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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신명기 16장 - 평생토록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은혜를 기억하라

2024-09-18 4,576 申命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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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命记16章-逾越节
  • 1 “你要注意亚笔月,向耶和华你的 神守逾越节,因为耶和华你的 神在亚笔月夜间领你出埃及。
  • 2 你当在耶和华所选择要立为他名的居所,从牛群羊群中,将逾越节的祭牲献给耶和华你的 神。
  • 3 你吃这祭牲,不可吃有酵的饼;七日之内要吃无酵饼,就是困苦饼,(你本是急忙出了埃及地,)要叫你一生一世记念你从埃及地出来的日子。
  • 4 在你四境之内,七日不可见面酵,头一日晚上所献的肉,一点不可留到早晨。
  • 5 在耶和华你 神所赐的各城中,你不可献逾越节的祭;
  • 6 只当在耶和华你 神所选择要立为他名的居所,晚上日落的时候,乃是你出埃及的时候,献逾越节的祭。
  • 7 当在耶和华你 神所选择的地方把肉烤了吃(烤:或译煮),次日早晨就回到你的帐棚去。
  • 8 你要吃无酵饼六日,第七日要向耶和华你的 神守严肃会,不可做工。”
  • 9 “你要计算七七日:从你开镰收割禾稼时算起,共计七七日。
  • 10 你要照耶和华你 神所赐你的福,手里拿着甘心祭,献在耶和华你的 神面前,守七七节。
  • 11 你和你儿女、仆婢,并住在你城里的利未人,以及在你们中间寄居的与孤儿寡妇,都要在耶和华你 神所选择立为他名的居所,在耶和华你的 神面前欢乐。
  • 12 你也要记念你在埃及作过奴仆。你要谨守遵行这些律例。”
  • 13 “你把禾场的谷、酒榨的酒收藏以后,就要守住棚节七日。
  • 14 守节的时候,你和你儿女、仆婢,并住在你城里的利未人,以及寄居的与孤儿寡妇,都要欢乐。
  • 15 在耶和华所选择的地方,你当向耶和华你的 神守节七日;因为耶和华你 神在你一切的土产上和你手里所办的事上要赐福与你,你就非常地欢乐。
  • 16 你一切的男丁要在除酵节、七七节、住棚节,一年三次,在耶和华你 神所选择的地方朝见他,却不可空手朝见。
  • 17 各人要按自己的力量,照耶和华你 神所赐的福分,奉献礼物。”
  • 18 “你要在耶和华你 神所赐的各城里,按着各支派设立审判官和官长。他们必按公义的审判判断百姓。
  • 19 不可屈枉正直;不可看人的外貌。也不可受贿赂;因为贿赂能叫智慧人的眼变瞎了,又能颠倒义人的话。
  • 20 你要追求至公至义,好叫你存活,承受耶和华你 神所赐你的地。
  • 21 “你为耶和华你的 神筑坛,不可在坛旁栽什么树木作为木偶。
  • 22 也不可为自己设立柱像;这是耶和华你 神所恨恶的。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명기》 16장을 다 읽고 나면 ‘이거 사람을 너무 번거롭게 하고 고생시키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일 년에 세 번씩, 어떤 사람은 100킬로미터를 걷고, 어떤 사람은 200킬로미터를 걸어야 합니다. 물론 집이 성전 바로 옆에 있다면 문만 열고 나가면 되니 아주 편리하겠죠. 그래서 저는 ‘성전 옆에 있는 집값은 분명 천문학적으로 비쌌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겠습니까? 편리하니까요. 문만 나서면 바로 성전이니까요.

