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我们查的《约翰一书》,你觉得怎么样?我觉得挺好,这么多年从来没有读得这么明白,终于把约翰很拽的《约翰一书》给读明白了。其实没拽,是我们觉得拽。这章叫做“原有的生命之道”。
Q1:老师,认自己的罪是竭力追求的态度吗?
认自己的罪,其实就是找到自己身上的问题。你如果找到自己身上的成长点你才能够成长,如果你每一次的自我感觉都非常良好,你不会找成长点。听明白了吗?其实我们自我感觉良好是非常糟糕的事!就是我这个人常常自我感觉不好,就因为我常常自我感觉不好我才成长了,我一直成长都好几十岁了我还在成长。我想,这个认自己的罪,它还谈不上是竭力追求的态度,就是很客观的评价一下自己,就是说我身上还有这个问题。
那我身上还有这个问题,要解决这个问题怎么办?解决这个问题就需要认识神的真理。那认识神的真理,认了自己的罪,耶稣洗净了自己的罪,就把你从罪的辖制当中释放出来,因为罪其实就是鬼,鬼就是罪,罪会让鬼可以捆绑我们。人不认自己的罪,罪就不会被洗净,鬼就在那里给你做怪,你就会发现里面有一个不可抗拒的力量,那你还怎么竭力追求?没有用,控制不住。所以认自己的罪,认识了自己的问题,离解决自己的问题还差很远,然后那时候才开始得着释放,才开始竭力追求。
Q2:老师,法利赛人是假冒伪善,是自己不信又在传道吗?
法利赛人假冒伪善,其实他自己就没整明白,然后还整天在讲。最重要的是你没整明白其实不要紧,你没整明白就好好整。你说:我还没整明白就完事了。比如人家问我一个很难的问题,我说:我还没整明白,我不知道,我慢慢整。怎么办?千万别装正经,然后整一个外表的形像。人如果靠着外表的形像活着,靠着自欺欺人活着,这不是很要命吗?不是传道不传道,其实不传道也还是个假冒伪善。他老做外表的形像,其实骨子里是一大堆死人的骨头。
Q3:老师,圣经里说的“神就是光”,这是比喻吗?我在黑暗的地方,心里就会莫名的害怕,这要怎么对付?
神是光,不是手电筒。如果你在黑暗的地方你害怕,你就整个手电筒。一瓦不够就整个十瓦,十瓦不够就整个大灯泡,一百瓦的电磁的,背在后背,很亮的,那个灯像举个伞似的。那神是个光,神是什么光啊?是照明我们身上污秽的光。听明白了吗?神是照明我们心里黑暗的光;照明我们身上的那些问题。我们身上的问题都需要神的光照啊!所以说:人心灵的黑暗那是何等的黑暗,人心灵黑暗了是何等的难受。心里难受怎么办?就需要神的光。
在黑暗中的百姓看到了这大光,就是耶稣基督的光;就是神的真理;就是神的话;可以照亮人的心。你会发现很多人丧尽天良啊,一整就把人家的腰子给割了;一整就把人家诈骗了,反正是挺坏。理解了吗?所以说你的那个黑暗,是灯泡就可以解决。如果你里面有害怕,其实是啥?那是人的无知。人无知自然而然就会害怕,如果说这有啥?啥也没有啊。
有鬼咋办?其实不用怕鬼。应该怕人,人出来劫道;人出来欺骗;人出来绑架,那就麻烦了。所以说有的人胆小,胆小会出很多问题。怎么对付?一定要开始让心灵明白过来,然后小心谨慎。小心谨慎和害怕不是一回事,害怕就是连谨慎都没有,光顾着害怕了,害怕是个非常愚蠢的东西。
Q4:老师好,麻烦您解释一下什么是宗教的灵?我不太明白。
这个宗教的灵,我给解释一下。你比如说孩子要考大学了,很多父母就到庙里烧柱香,烧柱香和他的孩子考大学考好有啥关系?没什么关系。那为什么人要去烧柱香呢?那东西就叫做宗教的灵。那宗教的灵怎么运作呢?就是欺骗这些无知的人,就是我做了一个啥,将来就会发生啥。
你看我就不觉得你做了一个啥将来就会怎么样,你比如烧柱香,说:牧师,最近我孩子要高考了,能不能为孩子祷告一下?我就为你祷告一下,我就觉得这东西不起什么作用。孩子平时不好好学习,然后祷告一下就好了?就是做一个宗教的行为,给死人烧点纸;给什么佛烧点香;以为做啥事就会发生啥事,其实这两件事没什么太大关系,但是人们就喜欢这么整。
Q5:老师,我们认罪,耶稣基督的宝血洗净我们的罪和一切的不义,那和赶鬼有什么关联呢?
