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2019年02月13日分享录音
Q1:请问老师,在治死肉体方面有什么招数?
治死肉体,这是神的灵的工作。我们必须在悟性上清楚,肉体当中的享乐不是什么好事。有些人说:我一直犯罪,我就等到最后一秒钟,赶紧接受主耶稣。但是你算过这账吗?有的人心想,你看那强盗多好啊,那跟耶稣一起钉十字架,享受了一辈子,到了最后,跟主耶稣进了天堂了!大家有这样的困惑吗?他做了一辈子强盗,后来进到监牢里,又被钉了十字架,你觉得他享受啥了?他如果早些年好好信主,不是会享受更多的祝福吗?是不是?
所以弟兄姐妹,我们在悟性上要清楚,做这样的选择回报是非常高的!知道了这一点,剩下就好办了。也就是说,在我们心里清楚我们在干啥。不治死肉体,人会经历很多辛苦;因为肉体这东西很坏。
都有什么招数呢?要常常灵里祷告,让我们灵里头非常的敏锐,魔鬼的谎言来的时候,立刻抵挡;我们里面有魔鬼的谎言,非常软弱的时候,赶紧的靠着圣灵对付掉它。因为引诱你犯罪的是鬼,所以这一章的开头讲的丈夫,就比喻这个世界,我们本来都是属于这个世界,我们都被这个世界所管辖所约束。但是我们死了,我们向着这个世界是死的,这个世界向我们也是死的。那就好办了,我们就跟它没关系了!我们跟他是两个世界的人,一受洗归入耶稣基督的名下,就是归入耶稣基督的死。跟律法,跟这个世界的规律,跟魔鬼已经不能再扯在一起了。
Q2:第1-3节讲什么呢?
我的弟兄们,这样说来,你们籍着基督的身体,在律法上也死了,叫你们归于别人,就是归于那从死里复活的,叫我们结果子给神。
就是叫你们做一个属灵的人,在肉体当中死了,就这个意思。律法在你身上没有果效了。因为律法和罪是相辅相成工作的。
Q3:有个弟兄说,我愿意为主活,但是这个意念不是持续的,有时候遇到什么事就从肉体考虑了怎么办?
以前是每天都一次,后来就变成每个礼拜一次,后来就变成每个月一次,再后来很长时间一次,这就叫做得胜。我们今天仍然要不断的得胜。
Q4:律法是属灵的,定了属肉体人的罪,老师可以举个具体例子吗?保罗说不要靠律法,这两者之间的关系是什么呀?
我们要学会有效性。《旧约》已经很清楚的证明了,以色列人是属肉体的!他们有律法,但是他们也有神。可他们属肉体,最后就怎么样了呢?亡国,亡家!所以以色列人其实很惨的!
就是说,旧约已经证明了,以色列人守不了律法,属肉体的人不能够守住律法的。为什么呢?因为他属肉体,他整个的逻辑体系,就是他活着这套逻辑体系,都是从肉体考虑的。将来我要讲一个,律法是属灵的,定了属肉体的罪。
举个例子:我舅舅是农民,舅母也是农民。他们有两个儿子,后来这两个儿子就结婚生孩子。一个比较穷,一个比较有钱。有一天,我舅舅生病了,那个小儿子就跟他哥哥说:哥,你出五百我才出五百。他哥穷的叮当响,出不来那五百块钱。那为什么要这样呢?因为人认为孝敬父母没有钱重要,这个人就是属肉体的人;因为他爱这些东西超过属灵的律法。我们知道孝敬父母是一条带应许的诫命。那不孝敬父母会带来什么结果呢?会带来咒诅!但是他们也知道孝敬父母比较好,不孝敬父母不好,但因他们是属肉体的人,所以就还照着属肉体的逻辑走。那钱我不能给我爸,后来我这个舅舅就死了。死了以后,我妈妈还觉得挺遗憾的!遗憾什么呢?你看我给他点钱多好!其实我妈妈这个说法也是属肉体的说法。为什么呢?你给他钱他就能活了?也不一定。有很多人有钱也活不下去呀!所以保罗说:不要靠律法。
两个例子是什么意思呢?你是个属肉体的人,你想靠律法靠不了。整个世界已经都证明了,人愿意去做的不去做,不愿意去做的反倒去做!为什么?因为人被鬼辖制后顺服肉体了。这就是以色列人的光景。保罗说要凭着信心靠着耶稣基督,这就是神为我们开辟的信心之路。
Q5:有一个姐妹说,如何提高医治释放的能力?
