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他因软弱被钉在十字架上,却因神的大能仍然活着。这里的软弱是什么意思?基督为什么是软弱的呢?
基督任凭人羞辱他,任凭人把他钉在十字架上。其实他可以摇身一变,把这些钉他十字架的人都给灭了,但是他甘心选择做了一个软弱,被钉在十字架上。
不仅如此,在他钉十字架之前跪在那里祷告,我问你:耶稣辛苦不辛苦?辛苦、软弱,非常的软弱。也就是说,耶稣基督在肉身的时候软弱,然后在那拼命祷告,神就加添力量给他。幸亏耶稣基督自己是个软弱的人,所以我们有希望了。他软弱但可以得胜,我们软弱也可以得胜。他靠着谁?他靠着神。靠着神他仍然活着,因神的大能却仍然活着,从死里复活。刚强吗?刚强,很厉害!
耶稣基督,祂在四十天禁食祷告,饿了吗?饿了。想不想吃?想吃,非常想吃。如果他活在新加坡,祂肯定很想吃海南鸡饭,如果他生在东北,可能很想吃东北乱炖。如果他是湖北人,可能很想吃热干面。如果他生在香港,就很想吃香港的糕点,像叉烧包。软弱不?软弱。
哎呀,魔鬼让祂用祂的能力使石头变成面包,他拒绝了。软弱了吗?什么时候靠着神,什么时候刚强!耶稣就是这样的一个状况。有的时候我们很难理解,亚伯拉罕、以撒、雅各、大卫、耶稣基督、使徒保罗,他们其实都有软弱。因为他们不是靠自己,都是靠着神的。所以就是因神的大能仍然活着。基督怎么是软弱?就是这么软弱的。但是基督耶稣可以这么软弱,但是面对罪那就刚强了。是不是?他绝不宽容罪!
Q2:魔鬼彰显的时候有什么手段对付?
根本就不需要对付。对付啥?彰显就彰显呗。是不是?你走到今天,不是因为鬼厉害,是因为神厉害啊。你里面到底有信心吗?彰显就彰显,彰显不一定是解决问题的办法,把神的话刻在心坎上才是。过去那些年懒得像猪似的,我说懒得像猪,你不要怪我,是不是把自己的家整成猪圈一样?他怎么可能不招鬼呢?连干净都谈不上,怎么谈圣洁呢?干家务厉害,我告诉你,鬼就没办法了。
其实,人为什么招了这么多的鬼?那里面装的全是垃圾啊。所以人活得很辛苦,你把鬼招来怎么可能活得不辛苦呢?我们今天就开始重新调整,就开始渴望做完全人。不是彰显还是不彰显,彰显就彰显了,不用放在心上。
Q3:老师好,不信也是罪吧?
那不信是最严重的罪,凡不出于信心的都是罪。我就感慨,人不信真的是一个很要命的事儿。
Q4:老师,完全人是按神的话活的人吗?请老师说说什么是完全人?
一件恶事都不做,不是刚讲完了吗?凡事不抵挡真理。听明白了吗?也不喜欢瞎说、瞎干、瞎想。然后也不宽容罪,也要省察自己有信心没有。这就是使徒保罗所说的。神的话很多,但是华人命定神学,把它整理出一个体系。你就可以照着这个体系,你会发现比较容易吸收神的话,对神的话有一个很系统的认识。
Q5:老师,追求做完全人,是心志上的一种不懈追求,不断治死肉体情欲的过程,从属肉体变成属灵的人,对吗?
对。就是心志上要知道要相信,带着这盼望不断地靠着神,治死肉体的情欲。所以基督徒你知道完全人是啥吗?如今活着的不再是我,是耶稣基督活在我里面。
如果耶稣基督活在我里面,那不成完全人了吗?是不是那回事?就是一个属肉体的人,变成一个属神的人,照着属灵的规律去活。我告诉你,怎么可能被骗?怎么可能欠这么多的债?怎么可能活成今天这个样?不可能的。我想咱们弟兄姐妹都开始渴望啊,渴望了以后你要知道这东西回报老多了,不是一般的多呀。
我们今天生病,一个病就可以给你打到解放前去啊。是不是有的人就一下子就回到创世以前了?为啥?照着属世界的逻辑体系走好不了。所以肉体的情欲是很邪性的,人活在肉身当中,治死肉体的情欲,这不是一件很困难的事儿,因为有了神的灵。如果没有神,没有耶稣基督成就的救恩,那可就彻底的麻烦了,那真的是死翘翘啊!