这太简单了。一个人不认罪,鬼就一定住在他身上。一个人认完了罪耶稣洗净了你的罪,这鬼还在他的身上吗?在。你说认完了罪怎么还在呢?因为认完了罪这个鬼以前是合法居民,现在成了非法居民,非法居民还是要把牠赶走的,那赶鬼就容易了。但是人如果不认自己的罪,鬼是赶不走的。
我给你举个例子,人意识不到自己身上的罪,然后那个鬼就继续呆在那里,你赶没有用,因为牠有证牠合法呀。所以说赶鬼和洗净我们的罪紧密相关,你一洗净牠就成了非法的,你一赶牠就得走。如果牠赖着不走,牠觉得自己是合法的。我给你举个例子,有一个人他身上有一种灵,这种灵很邪性,这种灵就是让张国荣跳楼的这种灵,结果就住在他身上了。
我赶的时候牠说:我不走。我说:你为什么不走?鬼就说了:他喜欢张国荣的歌儿。你说喜欢张国荣的歌儿,和这个鬼有啥关系?邪性吧?因为人有追名星的习惯,然后我就带着他认罪悔改弃绝掉。然后这个鬼说:哎呀,我得走,我得走。我说:你赶紧走!祂说:再见。我说:谁跟你再见,永远不再见了!
Q6:老师,“信心若没有行为是死的”,这个“行为”是我们现在说的实践信心的实践吗?实践就是行为吧?我理解的对不对?
这是纯扯,信心没有行为怎么就是死的呢?我问你一个癌症患者他来祷告他有啥行为?难道神不会医治他吗?能。他不需要行为,听明白了吗?行为永远上不了档次。信心没有行为是死的这句话你从哪整的?你在哪学的?那如果你跟雅各学的,你好好学雅各,你就别来问我。你要学保罗,这信心就是信心,就别整别的。什么叫信心没有行为是死的?一个癌症患者要死了,他哪来的行为?死了吗?他的信心死了没有?就是这种话是很扯淡的话。怎么整了那么多肮脏污秽的东西呢?我想你如果带着这种态度,我看你会亏欠自己很多神的恩典,因为本来是活的信心,你认为是死的。
Q7:老师,最近在对付以能力为本的问题,虽然知道要不在乎,但演出前还是担心自己破音唱不好,害怕。这个问题我该如何解决?是不是没有信心?还是继续选择不在乎?我觉得我之所以这样想还是在乎。
这事很简单,因为我们一在乎我们就紧张,一紧张就做不好。那我们就觉着说,神一定会帮助我,所以我不用那么在乎。他是个逻辑体系的问题,如果一个人的逻辑体系是觉着自己做了啥,然后才怎么样,那就是你靠自己。如果你信靠神,反正神帮助我,你就不用担心,你好好唱不就完了吗?心里头就很踏实,然后就超常表现,这就是信心的好处。
Q8:老师,您好,关于“圣灵内住”,《约翰福音》14:16 说:我要求父,父就另外赐你们圣灵保惠师,就是真理的圣灵,叫他永远与你们同在,就是真理的圣灵。这不就是圣灵内住吗?
你认为这是圣灵内住,你就好好内住。每个人都有每个人的解读,其实觉着这挺好啊!我不是反对圣灵内住,那住就住呗,是吧!住挺好,但是住完了以后呢?一看还是一个很软弱的基督徒,这种现象说了已经不知道多少遍,也就是说圣灵内住我就觉着这是一个很奇怪的现象。如果圣灵住下来了,我应该像神才对啊,结果一看,怎么自己身上一堆的问题?
