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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마태복음 9장 - 하나님은 데스티니가 있는 사람에게 권세를 주신다

2020-04-29 60,435 马太福音 信心 权柄 服侍 更新 渴慕 牧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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马太福音09章-治好瘫痪病人
  • 1 耶稣上了船,渡过海,来到自己的城里。
  • 2 有人用褥子抬着一个瘫子到耶稣跟前来。耶稣见他们的信心,就对瘫子说:“小子,放心吧!你的罪赦了。”
  • 3 有几个文士心里说:“这个人说僭妄的话了。”
  • 4 耶稣知道他们的心意,就说:“你们为什么心里怀着恶念呢?
  • 5 或说‘你的罪赦了’,或说‘你起来行走’,哪一样容易呢?
  • 6 但要叫你们知道,人子在地上有赦罪的权柄”;就对瘫子说:“起来!拿你的褥子回家去吧。”
  • 7 那人就起来,回家去了。
  • 8 众人看见都惊奇,就归荣耀与 神,因为他将这样的权柄赐给人。
  • 9 耶稣从那里往前走,看见一个人名叫马太,坐在税关上,就对他说:“你跟从我来。”他就起来跟从了耶稣。
  • 10 耶稣在屋里坐席的时候,有好些税吏和罪人来,与耶稣和他的门徒一同坐席。
  • 11 法利赛人看见,就对耶稣的门徒说:“你们的先生为什么和税吏并罪人一同吃饭呢?”
  • 12 耶稣听见,就说:“康健的人用不着医生,有病的人才用得着。
  • 13 经上说:‘我喜爱怜恤,不喜爱祭祀。’这句话的意思,你们且去揣摩。我来本不是召义人,乃是召罪人。”
  • 14 那时,约翰的门徒来见耶稣,说:“我们和法利赛人常常禁食,你的门徒倒不禁食,这是为什么呢?”
  • 15 耶稣对他们说:“新郎和陪伴之人同在的时候,陪伴之人岂能哀恸呢?但日子将到,新郎要离开他们,那时候他们就要禁食。
  • 16 没有人把新布补在旧衣服上;因为所补上的反带坏了那衣服,破的就更大了。
  • 17 也没有人把新酒装在旧皮袋里;若是这样,皮袋就裂开,酒漏出来,连皮袋也坏了。惟独把新酒装在新皮袋里,两样就都保全了。”
  • 18 耶稣说这话的时候,有一个管会堂的来拜他,说:“我女儿刚才死了,求你去按手在她身上,她就必活了。”
  • 19 耶稣便起来跟着他去;门徒也跟了去。
  • 20 有一个女人,患了十二年的血漏,来到耶稣背后,摸他的衣裳繸子;
  • 21 因为她心里说:“我只摸他的衣裳,就必痊愈。”
  • 22 耶稣转过来,看见她,就说:“女儿,放心!你的信救了你。”从那时候,女人就痊愈了。
  • 23 耶稣到了管会堂的家里,看见有吹手,又有许多人乱嚷,
  • 24 就说:“退去吧!这闺女不是死了,是睡着了。”他们就嗤笑他。
  • 25 众人既被撵出,耶稣就进去,拉着闺女的手,闺女便起来了。
  • 26 于是这风声传遍了那地方。
  • 27 耶稣从那里往前走,有两个瞎子跟着他,喊叫说:“大卫的子孙,可怜我们吧!”
  • 28 耶稣进了房子,瞎子就来到他跟前。耶稣说:“你们信我能做这事吗?”他们说:“主啊,我们信。”
  • 29 耶稣就摸他们的眼睛,说:“照着你们的信给你们成全了吧。”
  • 30 他们的眼睛就开了。耶稣切切地嘱咐他们说:“你们要小心,不可叫人知道。”
  • 31 他们出去,竟把他的名声传遍了那地方。
  • 32 他们出去的时候,有人将鬼所附的一个哑巴带到耶稣跟前来。
  • 33 鬼被赶出去,哑巴就说出话来。众人都希奇,说:“在以色列中,从来没有见过这样的事。”
  • 34 法利赛人却说:“他是靠着鬼王赶鬼。”
  • 35 耶稣走遍各城各乡,在会堂里教训人,宣讲天国的福音,又医治各样的病症。
  • 36 他看见许多的人,就怜悯他们;因为他们困苦流离,如同羊没有牧人一般。
  • 37 于是对门徒说:“要收的庄稼多,做工的人少。
  • 38 所以,你们当求庄稼的主打发工人出去收他的庄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구하는 사람에게 주실 것이다

