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누가복음》 2장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지혜와 키가 함께 자라남》입니다. 이것은 2장의 마지막 절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2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예수님의 어린 시절 성장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았을까요? 누가는 자세히 조사하고 사람들이 서로 전해 준 이야기를 통해 소년 예수님의 성장 과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가 정말 근거 없는 소문인지 아닌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누가가 다른 사람에게 들은 대로 바로 기록했다면, 그다지 타당한 방법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누가는 사도 바울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능력과 행하신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직접 목격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성경》의 기록을 떠올리며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록한 것입니다.
저는 이 장의 주제를 ‘지혜와 키가 함께 자라남’으로 정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며, 우리에게는 성장에 대한 관념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은 분이지만, 성육신하신 것이 손오공처럼 몸을 한 번 흔들더니 갑자기 튀어나온 것과 같지는 않습니다. 예수님도 사실 우리와 똑같이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나 한 아기로부터 열몇 살, 스무몇 살까지 점차 자라나셨고, 그러다가 서른몇 살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러 나오셨습니다. 사람이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돌 틈에서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여 나온 것이라면, 아마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왜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지혜와 키가 함께 자라가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닮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일들을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함께 이기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요즘 저는 깨달음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특별히 분명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지혜와 키는 깨달음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장하신 과정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에게서 USB를 하나 받아 뇌에 꽂고 모든 정보를 복사하여 붙여 넣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을 사랑하셨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탐구하심으로 지혜와 키도 한 걸음씩 자라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살이 되셨을 때 이미 신동이 되셨는데, 그것은 끊임없이 배우는 가운데 얻어진 것이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 잘못된 생각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지혜와 능력이 가득해지고, 더 이상 배울 필요도 없고 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USB의 정보를 뇌에 복사하여 붙여 넣고, 다리를 꼬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가능할까요?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기한 탄생 과정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당시 천사와 선지자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갓 태어나셨을 때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 아기일 뿐이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갈릴리의 나사렛에 살고 있었고, 베들레헴과는 약 20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도 두세 시간이 걸리는 거리로,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에서 가장 남쪽까지 가는 거리였습니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간 것은 당시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에 속한 모든 사람은 인구 조사를 받고 호적에 등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은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이 그들의 고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고향에 아는 사람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제 생각에는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는데, 이 과정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날은 여관에 자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고향으로 돌아왔고 외지 사람들까지 한곳에 몰려들어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마리아와 요셉은 임시로 마구간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예수님은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주변에는 책상과 의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근처에 있던 목자들에게 나타나 그들이 평소 고대하던 구주가 태어나셨으며, 지금 구유에 계시니 그것이 표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몇 명의 목자들은 급히 베들레헴으로 달려갔고, 정말로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놀라운 일이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릴 때부터 자라나 지혜와 키가 끊임없이 성장하시는 일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어릴 때부터 자라는 과정은 《봉신연의》에 나오는 것처럼 갑자기 변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확실한 성장 과정입니다. 여러분의 출생이 아무리 신기했다 해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일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후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한 살이 되어 말을 하고, 세 살이 되어 걷고, 네 살이 되어 밥을 먹는 등…… 조금씩 성장해 가셨습니다.
베들레헴의 들판에 목자들이 있어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들이 서로 말하되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들이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라. (《누가복음》 2:8-17)
제 생각에는 이 목자들이 날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것을 고대하며 서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전체가 구주께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전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릴 때 이렇게 신기한 일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것이 앞으로의 성장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기한 일을 경험하셨다 해도 끊임없이 성장하셔야 했습니다. 이 일은 선지자가 말한 예언이 성취된 것이며,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는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맏아들은 모두 여호와께 거룩하게 드려져야 한다
듣는 사람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한 말을 놀랍게 여겼으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여드레가 되어 할례를 행할 때에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더라.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누가복음》 2:18-24)
한번은 베이징 출신의 한 전도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밤에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이 제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는 중국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에는 한 자녀 정책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가정에 자녀가 하나뿐이라면 맏아들은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정책을 어기고 자녀를 더 낳은 가정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산아제한 정책의 관할 아래 있는 독자 가정이었습니다.
