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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은혜와 진리 시리즈 (1) -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2026-08-02 890 恩典和真理系列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우리는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어떤 새로운 시리즈일까요? 바로 '은혜와 진리'입니다. 첫 번째 강의 제목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입니다. 여러분은 이 은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은혜란 거저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저는 주님을 믿었던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정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에 아무런 소망이 없었고, '살아서 뭐 하나?'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정말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러다 교회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예배를 마치고 나왔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들어갈 때만 해도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흑백이었고 잿빛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악한 영에 가려져 캄캄했던 것입니다. 만물이 흑백처럼 보여 아무런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느껴지는 그 감각은 참으로 솔직합니다.

하지만 예배를 마치고 나왔을 때, 풀밭이 어쩌면 그렇게 푸르고, 햇살은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지, 하늘의 흰 구름과 땅 위의 꽃과 나무들이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사람의 느낌이란 참으로 신기합니다. 저는 '이곳이 왜 이리 신기할까?' 생각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찬양을 부르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마치 방황하던 아이가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깊이 감동시킨 한 가지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 찬양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비록 그분은 하늘의 왕이시지만, 우리와 친구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내용의 영어 찬양이었습니다. '내가 누구관대?' 그렇지 않습니까? 싱가포르에서 리(Lee) 씨 가문에 줄을 댈 수만 있다면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그를 알아도 그 사람은 나를 알지 못합니다. 전 세계가 덩샤오핑을 알고 리콴유를 알지만, 리콴유가 나를 아느냐 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 당시 저는 참 비참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왕께서 친구가 되어 주신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훗날에야 저는 이것이 거저 주어지는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린 것이 없는데도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로 좋으신 분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은혜를 받는다'는 개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표현은 우리에게 많은 혼란을 주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다가 점점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신혼기(허니문 기간)'가 지나서 그렇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란 참 이상합니다. 우리 중 어떤 형제자매님들도 저에게 자꾸 무언가를 주려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해서 제 앞에 와서 자랑하고 싶어 하지만, 솔직히 제 눈에 차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참으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래서 제가 줄곧 전하는 이 복음은 거저 받는 은혜의 복음입니다. 여러분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형편없고 너무나 절박하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처음에 주님을 믿었을 때 받은 은혜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거저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너무나 어리석게 믿습니다. "목사님, 제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유익과 복을 바라는 것은 너무 기복적이고 이기적인 것 아닌가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어쩌려고요?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고 싶습니까? 당신의 그 초라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도대체 무엇을 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기복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 유익을 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어제 한 형제를 만났는데, 그 형제를 보자마자 "하마터면 못 만날 뻔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날에 거의 죽을 고비를 넘길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 형제가 저에게 쏟아내듯 간증을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은혜의 간증이 아주 수두룩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십니까? 어느 날 저희 회사에서..." 그는 회사의 최고 책임자(1인자)입니다. 그 사람도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아십니까? 그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1인자는 은혜가 필요 없을 것 같습니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회사 전체가 정말 잘되고 있는데,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하루는 한 부하 직원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온몸을 벌벌 떨며 들어왔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에요? 아파요?" 하고 물으니 "아니요, 생리통이 너무 심해요. 매달 극심하게 아픈데 약을 안 챙겨왔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형제가 "이리 와요, 사무실에서는 곤란하니 내 차로 갑시다" 하고 차로 데리고 갔습니다.

