掐,就是难受。所以要常常提醒自己,这些都不重要,不重要了还掐啥啊!我告诉大家,不是神很需要你服侍,是你服侍完了你好成长。如果没有咱们这块臭豆腐,神照样托着宇宙万有。
Q2:只有挪亚一家与神同行是吗?
《圣经》上是这么说的。那个世代充满了强暴,强暴完了以后,人就在家磨刀,别人也在家磨刀。今天你发明一个炸弹,明天我发明一个炸弹,大家都可认真地去发展武器了,最后武器刚做到一半,洪水来了。这挪亚是靠着神活着。如果那个世代还有另外一个挪亚,神也一定会给他预备。挪亚跟大家讲:别再这么整了,别再这么卷了,跟着我吧,这个世界就要过去了,没看见我在建方舟吗?大家讲:你脑子有病吧?傻呀?难道我们要听你忽悠吗?看你那傻劲,还把船建在山顶上,那是干啥的?你这船怎么出溜到海里去?
人家还在这困惑呢,认为挪亚就是个精神病。说不定,如果那个世代有教会的话,就把挪亚定成是异端了,认为挪亚肯定是疯了,要完蛋了,肯定脑袋不好使。大家都在笑话他呢,结果洪水来的时候,神奇的事情发生了。洪水要来临的前七天,挪亚一家八口人,进到船里面以后,神就把门给关上了,别人进不来了。
大家一看,他们一家都进去了,还不知道要发生什么事呢。一天、两天过去了,什么事情也没发生,大家还认为他们一家是疯了,进去船里面开动物园了。今天这个世代,有些人一看华人命定神学,都认为这群人是要完蛋了,已经不知道怎么活着了,还说服侍养生,肯定是脑子不好使,一定会有人这么说。有一些教会的人,牧师讲的他不听,就听咱们的,他们牧师还在教会里做说明会,讲解什么是华人命定神学。
为什么我会知道?因为咱们有一些弟兄姐妹会来跟我说:老师,他们在讲解我们华人命定神学。他们不让我们看你们的网站,也不让我们听,说这东西不行,老批评人家的教会,老批评我们。如果像他们说的,那还能活吗?还说要有命定,那日子还过不过了?那玩意又不能当饭吃,大家得小心点。有这事吧?有这事。那个年代有很多人脑袋很清醒,清醒地看到挪亚一家进了方舟,等洪水一来,他们还想抓住方舟,可是方舟外面建得很光溜,浪这么大,要想抓住方舟难啊!悲剧了。
Q3:老师,我想有命定,为什么总害怕?能不能教一点具体能够轻松的方法?
什么叫命定?命定的先决条件就是看透生死。如果人生和死都不怕了,其实害怕的问题就好办了。如果死都不怕,那还怕啥?大家可以慢慢操练,将来我会开一门课,解决人一惊一吓的问题。比如她在那里切菜,老公从外面回来,啪的一下,一惊,刀就甩出去了。你说得多吓人?怕啥?如果你怕后背有人,那你就背对着墙,眼睛看着不就好了。一惊一吓的人,里面还有很多垃圾是需要清理的,最需要清理的就是人怕死。
具体能够轻松地方法很容易。我问问大家:如果你明天就要死了,你今天会较劲吗?人之将死,其言也善。想着我明天要死了,昨天跟我大姑子不愉快,前天还跟婆婆吵了一架,怪不好意思的,让她们来,我跟她们道个歉。如果你早点知道这事不重要,你至于会在那里较劲吗?你今天不较劲了,那日子照过。不信,你自己试一试。你放轻松了以后,你会发现啥事也没有发生啊!有人说:我不行。我说:那你能不能放松一分钟?放松了一分钟,发现啥事也没发生。那有一分钟就可以有两分钟,有两分钟就可以坚持五分钟。
大家得看透,有些问题就好了。我劝你们要看透,有时候我还得劝自己要看透呢!我不看透我难受,你不看透,我猜也肯定难受。你说:真的好使吗?人来到世上是谁养的?是神养的。人来到世上不是你自己养你自己,是神养你,你信不信?你得相信是神养着你!所以,你就可以轻松,轻松完了,你再去做事,你当然舒服了,不就从劳苦愁烦里面出来了吗?一想,什么都不重要了,不就没事了。
Q4:强暴的具体表现有哪些?
