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2021年6月04日 - 答疑解惑】
答疑解惑文字版
【问题】:我们在地上的时候,可以啃老吗?
最近中国出了一个词叫啃老,我小时候没有听过这个词,什么时候发明的也不知道,就突然间出来了这个词。这啃老问题在哪呢?后来我发现是一个愿意啃,一个愿意被啃!这不是邪门了吗?这个愿意啃和愿意被啃一个关系,这是什么关系?是父亲和儿子的关系,大家慢慢琢磨。
比如说一个破衣喽嗖的外人回来了,你爸你妈会把他赶出去因为不认识他,谁知道他是哪来的?你破衣喽嗖的回来了,我问你你爸你妈会把你赶出去吗?很少赶出去的,除非那爸妈被鬼附得很惨都搞不清楚谁是谁了。所以说这个关系比啃还是不啃变得更加的重要。最重要的是啥呢?我们关心地上的啃老不啃老,我们这么说,地上的父母尚且把好东西拿给儿女,听明白吗?我几乎没有碰过地上的父母,看见孩子一把鼻涕一把泪说,“爸爸妈妈我以前做错了,我对不起你们,”然后爸爸妈妈不接受,很少!这个关系不能被一件你做了什么没做什么隔断。有的人做女婿“哎呀我也是你儿子”,那不一样!你跟岳父岳母吵完了架,人家会记你一辈子,儿媳妇跟老公公老婆婆吵完了架,也会记一辈子,他跟他儿子或跟他女儿吵完了架没几天就忘了,这玩意才邪门!为啥呢?因为那是关系,关系的根基不是因为你做了什么没做什么。大家一定要知道,我们在讲《加拉太书》第4章,大家别弄到世上啃老的问题上去,你愿意啃也好不愿意啃也好,将来有一天这事都得过去。
但是今天我们说的是啥呢?我们跟天父的关系,这个关系是非常重要的!这个关系不是因为比别的,是因为凭着信心做神的儿女,听明白吗?我们凭着信心做神的儿女,这里面有一个极大的困惑!我再来解释!我们做神的儿女,我问你我们身上会不会有神的样子?会有神的样子!我们凭着信心来到神面前发现我们神拥有宇宙万物,你知道他们整了什么号飞到火星好像很了不起似的火星才没多远。在不知道有多远的地方也许还有一个星,那不是金星也不是火星,那是金子啊!金子在神眼里都是啥呀?都跟尘土一样!我们的天父耐啃!我们的天父老耐啃,你不啃祂,祂不高兴!
从啃老到富有的心态转变
现在问题来了,我们啃完了天父,咱们说啃完了“哎呀,我们的神这么好啊!我的神这么好啊!”,我们第一次来教会的时候,你带着一身的病,耶稣背负了你的病痛,担当了你的忧患,是不是?担当了你的咒诅,你给祂做啥了?你不是啃是啥?其实就是啃!神被你这一啃,哎呀神甘心被啃!因为神耐啃,不像你地上的父母穷得叮当烂响,你一啃他直叫啊!地上的父母他穷啊!所以说一啃他直叫嘛,啃得你都不舍得啃了!现在咱们天上的父,巴不得我们在祂里面做儿女,你想想看你生病了你不去找神,神挺失望啊!你有问题你不去找神神也很失望,神其实特别希望你来找祂,因为神巴不得你在神的国里享受祂所有的好处,很多人不相信,非得说我得做点什么才能成为神的儿女,你能为神做什么?什么也不能做!但是神有一个心意就是我们这些人啃完了神,我们在这世上啃完了神以后,我们有一个富有的心态今天咱们说啃,为啥?穷啊!是不是?我真的不敢说我如果穷得叮当烂响,我会不会啃我妈,我也不知道,但是问题在哪?
