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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여호수아 15장 - 담대하게 하나님께 구하라

2019-09-18 32,942 约书亚记 信实 信心 应许 拯救 祝福 渴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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约书亚记15章-分给犹大支派的土地
  • 1 犹大支派按着宗族拈阄所得之地是在尽南边,到以东的交界,向南直到寻的旷野。
  • 2 他们的南界是从盐海的尽边,就是从朝南的海汊起,
  • 3 通到亚克拉滨坡的南边,接连到寻,上到加低斯·巴尼亚的南边,又过希斯仑,上到亚达珥,绕到甲加,
  • 4 接连到押们,通到埃及小河,直通到海为止。这就是他们的南界。
  • 5 东界是从盐海南边到约旦河口。北界是从约旦河口的海汊起,
  • 6 上到伯·曷拉,过伯·亚拉巴的北边,上到流便之子波罕的磐石;
  • 7 从亚割谷往北,上到底璧,直向河南亚都冥坡对面的吉甲;又接连到隐·示麦泉,直通到隐·罗结,
  • 8 上到欣嫩子谷,贴近耶布斯的南界(耶布斯就是耶路撒冷);又上到欣嫩谷西边的山顶,就是在利乏音谷极北的边界;
  • 9 又从山顶延到尼弗多亚的水源,通到以弗仑山的城邑,又延到巴拉(巴拉就是基列·耶琳);
  • 10 又从巴拉往西绕到西珥山,接连到耶琳山的北边(耶琳就是基撒仑);又下到伯·示麦过亭纳,
  • 11 通到以革伦北边,延到施基仑,接连到巴拉山;又通到雅比聂,直通到海为止。
  • 12 西界就是大海和靠近大海之地。这是犹大人按着宗族所得之地四围的交界。
  • 13 约书亚照耶和华所吩咐的,将犹大人中的一段地,就是基列·亚巴,分给耶孚尼的儿子迦勒。亚巴是亚衲族的始祖(基列·亚巴就是希伯仑)。
  • 14 迦勒就从那里赶出亚衲族的三个族长,就是示筛、亚希幔、挞买;
  • 15 又从那里上去,攻击底璧的居民。(这底璧从前名叫基列·西弗。)
  • 16 迦勒说:“谁能攻打基列·西弗将城夺取,我就把我女儿押撒给他为妻。”
  • 17 迦勒兄弟基纳斯的儿子俄陀聂夺取了那城,迦勒就把女儿押撒给他为妻。
  • 18 押撒过门的时候,劝丈夫向她父亲求一块田,押撒一下驴,迦勒问她说:“你要什么?”
  • 19 她说:“求你赐福给我,你既将我安置在南地,求你也给我水泉。”她父亲就把上泉下泉赐给她。
  • 20 以下是犹大支派按着宗族所得的产业。
  • 21 犹大支派尽南边的城邑,与以东交界相近的,就是甲薛、以得、雅姑珥、
  • 22 基拿、底摩拿、亚大达、
  • 23 基低斯、夏琐、以提楠、
  • 24 西弗、提链、比亚绿、
  • 25 夏琐·哈大他、加略·希斯仑(加略·希斯仑就是夏琐)、
  • 26 亚曼、示玛、摩拉大、
  • 27 哈萨·迦大、黑实门、伯·帕列、
  • 28 哈萨·书亚、别是巴、比斯约他、
  • 29 巴拉、以因、以森、
  • 30 伊勒多腊、基失、何珥玛、
  • 31 洗革拉、麦玛拿、三撒拿、
  • 32 利巴勿、实忻、亚因、临门,共二十九座城,还有属城的村庄。
  • 33 在高原有以实陶、琐拉、亚实拿、
  • 34 撒挪亚、隐·干宁、他普亚、以楠、
  • 35 耶末、亚杜兰、梭哥、亚西加、
  • 36 沙拉音、亚底他音、基底拉、基底罗他音,共十四座城,还有属城的村庄。
  • 37 又有洗楠、哈大沙、麦大·迦得、
  • 38 底连、米斯巴、约帖、
  • 39 拉吉、波斯加、伊矶伦、
  • 40 迦本、拉幔、基提利、
  • 41 基低罗、伯·大衮、拿玛、玛基大,共十六座城,还有属城的村庄。
  • 42 又有立拿、以帖、亚珊、
  • 43 益弗他、亚实拿、尼悉、
  • 44 基伊拉、亚革悉、玛利沙,共九座城,还有属城的村庄。
  • 45 又有以革伦和属以革伦的镇市村庄;
  • 46 从以革伦直到海,一切靠近亚实突之地,并属其地的村庄。
  • 47 亚实突和属亚实突的镇市村庄;迦萨和属迦萨的镇市村庄;直到埃及小河,并大海和靠近大海之地。
  • 48 在山地有沙密、雅提珥、梭哥、
  • 49 大拿、基列·萨拿(基列·萨拿就是底璧)、
  • 50 亚拿伯、以实提莫、亚念、
  • 51 歌珊、何伦、基罗,共十一座城,还有属城的村庄。
  • 52 又有亚拉、度玛、以珊、
  • 53 雅农、伯·他普亚、亚非加、
  • 54 宏他、基列·亚巴(基列·亚巴就是希伯仑)、洗珥,共九座城,还有属城的村庄。
  • 55 又有玛云、迦密、西弗、淤他、
  • 56 耶斯列、约甸、撒挪亚、
  • 57 该隐、基比亚、亭纳,共十座城,还有属城的村庄。
  • 58 又有哈忽、伯·夙、基突、
  • 59 玛腊、伯·亚诺、伊勒提君,共六座城,还有属城的村庄。
  • 60 又有基列·巴力(基列·巴力就是基列·耶琳)、拉巴,共两座城,还有属城的村庄。
  • 61 在旷野有伯·亚拉巴、密丁、西迦迦、
  • 62 匿珊、盐城、隐·基底,共六座城,还有属城的村庄。
  • 63 至于住耶路撒冷的耶布斯人,犹大人不能把他们赶出去,耶布斯人却在耶路撒冷与犹大人同住,直到今日。

