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每次我不想顺着自己的逻辑体系,每次都发誓一定要信靠神,结果遇到问题还是选择属人的逻辑体系,选了以后又很后悔,这怎么办?
这个事很简单,因为我们的每一次的成长都是一场争战,每一次的争战都需要依靠神,不能靠着我们自己,因为神是我们的力量。那我们怎么靠着神呢?选择不是难事,我们选了以后,里面好像有一股力量往另一个方向拖。大家要知道,如果你顺着那股劲走的话,就是败坏。但是我们心里还是很认同的,感觉它讲得挺有道理的,讲的是对的。你一感觉对就毁了,你要觉得不对才行。
给大家举个例子,如果我用最粗糙的办法骗大家,叫你把你的钱转到我的账户里,你肯定不会上当;要是我告诉你,我给你很高的利息,你现在给我一百万,到年底我给你三百万,你就会动心。光想那三百万了,就会把钱转给别人,最后一分钱也没有回来。魔鬼就是这么搞的,结果血本无归。
亚当夏娃中了魔鬼的诡计,吃了识别善恶树上的果子,结果活得老惨了。他们有神的时候活得很滋润,没有神的时候活得很辛苦。当时夏娃想,吃了以后有智慧,可以像神,而且不会死。这些是不是美好的盼望?我们大家都渴望像神,渴望像耶稣,渴望效法我们的神,大家都带着这些美好的盼望。鬼也是用同样的方法骗我们,大家就中了魔鬼的诡计,活得老辛苦了。因为我们光想着好事,不想着坏事了。如果是吃亏的事,就是你们的脑子肯定也不干。
有一次我服侍的一个姐妹发病了,要砸我的电脑。服侍完了以后,我们当中的一个同工陪她去请假,正好路过一个电脑店,我的同工就问她:你怎么不去砸人家电脑呢?她说,你以为我傻啊?砸人家电脑要赔钱的。原来她把我当傻瓜了,她以为我好欺负,砸我的电脑不用赔。如果我让她砸,我一定会报警,一分钱都不会让她少赔!我们要在选之前明白就不会吃亏了,吃亏了再明白那叫马后炮。
前几天新加坡报道了一则新闻,夫妻俩带着孩子到英国旅游,结果老公在酒店里把老婆杀了。在法庭上这个老公说了一句匪夷所思的话,他说他完全不记得当天晚上所发生的事,一问三不知,这就是被鬼骗了。弟兄姐妹,我们有很多时候被鬼骗,可是自己控制不了自己。
有的时候你心里难受,什么都不想干,看什么都是灰色的,这种感觉非常不好,但是我们心里要明白,要定意走神的路,听神的话。我有时候也有这种感觉,这时候就开始做事,做服侍人的事比较有意思。一个自私的人是很难走出来的,自私就是败坏,所以要先对付自私。我们要把账算明白,才能活得兴盛。
Q2:老师,最常见的属世界的逻辑体系有哪些?
最常见的属世界的逻辑体系就是爱钱,比如说建教会要有钱,钱怎么来呢?要有人啊!这就是属世界的逻辑体系,其实建教会需要的是神。
第二个属世界的逻辑体系就是人要靠自己的刀剑度日,靠自己的能力,而不是靠神的能力。靠自己的能力和靠神的能力差别有多大?差别很大,靠神的路绝对不是用你自己的能力。所以,新约讲这都是恩典,你没有好自夸的。人靠自己的能力,人就觉着自己挺厉害。包括我自己都要经常对付这个毛病。我一干事情,觉着自己干的不错,认为这都是我干的,我挺厉害的,过一会就醒悟过来了,其实那是神的恩典。
Q3:刮骨疗毒的意思是什么?
