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람됨 편》의 제5강인 ‘사람됨과 일 처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기에 반드시 방법을 따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달에 가서 살고 싶어 하지만 가지 못합니다. 그 지역 최고의 부자가 되고 싶다고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방법이 있어야 하고, 실제로 해낼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저 헛된 꿈을 꾸기 좋아하고, 구호나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고 결심하길 좋아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칭화대나 베이징대에 가고 싶어만 하는 것도 소용없기에, 일 처리와 사람됨의 방법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1. 방법과 방법론
예로부터 방법론의 지도를 받지 못한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전에 정부나 당의 건설에서도 이론적 수준을 매우 강조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론이란 사실 하나의 철학이며, 우리의 실천을 이끄는 기본 원리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많은 사람이 마오쩌둥의 《모순론》을 읽으며 주요 모순을 붙잡으려 하고, 《실천론》과 《방법론》을 즐겨 읽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 마오 주석이 논술한 것은 바로 방법론, 즉 이 일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예를 든 것은 지도 원칙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지도 원칙이 있습니까? 만약 없다면 무엇을 하든 마구잡이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형제자매들을 훈련하는 과정에서 정말 힘들다고 느낀 것은, 다들 핵심과 요점을 붙잡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말만 하면 삼천포로 빠져서, 동쪽을 이야기하면 서쪽을 이야기하고는 자기가 옳다고 큰소리칩니다. 이야기만 하면 주제에서 벗어나니 피곤해 죽을 지경이고, 말만 하면 헛소리하고 행동만 하면 엉뚱하게 행동합니다. 머릿속에 방법도 없고 방법론도 없기 때문입니다. 《손자병법》 같은 책은 아주 명확한 지도 원칙을 제시해 줍니다. 칭화대나 베이징대에 가고 싶다면 기본적인 학습 원칙과 방법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진맥진하고 쩔쩔매며 공부하게 됩니다.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시간만 쏟아붓는 사람을 보면 시험을 잘 볼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리는 방법과 방법론 중에서 ‘핵심을 붙잡는 것’은 매우 중요한 관건입니다.
오늘 전할 제목은 “핵심을 붙잡는 방법을 터득하라”입니다. 무엇을 보든 핵심을 붙잡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경제 상황을 볼 때, 우리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니 전문가들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국제 및 국내 정세, 경제 등 각 방면에 대해 많은 사람이 논술해 두었습니다. 싱가포르의 정치학 전문가인 마부바니(Mahbubani, 중국명 마카이숴)는 현재의 국제 정치 정세를 명확하게 논술했습니다. 여러분이 책을 읽을 때는 핵심을 붙잡고 저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것은 다 남에게서 배운 것이지, 결코 스스로 발명한 것이 아닙니다. 글자를 새로 만들었는데 오타라면 만들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남의 것을 배우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우리가 매번 성경을 읽고 성경공부를 할 때도 핵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길고 방대하게 쓰여 있지만, 특히 사도 바울의 서신서는 반드시 핵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매주 저와 함께 성경을 읽고, 성경공부를 하고, 배우다 보면 어떻게든 성경공부에서 핵심을 붙잡는 방법을 조금이라도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가르쳐 드렸듯이 반복되는 부분이 핵심이며, 한 단락의 문장들을 짜 맞추어 저자가 무엇을 논술하려 하는지 보는 것도 핵심입니다.