这是与信心紧密相关的,我们要在信心的里面不断的成长。这也和圣灵充满有关。圣灵充满,神就与我们同在。马可福音16章17-18节说, 信的人必有神迹随着他们,就是奉我的名赶鬼,说新方言,手能拿蛇;若喝了什么毒物,也必不受害;手按病人,病人就必好了。
Q6:为什么有的人有祖先的祝福活得很好,而且正是因为他们靠自己过的很好,就不相信神。神为什么不派魔鬼攻击他,让他相信神呢?
在世上活得好与坏,真的是见仁见智。有的是表面上好,你没有真正了解实情而已,一个属肉体的人是活不好的。
Q7:活着不属于肉体的感受是什么?
这样就会有目标有奔头。第一不怕死,每天会经历神迹奇事,有盼望。在世上活着,没盼望的话很惨的。另外还会在心灵深处有满足感。
Q8:有人问这两句经文:罗马书7章8-9节, 然而罪趁着机会,就藉着诫命叫诸般的贪心在我里头发动,因为没有律法,罪是死的。 我以前没有律法,是活着的;但是诫命来到,罪又活了,我就死了。是什么意思?
这像是我们划了一条分界线,罪会引诱人犯罪,人犯罪,魔鬼就控告他,你的确犯了罪,神也无法为你辩护。罪就是鬼,鬼就是罪。如果我们在律法上死了,鬼就不能说什么了。我们已经和耶稣同死同复活,鬼就不能再控告我们,我们的罪都归在耶稣基督的身上。
Q9:我们知道了很多恶习要去对付,但要是软弱了对付不下去,怎么办?
要常常在圣灵里祷告,你就会越发刚强起来,总有一天你会胜过去。靠着圣灵,不断的在圣灵里祷告,就会发现里面的信心和能力不断的提升,然后就会发现总有一天会胜过去。
Q10:怎样让人的信心建立起来呢?
人的信心是实践出来的,我们可以分享一些神的话,分享一些见证,来建立他的信心,但最终他要相信,因为我们的信心不能取代他的信心,他必须始于信至于信。我今天要告诉我们当中的基督徒,要知道一件事,你要做基督徒就要做得胜的基督徒,就要在万人之上。如果做不得胜的基督徒,做一个软趴趴的基督徒,最后就在万人之下。为什么很多地方的基督徒比普通人还活的不好?它是有原因的,为什么呢?因为这个罪就是这么运作的。
Q11:为什么说神给以色列人的诫命使罪有机可乘?
这么说吧,罪就是魔鬼,因为以色列人体贴肉体,就常常违背诫命,以前没有诫命的时候,罪不能控告他,现在有诫命了,刚好控告他。
Q12:如果有一个人因为疾病来到我们当中很长时间了,做梦都是想得着医治,为了身体得医治附上长时间灵里祷告的代价,这样满脑子都想着疾病得医治,算不算体贴肉体?怎么帮助这样的人?
什么叫体贴肉体?为肉体活着就叫做体贴肉体,如果不为肉体活着,为神而活就是体贴神。很多人满脑子都是为疾病得医治,满脑子都是为自己那点事,希望自己多活几年,就是属肉体的,就是体贴肉体。所以体贴肉体就是死,这人就是今天祷告明天好了,然后又不行了,再祷告好了,反反复复。我经常见过这样的,已经死了好几个了,这几个人都是癌症,我们当中祷告好了又不行了,祷告又好了,这都是很大的神迹了。瘫痪在床两个礼拜不行了带他祷告,吐了很多东西,然后就能起来行走,最后还是属肉体,折腾来折腾去,最后死了。真的是可悲啊。人必须知道体贴肉体就是死,识别善恶也会死。
一定要在悟性上不断的教导,你教导了他不一定认同,他不认同怎么帮助呢?就多遭点罪,谁让他这样呢!人一生的果效由心发出,人心怎样思量,人一生就怎样,所以最后说不好听的就是活该,能帮就帮,不能帮就遭点罪没关系!
