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创世记》的第十章,我讲得稍微有点乱,也不知道讲清楚没有。为啥我觉得有点乱呢?因为我自己也没太读懂。但是大概思路是对的。要用属灵的角度去看这世上的事。别的你可以不记着,但你要记着我那句话:一百年以后,阿里巴巴、谷歌、新东方可能还在,但是,你肯定不在了,跟你没啥关系了。你租或买了一个地方,开了一家小店,一百年以后,你的店可能还在,但可以确定的是你不在了。咱们要用属灵的眼光看这事,是不是应该寻求一个永恒里的祝福?这就是关键。现在苹果公司还在,手机也升级到了iPhone14了,可是已经跟乔布斯没关系了,将来跟库克也没太大关系。
Q1:我们都是亚伯拉罕的属灵后裔,教会替代了属灵的应许之地,为什么现在的教会把以色列复国看得那么重?
我一回答这个问题就会冒犯一些人。为什么?傻呗。既然提到了这个事,别的教会咱不管,但是我一定要告诉你,很多人没整明白:旧约《圣经》里的以色列、锡安山、耶路撒冷、圣殿都是指着教会。因为新耶路撒冷从天上降临,那是神的殿,所以,教会是耶稣基督的身体,万物不是在以色列那块地方,而是在耶稣基督里合而为一。大家要明白这个道理。
但是,为什么还是有一波波人到以色列去,为以色列祷告,为耶路撒冷求平安?就是傻!也许我一、两句话不一定能一下子说明白旧约《圣经》里的锡安山、耶路撒冷都是指着教会,但是,万物在耶稣基督里通过教会合而为一,教会才是耶路撒冷,这是清楚的。在新约《圣经》的《启示录》里写着:新耶路撒冷从天上降临,那就是教会。千万别以为挂了一个牌子就是教会。骗子挂一个牌子说这是省政府,你就信?在他们家门上挂上浙江省省政府的牌子,你到那能办事吗?那是骗人的。就是整了一座大楼,挂上一个银行的牌子,你就能往里面存钱吗?
Q2:国与国之间的疆界是神定的,那人在哪里生活也是神定的疆界吗?
人一生都在神的掌管当中。当一个人受了咒诅,走着走着就走到受咒诅的地方去了。有的人蒙祝福,走着走着就走到蒙祝福的地方去了,比如亚伯拉罕。而罗得走着走着就走到所多玛去了。这就是为什么我鼓励大家要有命定。蒙祝福以后,神引导你一生多好!
Q3:老师,在没有来华人命定神学之前,教导孩子不要乱跑,跑了可能丢,有人偷小孩,挖人内脏。这是不是被害妄想症?怎么教育孩子比较好?
教育孩子变聪明很重要。千万不要只告诉他:不要乱跑,如果外面有拍花老头,一拍你脑袋你就跟着走了,他就摘了你的心脏、肾脏给别人装上,你就麻烦喽。结果小孩一出去就直哆嗦。这不是闲着没事找事吗?
Q4:亚伯拉罕看得很透,老师你讲得很明白,让我们看透。我们有时候看得很透,可是活着活着就活到属世界的逻辑体系里了。
对,你这样,我也这样。所有的基督徒都是在不断地争战当中,这种争战其实是心里面逻辑体系的争战。所以一生都要不断地除去我们里面属世界的逻辑体系,也就是今生的逻辑体系。如果今生的逻辑体系除掉了,你说:那日子还咋过呀?我告诉你,那日子过得可好了,有神绝对是过好日子。你什么时候看到有神不好了?如果有神却过得不好,那是因为他的神不是个真神!
Q5:大卫数点军队为啥招咒诅了?
大卫数点军队,就是靠着军队来争战。基督徒什么都不用比,就比神就好了。大家还有印象吗?约拿单一个人带着一个拿兵器的小孩,就能打败整个敌军。基督徒一定要知道,不靠车不靠马,不靠武器,就靠耶和华神!千万别脑袋长包或者脑袋有洞。
Q6:老师,敬畏神还需要锻炼身体吗?如果需要,怎么锻炼身体呢?
