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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창세기 26장 -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축복하시는 모습과 본보기!

2023-02-22 77,586 创世记 创世记26章 创世记第二十六章 蒙福 命定 机会 危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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创世记26章-以撒住在基拉耳
  • 1 在亚伯拉罕的日子,那地有一次饥荒;这时又有饥荒,以撒就往基拉耳去,到非利士人的王亚比米勒那里。
  • 2 耶和华向以撒显现,说:“你不要下埃及去,要住在我所指示你的地。
  • 3 你寄居在这地,我必与你同在,赐福给你,因为我要将这些地都赐给你和你的后裔。我必坚定我向你父亚伯拉罕所起的誓。
  • 4 我要加增你的后裔,像天上的星那样多,又要将这些地都赐给你的后裔。并且地上万国必因你的后裔得福;
  • 5 都因亚伯拉罕听从我的话,遵守我的吩咐和我的命令、律例、法度。”
  • 6 以撒就住在基拉耳。
  • 7 那地方的人问到他的妻子,他便说:“那是我的妹子。”原来他怕说:“是我的妻子”;他心里想:“恐怕这地方的人为利百加的缘故杀我”,因为她容貌俊美。
  • 8 他在那里住了许久。有一天,非利士人的王亚比米勒从窗户里往外观看,见以撒和他的妻子利百加戏玩。
  • 9 亚比米勒召了以撒来,对他说:“她实在是你的妻子,你怎么说她是你的妹子?”以撒说:“我心里想,恐怕我因她而死。”
  • 10 亚比米勒说:“你向我们做的是什么事呢?民中险些有人和你的妻同寝,把我们陷在罪里。”
  • 11 于是亚比米勒晓谕众民说:“凡沾着这个人,或是他妻子的,定要把他治死。”
  • 12 以撒在那地耕种,那一年有百倍的收成。耶和华赐福给他,
  • 13 他就昌大,日增月盛,成了大富户。
  • 14 他有羊群牛群,又有许多仆人,非利士人就嫉妒他。
  • 15 当他父亲亚伯拉罕在世的日子,他父亲的仆人所挖的井,非利士人全都塞住,填满了土。
  • 16 亚比米勒对以撒说:“你离开我们去吧。因为你比我们强盛得多。”
  • 17 以撒就离开那里,在基拉耳谷支搭帐棚,住在那里。
  • 18 当他父亲亚伯拉罕在世之日所挖的水井因非利士人在亚伯拉罕死后塞住了,以撒就重新挖出来,仍照他父亲所叫的叫那些井的名字。
  • 19 以撒的仆人在谷中挖井,便得了一口活水井。
  • 20 基拉耳的牧人与以撒的牧人争竞,说:“这水是我们的。”以撒就给那井起名叫埃色(就是相争的意思),因为他们和他相争。
  • 21 以撒的仆人又挖了一口井,他们又为这井争竞,因此以撒给这井起名叫西提拿(就是为敌的意思)。
  • 22 以撒离开那里,又挖了一口井,他们不为这井争竞了,他就给那井起名叫利河伯(就是宽阔的意思)。他说:“耶和华现在给我们宽阔之地,我们必在这地昌盛。”
  • 23 以撒从那里上别是巴去。
  • 24 当夜耶和华向他显现,说:“我是你父亲亚伯拉罕的 神,不要惧怕!因为我与你同在,要赐福给你,并要为我仆人亚伯拉罕的缘故,使你的后裔繁多。”
  • 25 以撒就在那里筑了一座坛,求告耶和华的名,并且支搭帐棚;他的仆人便在那里挖了一口井。
  • 26 亚比米勒,同他的朋友亚户撒和他的军长非各,从基拉耳来见以撒。
  • 27 以撒对他们说:“你们既然恨我,打发我走了,为什么到我这里来呢?”
  • 28 他们说:“我们明明地看见耶和华与你同在,便说,不如我们两下彼此起誓,彼此立约,
  • 29 使你不害我们,正如我们未曾害你,一味地厚待你,并且打发你平平安安地走。你是蒙耶和华赐福的了。”
  • 30 以撒就为他们设摆筵席,他们便吃了喝了。
  • 31 他们清早起来彼此起誓。以撒打发他们走,他们就平平安安地离开他走了。
  • 32 那一天,以撒的仆人来,将挖井的事告诉他说:“我们得了水了。”
  • 33 他就给那井起名叫示巴;因此那城叫做别是巴,直到今日。
  • 34 以扫四十岁的时候娶了赫人比利的女儿犹滴,与赫人以伦的女儿巴实抹为妻。
  • 35 她们常使以撒和利百加心里愁烦。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26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정말 좋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과 복 주심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 줍니다. 제목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복 주시는 모습과 본보기》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복 주시는 본보기가 되고 싶다면 이삭을 배우십시오. 이삭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성경》에는 이삭에 관한 이야기가 그리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실 이야기가 많지 않은 것이 참 좋습니다.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굴곡과 파란이 많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일생은 매우 평탄하여 파란만장한 고생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들 야곱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여러분이 그다지 고생하며 휘둘리고 싶지 않다면 이삭을 배우십시오. 그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복을 주시는 본보기입니다. 왜 이삭은 평생을 이렇게 잘 살았을까요? 바로 젊었을 때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고, 훗날 축복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기근 중에 백 배의 결실을 얻다