Q13:有人会问会不会犯罪了自己还不知道,肉体恶行包括哪些方面?
其实不知道的神会告诉你,所以我们今天不是靠着自己而是靠着神。
肉体的恶行,我们来看经文,加拉太书:
情欲的事都是显而易见的,就如奸淫、污秽、邪荡、拜偶像、邪术、仇恨、争竞、忌恨、恼怒、结党、纷争、异端、嫉妒(有古卷加:凶杀二字)、醉酒、荒宴等类。我从前告诉你们,现在又告诉你们,行这样事的人必不能承受神的国。(加拉太书 5:19-21)
Q14:一直说在悟性上认识神,但是怎样才算是在悟性上认识神呢?
在悟性上认识神,比如说我们在对神的了解到底是什么?有人说神已经不再医治了,那他对神的认识就是神不再医治,他在悟性上实际不是认识神,他以为神是那样的神,但《圣经》上已经把我们的神描述的很清楚,神是医治我们的神。什么叫在悟性上认识神?就是不断的清楚的知道神在我们身上的旨意如何!这是一个挺理论的一个问题,就是认识真理,知道属灵的事怎么运作,知道神喜悦什么样的人。
Q15:当下听了老师的查经就很有能量,不一会就软趴趴了,怎么样才能成为有性格的人呢?
我告诉你属灵的人就是有性格的人,但是属灵的人怎么做呢?就是必须开始知道一件事,知道我们到底信的什么?性格的核心是信心,也就是说信心是很多东西的根基,一个很有信心的人,他一定是一个很有性格的人。一个很有信心的人,遇到事情他不会退缩,就是说我们要不断的塑造我们的信心。其实我也经历一些信心奄奄一息,软趴趴的时候,其实没关系,这很正常,继续往前推进!不要以为自己软趴趴就不行,其实不是这样的。
【2019년 2월 13일 나눔】
문제의 근원
《로마서》 7장은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뒤엉켜 있는지를 그 본질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평생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앞에서부터 뒤까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까지 눈으로 훑어보면, 이 세상 모든 가정에 저마다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사정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바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정입니다. 모두가 필사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그 길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세상에는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문제가 있을까요? 《로마서》 7장은 정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읽고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장이 잘 기록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이해했기 때문에 정말 잘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인간 세상의 모든 문제를 너무나 분명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주제는 ‘사망의 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사람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으면 먹고 입는 것, 거주하고 이동하는 것, 소비하는 것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수많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죽으면 모든 것이 해방됩니다. 제가 죽음에 대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은 참 쉽게 하네요. 만약 당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겠어요?”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닙니까? 죽었으면 죽은 것이지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무슨 아들이냐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도 이런 말이 듣기 좋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사물의 본질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은행에 돼지 1만 마리를 담보로 맡기려고 한다고 해 봅시다. 은행은 담보로 받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돼지는 살아 있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먹이를 줘야 하고, 먹이를 먹은 뒤에는 배설을 하므로 누군가가 이 돼지들을 돌봐야 합니다.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여야 하고 비용이 듭니다. 다시 말해, 숨을 쉬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먹고 마시고 배설해야 하며, 돈으로 부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살아 있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의 로봇과는 다릅니다. 로봇은 스위치를 끄면 작동하지 않고 소비도 없으며, 스위치를 켜면 다시 일할 수 있고 아무런 영향도 없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복잡합니다. 늘 이런저런 번거로운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살아 있다는 것은 빚이고, 어떤 사람에게 살아 있다는 것은 자산입니다.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가치를 창출하지만, 어떤 사람은 계속해서 자원을 소모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문제는 일반 사람들의 문제보다 더 많은데, 왜 그럴까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이 세상을 향해 죽었다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세상의 일들이 우리와 크게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제가 관찰한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좀처럼 죽지 못하고, 결국 반쯤 죽고 반쯤 살아 있으니 괴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그리스도인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고, 사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육체를 따르는 사람들도 많은데, 정말 극에 달할 정도로 육체를 따릅니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모두 육체에 속한 일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그런 일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의 육체를 기본적으로 배려하지 않습니다. 제 육체뿐 아니라 모든 가족의 육체도 배려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육체를 배려하지 않으면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로마서》 6:4)