최근에 《마태복음》을 성경공부하면서 제 믿음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할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여러분과 서로 다른 깨달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즐겁고 흥분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마태복음》 9장을 살펴봅시다. 저는 이 장의 주제를 아주 오랫동안 연구해 왔습니다.

저는 늘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생각해 왔습니다. 무화과는 바로 그리스도인, 곧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의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자신이 좋은 무화과인지 나쁜 무화과인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이 정말 좋고, 모두가 함께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좋은 무화과입니까, 나쁜 무화과입니까?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인입니까? 우리가 공부하는 이 장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의 주제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만일 우리가 마태가 표현하려는 주제를 깨닫지 못한다면 곤란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읽어 낸 주제가 저자가 표현하려는 것과 다르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주제에서 벗어나고, 그저 지엽적인 부분만 붙잡아 저자가 표현하려는 뜻을 읽어 내지 못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본말이 전도된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늘 하나님의 뜻을 붙잡지 못한다면 큰일입니다. 《성경》을 읽기는 읽었지만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결국 썩은 무화과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본질과 주제를 붙잡는 습관을 기르지 않고 늘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먼저 이 장의 말씀을 한 번 읽은 다음, 제가 하는 성경공부를 보시기를 권합니다. 읽을 때 저자가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저자가 표현하려는 뜻을 붙잡지 못한다면 그 책은 헛읽은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온 편지를 받고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편지는 헛읽은 것입니다. 사람이 늘 이렇게 하여 요점을 붙잡지 못한다면 결국 문제가 생깁니다. 마치 사장이 직원에게 일을 맡길 때, 일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지시할 수는 없으므로 직원이 사장의 뜻을 붙잡아 실제로 일을 완수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도 붙잡지 못하고 내일도 붙잡지 못한다면, 해낸 일이 좋을 수 없습니다.

제가 《마태복음》 9장을 쓴다면, 먼저 전체 내용을 관통할 수 있는 주제를 정해야 합니다. 앞 장의 주제는 ‘사명이 있는 사람의 권세’였고,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사명이 있는 사람에게 권세를 주신다’입니다.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태복음》 9:8)

오늘날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권세를 가지고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앞에 가서 코로나바이러스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령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정말 떠난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말한 것을 《聊斋》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신화로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사실 이 시대에는 예수님과 같은 권세가 매우 필요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권세는 어떤 것일까요? 한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에 들려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러자 어떤 서기관들이 그것을 보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도다.” (《마태복음》 9:2-3 참조)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태복음》 9:4-8)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권세를 주시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권세는 죄를 사하는 권세입니다. 사람의 질병은 죄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중풍병자가 중풍에 걸린 것도 그의 죄와 관계가 있었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 그의 죄를 용서하시자 나았습니다. 우리는 이 중풍병자가 큰 유익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도 유익을 얻었지만, 가장 큰 유익을 얻은 사람은 이 권세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권세를 얻는 것이 보물을 얻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권세를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권세를 주실까요? 8장과 9장은 모두 사명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매우 이기적이고 자신만 사랑하며 사명이 없다면, 그는 썩은 무화과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된 것도 헛된 것입니다.

