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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갈라디아서 4장 - 종과 아들

2021-06-04 28,075 加拉太书 信心 圣灵充满 应许 教会 圣灵运行 渴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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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拉太书04章-保罗关怀加拉太人
  • 1 我说那承受产业的,虽然是全业的主人,但为孩童的时候却与奴仆毫无分别,
  • 2 乃在师傅和管家的手下,直等他父亲预定的时候来到。
  • 3 我们为孩童的时候,受管于世俗小学之下,也是如此。
  • 4 及至时候满足, 神就差遣他的儿子,为女子所生,且生在律法以下,
  • 5 要把律法以下的人赎出来,叫我们得着儿子的名分。
  • 6 你们既为儿子, 神就差他儿子的灵进入你们(原文是我们)的心,呼叫:“阿爸!父!”
  • 7 可见,从此以后,你不是奴仆,乃是儿子了;既是儿子,就靠着 神为后嗣。
  • 8 但从前你们不认识 神的时候,是给那些本来不是 神的作奴仆;
  • 9 现在你们既然认识 神,更可说是被 神所认识的,怎么还要归回那懦弱无用的小学,情愿再给他作奴仆呢?
  • 10 你们谨守日子、月份、节期、年份,
  • 11 我为你们害怕,惟恐我在你们身上是枉费了工夫。
  • 12 弟兄们,我劝你们要像我一样,因为我也像你们一样。你们一点没有亏负我。
  • 13 你们知道我头一次传福音给你们,是因为身体有疾病。
  • 14 你们为我身体的缘故受试炼,没有轻看我,也没有厌弃我,反倒接待我,如同 神的使者,如同基督耶稣。
  • 15 你们当日所夸的福气在哪里呢?那时你们若能行,就是把自己的眼睛剜出来给我,也都情愿。这是我可以给你们作见证的。
  • 16 如今我将真理告诉你们,就成了你们的仇敌吗?
  • 17 那些人热心待你们,却不是好意,是要离间你们(原文是把你们关在外面),叫你们热心待他们。
  • 18 在善事上,常用热心待人,原是好的,却不单我与你们同在的时候才这样。
  • 19 我小子啊,我为你们再受生产之苦,直等到基督成形在你们心里。
  • 20 我巴不得现今在你们那里,改换口气,因我为你们心里作难。
  • 21 你们这愿意在律法以下的人,请告诉我,你们岂没有听见律法吗?
  • 22 因为律法上记着,亚伯拉罕有两个儿子,一个是使女生的,一个是自主之妇人生的。
  • 23 然而,那使女所生的是按着血气生的;那自主之妇人所生的,是凭着应许生的。
  • 24 这都是比方:那两个妇人就是两约。一约是出于西奈山,生子为奴,乃是夏甲。
  • 25 这夏甲二字是指着阿拉伯的西奈山,与现在的耶路撒冷同类,因耶路撒冷和她的儿女都是为奴的。
  • 26 但那在上的耶路撒冷是自主的,她是我们的母。
  • 27 因为经上记着:“不怀孕、不生养的,你要欢乐;未曾经过产难的,你要高声欢呼;因为没有丈夫的,比有丈夫的儿女更多。”
  • 28 弟兄们,我们是凭着应许作儿女,如同以撒一样。
  • 29 当时,那按着血气生的,逼迫了那按着圣灵生的,现在也是这样。
  • 30 然而经上是怎么说的呢?是说:“把使女和她儿子赶出去!因为使女的儿子不可与自主妇人的儿子一同承受产业。”
  • 31 弟兄们,这样看来,我们不是使女的儿女,乃是自主妇人的儿女了。

《答疑解惑》

【2016년 12월 7일 녹음】

一、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1.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영이 사람의 몸 안에 있을 때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이고, 영이 사람의 몸을 떠나면 사람은 죽습니다.

  2. 영계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죽은 사람의 영이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으로 가장하여 꿈에 나타날 수 있고, 중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二、아들의 명분을 얻어야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신분은 매우 중요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아버지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만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믿음으로 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규례를 지키는 사람은 종입니다.

  4.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신분이 유업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5.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가진 사람이 기도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의 모든 약속을 권세 있게 받을 수 있습니다.

 

三、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유업은 무엇인가

  1. 유업은 새 예루살렘, 곧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를 잉태하고 낳습니다(《요한계시록》21:10-14).

  2. 하나님의 자녀는 바로 이 새 예루살렘 안에 있는 보석입니다.

 

四、종은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종의 본성입니다.

  2. 종과 하나님의 관계는 자발적인 관계가 아니며, 간접적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관계입니다.

  3. 육에 속한 사람은 종입니다. 종의 마음가짐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유업은 더더욱 받을 수 없습니다.