여러분은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처럼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사실 그리스도인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주님을 믿으면서 반쯤 죽고 반쯤 사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돼지를 잡다가 반쯤 죽여 놓고 돼지가 도망가 버리면, 돼지를 잡던 사람은 사방으로 쫓아다니며 다시 붙잡아 와야 합니다. 피는 사방에 흐르고, 돼지도 고통스럽고 사람도 고통스럽습니다. 그 장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좋고 목사가 되는 것도 좋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은 완전히 죽으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죽고 나서야 모든 행동이 새 생명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으니 더 이상 집세를 낼 필요도 없고, 각종 생활비를 낼 필요도 없으며, 집을 살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런 말을 듣기만 해도 사망의 몸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관심을 갖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의 일들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런 일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어떤 일에는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지 자세히 관찰해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대학에서 일할 때 한 형제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오늘 그를 만났는데, 그는 최근 자신이 겪고 있는 고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거의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 마음에는 매우 무거운 부담이 생겼습니다. 사람은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요? 단지 살아 있기 위해서일까요? 살아 있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사실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사람이 그렇게 잘 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을 위해 살아가고 있으며, 제 자신은 잘 살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살아 있기 위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살아 있기 위해 산다면 먹고 마시는 일에 매달리게 되고, 결국 직장과 수입, 자녀와 가정의 일에 끝없이 얽매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묻습니다. “당신에게는 그런 얽매임이 없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런 일들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영적인 높이가 다르면 사람의 관점과 생각도 달라집니다. 저는 세상에 속한 이런 일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누가 죽고 싶으면 죽고, 누가 살고 싶으면 살고, 누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게 두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일들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제 평생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부르심과 사명을 살아 내는 것이며, 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살 만큼 살아서 이제 지친 사람입니다. 세상의 집과 자동차와 돈 같은 것들은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제 눈에 세상의 일들은 모두 작은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어머니가 죽어 가는데도 그것을 작은 일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귀신이라면 제가 없애 버리겠지만, 죽을 때가 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니 제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게 얽매여 있는 것은 매우 적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며,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형통하게 살아갑니다. 저를 보십시오. 저는 돈을 사랑하지 않지만 돈이 있고, 잘 살려고 애쓰지 않지만 잘 살고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저는 육체에 속한 악한 습관을 죽이기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육체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사망의 몸을 해결하지 못하면 문제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결국 뒤엉킨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음의 본질을 붙들기
많은 그리스도인이 왜 잘 살지 못할까요? 육체에 속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육체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육체에 속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관심을 갖는 일들을 보면 됩니다. 어떤 일이 여러분을 쉽게 무너뜨리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면 여러분이 육체에 속한 그리스도인인지 영적인 그리스도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영광스러운 생명을 가지신 것처럼, 우리의 모든 행동도 새 생명의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영적인 세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조금도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마귀는 사람의 사망의 몸을 통해 역사합니다. 마귀는 영적인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에 속한 사람에게서는 죄가 계속해서 타락시키는 일을 합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실제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입으로만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큰 쓸모가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 낸 결과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모두 세상의 일이라면, 우리의 영적인 시야가 충분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붙들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잘 사는 근원을 찾는다면 잘못 살 수 없습니다. 잘 사는 근원은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사람이란 무엇이고 육체에 속한 사람이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부르심입니다. 우리를 중요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러한 일들뿐이며, 그 밖의 일들은 더 이상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나 죽으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죽음도 중요하지 않고 삶도 중요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강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세히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사물의 본질을 붙들어야 합니다. 사물의 본질을 붙들면 어떻게 잘 살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으로 풍성한 사람은 반드시 몸도 건강하고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풍성한지 알려면 그 사람의 몸이 건강한지 보십시오. 재정적으로 풍성한지 보십시오. 인간관계가 좋은지 보십시오. 그러므로 사망의 몸을 다룬다는 것은 사람 안에 있는 육체에 속한 악한 습관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주님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었습니까?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은 반쯤 죽어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로마서》 7:5)