요점을 붙잡고 핵심을 붙잡는 것은 사람의 일생을 관통합니다. 그렇다면 이 핵심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두 사람이 바둑을 두면 한 사람은 이기고 한 사람은 집니다. 항상 이기는 사람은 두는 한 수 한 수가 모두 매우 중요한 지점, 즉 매우 중요한 수이기 때문입니다. 전장의 형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므로 매 단계마다 자신이 현재 처한 형세를 판단하고 나서 다음 수를 어떻게 둘지 결정해야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일생 동안 매 걸음을 어떻게 내디뎌야 하는가가 바로 핵심을 붙잡는 것입니다. 사람을 볼 때는 그의 핵심, 즉 그의 핵심 이익을 보아야 합니다. 저는 매일 여러분의 핵심 이익을 살펴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여러분 내면의 사고방식과 논리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발뒤꿈치로만 계산해 보아도 그것을 건드리는 순간 이를 드러낼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여러분을 훈련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손해를 입히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핵심을 붙잡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80세가 넘으셨는데도 아주 건강하신 한 자매님의 꿈은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자매님은 글자를 많이 알지 못하지만, 재단 기술 하나로 온 가족을 먹여 살렸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남겨진 형제자매들을 자매님이 다 부양해야 했습니다. 40세가 되어서야 결혼했고, 아이를 낳은 지 몇 년 안 되어 남편이 또 세상을 떠나 홀로 아이를 키워냈으며, 자신은 학교에 다니며 공부해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오신 후 자매님은 배울 기회가 생겼다며 몹시 기뻐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여기까지 와서 또 공부해야 하느냐고 불평하는 일부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이것이 은혜임을 알지 못하고, 사람 노릇도 제대로 못 하면서 어떻게 일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원숭이나 소, 말처럼 살아가고, 심지어 쥐처럼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핵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2. 성경은 바로 사람됨의 핵심이다
성경 속의 핵심을 붙잡지 못하고 온종일 자신의 일과 사업만 붙잡고 있다면, 그저 행운을 빌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안 좋은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성경 말씀대로 살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종 어떤 사람들에게 이곳에 잘못 찾아온 것 같으니 절에 가서 절을 해보라고 권합니다. 그곳의 효과가 아주 좋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핵심 이익은 무언가를 얻는 것이기에 성경에서 말하는 바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101 과정을 읽어보셨다면 축복과 저주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두 가지 큰 핵심임을 알 것입니다. 축복 속에 사는 것과 저주 속에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두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물론 저주 속에 살기를 기꺼이 원한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10년 전 모(某)가인이라는 사람은 정말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매일 돈이 자기가 찍어내는 것처럼 많았지만, 결국 문제가 터졌습니다.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잘 살 수가 없습니다. 아직 괜찮다고 느끼는 것은 저주가 아직 발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주받는 것을 자주 가로막지만, 막으려 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주와 복을 받는 것은 살아가는 핵심이지만, 사람이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핵심을 붙잡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됨의 핵심을 모르면 남에게 배워야 하고, 배우고 나서 실천해 보면 진상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십계명에서 남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 형제의 외삼촌은 자기 누이 명의로 된 집인데도 어머니의 집을 탐냈습니다. 자기는 돈이 없으니 아들 결혼시키는 데 쓰려고 억지로 탐을 냈습니다. 헛된 꿈을 꾼 것입니다. 그 집에 들어가 살기도 전에 그는 폐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아들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기 어머니의 집을 탐낸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사실 3, 4, 5선 도시의 집은 그리 값비싼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은 집을 가로챈 지 몇 년 안 되어 온몸에 병이 생겨 완전히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성경의 십계명은 저주의 마지노선이므로 범해서는 안 됩니다. 그중 제4계명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합니다. 안식일이란 무엇입니까? 그날이 토요일이든 주일이든 상관없이, 그날의 시간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로 구별하여 거룩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 속한 시간을 자기 것으로 취한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구한 일자리가 주일에 일해야 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일자리가 아주 많은데, 어떤 사람들은 굳이 주일에 일해야 하는 직장만 찾아 들어갑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굳이 그 안으로 파고들며 주일 시간을 일하는 데 쓰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경에는 유월절을 지키는 것도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유월절을 지킬 시간이 없으니 남들이 다 지키고 난 뒤에 가도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유월절이 아닙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해주신 것이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유월절은 유월절입니다. 