人与生俱来的东西都随着我们,就粘在我们身上,你说咋整?平时明白的时候说得可好了,一试就不行。为什么一试就不行了?因为毒还在人的骨髓里头。就是表面上看起来很属灵,但是一遇到不好的事,或者一被冤枉,马上本相就露出来了。
如果自己意识到做得不对,自己还改不了,就会得很多的病。病多了人就会难受,难受了就得祷告,祷告完了就悔改,悔改了病就好了。过一段时间又一试,问题又出来了。所以,从百分之八十属世界的里面出来,到百分之六十,再到百分之四十,再到百分之二十,一点点地成长。
不管是你的牧者教导还是自己读了神的话,每一次的刮骨疗毒,都是神的话在我们里面起了作用。开始醒悟过来,要知道自己遭这些罪是很无聊的,就要认识到这不对。刚开始很难改,就需要大量的方言祷告和悟性祷告。遇到事的时候,先别那么容易做选择,找你的牧者一起祷告,咨询一下该怎么做,心里别那么刚硬,不要有固执的癌症性格。
所以遇到事的时候你一个人干不了,就要依靠教会,靠你的牧者,这叫跟教会有连接,你很快就会从那个里头摆脱出来。千万别靠自己在那里独自修行,那很难的。
Q4:老师,什么叫信靠神,是不是依照《圣经》上的话?
这是一个千古难题,如果有人把这件事情解释清楚了,就老厉害了。什么叫信靠神?比如说,我们生病了咋办?认为那得有钱,这不叫信靠神。如果生病了,认为我有神,这就叫信靠神。我们当中的弟兄姐妹虽然经历过神的恩典,但时常信靠世界上的东西。
我给大家举个例子,有一个人得了癌症,我服侍他,就先把他训一顿,就好转了。好转了以后,他自己里面还有大一堆自己的东西。后来他就选择去化疗什么的,结果状况不那么乐观,别人说的话也听不进去,他还懒得理服侍他的人。他的牧者就跟我商量要怎么办?要不要让我来继续服侍他?当然我可以服侍,但是我要告诉大家,如果一个人太爱惜自己的性命,贪生怕死,就要完蛋了,因为那不是信靠神。
一个信靠神的人是走最根基性的东西,就是先解决生死的问题。人生死的事情没有解决,其他的事都不用解决了,肯定是属世界的逻辑体系,人对生死的看法和神对生死的看法完全不一样。什么叫信靠神?是在永恒里面的价值体系来信靠神,不是今生。所以根基选择错了,啥也不用说了。不管我有没有带你祷告就那样,就跟《撒母耳记上》里面的以色列人差不多。
Q5:我是一个很善良很好的人,家里面大大小小的事情都是我操心,宁愿自己受累也要照顾到家人,结果还得了一身的病,这是为什么呢?有时候觉着神这样很不公平。
人脑袋里面的逻辑体系是错的,竟然不知道,还觉着神很不公平。我想我一考你,你肯定考不过。你说你是一个很善良,很好的人,还觉着神很不公平,那你就不是一个好人。因为你觉着你是一个好人,觉着这些对你不公平。如果你觉着你是一个罪人,这些是你应当得的,那你就会好好改了。
其实你也没有干什么,你只是你觉着你干了很多。有精神病体质的人,都觉着自己是好人,觉着自己干很多,认为这个世界亏待他。你怎么就很善良,很好了?那都是你自己认为的。如果你真的很善良,你就会觉着我做这些是应当的,神这样对待我,很公平,因为我很烂。
有一次我服侍了一个癌症患者,她认为她自己是一个很善良很好的人,后来我就问她,怎么个好法啊?她说,有要饭的我就给他点饭。我说,你跟婆婆和老公关系怎么样?她说不怎么样。肯定好不了啊!要不咋得了癌症了呢!如果认为自己是个好人,是个善良的人,你一定很招鬼。我讲完了可能你会很受伤,但是没关系,你受伤我也得告诉你啊!谁让你认为自己是个好人了?要认为自己是个恶人,你还有很多地方需要改,你就会觉得很公平了。我可能没有回答你的问题,因为这不是你期待的答案。
Q6:老师,我们所遇到的问题和困难都是神的试炼,知道要依靠神,告诉自己要看透,可还是会难受。
为什么我们会难受呢?因为人活在肉身当中就是这样,一个人治死肉体的恶行乃是一生之久的事!