《答疑解惑》

서론

성경공부를 시작하기 바로 전에 아주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사실 그렇게까지 신기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있는데, 그 자매의 어머니가 연세가 많은 분입니다. 그분은 휠체어를 타야 했고, 한쪽 다리에 힘이 없어서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조차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계속 뒤에서 그분의 손녀와 딸을 재촉했습니다. “할머니의 다리를 위해 기도하세요. 그리고 어머니의 그 다리를 위해 기도하세요.” 그러자 우리 자매가 말했습니다. “안 돼요! 우리 엄마 다리 안에 철판이 하나 있어요!” 그 철판이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있습니까?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어르신이 저에게 오셨습니다. 이 다리는 나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어르신의 손녀를 계속 재촉했습니다. “할머니의 다리를 위해 기도해야 해요!” 그러자 그 자매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만 천천히 하세요!” 저는 속으로 의아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는 거지?’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이것저것 했습니다. 사실 그 어르신의 마음에는 매우 간절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미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더 기다리겠습니까?

그러다가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되어 제가 다시 한 번 재촉했더니, 그 자매가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 할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안 될까요?” 물론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도 이런 일을 아주 좋아합니다. 몇 번 기도했더니, 전에는 아예 들어 올릴 수도 없었던 다리를 이제 들어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더 이런저런 일을 한 뒤 그분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저에게 영상을 보내왔는데, 어르신이 이미 천천히 땅 위를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달라고 할 수 있는 담대함을 가진 성품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은 담대하게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담대하게 구하면, 하나님도 담대하게 주십니다! 사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성품입니다. 많은 형제자매에게 이런 성품이 부족합니다. 《여호수아》 15장은 사실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지명들을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하나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라고 물으신다면, 저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설명할 줄 모르는 것은 설명하지 맙시다.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만 이야기합시다.

