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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에스더 10장 - 하나님께서 에스더에게 지위를 주신 것은 하나님께 쓰임받게 하기 위함이다

2026-05-22 910 以斯帖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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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斯帖记-亚哈随鲁和末底改的功绩
  • 1 亚哈随鲁王使旱地和海岛的人民都进贡。
  • 2 他以权柄能力所行的,并他抬举末底改使他高升的事,岂不都写在玛代和波斯王的历史上吗?
  • 3 犹大人末底改作亚哈随鲁王的宰相,在犹大人中为大,得他众弟兄的喜悦,为本族的人求好处,向他们说和平的话。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오늘 《에스더서》 10장을 살펴보고, 동시에 에스더서 전체를 총정리하고자 합니다. 에스더서 전체의 주제를 포괄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다"입니다. 사실 이 책은 에스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제목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더에게 지위를 주신 것은 하나님께 쓰임받게 하기 위함이다.

메대와 바사 왕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이다

왜 메대와 바사 왕의 역사라고 할까요? 에스더서는 메대와 바사 왕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로마 제국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중국 5천 년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셨을까요? 당연히 하나님이 주관하셨습니다. 다만 역사를 두고 이처럼 신학적인 정리를 해 본 사람이 없을 뿐입니다. 사실 메대와 바사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역사가 다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육지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한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 땅에서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그 지위를 주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셨고, 그는 그 조공을 받았습니다. 조공을 받는 사람의 지위가 높을까요, 조공을 바치는 사람의 지위가 높을까요? 다들 아시겠지만 당연히 조공을 받는 사람의 지위가 높습니다.

역사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높은 지위에 있고, 어떤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지를 기록하지만, 어떠한 지위든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를 높이 세우시고 그를 존귀하게 하신 일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즉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를 높이셨고, 하나님께서 육지와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신 것입니다. 메대와 바사 왕이 존재했던 의미는 모르드개를 높이고, 이 모든 것을 역사서에 기록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모르드개가 높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높아지는 것과 낮아지는 것, 이 모든 일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높아지고, 어떤 사람이 낮아지며, 어떤 사람이 조공을 바치고, 어떤 사람이 조공을 받는지, 이것은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에스더가 왕후의 지위를 이어받았는데, 더 높아질 수 있겠습니까? 더는 높아질 수 없습니다. 더 높아지면 태후가 되는 것인데, 그녀는 왕후가 되었고, 모르드개는 높임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대개 먼저 지위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고,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는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누가 그를 이집트 총리로 만들었습니까?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그가 이집트에서 죽을 때까지 노예로 살게 내버려두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면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이 되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이집트의 총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표현으로 하자면 얼마나 당당하고 멋집니까.

하지만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노예가 되었고, 하나님은 모세를 높이셔서 왕자로 만드셨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다 쫓기는 신세가 되어 광야로 도망쳐 양치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아십니까? 이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높이셔서 그를 기어이 사용하셨습니다. 이렇게 높이시든 저렇게 높이시든,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높임을 받지 못했을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당신의 주권을 나타내셨습니다. 요셉을 이집트 총리로 세우셔서 그가 가문의 축복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또 모세를 일으키셔서 왕자가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은 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일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바사 제국과 바벨론 제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지위를 주시고,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며,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것이 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는 높아짐과 낮아짐의 역사입니다. 평민들의 이야기는 거의 기록되지 않고, 기록되는 것은 다 이러한 고관대작들인데,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두고 함부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다 하나님이 안배하신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존귀하게도 하신다

모르드개가 높임을 받고, 바사 제국의 황제 아하수에로 왕이 육지와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한 것은 다 누구의 역사입니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 말을 누가 했는지 아십니까?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한 말입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사무엘상》 2:7)

한나는 하나님이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존귀하게도 하신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알았습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누가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는데, 에스더의 또 다른 아명은 하닷사였습니다. 하닷사이든 에스더이든 누가 그녀를 왕후로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그녀를 왕후로 만드셨을까요? 바로 이 《에스더서》에서 하만이 이스라엘 민족, 유다 민족을 몰살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 일을 내다보셨고, 아말렉 사람과 유대인이 대대로 원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말렉 사람은 실제 누구입니까? 바로 에서의 후손입니다.