比如说,今天我在你家丢个鸡蛋、鸭蛋啥的,明天你在我家泼一口漆,都是这个。一整就一群人拿刀去砍了。也不知道最近的唐山事件法院判了没有?在烧烤店里吃着,就有人挨揍了,也有人挨判了。倒霉啊!闲着没事,你干那事干啥?这就是强暴。这个世界有一些生意是你不能做的,要不你死都不知道怎么死的。你知道不?那个生意是人家大家族干的,你如果成了人家的对手以后,你就会发现,这个生意你做不了。我教你现在要放松,如果你不听,不用我教你,你就彻底放轻松了。你如果在大街上摆个摊,没点路子,你都干不了,你得交管理费。强暴就是为了钱。
Q5:老师,《圣经》里讲的充满强暴的意思,就是过小日子一样的意思吗?
不是。你的好日子是以别人不好的日子为代价。大家有听过割韭菜的说法吗?一个国家老割别人国家的韭菜,就是为了自己过好日子。如果天天让别人过苦日子,那不是来气吗?将来有一天,有可能你的日子也不好过了。所以,大家要知道只有靠神才可以解决问题。如果你依靠神,就不会依靠以别人不好的日子为代价了。依靠剥削,你是黄世仁,我是杨白劳,有一天就会有人来收拾你!
Q6:老师,我也知道要看透,跟别人说要看透的时候,好像自己可明白了,但事情发生的时候还是难受,还是没看透,和真的看透不是一回事,好像不行。
不是不行,是行。如果你完全没看透比这糟多了,要不你怎么能留到今天呢?你来华人命定神学好几年了,我要求这么高,你能熬到今天,你还是挺有两下子的,是不是?那两下子就是大家发现,还是看透比较好。虽然今天不是看得特别透,十层已经看透五层了,再整下去就看透六层了,到十层的时候你就成老子了。但是,有的时候又像糊了一层纸一样,又不透了。正常,就连我也这样!但是,人聪明的话一会儿就醒悟过来了,因为人不醒悟过来就会难受。人活得像该隐似的,整天就会难受,现在明白了吧!所以,大家不要以为自己没看透,其实已经看透很多层了。
Q7:雅各对法老说:我寄居在世的年日是一百三十岁,我平生的年日又少又苦,不及我列祖在世寄居的年日。老师,雅各是有命定的人,他这样说是真的觉得苦还是谦让?有命定的人如果回头看,会怎样看待自己的一生?是满意的、有价值的、有永生盼望的吗?
雅各一生经历的事很多。一个人一生经历的事是一回事,面对这些事的反应又是另外一回事。雅各跟法老说他的一生又少又苦,那是真实的写照。当雅各面对这些又少又苦的东西的时候,他手里紧紧抓住的是神,知道这些东西没多大意思,所以他跟法老讲的是心里话。大家不要以为,一个有命定的人天天都喜乐平安,天天享受好吃好喝的,家人顺利,从来不会发生什么事。那不叫有命定,那不叫好,遇到一点事一定会崩溃。
Q8:老师,我家人希望万事顺意,一遇到什么东西坏了就着急,整晚睡不着,叹息为什么不顺利。我该如何开导家人?
这就是看不透,要常常引导家人把活着这事看透。前几天我有点小郁闷,我有一个用了四五年的手机坏了,后来发现是电池出现问题,我就买了个电池想把它换上。拆到一半的时候发现电池冒烟了,满屋子都是烟,吓坏了。不但电池烧了,手机也烧了,好好的手机被我糟蹋了。我很郁闷,之前我还在说,我准备要把这手机用12年,却发生这样的事,怎么那么不顺利呢?后来我想到,其实雅各一生也常常发生这些事,人如果有命定就把这些屁事看透了。
人有没有命定反应不一样,没有命定的人的反应就是希望世上一切都是好的,可是即使全都是好的,他也能挑出毛病来。所以关于看透,我们还有大量的工作要去做。不要去图什么顺利不顺利,要图我们是不是一个刚强的人。有命定的人里面有一股刚强劲,不管什么坏事来临都可以变为好事。
Q9:老师,我常常为自己学习慢,记性差难受。一学习就紧张,脑袋就懵。这样没有与神同行对吗?我要怎样去对付及操练?