중국 전체의 한 세대가 모두 독자이므로 모두 여호와께 거룩하게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조카가 태어난 해에 국가가 막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는데, 조카는 첫 세대 독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중국이 한 자녀 정책을 시행한 기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던 기간과 정확히 같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던 기간이 33년이었고, 중국의 한 자녀 정책도 33년 동안 시행되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신기한 우연의 일치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맏아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두 여호와께 거룩하게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혜와 키가 함께 자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목양하는 과정에서 성장은 핵심입니다. 그래서 지난 기간 동안 저는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는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이야기하다 보면 믿음을 잃게 만들기 쉽고, 믿음을 이야기하다 보면 깨달음을 잃게 만들기 쉽습니다.
믿음은 오직 믿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이 쉽게 맹목적인 믿음에 빠집니다. 맹목적인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깨달음 가운데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알아감으로써 생기는 믿음입니다. 사람이 귀신에게 속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깨달음 가운데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기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맏아들이셨고 주님께 드려지셨지만, 그것이 깨달음 가운데 제대로 성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3500년 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배움을 장려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문맹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맹목적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곳에서는 백성을 우매하게 만드는 정책을 만들기를 좋아하며, 백성이 조금 어리석어야 다스리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백성이 똑똑한 것이 다스리기 쉬울까요, 아니면 어리석은 것이 다스리기 쉬울까요? 《성경》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백성이 지혜롭고 총명해지기를 원했습니다. 마침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혜의 본보기가 되셨고,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마음도 함께 자라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누가복음》 2:25-33) **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시므온을 만난 후에는 이것이 정말 신기한 일이라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시므온은 선지자였고, 그에게는 성령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신기한 탄생도 점차 성장하시는 일을 대신할 수 없었다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누가복음》 2:34-38)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마음에 두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매우 신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릴 때부터 성장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한 걸음씩 착실하게 끊임없이 자라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일에 있어서 예수님은 결코 게으른 분이 아니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의 탄생에도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만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울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웃기를 좋아합니다.
어머니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이불로 저를 감싸 온돌방 아랫목에 눕혀 놓고 곁에서 회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옆에서 매우 조용히 있었고,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아서 아무도 온돌방에 아이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우리 집에는 형제자매가 다섯 명인데, 각자 성격이 달랐습니다. 어머니에게 저 같은 아들이 있었으니 정말 복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거의 폐를 끼치지 않았고, 공부도 꽤 잘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특히 좋아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울든 보채든, 세 살 때 이미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세 살 아이에게서 그의 성격을 볼 수 있고, 성격이 미래를 결정합니다. 여러분은 야곱이 불행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장자가 되어야 했지만 태어나는 순서가 한 걸음 늦었기 때문에 차자가 되었습니다. 차자의 신분이 어떻게 바뀔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은 다른 사람보다 한 걸음 늦게 태어나 원래 차자였는데, 왜 결국 장자가 되었을까요? 야곱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성품이 있었고, 하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성품이 예수님에게도 나타났을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신학적인 문제를 만나시면 계속 탐구하고 연구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렵게 이 세상에 태어났고, 여러분과 저의 출생 배경은 바꿀 수 없지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있을까요? 태어난 환경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이 되기를 갈망하는 것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이런 성품이 있다면 맏아들이 아니더라도 장자의 명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는 열 명의 형이 있었지만, 나중에 하나님께서 요셉을 일으키셨고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이 일의 핵심은 우리가 후천적으로 열심히 배우고 성장하여 지혜와 키가 함께 자라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마음이 함께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우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마음이 함께 자라나셨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2장의 목적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을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를 매우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누가의 신학 체계 안에 아주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지자 시므온과 안나, 베들레헴의 목자들을 통해 이런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셨다 해도, 그것이 예수님께서 점차 성장하시는 일을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일어난 놀라운 일도 사람이 점차 강건해지고 지혜로 충만해지는 일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성장에서 핵심은 우리 안에 있는 태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과 바울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말합니다. 