什么叫做锻炼身体?如果你说跑马拉松叫锻炼身体,那我就要给你浇一瓢冷水。我们以为生命在于运动,后来发现有很多跑死的。前一段时间不是跑死了好几个人。我跟一个同工讲:我有一个同学就喜欢跑马拉松,每天能跑十几、二十公里,天天在那练。我的这个同工很有意思,就问:他死了没有?我说没有啊,他才刚开始跑啊。
为什么他会这么问呢?因为我有一个挺有意思的逻辑经常和他分享。我观察到了一个现象,发现蚊子的翅膀每秒钟都能扇上百次,忙得要命,可他寿命很短;乌龟慢慢爬,寿命却很长。我就总结出一个规律,有的人整天就在那跑啊跑,蹦啊蹦,我就想,你这是急啥呢?那么快地往黄泉路上跑啥呢?
所以我对锻炼身体有一套自己的看法,锻炼身体好像不太解决问题。我经常带着我的这个逻辑和人分享。有一个朋友就和我说:可不是嘛,我同事的老婆整天在广场上带着跳广场舞,那天还没走到家,就倒地死了。她老公眼睁睁地看着她,就差两百米就到家了,冲下去也没抢救过来。过了一段时间,我又和另外一个朋友分享,我的朋友说:真是这样啊!我们的局长死了。又跑步,又健身,又吃保健品,整天讲的都是养生,结果还不到六十岁就死了。
我说,你们给我提供了很多素材,挺好。所以大家想锻炼就锻炼。后来我总结出一条路来,人不管怎么折腾,你的寿命也不能增加一刻钟;如果你不折腾,寿命也不会减少一刻钟。生有时,死有时,人的寿命都是神定的。
Q7:老师,想要牧养人是不是自己得是一个有道的人,有衡量标准吗?
当然有了,衡量的标准不就是神的话吗!你得把神的话读明白。有的人神的话读不明白,就瞎讲,后来做了牧师,再后来就成了悲剧了。
Q8:老师,如果病都是魔鬼,为啥针灸之后或者吃药之后就好了?
病给人制造的困扰很多。我给你举个例子:两个人得了一样的病,都吃了同样的药,一个好了一个没好,你说这病好了跟那药有关系吗?好像有关系好像没关系。再比如说,有一天你推开关,灯亮了;第二天推开关,灯又不亮了。有时候推亮,有时候推不亮,你说这灯跟那开关有关系吗?因为你推这开关,旁边的人也推一下,人家推的那个是真的,你推的那个是假的。下次你再推那个开关,旁边的那个人他不推了。这个病给人制造的困惑很多。所以你的困扰是正常的,那东西不是个规侓。
比如说祷告,有的人好了,有的人没好,你说能说明啥?如果就是维他命药丸,到了很贫穷的地区,你说这药可贵了,吃了准好。真的有一半人吃好了,一半没好,你说这咋回事?这跟那药没关系,跟心理状态有关系。如果你做医生你就明白了。你没考察过,所以你很困惑。
Q10:老师:为什么不可挪移邻舍的地界,而神又让以色列人夺取迦南地?
你咋把两件事混在一起说呢?对方没受咒诅,神没给你,你挪到人家的地界你就要受咒诅;可是如果对方受了咒诅,神说要把这地给你,你就去拿,受啥咒诅?神掌管的,难道神不能做主吗?比如说那个人做事不行,咱们教会的弟兄姐妹去做就行,因为神把那个夺过来给他。《圣经》上说:凡有的,还要加给他,叫他有余;凡没有的,连他所有的也要夺去。(参《马太福音》13:12)我们人常常把事混起来说。
Q11:老师,为什么有的牧师说,新约《圣经》里面没有神咒诅人的事?