这事很容易。人一学习就着急,一着急就麻烦了。为什么会着急呢?因为人看不透。一旦看透了,着什么急?着急的人神很难与你同行的。与神同行的人把很多事情都看扁了。学习不好没关系,这么多年不也活过来了吗?在我们当中的,有智慧的不多,尊贵的也不多,但是神却透过我们这些不太有智慧的彰显神的智慧。你试试看,慢下来,别着急,记不住就记在本子上,经常看看。重要的是,我们里面的脾气和习惯要改。
Q10:老师,以诺是如何依靠神的,才能活着被神取去呢?
他里面的逻辑体系是从神而来的。一个人看生与死,看活着这事跟神的看法一样就好办了,以诺做事照着神的心意去做,神就把他取去了,所以他没有死,其他人都死了。
Q11:老师,那些神喜悦的人,比如大卫、挪亚、雅各和摩西,《圣经》里只记载了他们很厉害、有命定的一面,记录他们对付肉体,不得胜的时候比较少。是不是只有这种天生就选择刚强,有命定,看透的人才能得胜,得神喜悦?我们这种较差,天生就不符合神心意的人就比较难?我看《圣经》里很少记载这样的人是如何得胜的。
大家千万别以为大卫、雅各、挪亚、摩西这些是很厉害的人,其实不是。如果你打开《诗篇》第六篇,大卫说:我因唉哼而困乏,我每夜流泪,把床榻漂起,把褥子湿透。(参《诗篇》6:6)。他就是这样一个人,常常觉得很辛苦,不知道明天还能不能活着,天天都在逃亡中。挪亚也一样,可能造着方舟,突然发现有的地方不对,拆了又重来,这样的事很多。摩西为什么进不了应许之地?因为神不让他进,一有事脾气就上来了,就像我似的,拿棍子一砸磐石,结果把进应许之地的机会给砸没了。其实他们都是软弱的人,都在肉身当中较劲。非常辛苦的!
你们可能看我很轻松,其实我很辛苦的,但是我很清楚一件事,我没有办法靠自己!为什么我很会活?是我知道我做不了什么,很多事我管不了,除了交托就只能交托。我的脾气不好,就容易吃亏,所以经常难受,就常常只能靠着神的灵再次刚强起来。其实人什么时候靠自己,什么时候就软弱,什么时候靠着神,什么时候就刚强起来。大家一定经历过这些。所以大卫、挪亚、雅各、摩西,他们全都放下了自己去依靠神,不再较劲,就舒服了,就不那么难受了。大家要好好去学啊。你可能也有控制不住的时候,那就是没搞对,赶快悔改。
Q12:老师,我读《圣经》有好多都读不明白,有人说读的时候会有圣灵带领读懂,那是不是我身上没有圣灵的原因?
不是。读东西读不懂,因为你总是希望一下子就懂。你别被我给忽悠了,我能读懂是因为我坚持了那么多年。我有时候坚持好多个月、好多个星期,就为了能明白《圣经》里面说的一句话。华人命定就是要让大家成为一个有性格的人,那是神要在我们身上的美好旨意。别以为一下读不懂就是神的灵不在我身上,我没有神的灵,我很笨;一下没记住就觉得自己不行,记性不好。这些都是很坏的习惯。
Q13:我每天都在想得着命定,但早上总是有沮丧的情绪围绕,我知道这样不好,我总是计较别人说的话,心里就痛苦,现在特别不想跟别人交往,我该怎么办?是不是没有信心的体现?