그러면 모르드개가 총리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자기 민족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이시는 것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임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한 사람이 평생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는 것은, 왕후가 되고 나서 갑자기 생각나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변치 못한 처지에 있을 때부터 이미 마음에 그 뜻을 품고 있었기에 훗날 왕후가 된 것입니다.

사람이 비참한 처지에 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결단이 없다면 형편이 좋아지는 순간 다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왜 어떤 사람은 높이시고, 어떤 사람은 높이지 않으실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한 가지 법칙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역사, 여러분의 작은 인생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렇게 지으신 것인지, 아니면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기를 선택한 것인지에는 깊은 이치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많은 경우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될지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으셨고, 여러분이 바른 선택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러나 바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제가 보아온 바로는 바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습니다.

예를 들어 암에 걸렸을 때는 아주 간절히 기도하다가도, 암이 낫고 나면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작은 시험 하나를 주셨는데 이겨내지 못하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겠습니까? 또 다른 작은 시험을 주셨는데 또 이겨내지 못하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겠습니까? 살짝만 시험해도 넘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진지하게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모르드개는 총리가 되고 나서야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에스더도 왕후가 되고 왕후의 지위를 얻고 나서 갑자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설령 그랬다 할지라도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일깨워 주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왕후의 지위를 주신 것이 이때의 싸움을 위함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에스더도 사실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존귀하게도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사실 오늘 오후 사역하는 중에 실제로 보았던 일인데, 우리 공동체의 한 자매가 최근 기도 전쟁을 치른 이야기를 제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떤 자매가 육신의 정욕 가운데 살며 세상을 사랑하고, 두려움과 온갖 문제에 우울증까지 있어서 항우울제까지 복용하고 있었는데, 이 자매가 그 자매를 데리고 매일 오랫동안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인플루언서 매니지먼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플루언서들은 툭하면 감정이 불안정해지고 툭하면 문제가 생겨서 어떻게 손을 써도 골치가 아픕니다. 그런데 최근 축사 사역을 하며 매일 두 시간씩 기도하다 보니, 이 인플루언서들에게 몇 마디만 건네도 문제가 해결되고 감정이 안정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녀가 영계에서 큰 자가 된 것입니다. 귀신이 그녀를 보자마자 도망쳤고,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이 일이 무엇을 말해 줍니까? 사역을 위해 진정으로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사역이 은혜입니까, 아니면 희생입니까? 당연히 은혜입니다. 일이 바쁩니까, 안 바쁩니까? 바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바빠지기만 하면 틀림없이 하나님부터 내려놓습니다. 과거에 아무리 많은 은혜를 경험했더라도 그러면 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드시 하만을 만나게 될 것이고, 틀림없이 하만에게 짓밟히게 될 것입니다. 잘못하면 하만에게 완전히 당하고 맙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러므로 형편이 좋아진 뒤에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려 하지 말고, 지금 비록 가난하고 곤궁할지라도 단단히 마음을 먹으십시오. 종교적인 흉내만 내지 말고, 진정한 결단을 가지십시오. 이미 그러한 결단을 가진 분들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이실 때도 그 결단을 굳게 지키십시오. 즉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사람의 운명일 수도 있고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 타고난 것은 바꾸기 어려워도 사람의 선택은 분명히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우리가 말씀을 읽고 그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존귀하게도 하십니다. 모르드개도 존귀해졌고, 에스더도 존귀해졌습니다.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라, 스룹바벨과 같은 많은 이들도 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존귀하게 하신 것입니다.

