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어서 <느헤미야> 5장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신다"입니다. 이 장의 주제를 보면 느헤미야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논리가 있었는데, 여러분에게도 이 논리가 있다면 대단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신다"는 이 말씀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십니까?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한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무엘 같은 아들을 키우고 싶어서 이름을 한나라고 짓지만, 여러분에게는 한나의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신다"는 것이며, 이 말씀은 느헤미야의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어떻게 부유해졌을까요? 그는 어떻게 왕궁에서 술 맡은 관원장이 되었을까요?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신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것을 모르면 큰일 납니다! 그러면 목숨 걸고 일하지만 결국 일할수록 더 가난해집니다. 가만히 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일했다가 천만 위안을 날려버리니 야반도주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지만, 하나님 외에는 가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으며, 가난한 사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미국이 부유합니까, 부유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빈민가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한 국가에서 가난한 사람을 완전히 없애려고 한다면 수많은 촌극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왜 가난해질까요? 하나님께서 그를 가난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를 가난하게 하실까요? 그의 머릿속에 가난한 사람의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하나님은 사람을 잘못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어라, 이 녀석 머릿속에는 온통 가난한 자의 논리뿐이네. 그럼 내가 가난하게 만들어 주마!' 하시는 것입니다. 다들 이해가 되십니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부유하게 하셨는지를 깊이 경험했습니다. 비록 그의 집안에 돈이 많았지만, 그것은 부정부패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물에는 결코 근심과 재앙을 더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부패한 관리가 된다면 끝장입니다. 탐욕으로 얻은 돈에는 반드시 재앙이 따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돈이 아니라면, 설령 한 푼 한 푼 땀 흘려 벌어서 큰돈을 모았다 할지라도 재앙이 따르게 됩니다.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중국인 한 명이 체포되었는데, 싱가포르에서 돈세탁을 했고 그 배후에는 열 개의 사기 범죄 단지가 있었습니다. 아이고, 얼마나 악합니까!
미얀마 코캉의 4대 가문도 돈이 많아 기세등등했고, 전부 사기 단지를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동방의 대국을 건드렸다가 결국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기세등등하게 춤을 추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어디 춤출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사람은 평생 살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관건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면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가난한 자들이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할 때 부르짖고 원망하다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느헤미야》 5:1-5)
다들 읽고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느헤미야가 오기 전에도 그들은 집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지 않았습니까? 누구에게 부르짖고 아우성을 치며,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느헤미야가 "자, 우리가 성벽을 쌓아서 남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합시다"라고 하니, 그들은 아우성을 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제가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의 눈이 머신 것과 다름없습니다! 제가 말을 좀 강하게 하는 편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와서야 이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늘 이랬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온통 '내가 성전을 지을 시간이 어디 있어? 내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시간이 어디 있어?'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가난한 자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뿐이십니다. 왜 이 세상에는 가난한 자가 결코 끊이지 않을까요?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진노를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도 가난하고, 마음도 가난하고, 모든 것이 가난하여 태어날 때부터 가난한 사람인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부유해지려면 반드시 생각과 마음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는 흠을 잡거나 부정적인 것뿐이며, 온통 문제투성이여서 하나님의 형상은 눈곱만큼도 없고 사는 모습이 귀신 꼴입니다! 그러니 가난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가난하게 하지 않으신다면 공의로운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때가 되자 백성들과 그들의 아내들이 크게 부르짖지만, 정작 자신들에게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하여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백성들의 가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백성 중에는 성벽을 쌓으러 나올 수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집에서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거나, 장폐색이 있거나, 대변을 못 보거나 소변을 못 보거나, 피부가 짓무르는 등 온갖 병을 앓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남 탓을 하고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합니다. 그것이 남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들 자신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들을 이토록 재수 없게 만들었습니까? 왜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요? 영적인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싱가포르의 한 동료이자 친구와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어떤 크리스천 한 명을 데려오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특별히 은혜로 대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그 소위 '크리스천'이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의 뒤에 150cm, 140cm 되는 존재들이 줄을 서 있고, 맨 끝에는 쥐만큼 작은 것까지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원숭이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한데 서서 걸어 다녔습니다! 줄줄이 늘어선 것이 마치 강화소대 같았습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그러자 하나님의 영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이 매우 가난하고 아주 재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깨달았습니다. 귀신이구나! 저는 그 사람에게 말해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물었습니다. "요즘 일이 잘 안 풀리시죠?" 우리는 말을 좀 조심스럽게 해야 하니까요.