不是,实际上是没有看透,看透了就好了。你被打击得不够狠,如果一个人被打击到万念俱灰,还能活下来,就能够看透;如果一个人对世上活着的事看不透,一定活着很辛苦。一旦看透了,这世上的东西没有什么意义,还计较干啥?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5장을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제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 이런 장을 읽게 되면, 누구누구가 누구를 낳고, 또 누구누구가 누구를 낳았다는 내용은 전부 건너뛰고 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읽어도 무엇을 읽는지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몹시 난감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공부하지? 정말 번거롭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정말 좋으십니다. 제 눈을 열어 주셔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정말 쓸데없는 말이 없습니다. 어떤 장을 읽을 때 반복되는 단어가 계속 나온다면, 그 반복되는 단어들이 모두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곧바로 이 일을 정리해 낼 수 있었고, 심지어 사람이 살아가다가 죽는 일까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참 유머러스하십니다. 하나님은 직접 “너희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다. 살다가 죽으면 끝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이렇게 기록하셨습니다. 누구누구가 몇 년을 살고 아들을 낳았으며, 몇 살까지 살다가 죽었다. 또 누구를 낳고 몇 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탐구하고 있는 문제가 아닙니까? 사실 사람이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꽤 흥미롭습니다. 어떤 사람은 900년 넘게 살았고, 어떤 사람은 800년 넘게 살았고, 어떤 사람은 700년 넘게 살았고, 어떤 사람은 600년 넘게 살았으며, 어떤 사람은 300년 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900년 넘게 산 사람이 300년 넘게 산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은 하나의 착각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 장을 다시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전에 설명했을 때는 여러 번 핵심을 붙잡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요점을 전혀 잡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마치 총으로 과녁을 쏘는 것처럼 정확히 10점에 맞히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이번에는 그 점수를 과녁의 중심에 좀 더 가깝게 맞혀 봅시다. 그래서 저는 이 장의 주제를 《수고와 고생 가운데 있는 위로》로 정했습니다. 왜 수고와 고생 가운데 있는 위로일까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살아가는 데 소망이 너무 큰 것 자체가 오히려 문제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살아가는 데 큰 소망을 품고 특별히 진지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결국 내卷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잘 관찰해 보십시오. 정말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간단합니다. 사람이 살다가 죽는다는 것과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괴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참 유머러스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주 긴 글을 기록하셨습니다. 누구는 몇 년을 살고, 자녀를 낳아 기르다가, 결국 죽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수고와 근심일 뿐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앞으로 아직 많은 세월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세월은 정말 빠르게 지나갑니다. 지금 아이들이 우리가 어릴 때보다 세월을 더 빠르게 보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지금 제 나이의 세월이 어린 시절보다 몇 배나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낍니다. 어느새 저도 꽤 나이가 들었습니다. 설령 앞으로 20년을 더 살 수 있다 해도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코로나 시기도 어느새 몇 년이나 지나갔지 않습니까? 이런 속도로 계속 간다면 정말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매우 짧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공허해집니다. 그러나 어릴 때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이 큰 소망처럼 보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하면 몹시 괴로워합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다는 것과, 살아가는 것이 결국 헛되다는 사실을 모르면 삶을 아주 심각하게 여기게 됩니다. “아, 900년 산 사람이 600년 산 사람보다 300년을 더 얻었고, 600년 산 사람은 300년 산 사람보다 300년을 더 얻었구나!” 정말 그런 것입니까? 사실 한평생은 수고와 근심에 불과합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근심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이 아들이 여호와께서 저주하신 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수고하며 손으로 일하는 모든 일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하였더라.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의 향년은 칠백칠십칠 세였고 죽었더라. (《창세기》 5:28-31)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소망이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주 큰 소망이 있다고 느낀다면, 여러분은 아마 가인일 것입니다. 살아 있는 것이 아주 현실적이고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서로 다투고 싸웁니다.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달걀 하나를 던지면, 내일 여러분이 나에게 오리알 하나를 던지고, 그렇게 서로 던지다 보면 밤에는 수많은 썩은 달걀 냄새가 퍼져 여러분을 죽도록 괴롭힙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면 또 핵폭탄 같은 것을 만들어 냅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사람이 너무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서로 멱살을 잡고, 서로 머리카락을 잡고, 서로 붙잡고 때리며 난리를 피웁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소망이 없다
여러분은 반드시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진지하게 살면 죽을힘을 다해 움켜쥐고 죽을힘을 다해 싸우게 됩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저것을 해야 하고, 또 석유 가격이 경쟁력을 갖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많은 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이 너무 진지하게 살면 가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놋과 쇠로 기구를 만드는 사람과 수금과 퉁소를 다루는 사람의 조상이 되고, 아주 대단한 사람이 되지만 결국에는 모두 죽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제 충고를 한번 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500년 후로 시간 여행을 해서 자신의 유골함을 다시 찾아보려 한다면, 아마 찾지도 못할 것입니다. 청명절이 되어도 여러분을 위해 지전 한 장을 태워 주거나, 유골함을 정리해 주거나, 꽃 한 다발을 꽂아 줄 사람조차 없을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오래 시간 여행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100년 후만 되어도 아무도 여러분의 죽음을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실 큰 소망 없이 살아갑니다. 소망이 너무 크면 가인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 오히려 간단해집니다.