영적인 일이 세상의 일을 결정한다

이 전체 이야기는 "영적인 일이 세상의 일을 결정한다"는 개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장에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나 계십니다. 사실 모든 일은 영계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영계에서 작동한다고 말할까요? 유대인들은 누구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반드시 하만 같은 자가 나타나 괴롭힙니다. '요즘 내가 영적 전쟁을 하니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만이 들이닥칩니다. 하만은 반드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으로 하여금 대대로 원수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만이 나타날 것이고, 하만은 반드시 여러분을 멸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누가 멸망할 것인가는 영계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영계에서 여러분이 승리하면 여러분이 하만을 멸하고, 하만이 여러분을 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계에서 여러분이 승리하지 못하면, 하만이 여러분을 깔고 뭉갤 것입니다.

하만이 고릴라처럼 여러분을 깔고 뭉갠다면 견디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수백 근이나 나갈 텐데요. 그러므로 영적인 일이 세상의 일을 결정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가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계의 일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존귀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계의 일 때문입니다. 이처럼 단순한 이치입니다. 사람이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영계의 일이 세상의 일을 결정한다는 논리를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지금 다 잘되고 있어"라고 생각합니다. 다 잘되고 있다지만, 당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어쩌면 하만의 편에 속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만도 그 당시에는 다 잘나갔지만, 결국 그의 결말은 비극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은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다 잘나가는 것 같지만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중에는 안 좋아졌습니다. 단지 언제 안 좋아질지, 언제 여러분이 모 유명 인사처럼 될지 모를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어느 날 쉬XX처럼 될지, 하이난 항공 같은 기업을 차렸다가 어려움을 겪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모르는 일입니다. 영적인 일이 세상의 일을 결정하되, 이 일은 반드시 결말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에스더를 일으키신 것은 에스더를 사용하기 위함이었고, 모르드개를 일으키신 것은 모르드개를 사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제 간증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하나님이 저의 모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 커리어는 로켓을 탄 것처럼 승승장구했습니다. 비록 총리 자리까지는 오르지 못했지만요.

우리 업계 안에서도 참 좋았습니다. 직급도 오르고 연봉도 올랐습니다. 많은 이들이 평생 일해도 큰돈을 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제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 주님을 섬기게 하시려고, 제게 이러한 것들을 넉넉히 채워주시고 부족함 없이 주신 뒤 주님을 섬기게 하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은 영계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이든, 여러분의 선택이든,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열정이든, 이것을 바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쓰임받아 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동참한다면, 여러분은 분명 대단한 자가 될 것이며 부족함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아말렉 사람은 대대로 하나님의 백성과 원수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누구에게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아말렉 사람은 그냥 치려 합니다. 그 하만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못을 했습니까?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 보입니다. 물론 모르드개가 날마다 그와 맞서며 빌미를 조금 제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온 민족을 다 멸할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말렉 사람은 기어이 그렇게 하려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말렉 사람은 대대로 하나님의 백성과 원수가 될까요? 하나님은 왜 아말렉 사람을 만드셨을까요? 여러분의 마음이 빗나갈 때 아말렉 사람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에스더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사이의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스룹바벨은 고레스 왕이 성전을 재건하라고 돌려보냈고,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이 돌려보냈는데, 그 중간에 있던 왕이 바로 이 아하수에로 왕입니다.

이 아하수에로 왕 시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자신들의 안락한 일상을 챙기느라 바빴습니다. 그렇게 자기 삶만 챙기다 보니 하만이 바사 제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몇 년 동안 총리로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을 매우 총애했습니다.