自从我认识了神,神是一个富有的神,神使我变得极其富有,我啃谁?我等着别人来啃我呀是不是?因为我也耐啃啦!有神怎么可能会穷呢?比如说我服侍,不管他是什么鸟人其实我都服侍,有时候服侍到一半神的话说“哎呀他咒诅很深啊!”,有的时候就是服侍啊!为什么会这样呢?因为我白白从神得来的,我也要白白的给出去,今天咱们弟兄姐妹我问你如果你很有钱你啃谁?来,我问问!就是因为你今天穷得叮当烂响,又穷啊又没有本事啊啥也不行啊,然后你就想来想去最后你就一条路啃老!如果说天父使咱们富有,你好好的在神的国里做神的儿女,神是希望你做一个啃老的人呢,还是希望你做一个能被老人啃的呢?我告诉你神希望我们都像祂,如果我们身上流的都是神的血,流着神的灵,我告诉你我们身上就有了神的形象,我们不是说计较来计较去谁啃谁,我啃你你啃我。我抱着你的大腿啃你抱着我的胳膊啃,那谁咬一口那玩意都疼啊,疼得嗷嗷叫,你咬我我咬你,那简直就是地狱啊!
所以我们弟兄姐妹,今天解决问题的关键还真的不是谁啃谁,解决问题的关键是富有还是不富有!如果我们在神的国里,得着神诸多的好处,我们什么好处都不缺,我问你让你啃你啃啊!你啃得下口吗?我下不了口!而且我也觉得像个鸡肋似的,能啃出个啥来?你比如说像我妈,她有什么好被我啃的?她那点钱是不是!我都不舍得啃,谁要拿我妈那点东西都拿去,听见没有?这叫做富有的心态,我们做了神的儿女我们还会带着贫穷的心态吗?不会的!
富有心态与神的祝福
有一个很挑剔的姐妹挺浑的!我租的房子她住在里面,然后还很多毛病!挑这个挑那个,其实我那个时候挺穷的,那时候刚出来闯江湖,结果挑毛病,我为了安慰她我还得跟她说好话,我说姐妹啊就算是我拎着我的皮箱住大街你都可以住在这里,我里面有极其富有的心态,后来我住大街了吗?我怎么可能住大街?但是其实我有那种心态住大街我也不在乎,所以说咱们弟兄姐妹挑剔是一个贫穷的心态啊!前一段时间有一个姐妹来这做工,哎哟真的是穷啊!那她工作需要一些特殊的衣服,要不然做不了工啊,那我就给她几百块钱去买去吧!对她来讲那是很大的恩典啊!一看拿那个手机都不知道是多少代的,我这有一部手机拿去吧!你说我会因为这么做而变穷吗?不会的!
今天弟兄姐妹人穷就穷在心态里头,那我为什么这么做不是因为让她继续啃我,我是希望她啃完我以后她发现将来希望自己被别人啃,那她希望自己被别人啃!祝福人呐!成为别人的祝福是我们的命!所以我虽然是给了她,但是我还是要把神的话告诉她.今天你和我都是神的儿子,如果你有信心你就靠着神口里所出的一切话活着,如果你靠着神口里所出的一切话活着,我告诉你你绝对不会穷,你什么时候看见靠着信靠神的人穷了?
挪亚能建航空母舰你知道吗?挪亚建的那玩意就是今天的航空母舰,今天有多少人能建航空母舰,挪亚建的那玩意叫做方舟,你想地上的活物全都进到方舟里那得多大呀!难以想象,没钱能干那活啊!没钱怎么干呢?后来的亚伯拉罕有钱,以撒有钱、雅各有钱、约瑟有钱、大卫有钱,你知道大卫奉献了270吨的黄金,那个度量衡咱们也搞不清楚我就大概这么说了,但是不管那度量衡怎么说,那都是有钱人啊!今天咱们弟兄姐妹,穷是从心态开始的,所以为什么啃就是因为穷啊,穷山恶水出刁民,你慢慢琢磨,你到那个富有的地方去看那个人没那么恶,你到那穷得叮当烂响的地方去啊那人恶啊!心态不能穷啊!