他没有读《圣经》,他应该回去重读小学。
Q12:老师:如果一生都在与属世界的东西争战,那么人有时候明白,有时候不明白也是正常的吗?我牧者总说我是真的不明白,有时候听了心里拔凉,觉得神也不喜欢我了。可是我还觉得我有努力在明白,也有一点点明白了,也想继续进步。
那就很好啊。人一生都在成长当中,都是靠着神的恩典长起来的。虽然你还不够好,但是神也没有把你灭掉,因为神要让你继续成长,长成满有耶稣基督的身量。
Q13:老师,我听你讲的道,心里可清楚了。但是一做事,不知不觉就又跑回世界的逻辑体系里去了,以能力为本,强人逻辑又出来了。牧者说我活得可认真了,我头疼了,才觉察到不对劲儿,还急躁。依靠神,说着容易,做着怎么那么难?
其实不难,就在你口里,就在你心里。神给我们的有多难呢?如果你要想赚十万块钱,你还得投钱;但你要信靠神,就是一个选择。你想想看哪一个容易?一个人信主是再容易不过的事。神给我们一个非常容易的事,结果我们把它整成一个很难的事,这不是悲剧吗?其实就是我们骨子里的东西没改,我们相信的东西都是错的。如果我们骨子里的东西真的改了,今天改一点,明天改一点,不可能又回去了。应该是没有真正改。人有的时候真的是脑袋不好使。
서론
안녕하세요! 《창세기》 10장을 읽고 나면, 우리도 무슨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이름이 한 무더기 나오는데, 읽고 나면 글자는 알겠지만 그 이름들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저도 모릅니다. 그것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모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도 모르겠으며,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하게 하시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아의 후손인 것 같은데, 이런 것을 왜 기록했을까요? 당신은 그를 모르고, 나도 그를 모릅니다. 그는 나를 모르고, 당신도 모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한 가지, 아주 중요한 핵심을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해석합니다. 《성경》의 핵심을 붙잡을 수 있다면, 곧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해석한다는 것을 붙잡을 수 있다면, 이것을 누가 누구를 낳았고, 누가 어떤 나라를 세웠으며, 누가 누구를 낳고 또 어떤 나라를 세웠다는 식으로 보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안 됩니다. 이것은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해석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중국인 사명신학에서 자주 하는 말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13)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해석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인도하여 오늘날을 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고 싶습니다. 영적인 시각으로 오늘을 바라보면, 사실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장의 주제는 《땅, 종족, 방언, 나라들은 영적인 일이다》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묻는다면, 저도 머리를 쥐어짜며 한참 생각한 끝에 겨우 이런 제목을 떠올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흰머리는 더 짧아지고, 온통 비녀를 꽂을 수도 없구나”라는 말 그대로입니다. 이 말의 뜻을 아십니까? 문학적인 표현을 하나 빌리자면, 근심 때문에 머리를 계속 긁다 보니 머리카락이 빠지고, 결국 한데 묶을 수도 없게 되어 몇 가닥만 남고, 전부 이마가 훤히 드러난 것처럼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일을 두고 머리를 싸매야 하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중국인 사명신학에서 가장 강력한 말은 바로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을 깨달으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서 오늘도 만나를 먹고 내일도 만나를 먹었는데, 어떤 때는 먹고 설사를 하고, 어떤 때는 먹고도 배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모두 그곳에서 모세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듣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모세도 그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일은 모세가 알 수 없었습니다. 모세도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산 위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노아를 알았습니까? 알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아브라함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아브라함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아브라함 이후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전히 구전으로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1장 이전의 일은 정말 놀랍습니다. 제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대면하여 알려 주셨고, 모세가 산 아래로 내려와 이것들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창세기》 10장도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누가 그에게 알려 주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모세는 왜 이것을 기록했는가
모세는 왜 이것을 기록했을까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인류의 역사를 보기를 원했고,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역사를 거울로 삼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 들어갔을 때 그곳 사람들은 거의 다 죽고 없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를 배우게 한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는 어떤 시각으로 역사를 배워야 합니까? 영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시각으로 보면, 사람이 살다가 결국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중에도 나라는 남아 있지만 그들은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것이, 너무 진지하게 산 것은 아닐까요? 나라는 남아 있지만 당신은 사라졌습니다.