차 안에서 제 기도 녹음 파일을 15분 동안 틀어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목사님의 기도 음성을 15분 동안 틀어놓았더니 생리통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완전히 나았습니다!" 낫고 난 후 형제가 기도 음성 몇 개를 보내주었는데, 직원은 "밤이나 내일 다시 아프면 어쩌죠?" 하고 걱정했습니다. 다음 날 출근해서 어땠을까요? 아무렇지도 않고 아주 멀쩡했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전하는 복음은 은혜를 얻는 복음이며, 거저 받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여직원은 평소에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면 전혀 믿을 것 같지 않은 표정을 짓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겉보기엔 믿음이 좋아 보여도 이야기해 보면 건성으로 대답하기 일쑤인데, 이 직원은 전혀 믿을 것 같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땠습니까? 매번 이런저런 말씀을 듣고, 필기하고, 요약 정리까지 하면서 아주 진지해졌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수십 세가 된 사람이 겪는 생리통은 10대 초경 때부터 시작되어 수십 년 동안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폐경 때까지 아픈 사람도 있습니다. 평생 매달 휴가를 내야 하고 진통제를 달고 삽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도 선악을 심하게 분별하는 자매들 중에 생리통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하면 오는 사람마다 다 낫습니다. 깨끗이 낫습니다. 제 설교를 듣는 여러분 중에도 치유받은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묻겠습니다. 그 여직원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주셨을까요? 왜 그녀를 치료해 주셨을까요? 우리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헷갈리고 변질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자꾸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드릴까요? 무엇을 드시고 싶으세요?" 하나님을 무슨 병원에 입원한 환자 취급하며 '맛있는 것 좀 사다 드릴까요?' 하는 식입니다. 이런 말이 얼마나 듣기 거북합니까?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아무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직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지금 수많은 자매님들이 "저도 생리통이 나았습니다! 다 나았습니다!"라고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형제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습니다. 그는 원래 회사의 3인자였는데, 1인자가 퇴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3인자일 때는 할 일도 별로 없고 자리만 지키는 편이라 일도 많지 않아서 날마다 문서 사역을 했습니다. 교회에 온 뒤로 매일 문서 사역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역을 하다 보니 그가 1인자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의 스토리가 참으로 신기합니다.

왜냐하면 2인자가 어떻게든 1인자가 되려고 기를 썼는데, 심장병이며 온갖 질병이 생겨 감당을 못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형제가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열두 지파 중의 유다처럼 거저 얻은 것입니다. 그렇게 최고 책임자가 된 후, 그 회사는 랭킹을 매기는 시스템이었는데, 별로 대단한 것을 한 것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주셔서 꼴찌에서 상위권으로 올라갔고 실적도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러니 은혜를 받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제가 어제 농담으로 "당신이 1인자가 된 것은 문서 사역을 통해 받은 은혜네요"라고 하니 다들 웃었습니다. 형제가 "목사님, 간증이 더 있습니다"라고 하길래, 제가 "내일 설교 때 쓰게 하나 더 이야기해 보세요.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자신의 딸이 우울증 환자였는데 우리 공동체에서 기도하여 치유를 받았습니다. 치유된 후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고 여러 해가 흘러 올해 대입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 학교 성적으로는 280점으로 대학 진학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는데, 모의고사에서 360점을 받았습니다. 제가 "와!" 하니, 형제는 "목사님, 아직 놀라지 마세요.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뒤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온 가족이 대학 입시 때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의 아내는 예전에 기도하고 예수 믿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아이가 대입을 앞두자 열정이 불타올랐습니다. 3일에 한 과씩 101 과정을 공부하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딸도 기도했습니다. 시험장에 휴대폰은 반입할 수 없으니, 스마트워치에 기도 녹음 파일 여러 개를 다운로드하여 이어폰을 꽂고 기도하면서, 기도 음성을 들으면서 시험을 치렀습니다. 하나로는 부족해 여러 개를 시계에 넣어 갔습니다.