Q9:老师,我们要认什么罪呢?有很多我们不知道的罪怎么办?
你就先整知道的呗,那不知道的圣灵的光会照着你。所以人一辈子,今天照你的,你不认;没照的你非要认,那不是瞎整吗?
Q10:老师,耶稣一次的死就担当了我们所有的罪,即然担当了,还需要一直认罪吗?
问的问题挺有意思啊。担当了,人家担当的是认的,那不认的是没担当啊,听明白了吗?担当了你认的,没认的罪耶稣没担当啊。明显的违背神的话,我们都没改,耶稣已经担当,担当啥啊?反正我死了上天堂了,那你就去呗,去了以后一睁眼不是!咋办?
Q11:老师,能再说说“神是活人的神,不是死人的神”,死人指不信的人吗?
不是,死人就死了的人,死了的人就是死人。
Q12:老师,认罪了,耶稣宝血洗净了,鬼也赶走了,但是还要不断认识神,不断拆毁属世界的价值体系和对付自己的邪情私欲,否则罪还会重新长回来,这个理解对吗?
我看有点问题,那认罪他有真认罪、假认罪。如果说人是假认罪,他不是长出来,是根本没整对,根本就没有对付。也就是说一个人对付属世界的价值体系,他不是一下子就0到1了或者1到0了。这个属世界的价值体系多呀,就像一个烂尾楼似的,你拆啊,拆啊,拆很久;垃圾丢啊,丢啊,丢很久,才能把那个地方清理出来。
清理出来以后怎么办?还得建立属神的价值体系,也就是说这活没完没了啊,是吧!那我们认了罪,认了就认了,好像那么大一块地方就认了一小块,只把一小块归给神。所以我们要在我们的心灵的深处不断的收复失地,把它献给神,这就是以色列人进了迦南地要一块一块的收复失地。我也不知道答得对不对,有没有回答你这个问题。
Q13:我想问个问题,血漏的妇人拼命触摸耶稣,竭尽全力,才能跨过众人,可能跨过了几百人,因为靠近主耶稣人太多,这是积极主动的行为。那被动,懒惰,躺着祷告也是没有信心的表现,行为就是行动,去挣扎,去努力,靠着神改变环境,行为也很重要吧?
哎呀!我看大家在这个行为的东西上,好像还有很多困扰是不是?那我问你这是信心的表现还是一个行为的表现呢?这是信心的表现,行为是个啥?行为是照着我们所信的去落实,行为是一个信心外在的表现,啥也不是。别把这事整天拿来颠来覆去,整得自己都晕乎乎的。非得谈行为吗?行为来行为去,问来问去,我看大家关于这件事问来问去,问了很多。
那我问你这个患血漏的病人是怎么一回事?那还有一个人呢?那百夫长的仆人没动啊,就说,哎呀!夫子啊,你不用来我家,我不配。耶稣说在耶路撒冷也找不到这么大信心的人,他的仆人好了。所以说我们在这个骨子里头就一直受到了一种行为的污秽,就是信心,有信心就完了,别整那么复杂行不行?为什么非得把自己搞得晕乎乎的?我就不理解啊,我问你,哎呀!这是个机会;哎呀!这可以赚很多钱;哎呀!这个我得去投资。为啥?他相信,听明白了吗?结果一投被骗了,相信错了。也就是说信心也单单只有信心,别整那么复杂行不行?非得把行为掺和进来吗?如果你整天喜欢这么掺和,我告诉你,你脑袋里面会懵的,你能问出这种问题就是晕乎乎的。
那愚公移山一锹一锹铲那个山是信心还是行为?信心,是不是?我想我们弟兄姐妹里面有很多晕乎乎的东西。如果你真的觉着这东西挺有意思,你就把《雅各书》读明白吧。我就不理解了为什么非得把自己整得晕乎乎的呢?然后整了一大堆,哎呀!我被动,懒惰,躺在床上躺平,整了一大堆的这些词。还真有躺平的得医治的,你信不信?我想我们就别把这事扯进来,因为扯进来了以后,你就会发晕,发懵。哎呀!我的信心是活的还是死的?我的天呐!谁也解释不清,弟兄姐妹要知道信心是所有问题的根基。我想大家一定要开始照着《圣经》上的话来说。如果你信的是亚伯拉罕的神、以撒的神、雅各的神,你就照着亚伯拉罕、以撒、雅各的路去走吧。
愿神祝福大家,弟兄姐妹再见!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요한일서> 1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요한일서>는 너무나 이해하기 어렵게 쓰여 있어서, 수년 동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 감히 상고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요한은 쓸 때 자신이 명확하게 썼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사실 실제로도 명확하게 썼지만, 그것을 읽고 깨닫기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다른 많은 것들을 가르쳤고, 이후에 <요한일서>에 기록하여 <성경>에 수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계속 이해가 되지 않아 정말 진땀을 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뛰어난데 어떻게 이해를 못 할 수 있냐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언제쯤에야 이해하게 되었을까요?