계속해서 살펴봅시다. 마태는 이런 권세를 보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는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같은 권세를 얻기를 갈망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를 때 그의 장모가 병이 들었는데, 예수님께서 그의 장모의 손을 만지시자 병이 나았습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보자 죄 사함을 받고 병이 나았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이것이 보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는 어떤 의학박사 학위를 읽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 중풍병자를 의학으로 고칠 수 있었다면 진작 고쳤을 것이고, 예수님을 찾아올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이 중풍병자를 일어나 걷게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보물을 얻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것은 정말 보물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학이 과학보다 더 과학적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의 권세에 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 중풍병자가 어떻게 일어나 걸을 수 있었을까요?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은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손에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가 중풍병자가 된 것은 그의 죄와 큰 관계가 있었고, 예수님께서 그의 죄가 사함받았다고 말씀하시자 그는 일어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 놀랍습니다! 그의 죄가 사함받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그를 중풍병자로 만든 악한 영을 제거한 것입니다! 죄는 많은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습니다! 후에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으셨는데, 그 채찍에는 가시가 달려 있어서 한 번 내리치면 살이 찢겨 올라갔습니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런 일을 감당하셨을까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고, 그분이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죄가 지워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이것이 보물이라고 여겼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형제자매들도 이것을 보물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이 이것을 보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의 어떤 것도 이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분을 하찮게 여기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하찮게 여기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하찮게 여깁니다. 사람들은 직장과 가정, 그리고 많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하나님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런 권세를 가지고도 보물로 여기지 않는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더 이상 어리석은 일을 계속하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시작합시다. 마태처럼 주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말씀을 직접 하지 않으셨더라도, 우리도 기꺼이 그분을 따릅시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입니까?” 저는 제가 하나님께 선택받았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더라도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반드시 저를 선택해 주셔야 합니다! 저를 선택하지 않으시면 저는 날마다 그곳에서 문을 두드리고 하나님을 귀찮게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선택하실 때까지 계속 귀찮게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주신 권세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태복음》 9:35-38 )

“추수할 것은 많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며 기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그분의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사명이 있는 사람에게 권세를 주시고, 주님의 곡식을 거두는 일꾼들에게 권세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는 주님의 곡식을 거두러 일꾼을 보내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좋은 무화과입니다.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한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수천수만 명을 보내 달라고 구하고 자신은 편안한 삶을 살겠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스스로 갈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 추수할 곡식은 많지만 일꾼은 적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이것이 사명입니다! 이것이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권세를 얻는 일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그것을 구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보내 주십시오! 하나님, 저를 보내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이 글의 주제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세를 본으로 보여 주시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계속 이런 일을 본으로 보여 주셨고, 마태는 직접 보았으며 베드로도 직접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을 보여 주신 것일까요? 자신의 권세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마태복음》 9:18 )

이 사람의 딸이 막 죽었는데, 사람이 죽었는데도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믿음이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상황을 주 예수님께서 해결하실 수 있을까요?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도착하셔서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권세를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믿지 않지만 저는 믿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지만, 저는 스스로 지원하고 자천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세운 교회가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저는 스스로 나서서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제가 세운 것도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날마다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이 권세가 내려왔고 교회 안의 많은 사람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병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기도만 하면 나았습니다. 기도만 하면 나았습니다! 저는 매우 흥분했습니다. 이것이 보물을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소녀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과학에 맞지 않습니다! 사실 영적 세계의 권세는 과학보다 더 과학적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주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만물은 그분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하시려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방금 죽었든, 나사로처럼 죽은 지 나흘이 되었든 예수님 앞에서는 똑같습니다. 그분께 권세가 있고 생명이 그분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가 얻는 은혜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족도 이런 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의료비를 얼마나 절약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들이 믿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를 찾고 싶어 한다면 그렇게 하게 두십시오.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람은 기꺼이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회당장은 매우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직접 보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 딸이 죽었지만 예수님의 손에는 권세가 있다. 예수님께서 내 딸을 살리시면 내 딸은 반드시 살아날 것이다.” 회당장의 믿음은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사례가 되었을 뿐입니다. 장차 그 사람이 하나님의 곡식을 거두는 일꾼이 될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회당장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은혜를 얻은 후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곡식을 거두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권세를 얻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능력이 없다면, 그렇게 거두어들인 것이 과연 주님의 곡식일까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일을 보여 주셨고, 마태는 곁에서 그것을 본 후 자신이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고 감탄했습니다. 역대의 선지자들과 유대인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일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일어나 걷게 하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신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는 길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이 여인은 가진 돈을 모두 써 버렸고 의사들에게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마음에 아무런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자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마태복음》 9:21-22)