그렇다면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은 어떨까요? 아이고, 계속 걸어서 성전에 가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일 년에 세 번이나, 모든 사람이 모여 수백만 명이 예루살렘에 바글바글 모여듭니다. 이 생활이 얼마나 번거롭고 북새통이겠습니까? 저한테 물으신다면 저는 이런 피크 시즌은 피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분명 일 년에 세 번 이렇게 하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른다면 큰일입니다. 중국의 춘절 대이동은 일 년에 한 번이지만, 이스라엘은 일 년에 세 번입니다. 춘절 이동은 모든 사람이 다 고향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고향에 살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스라엘은 모든 사람이 다 가야 했으니, 표를 구하기도 어렵고 정말 고생스러웠을 것입니다. “이거 사람 고생시키는 것 아닙니까?” 네, 고생시키는 것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머리가 지끈거리시나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명기》 16장이 궁극적으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너는 평생토록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 사람의 기억력은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은 참 대단합니다! 저는 너무나 신기합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정말 이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수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본인 이야기라고 해서 저와 선악을 분별하지 마십시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미 교회를 떠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참 특이한데, 저는 지금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암에 걸려 4기 항암 치료 중이었는데, 항암을 계속해도 죽고, 안 해도 의사가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찾아왔고, 저는 그를 데리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몸에 있던 암이 기적처럼 나았습니다.

때로는 제가 기적처럼 낫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적처럼 낫는 것은 쉽지만, 사람은 너무나 빨리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잊어버리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은 차라리 천천히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좀 천천히 낫는 게 낫습니다. 사람이 고생을 좀 해봐야 합니다. 지금 고생을 좀 더 해야 나중에 고생을 덜 하게 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를 따라 주님을 잘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럼 제 생활은 어떻게 하라고요?” 제가 속으로 말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머릿속에 닭똥이 찼나, 돼지똥이 찼나, 소똥인가 개똥인가.’ 제가 말했습니다. “병이 나았으니 이제 잘 살아가셔야죠. 십일조와 헌금 드리는 법도 배우셔야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헌금을 내라고요? 좋아요, 200위안 줄게요!”라고 했습니다. 아이고, 맙소사.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됐습니다. 그 돈은 그냥 항암 치료하고 방사선 치료해 준 의사에게 주는 편이 낫겠습니다.”

저는 참 기가 막혔습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관두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아들이 여전히 우리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보아서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서자마자 잊어버리니,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파라오(바로 왕) 아닙니까? 파라오처럼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말리지 않습니다.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

2년 뒤에 그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어머니가 참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왜 못 오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아이고, 지난 2년 동안 누우면 숨이 안 쉬어지고, 앉아 있으면 잠이 안 와서 계속 앉아서 잠을 잤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지 않으셨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저를 찾아오면 제가 또 주님을 잘 믿으라고 요구할까 봐 무서웠던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제 손을 통해 그를 구원해 주셨지만, 그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요? 제가 말했습니다. “저를 찾아오세요. 제가 도덕적으로 억압하지 않을 테니 뭘 두려워합니까? 피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기도해 드릴게요.” 제가 참 못났죠. 그 아들 때문에 또다시 나선 것입니다. 결국 기도하고 나서 나았습니다. 누워서 잘 수 있게 되었고 숨도 쉴 수 있게 되어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주례를 섰는데, 그 부부가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제 아들이 선생님을 따라 이렇게 주님을 믿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요?” 제가 속으로 말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스스로 죽을 길을 파는 것 아닌가?’ 좋게 말하자면 태어날 때 머리가 어디 끼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거나, 어릴 때 문에 머리가 끼었거나, 자라면서 세상에 짓눌려 버린 것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은, 사람의 기억력이란 참으로 영적인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랑하지 맙시다. 우리도 그 사람과 비교하면 오십보백보이며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돌아서면 곧바로 잊어버리니 참 우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저 사람을 천천히 고쳐주셔서 정신을 좀 차리고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고생을 좀 더 하게 하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초막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가고, 칠칠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가고,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번거롭습니까? 번거롭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번거로움이 낫습니까, 아니면 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받고 항암 치료받는 고생이 낫습니까? 예루살렘에 가서 절기를 지키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우리를 번거롭게 하실까요? 이렇게 번거롭게 해도 잊어버리는데,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잊었습니까? 다 잊어버렸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나아와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병원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교훈을 얻고 기억해야 합니다. 평생토록 영원히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분이 간증을 했습니다. 온갖 고생을 하다가 폭풍 기도를 따라 한 뒤 나아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니 사장이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사장을 보고 나니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사장이 야근하라고 하면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사장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하나님을 기억한다고요?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니, 이 사람은 차라리 고생을 좀 더 해보는 편이 낫습니다.