우리가 육체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육체에 속한 일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율법이 어떻고 규칙이 어떻고 하는 것은 전혀 지키지 않습니다. 지킬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두 육체에 속한 것들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안에 육체에 속한 논리 체계와 악한 습관이 있기 때문에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사실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로마서》 7:14)
우리는 율법이 영적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율법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육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율법이 여러분을 정죄하여 죽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육체에 속한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모두 육체에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에 속한 사람이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육체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다루시고, 마귀도 다루며, 율법도 다룹니다. 그러니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삶이 매우 비참하다면 제가 한 가지 권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 영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안 됩니다! 우리 집에는 가정이 있고, 위로는 연로한 부모가 있고 아래로는 어린 자녀가 있으며, 아직 해결하지 못한 생존의 문제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계속 살아가십시오. 사람이 비참하게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돌이키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살아 있는 동안의 일들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세상의 일들이 여러분이 살아가는 목적이라면, 여러분은 육체에 속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모두 율법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옛 것으로 아니할지라.(《로마서》 7:6)
왜 살아 있다는 것이 목숨을 건 문제가 될까요? 오늘 가슴을 두드리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왜 살아 있는가? 이 세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사는가? 설마 살아 있는 목적이 이런 작은 일들뿐입니까? 매일 먹고 마시고, 먹은 뒤에는 배설하고, 배설한 뒤에는 또 먹고, 다시 먹고 배설하기 위해 돈을 벌며, 동물원의 동물과 다를 것이 없는 삶 말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아 있는 영광스러운 모습입니까? 이것이 바로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갑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에 대해서는 반드시 깨달음에 있어서 철저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것이 목적이 되어 살아간다면 매우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이것은 여러분 자신의 선택이 아닙니까? 그래서 《로마서》 6장은 모든 것이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며칠 전 저는 한 자매를 데리고 한 목회자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 자매는 독신이었고, 자신이 독신으로 살겠다는 것을 분명히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매우 즐겁고 밝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회자가 이 자매에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늙으면 어떻게 부양받으려고 합니까?” 아, 정말 답답합니다! 여러분, 이 목회자의 생각이 전부 육체에 속한 것임을 보십시오. 이런 사람이 목회자를 잘할 수 있겠습니까? 육체에 속한 사람은 모두 사람을 육체에 속한 생각으로 이끕니다. 결혼하면 노후 문제가 해결됩니까? 사람은 육체를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지만, 그 근본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 자매의 아이는 여섯 살 전까지는 매우 똑똑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여섯 살이 되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학습장애와 지적 발달 지연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그런 결과를 보고 매우 괴로워했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이후 사방으로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 일의 본질을 붙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우리는 이 아이를 데리고 기도했고, 아이에게서 많은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벌써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이 자매는 원래 아이 때문에 교회에 왔습니다. 이후 여러 번 교회를 떠나려고 했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감히 떠날 수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매우 괴로워했습니다. 왜 괴로웠을까요? 육체에 속한 자신과 교회에 머무는 선택이 끊임없이 싸웠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 육체를 위한 것이라면 교회에 머무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마치 호랑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육체에 속한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고통받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매일 이 이야기를 하니 여러분은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을 듣게 되고, 집에 돌아가서 괴로워할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괴로웠고, 이제 말했기 때문에 더욱 괴로울 것입니다. 육체에 속한 사람은 현세의 수십 년을 위해 살아가며, 관심을 갖는 것은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인생은 대략 칠십에서 팔십 년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남은 날이 줄어듭니다. 삶이 계속 뒤엉키고, 그렇게 엉킨 채 지내다가 암에 걸리면 정말 큰일입니다. 너무나 고생스럽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큰 소리로 간증을 나누고 있습니다. 때로 제 간증이 육체에 속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정말 형통하구나! 