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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무엘하 17장 - 하나님이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파하셨으니 이는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심이라

2023-09-22 61,368 撒母耳记下 撒母耳记下17章 撒母耳记下第十七章 神在掌管世界 看不见的一只手 神破坏人的计谋 神要怜悯谁就怜悯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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撒母耳记下17章-户筛破坏亚希多弗的计谋
  • 1 亚希多弗又对押沙龙说:“求你准我挑选一万二千人,今夜我就起身追赶大卫,
  • 2 趁他疲乏手软,我忽然追上他,使他惊惶;跟随他的民必都逃跑,我就单杀王一人,
  • 3 使众民都归顺你。你所寻找的人既然死了,众民就如已经归顺你;这样,也都平安无事了。”
  • 4 押沙龙和以色列的长老都以这话为美。
  • 5 押沙龙说:“要召亚基人户筛来,我们也要听他怎样说。”
  • 6 户筛到了押沙龙面前,押沙龙向他说:“亚希多弗是如此如此说的,我们照着他的话行可以不可以?若不可,你就说吧!”
  • 7 户筛对押沙龙说:“亚希多弗这次所定的谋不善。”
  • 8 户筛又说:“你知道,你父亲和跟随他的人都是勇士,现在他们心里恼怒,如同田野丢崽子的母熊一般,而且你父亲是个战士,必不和民一同住宿。
  • 9 他现今或藏在坑中或在别处,若有人首先被杀,凡听见的必说:‘跟随押沙龙的民被杀了。’
  • 10 虽有人胆大如狮子,他的心也必消化;因为以色列人都知道你父亲是英雄,跟随他的人也都是勇士。
  • 11 依我之计,不如将以色列众人,从但直到别是巴,如同海边的沙那样多,聚集到你这里来,你也亲自率领他们出战。
  • 12 这样,我们在何处遇见他,就下到他那里,如同露水下在地上一般,连他带跟随他的人,一个也不留下。
  • 13 他若进了哪一座城,以色列众人必带绳子去,将那城拉到河里,甚至连一块小石头都不剩下。”
  • 14 押沙龙和以色列众人说:“亚基人户筛的计谋比亚希多弗的计谋更好!”这是因耶和华定意破坏亚希多弗的良谋,为要降祸与押沙龙。
  • 15 户筛对祭司撒督和亚比亚他说:“亚希多弗为押沙龙和以色列的长老所定的计谋是如此如此,我所定的计谋是如此如此。
  • 16 现在你们要急速打发人去,告诉大卫说:‘今夜不可住在旷野的渡口,务要过河,免得王和跟随他的人都被吞灭。’”
  • 17 那时,约拿单和亚希玛斯在隐·罗结那里等候,不敢进城,恐怕被人看见。有一个使女出来,将这话告诉他们,他们就去报信给大卫王。
  • 18 然而有一个童子看见他们,就去告诉押沙龙。他们急忙跑到巴户琳某人的家里;那人院中有一口井,他们就下到井里。
  • 19 那家的妇人用盖盖上井口,又在上头铺上碎麦,事就没有泄漏。
  • 20 押沙龙的仆人来到那家,问妇人说:“亚希玛斯和约拿单在哪里?”妇人说:“他们过了河了。”仆人找他们,找不着,就回耶路撒冷去了。
  • 21 他们走后,二人从井里上来,去告诉大卫王说:“亚希多弗如此如此定计害你,你们务要起来,快快过河。”
  • 22 于是大卫和跟随他的人都起来,过约旦河。到了天亮,无一人不过约旦河的。
  • 23 亚希多弗见不依从他的计谋,就备上驴,归回本城;到了家,留下遗言,便吊死了,葬在他父亲的坟墓里。
  • 24 大卫到了玛哈念,押沙龙和跟随他的以色列人也都过了约旦河。
  • 25 押沙龙立亚玛撒作元帅,代替约押。亚玛撒是以实玛利人(又作以色列人)以特拉的儿子。以特拉曾与拿辖的女儿亚比该亲近;这亚比该与约押的母亲洗鲁雅是姐妹。
  • 26 押沙龙和以色列人都安营在基列地。
  • 27 大卫到了玛哈念,亚扪族的拉巴人拿辖的儿子朔比,罗·底巴人亚米利的儿子玛吉,基列的罗基琳人巴西莱,
  • 28 带着被、褥、盆、碗、瓦器、小麦、大麦、麦面、炒谷、豆子、红豆、炒豆、
  • 29 蜂蜜、奶油、绵羊、奶饼,供给大卫和跟随他的人吃;他们说:“民在旷野,必饥渴困乏了。”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무엘하> 17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 장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보십니까? '참 안타깝다, 압살롬은 어째서 후새의 계략을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사실 아히도벨의 계략이 후새의 계략보다 훨씬 좋았지만, 후새가 말을 그럴듯하게 풀어내어 압살롬을 홀려버렸습니다. 만약 우리가 압살롬과 다윗의 이야기가 아니라 유방과 항우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홍문의 연회 같은 대목에서 '항우는 왜 유방을 죽이지 못했을까?' 하고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사실 많은 일들은 보이지 않는 섭리 가운데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압살롬에게 재앙을 내리시려고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무너뜨리시다>입니다. 인류의 역사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관하시는 손길이 있는데, 사람의 일평생에도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 많아서 다 말씀드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투자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는 돈을 좀 벌더니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드디어 찾아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은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이끌려가는 것 같습니다.