하만이 매우 거대한 프로젝트를 벌였는데, 이 프로젝트를 누가 하게 한 것일까요?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으로 대대로 원수가 되게 하신 것은 다른 사람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만아, 자기 안락한 삶만 추구하는 저 자들을 한번 흔들어 놓아라." 그런데 일이 커져서 유다 민족 전체를 몰살하려 하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자기 삶만 챙긴다고? 그래, 계속 챙겨 보아라."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왜 굳이 하만을 불러들이게 되었을까요? 이전 삶도 괜찮지 않았습니까? 제가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 해도 스룹바벨을 따라 돌아갔던 유대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자기 안락한 삶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한때 뜨거운 열정으로 수많은 구호를 외쳤지만, 돌아가서 일상을 살다 보니 다 잊어버렸습니다.

느헤미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느헤미야가 거기서 애쓰고 또 애써서, 이스라엘 백성이 12년 만에 겨우 정상적인 예배를 회복했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가 왕을 만나러 조정으로 돌아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대제사장부터 아래 사람들까지 다 쓸모없는 자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느헤미야는 자신이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고, 다시 돌아올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성전 안의 방을 세놓고 임대업자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대제사장이 성전을 자기 집 셋방인 줄 알고 그렇게 취급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너무나 마음이 답답했는데, 그 후의 일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말라기 시대에 이르러(말라기와 느헤미야는 거의 동시대입니다), 말라기는 《말라기서》를 써서 하나님의 분노와 실망감을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말라기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400여 년의 침묵기가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일으키시고 사용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다 식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한번 뒤흔드시려 하는데,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없었다면 하만이 유다 민족을 다 멸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말렉 사람이 대대로 이스라엘 사람과 원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아말렉 사람이 오면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낮아짐, 회개, 금식 기도

세상에,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엄청난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에스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궁에 있다고 해서 이 화를 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피할 수 없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수산 성의 모든 유다인이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여전히 자기 안락한 삶을 챙기겠습니까? 안 챙깁니다. 집 인테리어를 하겠습니까? 안 합니다. 아들을 결혼시키겠습니까? 안 시킵니다. 만약 그 며칠 사이에 누가 죽었더라도 장사도 지내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을 것입니다. 어차피 다 죽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말렉 사람이 없으면 이런 절박한 느낌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도 '혹시 하만을 불러들이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만이 오면 참 골치 아프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만이 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저 자기 일상만 챙기며 무엇을 해도 느슨하고 질질 끌며, 번성하지도 못하고 꼴을 갖추지 못합니다. 하루하루 그저 시간이나 때우면서도 자기가 대단한 줄 압니다. 여러분, 견딜 수 있겠습니까?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하만이 오고 나서야 낮아지지 마십시오. 하만이 오기 전에, 아말렉 사람이 오기 전에, 아각 사람이 오기 전에 속히 낮아지고 회개하며 금식 기도하십시오. 때로는 성도들이 자신을 절제하지 못할 때 억압하는 적이라도 나타나야 통제가 되는가 싶기도 합니다. 적의 채찍을 맞아야 비로소 다잡아지는 것입니다. 제 말 몇 마디로야 어찌 그렇게 되겠습니까?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가질 때 반드시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한다

《에스더서》 전체의 한 가지 특징은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에스더가 무엇을 했는지,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무엇을 했는지에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가 어떻게 찾아왔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안락한 삶만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일상만 챙기다가 재앙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에스더가 있었고, 모르드개가 있어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강건하게 일어났습니다. 알아들으시겠습니까? 그렇기에 에스더는 하만의 재산을 물려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목회자님, 저는 너무 가난해서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죽을 마음은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인생을 살겠습니까? 저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에게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이 있다면,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그리 바쁩니까? 오늘 다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자신을 지나치게 분주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 살고 있는 것이며, 머지않아 하만이 찾아올 것입니다. 매일 바빠서 "어휴, 이것 하랴 저것 하랴" 하며 녹초가 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죽기 살기로 일하면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툭하면 하나님을 내려놓는 짓을 결코 하지 마십시오. 헛소리하고 잡담할 시간은 있으면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이해할 시간은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재앙은 반드시 찾아오고 하만은 반드시 옵니다. 이미 어떤 곳에는 하만이 찾아왔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하만이 찾아왔을 때 어떤 사람이 승리할 수 있습니까?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진작부터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여러분의 시간은 이미 구별되어 거룩해졌을 것이며,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떤 이들은 "목회자님, 목회자님 말씀은 소목자님보다 못해요. 소목자님은 공감과 위로를 듬뿍 주시는데 말이죠"라고 말합니다. 만약 저마저 감정적인 위로만 채워준다면 큰일 납니다. 여러분은 제멋대로 날뛸 것입니다.