많은 분들이 제 설교를 들을 때 제가 머리를 한 번 탁 치기만 하면 <성경>을 바로 깨닫는 줄로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그렇게 하면 순두부나 튀어나올 뿐입니다. 결코 그렇게 쉽게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며, 많은 공을 들여야 합니다. 수많은 목회자들 중에서 저는 대단히 공을 들이고자 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이 <요한일서>만 해도 분명 백 번 넘게 읽었을 것입니다.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는 인터넷에서 <요한일서> 성경공부를 검색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설교하는 것을 듣고 나면 마치 안 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저 본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읽고는, 다 읽고 나서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저는 깨달았습니다. <요한일서> 이 장의 주제는 '태초부터 있던 생명의 말씀(도)'입니다.
이 도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한일서> 1:1)
이 '태초부터 있던 생명의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의 생명의 도입니다. 본래 아담과 하와는 영광스러운 형상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선악을 분별하게 된 후 영광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멸망과 썩어질 형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태초부터 있던 생명의 도가 우리에게 다시 나타났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이 도로 하여금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 안에서 여러분은 이 도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은 자명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이 도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너무 큰소리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는 결코 허풍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우리에게는 간증이 많아서 생리통, 요추 통증, 두통, 목 통증 등 각종 질병과 고통이 치유받은 사례가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이 도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사도 요한은 이 말씀을 매우 명확하게 기록했는데, 왜 사람들은 읽고도 깨닫지 못할까요? 백지 위에 먹으로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도는 여러분이 친히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바라는 것입니다. 이는 제가 메신저 방에서 기도를 인도할 때, 어떤 분들이 천식이 나았다거나 관절염이 나았다고 글을 올려 간증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왜 노사도 요한은 이 말을 해야 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 도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이라며, 마치 어둠 속을 걷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여러분의 천식과 관절염은 나았지만 그들의 것은 낫지 않았기 때문이며, 여러분의 눈은 보게 되었지만 그들의 눈은 거의 멀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요한일서> 1장이 바로 그 원인을 밝혀 주고 있으며, 서서히 여러분도 우리가 <요한일서>를 아주 명명백백하게 풀어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이 도를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지난 수년간 저 역시 커다란 의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어디로 가셨는가? 형제자매들에게 문제만 생기면 주님은 어찌하여 휴가를 떠나시는가?' 여러분은 이전 교회에서 이런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으십니까? '하나님! 어디로 가셨습니까? 왜 우리에게 문제만 생기면 휴가를 가십니까?' 당시에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제게 그런 갈급함이 있었기에, 훗날 교회를 세울 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삶 속에 이루어내겠다고 굳게 결단할 수 있었습니다.