경제 위기를 만났을 때, 남들이 위기를 겪는다고 우리도 똑같이 위기를 겪는다면 그것은 축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남들은 위기를 겪는데 우리는 백 배의 결실을 얻는다면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기근을 만났을 때, 이삭의 땅에서는 백 배의 수확이 났습니다. 이웃의 밭과는 겨우 고랑 하나 차이였는데, 이삭 쪽에는 비가 내리고 남의 밭 쪽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겪은 일은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창세기》 26:12-13)

과거 아브라함 때를 돌아보면,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곳에 살 때 기근을 만나 온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애굽에서 올라올 때 큰 재물을 얻었습니다. 이번에 이삭도 기근을 만나자, 아버지 아브라함을 본받아 온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려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바로 이 땅에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창세기》 26:1-6)

남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심어도 자라지 않았는데, 이삭은 무엇을 심든지 자랐을 뿐만 아니라 아주 잘 자랐습니다. 사실 농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대풍년입니다. 풍년이 농부에게 무조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농작물과 과일, 채소가 풍년이 들면 제값을 받지 못해 헐값이 되고, 애써 지은 농작물이 똥값이 되어 버립니다. 봄이 되면 농부들은 도박을 하듯 무엇을 심어야 할지 고민합니다. 수박을 심었는데 모두가 다 수박을 심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수박 값이 폭락해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귀해야 대접을 받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남들은 기근인데 그만 풍년을 맞이했습니다. 기근이 이삭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가 되어 백 배의 수확을 거두었고, 그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수확은 대개 30배, 60배인데, 100배는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복을 주시는 본보기입니다. 평생 하는 일마다 재수가 없고 실패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사람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제가 요즘 여러분에게 늘 공부하고 성장하며 깨달음의 지각(悟性)이 열려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공부하고 머리가 좋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결정적인 분별력과 지각이 없으면 망하게 되는데, 그것은 복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을 해 나가면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축복을 다 까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지각은 밝은데 자꾸 안 좋은 일만 생긴다면 그 역시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지각을 훈련하는 까닭은, 여러분이 이미 복을 받은 사람이고 더 이상 불운한 인생이 아니므로, 이제 일을 제대로 해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하는 일마다 꼬이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훈련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는 왜 이렇게 불운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축복을 스스로 날려 버린 탓이 아닙니까? 사람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축복을 받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이 일을 하다가 하나님을 구석으로 밀쳐 버리고, 바빠지면 하나님부터 제쳐 둡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망하게 되어 있으니 두고 보십시오. 일 년 내내 바쁘게 일하고 연말에 천만 위안을 손해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쁘게 돈만 까먹는 것, 그것이 바로 불운입니다.

여러분, 본말을 전도하지 마십시오. 최근에 지각과 분별력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만 좇다가, 정작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축복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각이 열려서 불운을 좇아가겠다는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도 참으로 답답합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지만, 아직 자신을 온전히 바칠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드릴 기회가 왔을 때, 믿음으로 선포하건대 여러분이 이삭과 같이 행한다면 실로 대단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경제 위기를 만난다 해도, 여러분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사람은 평생 대략 서너 번의 경제 위기를 겪습니다. 경제 위기 때에는 여러분이 어떤 주식을 사도 오르게 됩니다. 이때는 손에 돈이 얼마나 있느냐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데 어디서 돈이 나오겠습니까? 서너 번의 경제 위기를 겪는다면 서너 번의 기회를 만나게 될 텐데, 그 기회를 매번 다 붙잡는다면 여러분은 부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어떤 이는 부동산 주기가 18년이라고 계산합니다. 평생 두세 번은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것을 모두 붙잡는다면 부유한 사람이 되어 돈 걱정 없이 살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남들이 위기일 때 나도 덩달아 위기에 빠진다는 점이며, 이것이 바로 불운입니다. 꽤 유능해 보이는 사람도 일하다 보면 돈을 날립니다. 이것도 기회 같고 저것도 기회 같아 보이지만, 결국 기회는 못 잡고 위기만 붙잡아 평생 비극으로 끝나고 맙니다!