我巴不得弟兄姐妹,你们把自己里面重新梳理一下。把里面的垃圾、肮脏,不要再容忍罪,不要再宽容罪。开始靠着神喜乐起来,因为人一生所有的需要都在耶稣基督里得着满足,我们没有必要不喜乐。其实喜乐就是一种感觉,但这种感觉是从神的灵来的。我们刚才我看到一个姐妹她吐了七天了,没事儿。吐了七天不要就体贴自己了,再接着吐下去,把里面的肮脏都除掉。
这仅仅是个开始,这里做一个完全人的路还有很长很长要走。但不要怕,你会越来越好的。过去所相信的那些垃圾除掉。如果你是个基督徒,那更要除掉。
我们答疑就到这儿。愿神祝福大家!
여러분 안녕하세요, 《고린도후서》 13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 장은 이 책의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 명확하게 드러냈다고 할까요? 우리가 주님을 믿는 목표는 바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미 주님을 믿었고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다 된 줄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 같지도 않고 귀신 같지도 않은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마치 흑백무상(黑白無常)처럼 한쪽 얼굴은 검고, 한쪽 얼굴은 하얗습니다. 한쪽 다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고, 다른 한쪽 다리는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의 주제가 모두 한 가지를 말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님들은 저를 따라 성경공부를 하면서 핵심을 정확하게 붙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바로 ‘우리가 구하는 것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입니다. 이 주제는 마지막 장에서만 언급된 것이 아니라,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1. 목회의 목적은 여러분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업가이든, 직장인이든, 주부이든 간에, 제 마음속에는 깊은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목적은 바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꺼내면 많은 사람들이 엎어집니다. 그냥 누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엎어져서 거북이처럼 기어 다닙니다.
왜 그럴까요?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아이구!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그건 불가능해!’ 저는 생각합니다. ‘왜 불가능한가? 당신은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되고 싶지 않은 것인가?’ 핵심은 되고 싶어 하느냐, 되고 싶지 않아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믿음이 매우 충만한 사람입니다. 제가 인간적인 눈으로 여러분을 본다면 엉망진창일지 모르지만, 제 영적인 믿음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이 있었고, 오늘 하나님께서 이것을 회복하기를 원하신다’라고 선포합니다.
비록 당신이 지금 돈을 그렇게 사랑할지라도 괜찮습니다. 당신 안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당신을 격려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의 인간관계가 이미 엉망이 되었을지라도 괜찮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할 때, 우리 형제자매님들 중에 “선생님, 믿음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라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믿음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말하겠습니까? 저는 형제자매님들이 화인 사명 신학이 행하는 모든 것이 오직 형제자매님들이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임을 알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고 나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너무 좋다! 나는 이미 결신 기도를 했고, 구원받았으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어.’ 정말 그런 것일까요? 사는 모습을 보면 반쪽 얼굴은 하얗고 반쪽 얼굴은 검어서 흑백무상과 같은데, 어떻게 좋을 수가 있겠습니까?
고린도 사람들의 육적인 상태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계모를 아내로 취했는데, 교회는 오히려 그것을 좋게 여기며 서로 사랑하여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계모와 결혼하는 것이 왜 안 되는가?’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다말과 유다의 이야기까지 끌어왔습니다. 사람들이 꾸며내는 이런 것들은 매우 부패한 것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극도로 부패했던 것은 정말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모든 문제는 우리 안에 과연 이러한 생각이 있는가, 과연 이러한 소망이 있는가, 과연 이러한 믿음이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힘입어 온전한 사람이 되겠다는 확신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화인 사명 신학의 구원관이 전통 교회의 구원관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의 구원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이며, 이것을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당신을 위해 죽으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채찍에 맞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는데 어찌 불가능하겠습니까?