그 싱가포르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이고, 목사님, 정말 이분을 도와주셔야 합니다. 손대는 일마다 족족 망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귀신이 함께하는데 어찌 망하지 않겠습니까? 남들은 무슨 일을 해도 잘 되는데, 그가 하면 망가집니다.
어릴 때 "남이 소 끌고 갈 때 말뚝 뽑는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남이 소를 훔쳐갈 때 왜 말뚝을 뽑습니까? 결국 그가 잡혀서 말뚝이 집에 있으니 소를 훔쳤다고 누명을 씁니다. 소가 어디로 갔는지는 자기도 모르고 남이 끌고 갔는데 말입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재수가 없습니까?
이 시대에는 재수 없는 일이 참 많습니다. 재수 없는 일 하나만 겪어도 10년 치 고생이 헛수고가 되고, 두 번 겪으면 평생이 끝장납니다. 제가 예전에 말했듯이 "사기를 한 번 당하면 해방 전으로 돌아가고, 두 번 당하면 천지창조 이전의 흑암과 혼돈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가난한 자들이 성벽을 건축할 때 복을 받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재수가 없는 것은 반드시 영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귀신들이 그를 괴롭히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치라고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28장을 보면 저는 하나님 앞에 온몸을 던져 엎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은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순 살이 넘도록 빚더미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머릿속이 가난하고 어릴 때부터 가난뱅이 귀신에 사로잡혀 늘 사기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눈이 삐뚤어져서 부정적인 것만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긍정적인 것만 본다면 장차 복이 있을 것이요, 부정적인 것만 본다면 앞으로 큰 골칫거리가 생길 것입니다.
스물, 서른, 쉰, 예순, 일흔, 여든이 되어서도 매사를 부정적으로 본다면, 이 유대인들처럼 백성과 그 아내들이 크게 부르짖으며 형제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게 됩니다. 사실 그것은 남 탓이 아니라 자기 머릿속의 가난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이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으려 할 때 부르짖고 원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제 말을 자주 듣고 머릿속의 쓰레기를 계속해서 치워낸다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깊은 감회를 느낍니다.
며칠 전 한 자매가 제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아세요? 우리 회사에 감원 바람이 불었는데 제 월급은 3천 위안이나 올랐어요. 얼마나 신기해요!" 정말 기뻤습니다. 3천 위안이 큰돈은 아닐지라도 감원이 판치는 시기에 월급이 올랐다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가난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성벽을 짓고 성전을 짓자고 하면 온갖 핑계와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우리 가운데에도 참 재미있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종교적인 생각으로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제 설교를 들으러 오는 것 자체를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고, 제 설교를 잘 듣는다고 해서 들뜨지도 않습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제가 전하는 말이 여러분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제 말을 잘 듣는 것은 저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자주 듣고 나서 "선생님, 제 월급이 3천 위안 올랐어요"라고 한다면 어찌 가난해지겠습니까? 얼마 뒤에 "선생님, 월급이 또 3천 올랐어요!"라고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만, 하나님을 진노케 하면 제가 매일 목숨 걸고 기도해 준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압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몹시 힘들고 저에게도 거대한 시험이 됩니다.
속에서 짜증이 나고 요동칠 때도 있지만, 그 사악한 감정을 억누르고 함께 기도해 주고, 기도가 끝나면 상담해 주고, 상담 후엔 또 기도해 주는데, 도리어 제게 톡 쏘아붙이기 일쑤입니다. 참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말씀드리지만, 이 땅에는 가난한 자가 끊이지 않을 것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온종일 눈을 돈에만 고정하고 산다면 어찌 부유해지겠습니까? 돈만 쳐다보고 있으면 귀신이 찾아오고 더욱 가난해집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스스로 결정하십시오! 목회자가 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저는 발뒤꿈치로 점을 쳐도 팔괘보다 정확하게 맞출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길로 걸어가는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말은 이미 진작에 다 했고, 더 말해봤자 소용도 없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자니 재앙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꼴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요즘 <예레미야>를 묵상하면서 늘 이런 심정을 느낍니다.