Q7:老师,孩子上学,我们不完全符合条件,牧者教导之后,我们也凭着信心在网上报了名。后来有一个邻居在这所学校,想着让人家帮帮忙,这算不算积极主动的信心?原来想的是他和姐姐一个学校好接送,现在就觉得上这个学校也可以,被分到其他的学校也不要紧,神知道哪个学校适合孩子吗?
我们人是不是把这东西看得太重了?其实上哪个学校都没什么两样。很多人不知道这些东西是相当败坏的!前一段时间就有个人说,你看神多不公平,我好朋友去报了个补习班,就能送孩子去学一些东西,可是我就报不上。后来发现,那个孩子报了班,考试出来的成绩还不如没上补习班的,结果又不难受了!你说人脑子里装的东西多败坏啊!
我告诉大家我自己的看法,孩子能上这学就上,不能上这个学咱就不上;孩子能上哪个就上哪个,不能上就算了;这东西我能买得起就买,买不起就算了。我不赞同送孩子去上这个补习,那个补习,能学成啥样就啥样吧!信靠神就是根基得对,根基不对那多拉扯啊!跟神拔河?我看你能拔的过神吗?
Q8:老师,什么是靠着神?觉得靠不上怎么办呢?
最首先的我们不能靠着神追求世上的屁事。我给大家举个例子,神啊!明天我要抢银行!求你保佑我,让我打抢成功!结果去了发现警察早就在那里埋伏好了,因为神把这件事早就给透露出去了。你不祷告还好,一祷告发现靠不上,因为求的都是钱这些玩意。神啊!帮助我,让我孩子有一个好成绩!神啊,帮助我,让我孩子有一个好学校!最后能靠得上才见鬼了呢!
因为我们活在一个属世界的逻辑体系里,如果我们把生死都看透了,活在永恒的逻辑体系里,不就没事了吗?那怎么就能靠不上呢?神呐!给我一个男朋友!神呐!给我一个女朋友!神呐!让我生个孩子!神呐!让我在我的工作中升职!听着好像是到庙里求的似的,基督徒都不求这玩意。
Q9:老师,不善于跟人打交道咋整?因为人际关系处理不好的问题,我都想居家办公了。
因为你老想你自己的事,根基全是自私,关系就好不了。如果你老想祝福别人,老想帮助人,人际关系不可能不好。有一些基督徒说,老师啊,我感谢神,最近我的老板把我的工作减少了。我一听就不太对劲,我就问他,为什么老板减少你的工作?他说,因为我干活老干错。就这样能好得了才怪!这叫啥逻辑?好像多干点活就会比较吃亏似的。问这个问题的人,就慢慢对付自己的恶习吧!
Q10:老师,自己不知道自己哪里做错了怎么办?
那你就靠牧者吧!你问下你的牧者不就知道了吗?别自己在那瞎捣鼓,整着整着就自以为是了。
Q11:老师,我以前的教会,每次我生日的时候牧师都会为我祝福祷告,告诉我神会给我一个礼物!来到华人命定神学之后,我想让牧者也给我祝福祷告,但是我的牧者拒绝了我,我里面很难受。我们可以这么祷告吗?
祷告啥?如果那样祝福有用的话,大家都这么干。在这里只有一件事,就是求神的国和求神的义,这一切东西神都会加给你。如果你是个亚伯拉罕、以撒、雅各,咒诅你的就会受咒诅,祝福你的就蒙祝福。如果你是个约瑟,哪怕你被卖到埃及,你的命运都不会改变,神的灵依然与你同在。
到底祝福是啥?不是牧者说一句话就蒙祝福了。不是牧者告诉你一句,我奉耶稣的名祝福你,你就有祝福了。哪有这回事?我们脑子里装的那些东西,要神祝福我祝福我,这句话本身就是咒诅。你求这玩意儿本身就是个咒诅。我讲的有点重,大家慢慢琢磨。
大家千万要知道,在亚伯拉罕的命定之外没有祝福,不是你过生日我给你祝福,你就会得祝福,不是这么回事。如果是这样的话,我每次祝福一个人,我都要收钱啊!哪有这回事。
Q12:老师,原来还以为自己是个好人,来到这里之后知道自己很烂,开始接受自己的烂,这是不是开始刮骨疗毒了呢?