한 나라의 운수를 국운이라 하고, 한 사람의 운수를 운명이라고 하듯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압살롬은 다윗의 왕위를 손쉽게 차지하고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왕위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무너뜨리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이 장에서 우리는 압살롬이 매우 똑똑한 사람임을 봅니다. 그는 다윗의 왕위를 찬탈하고 다윗을 허겁지겁 도망치게 만들었는데, 바로 이때가 다윗과 압살롬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침 이때 압살롬은 젊음의 기세가 등등하고 미간마다 자신감이 넘쳐흘러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를 쫓아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도 모두 자신에게 복종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시 카메라로 찍어두었다면 압살롬의 입꼬리와 눈가에 자신감과 의기양양함이 묻어나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고, 배후에서 이 일을 주관하셨습니다. 만약 이때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략을 받아들여 그에게 1만 2천 명을 주어 다윗을 쫓게 했다면, 아히도벨이 다윗을 생포하거나 심지어 다윗을 쓰러뜨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누가 더 엉망인가를 겨룬다는 매우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이 누가 더 엉망인가를 겨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엉망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압살롬이 다윗보다 더 엉망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앞선 장에서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다윗의 반응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시험하고 계심을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그의 꾀에 넘어가 선악을 분별해서는 안 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한 수 위였고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만약 다윗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압살롬이 왕위를 굳건히 지켰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시대, 어느 왕조이든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 원리를 깊이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원리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개똥 원리' 같은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나 자신을 개똥처럼 여기는 저의 태도를 보시고 혹시 나를 불쌍히 여겨주실까 해서입니다. 이 개똥 이론은 정말 쓸모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내공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누가 더 엉망인가 겨루는 것 아니겠습니까? 압살롬은 자기가 의기양양해서 다윗보다 낫고,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미남이며,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는 대단하고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끝장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나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혹은 누가 나를 몇 마디 헐뜯든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는 먹을 때 먹고, 마실 때 마시고, 잘 때 잡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보내어 내게 큰 잘못을 저지르게 하신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할 테면 하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일을 더 많이 하라고 하시면 저는 더 많이 할 것입니다. 일하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또 하나의 이론이 있는데, 바로 양생(養生) 이론입니다. 일하는 사람만이 살아납니다. 제가 한의학 책 한 권을 보게 되었는데, 엔지니어가 쓴 책이었습니다. 펼쳐보니 <황제내경>까지 인용해 두었더군요. 저도 예전에 <황제내경>을 읽어보았지만 그 사람만큼 잘 읽지는 못했습니다. 그 책에 뭐라고 쓰여 있었을까요? 노동은 양기를 기르고, 휴식은 음기를 기른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기(氣)가 부족한데 몸이 어떻게 좋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노동은 양기를 기르니, 사람이 일해야 양기가 생깁니다. 예전에는 읽어도 깨닫지 못했는데, 그 사람이 써놓은 것을 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책의 제목이 워낙 크게 적혀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내용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일하면 양기가 자라고 쉬면 음기가 자라는데, 사람이 매일 쉬기만 하면 분명 음이 성하고 양이 쇠하게 되어 몸을 망치게 됩니다. 한 형제가 어떤 정부 부처에서 일했는데, 그 부서는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서 사람들이 검사를 받았더니 암이 발견되었고, 사람들은 다음 차례가 자기가 될까 봐 사시나무 떨듯 겁에 질렸습니다. 그 부서는 일은 거의 없는데 월급은 아주 많았습니다. 일하기를 싫어하고 에너지는 넘쳐나니 결국 탈이 난 것입니다.