 

五、자유로운 여인이 되어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십시오

  1. 자유로운 여인, 곧 사라가 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유업을 받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큰 존귀입니다.

  3. 가장 큰 약속은 예수님께서 맞으신 채찍에 의해 우리가 반드시 치유된다는 것입니다.

  4. 영적인 사람은 아들이며 주인의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5.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종도 없고 품꾼도 없으며, 모두 주인이고 자녀입니다.

  6. 율법은 종을 위해 예비된 것이며, 자유로운 여인의 아들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六、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유익은 하나님 밖에 있지 않습니다

  1.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사람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으십시오.

  3. 하나님의 영으로 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영광의 유업을 받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 냅니다.

  4. 믿음을 근거로 하는 복음을 회복하십시오.

핵심 단어

  1. 영계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

  3. 유업을 받음

  4. 새 예루살렘

  5. 교회

  6. 종의 본성

  7. 자유로운 여인

  8. 약속을 얻음

생각해 볼 문제:

  • 주님을 믿은 후, 우리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 교리를 말하면 다 비슷해 보이는데, 우리는 어떻게 참된 복음을 분별해야 합니까?

구약성경은 구원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이 장은 사실 앞에서 바울이 말하려고 했던 내용을 이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장에 제목을 붙인다면 어떤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요? 글을 쓰는 관점에서 이 장에서 바울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어떤 분은 종과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종과 아들입니다.

종과 아들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종 가운데 주인의 유업을 물려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유업을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3장에서는 약속을 따라 유업을 받는다고 말한 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갈라디아서》4:1-3). 주제는 바로 아들과 종입니다. 아들의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자라지 않았다면 여전히 종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구약성경의 위치를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논증할 때 담대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을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우리는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데, 바울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예비했기 때문입니다. 구속의 계획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그림자였습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시며 승천하시고 성령을 주신 후에야, 바울 시대의 제자들이 모두 성령의 큰 능력을 가지고 섬겼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구약에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신약에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마귀 앞에서 패배했지만, 신약시대에는 사람이 성령을 의지하여 마귀의 어둠의 권세를 이깁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담대하게 그것을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구약이 필요했을까요? 구속의 계획이 성취되기 전에 구약성경이 사람을 율법 아래에 지켜 두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우리가 아들의 명분을 얻도록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서 다스림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감히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저에게는 바울과 같은 담대함이 없습니다. 구약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말을 하면 많은 사람이 여러분에게 꼬리표를 붙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말 그렇게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갈라디아서》4:1-3).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구약성경의 위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단지 하나의 청지기일 뿐이며, 구원이 성취될 때까지 우리를 그 청지기의 관리 아래 두었습니다! 우리가 자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자란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이 구속의 계획입니다. 오늘 우리가 구약성경으로 돌아가 보면,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먹은 후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시기 시작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마귀의 후손과 원수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마귀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창세기》에서는 사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속의 계획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전체가 한 가지를 가리켜 말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 구원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 전체의 중심 사상입니다.