사람의 똑똑함이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축복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삭은 겉보기에 좀 우직하고 어리숙해 보일지 몰라도, 뼛속 깊이 영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귀하게 여긴 것이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자신을 제물로 바치라 하시거나 재물을 드리라 하신다면, 이삭은 또다시 기꺼이 바쳤을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복 주시는 본보기를 보면, 기근 중에도 백 배의 결실을 얻습니다. 이삭은 기근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기근 속에서 기회를 만나 극히 부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삭은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돈을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삭의 성품이 30%만 있어도, 그는 이삭이 가졌던 재산의 30%는 갖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뼛속에 이삭과 같은 성품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제 이삭의 이러한 성품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창세기》 26:2-3)

여러분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끈끈한지 아닌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역을 하다 보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솔직하게 다 말해 주고 싶지만 결국 꿀꺽 삼키고 맙니다. 말하기 조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말해 줘도 듣지 않기 일쑤인데, 그 사람 속에 이삭과 같은 끈기 있는 중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드려야 할 때면 뒤로 빠지고, 위기가 오면 여지없이 무너지며, 위기가 없을 때도 스스로 위기를 만들고, 남들이 위기일 때는 더 큰 위기에 빠집니다.

이삭은 충돌을 피하는 성품을 지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투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호전적일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손의 칼을 의지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시기하지 않고, 비교하거나 제 살 깎아 먹는 경쟁을 하지 않으며, 매사에 충돌을 피합니다. 예전에 설교를 들을 때 많은 목사님들이 아브라함과 이삭이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했다고 비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저는 그것이 그들의 장점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툭하면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남과 싸우려 들지 마십시오.

정작 진짜로 싸워야 할 때는 이기지도 못하면서, 실컷 싸우고 나서 처참하게 패하기 십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늘 남과 다투고 겨루어 보려고 합니다. 싸움닭처럼 서로 멱살을 잡고 머리채를 흔들어 댑니다. 집에서 연습 삼아 샌드백을 칠 때는 그럴듯하지만, 진짜 링에 올라가면 상대는 가만히 있는 샌드백이 아닙니다. 진짜 승부에서는 상대방도 반격해 옵니다.

이삭은 충돌을 피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가 리브가를 누이라고 말한 까닭은 사람들과 충돌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한번 충돌이 일어나면 수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삭의 이런 태도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맞느냐고 묻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라면 왜 당당하게 자기 아내라고 말하지 못하고, 빼앗아 갈 테면 와서 한번 붙어 보라고 하지 못했느냐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죽이네 살리네 소리치는 사람은 귀신이 함께하는 사람이며, 조직폭력배 두목 같은 자들입니다.