믿음은 사명이 있는 사람의 권세를 풀어 놓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 권세가 있어도 여러분 안에 믿음이 없다면, 그 권세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권세를 가지고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자 병이 나았습니다. 이 소문은 그 지역에 널리 퍼졌고, 그 일대의 사람들이 이런 하나님의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들이지 않고 예수님께 가기만 하면 치유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온갖 병을 고치신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 권세가 얼마나 좋습니까! 문제는 여러분이 이런 권세를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 때에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마태복음》 9:27-31)

예수님께서 이 모든 일을 보여 주신 후, 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이 왔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마태복음》 9:32-33)

여러분이 이런 상황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여러분은 ‘스승을 제대로 따랐구나!’라고 느껴야 합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태복음》 9:35)

주 예수님께서 일꾼이 너무 적다고 탄식하시다

여러분은 이런 권세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권세를 본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주님을 따르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집에 아이가 셋 있고, 여든이 넘은 어머니도 계시고, 남편도 있는데 저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오늘 우리에게 이런 권세가 있다면 여든 살 된 어머니 열 명, 자녀 서른 명보다 강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우리 손에 영적 세계의 권세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권세가 없다면 자녀와 연로한 어머니가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그 결과가 비참하지 않겠습니까? 이 권세를 얻었다고 해서 우리가 일을 엉망으로 하겠습니까? 이 권세를 얻었다고 해서 가족이 고통을 받겠습니까? 여러분,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문제에 바로 이 권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식은 일꾼이 너무 적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너무 적으며, 좋은 무화과는 너무 적고, 썩은 무화과는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3년 동안 섬기시며 수천수만 명을 섬기셨습니다. 회당장의 죽은 딸, 맹인들, 혈루증을 앓은 여인,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 등 많은 사람을 섬기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예수님의 승천을 직접 본 사람은 500명뿐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던 사람은 120명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천수만 명을 섬기셨지만 마지막에는 120명만 남았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매우 감격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 120명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를 은혜롭게 대해 주셔서,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가 늘 사명을 품고 뜨겁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유익만 얻고 싶어 하고, 권세 있는 사람의 덕만 보려 하며, 권세를 얻는 사람은 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마태복음》 9장을 읽는 모든 분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반드시 분명히 알기를 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일꾼을 일으키셔서 이 시대의 필요를 볼 수 있게 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며 기진한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목자가 되기를 갈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서 제가 행한 기적을 직접 보고, 목회 지역의 지도자들이 행한 기적을 보았다면, 마태처럼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고 하늘의 권세를 얻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저 믿음으로 은혜를 얻는 사람일 뿐 아니라 제 마음도 하나님께 감동받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본받아 하나님께서 걸으신 섬김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저도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며 곳곳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온갖 병을 고치고 싶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선택입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기 시작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 주시기를 구합시다!

왜 하나님께서는 일꾼이 적다고 탄식하실까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까? 서기관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까? 금식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밖에서 일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계신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원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선생(예수님)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님께서는 매우 탄식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라는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무엇을 해 주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사람의 필요와 마음속의 갈망을 보면서도 외면했습니다. 후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세례 요한의 제자들조차 하나님의 뜻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마태복음》 9:14)