거울을 보고 자신의 흑백무상 같은 얼굴을 보면 믿음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행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록 엉망이지만, 제 안에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BMW를 타는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도 아니고, 큰 집에 살기 때문도 아니며, 천만 원이 넘는 에르메스 옷을 입었거나 루이비통 가방을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들고, 무엇을 입고, 어디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뼛속에 있는 본질이 중요하며,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사람이란 누구나 훈련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사람들은 그런 형편없는 모습으로 살아갈까요? 그 안의 논리 체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논리 체계는 매우 황당무계한 논리 체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타이핑하여 질문하는 것들을 볼 때 제 마음에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어떤 분은 “선생님,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신가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원래 괜찮았지만, 여러분을 인도하다 보니 마음이 아파진 것입니다. 왜 다리가 굽혀지지 않습니까? 왜 목이 붓고 아픕니까? 왜 암에 걸립니까? 왜 강직성 척추염에 걸립니까? 사람의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더러운 생각이 들어차 있길래, 모든 것을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의 모습을 살아낸다고? 불가능해! 내가 치유받는다고? 불가능해!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못해서 여기서 숙제하는 게 너무 괴로워, 불가능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좋은 것임을 안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그것을 구하겠지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온전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모든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를 쓰고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헛소리를 늘어놓고, 죽을 길로만 파고드는데, 결국 하나님의 임재가 있겠습니까? 다 귀신의 임재뿐입니다. 사람이 왜 고린도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까? 저는 지금까지도 고린도 사람들의 머리에 똥이 찼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여러분, 깨어나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길을 열어 놓으셨으니, 그것은 곧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기 시작하고, 돈을 사랑하던 그 열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해 보십시오. 보십시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질 것이며, 본래 축복이 없던 차자였으나 장자의 명분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을 얻은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결단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신에게 있는 문제점을 고쳐야 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기만 해도 이미 절반은 해결된 것입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자기가 아주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때로 보면 너무나 못생겼는데도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추한 여자가 시집가면 땅이 진동한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어제 기도를 인도할 때 어떤 분이 “선생님, 저는 형편없습니다. 저는 정말 구제불능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드디어 자신이 형편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나왔으니 이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에게 “선생님, 저는 선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암으로 죽었습니다. 암에 걸렸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다니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제가 그를 책망하자 그는 저와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제가 “당신이 어째서 선한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그날 한 할머니가 길을 건너실 때 제가 부축해 드렸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할머니 한 분 길 건너는 것을 도와드렸다고 해서 선한 사람입니까? 선한 일 하나를 했을지는 몰라도 못된 짓도 많이 저지르지 않았습니까? 온전한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제가 아무리 말해도 자기가 이미 온전하다고 여기는 고집을 꺾지 못하더니,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알면 절반은 해결된 것입니다. 그다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생각입니다.
어제저녁 저는 어떤 사람과 한 시간 반 동안 통화하면서 “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라는 생각을 그녀의 머릿속에 넣어주려고 했습니다. 저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어리석은 사람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겨우 그 일 하나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녀는 늘 엉망으로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보니 결혼했고, 어쩌다 보니 이혼하려 하고, 어쩌다 보니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렇게 엉망으로 벌여놓은 일을 어떻게 수습하겠습니까? 아이를 다시 뱃속에 넣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분별없이 저질러 놓았고, 본인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탄식하게 됩니다! 목회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이 한 말을 본받아 그들이 정말 엉망이라는 사실을 직면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하게 됩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소원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이런 소원이 있다면 문제는 해결되기 쉽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함을 알며, 또한 이러한 소원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러분은 오늘 당장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이 어리석은 자임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저 자신이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며, 많은 부분에서 온전히 행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럼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목회를 합니까?”라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제 힘으로 목회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제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바로 이러합니다.