2. 여호와께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을 기억하라

우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어젯밤에 꿈을 꾸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 주님을 믿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며, 이런 일 저런 일로 고통을 겪습니다.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아파서 견딜 수 없게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나님을 찾아야겠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 매일 괴로운 사람, 빚진 사람, 공부가 안 풀리는 사람, 취업이 힘든 사람 등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저 역시 그렇게 주님께로 걸어왔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한가해서 주님을 믿으러 오는 사람은 정말 보기 드뭅니다. 사람은 문제가 생겨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당시 취업이 되지 않아 막막할 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너를 어떻게 인도해 내셨는지, 당시에 어떻게 주님을 믿게 되었는지, 겪었던 그 고난들을 어떻게 지나왔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영원히 잊지 마십시오. 평생토록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처음에 주님을 믿을 때는 얼떨결에 믿었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분명히 하나님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고 주님을 믿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특별한 택하심일 것입니다.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그 이레 동안에는 네 모든 지경 가운데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네가 첫날 해 질 때에 제사 드린 고기를 밤을 지내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며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 고기를 구워 먹고 아침에 네 장막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신명기》 16:1-8)

우리는 어릴 때 ‘고난을 되새기며 현재의 행복을 감사하는(忆苦思甜)’ 시간을 자주 가졌습니다. 고난을 기억하고 단맛을 생각하고 나면 속으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비지밥을 드셔보셨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시절 우리는 너무 가난했습니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는 돼지에게 주는 ‘두부비지’였습니다. 두부를 살 돈이 없어서 아버지가 자전거 뒤에 저를 태우고 가서 비지 한 대야를 사 오셨습니다. 그게 얼마나 맛이 없었겠습니까? 거기에 산나물 조금 넣고 소금기만 돌게 해서 먹었는데, 그것이 바로 고난을 되새기는 밥이었습니다.

유월절은 바로 이러한 기억과 기념입니다. 어떻게 기억합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유월절은 가장 큰 명절입니다. 한번은 제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 마침 유월절 기간이었는데, 중국의 설날처럼 정말 떠들썩하고 성대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 안에서는 유월절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지정하신 거처, 하나님의 처소, 그분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만 드려야 합니다.

먼 길을 걸어옵니다. 일주일 동안 걸어야 한다면, 일주일 전에 미리 출발해야 절기 시간에 맞출 수 있습니다. 소 떼와 양 떼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 제물로 바칩니다. 이때 절기를 지키며 제물을 먹되 누룩 넣은 빵은 먹지 않고, 그 제물은 당일 밤에 다 먹어야 하며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두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처음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왜 사람의 배 속으로 들어가는가?’ 사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잡수셔서 무엇하겠습니까? 겉으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교훈을 얻고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먼 길을 걸어와서 제사를 드리고, 그것을 자기 배 속으로 넣으니 얼마나 번거로운 일입니까? 이것은 사람의 기억력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될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화인 사명 신학’은 사람을 번거롭게 만드는 신학입니다. 왜 번거롭게 할까요?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훈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수요일과 금요일에 성경공부를 합니다. 금요일에 성경공부를 마치고 노트 정리도 다 못 했는데 주일 설교가 다가옵니다. 월요일 저녁에는 또 기도회가 있고, 화요일에도 기도가 이어집니다. 수요일이 방금 지난 것 같은데 또 성경공부가 시작됩니다. 마치 주마등처럼 쉴 틈 없이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이지?’ 생각해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만약 이 시간을 하나님을 기억하는 데 쓰지 않고 숏폼 영상이나 보며 낭비한다면 무엇을 얻겠습니까? 열이 나거나, 변비에 걸리거나, 목과 허리 디스크가 생길 뿐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이 사명 신학에 온 지 수년 동안 의료보험 카드에 돈이 잔뜩 쌓였습니다. 한 번도 쓸 일이 없었고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의료보험 카드에 항상 돈이 없었는데 말이죠.”