요즘은 조폭 두목들도 수준이 높아져서 말은 번지르르하게 점잖게 할지 모릅니다. 뼛속에는 여전히 호전성이 남아 있지만, 다투어 봐야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복을 의지하는 사람은 자기 두 손과 칼에 의지해 살지 않으며, 다투고 빼앗고 싸워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기회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단지 사람들이 이렇게 행하는 것이 왜 좋은지 그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제가 종종 꼬리를 내리고 겸손하게 처신하라고 말씀드리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비굴한 것 아니냐고 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귀함과 품격은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들은 양산박의 호걸들처럼 가는 곳마다 말썽을 피우고, 걸핏하면 주먹부터 쥐고 덤벼들다가 결국 파김치가 됩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누이라고 한 것은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옳았고, 잘못된 것은 우리입니다. 우리는 늘 남을 이겨 먹으려고만 하니, 그것이 참으로 문제입니다! “안방 호랑이”, “문턱 앞의 원숭이”, “이불 속의 왕”이라는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보십시오. 이삭이 유약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참된 강인함입니다. 이삭은 집 안에서도 이겨 먹으려 들지 않았고, 안에서만 큰소리치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은, 걸핏하면 남과 다투어 이기려 하다가 축복을 다 날려 버리는 짓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나쁜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남이 시험을 나보다 좀 잘 봤다고 속이 뒤틀리고 화를 내니, 이 얼마나 스스로 문제를 만드는 짓입니까? 여러분, 이삭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다툼을 피하십시오. 다투고 나면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축복을 다 잃어버립니다. 망신스러울 뿐만 아니라 마음도 며칠 동안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이삭의 내면에는 우물이나 기름, 칼이나 몽둥이를 의지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 산다는 확고한 성품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무서운 사람입니다. 진짜 그를 상대하려 해도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겉으로는 양보해도 속은 매우 강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우물은 빼앗아 가도, 하나님의 복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이삭이 기근 중에 백 배의 수확을 거두자, 모든 사람이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 주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복 주심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왜 자기에게는 그런 것이 안 보이냐고 묻지만, 우리 가운데 이러한 축복의 증거는 매우 많습니다. 예컨대 제가 손대는 일마다 번창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이삭을 배우라고 권면합니다. 남들이 우물은 빼앗아 갈 수 있을지언정,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하심은 결코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투지도 빼앗지도 않는데, 남들이 내 것을 빼앗으려 하면 어찌해야 합니까? 이삭을 보십시오. 다투지도 빼앗지도 않고, 리브가를 누이라 하며 남과 부딪히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거기 오래 머물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창세기》 26:8-9)

아비멜렉은 단번에 그들이 남매가 아님을 알아채고 이삭을 추궁했습니다. 이삭은 아비멜렉에게 사실대로 말했는데, 그렇게 한 이유는 남과 다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유익이 있는데, 아내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내는 모두 매우 아름다워 선녀 같았습니다. 이것은 곁가지 이야기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만나든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아비멜렉은 누구도 이삭의 아내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삭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느니라.”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창세기》 26:10-11)

그런데 사람들은 이삭의 아내는 빼앗지 못하자 그의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그 당시의 우물은 오늘날의 유전과 같아서 일상생활에 직결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물은 양과 소를 치거나 밭에 물을 대는 데 절대적이었습니다. 기름은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물은 반드시 마셔야 하며, 물이 없으면 죽습니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창세기》 26:18-21)

(우물 하나를 빼앗기자 이삭은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고, 또 다른 우물을 팠으나 또 빼앗기자 그 이름을 대적한다는 뜻의 ‘싯나’라고 불렀습니다.)

현지인들은 이삭의 우물에서 불과 10미터 떨어진 곳에 구덩이를 팠지만, 아무리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판 큰 웅덩이에 물이 안 나오자, 현지인들은 이삭의 우물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삭은 괘념치 않고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자 별 힘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물이 샘솟듯 콸콸 쏟아져 나왔고, 현지인들은 그것마저 또 빼앗아 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을 보면 남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부아가 치밀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뻔히 보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왜 하나님이 함께하시도록 살려 하지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시기하고 화만 내서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내 것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늘 우물에 눈독 들이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눈을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두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命定)을 벗어나면 복이 없습니다. 이삭은 자기 자신을 제단 위에 올려 하나님께 드린 사람인 반면, 현지인들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 사는 자들이었으니 삶의 목적부터가 달랐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6:24)

여러분이 진심으로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참으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며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그것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입니다. 남들이 여러분의 재물은 빼앗아 갈 수 있어도, 여러분의 축복은 결코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남을 대적하지 않아도 남이 여러분을 대적하고, 여러분이 다투지 않아도 남이 시비를 걸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상관 없습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를 믿지 않고 눈앞의 금은보화만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은 금은보화보다 훨씬 값지며, 사람에게 가장 보배로운 자산입니다.