2. 그리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고린도후서 13:11)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온전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온전해지기를 원할 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땅을 굽어살피사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깨닫는 자가 있는지 보셨으나 아무도 없었고, 모두가 함께 무익하게(쓸모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실 때, 여러분 안에서 기이한 일을 행하사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님들 모두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목회자 중 한 분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제가 섬기는 그 사람은 하루 종일 헛소리만 늘어놓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집안이 돼지우리 같을 것이다.” 그 사역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맞습니다! 청소를 다 끝냈는데도 돼지우리보다 더 더럽습니다.” 그렇다면 청소하기 전에는 얼마나 더러웠겠습니까?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온전한 사람은 자기 안의 게으름과 악습을 성령을 힘입어 하나하나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섬겼던 사람들 중에는 종종 우리를 놀리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괴상한 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싶었지만, 나중에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귀신이 우리를 희롱하는 것인데, 우리가 그것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큰일입니다.
사람 같지도 않고 귀신 같지도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축사되어야 합니다! 자유케 됨에는 그의 생각과 마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귀신은 당신의 결정권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님들이 이런저런 현상을 나타냈을지라도 속으로는 다 알고 있습니다. 술주정뱅이가 술김을 핑계 삼아 난동을 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님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하기만 하면 제 목회는 만족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3. 항상 자신에게 믿음이 있는가 돌아보십시오
이 믿음은 여러분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기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가는 중요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빚어가시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그분의 구원을 이루시고,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모든 것이 어렵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모든 것이 쉬워집니다.
여러분,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지금은 형편없고,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을 힘입어 육체의 악행을 죽이기 시작하십시오. 매일 아침 일어나 기도 방송을 켜고 따라 기도하고, 소그룹에 기도 모임이 있으면 함께 참여하십시오.
저는 최근에 매우 신기한 일을 발견했습니다. 기도하고 나니 제 얼굴의 여드름이 줄어들었습니다. 여러분을 격려하기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가 여드름이 줄어든 것에 연연하겠습니까? 사람이 밝아지고 얼굴도 예뻐지지 않습니까? 또한 속에서 할 일 없이 트집 잡고, 까닭 없이 화를 내고,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시도해 보십시오, 서서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외모에 집착해서가 아니라,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결단할 때 그 내면의 아름다움이 얼굴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데,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믿음이 있는가 돌아보십시오. 믿음이 있다면 어제보다 오늘이 좀 더 나아지고, 오늘보다 내일이 좀 더 나아지며, 시간이 지나면 이전보다 훨씬 더 좋아지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지혜와 총명을 얻게 되어 연구원은 연구 성과가 오르고, 개발자는 개발이 잘 되며, 영업사원은 매출이 오를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세상의 논리 체계를 따르면 영업할 때 어떨 때는 담대하다가도 어떨 때는 위축되며, 때로는 통하다가도 때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반드시 형통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너희가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버림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고린도후서 13:6)
저는 바울의 이 말이 참 흥미롭습니다. 그는 우리가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버리시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버렸습니까? 우리는 자주 하나님을 버리지 않습니까? “선생님, 제가 언제 하나님을 버렸습니까?”라고 묻겠지만, 바빠지면 하나님을 팽개쳐 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버리는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선생님, 취직하려고 보니 야근하는 직장뿐입니다. 예배에도 참석해야 하니 9시 출근 5시 퇴근하는 직장을 구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뭐가 어렵습니까? 하나님께서 좋은 직장을 주셔서 잘 성장하게 하실 수 없겠습니까?
사실 예배 참석 여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 내면의 불신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수 없겠습니까? 우리 안에 불신이 가득하기 때문에 많은 혼란과 방해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할 때 저는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렇게 계속 사십시오”라고 대답합니다.