제가 이 장을 보니, 중간에 작은 이야기가 하나 나옵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이 땅을 자기에게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모두 거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낙 자손은 모두 거인들이었습니다. 결코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아낙 자손이 서 있으면 우리를 메뚜기처럼 보고, 우리도 그들을 바라본 다음 자신을 보면 역시 메뚜기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그 땅을 공격해야 했습니다.

그곳 가운데 드빌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우 강했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이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기럇 세벨을 쳐서 그 성을 점령하는 사람에게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 제 생각에는 악사가 꽤 아름답게 생겼던 것 같습니다. 딸이 아름답게 생긴 것도 축복이라면, 악사는 아마 현숙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악사가 시집갈 때, 남편에게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하나 달라고 구하라고 권했습니다. 악사의 남편은 분명히 기럇 세벨을 점령했을 것입니다. 기럇 세벨을 점령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갈렙의 동생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입니다. 이 옷니엘도 꽤 성품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이 자기 딸을 나에게 주겠다고? 그렇다면 나는 받겠다!’

《여호수아》 15장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담대하게 구하라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믿습니까? 담대하게 구하면 하나님도 담대하게 주십니다. 제가 현실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은 감히 구하지 못합니다. 원하는 것 같으면서도 감히 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담대해야 합니다! 옷니엘이 말했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성을 점령했습니다. 담대하게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성품입니다. 악사도 담대하게 구했습니다. 시집갈 때 아버지에게 밭을 하나 달라고 구했는데, 그가 요구한 것은 가장 좋은 위 샘과 아래 샘이었습니다. 그곳은 좋은 땅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구하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분명히 담대하게 구하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가 가진 성품은 바로 담대하게 구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무엇을 원합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녁 무렵 제가 그 어르신의 다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그 모습을 녹화하고 사진으로 찍고 있었습니다. 마치 천사와 천군이 제 주변에 있고, 하늘의 각종 신문과 웹사이트의 기자들이 모두 와서 촬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시는 이야기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단지 한 어르신이 일어나 걷게 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많더라도, 제 마음속에서는 모두 신실합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나는 담대하게 구하겠다.” 사람이 담대하게 구하면 하나님께서 정말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습관을 하나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악사를 보십시오. 악사는 담대하게 구했습니다. 가장 좋은 땅을 달라고 했습니다. 구하기 전에 ‘만일 그가 나에게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했을까요? 주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나 구할지 말지는 우리의 일입니다.

옷니엘은 그 땅을 담대하게 구했고, 드빌을 점령했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전쟁이었습니다! 구한 후에는 매우 귀한 아내 악사를 얻었습니다. 악사도 담대하게 구했고, 옷니엘은 두 몫을 얻었습니다. 하나는 유다 지파 안에 있는 자신의 몫이었고, 또 하나는 아내 악사가 장인에게서 가져온 몫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저는 담대하게 구하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무엇을 구하는지 아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약속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라면 저는 모두 구하겠습니다. “그 부부는 너무 욕심이 많은 것 아닙니까? 가장 좋은 땅을 가져가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는 그들의 일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대해서는 저는 구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주고 안 주는 것은 그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모든 땅과 성읍과 마을을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결국 그것들은 누가 차지했습니까? 담대하게 구한 사람들이 차지했습니다. 알아듣겠습니까? 담대하게 구해야 합니다! 담대하게 구하지 않고 뒤에 숨어 있다가 줄을 서면 맨 마지막에 서게 됩니다. 그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저는요…… 저는 이 땅을 원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듣지 못합니다. “죄송하지만,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얻게 하시는 것

구약 성경이나 신약 성경이나 모두 담대하게 구한 사람들이 얻었습니다. 여리고 성에 한 맹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 그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너무 크게 소리쳐서 목이 다 쉴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사실 보게 해 달라고 하는 것 외에 더 많이 구했어도 좋았을 것입니다.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셨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저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일을 이렇게 읽는 것 같아요.” 사실 여러분이 어떻게 읽는다고 느끼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구절에서 무엇을 말씀하시느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읽어 내야 합니다. 자신의 뜻을 읽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읽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것은 사실 매우 간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뻐하신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여러분이 저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저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좋아하시면 저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십니까? 담대하게 구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담대한 사람은 대단합니다! 겁이 많아서 원하면서도 감히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우리 형제자매들은 모두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나라에서 담대하게 이렇게 말합시다. “이 땅은 내 것입니다!” 땅의 땅을 나누어 주었으니, 달의 땅도 나누어 줍시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우주와 하늘에 있는 땅도 우리에게 한 조각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주 사람의 갈망에 따라 사람에게 주십니다! 사람이 갈망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비극입니다!