오늘은 집을 사고 내일은 자동차를 사며 아주 잘 사는구나.”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사람을 현혹하는 말이 아닙니다. 잘 살고 싶다면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자신이 왜 살아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이 자매는 아이를 위해 살았지만, 점차 안에 있는 관념이 변화되었고, 더 이상 우리 가운데서 괴로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율법 조문의 옛 방식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철저히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도대체 무엇을 하러 왔는가? 설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을 날만 기다리기 위해서입니까? 이 세상은 사실 비참한 세상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알고 있습니까? 사람이 비참하게 사는 이유를 정말 알고 있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영계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영계를 볼 수 없지만 영계는 여러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한 번 찌르고 한 번 때리면 여러분은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은 육체를 통해 역사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잘 살지 못하는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죽이고 더 이상 육체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잘 살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세례를 받고 주님께 속하게 되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육체를 위해 살아가면 육체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말씀을 읽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마치 이 푼짜리 찻주전자와 같습니다. 입만 멀쩡하고 나머지는 모두 깨진 것처럼, 입으로만 말하는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는 어설프게 아는 그리스도인이 매우 많습니다. 율법이 있는데도 여전히 고의로 어깁니다. 마음으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는 믿음을 근거로 하며,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믿지 못하는 것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조금 믿기 시작했다면 이어서 두 가지, 세 가지, 많은 것을 믿게 됩니다. 많은 것을 믿게 되면 더 많은 것을 믿게 되고, 계속해서 믿어 가게 됩니다. 사람은 영적인 길에서 끊임없이 달려가며, 진리에 대한 인식이 깊어질수록 계속해서 자신의 육체를 처리하게 됩니다. 오늘 알아야 할 것은 죄가 육체에 속한 것들을 통해 역사하며, 여러분을 유혹하여 육체에 속한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에 속한 말은 매우 현실적으로 들립니다. “살아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려면 하나님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돈이 없으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벌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 악순환에 빠져 매우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됩니다! 가족이 병들어 돈이 필요한 것을 보면, 돈을 벌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고, 돈 또한 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영적으로 풍성하면 재정도 반드시 풍성해집니다. 육체에 속한 것에 따라 선택하면 귀신도 여러분을 괴롭히고 하나님도 여러분을 다루시니, 얼마나 비참하게 살게 되겠습니까! 육체를 따르는 것은 죽음이고, 육체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영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자신의 육체를 처리해야 합니다. 이것은 영과 육체가 서로 싸우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바울은 마음 깊은 곳에서 탄식했습니다. 우리의 영과 육체가 서로 싸울 때 바울은 우리에게 답을 주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로마서》 7:25)
오늘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반드시 일어나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마귀와 싸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안에 있는 육체의 정욕과 악한 욕망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싸워 이기면 약속을 얻게 됩니다. 한 번 이기면 약속을 하나 얻고, 두 번 이기면 약속을 두 개 얻습니다······ 계속 승리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해서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평생 육체의 정욕과 악한 욕망과 싸웁니다. 악한 영이 우리의 육체의 정욕과 악한 욕망을 통해 사람을 타락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라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귀신이 돌아오는 것도 쉽습니다! 귀신은 사람의 육체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육체에 속한 사람이라면 귀신은 쫓아내도 다시 돌아오고, 또 쫓아내도 다시 돌아오며 계속해서 괴롭힙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형제자매를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시키기로 결단했습니다.
영적인 일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는 정도가 우리의 삶의 상태를 결정합니다. 우리는 육체를 따라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에게 빚진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의 죄를 이미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나는 10%는 영적이고 90%는 육체적인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말한다면 괜찮습니다. 마음속으로 자신이 주님을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 많이 있으므로 계속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주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는 여러분에게 충분합니다. 그러면 10%의 영적인 상태에서 20%로, 20%에서 30%로 변화될 것입니다······ 마침내 온전히 거룩하게 되어 주 예수님처럼 될 것입니다. 이 싸움, 또 이 싸움은 정말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싸우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싸우지 않는 것은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우리가 싸우고 섬기는 것은 승리를 위한 고생이지만, 섬기지 않는 목회자들은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척하는 것의 결과는 매우 두렵습니다.