살아 있는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전도서》 9:5-6)
때로는 저처럼 진지한 사람도 살아가다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쉽게 잊습니다. 그래서 멈추어 서서 자신에게 너무 진지하게 살지 말라고 일깨워야 합니다. 그러면 내려놓을 수 있고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며칠 전 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낙담을 느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생님도 그러실 때가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럼요! 나도 여러분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을 하든 하지 않든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온몸이 괴롭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왜 살아가면서 의미가 없다고 느낄까요? 라멕처럼 살다가 살아가는 것이 의미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이 아들이 여호와께서 저주하신 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수고하며 손으로 일하는 모든 일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하였더라.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더라. (《창세기》 5:28-30)
여러분도 저와 강하게 공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상태가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낙담감이 찾아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지도 않고 입을 것이 부족하지도 않은데, 삶이 어둡고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우리는 노아를 본받아야 합니다. 노아는 매우 수고하고 고생하지만 위로받지 못하는 상태를 해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주제인 ‘수고와 고생 가운데 있는 위로’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런 느낌은 사실 매우 좋지 않습니다. 왜 살아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스로 정리해 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살아가지만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하면, 밖에 나갔을 때 햇살이 밝고 새들이 노래하며 정원의 꽃들이 오색찬란해도 내 눈에는 모두 흑백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살다가 낙담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알고 싶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개념은 이것입니다. 사람이 살다가 더 이상 계속 살고 싶지 않게 되고, 살아가는 데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사명이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곧 우리가 그 일을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유일한 살 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그때 저는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흑백 같았습니다. 마음속에 살아갈 목적도 소망도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차라리 짧게 사는 것이 낫겠다고 느꼈습니다. 수고하고 고생하는 시간이 줄어들 테니까요. 빨리 끝낼 수 있다면 목숨을 끊어 해방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억울했습니다.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 아직 분명히 정리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죽는다면 정말 아쉬울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하나님은 저의 소망과 위로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 일을 ‘사명’이라는 두 글자로 요약했습니다.
우리에게 사명이 있고 왜 살아가는지도 알게 되었지만, 때때로 무력감이 우리에게 내려앉기도 합니다. 한때는 매우 진지하게 살다가, 또 한때는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력하겠습니까? 그들은 한동안 가인이 되어 온종일 놋과 쇠로 기구를 만들며 매우 진지하게 살아갑니다. 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과외를 시켜 1등을 하게 하려고 했는데, 결과가 2등이면 아이는 곧 낙담하여 라멕이 됩니다. 이렇게 부모와 아이는 진지함과 낙담 사이를 계속 오갑니다. 잠시 일어났다가 다시 누워서, 계속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편히 눕고 싶어도 제대로 눕지 못하고, 악착같이 경쟁하고 싶어도 이기지 못하니 전체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계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장은 우리에게 사람이 살아갈 유일한 길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명을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장을 설명하다 보면 에녹에 이르게 됩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창세기》 5:21)