그 어르신을 보십시오. 사실 그분의 마음은 간절한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제가 차를 몰고 그분을 모시러 갔을 때, 저는 오히려 그분을 오해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갈망이 얼마나 큰지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분은 이미 그곳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다만 섬기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종교적인 냄새로 가득하거나, 감히 구하지 못하거나, 그러면서도 자신의 믿음이 크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사실 제 믿음도 대단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그저 담대한 것입니다. 제가 담대하게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형제자매는 지금부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아무리 많아도 모두 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많아도 저는 모두 구하겠습니다. 반드시 얻고야 말겠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은 정말 보배입니다!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눈먼 사람이 보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는 이 땅의 축복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문의 구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용기를 내십시오. 하늘에서 오는 지혜로 가득하여 모든 일을 마주할 때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반드시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마음속에 겁을 내고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대략 한 가지를 이야기한 셈입니다. 제가 왜 ‘담대하게 구하라’는 주제가 매우 흥미롭다고 말했을까요? 여러분은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기럇 세벨을 공격해야 한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 왜 옷니엘만 그 성을 공격하러 갔습니까?” 사실 이런 성품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옷니엘 외에도 여러 옷니엘이 나왔다면 이야기는 이렇게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너희 셋이나 다섯 명이 모두 일어나 이 성을 공격하려 하니 제비를 뽑도록 하자.” 그러나 실제로는 한참을 기다려도 옷니엘 한 사람만 일어나 그 성을 점령했습니다. 그래서 갈렙은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습니다.

저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믿음을 가지는 데 무엇이 필요합니까? 돈이 필요합니까? ‘나에게 1억이 있으면 믿음이 있고, 1억이 없으면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1억이 없어도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1억이 있어도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에게 대학 졸업장이 있으면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여전히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믿음은 얼마나 쉬운 것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뿐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옷니엘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는 다른 것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갈렙이라는 사람이 대단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앞 장에서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갔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을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가서 “이 땅은 내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결국 그 땅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습니까? 사실 갈렙이 처음 공격한 성이 드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성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성들을 공격하여 땅을 점령했고, 가장 공격하기 어려운 성인 드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성을 공격하여 점령하는 사람에게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 이것은 두 배의 몫이었습니다! 옷니엘이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담대하게 구하는 사람이 되겠다. 내가 하겠다!’

담대하게 구하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바로 이것이 옷니엘의 성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옷니엘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옷니엘은 자신의 조상 때부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거쳐 한 세대 한 세대 내려와 자신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여호수아와 갈렙을 직접 보았습니다. 심지어 모세도 보았습니다. 그가 본 하나님은 원래 이런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옷니엘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는 나중에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대통령과 같은 사람, 어쨌든 가장 높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갈렙과 같은 사람은 대단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따른 결과가 어떠한지를 생각했습니다. 옷니엘도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본받게 됩니다. 옷니엘은 갈렙과 함께했기 때문에 갈렙을 본받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성을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의 큰 선물도 얻었습니다. 악사는 갈렙의 딸이었고, 결국 그는 그 딸을 아내로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딸도 대단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점령한 성을 우리 아버지께 드리세요”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악사는 일을 분명하게 처리했습니다. ‘아버지의 것은 아버지의 것이고, 나와 내 남편의 것은 나와 내 남편의 것이다. 내 것은 내 것이다.’ 그 결과 아버지에게 땅을 하나 달라고 구하여, 아버지에게서 위 샘과 아래 샘을 얻어 왔습니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이 이야기를 읽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 이것은 부모에게 의존하는 좋은 예가 아닌가요!” 그러나 그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악사는 그것을 잘 관리하기 위해 구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오히려 해를 끼칩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악사는 이 땅을 어떻게 구했습니까?