한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위민훙, 마윈, 그리고 업계의 몇몇 거물들이 논쟁을 벌였습니다. “백 년 후에는 알리바바가 이미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내 신둥팡은 백 년 후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백 년 후에도 교육은 남아 있을 것이지만 전자상거래가 반드시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마윈이 말했습니다. “교육은 남아 있겠지만 신둥팡이 반드시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신둥팡과 교육을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신둥팡도 거의 사라질 뻔했고, 얼마 후 알리바바가 여전히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당시 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저는 거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그 무리에 들어가 그들 앞에 서게 된다면, 그들의 논쟁을 단번에 끝내 버릴 것입니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알리바바도 남아 있을 수 있고, 신둥팡도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알리바바와 신둥팡은 여러분과 별로 관계가 없게 됩니다.”
모세는 왜 이것을 기록했을까요? 사실 이전에 기록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기록한 것입니다. 누가 어떤 나라를 세웠고…… 님롯은 대단하고, 알렉산더도 대단하고, 처칠도 대단하고, 루스벨트도 대단하고, 링컨도 대단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 그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당시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마오쩌둥 주석이 쓴 시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진시황과 한무제는 중국 역사에서 당시 용맹하고 이름난 황제들이었습니다. 당 태종과 송 태조, 칭기즈 칸을 말하며 영웅을 보려면 지금을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사라졌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은 세상을 떠나고 여러 해가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 길을 걸어가는 동안, 모세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아주 깊이 이해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인류의 역사를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인류의 이 작은 역사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마음이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공격하는 것을 봅니다. 결국 당신이 미사일 하나를 쏘면 나도 미사일 하나를 쏘고, 당신이 달걀 하나를 던지면 나도 달걀 하나를 던지는 식입니다. 저는 모세가 왜 이것을 기록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 가지를 이해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인류가 역사 속에서 서로 다투고 빼앗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이 나중에 이렇게 많은 사람으로 나뉘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한 가지 일을 하려 했습니다. 바로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모조리 진멸하는 일이었습니다. 가나안이라는 말이 좋은 뜻이라고 생각합니까? 가나안은 좋은 이름이 아닙니다. 가나안은 노아가 저주한 함의 아들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이라는 곳에 살던 사람들은 시돈 사람, 헷 사람, 여부스 사람, 아모리 사람, 기르가스 사람 등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 사람들을 모조리 진멸하려 했고, 그러면서 세상의 나라들을 한 번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정말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것을 꿰뚫어 보게 했다면, 그곳에 들어가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멸망시킨 것은 왜였을까요? 여러분에게도 분명 이런 의문이 있을 것이고, 저에게도 이런 의문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 일을 기록한 것은 땅, 방언, 종족, 나라가 하나의 영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을 누가 다스립니까?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다시 말해, 이 종족이 이 땅을 차지하고 저 종족이 저 땅을 차지하며,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저곳에 나라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일입니다.
《성경》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를 하나님께서 정하셨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인지 사람이 정한 것인지,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모든 것은 영웅들이 싸워서 얻은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 싸우다 보면 결국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결국 모두 비참하게 죽습니다.