所以我觉得人有了神怎么可能穷呢?千万不要告诉神,我愿意在地上做穷人,明白吗?《圣经》怎么说?因耶稣基督的贫穷使我们成为富足,因祂的鞭伤我们得医治,所以大家要知道成为神的儿女、继承神的产业,天和天上的天、地和地上所有的都是神的,神要把祂赐给我们。所以千万别拿行为来到神面前,你看我做了啥?我给你点啥?我烧了一只鸡,我奉献给你,所以你得祝福我,这话听起来就Low,Low爆了!你拿一只鸡给神,鸡是你造的?还是鸡是你下的?蛋也不是你下的,鸡也不是你整的是不是?然后你还觉得是你整的,哪件是你的?哪一个不是从神而来?我就感慨,我就觉得这事特别有意思!我接触很多贫穷的牧师,后来一发现里面全有奴仆的心态,就是我得做点什么,神才能够承认我是祂的儿子,我得给祂点啥,哎哟那对神都是羞辱啊!所以说啃老不啃老那不是关键,关键就是没有从神来的祝福!穷啊!
重生与成长:从奴仆到神的儿子
人的贫穷心态要命啊!你知道在聚会之前,我就跟大家讲时间的问题,时间这东西挺有意思啊!你也24小时我也24小时,谁一分都不多一分都不少,那怎么我老有时间你老也没时间,这不是很奇怪吗?有的人老有时间有的人老也没时间,有的人连查经的时间都全给省啦!祷告的时间都给省啦!服侍的时间都给省啦!然后就瞎忙,大家慢慢琢磨,我没这胆量!我为什么没这胆量,我觉得这是比所有的事都好的事,我闲着没事我瞎忙啊?我把跟神的时间都省下来,然后把时间都给鬼,我没事找事吗?所以我劝大家那真的是一个心志!心志不到说啥都没用,我有时候说话说得有点冲!咱们教会即不缺人也不缺钱,我真的一点也没看重过大家的奉献,我一点也没看重过凑人数!那张椅子有人坐没人坐都一样!那奉献不奉献都一样!我都不大在乎,因为我的神是富有的神,使我富有的是神!
所以说我寻找的就是宝贝,今天大家一定要知道,我天天在找宝贝,如果一看哇塞这是一个垃圾啊,这是一滩狗屎啊哎哟!那赶紧能躲多远躲多远,一看这是个宝贝拿过来收在神的国里。我是与神同工的,我巴不得大家不那么在乎我,但是我就是把我的心里话告诉大家,我挑的就是挑神眼里看为宝贵的,这就是教会为什么有的人走着走着就被鬼带走了,有的人就留下来了,所以大家都要做神眼里的宝贝。
今天身上有这个毛病那个毛病那都没关系,只有一件事开始接受神的话语,被神的话陶造,然后渴望长大成人成为神的儿子。你知道人如果说还是个小孩子,我问你他能继承产业吗?其实《加拉太书》有一个地方说:这人还是个小孩子,他跟奴仆没有两样,他得长大成为儿子,神才把权柄给你,为什么?因为你是儿子然后你在神的家里做主人,是不是?你是小孩子一整就被人骗,一整就被忽悠,神怎么能够把东西给你呢?交托不了,所以大家要长大成人,不是做小孩子,被这世上懦弱无用的小学给忽悠了,不要甘心做奴仆,然后一会整下这个一会整下那个,整得晕的乎的,一整就被人忽悠,工作一忙把神放下,生活一忙把神放下,什么一忙就把神放下,为啥?因为他们觉得那事都比神重要,所以说我们不是说放下不放下,是我们凭着信心来到神面前支取祂的恩典。比如说查经,我告诉你这时间你花了,真的不会浪费你的时间,我们很多的问题就是因为我们无知,所以我们就把神放下了,结果得着的是啥呢?得着的都是咒诅啊!我跟大家说在我们当中有很多经历的都是惊天动地的见证,癌症啊细胞啦这个那个的,一到爱神就跟神计较,那真是无知!总也长大不了成为神的儿子能够帮助神管理神的家,建立神的教会。
【问题2】耶稣对尼哥底母说:人若不重生,就不能见上帝的国,从肉身生的就是肉身,从灵生的,就是灵,你们必须重生。这里耶稣说进神的国必须重生,那和今天讲的有些不一样?