물론 감사하게도 오늘날 우리는 유월절을 지킬 필요가 없지만,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으면서 시간 면에서 이리 깎고 저리 깎아서야 되겠습니까? 또 어떤 형제자매들은 자기가 참석은 못 하지만 개인적으로 듣고 필기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유월절이 다 지난 후에 유월절을 지키러 가는 것과 같습니다. 초막절을 지키러 가는데 남들이 장막을 다 걷은 후에 초막절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 차라리 청명절을 설날로 옮기고 설날을 청명절로 옮기는 것이 낫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습관의 문제입니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여러분의 뼛속 깊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지 보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제가 양육하는 한 자매에게 《잠언》을 읽으라고 했는데, 이 책의 핵심은 3장 5절과 6절입니다. 읽으려면 핵심을 붙잡아야지, 핵심을 붙잡지 못하면 헛읽은 것입니다. 다 읽고 나면 잠언 전체가 지혜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잠언》 3:5-7)
오늘 작은 저주를 심고 내일 큰 저주를 심으면, 언젠가는 거두게 됩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저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면 몹시 답답합니다. 조급해지면 말이 곱게 나가지 않고, 사람들은 저를 싫어하게 됩니다. 목회자가 되고 선지자가 되면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짓을 자주 하게 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태도의 문제입니다. 이 사람이 우리 교회를 떠나겠다면 제가 관여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 가운데 있다면 저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또 미움을 사는 일이다 보니 여러분은 저를 더 이상 곤란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이것은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사람은 지혜와 교만, 어리석음 같은 것들을 모두 핵심으로 여겨야 합니다. 축복과 저주는 성경이 강조하는 두 가지 큰 주제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축복 속에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주 속에 살게 되면 일단 저주가 발효된 후에는 아무도 바꿀 수 없으므로, 사람이 됨에 있어 핵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3. 문제를 볼 때 핵심을 붙잡으라
앞에서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성경을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불교 신자이고 제가 승려나 법사여서 상장된 사찰을 운영하고 상장 사찰의 주지나 대법사라면 당연히 불경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문제는 제가 예수님과 인연이 깊다는 데 있습니다. 문제를 볼 때 핵심을 붙잡는 것은 모두에게 똑같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신자이든 상관없이, 관건은 문제를 볼 때 어떻게 핵심을 붙잡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분주하면 핵심을 붙잡지 못합니다. 분주함이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된 일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고연봉 일자리를 구하든 저연봉 일자리를 구하든 똑같이 분주하고 고생스럽습니다. 왜 분주한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분주함에 정신이 팔린 자는 에서이고, 야곱은 결코 분주함에 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핵심을 붙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사실 바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바쁘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일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핵심을 붙잡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잔뜩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계획이 없어서 생기는 일입니다. 계획은 깊이 고민해야 하며, 실행 가능한 계획을 실행 방안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늘 마구잡이로 일하길 좋아하는데, 시작부터 잘못되면 소용이 없고 헛수고를 한다면 아무리 바빠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 번에 바르게 하면 바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을 들여 계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든 교회에서 목사로 섬기든, 저는 분주한 사람들을 수없이 섬겨왔습니다. 저는 ‘분주함 방지 전문가’입니다. 분주한 것은 옳지 않으며, 안식일을 지킬 시간, 주일을 지킬 시간이 없는 사람은 틀림없이 헛바쁜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면 그들은 갖은 핑계를 대며 바쁜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굴어 저를 말문이 막히게 만듭니다. 남들에게 사기 방지 핫라인이 있다면, 저는 ‘분주함 방지 핫라인’을 개설한 셈입니다.
분주하다는 것은 분명 혼란하다는 뜻입니다. 분주한 사람은 틀림없이 계획이 없으며, 계획을 세웠다 해도 쓸모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일할 때 다시 이 점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만들려고 한다면 먼저 계획부터 세웁니다. 변기에 앉아 있든 버스를 타고 있든, 자리가 있든 없든 머릿속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모든 과정을 아주 매끄럽게 정리해 두고 나면, 일을 시작했을 때 기본적으로 재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한 번에 올바르게 끝납니다. 종이 위에 시간을 들여 그리는 것이 공사장에 짓다 만 흉물을 짓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종이 위에서 망치는 것은 상관없지만, 현장에서 망치면 돈을 쏟아부은 쓰레기가 됩니다.