중국 역사인 《삼국지》와 《수호전》의 이야기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것을 기록한 것은 땅, 방언, 나라, 종족이 모두 영적인 일, 곧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웅이 역사를 만든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역사를 만드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을 모두 멸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관념을 선포합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그 땅을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곳 사람들의 악이 가득 찼으므로 우리가 그 땅에 들어가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창세기》를 기록하면서 동시에 《신명기》도 기록했습니다. 너희가 충분히 선하기 때문에 이 땅을 너희에게 준 것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이 충분히 악하기 때문에 그 땅을 너희에게 준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세가 이것을 기록한 것은 너희가 충분히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도 점차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을 본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이 사람들을 본받아야 합니까? 이 사람들은 땅, 종족, 방언, 나라에 따라 나라를 세웠습니다. 만일 나라를 세운 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멸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일으키셔서 가나안 사람들을 멸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이쪽이 저쪽을 멸했다가, 다시 저쪽이 이쪽을 멸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셨습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은 꽤 엄하신 분입니다. 중국인 사명신학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은 현대에 유행하는 신학, 곧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과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이 말을 잘못 이해하여 미혹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지키시고 천 대까지 인애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미워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삼사 대까지 갚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변하셨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의 손에 있던 땅을 빼앗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땅을 얻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이 땅을 얻는 방식은 더 이상 이런 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토지와 자원을 빼앗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주십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눈에는 공평하지만 사람의 눈에는 불공평합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가 이것을 기록한 이유입니다. 이제 지정학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정학
이 모든 것이 영적인 일이며, 영적인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계의 일이 땅의 일을 다스리고, 하늘의 일이 땅의 일을 다스립니다. 지정학에 대해 조금 알아보십시오. 기회가 있다면 지정학에 관한 책을 읽어 보십시오. 지정학이란 무엇입니까? 지리적 위치에 따라 이 나라는 이곳에, 저 나라는 저곳에 있으며, 땅, 방언, 종족, 나라가 나뉘는 것입니다. 지정학을 모르면 사물을 보면서도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지정학을 아주 잘 연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매우 뛰어난 사람인데, 이름은 키신저입니다. 키신저는 중국과 지정학, 그리고 지구상의 여러 나라를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전쟁을 성공적으로 예측했는데, 이 전쟁들은 지정학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라를 세웠으니, 이 나라가 당신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서로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우리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인 브레진스키입니다. 폴란드 사람입니다. 오늘날 중국이 부상하여 강대국이 되는 데에는 브레진스키가 큰 공헌을 했습니다. 지정학은 영적인 일입니다. 왜 영적인 일입니까? 이 폴란드 사람은 뼛속 깊이 러시아인을 미워했습니다. 브레진스키가 쓴 책들은 그가 직접 목격한 일이었고, 그는 소련의 해체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후에 브레진스키는 여러 전쟁을 성공적으로 예측했는데, 그중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포함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사람들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 안에 있는 논리 체계를 따른다고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 안에 있는 것을 성공적으로 분석하고 자신의 논리 체계로 추론했습니다. 추론을 마친 후에는 러시아가 반드시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이 세상의 일은 참 슬픕니다. 당시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했을 때 누가 보증서를 썼습니까? 누가 보증했습니까? 자신의 안전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정말 골치 아픈 일입니다.
한쪽은 러시아이고, 다른 한쪽은 미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너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습니까? 정말 골치 아픈 일입니다. 미국인도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했는데, 그 조건은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핵보유국이었습니다. 미국, 러시아, 그리고 세 번째가 우크라이나였습니다. 중국보다도 핵무기가 많았고, 아주 강력했습니다! 그런데 핵무기를 포기한 뒤 결국 얻어맞았습니다. 세상은 원래 이렇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머릿속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지정학이라는 학설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람의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당신을 지켜 준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것만 못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말하는 그런 것이 당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그만두십시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를 의지합시다!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이 편안한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상원과 하원이 당신을 조사하고, 탄핵하겠다고 하면 탄핵합니다. 이 땅의 정치는 정말 복잡합니다. 속담에 “개가 개를 물면 털만 한입 가득 묻는다”라고 하듯이, 모두 이익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며 순전히 허튼짓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보고 난 후 한 가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당신은 결국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아니면 사람을 의지합니까?