가난한 자는 부유한 자에게 시험거리이다
만약 여러분이 돈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제가 지금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가난한 자는 부유한 자에게 시험거리입니다.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중심에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느헤미야》 5:6-8)
이 유다 사람들은 대체 왜 이랬을까요? 남이 빚을 갚지 못하자 무엇을 담보로 잡았습니까?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제 아이를 담보로 잡으세요. 집에 정말 아무것도 없고 이 아이뿐이니 제 아이를 파셔도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양측이 합의한 것이었고, 실제로 돈을 갚지 못하자 "그럼 아이를 데려와라, 내가 팔겠다" 하고 중개소에 팻말을 겁니다. '아무개는 남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니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시오. 사 가면 당신 것이요!' 그리고 돈을 챙깁니다. 돈을 못 갚아서 아이를 저당 잡혔기 때문입니다. 이 행동은 이치에 맞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입니다.
이치에 맞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일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뜻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가난한 사람들은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요? 사실 그들도 돈이 생기자 거만해졌고, 거만해지자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남의 자녀를 담보로 잡아 팔아넘겼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그에게 보응하십니다.
중국 속담에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1세대의 돈은 벌어들인 것이거나, 때로는 바람에 날려온 횡재이거나 부패로 얻은 것입니다. 1세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예전 1세대 부자들은 정말 근면하고 일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는 재벌 2세나 고위 관리의 자녀가 되니 "내 아이만큼은 나처럼 고생시키지 말아야지" 하며 애지중지 키우다가 결국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듭니다.
2세대는 돈을 탕진하기 시작하고, 3세대에 이르면 빈털터리가 되니 부자가 3대를 못 가는 것입니다. 그 가난한 자들도 다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그들도 이전에는 돈이 있었습니다.
<홍루몽>의 대관원 식구들이 얼마나 부유했습니까? 강남의 4대 가문 중 하나였으니, 그 부유함은 코캉 사기 단지의 두목들에 필적할 정도였습니다.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하지만 황제가 가택수색을 명하자 하루아침에 망하여 거리에 나앉고, 감옥에 가거나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세상만사는 돌고 돕니다. 누구에게 닥치든 감당하기 힘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모릅니까? 저주를 받아놓고도 돈은 자기가 벌었다고 착각하여 제멋대로 행하며, 이치에 맞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왜 부자가 3대를 못 가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저주가 세상 사람들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크리스천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온 세상이 다 그러하며,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영적 세계에 법칙을 정해 두셔서, 사람이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부자가 가난한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이것은 매우 치명적인 시험거리입니다. '네가 그를 그렇게 대했느냐? 그렇다면 장차 하나님도 너를 그렇게 대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가난한 자를 멸시하지 마십시오. 저는 동역자들에게 늘 말합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가난하든, 그에게 묶인 저주가 얼마나 깊든, 그가 아무리 괘씸하든 간에 그가 섬김받기를 원한다면 헌금을 얼마나 내는지는 상관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헌금 액수를 보고 차별대우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부유하니 잘 섬기고, 저 사람은 가난하니 대충 섬겨야지' 하는 순간 끝장입니다.
별문제가 없는 분이라면 제가 무엇을 섬기겠습니까? 그저 잘 살아가시면 됩니다! 글도 읽을 줄 알고, 말씀도 알아듣고, 장폐색도 없고 배변도 잘한다면 알아서 잘 성장하십시오.
하지만 정말 섬김이 필요한 사람들은 정성껏 섬겨야 합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정말 원치 않으며,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 복된 삶을 살기를, 머릿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유하게 하시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의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며, 사람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찾기 힘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백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일이며, 명문대에 합격하기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명문대에 들어갔다고 해서 다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느헤미야가 왜 분노했을까요? 느헤미야는 말했습니다. "이 멍청한 자들아, 너희가 이렇게 행하는 것은 저 가난한 자들이 예전에 행하던 짓과 같다. 너희는 스스로 저주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저당 잡힌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넘기되 이방인에게 팔아넘기다니!"