에스더는 기도를 마치고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왕이 금 규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품고, 날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승리하지 못하겠습니까?

어떤 자매가 제게 말하기를, 우리 공동체에 온 지 얼마 안 된 새 신자가 한 명 있는데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수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로맨스 소설만 읽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다 컸는데도 첫사랑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영적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항우울제를 복용하다 보니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매일 멍하고, 일만 하려고 하면 졸리고, 일을 안 하면 잠이 안 와서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고 합니다. 하만이 닥쳐왔는데도 여전히 이러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이 있다면 우울증은 진작에 나았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살아남는 데만 연연하니 결국 승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본보기는 적고 부정적인 사례는 많습니다.

지혜도 있어야 하고, 말도 잘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지혜는 기본적으로 언어에서 나타납니다. 지혜가 없다면 지혜를 배울 수는 없겠습니까?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해도 말을 정말 할 줄 모른다면 죽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에스더가 얼마나 말을 잘했는지 보십시오.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내가 구할 것이 있고 청할 것이 있나이다.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내가 베푸는 잔치에 오소서." 에스더가 얼마나 훌륭하게 말을 잘 풀어냈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처럼 "어휴 세상에" 소리가 나올 만큼 듣기 싫은 말만 골라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평소에 훈련하지 않고 듣기 싫은 말만 내뱉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동체의 여러 모녀 관계를 보면, 모녀간에 싸우지 않기가 참 힘든 것을 보게 됩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여자 둘이서, 셋도 필요 없이 엄마와 딸 둘이서 티격태격 말다툼을 시작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서로의 아픈 곳을 들추지 않고 지혜롭게 말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일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니 모이기만 하면 이 일로 싸우고 저 일로 싸웁니다. 함께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네 의견엔 동의 못 해", "나도 네 의견에 동의 못 해" 하면서 둘 다 똑같이 굽히지 않습니다. 참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말을 예쁘게 할 줄 안다면 이 지경까지는 안 갈 텐데,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 말을 잘할 줄 모른다면 정말 배우시기를 권면합니다. 지혜는 온전히 사람됨과 처세에서 드러납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제 권면을 들으십시오. 말이 거칠고 듣기 싫은 분들은 고치는 법을 배우십시오. 우리 가운데 산둥 출신의 한 자매가 "목회자님, 저는 목회자님이 말씀하시는 그 방식이 좋은지 모르겠어요. 목회자님처럼 하면 너무 가식적으로 보이고, 저처럼 하는 게 훨씬 솔직하고 진실하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 진실함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덩샤오핑을 만나서 '왜 이렇게 키가 작으세요?'라고 하면 매 맞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때로 '진실한 말'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진실한 말에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꼭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아픈 구석만 골라서 찌릅니다. 자기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대단히 훌륭한 줄 압니다. 고집불통에 트집쟁이입니다. 사람은 지혜가 있어야 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산둥 사람만 그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상담해 본 상하이 사람도 그렇고, 광둥 사람도 그렇고, 허난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런 사례가 정말 많습니다. 집에 며칠 있지도 못하고 대판 싸우고는 기분이 상해서 가방을 싸 들고 나가버립니다. 딸이 엄마 집에 가든, 엄마가 딸 집에 오든 떠나기 전에는 반드시 한바탕 싸웁니다. 안 싸우고 배기겠습니까?