지정학은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쟁을 성공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이지만, 브레진스키는 중국의 부상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며, 이 시대에 중국에 거듭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중국인들은 이 기회를 우연히 찾아온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중국인들에게 놀라운 뜻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일들은 매우 우연처럼 보입니다. 한 번은 제가 어느 곳에 갔다가 폴이라는 목회자를 만났습니다. 그날 밤 폴 목회자는 잠을 이루지 못해 거실에 나와 앉아 있었고, 저도 마침 잠이 오지 않아 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폴 목회자가 제게 몇 가지를 말했는데, 저는 매우 뜻밖이라고 느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중국이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한 기간이 33년이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 33년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나이가 33세였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중국의 모든 가정이 한 자녀만 두었다면, 그 아이들은 모두 장자가 아닙니까? 그 한 자녀 세대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장자는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니, 그렇다면 중국의 모든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이것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중국인들에게 이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시다니요!
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중국인을 일으키시고, 중국인을 일으키셔서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실 것입니다. 중국 전체가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듣기만 해도 힘이 납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중국인들을 축복하시고, 중국이 이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우뚝 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므로 장자는 모두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이 일을 말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지정학이라는 함정에 절대로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논리 체계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보호하심보다 나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켜 주시는 것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정말 하나님께서 연출하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땅, 종족, 나라, 영웅의 역사이다
한무제가 대단했고 진시황이 대단했다고 말합니다. 후에 청나라 황족은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이었는데, 청나라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중국을 통치했고 중국의 영토도 많이 확장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꽤 자랑스럽게 느끼지만, 사실 당신이 자랑스러워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티베트를 수복하고 대만을 수복한 일 등…… 모두 이런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듣고 나서 꽤 자랑스럽게 느낍니다. 만일 당신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느낀다면, 아마 잘못된 관념에 빠졌을 수 있습니다. 그 관념은 바로 영웅, 곧 용맹하고 이름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논리는 매우 완전한 논리 체계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땅, 종족, 나라, 영웅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이 역사를 통해 사람의 논리만 본다면 문제가 됩니다. 이 역사를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중국은 여전히 남아 있어도 건륭제는 사라졌고, 옹정제도 사라졌으며, 강희제도 사라졌고, 명나라 태조 주원장 주중팔도 사라졌습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라는 말이 그를 칭찬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개는 여호와 앞에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세기》 10:8-9)
사실 사람이 자기 손에 있는 칼로 살아가는 것은 모두 저주받은 것입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뒤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모세가 이것을 기록할 때에는 사실 이미 《창세기》 전체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땅에 강포가 가득한 것이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땅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 땅을 빼앗으면 나도 저 땅을 빼앗고, 내가 당신을 쓰러뜨리고 이 땅을 차지하면, 당신이 다시 나를 쓰러뜨리고 이 땅을 차지합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마치 모두가 아주 진지하게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사람이 지나치게 진지해지면 문제가 됩니다. 이 민족이 저 민족을 정복하고 병합하면, 저 민족이 다시 이 민족을 정복하고 병합합니다. 모두 이런 일입니다. 그러고 나면 어떤 사람들은 영웅이 됩니다. 승자는 영웅이고 패자는 도적이라는 식입니다! 역사는 이런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에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더 이상 사람의 논리를 의지하지 않고, 칼도 의지하지 않고, 총도 의지하지 않고, 말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인류의 역사가 이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많이 읽고 나서 무엇을 얻습니까? 이런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당신은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일이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한무제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진시황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참 비극입니다! 사람이 평생 전쟁 가운데 살다가 나중에 발견하는 것은 모두 헛되고 헛되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일찍 헛됨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모두 사람의 논리 체계일 뿐입니다. 사람의 논리 체계는 영웅을 숭배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웅이 주는 혼란입니다!