약 10년 전에 제가 설교 한 편을 전하면서 저 스스로도 몹시 흥분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모두 치유받았습니다"라고 선포했는데, 제목이 참 놀랍지 않습니까? 어떤 이들은 제가 허풍만 떤다고, 어떻게 다 치유받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도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때는 정말 다 치유받지 못했을지라도, 계속 선포하고 가르치다 보니 정말 모두 치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실 휴가를 떠나신 적이 없으며, 하나님은 원래 우리 가운데 계셨습니다. 다만 우리 안의 불신앙이 우리를 하나님과 단절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거나 오늘 우리 가운데 갑자기 찾아오신다면, 우리에게 분명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여러분, 우리가 믿음 생활을 꽤 잘하고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대화방에 또 어떤 분이 글을 남겼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강직성 척추염이 있는데도 매번 30분, 심지어 1시간을 걸어도 척추와 갈비뼈가 아프지 않게 해주셨고, 지금은 매번 두 시간 넘게 걸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저보다 대단하십니다! 저는 두 시간 넘게 걸으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도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나타나셨습니다. 2천 년 전에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전무후무한 표적들을 행하셨고, 능력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시며 이 생명의 도를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이 도는 이미 명백히 드러났으니, 우리가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사실 모든 문제는 우리 몸에 있는 죄와 관련이 있으며, 이 장은 이 생명의 도를 고도로 압축하여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이 도는 이미 나타났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일서> 1:1-3)
이 도는 이미 나타났지만, 훗날 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시 감추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도는 이미 밝히 나타났으며,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장차 다시 오실 것인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왜 이미 명백히 드러난 이 도를 다시 숨겨버리는지 참으로 의아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도가 이미 나타났는데 우리 가운데서 보셨습니까? 만지셨습니까? 들으셨습니까? 반드시 보고 만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소경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훗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도가 생명의 도임을 증명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며, 믿지 않는 자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노사도 요한은 시작부터 이 말을 썼을까요? 이 도가 불신앙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묻혀버렸기 때문입니다. 불신앙은 대단히 악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병에 걸렸다면, 그 병이 아무리 심각하든 죽을병이든 간에 고침받을 것을 믿으십니까?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섬긴 사람들이 하나둘씩 치유받은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가지고 계셨던 생명의 도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매우 직설적으로 썼지만, 우리 안의 믿음이 너무 둔하기 때문에 백 번은 들어야 합니다. 이는 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믿음이 너무나 둔했습니다.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귀신도 실수하지 않고 하나님도 실수하지 않으시며, 오직 우리 자신만 잘못할 뿐이다." 또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만 잘못했다면, 바로잡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며칠 동안 저는 사실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동역자들을 목양하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만질 수 있는 것을 만지지 못하며, 밝히 드러난 것을 다시 없애버리니 참으로 힘겨웠습니다!
이 도는 이미 나타났으므로, 우리 가운데서 태초의 생명의 도를 받아들인 사람은 더 이상 가난하게 살지 않습니다. 태초의 생명의 도를 영접했다면 온갖 질병을 앓으며 불건강하게 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인정(자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귀신도 틀리지 않고 하나님도 틀리지 않으시며, 오직 당신 자신이 잘못한 것입니다.
사람이 늘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매우 악한 습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사소한 성과를 가지고 제 앞에서 뽐내곤 하는데, 이는 '관우 앞에서 큰 칼을 휘두르는 격'이며, 사실 제가 가장 달가워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이 아직 바로잡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알고, 자신에게 이런저런 결점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즉 자기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결점이 많은데, 겨우 하나 고쳐놓고 무엇 때문에 꼬리를 치켜세웁니까? 저는 이렇게나 많이 고쳤음에도 여전히 꼬리를 바짝 내리고 있습니다. 이 도는 이미 나타났으니, 결코 다시 묻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노사도 요한은 우리가 이를 위해 증언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이미 완벽하고 훌륭하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증언한다
이를 위해 증언한다면 어떻게 증언합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증언하며,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16)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고린도전서> 2:4)
예수님께서 행하신 대로 우리도 행하며, 예수님께서 이루어 내신 모습 그대로 우리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이제 증언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세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기도해도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쁜 습관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도 역사가 나타나고,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 안의 육체에 속한 정욕과 탐심을 대적하는 것도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증언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평생토록 육신의 생각을 따른다면, 그것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며, 반드시 수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니 그 법칙 또한 그대로 역사합니다. 이 큰 능력이 나타날 때, 저주받을 자는 저주를 받고 복 받을 자는 복을 받게 됩니다.