信心与重生:从感觉到信心的转变
没什么不一样,其实就是不同的角度。那其实我们今天都必须重生。我们必须是从神的灵生的。是从神的灵生的,就是灵;从肉身生的就是肉身。那从神的灵生的,那今天,咱们说你没读下面那句话。神的灵怎么生的?大家打开《约翰福音》
从肉身生的就是肉身;从灵生的就是灵。 我说:‘你们必须重生’,你不要以为希奇。风随着意思吹,你听见风的响声,却不晓得从哪里来,往哪里去;凡从圣灵生的,也是如此。” (《约翰福音》3:6-8 )
听得懂吗?神的灵一吹然后人就生了。那看得见吗?看不见!那看不见怎么办?今天咱们弟兄姐妹其实需要把《圣经》重新从头到尾把它读一遍。
耶稣升天的时候赐下所应许的圣灵,听明白了吗?他赐下所应许的圣灵。那所应许的圣灵是在人们呼天喊地不断地在那里祷告,凭着信心不断地呼求。圣灵降下来。那这个呼求它本身是一个信心的运作。然后怎么样?那个地方的人就开始方言祷告。方言祷告是一个纯信心的运作。那今天我告诉大家,啥感觉也没有!我今天如果带着大家祷告,不是我汗毛立起来了,不是装腔作势,装腔作势没啥用。
“我的头发立起来了”!“有电流过我的身体”!没有!啥也没有!别被这东西忽悠了!那全是信心的操作!那方言祷告是耶稣升天从地狱里头,从钉十字架下到阴间,胜过阴间地狱死亡的灵然后从死里复活然后升天,然后赐下所应许的圣灵。别拿旧约《圣经》来说,旧约的时候耶稣还没来。
所以说,今天你问我方言祷告是啥?信心的操作!来我告诉你,看《路加福音》11章
耶稣又说:“你们中间谁有一个朋友半夜到他那里去,说:‘朋友!请借给我三个饼; 因为我有一个朋友行路,来到我这里,我没有什么给他摆上。’那人在里面回答说:‘不要搅扰我,门已经关闭,孩子们也同我在床上了,我不能起来给你。’我告诉你们,虽不因他是朋友起来给他,但因他情词迫切地直求,就必起来照他所需用的给他。我又告诉你们,你们祈求,就给你们;寻找,就寻见;叩门,就给你们开门。因为,凡祈求的,就得着;寻找的,就寻见;叩门的,就给他开门。你们中间作父亲的,谁有儿子求饼,反给他石头呢?求鱼,反拿蛇当鱼给他呢?求鸡蛋,反给他蝎子呢?你们虽然不好,尚且知道拿好东西给儿女;何况天父,岂不更将圣灵给求他的人吗?”(《路加福音》11:5-13 )
所以今天咱们弟兄姐妹,求本身是一个信心的操作,一直到得着为止!一直到得到为止!那这个方言祷告全都是信心的操作。那些祷告,一直没有方言祷告,一直没有,一直也没有,因为他在等候的是一个感觉。他没有信心,他是凭着感觉活着。我们是凭着信心活着。义人因信得生不是因感觉得生。听明白了吗?
信心的操练与圣灵的充满
其实我方言也很简单,我很渴望得着。很渴望得着,然后其实就是开口说。一开始说的时候其实都是瞎说。但没关系,我们的神难道连方言祷告这点事都管不了?管得了!所以大家开始凭着《加拉太书》所说的 因着信心做神的儿女!我们说这句话讲得多好!
你们虽然不好,尚且知道拿好东西给儿女;何况天父,岂不更将圣灵给求他的人吗?”(《路加福音》11:13 )
我们有的人说不要求圣灵,求完了邪灵会来。听着就对神是个羞辱。这种人都受咒诅的!这种人咒诅都老深老深了!听明白了吗?所以我想啊我们对神要有信心!有信心!有信心!有信心!所以方言祷告圣灵充满全是信心的操作。你问我今天方言祷告有啥感觉?啥感觉也没有。那其实一开始就没啥感觉。但是好使!祷告祷告,里面开始越来越刚强。大家可以试!这祷告每次就这样,凡不出于信心的都是罪!