영웅이 주는 혼란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창세기》 7:17,21-23)
노아 시대에 영웅들은 홍수에 휩쓸려 갔습니다. 그때 셈은 아직 살아 있지 않았습니까? 홍수를 직접 겪은 사람들도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홍수에 대해 여전히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웅이 주는 혼란입니다! 모세 시대에 이 일을 기록할 때에는 니므롯이 노아보다 더 유명했습니다! 니므롯은 세상의 첫 용사였고,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라는 말이 그를 칭찬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를 높이는 말입니까, 아니면 낮추는 말입니까? 사실 이것은 사람의 혼란이며, 사람들이 영웅에 대해 갖는 혼란입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개는 여호와 앞에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세기》 10:8-9)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에 여호와의 이름까지 덧붙였습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분노를 일으킨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이 이 말을 할 때는 낮추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와! 대단하다. 와, 칭기즈 칸이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했구나! 와, 페르시아 제국, 위대한 제국이구나! 와, 진시황과 한무제…….” 모두 이런 것들입니다. 역사를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수당연의》도 모두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우리는 그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라는 말 앞에서 우리 안에는 혼란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부러워하고 추구하다가 결국 매우 힘들어집니다. 칼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고된 일입니다. 믿기 어렵다면 한번 해 보십시오.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나는 공부의 최고가 되겠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다 오히려 꼴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이런 것들을 숭배합니다.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부모는 묻습니다. “너는 왜 내 동료의 아이만큼 시험을 잘 못 봤니?”
때로는 직장 동료끼리 함께 일하는데, 그 사람의 아이와 당신의 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닙니다. 그 사람의 아이는 1등을 하고 당신의 아이는 꼴찌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말합니다. “다른 아이는 1등인데 왜 너는 꼴찌니?”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저 아이는 얼마나 큰 복을 받았으면 1등을 했을까.” 정말 그렇습니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 일로 인해 많은 혼란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웅이 가져오는 혼란은 매우 큽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특히 실제로는 잘하지 못하면서 늘 잘하고 싶어 한다면, 당신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겠습니까?
아마 지금도 매우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벌 이야기를 들으면 남의 첩이라도 되고 싶어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첩이 될 기회조차 없습니다. 이 제도가 너무 나쁩니다. 일부일처제가 너무 나쁩니다. 그 자리는 그의 아내가 차지하고 있어서 자신에게는 자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생각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이런 일에 대해 아주 깊은 혼란을 품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제 동창 중 한 명은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왜 결혼하지 않았을까요?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모두 아내가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아내가 없더라도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일처제를 미워했습니다! 그녀는 자주 친구 관계망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자신이 장차 황제가 되면 일부일처제를 바꾸어 일부다처제로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듣기에는 꽤 괴상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여자인데 왜 일부다처제를 말할까요? 제 생각에는 바로 이 문제 때문입니다.
그녀가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머리가 아주 좋고 계산도 아주 분명합니다! 왜 일부다처제일까요? 세상에 못된 남자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영웅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영웅이 많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곰 같은 남자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못된 남자나 곰 같은 남자에게 시집가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자매들이 못된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은 정말 비극입니다. 이것이 영웅에 대한 혼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가운데 살아가며 우리의 모든 감정을 하나님께 쏟아붓는다면, 정말 강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추구하는 것은 세상의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을 아는 것이며, 이 세상의 일을 꿰뚫어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온 땅에 흩으셨다”는 말은 11장의 내용과 서로 엇갈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종족대로 나라를 세웠더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창세기》 10:32)
때로는 책을 기록할 때 일부러 내용을 나누어 기록해야 합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진 때는 바벨탑 때였습니다. 이 장에서 땅의 나라들을 말하는 것은 11장에 근거하여 그들이 온 땅에 흩어진 일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라. (《창세기》 11:9)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진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어느 날 온 세상이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바벨탑 시대의 일은 적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하나로 통일하여 세상 전체가 마귀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져 각자의 나라가 되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서로 싸우게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땅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로 뭉치면 가장 먼저 대적하는 대상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점차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적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통일하면 온 세상이 적그리스도의 손에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람입니까, 영입니까? 적그리스도는 영입니다. 절대로 적그리스도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후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뒤 거리 위에 놓입니다. 분노가 그들 속으로 들어가면 그들이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로 강림하십니다. 이어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휴거되고, 그 후에는 666, 곧 마귀의 표를 받는 일이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은 거의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온 땅에 흩어진 일이며, 영웅이 주는 혼란입니다. 영웅은 늘 온 세상을 통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찾는 자와 깨닫는 자가 있는지 보신다
땅에는 이렇게 많은 나라가 있고 이렇게 많은 왕좌가 있지만, 각각의 왕좌는 모두 올무가 됩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 힘들고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왕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까? 사실 왕이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나라 전체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보고 나면 깊은 혼란에 빠집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찾는 자가 있는지, 깨닫는 자가 있는지를 보십니다.