악사가 말했습니다. “여보,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께 땅을 하나 달라고 하세요.” 그런데 악사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나귀를 타고 돌아오다가 나귀에서 내리자, 갈렙이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이것은 정말 바라던 일이었습니다. ‘아까 내가 말한 것을 아버지가 듣지도 못하셨는데 어떻게 아셨지?’ 그러자 딸인 악사가 말했습니다. “제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저를 남방 땅으로 보내셨으니, 샘물도 주소서.”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위 샘과 아래 샘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당신의 것은 나의 것이고, 나의 것은 당신의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바로 그런 것 아닙니까! 이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은 조금 모순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것도 나의 것이고, 나의 것도 아버지의 것이라면, 굳이 구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하고 나면 그것이 여러분의 이름으로 등기됩니다.

구하면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하셨습니까? 사람에게 이런 성품을 갖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매우 실제적인 성품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겠습니다.” 저는 이상합니다. ‘왜 다른 사람에게 양보합니까? 참 너그럽군요. 좋은 사람이군요!’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가져갑니다.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은 마태 효과라고 합니다. “있는 자는 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겨 있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의 운행 법칙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 때부터 오늘날까지, 저는 참 많이 구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무엇을 얻었습니까? 매우 풍성한 보답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을 믿는 것이 이렇게 믿는 것입니다.

사실 악사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여인은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많지 않습니다.

옷니엘과 악사는 모두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은 모두 매우 성품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모두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좁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매우 컸습니다! 그들은 “나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방금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왜 또 이렇게 말합니까?” 이 일을 여러분은 반드시 혼동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해서 왜 구할 수 없습니까?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보배로 얻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앞부분만 읽지 말고 뒷부분까지 읽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보배로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두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담대하게 구하십시오! 땅에 있는 것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 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보배로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약속은 매우 풍성합니다.

이 말이 여러분에게 혼란을 줍니까? 혼란스럽다면 제가 한 구절을 더 읽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면 얻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기 때문에 많은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이 얼마나 분명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지만, 그렇게 한 후에는 어떤 것에도 지배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약속 가운데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하는 약속은 무엇이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관점을 주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매우 가난한 한 전도자를 보았다고 합시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가난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라며 몇 가지 예를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것은 아주 드문 경우일 뿐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중 누가 가난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다윗과 솔로몬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늘과 하늘의 하늘, 땅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가난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작은 문제에 불과합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그가 가진 것까지 빼앗아 가진 자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까? 게으르고 악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런 사람이 되지 맙시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난하게 살게 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돈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을 사랑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돈을 사랑한다고 반드시 돈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갈망하는 마음을 가지라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감히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기서 여러분의 한 가지 혼란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구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전에 하나님께 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 땅은 갈렙의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달라고 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리 내놓으세요, 이 늙은이야! 죽지도 않고!”라고 말하면 그가 주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별력이 없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얻는 것은 우리가 얻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분의 약속을 모두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 약속을 취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했으면 취하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 저를 치료해 주세요! 치료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라고 계속 구해야 합니까?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주지 않으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열심히 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성령입니다. 성령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러한 갈망의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사람은 갈망해야 합니다. 미지근해서는 안 됩니다. 부지런하고 뜨겁게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혼란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합니다. 절대로 잘못 이해하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성령을 구할 때는 “성령님, 나를 충만하게 해 주세요! 성령님, 나를 충만하게 해 주세요!”라고 구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달라고 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 전에는 절대로 놓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얻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기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예수님처럼 되어야 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충분히 닮지 않았다면 계속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극히 귀한 보배입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구하고 있지만, 아직 구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 힘써 추구하고 있지만 아직 얻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계속 힘써 달려가며 계속 얻어야 합니다. 미지근하고, 어정쩡하게 흔들리며, 어리둥절하게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마치 종처럼 행동하면서 주인의 마음가짐은 전혀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조정하기 시작합시다.