왜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팔았을까요? 이방인에게 팔아야 제값을 받고, 유대인에게 팔면 7년 뒤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악합니까? 그 돈이 정말 없으면 안 되는 돈이었습니까? 굳이 저주 가운데 살려고 이스라엘 사람이 사려는 것은 거절하고 기어이 이방인에게 팔아넘겼으니 참으로 악독합니다. 이것이 다 보응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을 가난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부유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믿지 않는다 해도 저는 상관없지만, 우리 형제자매들은 제 말을 귀담아듣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제가 천지에 호소하며 경고합니다. 조심하십시오!
우리 가운데 땡전 한 푼 없이 가난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끔 생각하면 깊은 감회가 듭니다. 예전에는 찢어지게 가난했다가 우리 화인명정신학의 승리하는 교회에 와서 형편이 나아졌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살만해지자 가장 먼저 섬김을 내려놓고 가장 먼저 예배 모임을 소홀히 하니, 이 얼마나 해괴망측한 일입니까?
예전에 가난뱅이 귀신에 시달렸던 당신이 지금 부유해졌다고 생각합니까? 생각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예전에 가위눌림에 시달리다 지금 나았다고 해서 다 잊어버렸습니까? 경외하는 마음을 품은 자가 몇이나 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과 영계의 실재를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작은 귀신 하나만 보내어 치셔도 당신은 도무지 뒤집을 힘이 없으며 마음은 한없이 완고해질 것입니다.
마치 이 가난한 자들처럼, 성벽을 재건하고 성전을 짓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하자고 할 때 도리어 부르짖고 원망하니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물론 느헤미야도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이미 저토록 가난하고 비참해진 자들을 뜯어고치기는 어려우니, 차라리 부자들을 교화시켜서 그 부자들이 몇 년이라도 더 부를 유지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행할 때 우리 하나님을 경외함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느헤미야》 5:9)
그것이 단순한 비방인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원수가 참소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자매는 행동을 엉망으로 해놓고 제가 조금만 지적하면 "저는 당신의 정죄를 거절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 역시 많은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정죄를 거절합니다." 그들은 마귀가 사람을 참소한다고만 생각하지만,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비방과 참소를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만약 이방인이 "저 유대인 놈들 봐라, 돈 때문에 못 하는 짓이 없네"라고 비방한다면 귀신이 듣겠습니까, 못 듣겠습니까? 듣습니다! 귀신이 찾아오겠습니까? 찾아옵니다! 귀신이 올 생각이 없더라도 하나님이 귀신을 보내시겠습니까? 보내십니다! 하나님이 그를 치실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살아 숨 쉬는 동안 아무 문제가 없을 때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인색하고, 트집 잡기 좋아하고, 분란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히 그래야 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수많은 재앙을 피할 수 있고 지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시부모와 관계가 좋은 며느리가 몇이나 됩니까? 그저 남 탓만 하며 "우리 시댁 식구들은 다 성격이 저래요"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은 어떤지 들여다보셨습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다들 남만 탓합니다.
물론 남편이 당신을 많이 참아주겠지만 남편의 속도 썩어 문드러집니다! 남편 역시 자기 부모가 못마땅할 수 있지만, 우리는 마땅히 우리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행동하겠습니까? 다 시부모 탓이라고만 하는데, 당신의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선생님, 제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셔서 그래요. 직접 당해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러면 저는 말합니다. "저는 그런 일을 겪지 않습니다." 제가 보니 그 사람은 스스로 저주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는 그런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제가 미쳤다고 그 길로 가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우리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귀신도 알고 하나님도 다 아십니다. 어떤 분은 "선생님은 그걸 어떻게 아세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수많은 영적인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자매의 축사 사역을 하며 기도를 인도했습니다.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끊어버릴지어다..." 그런데 자매가 말을 더듬거리며 입을 떼지 못하고 온전한 문장을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괴하지 않습니까? 참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제 머리 회전이 빠른 편이라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원래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고집부리는 귀신은 물러가라"고 하려 했는데 입이 안 떨어졌습니다. 귀신이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녀석이 아주 간교했습니다.