弟兄姐妹要知道凡不出于信心的都是罪啊!所以今天开始相信神!神能够管理宇宙!管理银河系!外面还有好多个银河系,成千上万!然后太阳系只是一粒粉尘;地球在太阳系里也是一粒粉尘;你和我在地球上是一粒粉尘;然后你总觉得神管不了。太小瞧神了!就相信神,活着是个很简单的事。相信神,反正已经活过来了。反正已经活到今天了。是不是?你昨天不是活到今天了吗?是吧!简单吗?是不是?很简单!
所以今天弟兄姐妹让神的灵运行在我们身上,神就从圣灵生了我们。所以凭着信心圣灵就生了我们,然后凭着圣灵而生,凭着圣灵行事,凭着圣灵活出神的荣耀。这就是关键!所以圣灵充满耶稣是没有限量的,所以今天咱们也渴望圣灵充满我们是没有限量的!
今天的答疑就到这!大家有疑惑没关系,可以继续经常答疑。我这答案也不一定准确,但大家可以一起去参考,揣摩《圣经》上到底是怎么说的。愿神祝福大家!
【2016년 12월 7일 녹음】
一、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영이 사람의 몸 안에 있을 때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이고, 영이 사람의 몸을 떠나면 사람은 죽습니다.
영계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죽은 사람의 영이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으로 가장하여 꿈에 나타날 수 있고, 중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二、아들의 명분을 얻어야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분은 매우 중요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아버지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만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규례를 지키는 사람은 종입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신분이 유업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가진 사람이 기도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의 모든 약속을 권세 있게 받을 수 있습니다.
三、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유업은 무엇인가
유업은 새 예루살렘, 곧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를 잉태하고 낳습니다(《요한계시록》21:10-14).
하나님의 자녀는 바로 이 새 예루살렘 안에 있는 보석입니다.
四、종은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종의 본성입니다.
종과 하나님의 관계는 자발적인 관계가 아니며, 간접적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관계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종입니다. 종의 마음가짐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유업은 더더욱 받을 수 없습니다.
五、자유로운 여인이 되어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십시오
자유로운 여인, 곧 사라가 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유업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큰 존귀입니다.
가장 큰 약속은 예수님께서 맞으신 채찍에 의해 우리가 반드시 치유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아들이며 주인의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종도 없고 품꾼도 없으며, 모두 주인이고 자녀입니다.
율법은 종을 위해 예비된 것이며, 자유로운 여인의 아들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六、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유익은 하나님 밖에 있지 않습니다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사람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영으로 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영광의 유업을 받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 냅니다.
믿음을 근거로 하는 복음을 회복하십시오.
핵심 단어
영계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
유업을 받음
새 예루살렘
교회
종의 본성
자유로운 여인
약속을 얻음
생각해 볼 문제:
주님을 믿은 후, 우리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교리를 말하면 다 비슷해 보이는데, 우리는 어떻게 참된 복음을 분별해야 합니까?
구약성경은 구원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이 장은 사실 앞에서 바울이 말하려고 했던 내용을 이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장에 제목을 붙인다면 어떤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요? 글을 쓰는 관점에서 이 장에서 바울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어떤 분은 종과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종과 아들입니다.