이번 장의 주제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의 계략을 무너뜨리신 것은 압살롬에게 재앙을 내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누가 더 엉망인가를 겨루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보다 더 엉망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가나안 사람들의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 이 세대에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실 때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중국인들보다 더 엉망이라면, 중화권 교회가 흥왕하겠습니까 아니면 서양인 교회가 흥왕하겠습니까? 분명 중화권 교회가 흥왕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 세대에 우리 중화권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누가 더 엉망인가를 겨루는 것이니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방금 개똥 이론과 노동 이론을 한참 이야기했는데, 이제 이번 장의 주제인 <하나님께서 압살롬에게 재앙을 내리시려고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무너뜨리시다>를 나누겠습니다.

사람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는 것은 하나님께 매우 쉬운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유방이 항우보다 낫자 하나님께서 "좋다, 유방이 올라가라" 하셨고, 결국 항우는 오강에서 자결했습니다. 그렇다면 항우에게는 계략이 없었을까요? 사실 그에게도 뛰어난 모사들이 낸 훌륭한 계책들이 있었고, 그중 어떤 것이든 듣기만 했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는 것은 하나님께 매우 쉬운 일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 좋은 계략을 무너뜨리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좋은 계략을 무너뜨리는 이 일은 정말 신기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 마오쩌둥 주석이 세운 신중국은 어떤 면에서는 정말로 하나님의 뜻에 더 부합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왜 하나님의 뜻에 더 부합하느냐며 저와 논쟁을 벌였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셔서 신중국을 세우셨습니다. 사구(四舊, 낡은 사상·문화·풍속·습관)를 타파하고 이런 것들을 다 없애버렸으니 얼마나 좋고 깨끗합니까! 장제스에게 좋은 계략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있었지만 다 소용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는 것은 하나님께 매우 쉬운 일입니다. 유방과 항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제갈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갈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늘의 뜻(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제갈량도 나중에 "하늘의 뜻이로구나"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계략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제갈량의 방식을 배우는 것은 너무 어렵지만, 하나님을 믿는 방식을 배우는 것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계략을 무너뜨리시기 때문입니다. 아히도벨이 낸 계략이 좋았습니까? 좋았습니다. 후새가 낸 계략이 좋았습니까?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후새의 계략을 선택했습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습니까? 만약 압살롬이 후새를 불러오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아히도벨의 계략대로 다윗은 분명히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생각하기를 '후새도 있지 않은가?' 하고는 "후새야, 이리 와서 아히도벨의 계략이 어떤지 들어보아라"고 말했습니다. 이 후새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여러분 눈에는 사람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매우 중요한 말씀이 있는데, 바로 두 번째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다윗이 눈앞에서 멸망당할 뻔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단어를 깊이 배워야 합니다. 제가 왜 이 '개똥 이론'을 만들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계속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으며, 목사라는 직함도 대단하게 여기지 않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무겁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 바울이 쓴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이 말씀은 정말 그대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원하지 않으실지 몰라도 저는 원합니다. 다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주신 것이고,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고 계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앙망해야 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앙망해야 합니다. '주의 은혜를 부르짖네, 주의 긍휼을 부르짖네'라는 찬양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긍휼히 여기시고자 압살롬의 훌륭한 계략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앞 장에서 다윗이 취한 태도 때문입니다. 다윗은 **"혹시 하나님께서 내가 고난당할 때의 반응을 보시고, 내가 한낱 개똥과 같은 존재임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베푸실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가 이 이론을 만든 것도 다윗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니, 절대로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자신이 유능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말며, 자신이 최고라고 뽐내지 마십시오. 당신이 아무리 대단해도 하나님보다 대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앙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한소리 듣는 것은 여러분 안의 거만하고 기고만장한 기세를 꺾기 위함입니다. 왜 교만하게 굽니까? 교만하지 마십시오. 하물며 책망을 듣는 것이 유익이 될 때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앙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행하는 것이 진짜 지혜입니다!

모사의 좋은 계략도 하나님의 행하심을 막을 수 없다

아히도벨의 계략이 얼마나 좋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매우 급하게 도망쳤기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온종일 본분을 다하지 않다가 압살롬에게 권력을 찬탈당했고, 모사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계책을 내주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 주변에 얼마나 많은 모사들이 있었겠습니까? 아주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압살롬에게 판돈을 걸었고, 많은 사람이 압살롬이 왕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대세의 흐름을 보고 압살롬을 택했고, 이스라엘 백성과 모든 장로들도 압살롬을 택했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은 자기가 대단하다고 우쭐해졌습니다! 그가 자기를 대단하게 여겼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가 후새에게 물었습니다.