구약을 읽다가 인물들의 이름이 나오면, 보통 사람들은 매우 힘들어합니다. 읽기만 하면 잠이 옵니다. 누구에게서 누구를 낳고, 또 누구에게서 누구를 낳았다는 부분에 이르기도 전에 더 읽지 못하고 잠들어 버립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가지와 줄기에 연결된 인물들은 기록되고, 그 줄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잠시 언급되었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릅니다. 다시 말해 구약성경 전체는 누구를 위해 기록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개념을 붙들면 바울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누가 참된 사도입니까? 성령의 큰 능력으로 증거를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므로 구약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단지 그림자이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체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신약은 실체이고 구약은 그림자이며, 하나님의 계획이 한 단계씩 계시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을까요? 그는 이방인의 사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내가 이방인의 사도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후에 몇 사람이 갈라디아 교회에 와서 “나도 사도다! 바울도 사도이고 나도 사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사도라고 하고 여러분도 자신을 사도라고 한다면, 도대체 누가 사도인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왜 바울이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어떤 사람은 성령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교회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핵심은 능력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었고, 표적과 기사가 바울을 따라다녔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모두 실제로 행하셨습니다. 말만 하는 사람은 사도라고 할 수 없고, 실제로 행하는 사람이 사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믿음은 반드시 바울이 전한 믿음과 같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믿음과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바울이 전한 것과 같고, 여러분이 또한 바울을 본받는다면 무엇을 얻게 되겠습니까?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 능력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증거입니다. 결코 말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사도가 아니며, 그들이 전하는 것도 복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근본은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바울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율법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들은 말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말은 잘하면서 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을 미혹할 수 있습니다. 말은 잘하지만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미혹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어떤 사람이 말만 할 줄 알고 행하지 못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누가 말을 잘하는지, 말에 이치가 있는지만 보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운데 한 형제에게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은 말을 아주 잘합니다. 정말 말을 잘합니다. 어느 날 그가 왔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이 사람은 우울증이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그러나 나는 그를 우울증에서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또 이 사람은 이런저런 문제가 있고 직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그의 삶 전체가 변화되고 그가 직장을 얻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교리는 듣기에 좋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교리는 초등학문이고, 내가 가진 것은 대학의 학문입니다. 내게는 능력이 있으므로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관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중국인의 관념은 이것을 교리라고 하고 저것을 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어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영어로는 truth, 곧 실제로 참된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적인 것이라야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 진리입니다. 중국인들은 ‘이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머리로 추리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리저리 추리하고 또 추리하다가 머리가 아파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이 복음, 곧 바울의 복음은 능력을 떠나서는 누구도 바울이 사도인지 증명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면 반드시 순수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복음은 능력을 지닌 복음입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행하는 것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는 두 가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원합니까? 신약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원합니까, 아니면 구약에서 모세가 전한 율법을 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이미 나라를 잃은 상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당시 이스라엘 전체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능력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전혀 없었습니다. 구약성경이 증명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육체로 율법을 지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이 한 가지를 증명했습니다. 이 사실이 증명되면 사람의 입은 닫히게 됩니다.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도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그곳에서 여러분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죄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율법도 있고 선지자도 있고 제사장도 있고 언약궤도 있는, 그렇게 좋은 조건이 주어졌지만 능력은 없었습니다! 구원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까? 먼저 사람이 육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시고, 사람이 육체를 의지하는 길을 포기하여 믿음을 근거로 하는 약속의 길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얻는 것이 바로 아들의 명분을 얻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음을 근거로 하며 행위를 근거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다시 구약의 길로 돌아가려고 할까요? 오늘날에도 이 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 그것은 바로 행위를 근거로 하는 길입니다. 이미 행위로는 안 된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도 여전히 그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 길을 통해 육체로 자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은 믿음을 근거로 하는 길입니다. 믿음을 근거로 하면 능력이 나타나고, 행위를 근거로 하면 연약함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은 매우 분명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연약함 가운데 살고 있고, 그의 삶에서 구원과 죽음에서 부활하신 능력을 전혀 볼 수 없다면, 그가 구원받은 것입니까,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까? 우리가 이 일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가 믿는 복음은 아직 믿음을 근거로 하는 복음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 믿음을 근거로 하는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기 때문에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아들의 명분을 얻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종과 아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 아래에서는 종의 복음에 불과했지만, 신약에 이르면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는 복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큰 능력의 복음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 전체와 바울 서신 전체를 읽어 보십시오. 모두 이 복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내 안에 이 보배가 있습니다. 이 보배는 사람의 삶을 뒤집어 놓을 수 있고, 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이 능력이 있다면, 오늘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은 실제입니까, 실제가 아닙니까?”라고 물을 때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얼마나 실제적인 분인지 모릅니다. 정말, 정말 실제적인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들의 명분을 얻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아들이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상속자가 됩니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논리이며, 매우 단순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마치 믿지 않는 것처럼 됩니다!

그들은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알지 못합니다. ‘왜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없을까?’ 여기서 핵심은 성령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는가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에 대한 관념을 조정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을 단순히 ‘믿는다’는 한 글자로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어떤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이어지는 성경공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온전한 복음이라야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믿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성경 전자판에서 ‘모든’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십시오. 그러면 많은 놀라운 현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골라서 믿는다면 그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믿고 저것은 믿지 않는 식의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으려면 성경 전체를 믿어야 합니다.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많은 예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모든 말씀을 그가 지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온전한 것이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렇지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여호수아는 지켰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만들게 하신 성막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조금도 틀림없이 온전히 건축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계시하신 성전을 온전히 건축했습니다. 절대로 대충 만들거나 재료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한 사람이 믿는다면 성경 전체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전체를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운 것이 없어서 성경을 읽지 못해도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려 주신 치수는 오십 규빗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아, 오십 규빗은 무엇에 쓰겠는가? 사십 규빗이면 충분하지. 한 규빗은 또 무엇에 쓰겠는가? 이 나무는 자르기도 귀찮으니 한 규빗 반이면 되겠지. 그냥 이렇게 쓰자!’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만든 방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대해 바울이 여기서 논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반드시 온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근거로 하는 복음은 반드시 온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초등학문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언급합니다. 초등학문이란 무엇입니까? 전혀 능력이 없는 교리와 율법입니다. 바울이 논쟁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을 여러분이 받아 성령을 받은 것이 복음을 믿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율법을 지켰기 때문입니까? 여러분은 율법이 무엇인지도 알기 전에 복음을 믿었고,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까? 성령을 받았다면 여러분 가운데 성령께서 행하신 기적은 율법을 지켰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복음을 믿었기 때문입니까?”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내신 능력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약속을 따라 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바울이 구약성경을 어떻게 읽는지 살펴봅시다. 그는 하갈과 사라, 이 두 사람을 하나의 예표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을 때 그 안에서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그곳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그림자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사라와 하갈의 대비를 통해 나타납니다. 하갈은 여종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당시의 일이 바로 그 시대의 그림자가 된 것입니다. 하갈이 아들을 낳은 것은 종으로서의 출생이며, 시내산을 가리킵니다. 곧 율법주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반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낳은 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난 아들이며, 약속을 따라 아들로 태어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근거로 해야 하며 행위를 근거로 해서는 안 됩니다