제가 한 일 중에는 중단된 것이 없습니다. 계획을 끊임없이 거듭 검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방법론을 가진 사람이며, 방법론을 실천하고 또 실천했기에 이제 여러분에게 핵심을 붙잡는 방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핵심을 붙잡지 못하면 큰일 납니다. 살면서 축복과 저주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매일 저주 속에 살면서도 스스로 괜찮다고 여깁니다. 핵심을 붙잡지 못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어제 한 소목자가 말하기를, 자기가 양육하는 서른 중반의 건장한 남자가 속은 땅콩만 하고 머리는 호두알만 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지금 좀 심하게 말하지만, 그 남자는 자기 아내에게 사람들이 너무 잘해준다고 소목자에게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우리가 그의 아내를 섬길 때 아내는 아주 착하고 순종적으로 들었습니다. 우리는 부부 관계를 중재하고 싶지 않습니다. 소용이 없기 때문이며, 우리는 두 사람이 끊임없이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도량이 땅콩만 하다면, 그것을 작은 참외로 바꾼 후에 이 문제를 다시 보면 문제가 작아진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참외에서 큰 호박으로 바뀌면 도량이 더 넓어집니다. 머리가 호두알만 하고 금붕어처럼 기억력이 7초밖에 안 된다면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의 시야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도량을 넓히고 안목을 끌어올려야 비로소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정말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핵심을 붙잡지 못하고 온종일 사소한 일에 얽매여 스스로를 흥분시키고 괴롭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섬김을 마치고 나서 ‘하나님, 저를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하고 탄식하며, 정말 주먹으로 얼굴을 멍들게 한 대 쥐어박아야 정신을 차릴까 싶기도 합니다.
문제를 볼 때는 핵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 이 문제의 관건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자신이 배울 줄 모른다거나 업무상의 어떤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방법을 찾아 끌어올려야 합니다. 업무 효율이 높지 않은 것은 핵심을 붙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상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만 잔뜩 해놓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얼마 전 저는 참 잘 쓰인 《전략과 경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충칭 시장을 지낸 황치판(黄奇帆)으로, 경제학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또한 마부바니(Mahbubani) 역시 많은 국제 정세를 논술했습니다. 사실 현재 국제 사회의 많은 국가가 싱가포르를 필두로 중국이 지지 않을 것, 즉 중국이 이길 것이라는 쪽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비록 현재의 정세에 여전히 큰 도전이 있지만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문제를 볼 때 관건을 보고 핵심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전략과 경로》 외에도 《분석과 사고》라는 책을 썼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성경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것은 단지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책을 보는 것도 배움이지만 성경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 전 제가 사람들에게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干法)》와 《왜 사는가(活法)》를 읽어보라고 추천했더니, 다 읽고 나서 신앙을 바꾸어 이나모리 가즈오의 ‘지행합일교’를 믿어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맞았을 수도 있지만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핵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문제를 볼 때 핵심을 붙잡는다는 것은 문제의 관건을 찾는 것입니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반드시 관건을 찾을 수 있습니다. 며칠 전 디자인을 배우고 있는 한 자매를 섬겼습니다. 자매의 전문대 전공은 재무회계였지만, 졸업 후 한 공장에서 디자인 일을 구했으니 분야를 꽤 크게 바꾼 셈입니다. 이렇게 큰 변화를 이룬 것도 우리 교회에 엄청난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매에게 방향을 잘 정하라고 격려하며 드로잉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배워야 할지 정리해 주었습니다. 배움에는 A부터 Z까지가 있으니 사전 읽듯이 모든 것을 다 배우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잘못된 방법입니다.