종과 아들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종 가운데 주인의 유업을 물려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유업을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3장에서는 약속을 따라 유업을 받는다고 말한 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갈라디아서》4:1-3). 주제는 바로 아들과 종입니다. 아들의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자라지 않았다면 여전히 종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구약성경의 위치를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논증할 때 담대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을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우리는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데, 바울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예비했기 때문입니다. 구속의 계획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그림자였습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시며 승천하시고 성령을 주신 후에야, 바울 시대의 제자들이 모두 성령의 큰 능력을 가지고 섬겼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구약에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신약에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마귀 앞에서 패배했지만, 신약시대에는 사람이 성령을 의지하여 마귀의 어둠의 권세를 이깁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담대하게 그것을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구약이 필요했을까요? 구속의 계획이 성취되기 전에 구약성경이 사람을 율법 아래에 지켜 두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우리가 아들의 명분을 얻도록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서 다스림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감히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저에게는 바울과 같은 담대함이 없습니다. 구약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말을 하면 많은 사람이 여러분에게 꼬리표를 붙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말 그렇게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갈라디아서》4:1-3).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구약성경의 위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단지 하나의 청지기일 뿐이며, 구원이 성취될 때까지 우리를 그 청지기의 관리 아래 두었습니다! 우리가 자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자란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이 구속의 계획입니다. 오늘 우리가 구약성경으로 돌아가 보면,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먹은 후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시기 시작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마귀의 후손과 원수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마귀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창세기》에서는 사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속의 계획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전체가 한 가지를 가리켜 말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 구원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 전체의 중심 사상입니다.
구약을 읽다가 인물들의 이름이 나오면, 보통 사람들은 매우 힘들어합니다. 읽기만 하면 잠이 옵니다. 누구에게서 누구를 낳고, 또 누구에게서 누구를 낳았다는 부분에 이르기도 전에 더 읽지 못하고 잠들어 버립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가지와 줄기에 연결된 인물들은 기록되고, 그 줄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잠시 언급되었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릅니다. 다시 말해 구약성경 전체는 누구를 위해 기록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개념을 붙들면 바울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누가 참된 사도입니까? 성령의 큰 능력으로 증거를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므로 구약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단지 그림자이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체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신약은 실체이고 구약은 그림자이며, 하나님의 계획이 한 단계씩 계시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을까요? 그는 이방인의 사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내가 이방인의 사도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후에 몇 사람이 갈라디아 교회에 와서 “나도 사도다! 바울도 사도이고 나도 사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사도라고 하고 여러분도 자신을 사도라고 한다면, 도대체 누가 사도인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왜 바울이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어떤 사람은 성령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교회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핵심은 능력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었고, 표적과 기사가 바울을 따라다녔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모두 실제로 행하셨습니다. 말만 하는 사람은 사도라고 할 수 없고, 실제로 행하는 사람이 사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믿음은 반드시 바울이 전한 믿음과 같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믿음과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바울이 전한 것과 같고, 여러분이 또한 바울을 본받는다면 무엇을 얻게 되겠습니까?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 능력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증거입니다. 결코 말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사도가 아니며, 그들이 전하는 것도 복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근본은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바울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율법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들은 말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말은 잘하면서 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을 미혹할 수 있습니다. 말은 잘하지만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미혹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어떤 사람이 말만 할 줄 알고 행하지 못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누가 말을 잘하는지, 말에 이치가 있는지만 보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운데 한 형제에게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은 말을 아주 잘합니다. 정말 말을 잘합니다. 어느 날 그가 왔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이 사람은 우울증이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그러나 나는 그를 우울증에서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또 이 사람은 이런저런 문제가 있고 직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그의 삶 전체가 변화되고 그가 직장을 얻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교리는 듣기에 좋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교리는 초등학문이고, 내가 가진 것은 대학의 학문입니다. 내게는 능력이 있으므로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관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중국인의 관념은 이것을 교리라고 하고 저것을 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어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영어로는 truth, 곧 실제로 참된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적인 것이라야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 진리입니다. 중국인들은 ‘이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머리로 추리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리저리 추리하고 또 추리하다가 머리가 아파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이 복음, 곧 바울의 복음은 능력을 떠나서는 누구도 바울이 사도인지 증명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면 반드시 순수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복음은 능력을 지닌 복음입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행하는 것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는 두 가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원합니까? 