这是刮骨疗毒了。大家得理解啊!我们认为的那个东西很奇怪,也不知道是从哪来的。有的人认为自己是个好人,但是跟孩子的关系,跟父母的关系都搞不好,在工作岗位上,跟同事关系也搞不好,受一点委屈还受不起。如果你真的是个好人,你受到委屈你应该能受得起呀!人家约瑟被卖到埃及也没觉得怎么样,你还没被卖到埃及呢,就那样了!
所以我想我们很多东西都需要刮骨疗毒!只有一件事,没有任何一个人能改变你的命运,只有你自己。所以我想,如果咱们把生生死死的事都看透了,那世上的事就都看淡了。前几天我开车出去吃饭,回来的路上,就看见在我前边的几辆车发生车祸。那个车祸现场老惨了!与我们前后就差几十秒。我看见人躺在路边,腿断了好几节,他那车被撞在马路的分离带上,撞得稀烂。所以说我们得知道自己是个罪人,就算是花自己一生的力气去追求信靠神,认识神还不够,更何况不这样呢?
一,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보여 주는 거울이다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우리의 거울로 삼으셨다. 사람은 항상 이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 보며, 자신의 선택이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과 얼마나 다른지 살펴보아야 한다.
- 사람은 기본적으로 별로 변하지 않았다. 사람 안의 근본적인 논리 체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역사 속 이스라엘 백성처럼 고집스럽고 자기 길로 치우치며 제멋대로 행하게 된다.
二,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
- 교회 안에서 가장 큰 혼란은 그리스도인들이 비참하게 살면서 죽어라 기도해도 하나님의 응답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 원인은 바로 안에 강하게 자리 잡은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이다.
- 사람은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다루기 위해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하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들불은 꺼지지 않고 봄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난다”는 말처럼 된다.
三, 출애굽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러했다
- 사람이 여전히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지니고 있다면,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될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이다.
- 사람은 본래 세상에 속해 있다. 사람이 변할 때마다 하나의 전쟁이 일어나며, 매번의 전쟁은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매번 승리할 때마다 한 단계씩 성장하여,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갈 때까지 나아가게 된다.
四, 사람이 세상에 속한 논리는 매우 혼란스럽다
- 사람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매우 혼란스럽다. 그에게 잘해 주면 그는 당신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그를 해치면 오히려 그것을 좋게 여긴다.
- 사람의 논리가 어느 정도까지 혼란스러워지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시험하시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五, 하나님께서는 자주 사람을 시험하신다
- 사람이 견디지 못할 고난은 없지만, 누리지 못할 복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복을 누리다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고, 결국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무너졌다.
- 어떤 환경을 겪든, 어떤 시험을 만나든 한 가지 교훈을 배우자. 언제나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선택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며 하나님을 위해 죽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六,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좋은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좋은가
-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제거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며, 반드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안의 힘이 되셔서 우리가 싸워 승리하도록 이끄신다!
- 살고 죽는 일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을 위해 살며 하나님을 위해 죽고, 썩지 않을 복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
七,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마음이 완고한 대로 내버려 두신다
- 사람이 이미 자기 생각을 정해 놓고 자신이 옳다고 인정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완고함 때문에 그가 자기 결정을 내리도록 내버려 두신다.
- 사람은 마음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하고 하나님을 선택하며 그분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의 논리 체계를 받아들이고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조금씩 몰아내면 반드시 복을 받는다!