자신을 진실하게 대하고 영적으로 승리하기
요 며칠 우리 형제자매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밤낮없이 섬기고 있습니다. 24시간을 모두 헌신하고 싶어 할 정도이니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그 안에 있는 비밀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인 사람이 얼마나 기쁘게 살아가는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많은 목회자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강단 위와 강단 아래의 모습이 매우 다릅니다. 어떤 때는 강단 위에서 매우 흥분한 감정을 보이며 청중을 현혹하지만, 강단 아래에서는 매우 괴로워합니다. 이런 현상을 보며 저는 매우 의아했습니다. “목회자가 어떻게 이런 이중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목회자들 가운데서 저는 그들과 매우 다릅니다. 저는 비록 매우 피곤하지만, 제가 하는 목양 사역을 매우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싸우기를 원합니다. 물러서고 싶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이것은 정말 큰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선택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가 이런 상태에 이른 것은 지난 여러 해 동안 우리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오늘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까, 아니면 육체에 속한 사람이 될 것입니까? 자신의 사망의 몸을 따라 살 것입니까, 아니면 이 사망의 몸을 죽이기를 원합니까? 육체에 속한 악한 습관을 계속해서 깨뜨리고, 승리할 때까지 계속 싸울 수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이 사망의 육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평생 살아가며 필요한 것이 영적인 필요이든 육체적인 필요이든,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의심할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여러분, 우리 가운데 누가 구걸하며 살고 있습니까? 누가 형통하지 않게 살고 있습니까? 그러나 절대로 어리석은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내가 돈을 열심히 벌지 않으면 당신이 돈을 줄 겁니까?”라고 말한다면 저는 돈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 땅과 땅 위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분을 의지하면서 가난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분을 의지하는데도 가난하게 산다면 주 예수님께 가서 따져 보십시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사람이 평생 필요한 모든 것이 만족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오늘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한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이 아이는 여섯 살에 학교에 들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공부를 엉망으로 했고, 10 이하의 덧셈과 뺄셈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의지하여 바로잡았습니다. 이 아이는 지금 정말 대단합니다! 다른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면 모든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주 예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알리고 싶습니다. 주 예수님이 아니셨다면 제 어머니는 지금 알츠하이머를 앓는 노인이 되어 늘 정신이 흐릿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며, 화장실에 가는 것도 모르고, 대변을 사방에 보았을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 자매의 외할아버지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그 자매의 외할아버지는 매우 건강하고 매우 기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실제 경험을 통해 우리는 모든 필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 하나를 철저히 해결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정병이 된다면 의료 문제도 해결됩니다. 몸이 모두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평생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먹고 입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겠습니까? 그러나 한 번의 병은 십만 위안, 심지어 이십만 위안이 들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십만 위안, 이십만 위안이 몇 번이나 있습니까! 정말 고생스럽습니다. 돈은 한 푼 한 푼 벌지만 병원에서는 한 번에 만 위안씩 씁니다. 여러분이 의사를 의지하기 원한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행운을 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주 예수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그분은 이런 일들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서도 제가 선택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예수님을 얻는 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립보서》 3:8) 이 말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며, 절대로 허풍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주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모든 필요가 주님 안에서 만족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말입니다. 죽은 후의 일까지도 만족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배설물처럼 여기실 것입니다. 그러면 “내 육체가 연약한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겠습니까? 제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체는 죄의 법을 따르는 것과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다 해도 괜찮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시고 힘이 되어 주셔서 육체에 속한 악한 습관을 죽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교회들이 육체에 속한 정욕을 죽일 필요가 없다고 설교하는 말을 절대로 믿지 마십시오. 《로마서》를 잘 읽어 보십시오. 죽이지 않고 되겠습니까? 성경에 분명히 기록된 말씀을 우리 모두 읽는데, 어떻게 그렇게 다르게 읽을 수 있습니까?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육체를 죽일 필요가 없다고 계속 주장하겠습니까? 계속해서 주 예수님을 의지하여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는 것은 영적인 싸움입니다.
이 싸움의 과정에서 제가 연약해진다 해도 주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죄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이것이 좋은 소식이 아닙니까?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율법 조문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언젠가 여러분은 주 예수님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평생 주님을 의지하여 승리했고,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였습니다.” 여러분이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여러분을 징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마귀의 궤계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도리어 한다면, 그것은 여러분 안에 있는 죄가 행하는 것이며 귀신이 행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내면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하기를 원하는 것은 하고, 하기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나아온 모든 형제자매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의지하여 귀신을 제거하고, 깨달음에 있어서 지혜로운 선택을 하십시오. 이제부터 나는 주 예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제부터 주 예수님을 의지하여 승리하는 정병이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더 이상 육체를 위해 살지 않고 영생 가운데 살며,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겠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와서 칠십 년, 팔십 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조금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 칠십 년, 팔십 년을 영생의 일부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부가 되게 하겠습니다.
결론
오늘 마음속에서 선택을 시작하십시오. “하나님, 저를 사랑하시는 주 예수님을 의지하여 이제부터 영적인 사람이 되고, 승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주님을 의지하여 승리하며, 제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