제가 이것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12장에 이르면 한 세대 또 한 세대가 지나고 아브라함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한 명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세상의 논리 체계와 영웅이라는 자부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영웅이 된 사람은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영웅이 아닌 사람은 영웅에게 시집가고 싶어 합니다. 남자라면 시집가지는 마십시오. 자매들은 니므롯에게 시집가고 싶어 할지 모르지만 니므롯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한 명 더 있어도 많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당신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면 일부일처제든, 일부다처제든, 일처다부제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한참을 바라보고 수백 년을 보내고 나서야,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 약 400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갑자기 아브라함이 나타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도 한 족장이었고 매우 부유하고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것이 의미 없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모세가 10장을 기록할 때 이 이름들을 언급한 것은 단지 배경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한 세대가 지나고 또 한 세대가 지나갑니다. 10장에서 말하는 땅, 방언, 나라, 종족은 모두 영적인 일입니다. 영적인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사람은 자기 칼을 의지하여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과 맞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계는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이 이 땅을 차지했다가, 또 다른 사람이 저 땅을 차지하는 일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뉴스를 볼 때 어떤 사람은 러시아를 지지하고 어떤 사람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합니다. 마음을 졸이며 러시아가 이겼는지, 우크라이나가 이겼는지 지켜봅니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사람은 우크라이나가 이기기를 바라고, 러시아를 지지하는 사람은 러시아가 이기기를 바랍니다. 사실 별로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면,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구해야 합니다. 결국 그가 어떤 대제이든 언젠가는 모든 일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기 나라를 위해 매우 열심히 싸워도 마지막에는 그의 말대로 되지 않습니다.
히틀러처럼 대단했던 사람도 결국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되지 않고, 영웅의 말대로 되지 않으며, 나라의 말대로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대로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찾는 자가 있는지, 깨닫는 자가 있는지를 보십니다. 400년이 지난 후 하나님을 찾는 아브라함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려면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영웅이 주는 혼란도 꿰뚫어 보지 못하고, 나라라는 것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인류의 역사를 읽고 “칭기즈 칸, 한무제, 진시황, 제갈량은 정말 대단했다!”라고 결론 내린다면, 여전히 감탄하고 있는 당신도 언젠가는 그들과 비슷한 처지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혼란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시다.
아마 여러분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칭기즈 칸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한무제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그런 상태에 있으면 자신의 기업을 어떻게 더 크고 강하게 만들지, 어떻게 다른 사람의 고객을 빼앗아 올지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땅을 당신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동떨어진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경계를 다스리시므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아무 좋은 것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식을 갖추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무지는 매우 무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지식으로 일을 분명히 이해하지 않고 니므롯이 좋다고 생각하면 끝입니다. 니므롯이 되지 못했더라도 저주를 받게 됩니다! 무지한 사람이 되지 말고 무지에서 벗어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10장 성경 본문
10: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10: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10:3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10:4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다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10:5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10: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10: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10: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10: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개는 여호와 앞에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10 그의 나라의 시작은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였으며
10:11 그가 그 땅에서 나와 앗수르로 가서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0: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축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10: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0: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으니 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10:15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10:16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10:17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10:18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족속의 족속들이 흩어져 나갔더라
10:19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로 가는 길을 따라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으로 가는 길을 따라 라사까지였더라
10:20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종족과 언어와 지역과 나라대로였더라
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10: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10:23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10:24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았으니 하나의 이름은 벨렉이라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10: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웨스와 예라와
10: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10: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10: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10:30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동쪽 산까지였더라
10:31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종족과 언어와 지역과 나라대로였더라
10:32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종족대로 나라를 세웠더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