사람이 믿지 않는데 제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조차 도우려 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이는 “선생님, 저는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그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제가 “당연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 스스로가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그릇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떤 이는 “선생님, 저는 죄 가운데 사는 것이 좋습니다. 임종 직전에 얼른 회개하면 되지 않습니까? 안 그러면 이 세상 살면서 죄도 안 짓고 쾌락도 안 누리면 너무 손해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에게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심에도 의지하지 않고 믿지도 않으니,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롭습니까? 바울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시험해 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PCR 검사처럼 양성인지 음성인지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럼 어떻게 시험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일을 겪어보면 압니다. 일을 만나면 곧바로 불신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속의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아야 합니다! 희미하게 꺼져가는 믿음을 다시 끌어올리십시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우여곡절 끝에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땅이 내가 네게 주는 약속의 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아브라함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왜 그렇습니까?”라고 따지면, 하나님께서는 “아, 내가 사람을 잘못 찾았구나. 네가 아브라함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스스로 시험해 보십시오. 저는 사람들이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제가 어떤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의 요구를 굳게 붙잡으십시오, 그러면 교회가 반드시 부흥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그건 불가능합니다! 교회 의자에 앉을 사람이 얼마나 필요한데요. 사람이 없으면 강대상에서 설교하기가 얼마나 부끄럽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교회를 바르게 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기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이 없으면 소망이 없고, 소망이 없으면 미래가 없으며, 미래가 없으면 갈등과 낙심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4. 여러분이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되기를 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노니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는 버림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고린도후서 13:7)
이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우리를 버림받은 자로 여긴다면 그렇게 여겨라.’ 믿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느냐가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일까요? 여러분이 기뻐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며, 더 이상 귀신을 불러들이지 않고, 위로를 받으며,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비전과 같은 사명을 품고 서로 화목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다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과 저는 모두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기르시는데, 우리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악을 행하고 돈을 사랑해야 부유해진다는 착각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시험을 받을 때 ‘남의 집을 탐내고, 이것저것 탐내야 잘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저주만 쌓여 결국 파멸에 이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이 바르게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죄를 지으면 살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중요한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기초로 삼고, 바르게 행하십시오. 예를 들어, 청소 일을 한다면 그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청소 업무는 최고 수준에 도달해야 합니다.
어제 한 자매를 섬기면서 “계속해서 자신을 계발하십시오. 청소 일을 하더라도 실력을 제대로 키우십시오”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사회복지사 과정을 들으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수입이 너무 적어 지금보다 더 가난해질 텐데, 결국 제 말이 헛수고가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릴 때 언짢아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악을 행하지 않고 모두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악한 일인지 모르고 있습니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지, 무엇을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얼마나 왜곡된 생각을 품고 살아갑니까? 성실하게 삶을 경영하지 않고 오히려 나쁜 방향으로 일을 몰아가면서, 어찌 삶이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겠습니까? 삶이 엉망진창인데 어떻게 좋을 수가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생각하는 것이 늘 혼탁하고 어두운데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 제 형제자매들이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옵소서.” 결혼을 하고 나면 남의 남편이 더 좋아 보이고, 아내를 얻고 나면 남의 아내가 더 좋아 보이며, 집을 사고 나면 남의 집이 더 좋아 보이고, 밭을 일구면 남의 밭이 더 좋아 보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기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집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지경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 그때 왜 저를 안 말리셨습니까? 왜 통제해 주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말합니다. 본인이 백마 탄 왕자인 줄 알고 스스로 선택해 놓고 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조정하십시오. 과거에 잘못 선택했더라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바로잡고, 악을 조금도 행하지 마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귀신의 임재를 불러들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자유케 하는 것은 진리이며, 진리만이 사람을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을 탓하지 말고 자신을 탓하십시오. 그때도 바르게 처신하지 못했는데 지금이라고 제대로 하겠습니까?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3년 전에도, 2년 전에도, 1년 전에도 엉망으로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엉망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양육할 때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저와 상의하십시오. 이미 결정을 내리셨다면 일을 방해하지는 않겠지만, 제 의견을 분석해 드려 일을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모든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를 분명히 해야지, 흐리멍덩하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상관도 없는 두 가지 일을 억지로 엮어서 무엇하겠습니까?
5. 진리를 거스르지 말고 오직 진리를 위하십시오
당신이 진리를 떠받치고 돕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당신이 진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의 뇌리에 깊이 새겨 두십시오. 자신이 살아가는 꼴을 보고 형편없음을 깨달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과거에는 진리를 거스르고, 진리를 위하지 않으며,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영이니, 영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처럼 단순한 이치입니다.
만약 회계사가 회계 원칙을 위배하면 장부를 제대로 맞출 수 없습니다. 경영자가 경영의 기본 원칙을 어기면 경영은 엉망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인간의 도리, 즉 하나님의 도(진리)를 거스르면 결코 잘 살 수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을지는 몰라도 수많은 문제와 고통도 함께 벌어들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은 늘 번민에 싸여 있었습니다.