간증이 없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제가 예전에 지역 교회에 있을 때는 간증이란 것이 가뭄에 콩 나듯 너무나 적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저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여겼습니다. 성경답지 않고, 예수님을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제게는 하나의 확고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행한다면 반드시 예수님을 닮게 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가 아닙니까? 주님께서는 친히 행하신 일을 우리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무슨 일들을 하셨습니까?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대로 따르는 것은 매우 단순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면 반드시 역사가 일어납니다. 만약 예수님의 이름으로도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을 잃어버려서, 본래 보고 만질 수 있었던 도를 지금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렸다면 기가 막힌 일 아닙니까? 원래 밝히 드러났던 것을 다시 파묻어버리고, 많았던 간증들이 사라져 버렸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예전에 한 자매가 땡전 한 푼 없을 만큼 가난했는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다며 대만에 가려고 했습니다. 제가 "싱가포르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단 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결국 빚을 내서 다녀왔지만 아무런 음성도 듣지 못했습니다! 돈만 다 쓰고 돌아와서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왜 이렇게 되었는지 제게 물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잘못된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원래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진실을 말해야 했기에, 또다시 그런 목회자들과 각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영광스러운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여러분, 여기까지 <요한일서> 말씀을 들으시니 참 좋지 않습니까?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일서> 1:2-3)
'사귐'이라는 단어 번역은 너무나 모호합니다. 여러분은 '사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십니까?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바나나입니까, 두리안, 사과, 배입니까? 그래서 저는 이것을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의 언어로 번역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영광스러운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습이시라면 우리도 이러한 모습으로 빚어져야 하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행하셨다면 우리도 그렇게 행해야 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가장 적게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는 것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이 성경을 번역할 때는 제가 만든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광스러운 형상의 회복'이라는 표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만,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훈련을 너무나 적게 받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육신을 다루기만 하면 이를 드러내고, 당장 제게 굳은 표정을 짓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한마디 한다고 해서 곧바로 기분 나빠하며 자신을 대입하지 마십시오. 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자라왔는데, 우리 사역자들 중에서도 제게 싸늘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것은 육신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7)
우리가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빛 가운데 행하면 동일한 형상을 지니게 되고 서로 사귐이 있으며,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빛 가운데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거리를 몇 바퀴 돌며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길래 스스로 인기가 많아 시선을 끄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얼굴에 밥풀 하나가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한참 동안 기분 좋아하다가 사람들이 쳐다본 게 얼굴의 밥풀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니, 진작 거울을 보았더라면 그렇게 망신스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우리 몸에 있는 더러움과 추악함을 비추어 드러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즉, 빛 가운데 행하여 여러분의 생각과 뜻을 밝은 곳에 올려놓고 비추어 보라는 뜻입니다. 속이 얼마나 더럽습니까? 여러분은 정말로 자신을 꺼내어 빛에 비추어 볼 용기가 있습니까? 다들 자신이 꽤 괜찮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소 강하게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비추어 보면 자신의 본모습이 낱낱이 폭로됩니다. 부끄러움을 가리려 하지 마십시오. 나뭇잎 몇 장으로는 아무것도 가릴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빛 아래 두고 비추어 보십시오. 비추어 보아야 비로소 자신이 원래 이렇게 더러웠음을 알게 됩니다.
외식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들 자기가 옳게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찌하여 저 혼자만 잘못하고 있다고 느낄까요? 게다가 사람들은 제 상처에 소금을 뿌리기까지 합니다. 자기도 옳게 못 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어떻게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게 하느냐는 식입니다. 저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제 안에 수많은 더러움과 문제와 죄가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을 받습니다. 오늘도 씻고 내일도 씻어야 비로소 조금 깨끗해집니다.
제 앞에 나아와 자신에게 아직 어떤 문제가 있는지 털어놓기를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제가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문제들을 정리해 보고 자신에게 어떤 어리석음이 있는지 돌아보라고 했더니, 도리어 자기가 매우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줄곧 제가 그리 똑똑하지 못하다고 여겼기에 지혜로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줄곧 자기가 똑똑하다고 여기면 도리어 미련해집니다. 사람이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음을 안다면 진실하게 고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죄를 씻어 주시려고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스스로 괜찮다고 여긴다면 어떻게 씻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얼굴에 밥풀을 잔뜩 묻히고 있는데, 몰래 먹었으면 입이라도 닦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가에 밥풀을 묻히고도 훔쳐먹지 않았다고 우깁니다. 빛 가운데 행하지 않으면 결국 어둠 가운데 행하게 됩니다.