신약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원합니까, 아니면 구약에서 모세가 전한 율법을 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이미 나라를 잃은 상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당시 이스라엘 전체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능력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전혀 없었습니다. 구약성경이 증명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육체로 율법을 지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이 한 가지를 증명했습니다. 이 사실이 증명되면 사람의 입은 닫히게 됩니다.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도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그곳에서 여러분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죄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율법도 있고 선지자도 있고 제사장도 있고 언약궤도 있는, 그렇게 좋은 조건이 주어졌지만 능력은 없었습니다! 구원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까? 먼저 사람이 육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시고, 사람이 육체를 의지하는 길을 포기하여 믿음을 근거로 하는 약속의 길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얻는 것이 바로 아들의 명분을 얻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음을 근거로 하며 행위를 근거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다시 구약의 길로 돌아가려고 할까요? 오늘날에도 이 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 그것은 바로 행위를 근거로 하는 길입니다. 이미 행위로는 안 된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도 여전히 그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 길을 통해 육체로 자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은 믿음을 근거로 하는 길입니다. 믿음을 근거로 하면 능력이 나타나고, 행위를 근거로 하면 연약함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은 매우 분명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연약함 가운데 살고 있고, 그의 삶에서 구원과 죽음에서 부활하신 능력을 전혀 볼 수 없다면, 그가 구원받은 것입니까,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까? 우리가 이 일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가 믿는 복음은 아직 믿음을 근거로 하는 복음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 믿음을 근거로 하는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기 때문에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아들의 명분을 얻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종과 아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 아래에서는 종의 복음에 불과했지만, 신약에 이르면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는 복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큰 능력의 복음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 전체와 바울 서신 전체를 읽어 보십시오. 모두 이 복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내 안에 이 보배가 있습니다. 이 보배는 사람의 삶을 뒤집어 놓을 수 있고, 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이 능력이 있다면, 오늘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은 실제입니까, 실제가 아닙니까?”라고 물을 때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얼마나 실제적인 분인지 모릅니다. 정말, 정말 실제적인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들의 명분을 얻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아들이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상속자가 됩니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논리이며, 매우 단순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마치 믿지 않는 것처럼 됩니다!
그들은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알지 못합니다. ‘왜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없을까?’ 여기서 핵심은 성령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는가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에 대한 관념을 조정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을 단순히 ‘믿는다’는 한 글자로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어떤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이어지는 성경공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온전한 복음이라야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믿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성경 전자판에서 ‘모든’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십시오. 그러면 많은 놀라운 현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골라서 믿는다면 그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믿고 저것은 믿지 않는 식의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으려면 성경 전체를 믿어야 합니다.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많은 예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모든 말씀을 그가 지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온전한 것이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렇지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여호수아는 지켰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만들게 하신 성막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조금도 틀림없이 온전히 건축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계시하신 성전을 온전히 건축했습니다. 절대로 대충 만들거나 재료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한 사람이 믿는다면 성경 전체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전체를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운 것이 없어서 성경을 읽지 못해도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려 주신 치수는 오십 규빗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아, 오십 규빗은 무엇에 쓰겠는가? 사십 규빗이면 충분하지. 한 규빗은 또 무엇에 쓰겠는가? 이 나무는 자르기도 귀찮으니 한 규빗 반이면 되겠지. 그냥 이렇게 쓰자!’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만든 방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대해 바울이 여기서 논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반드시 온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근거로 하는 복음은 반드시 온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초등학문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언급합니다. 초등학문이란 무엇입니까? 전혀 능력이 없는 교리와 율법입니다. 바울이 논쟁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을 여러분이 받아 성령을 받은 것이 복음을 믿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율법을 지켰기 때문입니까? 여러분은 율법이 무엇인지도 알기 전에 복음을 믿었고,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까? 성령을 받았다면 여러분 가운데 성령께서 행하신 기적은 율법을 지켰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복음을 믿었기 때문입니까?”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내신 능력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약속을 따라 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바울이 구약성경을 어떻게 읽는지 살펴봅시다. 그는 하갈과 사라, 이 두 사람을 하나의 예표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을 때 그 안에서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그곳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그림자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사라와 하갈의 대비를 통해 나타납니다. 하갈은 여종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당시의 일이 바로 그 시대의 그림자가 된 것입니다. 하갈이 아들을 낳은 것은 종으로서의 출생이며, 시내산을 가리킵니다. 곧 율법주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반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낳은 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난 아들이며, 약속을 따라 아들로 태어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근거로 해야 하며 행위를 근거로 해서는 안 됩니다