사람들은 아플 시간은 있고, 병원에 돈을 갖다 바칠 시간은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번거롭게 시간을 드릴 여유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번거롭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좋고 충만합니까! 세상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든가, 아니면 하나님에 의해 번거로움을 겪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 훈련받고 헌신하면 축복을 얻게 됩니다. 반면 세상에 휘둘리면 병원을 들락거리거나 마사지 숍을 전전하게 됩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30세부터 50세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퇴근하면 마사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등이 굳어버렸거든요.” 하지만 마사지를 받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20년 동안 해서 효과가 있었다면 진작 나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매일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듯 매일 하나님을 기억하자고 말입니다. 저는 이미 몇 년 동안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병원에 가서 무엇하겠습니까? 이 사명 신학 안에 들어왔는데 병원에 갈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애굽에서 억압당하고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휘둘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속박에서 해방해 주셨고, 그 이후로 우리는 평생 부족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다면 왜 저는 이렇게 기꺼이 번거로움을 감수할까요?

알고 보니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나니 아무것도 지체되지 않았고, 오직 ‘병드는 것’만 지체되었습니다. 돈 버는 일조차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돈 버는 것도 지체되지 않고, 병드는 것, 재앙을 만나는 것, 수많은 골치 아픈 일들만 막아졌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살아가면서 은혜를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편안한 삶을 살다 보면 원래 그런 줄 압니다. 원래 그렇기는커녕 본래라면 재앙이 임하고, 질병의 고통을 겪고, 병원을 들락날락해야 마땅한 인생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가문 안에서 영향력을 세우고 강건해지십시오. 가문 안에서 아브라함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된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의 가족을 기억하시고 많은 고난과 번거로움을 줄여주실 것입니다. 한번은 제가 모임에 갔는데 14명이 큰 원탁에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옛 친구를 보았습니다. 어릴 적 이웃사촌으로 함께 등하교하던 친구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임하여 그가 온몸에 병이 들어 몹시 힘들어하고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그의 손을 잡고 어깨를 짚어주었는데, 다음 날 그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너 정말 대단하다! 어깨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는데, 네가 한번 만져준 뒤로 아프지 않더니 오늘 아침에도 전혀 통증이 없어.” 그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너는 모를 거야. 우리 아버지가 7년 동안 전신마비로 누워 계셨고, 어머니도 7년 동안 마비로 누워 계셔서 내가 14년 동안 부모님을 수발했어.” 아이고, 그 고생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를!”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강건해지고 기개를 가지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여러분의 가문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브라함과 같은 존재가 되십시오.

마비된 부모 한 분을 모시고 또 다른 한 분을 모시는 삶이 얼마나 고단합니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힘들지 않겠습니까? 정말 힘듭니다. 저는 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희 어머니도 허리 마비 증세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마비되지 않게 지켜주셨습니다. 만약 제가 14년 동안 마비된 어르신을 돌보아야 했다면 저 역시 다 망가졌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삶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주님이 저를 번거롭게 훈련해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기꺼이 절기를 지키며, 제 평생 주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대가는 기꺼이 치르겠습니다.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병원 신세 같은 것은 결코 원치 않습니다.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 추간판 탈출 같은 고통도 전혀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 주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 100킬로미터, 200킬로미터라도 기꺼이 걷겠습니다.

하나님! 평생토록 주님을 떠나지 않고 오직 주의 은혜 안에 머물게 하옵소서. 저를 훈련시키고자 하신다면 주의 뜻대로 행하시고 저를 온전히 자유케 하옵소서.” 형제자매 여러분, 시간은 곧 생명이고 생명은 곧 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을 하나님께 바쳤다면 시간을 어찌 바치지 않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저는 제 자신을 주님께 바쳤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시간은 바치지 않습니다. 그럼 그 시간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아프고 재앙을 겪는 데 쓰게 될 뿐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며 기뻐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에게는 일 년에 세 번의 긴 명절이 있습니다. 집에서 성전까지 100킬로미터라고 할 때, 차를 타고 간다면 조금 가다 쉬고, 테이블 펴놓고 바비큐를 해 먹으며 가는 드라이브 여행처럼 간단할 것입니다. 하지만 직접 걸어보십시오. 하루에 30킬로미터를 걸어도 3일 내내 걸어야 겨우 100킬로미터 남짓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안배하심이 더없이 훌륭하다고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3.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신명기》 16:9-12)

유월절을 잘 지키고 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우리의 두 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살아간다’는 굳은 결단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한다면 평생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많은 분이 이런 믿음이 없을 수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그냥 편히 들어보십시오.