이 생명의 도를 받는 핵심 비결
이 생명의 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 도를 보고 만질 수 있게 하며, 나타나게 할 수 있는가? 이 도를 위해 증언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영광스러운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이 도를 영접하는 핵심입니다. 제가 다소 흥분하여 말씀드리는 이유는, 수년 만에 처음으로 <요한일서>를 온전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한일서> 1:7-8)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제 앞에 와서 자신에게 아직 문제가 있고, 어떤 부분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닮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극해도 예수님은 분노하지 않으셨는데, 왜 자신은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남에게 굳은 표정을 짓습니까? 누군가 자기 문제를 지적하면 곧바로 맞받아치고, 선생님이 한마디 하면 어찌하여 속에서 감정이 솟구칩니까? 만약 여러분이 "선생님, 저는 결코 선생님께 화내지 않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저는 "좋습니다, 하나님의 도를 받으십시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과거에 <요한일서>를 공부할 때 사람들은 죄를 한 번만 자백하면 다 끝난 줄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이를 닦고 세수를 해야지, 세수도 안 하고 눈곱을 덕지덕지 붙인 채 나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떤 분이 채팅창에 부부가 자주 서로 욕하며 싸운다고 글을 올렸는데, 그것은 자기 단점은 보지 않고 상대방의 단점만 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단점을 볼 때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자신의 문제를 볼 때는 축소경을 들이대니 자기 문제는 아예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그동안 얼마나 낭비했습니까? 이 도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며, 이미 나타났고, 우리가 이를 증언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회복할 수 있게 합니다. 하루 종일 남편과 욕하고 다투면서 하나님이 당신 같으실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보기엔 귀신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도를 영접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이 생명의 도를 받는 핵심 비결은 바로 자기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한 번 회개했다고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몸에 여전히 수많은 문제와 결점들이 남아 있습니다. 나중에 주님께서 오셔서 보실 때 여전히 결점이 가득한데, 주님더러 다 고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시겠습니까? 자기 죄를 자백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있는 그 미련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인터넷에 어떤 분이 글을 쓰기를, 남편이 월급 통장에 있는 돈을 전부 시아주버니에게 맡긴다고 했습니다. 당신 같은 아내를 얻었으니 남편이 돈을 시아주버니에게 맡긴 것 아니겠습니까?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게다가 그 사람, 본인이 직접 선택한 것 아닙니까? 결혼하기 전에도 그런 사람이었는데 이제 와서 불만을 품습니까? 타오바오에서 물건을 사고 7일 이내 무조건 무료 반품을 하듯 물리고 싶습니까? 이미 7년이 지나서 반품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평생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만족에 빠져 이 생명의 도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평생 자신만 옳고 남은 그르다고 여기며 살면 몹시 비참해집니다. 평생토록 죄를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자신에게 이 부분이 잘못되었고 하나님을 닮지 못했으며 저 부분에도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탐구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어떤 이들은 왜 늘 다른 사람의 문제만 말하고 제 자신의 문제는 말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저는 제 문제를 이야기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매번 이 생명의 도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늘 제가 잘못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자주 제가 틀렸음을 인정하며, 그것은 몹시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이 과거에 고난의 여정을 걸어왔던 이유는, 진정으로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조금씩 회복해 가는 것이며,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하나님을 닮지 않은 모든 부분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조금씩 교정받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점진적으로 회복해 가는 것이며,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한 우리는 여전히 죄인일 뿐입니다.
때로 우리 사역자 중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며 그 사람은 원래 저 모양이고, 배은망덕할 뿐만 아니라 형편없다고 말합니다. 제가 "당신도 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하면, 그 사역자는 즉시 "전혀 다릅니다"라고 반박합니다. 그렇다면 제 눈이 틀렸다는 말입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그렇게 잘 지니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지닌 사람은 당신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반드시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양하는 과정에서, 사역을 해보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어떤 사역자들은 목양을 조금 해보고는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끼며, 제가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라고 가르쳤다고 여깁니다. 제가 리더로서 본을 보이라고 한 것은, 조용히 집에 돌아가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스스로의 문제를 고치라는 뜻이었습니다.