아내는 집에서 목숨 걸고 기도하며 《창세기》 101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듣기에는 웃길지 모르지만, 결과는 437점을 받아 4년제 본과 커트라인(433점 안팎)을 넘어 합격했습니다! 280점 실력의 아이가 4년제 본과 대학에 덜컥 합격한 것입니다. 본과에 붙었으니 전문대나 직업학교는 골라서 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예전에는 아내를 데려오라고 해도 안 오더니, 이제는 "대단한 분을 뵈러 가야겠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태도를 바르게 가지십시오. 반드시 더 많은 은혜를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 말을 꼭 기억하십시오. "내가 무얼 드릴 테니 무얼 주십시오" 하며 하나님과 거래하려 하지 마십시오. 개척 초기 이야기들을 그 형제에게 많이 해주었습니다. 개척 초기에는 기도회만 열면 다들 쏜살같이 도망쳤습니다. 주일 예배 후 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이 손에 꼽혔습니다. 습관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달쯤 지나자 "목사님, 기도받고 싶어요"라고 합니다. 제가 "기도회 소리만 들으면 발에 기름 바른 듯 꽁무니 빼던 분들이 웬일입니까? 왜 갑자기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까?" 하고 물으니, "시험을 망쳤어요"라고 했습니다. "시험 망친 데 기도가 통할까요?" 통합니다! 기도하고 성적표를 받아보니 다 합격선(패스)을 넘겼습니다. 과락과 합격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들은 "목사님, 불가능해요. 제가 쓴 게 거의 없는데 어떻게 패스할 수 있죠?"라고 합니다. '시험지가 바뀌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박사 학위며, 졸업이며, 놀라운 표적이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려서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습니다. 왜입니까? 우리가 믿는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것을 얻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며칠 전 우리 교회의 한 자매가 며칠 휴가를 내고 친정어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오래된 기독교인이지만 우리 교회를 이단 보듯 몹시 반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신앙생활이란 대가를 치르느라 찢어지게 가난하고 빚까지 진 상태였습니다.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여러 군데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집에서 뼈가 부러져 끙끙 앓고 계셨으니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모르핀이나 페티딘 같은 마약성 진통제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자매가 집에 가보니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가 그렇게 울부짖고 계신다면 가슴이 찢어지지 않겠습니까? 자매가 저에게 "목사님, 어쩌죠?"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기도하세요. 어머니를 붙잡고 기도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거부하자 제가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것은 귀신입니다. 지금 온전히 어머니의 본모습이 아니라 귀신에게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분별하셔야 합니다."

결국 자매는 앞뒤 재지 않고 어머니를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어머니가 따라 하지 않아도 상관없이 믿음을 선포했습니다. "엄마, 내가 기도하면 통증이 사라질 거야." 어머니도 낫고 싶어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불신앙과 신성모독의 말을 내뱉을 때 자매는 "엄마, 이건 엄마 말이 아니야. 귀신이 하는 말이야. 내가 귀신의 억압에서 엄마를 건져낼 거야. 엄마는 반드시 은혜를 받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입으로 쏟아내는 험한 말은 어머니의 뜻이 아니라 귀신이 시킨 것이었습니다.

진통제와 마취제도 듣지 않던 통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자 며칠 동안 주사를 맞지 않아도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깨끗이 나았습니다. 아마 오늘쯤 그 자매는 직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자매가 "목사님, 제가 떠나면 어머니 병이 다시 도질 것 같아요"라고 하길래, 제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며, 십만 팔천 리를 넘어서도, 지구를 몇 바퀴 돌아도 역사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목사님, 제가 믿음이 너무 적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당신이 어머니 곁에 있다고 역사하고, 곁에 없다고 역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에는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 아직도 그 아픔이 마음에 생생히 남아 있는 자매들도 있습니다. 이 은혜의 복음을 언제쯤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믿습니까?"라고 묻고, "안 믿어요" 하면 그냥 포기해 버립니다.