올바른 학습법은 자주 쓰는 것을 반드시 먼저 배우고, 평생 쓸 일 없는 것은 배우지 않는 것입니다. 배워봤자 쓸모가 없습니다. 자주 쓰는 것을 먼저 배워 완전히 익숙해지도록 달달 외우고, 이 소프트웨어들의 기능들을 손바닥 보듯 한번 훑어본 후에는 여기에 무엇이 있는지만 알면 충분하며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다음 다음 단계로 넘어가 효율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하나씩 배우고 나면 또 다른 무기가 생겨 업무 효율이 대폭 상승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술을 배울 때 핵심을 배워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모두 핵심이자 알짜배기 지식입니다.
4. 사람과의 대화에서 핵심을 붙잡으라
때로는 사람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대화가 붕 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아이의 학습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의 선생님을 탓하기 시작하고, 이어서 학교를 탓하고, 정부 제도를 탓하다가 이제는 교육청까지 애꿎은 불똥이 튑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처음에 아이의 학습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립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핵심을 붙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와 대화하는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다 보면 머릿속에서 정보가 튀어나오고, 그 느낌을 따라 삼천포로 빠져버려 당겨오려 해도 당겨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핵심과 요점에 힘을 쓰지 않고, 늘 엉뚱하고 왜곡된 길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이것은 모두 사람의 나쁜 습관입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겠습니까? 사람과 대화할 때 어떻게 말하고 무엇을 말할 것인가,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이야기할 때 몇 가지 핵심이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잊어버린 채, 오직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려는 말이 이 일과 관계가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중급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다가 공부하면서 짜증이 나자 편집 사역을 내려놓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왜 시험을 내려놓지 않았느냐? 시험 때문에 스스로 혼란스럽고 짜증 난 것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보니 혼란스러운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엄마와 딸이 싸울 때 횡설수설하는 것을 보면 옆에서 듣는 사람에게는 코미디처럼 느껴집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고 핵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분주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았습니까? 사람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것을 어리석음과 교만이라고 부릅니다. 더 답답한 대화도 있습니다. 제가 이 일에서 어느 부분을 잘못했는지 정리해 보라고 했더니, 길게 장문을 써서 자기가 어떻게 잘했는지만 늘어놓았습니다. 제가 “당신의 문제를 반성해 볼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너무 꼼꼼한 것이 문제라는 식으로 반성했습니다. 그녀의 단점이 그것 하나뿐이겠습니까? 자신의 문제는 너무 지혜롭거나 너무 복을 많이 받았다는 식이고, 심지어 자기는 항상 핵심을 잘 붙잡는다거나 분석과 사고를 너무 잘한다고 여기니, 그럴 거면 왜 황치판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5. 책을 읽을 때 핵심을 붙잡으라
많은 사람이 어릴 때부터 핵심을 붙잡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시험 볼 때 점수를 얻는 포인트를 핵심이라고 하듯, 책을 읽을 때도 핵심을 읽어야 합니다. 중국인의 지혜는 대단합니다.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대단한 인물들로, 핵심을 기가 막히게 붙잡았습니다. 제갈량의 《융중대(隆中對)》는 천하삼분의 전략적 결단이었는데, 여러분은 읽어내지 못했을 수도 있고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즉,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늘 핵심을 붙잡지 못합니다. 사실 한 편의 글이나 한 권의 책은 몇 가지 이야기, 혹은 단 한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핵심을 붙잡은 후 그 아래의 작은 핵심들을 보고, 작은 핵심 아래에 또 몇 가지를 보면 순식간에 전체 내용이 하나로 꿰어집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대학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공무원 시험을 보다가 백발노인이 다 되도록 합격하지 못합니다. 책을 읽을 때 핵심을 붙잡지 못하는 것은 인생의 비극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그런 탁월한 인물들과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야고보서》를 다 읽고 나서 저는 핵심을 찾지 못했습니다. 