제가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 친구는 사업가인데 사업을 점점 크게 키워가고 있지만, 지금 또다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예전에 팔던 물건이 이제는 돈이 안 되어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새로운 것을 선택하면 또다시 자신을 그곳에 꽁꽁 묶어두게 됩니다. 제가 “시간 좀 내서 중국에 와라, 내가 휴가를 보내게 해줄게”라고 했더니, 완전히 얽매여 있어서 시간이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이론만을 의지하여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가 비록 주님을 믿지는 않지만 저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커피도 함께 마시곤 합니다. 때로 저는 ‘사람이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은 안타깝지만, 적어도 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저와 사이가 좋고, 어떤 면에서는 저를 매우 존경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허황되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사를 확실하게 행하며 피라미드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을 고수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래에 있지 않고 위에 있게 하시며,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하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런데 왜 이 진리를 거스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모든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는 일에 복을 주셔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님들, 특히 자매님들은 남편을 볼 때 원수를 보듯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의 인생이 남편 때문에 망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당연히 듭니다. 자매님들은 유독 ‘내 인생은 남편 때문에 망했어!’라는 생각을 잘합니다. 남편이 망친 것입니까, 본인이 망친 것입니까? 사실 본인이 망친 것입니다. 그 남편을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습니까? 얼굴에 원수 대하듯 독기가 서려 있습니다.
제가 전에 한 자매를 섬겼는데, 동역자 중 한 사람이 “선생님, 이 자매님이 갈수록 얼굴에 기쁨이 넘치지 않습니까? 표정이 활짝 피었고 얼굴에 복이 넘쳐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복된 얼굴이 되셨다면 공감하실 것입니다. 얼굴 전체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섬겨 변화시킬 수 있다면 저는 큰 보람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찌푸린 얼굴을 마주해야 했지만, 이제는 천사가 집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더 이상 진리를 거스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악을 조금도 행하지 마십시오. 남편이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물론 어떤 남편들은 여자처럼 소심한데, 이것도 참 묘한 일입니다. 부부 사이에는 한 사람이 마음이 넓으면 다른 한 사람은 속이 좁기 마련입니다. 여자가 대범하면 남자가 속이 좁고, 남자가 대범하면 여자가 속이 좁습니다. 다 그런 법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도 “모든 그릇에는 다 짝이 있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사람을 훈련시키는 과정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영원히 굳게 섰으니,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몇 분인가? 한 분뿐이다! 바울은 몇 명인가? 한 명뿐이다! 나는 예수님도 아니고 바울도 아니다’라고 핑계를 댑니다.
며칠 전 차를 타고 어떤 신학교를 지나가면서 옆에 있던 친구에게 “저곳이 내가 한때 신학을 공부했던 곳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친구가 “선생님께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그만두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왜 그만뒀는지 아는가?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예수님의 마음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라네. 예수님의 생각도 모르는데 내가 무엇을 배우겠는가? 그가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었네.” 돈과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 저는 그 교수를 해고해 버렸습니다. 이미 등록금을 냈지만 다 포기했습니다.