그렇게 물어서는 안 됩니다. "은혜를 입고 싶습니까?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까? 내가 이 좋은 은혜를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갈망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위대한 구원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들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렸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려고 하는 순간, 당신은 은혜에서 떨어집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형편없는 존재로서 그저 받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왜 신앙생활을 하면서 변질되어,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려야 은혜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다 은혜에서 추락하는 것입니다. 은혜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신혼기가 끝났다'고 핑계를 댑니다. 어리석은 소리입니다. 신혼기 같은 건 없습니다. 은혜는 영원히 존재하며, 우리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은혜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섬김도 은혜이고, 일하는 것도 은혜이며, 베푸는 것도 은혜이고, 헌금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대단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다가 암에 걸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겉보기엔 착한 사람들이지만, 생각 속에 걸림돌이 생겨 은혜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은혜를 잃어버리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십시오.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구약이 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까? 은혜가 결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논리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죄를 짓고,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저주를 받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를 지어 저주를 받으면 귀신이 찾아오고, 귀신이 오면 억압을 당해 내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러면 귀신을 통해 계속 죄를 짓고, 귀신은 끊임없이 우리를 파괴하며, 결국 빠져나올 수 없는 악순환에 갇히게 됩니다.

이 저주의 굴레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충만한 은혜를 우리에게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며, 그의 보혈로 우리가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전부 거저 얻은 것 아닙니까?

죄가 어린양께 전가되었기에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자유를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더 많은 은혜를 끊임없이 받기를 선택하고, 더 많이 해방되고, 더 많이 귀신을 쫓아내며,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할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러분을 다시 은혜의 자리로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목사님, 저는 자격이 없어요." 언제는 자격이 있었습니까? 관 속에 들어갈 때도 자격은 없습니다.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은혜와 진리를 충만히 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자격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를 베푸십니다. 은혜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허리가 아프다면 그 허리의 문제가 예수님께 전가되었고, 머리에 뇌경색이 있다면 그 뇌경색이 예수님께 전가되었으며, 심근경색이 있다면 그 심근경색이 예수님께 전가되었습니다. 맹인과 다리 저는 자의 죄악을 예수님이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져 눈물이 납니다. 본래 우리는 저주 가운데 살며 귀신에게 짓밟히고 바닥에 내팽개쳐져 아무런 저항조차 할 수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충만한 은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충만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당신이 태어나서 주님을 믿을 때까지, 주님을 믿고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든 순간이 은혜로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충만한 은혜로 평생토록 그분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14-18)

기도

하나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을 예비하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고통과 저주를 담당하시며 죄의 억압에서 우리를 해방해 주셨습니다. 또한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도움이 되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주님의 은혜 안으로 돌아가 오직 주님의 은혜와 긍휼만을 바라보고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구원을 베푸시사 우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우리를 빚으시며 주님의 뜻대로 행하사 주님의 형상을 온전히 드러내게 하옵소서. 우리를 묶고 있는 결박을 끊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질병의 귀신들은 떠나갈지어다! 맹인은 눈을 뜨고, 다리 저는 자는 걸으며, 선악을 분별하는 뿌리는 완전히 잘려 나갈지어다!

하나님, 주님의 크신 권능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어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사 악한 습관을 제하고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여 더욱더 주님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히 받기를 원하오며,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했을 때는 이미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이 널리 전해진 지 오랜 후였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노년의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 당시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참으로 기괴한 일이 일어났는데, 많은 사람이 은혜에서 떨어져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는 것은 매우 비참한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그렇지 않다면 요한이 왜 이 글을 썼겠습니까? 요한이 기록할 당시 많은 이들이 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야고보서》를 쓴 야고보)와 베드로가 전했던 이상한 관념, 곧 율법에 있었습니다.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은혜를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야고보서》가 성경에 포함되어 있지만, 제 말을 흘려듣지 마시고 잘 읽어보십시오. 글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분이라면 《야고보서》의 내용에 다소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관념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은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였고, 2인자는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를 쓴 베드로였으며, 3인자가 바로 요한이었습니다. 즉, 요한은 예루살렘 교회가 쇠퇴하고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어쩌다 교회가 그렇게 망하고 찢어지게 가난해졌을까요? 요한은 그것을 목격했습니다. 행위를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근본으로 삼는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노년의 요한은 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 문제점을 깨닫고 《요한복음》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왜 은혜를 말할까요? 은혜는 거저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저 받지 않는다면 은혜라 부를 수 없으며, 일해서 받는 것은 삯에 불과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율법의 행위를 근본으로 삼아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그들에게 사랑이 없었을까요? 사랑은 있었지만, 율법의 행위를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모세로부터 요한에 이르기까지 1,500년 역사 동안 율법의 행위는 단 한 번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근본으로 삼는 것은 저주를 부르며, 근본적인 논리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문제가 생겼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왜곡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80년대생, 60년대생, 70년대생, 90년대생, 00년대생... 태초에 당신은 어디 있었습니까? 당신은 물론이고 당신의 어머니가 어디 있었는지, 외할머니가 어디 있었는지, 친할아버지가 어디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도움이 필요했습니까? 필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무엇을 잘났다고 뽐냅니까? 우리는 언제나 받는 입장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자신이 대단하다고 착각합니까?