후새가 또 이르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이 들에 있는 새끼 빼앗긴 곰 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아버지는 붉은 용사라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지금 어느 구덩이에나 어느 곳에 숨어 있으리니 혹 무리 중에 몇이 먼저 엎드러지면 그 소문을 듣는 자가 말하기를 압살롬을 따르는 자 가운데에서 패함을 당하였다 하리라. 비록 사자 같은 마음을 가진 용사일지라도 낙심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아버지는 영웅이요 그의 추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그 위에 덮여 그와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가 만일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시내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하고 (<사무엘하> 17:8-13)

이 구절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다 압살롬에게 굴복했다는 뜻입니다. 압살롬이 듣기에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다 압살롬에게 귀순했으니 무엇을 걱정하고 염려하겠습니까? 다윗이 어느 성으로 도망치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마다 밧줄 하나씩을 들고 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당겨 버릴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을 강으로 끌어내려 작은 돌 하나 남기지 않는다니 얼마나 과장된 말입니까! 압살롬은 이런 아첨의 말을 듣기를 몹시 좋아했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이런 달콤한 말을 좋아한다면 여러분도 압살롬이 된 것입니다. 절대로 압살롬처럼 되지 마십시오. 압살롬처럼 되면 망합니다!

왜 늘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깁니까? 모사의 좋은 계략도 압살롬에게 재앙을 내리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만심에 가득 찬 사람을 몹시 싫어하십니다! 우리에게는 나쁜 습관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성도들을 양육할 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차라리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낫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모사를 의지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모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보십니다!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준 계략이 얼마나 훌륭했습니까? 그러나 압살롬은 듣지 않았습니다. 듣고 안 듣고는 결국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압살롬과 모든 장로들이 후새의 생각을 듣고는 "좋다, 이 계략이 아히도벨의 것보다 낫다!"라고 말했습니다.

후새는 무슨 역할을 한 것입니까? 그는 먼저 다윗이 발판을 다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고, 그다음 다른 방도를 찾으려 했습니다. 아히도벨이 바로 밀고 들어갔다면 생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히도벨의 계략은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결정권자 자신이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P2P 금융 사기를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 자신이 직접 결정한 것이고, 자신의 은행 계좌에서 사기꾼에게 직접 송금한 돈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사기를 당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횡재이자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언자가 아무리 속지 말라고 경고해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이 좋은 기회라고 굳게 믿고 있으니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신 질환을 앓는 한 어린 소녀가 있었는데, 마침 제가 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병에 걸린 후 그 부모는 광시(廣西)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광시에는 사기꾼이 많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곳에 갔다가 60만 위안을 사기당해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정신 질환에 걸렸는데도 그 '기회'를 붙잡으려 했던 것입니다! 속지 말라고, 사기극이라고 말해줘도 믿지 않았습니다! 후새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냈고, 압살롬은 달콤한 말을 좋아했기에 그대로 믿어버렸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듣기 좋은 소리만 좋아한다면, 앞으로 저는 "압살롬 같은 자"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 커다란 도마뱀도 용(龍)이라 불리듯 말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무너뜨리시는 것은 너무나 쉬우며, 어떤 좋은 계략도 이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립니다. 모든 일에서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 되십시오!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하신다면, 행운을 빌 뿐입니다! 우리 가운데 기업을 운영하고 창업하며 이것저것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까? 만약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하고 우리의 마음과 머릿속에 하나님의 진노를 살 것들로만 가득 차 있다면, 아무리 좋은 사람이 훌륭한 계책을 내준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시대의 바람을 타고 날아오를 수는 있겠지만,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땅에 곤두박질쳐 햄버거 패티처럼 짓이겨지지 않겠습니까? 날아오르기는 쉬워도 내려올 때는 어떡합니까? 비행기가 이륙은 했는데 착륙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 큰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머릿속에 쓸데없는 오물을 채우지 마십시오! 제게 물어보신다면, 저는 이 사람들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며 고생만 할 뿐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치는 깨달으려 하지 않고 오직 돈만 벌려 한다고 봅니다! 돈을 벌었습니까? 벌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수십만, 거의 백만 위안을 들여 호주에 가서 학위를 따왔는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결국 아무 쓸모도 없었습니다! 저는 '사람이 어찌 이리도 어리석을까?' 하고 탄식하게 됩니다. 명백하게도 하나님께서 사람의 운명을 주관하시니,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여러분 마음에 와닿습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여러분은 진부한 레퍼토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저는 이 이야기를 거듭해도 싫증 나지 않고 늘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들은 듣고는 별것 아니라는 듯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압살롬에게 모사가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결정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무너뜨리고자 하시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긍휼히 여기고자 하시면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만한 태도가 당신에게 있어야 합니다! 매번 무슨 결정만 내리면 제가 보기엔 영락없는 압살롬입니다. 곰곰이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도대체 언제쯤에야 깨어날지, 언제쯤에야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지 모르겠습니다. 다윗이 압살롬보다 나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사람은 기고만장하고 의기양양했던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나는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한낱 개똥과 같은 자입니다"라고 낮추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후자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것입니다.