므두셀라는 라멕의 아버지이고, 라멕은 노아의 아버지입니다. 에녹은 노아의 증조부입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세기》 5:22)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에녹은 왜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을까요? 그전에는 무엇을 했을까요? 아마 그전에는 윗몸일으키기를 하며 한때는 소망이 있다가, 한때는 소망이 없고, 또 한때는 악착같이 경쟁하며 사람들과 경쟁했을 것입니다! 그저 계속 애를 쓴 것입니다. 젊을 때는 근심의 맛을 몰라서 괜히 신음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제가 지어낸 것입니다. 므두셀라를 낳고 나서, 아이가 죽을 듯 말 듯, 살 듯 말 듯한 것을 보았다고 합시다. 아버지든 어머니든 아이가 죽게 된 것을 보면 자기 자식이니 다시 악착같이 달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무료하게 있을 시간도 없고, 윗몸일으키기를 시작하며 모든 낙담을 잊게 됩니다. 여러분,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길 잃은 개처럼 살아가게 되면 오히려 소망이 아주 분명해집니다. 그의 소망은 다음 끼니에 배불리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5:23-24)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이때 분명히 하늘과 땅을 향해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인생과 죽음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 가운데 에녹만 가장 짧게 살았습니다. 그 시대에 365세라면 단명한 사람에 속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셔서 사라졌습니다.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에녹이라는 사람이 없고, 에녹은 영생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오직 하나이며,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세히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성경 뒤에는 또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더 이상 그들을 다루지도 않고 기록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노아의 가족에 관한 내용만 기록합니다. 노아 아버지의 조상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이 계보를 통해 사람이 어떻게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어떻게 벗어났는지 아십니까?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섬기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제가 좋아졌습니다. 알고 보니 섬김은 자신을 살리는 일이었고, 사명이었습니다. 섬김은 섬김을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 세대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 세대를 섬기면 어떤 상태가 됩니까? 여러분이 그 세대를 섬기는 사람이라면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고, 하나님도 여러분과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이 날마다 여러분과 함께 계시므로 낙담하는 날이 줄어듭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왜 여러분에게 섬기라고 권합니까?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왜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어야 합니까?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왜 사명이 있어야 합니까? 사명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명감이 강하지 않으면 낙담하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반대로 사명감이 강하면 낙담하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낙담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든, 하다 보면 자신이 편안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살아 있는 가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러분에게 녹취와 문자 사역을 맡긴다고 해서, 제 녹음 파일을 여러분이 문자로 옮기는 일이 꼭 필요해서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것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여러분이 녹음을 들으며 글로 옮기는 동안 낙담하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다. 경쟁하는 시간이 줄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시간이 줄며, 시간을 모두 올바른 일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목양을 맡기는 것도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지루하고 무의미한 일을 조금 덜 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사람이라면 인간답게 살아 내야 합니다. 사람이 짐승처럼 살아간다면 그것은 욕하는 말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살고도 짐승의 모습만 드러냈다는 뜻이니, 정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사에 관한 일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가인의 길로 가게 됩니다. “나는 최고의 대학에 가겠다”라고 하며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여러분에게도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싶은 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꿈을 가지고 있든,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도 모두 재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이 사실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꿰뚫어 본 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꿰뚫어 보지 못하면 수고와 손으로 하는 고생 가운데서 공부하고, 죽을힘을 다해 애쓰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한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축복과 저주입니다. 수고와 고생은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동행하면 축복과 저주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렇다면 저주는 무엇입니까? 내가 하는 일마다 귀신이 와서 방해하는 것, 그것이 저주입니다. 일을 매우 힘들게 하게 됩니다. 반대로 축복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사람이 고생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가며 고생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셨습니다. 이렇게 저주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이것이 또한 핵심입니다.