말단 직원에서 계장 하나 달았다고 우쭐해집니까? 이제 겨우 빚 좀 갚았다고 잘난 척합니까? 많은 사람이 분수를 모르고 꼬리를 치켜들다가 한순간에 꺾입니다. 은혜에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사실을 요한은 똑똑히 보았습니다. 당시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 "바로 이분이시다. 이분이 바로 그 메시아이시다."

그분이 바로 빛이시며, 세례 요한이 그분을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읽어보면 알 듯 모를 듯하겠지만 상관없습니다. 핵심은 믿음입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 권세를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영계의 귀신들을 제압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당신이 훌륭해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믿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대단해서 귀신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대하시기 때문이며, 그 이름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권세로 악한 영들을 짓누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으로 이런 은혜를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살 수 없습니다.

양손에 오리 한 마리, 닭 한 마리 들고 자전거 앞에 바구니 달고 처갓집 가듯 하나님 앞에 나아오려 하지 마십시오. 장모님 댁에 세배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으십시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믿음으로 선포해 보십시오. 반드시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자녀의 권세를 주셔서 귀신들을 제압하게 하십니다.

사도 요한이 이 복음서를 쓴 목적은 태초의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단순한 육체의 인간이 아니라, 성육신하신 말씀이십니다. 사람의 뜻이나 정욕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입니다. 그분이 가져오신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왔으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는 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며, 이것이 수많은 간증의 핵심입니다.

여러분이 경험한 것 중에 자격이 있어 받은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 딸의 대학 입시 같은 사소한 일에 연연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로하시기 위해 기꺼이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요한이 기록한 중요한 사실들을 기억하십시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신 말씀이십니다. 둘째는 간증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어린양의 피와 우리가 증언하는 말씀으로 원수 마귀를 이긴다고 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간증이 보이지 않고, 검사만 하면 암에 걸려 병원에 가고, 목사도 암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가는 일만 있다면 그것이 어찌 간증이겠습니까? 그것은 간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치유받고 귀신을 쫓아내는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암에 걸린 간증만 있고 치유된 간증이 없다면 속히 도망치십시오.

이와 관련해 이야기 하나를 더 나누겠습니다. 수년 전 우리 교회에 오게 된 한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직장인이었는데 퇴근만 하면 열심으로 섬겼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예전에 다니던 지역 교회에서도 아주 열성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을 내다보니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교회의 리더가 중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매에게 "이제 당신이 맡아서 이끌어 가세요"라고 했습니다. 자매는 '저분이 저렇게 사역하다가 저 지경이 되었는데 내가 왜 맡아?' 하고 지혜롭게 거절했습니다.