《성경》에는 이삭이 빼앗긴 우물이 몇 개만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우물을 파서 남들에게 그냥 넘겨주었는지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사람 생각에는 이삭이 당장 가서 되찾아 와야 마땅해 보입니다. 피땀 흘려 판 우물을 어떻게 그렇게 고스란히 남에게 넘겨줄 수 있습니까? 이삭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러나 이삭은 머리가 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내 리브가 역시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는 여인이었기에, 남편이 못나서 남에게 당하고 산다고 타박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부는 생각이 일치했습니다. ‘빼앗아가면 줘 버려라, 우리는 또 파면 된다.’ 가족이나 종들이 불만을 터뜨려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나약해서가 아니었고, 우물을 의지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축복으로 사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사역자들을 이끌 때도 늘 이런 태도를 취합니다. 우리가 사역을 아무리 많이 감당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우리 사역자들도 가끔 생각이 좁아져서 남들과 다투는 것이 아니라 교구장끼리 서로 경쟁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 이런 일은 매우 드물지만, 그들이 속으로 은근히 다툰다 해도 저는 모른 척 넘어가 줍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논리 체계가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기 공로를 앞세워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하심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에게는 특허와도 같은 은혜가 있어서, 우물을 파기만 하면 물이 솟아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돈을 벌고 재정 상태가 역전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런 사람은 제 성경공부와 설교를 헛들은 것입니다. 날마다 강조하는 말씀을 마음에 담지 않은 것입니다.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으며 위기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넓은 땅을 주신다

남에게 우물을 빼앗겼다고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걸음을 한 걸음씩 인도하셔서, 어느 곳에 이르러 우물을 파게 하시면 더 이상 아무도 빼앗지 못하게 하십니다. 겉보기에는 쉽게 얻은 것 같지 않지만, 알고 보면 이전에 우물을 빼앗긴 일들은 당신의 마음에 우물이 들어앉아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계신지를 시험해 보신 것에 불과합니다. 당신 마음에 사업만 들어있고 하나님이 없다면,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축복을 다 날려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 마음에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축복이 확고하다면, 우물 하나쯤 빼앗긴다 해도 하나님을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넓은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이 논리는 명확합니다. 저는 남과 다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베풀어 주기도 바쁩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함께하심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도량은 넓어야 합니다. 속이 좁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넓은 땅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마음은 땅콩만 하고 머리는 호두알만 해서 이리저리 튀어 다니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속이 너무 좁아서 작은 일에도 남과 다투고, 따지고, 변명하며, 자기 말이 다 옳은 것처럼 굽니다. 사실 옳기는커녕 그저 속이 좁아터진 것뿐입니다. 사람은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지, 무엇이 이득이고 무엇이 손해인지를 분명히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도량이 넓은 사람과만 함께하시며, 그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도량이 넓은 사람이 되십시오. 속이 좁은 사람은 생각하는 것마다 삐뚤어집니다. 저 역시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제 믿음이 이루어지도록 협력해 주십시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복 주심을 보며, 주변 사람들이 ‘저 사람에게는 참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구나’ 하고 분명히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사소한 것에 얽매여 따지다 보면 하나님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도를 전하는 전도자들인데, 전도자의 도량이 좁아서야 어떻게 도가 있겠습니까? 걸핏하면 남과 다투고, 따지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당신을 해치려 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세워 주려 한 것뿐인데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량을 넓혀 주시고 우리를 확장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넓혀 가느냐고 묻는다면, 누군가 당신의 우물을 빼앗으러 올 때 ‘나는 이삭처럼 행하리라’고 다짐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이삭도 우물을 빼앗겼을 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괴로움을 겪으며 마음이 확장되고, 속에서 갈등과 몸부림이 일어났겠지만, 마침내 손을 펴고 ‘가져가라’며 넘겨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넓은 땅을 주시려거든, 만물을 품을 만한 후덕한 도량이 있어야 합니다. 그만한 덕도 없으면서 무엇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담아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와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며, 우리의 자손을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넓은 땅에 이르러서도 또 누군가 빼앗으려 든다면, 계속해서 도량을 넓혀 마침내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단단한 신앙인이 되십시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아비멜렉은 이삭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이삭을 멀리 쫓아내고 사람을 보내 새로 판 우물들을 몇 번이나 빼앗았는데도, 이삭은 갈수록 더욱 번성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이 비교해 보니 자기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삭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너무나 분명히 보였고, 훗날 이삭이 강성해져서 자신과 후손들을 해칠까 두려워진 나머지, 먼 길을 찾아와 이삭에게 화친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비멜렉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사람이 찾아왔다고 해서 지난 일부터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언약을 맺으러 왔다니 아비멜렉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습니다. 이삭에게는 사람들에게 복이 되고자 하는 사명이 있었을 뿐, 자신을 위해 무엇을 챙기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빼어난 미인을 아내로 얻겠다고 애쓴 적도 없는데 절세미인이 제 발로 굴러들어 왔고, 부자가 되겠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는데 큰 부자가 되었으며, 돈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백 배의 결실을 얻었습니다. 이삭 자신은 돈을 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남들의 눈에는 그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임이 훤히 보였습니다.