핵심 단어
- 하나님을 선택함
- 하나님을 신뢰함
-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심
- 사람의 선택
- 하나님의 응답
-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함
- 마음이 완고함
- 이스라엘의 역사
-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무엘상 8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사실 타락이 시작되는 장입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보여 주는 거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신약시대에 이르렀다고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여전히 그 꼬라지 그대로입니다.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하듯 기꺼이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이 장의 주제를 저는 이렇게 정했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왕으로 선택하겠습니까? 사람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선택할 것인지, 사람을 왕으로 선택할 것인지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암에 걸리는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는 그렇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통계 자료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주변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일단 사람을 왕으로 선택하면 비극이 시작됩니다. 교회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제목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에게 경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이 이렇게 많고, 성경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장을 읽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자가 자신들에게 읽게 하려는 뜻을 읽어 냈을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는 정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읽어 보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는 사람은 적고, 타락 가운데 행하는 사람은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보여 주는 거울이다
저는 사역하면서 많은 사람이 저에게 사역을 받으러 오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그가 저에게 사역을 받으러 오는 것보다 마음속에서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제가 그를 위해 사역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버린 백성은 누가 사역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저도 좀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꼬라지를 보면 사역할 수 있으면 하고, 사역할 수 없으면 그만둡니다. 왜 사역할 수 없으면 그만두겠습니까? 그 사람의 문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까? 제가 하나님과 맞서야 하겠습니까? 그가 회개하기만 한다면 제가 그를 데리고 천 번, 만 번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어느 정도까지 자기 옳음을 고집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아집니다. 출애굽기의 이스라엘 백성이든 다른 성경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이든 거의 다 비슷합니다.
사실 사람은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저를 포함해서, 예전에 어떤 모습이었으면 지금도 여전히 그 모습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변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하듯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당신이 “나는 그런 꼬라지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떤 모습입니까? 제가 이런 말을 다른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하듯 변화된 사람이라면, 자신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왕으로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왕으로 선택하겠습니까? 당신이 저를 대가를 받는 스승을 찾아가듯 찾아온다면, 저는 마치 바퀴벌레를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입니다.
밥을 먹다가 고기를 씹는데 아주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를 씹어서 손으로 꺼내 보니 바퀴벌레였습니다. 그 느낌을 여러분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누군가 저를 스승처럼 대하면 저는 바퀴벌레를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두 번째에도 계속 저를 스승처럼 대한다면, 저는 마치 노린재를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노린재를 아십니까?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그 악취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비누로 씻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거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우리의 거울로 삼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습니까? 저는 마음속으로 매우 큰 감회를 느낍니다. 어느 정도로 감회가 깊으냐고요? 사람은 왜 이렇게 고집스러운가! 사람은 왜 이렇게 타락했는가! 사람은 왜 이렇게 자기 길로 치우치고 제멋대로 행하는가! 사람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가! 암에 걸렸든 걸리지 않았든, 중병에 걸렸든 걸리지 않았든, 모두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안의 근본적인 논리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계속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보여 주는 거울입니다. 이것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살펴보면 저주가 많습니까, 아니면 복이 많습니까? 저주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저주하기 좋아하셔서가 아니라, 사람이 저주 속으로 파고들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애굽에서 나와 광야로 들어갔지만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누구를 탓해야 합니까? 자기 자신을 탓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자기 자신을 탓해야 합니까? 안에 있는 것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만 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든 사람의 논리 체계 안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더라.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상 8:1-3)