밀고자도 하나님의 행하심을 막을 수 없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떤 사람이 밀고를 했습니다. 보았으면 그냥 볼 것이지, 한 소년이 달려가 밀고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밀고를 해서 압살롬에게 관직이라도 한자리 얻어보려는 심산이었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밀고자 노릇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밀고라는 것은 정말 고약한 짓입니다! 유다가 밀고한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있으니 어서 군사를 데려가시오!" 군사들이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오"라고 하자 유다는 "괜찮소, 내가 알고 있소"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밀고한 뒤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예수님께 입을 맞추었고, 결국 예수님께서 잡히셨습니다. 끝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아히도벨은 자신의 계략이 채택되지 않자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저는 그까짓 일에 왜 그렇게 목숨을 거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직책쯤이야 그만두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계책을 냈는데 듣지 않는다고 목을 매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살하게 하는 영을 보내셔서 아히도벨에게 들어가 목을 매게 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계책을 내겠다고요? "어디 한번 계책을 더 내봐라" 하시니 결국 돌아가 목을 맨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의견을 냈는데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으면 집에 가서 혼자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데, 정말 우스운 일들이 많습니다! 밀고를 당해서 "다윗 일행이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라고 알렸습니다. 사실 우물 속에 숨어 뚜껑을 덮어놓았으니 대충 뒤져보기만 해도 금방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고 안에 있는 다윗의 사람들을 보면 "딱 걸렸네! 찾고 있었는데 현행범으로 잡았구나!" 하며 우물에서 끌어올리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일을 허술하게 해서 밀고까지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색하러 온 사람들은 둘러대는 말에 그냥 넘어가 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다윗의 개똥 이론입니다! 저는 다윗의 태도를 개똥 이론이라 부릅니다. "욕할 테면 욕해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가 "혹시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실지 모른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진짜 지혜롭고 총명한 것입니다! 사람이 이런 지혜를 가질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누구와 맞서 싸우더라도 하나님과는 절대로 맞서지 마십시오. 누구와 친구가 되더라도 귀신과는 절대로 친구가 되지 마십시오! 귀신과 얽히면 큰 화를 당하게 됩니다!

다윗은 13년 동안이나 도망자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숨어 다니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기에 이번에도 그 경험을 발휘했습니다! 이전에도 그는 뛰어난 처세술로 세상을 헤쳐 나가며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까지 의탁했었습니다. 이번에는 암몬을 치고, 모압을 치고, 블레셋을 쳤으니 대체 어디로 도망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흥미로운 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자 암몬 사람을 통해 그를 후대하게 하셨으니, 어디 가서 이런 이치를 따지겠습니까? 암몬 족속의 사람과 길르앗 로글림 사람 바르실래 같은 이들이 다윗을 도왔습니다. 상식대로라면 몰락한 다윗을 모두가 외면하고 짓밟았어야 마땅하지만 그는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다 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 당신을 돕고자 하시면, 그 사람은 반드시 당신을 돕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자를 돕는다

어디선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여기 한 사람, 저기 한 사람이 나타나 다윗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주었습니다. 당시 무리를 이끌고 도망치던 다윗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여러분, 이제 깨달으셨습니까? 제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사람이 모사를 신뢰한다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아무 소용없습니다. 밀고자를 신뢰하는 것도 헛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을 긍휼히 여기신다면 그 어떤 것보다 좋습니다! 이제 이 교훈을 배우셨습니까? 곰곰이 묵상해 보십시오! 틈만 나면 교만하게 굴지 마십시오. 사실 교만할 만한 밑천이 어디에 있습니까?

절대로 압살롬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다윗과 같은 사람이 되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지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 안에는 오직 두 부류의 사람만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자'입니다! 여러분이 올바른 선택을 하신다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자신을 잘 준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사람이 되십시오! 누군가 여러분의 감정을 자극하더라도 잘 다스리십시오. 저를 따라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을 부르짖든지, 아니면 노자나 왕양명을 언급해도 좋습니다! 왕양명 같은 인물은 겉으로는 유·불의 색채를 띠고 있지만 수많은 그리스도인보다 수양의 깊이가 훨씬 깊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툭하면 자기가 대단한 줄 착각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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