하지만 저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압니다. 그런 가난하고 찌든 삶으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세입자들에게 정말 잘해줍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싱가포르에서 셋방살이하던 시절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좋은 집주인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큰 은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습니다. 방을 빌리면 방에서 요리하는 것을 집주인이 몹시 꺼려서 맹물에 끓여 먹는 것밖에 못 했습니다. 그래서 간장을 조금 붓고, 돈이 없으니 대용량 닭 날개 한 봉지를 사서 먹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먹고 나니 나중에는 닭고기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질려버린 것입니다.

닭고기를 너무 많이 먹다 보니 닭고기 냄새만 맡아도 닭똥 냄새가 났습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달걀을 너무 많이 먹으면 달걀 냄새에서 닭똥 냄새가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와 우리 가운데 거류하는 고아와 과부들을 데리고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저는 기꺼이 그들에게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칠칠절까지 며칠을 계산하든 간에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유월절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칠칠절이 찾아옵니다. 가는 데 7일 걷고, 돌아오는 데 7일 걷고, 거기서 7일 머무르면 21일이 훌쩍 지나갑니다. 돌아와서 유월절 지킨 지 2주가 지나고 다시 49일을 세면, 결국 한 달 남짓 지나서 또다시 길을 떠나야 합니다. 갈 때 또 7일을 걸어야 합니다. 아이고, 얼마나 번거롭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성전 옆에 사는 사람만 횡재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비록 7일을 걸어갈지라도 그 어떤 일도 지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이 영적인 일에 쏟는 시간이 전임 목회자보다 더 바빠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떤 일상도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지체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암에 걸리는 일만 지체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시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일만 하며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매일 일하는 것이 좋은 줄 아십니까? 여러분은 무한 경쟁 속에서 쥐어짜이는 느낌을 받아보셨습니까?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일을 덜 해서 그렇습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두 손의 칼에 의지해 살아가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에서가 아니라 야곱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안 하면 누가 합니까? 내 문제를 당신이 해결해 줄 겁니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수 있는데 그것으로 부족합니까? 종 되었던 시절을 기억하십시오. 조금의 돈이라도 안 벌면 안달이 나는 사람처럼 굴지 말고, 일을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일은 영원히 끝이 없습니다. 게으르자는 것이 아니라, 일할 때는 성실히 하되 하나님 앞에서는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와 노비, 가사 도우미까지 다 데리고 함께 절기를 지키십시오. 그들에게 일을 시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만들라는 뜻이 아닙니다.

4.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고 당신을 기쁘게 하심을 기억하라

세 절기 중 두 번째를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막절을 지켜야 합니다.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신명기》 16:13-17)

초막절이 얼마나 좋습니까! 초막절은 7일 동안 이어집니다. 온 백성이 다 모여 예루살렘 주변에 수백만 명이 가득합니다. 5인 가족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온 산과 들에 장막이 가득하고, 아이들은 신나서 뛰어놀며 다 함께 텐트에서 생활합니다. 즐겁지 않겠습니까? 즐겁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이런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집이 훨씬 편하겠지만 캠핑은 위생도 불편하고, 텐트 안에서 일어서기도 힘들어 기어 들어갔다 기어 나와야 하며 밖에는 모기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하시는 것은 결코 부담스러운 짐이 아닙니다. 곡식과 포도주를 다 거두어들인 후의 축제입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일하는 기계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기쁨이 얼마나 좋습니까? 여름 수련회 같고 캠프 같으며 온갖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을 기쁘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기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우리 중국인들을 유태인으로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를 유태인으로 만드셨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다들 초막절 지키러 가면서 생수 한 트럭씩 떼어다 팔 생각을 했을 테니까요.

최근 장강에서 등불 축제가 열렸는데, 음료수를 대량으로 떼어다 팔면 돈 벌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가득한 것과 같습니다. 300만 명이 모이면 거기서 도매하고 소매하며 돈 벌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돈은 벌었을지 몰라도 기쁨은 얻지 못하고 바가지요금만 씌웁니다.