방금 한 자매님이 성경공부 중에 질문했습니다. “제가 고아원에 가서 이 사람들을 돌보아도 좋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한 가지 관념을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통해 어떤 일을 이루려고 하는 것, 자신의 행위로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사람을 근거로 하고 행위를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근거로 하고 믿음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내가 이 일을 했으니 참 대단하다.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을 섬겼으니 참 대단하다. 버스에서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했으니 참 대단하다. 선한 일을 했으니 내가 훌륭하다. 그러니 무엇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번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근거로 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덜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근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엄격하게 따라 행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습니까? 사람을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사람을 근거로 하는 시대입니다. 알 수 없는 사이에 사람을 근거로 하는 많은 더러운 것에 물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무엇인가를 해도 여러분의 운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만약 어떤 일을 함으로써 운명을 바꾸려고 한다면 율법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런 복음에서는 생명의 변화와 능력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왜 볼 수 없습니까? ‘내가 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근거로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 부분을 여러분에게 분명히 설명하기가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믿음을 근거로 하는 것은 하나님을 근거로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근거로 해야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행위를 근거로 하면 아무런 능력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자세히 살펴본 후에도 여러분 안에 행위를 근거로 하는 것이 많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했으니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나의 전부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그분 안에서 유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유익을 얻기 원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유익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에게서 유익을 얻는 것은 별로 체면이 서지 않는 것 같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해 드려야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제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까? 제 뜻을 이해했다면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상속자이므로 하나님에게서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와서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믿음으로 교회에 왔습니다.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회에 오는 목적이 단순히 하나님에게서 유익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유익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에 와서 ‘내가 교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해야 하고,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무언가가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아마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그런 마음가짐이 바로 문제입니다. 제 표현이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말할 때 바울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바울도 한참 동안 힘을 다해 설명했지만, 우리도 읽으면서 여전히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드려야만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분께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유익은 하나님 밖에 있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아주 간단한 이치이지요? 여러분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나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본적으로 먼저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으러 오는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바울이 논쟁했던 할례처럼 ‘내가 할례를 받아야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는 내가 여기서 무엇인가를 하고 저기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무언가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길거리에 나가 선한 일을 조금 할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것인지, 주일에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저도 헌금합니다. 하지만 제 헌금은 전부 가난한 사람들에게 줍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와서 우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우리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예배할 때 능력을 얻기 때문입니다. 능력을 얻어 밖으로 나가 섬기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참된 복입니다.
사람을 근거로 하는 것은 하갈이고, 믿음을 근거로 하는 것은 사라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약속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행위와 육체를 의지하여 일을 이루려는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약속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육체와 행위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얻으려 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약속을 얻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입니다. 하나님의 규칙을 이해하면 매우 간단합니다.
이제 믿음의 개념에 대해 조금 더 나누겠습니다.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온전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분석하지 말고 그대로 행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면 됩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고, 노아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교회에는 능력이 있고 어떤 교회에는 능력이 없는지 알아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는 골라서 믿고, 어떤 교회는 온전히 믿습니다. 온전히 믿는 교회는 하나하나 실천합니다. 하나하나 실천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어떤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제 뜻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어떤 일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면 ‘아, 이것이 나의 생명이다. 이 일을 망치면 이 일이 죽고, 나도 죽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그렇게 하면 기본적으로 일을 잘할 수 없습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 일을 해도 어차피 죽지는 않으니, 그냥 잘해 보자’라고 생각하면 결국 꽤 잘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손에 들고 하는 일들을 하나님의 저울에 올려 달아 봅시다. 사실 아무런 무게도 없습니다. 우리의 관념을 조정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만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은 우리가 선을 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이끌어 선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하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이 여러분이 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이끌어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구약의 제단은 사람이 기구를 움직여 도끼로 두드리고 다듬으면 그 돌을 제단으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자연 그대로이고 다듬지 않은 돌이어야 제단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출애굽기》20:25). 무슨 뜻입니까? 사람의 행위는 조금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조금이라도 그 안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계획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