그의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이 아들이 여호와께서 저주하신 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수고하며 손으로 일하는 모든 일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하였더라. (《창세기》 5:29)
여기서 ‘우리를 위로한다’는 것은 고생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이유 없이 낙담하고, 자주 매우 힘들며 수고하고 고생하는 느낌을 갖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신 후, 사람은 이 땅에서 살아가며 저주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오래 살수록 고생하는 시간도 많아질 뿐,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면 오늘 저는 분명 이 세상에 살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너무 힘드니 짧게 사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이미 내렸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을 알고 나서 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확증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저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을 아무런 소망이 없는 일로 보게 되었고, 저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렇게 힘있고 확고하게 주님을 믿는 이유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축복과 저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축복과 저주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삶이 아주 좋고 소망도 많은데 굳이 하나님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아주 잘 살고 소망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때는 성을 세우고, 어느 때는 쇠를 제련하고, 이것저것 폭탄을 만들어 보관하다가 안 되면 하나를 던집니다. 그런데 그것이 소망입니까? 사람이 살다가 죽는 것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주 큰 소망이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고생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하나님의 저주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암에 걸리고도 자신은 저주를 받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합니다. 그러나 입으로 저주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과 목회자들은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헛되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가정, 자녀 등 온갖 것을 만들어 내지만 결국 여러분도 죽고 그들도 죽습니다. 아담부터 라멕까지 모두 죽었습니다. 900년을 살든, 600년을 살든, 300년을 살든, 100년을 살든 결국 그렇게 끝납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시대에는 한 입 베어 먹고 바로 쫓겨났는데, 오늘날 많은 사람은 그것을 한 바구니씩 집으로 가져와 한 바구니씩 먹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신다
하나님은 수고와 고생 가운데서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가 수고하고 애쓰는 가운데 위로가 되어 주십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창세기》를 공부하는 방식이 예전보다 더 명확해졌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셨습니까? 저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실 때 가장 먼저 해결하시는 것은 저주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하셨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아담부터 노아, 아브라함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람이 저주에서 해방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여러분은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저주에서 벗어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벗어나지 않겠다고 하며 여전히 가인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아직 대학에도 가지 않았는데 최고의 대학에 가겠다며 칭화대, 베이징대, 심지어 하버드에 가서 박사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박사 학위를 받고도 여전히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의 저주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관념 가운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 땅과 사람과 모든 것을 저주하신 데서 비롯됩니다. 저주의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가 받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에녹과 동행하신 것처럼 우리와도 동행하십니다. 그러면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평생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반드시 평생 부족함이 없습니다.
구약에서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 자신의 몸조차 자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자 모든 것이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살아가는 문제에 관해서도 이전에는 죽도록 일했지만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지금은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하듯이 하므로 살아가는 것이 번성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뜻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하며 땅에서 번성하고 창대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로가 아닙니까?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번성하고 창대해지는 사람입니다. 가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꽤 번성할 수 있지만, 고생하며 살아갑니다. 그가 고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그가 고생하는 부분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문제, 저주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예수님께서 모두 우리를 위해 해결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죽음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과 죽음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분별하지만 아무도 그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생사도 모두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여전히 매우 번성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니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그들은 경쟁에서도 이기지 못하고, 열심히 힘들게 살아도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가볍고 순조롭게 하면서도 번성하고 창대해집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노아의 몸 안에, 노아 안에 잉태된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후 노아의 계보를 따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거쳐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 전체는 《창세기》부터 《마태복음》까지 예수님의 족보를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 그분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씀하실 필요도 없으셨습니다.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들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죽었으면 죽은 것입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부터 영원한 소망 가운데 살아가기로 결단할 것인지 여부뿐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몇 사람이 죽는지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지 않으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더 대단하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더 이상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맙시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을 중요하게 여겨서 무엇하겠습니까?
이 길을 가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이미 생사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면,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갑자기 낙담이 찾아오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며, 누워 있어도 잠들지 못하고 일어나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온몸과 마음이 매우 낙담하고 가라앉아 괴로울 때에는 일어나 섬기십시오. 그러면 낙담이 사라집니다. 사람에게 소망이 없는데 어떻게 낙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장은 우리에게 하나의 출구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수고와 고생 가운데 있는 위로이며, 저주의 문제와 축복의 문제, 살아가는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니 주님을 잘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5장 본문
5:1 아담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5: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5: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5: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5:6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5:7 셋은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5:9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5:10 에노스는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11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5:12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5:13 게난은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14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5:15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5:16 마할랄렐은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5: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5:19 야렛은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23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더라.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5: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5:26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5: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5:29 그의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이 아들이 여호와께서 저주하신 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수고하며 손으로 일하는 모든 일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하였더라.
5: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31 그의 향년은 칠백칠십칠 세였고 죽었더라.
5: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