저는 날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깊이 묵상했고, 훗날 화인 사명 신학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며, 진리가 여러분의 얼굴을 빛나게 하고, 진리가 여러분을 원수 같은 자에서 기쁨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며, 진리가 여러분의 얼굴에 드리운 모든 세월의 찌든 흔적을 지워줍니다. 아멘! 매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더 이상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6. 함부로 말하는 것을 즐기지 마십시오
제가 만난 사람들은 종종 헛된 생각을 하고, 헛된 짓을 하며, 헛소리를 늘어놓습니다. 그야말로 맹인, ‘삼중 맹인’입니다! 눈은 두 개인데 어떻게 삼중 맹인일까요?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매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듭니다.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고린도후서 13:1)
고린도 사람들은 헛소리하고 헛된 생각 품기를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한 무리의 맹인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말을 철저히 확증해야 했습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고린도후서 13:2)
사람이 헛된 생각을 하고 헛된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따르지 않고 어떻게 온전히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이는 병들고, 어떤 이는 죽어 넘어졌으며,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구하니, 내가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십니까? 바울이 왜 이렇게 야박하게 구는 것처럼 보일까요? 사람들이 바울에게 “당신이 하는 말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입니까? 무슨 증거가 있습니까?”라고 따져 물었기 때문에 바울은 “내가 용서하지 아니하리라”고 단호히 말한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그들을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고자 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있습니까? 성경에 그런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어디서 받았습니까?”라며 억지를 부립니다. 이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입니까? 바울은 “내가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죄를 범하고 죄 가운데 사는 방식을 교정해 주는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입니까?”라고 대든다면 어찌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용납했다가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성도가 목회자실에 쳐들어가 두 시간 동안 욕설을 퍼붓고, 경비원이 끌어내려 하자 목회자가 그 욕하는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무릎을 꿇는 것은 죄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런 사람이 찾아오면 매일 무릎을 꿇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죄를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향하여 약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산타클로스가 아니십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산타클로스 신학이 아니며, 나약한 예수의 신학도 아닙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철장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며, 그분의 입에서는 예리한 검이 나와 많은 사람을 찌르십니다. 여러분을 책망하는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이토록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며 살면서도 온전한 사람으로 이끌어주려 하면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입니까?”라고 따집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화인 사명 신학의 예수 그리스도는 강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보혈로 여러분을 덮어주실 수 있지만, 여러분이 계속해서 죄 가운데 머무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당장 하루아침에 고치지 못할지라도 주님께서 도우시겠지만, 반대로 “그런 말씀이 어디 있느냐?”라며 대든다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오늘날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약하지 않으시며, 여러분 안에서 강하십니다. 그분은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십니다.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 것입니다.
바울의 선포는 단호하고 강력합니다. 이것이 바로 목회입니다. 목회란 사람을 헛소리, 헛된 생각, 헛된 행동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모르면 겸손히 배워야 하며, 그래도 안 되면 초등학교 과정부터 다시 가르쳐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약한 예수를 믿지 마십시오. 우리의 예수님은 산타클로스가 아닙니다.
7. 결코 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를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고린도후서 13:2-3)
화인 사명 신학이 계승하는 것은 죄를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목을 꼿꼿이 세우고 죄 가운데 머무는 완고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며, 모두가 자신을 돌아보고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운데 어떤 자매는 집안에 암 환자가 가득했습니다. 아버지, 고모, 고모부 모두 암에 걸렸는데, 가족 전원이 스스로를 몹시 착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이 자매에게도 그 가문으로부터 대물림된 성격이 있었는데, 제가 그것을 묵과할 수 있겠습니까? 묵과할 수 없습니다!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암의 영이 그녀마저 파멸시키려 하기 때문인데, 제가 어떻게 용납하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어떤 가정 출신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회입니다.
특히 가정 내에 영적인 문제와 억압을 겪은 사람들은 오늘 마음속에 ‘나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굳게 세워야 합니다. 당신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할 수 없으나, 저는 당신을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낼 수 있습니다. 형편없는 바닥 인생에서 건져낼 수 있으며, 설령 제가 할 수 없다 해도 제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에게 기쁨이 넘치고, 마음을 같이하게 되며, 위로를 받고, 화목하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돈을 사랑하지 않고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데 어찌 화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한 비전, 한 사명, 한 뜻을 품고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갑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낼 수 있다는 동일한 소망을 품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한 교회는 반드시 하나 된 교회요, 결코 죄를 용납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바울은 주께서 주신 권세를 사용하여 너희의 죄를 엄히 다스리겠다고 했습니다. 이 권세는 성도를 세우기 위한 것이며, 형제자매 모두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지닌 사람으로 빚어내기 위함이지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때로 제가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들은 저를 몹시 증오합니다. 왜 증오할까요? 제가 결코 손을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귀신이 제 손에서 누군가를 빼앗아가려 한다면 저는 목숨을 걸고라도 그 사람을 건져낼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약하지 않으십니다. 이제부터 결단하여 더 이상 죄 가운데 거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도 안에서 살아가며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