방금 한 자매님이 성경공부 중에 질문했습니다. “제가 고아원에 가서 이 사람들을 돌보아도 좋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한 가지 관념을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통해 어떤 일을 이루려고 하는 것, 자신의 행위로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사람을 근거로 하고 행위를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근거로 하고 믿음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내가 이 일을 했으니 참 대단하다.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을 섬겼으니 참 대단하다. 버스에서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했으니 참 대단하다. 선한 일을 했으니 내가 훌륭하다. 그러니 무엇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번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근거로 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덜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근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엄격하게 따라 행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습니까? 사람을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사람을 근거로 하는 시대입니다. 알 수 없는 사이에 사람을 근거로 하는 많은 더러운 것에 물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무엇인가를 해도 여러분의 운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만약 어떤 일을 함으로써 운명을 바꾸려고 한다면 율법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런 복음에서는 생명의 변화와 능력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왜 볼 수 없습니까? ‘내가 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근거로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 부분을 여러분에게 분명히 설명하기가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믿음을 근거로 하는 것은 하나님을 근거로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근거로 해야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행위를 근거로 하면 아무런 능력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자세히 살펴본 후에도 여러분 안에 행위를 근거로 하는 것이 많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했으니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나의 전부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그분 안에서 유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유익을 얻기 원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유익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에게서 유익을 얻는 것은 별로 체면이 서지 않는 것 같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해 드려야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제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까? 제 뜻을 이해했다면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상속자이므로 하나님에게서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와서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믿음으로 교회에 왔습니다.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회에 오는 목적이 단순히 하나님에게서 유익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유익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에 와서 ‘내가 교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해야 하고,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무언가가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아마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그런 마음가짐이 바로 문제입니다. 제 표현이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말할 때 바울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바울도 한참 동안 힘을 다해 설명했지만, 우리도 읽으면서 여전히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드려야만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분께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유익은 하나님 밖에 있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아주 간단한 이치이지요? 여러분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나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본적으로 먼저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으러 오는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바울이 논쟁했던 할례처럼 ‘내가 할례를 받아야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는 내가 여기서 무엇인가를 하고 저기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무언가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길거리에 나가 선한 일을 조금 할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것인지, 주일에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저도 헌금합니다. 하지만 제 헌금은 전부 가난한 사람들에게 줍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와서 우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우리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예배할 때 능력을 얻기 때문입니다. 능력을 얻어 밖으로 나가 섬기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참된 복입니다.

사람을 근거로 하는 것은 하갈이고, 믿음을 근거로 하는 것은 사라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약속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행위와 육체를 의지하여 일을 이루려는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약속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육체와 행위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얻으려 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약속을 얻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입니다. 하나님의 규칙을 이해하면 매우 간단합니다.

이제 믿음의 개념에 대해 조금 더 나누겠습니다.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온전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분석하지 말고 그대로 행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면 됩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고, 노아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교회에는 능력이 있고 어떤 교회에는 능력이 없는지 알아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는 골라서 믿고, 어떤 교회는 온전히 믿습니다. 온전히 믿는 교회는 하나하나 실천합니다. 하나하나 실천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어떤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제 뜻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어떤 일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면 ‘아, 이것이 나의 생명이다. 이 일을 망치면 이 일이 죽고, 나도 죽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그렇게 하면 기본적으로 일을 잘할 수 없습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 일을 해도 어차피 죽지는 않으니, 그냥 잘해 보자’라고 생각하면 결국 꽤 잘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손에 들고 하는 일들을 하나님의 저울에 올려 달아 봅시다. 사실 아무런 무게도 없습니다. 우리의 관념을 조정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만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은 우리가 선을 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이끌어 선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하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이 여러분이 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이끌어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구약의 제단은 사람이 기구를 움직여 도끼로 두드리고 다듬으면 그 돌을 제단으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자연 그대로이고 다듬지 않은 돌이어야 제단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출애굽기》20:25). 무슨 뜻입니까? 사람의 행위는 조금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조금이라도 그 안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계획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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