그 후 다른 사람이 열정을 품고 차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리더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희가 그 형제도 섬겨준 적이 있는데, 위출혈을 비롯해 병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가 쓰러지자 사람들이 또 자매에게 "당신이 맡지 않을래요?" 하니, "안 해요" 하고 우리 교회로 왔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그런 일이 없습니다. 지혜로운 자매입니다. 그가 아주 훌륭하게 행동해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녀가 지혜로웠던 점은 대단한 공헌을 하려 들지 않고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기괴한 현상들을 연구해 보면, 다들 하나님께 대단한 기여를 하려다가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의 시대에도,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요한이 은혜를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들의 복음은 은혜의 복음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은혜의 복음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은혜를 받는 것이 잘못입니까? 은혜의 복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은혜에 문제가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미혹되지 말고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사 세상 죄를 제하시고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고 억압된 자가 놓임을 받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사자들이 우리 가운데서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이것이 무슨 논리입니까?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이 우리 가운데서 오르락내리락하며 무엇을 합니까? 일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좋은 것들을 가지고 내려오고, 땅의 문제들을 가지고 올라갑니다.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기에 우리는 하늘의 약속과 하늘의 자원을 끌어다 쓸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영적 전쟁을 하는 교회였습니다. 한 번은 제가 거의 숨이 끊어질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숨이 턱 막혀 숨을 내쉬기만 하고 들이쉬지 못해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속으로 겨우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영안을 열어 주셨습니다. 온 산과 들에 검은 마귀 떼가 가득했고, 그들이 쏜 화살들이 제 가슴에 빽빽하게 꽂혀 있었습니다. '이러니 숨을 못 쉬었구나!'

소리도 내지 못하고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데, 제 등 뒤 머리 위에서 번쩍이는 황금빛과 함께 천군 천사들이 물밀듯이 돌진해 내려왔습니다. 마귀의 군대는 추풍낙엽처럼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한 편의 대작 영화처럼 엄청난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행하셨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우리 가운데서 오르락내리락하며 하늘 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무엇을 위해 오르락내리락합니까? 은혜를 가지고 내려오기 위함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제 더 깊은 핵심적인 내용을 나누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은 기록하기를, 가장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 역시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요한의 목적은 우리의 이해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창세기》에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던 것처럼, 태초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 말씀 안에 사람들의 빛인 생명이 있습니다. 왜 이 말씀으로 시작할까요? 우리 신앙의 견고한 기초를 놓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고 향을 피우며 제물을 바친다고 해서 그분이 비로소 신령한 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오대산이나 화과산 같은 산속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셨던 분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말씀이십니다.

당신이 그분께 무엇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몇 년생입니까? 60년대생입니까, 80년대생입니까? 머리가 하얗게 세고 눈썹까지 희어진다 한들 태초의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고작해야 몇십 년대생 인간일 뿐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한낱 피조물인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겸손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태초의 말씀'은 우리 신앙의 기초입니다. 우리가 믿는 분은 성육신하신 태초의 말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모르면 분수를 모르게 됩니다. 박사 학위를 땄다고 기고만장해지면 망합니다. 박사든 포스닥이든 교수든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수명이 유한하고 시야가 매우 좁습니다.

자신이 사람임을 깨달을 때 겸손해집니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은 너무나 보잘것없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음을 알 때 깊은 경외감이 생깁니다. 높은 자리에 서 본 사람들은 하늘의 광대함 앞에서 인간의 왜소함을 깨닫습니다.

광활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왜 하나님이 필요합니까? 정말로 그분이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 확고한 기초를 세웠고, 이는 증명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다

그 말씀은 하늘에, 영계에 계십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을 가졌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툭하면 죄를 짓고, 죄를 지으면 귀신이 오고, 억압당하여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예비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창조된 후 타락하여 은혜를 잃어버리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우리에게 친히 알려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산상수훈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은 논리 체계 자체가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영생의 논리이고, 다른 하나는 이생의 논리입니다. 하나는 멸망의 논리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얻는 논리입니다.

성육신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인자 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기 위함입니다. 성육신하사 우리 가운데 오셔서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받으셨습니까? 우리 중 많은 이들이 풍성히 받았습니다. 요한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은혜 위에 은혜를 이미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셔서 하나님의 진리를 이 땅에 가져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믿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병이 낫습니까? 낫습니다. 맹인이 눈을 뜨고, 다리 저는 자가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예수의 이름에 왜 이런 권능이 있습니까? 그분이 바로 만물을 창조하신 태초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맹인이 눈을 뜨고 다리 저는 자가 걷는 것은 말씀이신 하나님께는 지극히 사소하고 쉬운 일입니다. 통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사람들의 불신앙을 꾸짖으셨습니다. "믿음이 둔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알지 못하는도다."