하나님께서 얼마나 탄식하셨겠습니까? 금식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시며, 금식기도는 제사를 드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저는 기도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양들이 목자 없이 고생하며 기진하는 것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픈 사람이 있는데, 마침 설교 전에 저를 찾아온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아픈 사람을 인도하여 기도한 후에 설교 원고를 준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십니다. 양들이 모두 우물에 빠졌는데도 많은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금식기도 중입니다.” 이 바리새인들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온통 그런 것들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일에는 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금식기도를 하는 이유는 금식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할 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금식기도 자체를 위해 금식기도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는 것이 그저 살기 위한 것이고, 밥을 먹는 것이 그저 밥을 먹기 위한 것인 것과 같습니다. 금식기도도 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많은 사람은 예배하고 찬양할 때 귀신 들린 사람이 그곳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밖으로 끌어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을 해방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가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몇 곡의 찬양을 부르는 것이 귀신에게 억압받는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보다 그렇게 중요합니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는 자신들이 부르는 몇 곡의 찬양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많은 가르침도 매우 터무니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거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늘의 권세를 얻어 귀신에게 억압받는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 교회의 이런 상황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형식과 본질,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태복음》 9:16-17)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신 것일까요? 새 포도주와 새 가죽 부대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 포도주와 새 가죽 부대라야 둘 다 보존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서 본질을 가져야 합니다. 곧 포도주를 가져야 하며, 동시에 외적인 형식도 가져야 합니다. 외적인 형식을 위해 본질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가죽 부대만 있고 안에 포도주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금식기도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본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시며, 하나님의 뜻은 사로잡힌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가장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사역은 사로잡힌 사람을 해방시키고 억압받는 사람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사람을 가르치고, 능력 있는 복음을 전하며, 온갖 병을 치유하고, 귀신에게 억압받는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외적인 형식으로 찬양을 부를 수 있지만, 목적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것은 바로 이런 사명이며,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권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새 포도주뿐 아니라 새 가죽 부대도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어떻게 해야 나쁜 무화과가 되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쁜 무화과도 처음에는 모두 신선하고 좋은 무화과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썩게 되었을까요? 낡은 가죽 부대와 낡은 포도주에 머물렀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계속해서 새로워진다면 좋은 무화과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금식기도를 한다고 해서 나쁜 무화과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바리새인처럼 행동하면서 좋은 무화과라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바리새인처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을 보면서도 그분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한다면, 좋은 무화과가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사물의 본질을 붙잡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형식만 추구한다면, 직원으로 일해도 형편없는 직원이 될 것입니다. 사장이나 관리자가 되어도,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도 형편없을 것입니다. 형식만 중요하게 여기고 본질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는 사람을 훈련할 때 프로그램을 가르치든, 프로젝트 관리를 가르치든, 《성경》을 읽게 하든 모두 본질을 붙잡게 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잘 이해했습니까? 사물의 본질을 붙잡았습니까?” 우리가 늘 생각하지 않고, 머리를 쓰지 않으며, 사물의 핵심을 붙잡지 못한다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외적인 형식뿐 아니라 내적인 본질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새 포도주와 새 가죽 부대처럼 내면과 외면이 계속해서 새로워져야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만이 살아 있는 것이 됩니다. 어떤 것이든 새로워지기를 멈추는 순간 죽은 것이 되고, 새로워지기 시작하면 반드시 성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힘써 추구하며 계속 성장한다면 어떻게 썩은 무화과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성장하기를 갈망하지 않고 원래 있던 자리에 머물면서 마음속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평소처럼 살아간다면, 그렇게 살다가는 썩은 무화과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염병과 곰팡이와 질병과 가뭄 등 모든 좋지 않은 일이 여러분에게 닥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썩은 무화과를 처리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유일한 선택은 계속 하나님을 알아 가고, 계속 새로워지며,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을 새롭게 하여 새 포도주와 새 가죽 부대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곡식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곡식일까요? 예수님께서 병자를 방문하시려고 병원에 가서 그들을 치료하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사람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찾아왔고, 결국 모두 치유를 받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은 사람도 매우 많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생각했고, 차라리 구원받기를 바라면서도 치유받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혼동된 복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찾고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하나님의 큰 능력을 경험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매우 이상한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병들어도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았고, 병들지 않아도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먹고 입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재산도 넉넉했으며, 크게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면서도 불쌍히 여기지 않았고,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악한 습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처럼 사람을 긍휼히 여기기 시작해야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며 기진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곡식입니다.

하나님의 곡식이 아닌 사람들을 제게 거두라고 하시겠습니까? 병원에 가는 사람들이 저를 찾아오기를 원한다면 저는 그들을 섬기겠지만, 찾아오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곡식입니까? 바리새인들은 결코 하나님의 곡식이 아닙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과 가까이 지내기를 매우 원했지만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문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이 있는 사람은 외적인 형식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사람 안에 있는 필요와 갈망에 따라 사람을 판단합니다.

이 시대의 필요를 채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며, 자신의 필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리새인들에게 거절당해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며 기진한 사람들을 섬깁시다. 우리는 그들을 목양하여 건강을 회복하게 하고, 사명 안으로 들어가게 하며, 계속 성장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언젠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곡식을 거두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하늘의 권세를 얻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보내 주십시오. 주님의 섬김을 본받아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주님의 뜻을 이루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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