바울은 한 명뿐이고 예수님도 한 분뿐입니다. 이런 태도로 어떻게 예수님을 닮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자신은 이미 이렇다고 여기고, 아버지를 내세워도 이길 수 없고 어머니를 내세워도 이길 수 없으며 무엇을 내세워도 이길 수 없지만 게으름을 겨루면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일 아닙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시고 그분을 의지하는 모든 사람이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요셉과 야곱 같은 성품이 있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성품의 핵심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자신의 책임을 모조리 밀어내고 부모를 탓하고 가정환경을 탓하며 심지어 달과 화성까지 탓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만 탓하지 않는다면 정말 큰일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깨달음 가운데 끊임없이 돌파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갈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점차 성장하셨습니다. 갑자기 스무몇 살의 청년이 되셨다가 사흘 뒤에 서른몇 살의 청년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예수님은 점차 자라나셨고, 몸도 점점 강건해졌으며, 점점 지혜로워지셨습니다. 누가는 한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토론하셨는데, 그때 예수님은 열두 살이셨고 부모님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왜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녀야 했을까요?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발을 한 번 구르면 즉시 중국에서 캐나다로 날아가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우리 사람과 같으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이 자신들을 따라 갈릴리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길을 간 뒤에야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이것은 사흘 후의 일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계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사흘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탐구하고 계셨습니다. 돈을 가지고 계셨을까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고, 날마다 성전에 계셨습니다. 이런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요? 진리를 구하기 위해 먹고 자는 것도 잊은 아이입니다. 여러분도 열두 살이라면 예수님을 본받되, 예수님과 같은 성품을 본받으십시오.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자 다급해졌고, 예수님을 찾자 그분을 책망했습니다.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마땅히 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누가복음》 2:48-50)
우리는 사람이 하늘 아버지의 일을 마음에 두면 반드시 지혜와 키가 자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우리 안에 소 다섯 쌍을 사고, 땅 한 조각을 사고, 집 한 채를 사는 것만 들어 있고 하늘 아버지의 일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지혜로워질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깨달음과 지혜와 키가 끊임없이 자라야 합니다. 이런 성장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도가 우리의 성장을 결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이라면 우리는 모두 갈망하며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처럼 다루기 어려운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다루기 어려운 아이는 집안을 온통 뒤집어 놓습니다. 어떤 사람은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부모가 몹시 애를 태웁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깨달음 가운데 많은 일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서른 살에 자신이 분명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여든 살이 되어서야 알게 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서른 살이라면 서둘러 바꾸어야 합니다. 지난 30여 년을 낭비하고 이것저것 배우며 많은 학위를 얻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학위를 따고, 공무원 시험을 보고, 국영기업에 들어가려는 것은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사람은 자기 안의 깨달음을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사람에게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토론하신 문제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랍게 여겼습니다. 열몇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그런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 읽기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늘부터 우리의 성장을 끊임없이 촉진하여 지혜와 키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이 계속 자라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여러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나쁜 습관을 들여서는 안 됩니다. 마치 몸에 전기가 한 번 통하면 털이 곤두서면서 갑자기 깨닫게 되는 것처럼, 전기가 통하지 않고 털도 곤두서지 않으며 그런 느낌이 없다고 해서 하지 않을 것입니까?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결론
우리는 깨달음 가운데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알아야 하며, 우리가 직면한 일들도 깨달음 가운데 끊임없이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 가운데 온 마음으로 이해하며 결정과 일을 매우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분명하지 않고 흐릿하며 어리둥절하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든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성장하셨듯이 우리도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는 어린양이 되셨고, 우리의 속죄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으며, 우리를 위해 죽고 장사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실 수 있었고, 죽음에서 부활하는 능력을 우리에게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혜와 키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마음도 함께 자라날 것입니다. 깨달음이 없는 믿음은 모두 맹목적인 믿음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일에 더 이상 게으르지 않고 더 이상 미루지 않으며, 깨달음 가운데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