우리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차라리 영악한 것이 미련한 것보다 낫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영악함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멍청하게 입만 열면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댄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5년 동안 말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 과정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5년 동안 만들지 못했습니다. 제 실력이 부족해서 이런 말싸움꾼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자기들이 더 옳다고 우기니,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요즘 위안바오니 더우바오니 하는 AI들이 다 나왔고, 나중에는 카레바오 같은 것도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다 말을 아주 잘합니다. 말을 잘 못하겠거든 AI에게 배우십시오. 한국어로 말하면 AI가 한국어를 가장 잘하고, 영어로 말하면 AI가 영어를 가장 잘합니다. 호주식 억양이 섞여 있어도 AI는 호주식 영어도 기가 막히게 잘 구사합니다.

《에스더서》 강의가 이제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우리 사역자 한 명에게 앞선 9장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도록 했습니다. 세상에, 우리 소목자님이 요약한 것을 보니 87페이지짜리 책 한 권 분량으로 아주 훌륭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소목자님이 얼마나 말을 잘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지혜를 가지십시오. 어리석게 굴지 마십시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저의 이 바람을 알아차리고, 말하는 법을 배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트집 잡는 사람처럼 굴지 말고 듣기 좋게 말하십시오.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말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지혜가 있어야 하며, 지혜는 말에서 드러납니다. 퉁명스럽거나 비꼬는 투로 말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말이 늘 삐딱한데 저는 정말 견디기 힘듭니다. 입만 열면 가시가 돋쳐 있고, 좋은 말도 곱게 하지 못합니다.

남편이 "여보, 내가 맥도날드 햄버거 사 왔어"라고 하면, 아내는 "내가 맥도날드 안 좋아하는 거 몰라?"라고 합니다. 세상에, 남편의 그 따뜻한 정성을 한순간에 꺾어버립니다. 나중에 국수를 사 오면 "왜 이래? 나 이거 안 좋아하는데 왜 굳이 사 와?"라고 합니다. 주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공연히 시비를 걸고 말로써 일과 관계를 다 망쳐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스더에게 배워야 합니다.

승리의 상급은 지극히 풍성하다

방금 부부 이야기를 하니 한 형제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말도 안 해주면서 맞혀보라고 하고, 못 맞히면 얼굴을 붉힙니다"라고 하더군요. 다들 그런 경험이 풍부하실 것입니다.

승리의 상급은 지극히 풍성합니다. 여러분이 승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이는 "목회자님, 저는 왜 이렇게 가난할까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당신이 늘 승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합니다. 또 어떤 이는 "목회자님, 제 몸에는 왜 이렇게 질병이 많을까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당신이 늘 승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합니다. 또 어떤 이는 "목회자님, 제 직장에서는 왜 늘 저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까요?"라고 묻습니다. 이 역시 당신이 승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말하는 법을 배우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승리하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승리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상급까지 주십니다. 여러분이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법을 배웠을 뿐인데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은 다 새롭게 조율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모르드개는 승리한 후에 바사 제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무엇을 얻었습니까? 하만의 재산을 얻었습니다. 하만은 엄청난 부자였는데 그의 가문 전체의 재산이 에스더의 것이 되었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하만이 살던 집은 거의 왕궁과 같았습니다. 집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단순한 사합원 수준이 아니라 커다란 저택과 건물들이 즐비한 거대한 가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승리한 후에 가난하겠습니까? 가난하지 않습니다. 어찌 가난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을 늘 기억하십시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자신의 문제점들을 다 기록해 두고, 자신이 승리한 영역들도 다 기록해 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결점이나 악습이 있다면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것을 다루어 나가십시오. 귀신은 반드시 발아래 밟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승리로 이끄신 이야기들을 다 기록해 두고 수시로 들여다보십시오. 또한 아직 승리하지 못한 영역들도 다 기록하여 영적 견고한 진들을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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