우리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자기 땅을 힘써 정복하라

또 하나 더욱 흥미로운 일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15장 63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여호수아》 15:63)

“오늘날까지”라는 것은 이 《여호수아》가 기록된 날까지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의아해집니다. 이미 정복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예루살렘에 있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도대체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유다 지파 사람들 안에 한 가지 혼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혼란은 이러했습니다. ‘어쨌든 이미 이 땅들을 가지고 있으니, 이 사람들을 여기 살게 두자! 괜찮아.’ 이것이 바로 쓸데없는 연민입니다.

성경은 왜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까? 사람은 자주 자신이 사랑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를 비추어 보여 주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도 아직 얻지 못한 땅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매우 큰 혼란이 하나 있습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니 악령은 내 안에 있을 수 없다.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고 하나님이 나의 주님이신데, 악령이 어떻게 내 안에 있을 수 있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주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말합니다. “그만하십시오. 당신의 그 모습을 보십시오. 안에 세상에 속한 것이 아직 많이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다시 말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면서 육체의 악한 행실을 하나씩 죽이고, ‘이 정도면 됐다, 이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 한 곳 남아 있다면, 우리 안에 있는 육체에 속한 악한 행실을 전부 죽일 수 없습니다. 작은 땅 하나를 남겨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도 마찬가지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모든 것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아직 죽이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이키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바울도 치료받지 못했으니, 병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기도해도 완전히 치료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모두 치료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병이 듭니까? 우리 안에 아직 세상에 속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 안에도 세상에 속한 것이 있다면, 무슨 자격으로 우리에게 세상에 속한 체계를 대적하라고 말합니까?” 제가 여러분에게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자신에게도 똑같이 말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모두 세상에 속한 체계를 대적해야 합니다. 다만 저는 조금 더 많이 대적하고, 여러분은 조금 덜 대적할 뿐입니다. 어쩌면 어느 날에는 여러분이 저보다 더 많이 대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더 훌륭한 것이니, 저는 기꺼이 인정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우리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모든 체계를 몰아내고, 조금도 남겨 두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조금 남겨 두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시게 하면서 작은 자기 땅 하나는 남겨 두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자기 땅 하나를 남겨 두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이 그곳에는 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저는 여전히 힘써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참 현실적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매우 실제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하는 일은 이단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힘써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좋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당신이 하는 일에는 성경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완전히 성경에 부합하는 기준으로 본다면, 어느 교회든 아직 도달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한두 가지가 아니라, 어떤 교회는 매우 많습니다.

저는 안전감이 없는 목회자를 자주 봅니다. 안전감이 없는 목회자가 많습니다! 안전감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통제하려고 합니다. 통제한다는 것은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는 통제하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세상에 속한 체계입니다. 세상에 속한 방식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통치 방식과 같은 것입니다. 독일 나치는 매우 강력했습니다. 그의 친위대도 매우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모두 세뇌된 상태로 살면서 히틀러에게 충성했고, 마지막에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우리 가운데서 대적하여 제거해야 합니다. 오늘날까지도 저는 여전히 이런 것들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형제자매들을 이끌고 앞으로 달려가다가도 세상에 속한 것이 나타납니다! 어떤 때는 가르치다가 너무 급해지고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밖에 나가 한 바퀴 걷고 돌아와서 다시 화를 가라앉힙니다. 그것이 아직 완전히 다스려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땅을 아직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부스 족속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자손과 함께 살다가 시간이 지나자 유다 자손을 괴롭혔던 것과 같습니다. 저는 우리가 왜 일부를 남겨 두는지 생각해 봅니다. 유다 자손은 왜 일부를 남겨 두었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대조입니다. 옷니엘과 갈렙은 담대하게 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 안에는 항상 감히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 안에 쓸데없는 연민이 있어서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겼거나, 아니면 스스로 만족하여 더 이상 힘써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고 우리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가치 체계를 대적하는 일은 성을 공격하고 땅을 점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조각씩 정복하여 우리 안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체계가 조금씩, 한 성 한 성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점점 예수님을 닮아 가고, 점점 더 능력을 갖게 되며, 점점 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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