신앙의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자백해야 하며, 평생 고백해도 다 끝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역의 마지막 때에 이르러서까지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에 <갈라디아서>를 쓸 때는 젊고 혈기가 넘쳐 거침없이 힘찬 필치로 써 내려갔지만, 노년에 이르러서는 온유해져서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여겼습니다. 바울과 같은 대사도도 이렇게 말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수시로 찬물을 끼얹으시며 그를 일깨워 스스로 부족함을 보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어떤 분이 "선생님, 어찌하여 이렇습니까?"라고 묻길래, 저는 "이것이 내가 죄를 지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내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이렇게 다루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황천길로 갔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평생 결코 발걸음을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앞을 향해 힘써 달리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광스러운 형상을 회복하십시오. 여러분 모두 아직 온전히 회복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회복했다면 왜 제 눈에는 보이지 않겠습니까? 어느 부분이 여전히 귀신 같고, 어느 부분이 여전히 독선적이며, 어느 구석이 아직도 엉망진창입니까? 제대로 고치십시오. 우리 함께 고치고, 함께 죄를 자백합시다. 더 많이 성장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며, 하나님을 닮아가야 할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하나님! 주님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미 나타난 이 생명의 도가 너무나 필요합니다. 하나님, 주께서는 저의 눈물을 멸시하지 않으시니 제가 주님을 더욱 닮기 원합니다. 하나님, 저를 다루어 주시고 저의 육체에 속한 정욕과 탐심을 죽여 주옵소서! 귀신도 이를 알고 저를 자주 시험합니다. 마음속의 그 느낌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상처받는 것은 실로 힘겨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제가 사실 저런 사람들을 섬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을 찔러댑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귀신이 제 마음을 꽤나 잘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제 육신의 생각이나 선호대로라면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고 싶고, 정말이지 그런 사람들과는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뜻대로 행하지 않고, 성령이여 오셔서 내 육신의 행실을 죽여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하게 하소서! 그 고통스러운 느낌은 얼마나 생생한지, 마치 쇠똥구리나 방귀벌레를 씹은 것 같아서 그 지독한 냄새가 입안에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앞으로 나아갈수록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무가치한 자인지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으셔서, 과거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욕되게 하며 모독했던 저를 거듭거듭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자격으로 육신의 선호에 따라 선택하겠습니까? 도망칠 수 있는 한 멀리 도망친다고요? 도망치려면 죽을 때까지 도망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조금씩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을 대대로 일으키실 것이며, 이것이 바로 생명의 도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가십시오. 하나님의 생명의 도를 얻는 것은 너무나도 보배로운 일입니다.
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한일서> 1:8)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한일서> 1:10)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데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귀신을 닮은 구석이 너무나 많은데, 거울을 들여다보거나 자신을 비추어 보십시오. 저조차도 온 힘을 다해 겨우 바로잡을 때가 많으며, 사역의 길에서 매 순간 내 안의 육신에 속한 정욕과 탐심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매번 쇠똥구리나 방귀벌레를 삼키는 것처럼 속이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자신의 정욕과 탐심을 대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죄가 없다고 여긴다면 자기를 속이는 것이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여긴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는데 우리를 속이시겠습니까?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주신 것입니다.
제 마음은 참으로 착잡합니다.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이미 온전하여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외식이며,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거룩한 척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짓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이켜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돕기 원하시며, 우리 같은 죄인이 그분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이 우리 몸에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 안의 이기심과 정욕, 선악을 분별하는 것과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것 등 고쳐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가르칠 뿐만 아니라, 눈물로 권면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자신의 사소한 일들에 매이지 말고 꿰뚫어 보며,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덧입으십시오. 아멘! 오늘 나눔을 하면서 다소 흥분했는데, 오랜만에 이런 성경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안의 더러움을 보았고,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죄를 자백해야 하며, 하나님을 닮지 않은 부분을 조금씩 고쳐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