예수님께서 인류 역사 가운데 행하신 일들은 전무후무한 일들이었습니다.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도 바울도 예수님처럼 행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행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성육신하신 말씀으로 지금 우리 가운데서도 행하고 계시며,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충만한 은혜를 주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는 결코 이 은혜의 도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어졌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왜 율법 대신 은혜와 진리라고 했을까요?

은혜가 율법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진리보다도 큽니다. 율법과 진리의 잣대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어 마땅한 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을 친히 완성하셨습니다. 율법을 이룬 것은 당신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은혜를 입어 점점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져 갑니다. 이 논리를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어린양이신 그분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허물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완전히 망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그 빚을 갚으려 한다면 영원히 귀신의 손아귀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사 어린양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제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보혈을 흘려 대가를 치르셨기에 우리가 진 빚이 단번에 청산되었습니다. 빚이 갚아졌으니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억압하던 귀신은 더 이상 우리에게 권리나 꼬투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예수의 보혈이 내게 임하였으니 내 모든 허물은 도말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는 떠나갈지어다! 눈 멀게 하는 영, 다리 절게 하는 영, 생리통의 귀신은 떠나갈지어다!"라고 선포하면 귀신이 쫓겨납니다. 이것은 확실히 역사합니다.

사람들에게 율법을 먼저 들이밀지 말고, 은혜를 먼저 주십시오. 고통 중에 울부짖으며 귀신에게 짓눌려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린 자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여 그 은혜가 얼마나 좋은지 맛보게 하십시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세상 죄를 제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고귀한 보물로 여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진정한 보배로 여기십니까? 그분은 참으로 보배이십니다.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세례 요한은 회개의 복음을 전하고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십니다. 그 차이는 엄청납니다. 성령 세례는 지극히 중요합니다. 구약에는 성령 세례가 없었지만,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고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강조합니다. 첫째 회개하고,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며, 셋째 물세례를 받고, 넷째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 세례는 복음의 핵심 요소이며, 방언 기도와 성령 세례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방언 기도를 끊임없이 훈련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십시오. 성령은 충만한 은혜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 친히 그렇게 설계하신 것입니다.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의 말씀이시며, 성육신하사 은혜와 진리를 주러 오신 분임을 다시금 확신하십시오. 은혜가 먼저인 이유는 우리가 연약하고 무능하기에 은혜를 먼저 주시고 진리로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은혜가 없다면 영원히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리라

교회를 처음 개척하던 2010년, 2011년 무렵, 저의 설교에서도 늘 하늘이 열리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당시에는 이곳이 참으로 하나님의 전이 되고, 하늘이 열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날마다 하늘이 열리기를 꿈꾸었습니다. 하늘이 열렸습니까? 열렸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셨고 전무후무한 권능의 표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태초의 말씀이심을 친히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 통로를 여사 하늘의 은혜가 우리에게 쏟아져 내리게 하시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고 주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은혜를 쏟아부어 주실 때 수많은 간증이 일어납니다. 사실 우리가 나누는 간증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몇 시간 동안 간증만 틀어놓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곳은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며, 주의 사자들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 역사는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사닥다리 위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꿈을 꾼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야곱이 잠에서 깨어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며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회조차도 반석 위에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은혜를 받을 뿐이며, 은혜 위에 은혜를 거저 누릴 뿐입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복음이 귀신을 쫓아내는 복음이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결코 억압에서 풀려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귀신에게 짓눌린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모든 질병과 재앙은 귀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으로는 귀신을 이길 수 없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영광스러운 교회가 세워지기를 갈망하고, 더 많은 은혜를 받기를 갈망하며,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해지기를 사모합시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의 역사를 행하사 모든 형제자매님들이 은혜 위에 은혜를 더 받아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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