외부 사람들도 하나님의 복 주심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은 누구라도 그가 복이 있는 사람임을 알아봅니다. 돈을 탐하지 않는데 부유해지고, 예쁜 아내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는데 아름다운 아내를 얻었습니다. 아비멜렉은 깊이 생각한 끝에 이삭을 찾아와 언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창세기》 26:26-31)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신 뒤 서로 맹세하고, 이삭은 그들을 평안히 보내 주었습니다. 이를 보면 이삭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후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들이 이삭에게 와서 또 우물을 팠다고 보고했습니다. 물 장사를 해도 얼마나 남는 장사입니까!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창세기》 26:32-33)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만약 설문 조사를 해서 여러분 주변 사람들이나 당신과 거래해 본 사람들에게 ‘당신에게서 하나님의 축복이 보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나오겠습니까? “전혀 안 보입니다!”라는 답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사실대로 말하면 싸움 날까 봐 말 못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저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실 리가 없습니다. 저 사람이 천국에 간다면 다른 사람들은 천국 가기 싫어할 겁니다. 저런 사람이 가는 곳이라면 우리는 사양하겠습니다!”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어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이 이 점을 깊이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외적인 증거가 나타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만약 없다면 속히 돌이키십시오.

어떤 이들은 겨우 손톱만큼 해놓고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으스대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많은 일을 하고도 겨우 작은 것 하나 했을 뿐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축복은 복을 받은 사람을 따라다니며,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당신을 끊임없이 뒤따라옵니다. 결코 복만을 붙잡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붙잡아야 하나님의 축복이 따르는 법이며, 복 자체만을 좇는 사람은 결코 그것을 잡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시지만, 이삭과 같은 사람에게 그 복을 부어 주십니다. 오늘 나눈 말씀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복 주시는 모습과 본보기이며, 그것이 바로 이삭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습 가운데 이삭을 닮은 구석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에 이삭에 관한 기록이 비록 많지는 않지만,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참으로 놀랍고 훌륭합니다!

집안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보는 것은 아니다

또 한 가지 여러분이 미처 생각지 못했을 법한 사실이 있습니다. 밖의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을 보았지만, 정작 집안사람이나 가장 가까운 사람은 그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에서는 리브가와 이삭 곁에서 날마다 함께 살며 부모가 들려주는 사명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음에 하나도 담아 두지 않았습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창세기》 26:34-35)

어떤 이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에게 왜 근심할 일이 생기는가?’ 하고 묻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몫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 사람들은 모두 찾아와 이삭과 화친의 언약을 맺는데, 집안의 에서는 온갖 어리석은 짓만 골라 하며 부모의 마음을 괴롭히고 근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두 며느리와 에서는 이삭과 리브가처럼 다투지 않고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복을 의지하는 법을 도무지 배우지 못했습니다. 입만 열면 거친 말을 쏟아내고 날마다 말썽을 피웠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삭과 리브가에게 어떻게 저런 아들이 태어났느냐고 묻지만, 사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결정해 줄 수 없으며, 여러분도 자식의 인생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

에서는 에서의 몫이 있고, 그는 저주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이삭의 집에서 태어났고 리브가의 아들이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귀하게 여긴 것을 그 역시 귀하게 여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하심을 얻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밖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보는데, 미련한 아들 에서는 이삭과 리브가에게 임한 하나님의 복을 끝내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귀히 여기지도 않았으니, 이삭과 리브가에게 큰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남의 인생까지 마음대로 주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것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집착해도 소용없습니다!

이 주제는 이전에 이 장을 나눌 때 썼던 《백 배의 결실》이라는 제목보다 훨씬 좋습니다. 이번 주제야말로 26장의 모든 내용을 온전히 아우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복 주시는 모습과 본보기,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삶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창세기》 26장 성경 본문

26: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26: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26: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26: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26: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26:8 이삭이 거기 오래 머물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26: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26: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느니라.” 26: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26: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26: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26: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26: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26: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26: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26: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6: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6: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6: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6: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6: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6: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6: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6: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26: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26: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26:32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26: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26: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26: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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