엄청난 애를 썼지만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자 역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책을 잘 읽는 사람입니다. 젊었을 때 주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책을 한 무더기 샀는데, 그중 한 권이 《삼위일체의 참 하나님》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누구든 이 책을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돈을 주고서라도 가정교사로 모셔오고 싶었습니다. 당시 저는 참 하나님을 너무나 알고 싶었고, 사람들은 다 삼위일체를 이야기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없이 읽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저자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고 책도 많이 썼지만, 그가 명확히 쓰지 못했기에 저도 명확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화인명정신학(중화권 사명 신학)에서 삼위일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삼위일체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부터 삼위일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머리 셋에 몸 하나입니까, 아니면 몸 셋에 머리 하나입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로 우리는 믿으면 될 뿐, 굳이 삼위일체라는 명칭을 덧씌울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책을 읽을 때 핵심을 붙잡는 법을 점차 배워가야 합니다. 만약 한 권의 책을 얇게 읽어낼 수 있다면 명확히 이해한 것입니다. 핵심을 다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얇게 읽고 나서 다시 두껍게 읽는다는 것은 핵심도 붙잡고 세부 사항도 다 붙잡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말했던 ‘강거목장(綱擧目張, 벼리를 들면 그물이 펴진다)’은 그물의 가장자리에 있는 굵은 밧줄을 벼리(綱)라고 부르는데, 그물코를 붙잡으려 하면 그물이 다 엉켜버린다는 말입니다. 그 벼리 밧줄을 잡고 줄을 곧게 당기면 그물이 활짝 펴지며 아주 깔끔해집니다. 따라서 벼리가 바로 그 핵심입니다. 공부하고 문제를 보고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다 이와 같으며, 독서는 책을 쓴 탁월한 인물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손자병법》은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그 안에는 ‘세(勢)’라는 아주 훌륭한 개념이 나옵니다. 산 위에서 둥근 바위가 굴러떨어질 때의 기세는 막을 수 없으며, 막는 자는 깔려 죽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자 핵심이며, 훗날 물리학에서 말하는 위치에너지(Potential Energy)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중국의 조상들이 2,000여 년 전에 쓴 것인데, 참으로 잘 썼습니다.
‘병자궤도야(兵者詭道也, 전쟁은 속임수다)’라는 것은 생사가 걸린 일이기에 용병의 도라고 부릅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싸움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저 역시 제가 중국인으로서 중국어를 하고 중국 고전을 읽을 수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안에는 참으로 기이한 지식과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저도 같은 방식으로 성경을 읽었고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화인명정신학은 중국인이 성경을 깔끔하고 명확하게 정리해 낸 신학 체계입니다.
6. 글을 쓸 때 핵심을 붙잡으라
글을 써본 적이 없다면 노트를 쓸 때 핵심을 붙잡아도 좋습니다. 많은 사람이 글을 쓸 때 대제목과 소제목만 적어서 제출하는데, 그것들은 핵심이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핵심은 아닙니다. 핵심이란 바로 결정적인 세부 사항입니다. 결정적인 세부 사항이 빠지면 전체가 망가집니다. 그래서 제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든 인테리어를 하든 기업 경영을 포함한 다른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핵심을 붙잡는다는 것은 바로 결정적인 세부 사항을 붙잡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말하는데,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일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디테일을 잘못 다루면 반드시 망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글을 쓸 때 핵심을 붙잡는다는 것은 결정적인 세부 사항을 붙잡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세부 사항이 일을 명확하게 썼는지, 결정적인 세부 사항을 명확히 묘사했는지를 결정합니다. 제가 계획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제 계획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벽이나 찢어진 종이상자를 보고 매직펜을 꺼내 일사천리로 써 내려가는데, 그 모든 것이 결정적인 세부 사항들이며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문제를 고려하는 것은 바로 결정적인 세부 사항을 붙잡는 것입니다. 제가 쓴 글들을 자세히 보시면 제가 모두 결정적인 세부 사항들을 붙잡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읽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만들지 않습니다.