그래서 귀신을 속여보려고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성령이여 충만히 임하소서"라고 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어 따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말을 싹 바꾸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고집부리는 영은 물러갈지어다!"라고 외쳤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시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정리하고, 추상화하고, 요약하고 귀납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영계에서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것을요! 소름 돋지 않습니까? 제가 계획을 세워 말할 때 바꾸려고 해도 영들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제 어머니 몸에 있던 알츠하이머 노마의 영을 쫓아낼 수 있었을까요? 지각으로 그 영의 정체를 샅샅이 알고 있었고, 그 녀석은 내 안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우리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가난한 자들이 경외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진 자들인 여러분은 마땅히 우리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유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왜 그런 짓을 하여 굳이 가난의 길로 걸어가려 합니까? 이것이 바로 느헤미야의 분노였습니다.
여러분이 제 설교와 성경공부를 자주 듣는다면,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병들게도 하시고 고치기도 하신다는 말을 반드시 듣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탓하려거든 우리가 어리석었던 것을 탓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우리가 행할 때 마땅히 우리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때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옳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디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십시오!
우리 형제자매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하기를 소망합니다. 경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그의 가산을 털어버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가산을 털어버리신다
저는 '도우인(틱톡)'이라는 이름이 참 기가 막히다고 생각합니다. 털다 털다 가산이 다 털려서 빈털터리가 되면 큰일입니다. 성경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느헤미야》 5:11)
이자를 돌려주라니 손해 보는 것 아닙니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러자 무리가 "우리가 반드시 돌려주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 한마디에 부자들의 정신이 번쩍 든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시리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느헤미야》 5:12-13)
다들 들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가산을 털어버리십니다. 가난한 것보다는 부유한 것이 당연히 좋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그렇기에 우리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셨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 가난한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산을 털어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경외하는 마음을 좀 더 가지십시오. 그들이 손해를 보았습니까? 손해를 보았습니다. 경외했습니까? 경외했습니다. 복을 받았습니까? 복을 받았습니다.
물론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억지로 한 사람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 느헤미야는 비행기 날개에 묶어서라도 강제로 그들을 축복의 자리로 끌고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비행기에서 내리면 미라가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하겠지만, 숨만 붙어 있다면 다시 살려내는 것이 하나님께 가산을 몽땅 털리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부자들 중에 겉으로는 "아멘" 해놓고 집에 가서 마음을 바꾼 사람이 있었을까요? 있습니다! 집에 갔더니 아내가 눈을 부라리며 "누가 그 느헤미야 녀석 말을 넙죽 받으래요?"라고 하면 끝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분위기상 "아멘"을 안 할 수가 없었지만, 집에 가서 번복한다면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의 가산을 털어버리셔서 빈털터리로 만드실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부유의 비결
느헤미야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부와 가난에 대한 그의 관점은 온전히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그의 부유의 비결은 백발백중이었고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자, 읽어드리겠습니다.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느헤미야》 5:10)
그들은 백성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돌려받았을까요? 아마 거의 돌려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더라도 내버려 두라, 갚으면 그것이 은혜다"라고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베푼다고 해서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 설교를 듣고 기차역 같은 곳에 가서 사기당하지 마십시오. 사기꾼들이 "아이고, 신분증도 잃어버리고 핸드폰도 잃어버리고 돈도 없는데 집에 갈 기차표 한 장만 사주실 수 있나요?" 하면 절대 속지 마십시오. 열에 열은 다 사기꾼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알아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가난한 자들에게 이것들을 나누어 준 뒤에 그가 가난해졌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가난해지지 않았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빌려주고 상대가 갚지 못했다 하더라도—가난한 자의 재정은 밑 빠진 독이라 당신에게 갚을 돈이 영원히 없겠지만—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을 부유하게 만드십니다.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빼앗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느헤미야》 5:14-15)
하나님을 경외함, 이것이 바로 느헤미야의 부유의 비결이었습니다.