초기 복음 전파 때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아시아로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복음이 아시아로 들어오면 안식일을 지키는 일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시골 교회는 추수철만 되면 예배를 취소합니다. 예배드리고 싶다고 언제든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 댁 밭도 추수해야 하니 예배를 취소해 버립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이것이 우리 동양인의 전형적인 심리 상태입니다. “내가 추수하지 않으면 농작물이 밭에서 썩어 문드러질 텐데 어쩌란 말인가?” 하나님께서 썩지 않게 해 주시면 안 됩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당장 거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골 교회들은 갈수록 축복이 줄어들고 결국 많은 문제가 생겨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이 초막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초막절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이 초막절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억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기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손으로 하는 모든 소출과 행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힘입으면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에서의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노력으로 사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노력한들 멧돼지를 따라잡을 다리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에서보다 더 빨리 뛸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너무나 피곤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장자의 명분을 의지하고 이를 귀하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지, 돈을 더 벌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더 많이 해서 돈을 더 벌겠다고 시간을 다 빼앗겨 절기를 지킬 시간조차 없는 삶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기쁘게 하심을 기억하며 초막절을 지키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참으로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기쁨이 없다면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얼굴에 풍파와 피로가 가득해서야 되겠습니까?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찌들고, 없으면 없는 대로 찌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은혜와 축복을 의지한다면 그렇게 인생의 풍파에 찌들어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5. 온전히 공의를 따르라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면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음을 기억할 것이고, 칠칠절을 지키며 과거에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며, 초막절을 지키며 하나님이 기쁨을 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임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것을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며, 지극히 공의롭고 정직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되며 재판을 굽게 해서는 안 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의 재판으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신명기》 16:18-20)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나 재판장으로 세움을 받았다면 온전히 공의를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저주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돈을 의지해 살아가면 돈을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립니다. ‘공의가 무슨 대수냐? 나는 돈으로 사는데! 이게 다 진짜 금과 은인데 내가 안 받으면 바보 아닌가? 받아야지.’ 뒤뜰로 들여보내 회계 담당자에게 챙기게 합니다. 은괴도 받고, 금괴도 받고, 위안화도 받고, 달러도 받아 집에 산더미처럼 쌓아둡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하나님을 기억하며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사실을 스스로 일깨워야 합니다.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절기를 지키고 돌아오자마자 굽은 재판을 하여 저주를 받는다면 그것이 무슨 득이 되겠습니까? 이 땅에는 수많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9천억이니 1조니 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비리 소식을 들으면 간담이 서늘합니다. 100위안짜리 지폐로 100만 위안을 묶어놓으면 보통 체격으로는 무거워서 제대로 들지도 못합니다. 그게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야 합니다.

돈을 인쇄하는 사람들도 참 짓궂습니다. 제일 큰 단위가 100위안짜리라 100만 위안만 묶어도 수십 킬로그램에 달해 몹시 무겁습니다. 단위를 더 크게 찍어내면 좋겠지만, 너무 크면 가짜 돈(저승 돈) 같아질 테니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히 공의를 따라야 합니다. 왜입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심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기보다 눈앞의 금은보화를 의지하려 합니다. 하지만 금은보화를 의지하기 시작하면 “예루살렘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다. 그냥 집 문 앞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라고 합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제단을 쌓고 주상을 세우는 것을 보고 풍요를 추구하며 따라 합니다. 정작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면서도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마음속에는 오직 금은보화뿐이며,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말을 듣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것을 잊고 눈에 돈만 가득 차면 영적 맹인이 되고 맙니다.

6. 일 년에 세 번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으로 나아가라

여러분은 기꺼이 하시겠습니까? 일 년에 세 번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되 빈손으로 가지 않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일, 번거롭습니까? 번거롭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꺼이 하겠습니다! 번거롭고 귀찮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꺼이 순종하겠습니다! 오직 화인 사명 신학만이 우리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러한 말씀을 담대히 선포합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헌신하기에 전혀 번거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원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요구와 그분의 마음을 만족시켜 드려야 함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온전히 생명을 얻고 살아가며, 기쁨을 누리고, 풍성한 삶을 살며,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도록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깎아먹는 모든 것을 멀리하고 결코 우상을 숭배하지 마십시오. 이제 확실히 마음에 새기셨습니까? “나는 평생토록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은혜를 기억하리라. 평생토록 결코 잊지 않으리라.” 매일 스스로를 일깨워 학자의 귀를 가지고 더 이상 맹인이 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앙망하십시오. 이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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