7. 프로젝트를 할 때 핵심을 붙잡으라
프로젝트를 무너뜨리고 실패하게 만드는 모든 요인이 바로 핵심이며, 그것이 프로젝트의 결정적인 세부 사항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저의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프로젝트 관리에 있어서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프로젝트의 세부 사항을 붙잡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운 건축 계획을 보면 첫째는 설계, 둘째는 시공, 셋째는 검사 및 검수, 넷째는 인도라고 되어 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안 한 것과 같으며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 8시부터 9시까지 출근 준비를 하고, 9시부터 11시 반까지 근무하고, 11시 반부터 1시 반까지 식사 및 휴식을 취하고, 1시 반부터 5시 반까지 퇴근 준비를 하겠다고 합니다. 출근해서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면 정말 우스운 일이며, 어떤 기업도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신의 계획을 잘 세우고,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어느 부분을 바르게 처리해야 하는지 구체화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작업 도중에 기술자가 자재가 부족하다고 하여 기술자는 차를 마시며 앉아 있고 그 사람이 자재를 사러 가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반나절 후에 자재가 배달되면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모두 계획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의 계획을 보면 제가 시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품이 다 준비되어 있으며, 저는 자재가 제자리에 갖추어지도록 보장합니다. 따라서 프로젝트의 수많은 결정적인 요소들, 예를 들어 나사못 하나가 없어도 작업을 할 수 없는데, 이때 그것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하루 인건비가 10,000위안인데 나사못 한 상자를 사는 데는 10위안밖에 들지 않는다면, 차라리 1,000상자를 살지언정 그들의 하루 작업을 지체시켜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나사못은 소모품이라 매일 쓰는 것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다 쓰지 못하면 다음 프로젝트에서 쓰면 되니, 계산을 똑똑히 해야 합니다.
프로젝트를 할 때 핵심을 붙잡아야 하듯, 사람의 일생도 마찬가지로 핵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핵심을 붙잡는 능력, 즉 결정적인 세부 사항을 붙잡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고 결코 바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쫓겨 다닐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핵심을 다 붙잡아두고 온갖 잡귀들을 한 번에 제압해 두었는데 무엇 때문에 바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제가 자기들만큼 일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당연히 제가 일을 잘못 처리하는 빈도는 그 바쁜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분주하지만, 돈을 까먹느라 바쁩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사람들도 이미 괴로운 상태인데 자꾸 말하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라고 하지만, 그러면 계속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정말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지혜로운 사람으로 훈련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싫고 바보처럼 살고 싶다면 저와는 별 상관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최근 핵심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것은 사망이요, 육신을 따라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세상을 사랑함과 선악을 분별함, 그리고 여기에 이제 맘몬이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맘몬이 사람을 옭아매는 힘은 매우 강력한데, 제가 자세히 살펴보니 사업가들이 특히 심하게 얽매여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상인이든 기업가이든 맘몬이라는 것은 그들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어서, 마치 상인이 돈을 벌지 않는 것은 비도덕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면 맘몬에 얽매이게 되고 그것은 재앙이 됩니다. 상인이라 할지라도 제사장의 길을 따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육신의 생각, 선악을 분별함, 세상을 사랑함, 맘몬이라는 네 가지 큰 굴레를 깨달아야 합니다. 원래는 삼위일체였는데 이제 또 다른 하나가 자라난 셈입니다.
오늘 강의에서 다룬 내용이 조금 빽빽하게 채워졌지만, 여러분이 이러한 일들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점차 깔끔하고 명확하게 정리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복을 누릴 시간이 생길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시간은 있으면서 왜 살 시간은 없습니까? 저주받을 시간은 있으면서 왜 복을 받을 시간은 없습니까? 제가 이러한 개념들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렸으니, 여러분은 질문을 가지고 저와 함께 탐구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세상의 것들에 더 이상 갈팡질팡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