도리어 이 성벽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백오십 명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를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었더라. (《느헤미야》 5:16-18)
이것을 읽고 나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라고 말합니다. 매일 소 한 마리, 살진 양 여섯 마리, 조류를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 각종 술을 준비하면서 12년 동안 월급 한 푼 받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토지를 관할하며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만약 그가 땅을 사두었다가 12년 뒤 페르시아 수도의 왕궁으로 돌아갈 때 팔았다면 어땠을까요? 부동산 투기를 해서 땅을 사고팔았다면 엄청난 돈을 벌어 몇 배로 불렸을 것입니다.
그는 총독이었기에 어느 땅이 누구 것인지 결정할 권한이 있었고, 심지어 정책을 세워 이곳은 도심, 저곳은 상업지구로 지정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땅을 자기가 사두었다가 귀국할 때 팔아치워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부유할 수 있었을까요? 부유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났을까요? 그도 월급을 받지 않고 부하들도 월급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들으면 '이건 불가능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만약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에게 꿈을 꾸게 하셔서 국고에서 느헤미야에게 재정을 지원하게 하셨다면 그에게 돈이 없었겠습니까? 황제가 주기적으로 재물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열흘에 한 번씩 잔치를 열어 고기와 술을 즐겼고, 150명이 소 한 마리, 살진 양 여섯 마리, 조류와 좋은 술을 먹었는데 어떻게 거덜 나지 않았을까요? 어떤 이는 "나라 돈을 썼겠지"라고 하지만 아닙니다. 느헤미야 개인의 돈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가난한 자의 논리에 머물러 있다면 이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의 부유의 비결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왜일까요?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유하게 하시고자 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막을 수 없었을까요? 제가 방금 예를 하나 들어드렸지만 그런 예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한 것은 베푸는 삶이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베푸는 사람은 결코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정말이냐고요? 여러분은 이 영적 비밀을 모릅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저로 하여금 그분을 경외하게 하셔서 돈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늘 베푸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돈이 없다고 해서 베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베풀었습니다! 줄 수 있는 만큼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온 땅의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자 사명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길과 세상 사람들의 길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형제자매들이 믿음을 배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행하고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느헤미야》 5:19)
저는 이 구절을 참 좋아하며 평소에도 즐겨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기억하사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억하셨습니까? 기억하셨습니다. 은혜를 베푸셨습니까? 베푸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우리 가운데 오셔서 아직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베푸는 법을 배우지 못하며, 느헤미야의 부유의 비결은 배우지 못한 채 유대인들의 가난의 비결만 배웠다면 얼마나 비극입니까?
만약 여러분에게 만민의 축복이 되겠다는 넓은 마음이 있다면, 시부모나 가족, 목회자와 그깟 사소한 일로 아웅다웅 따지겠습니까? 그럴 일이 없어집니다! 당신은 베푸는 사람이요, 복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처럼 넓어진다면 복을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제 생각에, 느헤미야가 유다 총독으로 있을 때 황제가 따로 급여를 주지 않았더라도 유다 땅을 너무나 잘 다스렸고, 마침 황제가 수도에서 탐관오리를 척결하여 특별한 은혜로 그 재산을 느헤미야에게 하사했다면, 예루살렘의 그까짓 땅뙈기가 무슨 대수였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전화가 없었으니 황제가 서둘러 처분 절차를 밟아 집을 팔고 종들을 시켜 돈을 보내주게 했다면, 매일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를 대접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고자 하시면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우리 형제자매 모두가 베푸는 자가 되고 느헤미야의 부유의 비결을 깊이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누군가 여러분에게 진 빚을 탕감해 주었다면, 아멘! 그것이 바로 느헤미야의 부유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축복의 날을 맞이하십시오. 아멘!
모두 대범해지고 너그러워집시다. 우리의 마음을 땅콩만 한 크기에서 복숭아 크기만큼 넓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입니다. 복숭아에서 수박만 하게 넓어진다면 더더욱 대단하며, 마음속에 만민의 축복이 되겠다는 뜻을 품는다면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이번 성경공부는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