이렇게 훌륭한 사무엘이 어떻게 이런 아들을 길렀을까요? 사무엘이 자녀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입니까? 제대로 교육해도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런 상황을 보고 사무엘에게 찾아와 말했습니다. “당신은 늙었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를 다스릴 왕을 세워 주십시오. 모든 나라와 같이 되게 해 주십시오.” 다른 나라들의 정치 체계가 좋습니까? 별로 좋지 않습니다. 사무엘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거슬리고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들이 버린 것은 네가 아니다. 네가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나를 버린 것이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왕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나라 중 번영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항상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으므로 그들이 네게 행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사무엘상 8:8)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말한 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그들을 엄히 경고하고 그 결과를 알려 준 다음, 그들이 어떻게 선택하는지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그들에게 선택한 후에는 이런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사무엘상 8:18)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반드시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겠습니다.” 정말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의 그런 것이 재미있습니까? 재미없습니다. 왕이 우리를 다스리고, 우리를 이끌며, 우리를 위해 싸워 준다는 것이 정말 그렇습니까? 그래서 사무엘은 이 말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좋다. 그들의 말대로 왕을 세워 주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무엘의 아들처럼 엉망인 사사를 만났는데도 철저히 변화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논리 체계보다 사람의 논리 체계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 어떤 나라가 대통령을 뽑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아주 흥분합니다. 무엇 때문에 흥분합니까? 대통령을 뽑는 일이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별로 큰 호감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이방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정말 나을까요? 지난 몇 년 동안 그리스도인인 기업주들을 보았는데, 대부분 별로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샌드위치 같은 사람입니다. 안에는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들어 있고 겉에는 영적인 외모만 있으니, 어떻게 좋아질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 봅시다. 당신의 선택이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과 도대체 얼마나 다릅니까? 앞의 장들을 읽어 보면 아무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참 감회가 깊습니다.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평안한 날들을 주시면, 돌아서서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고난의 날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날들이 좋은 것입니까, 아니면 좋은 날들이 좋은 것입니까? 정말 하나님께 아주 큰 난제를 안겨 드리는 것입니다. 원한다면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사무엘을 본받으십시오. 사무엘의 일생이 얼마나 좋았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고 평안하게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저는 의아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날들이 얼마나 좋은데, 사람은 왜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
지난 몇 년 동안 저의 가장 큰 의문은 교회에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비참하게 살면서 죽어라 기도해도 하나님의 응답을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죽으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왜 교회에는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한 무더기씩 쌓여 있을까요? 요즘 말로 하면 한 트럭씩이나 됩니다. 이해되십니까? 여러분이 어느 교회에서 왔든, 웹사이트에서 들었든, YouTube에서 들었든, 듣고 나면 분명히 “맞아, 바로 그래”라고 할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제가 과거에 본 것은 교회 안에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수없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힘든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안에서 세상의 논리 체계를 선택했기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여호와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로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만 잘났지”라고 말합니다. 저도 가끔 생각합니다. “당신이 잘하지 못하면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있는데, 비교하고 싶습니까? 비교하려면 한번 비교해 봅시다! 저와 경쟁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응답받는 기도가 한 무더기씩, 한 트럭씩 쌓인다면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보다 당연히 응답받는 기도가 좋은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제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다루는 것은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목회자가 어디 있습니까? 교회 헌금이 많아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목회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저는 교회 헌금이 많아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인 수가 많아지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교회에 큰 후원자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쓰레기를 많이 끌어들여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교회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이런 각오를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우 큰 씨름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계속 운영되려면 돈이 필요합니까? 필요합니다. 돈은 어디에서 옵니까? 헌금에서 옵니다. 이 논리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들리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돈은 헌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당신이 헌금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왜 헌금합니까?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헌금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의 헌금이 많다고 해서 여러분에게 감사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나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셨고, 오늘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보여 줍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예전에 자신의 목회자와 함께 선교를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의 목회자는 청중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작은 자들 중 하나에게 물 한 잔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의도는 아래에 있는 교인들이 자신과 함께 간 사람들에게 봉투를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선교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왔을 때 주머니가 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선교하러 간 것이 아니라 구걸하러 간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목회자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은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 작은 자들 중 하나에게 물 한 잔을 주어야 하는 것이지, 사람들이 우리를 작은 자로 여기고 우리에게 물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작은 자가 된 것입니까? 완전히 뒤바뀐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이 작은 자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큰 자가 되겠습니까? 밖으로 선교하러 나가 그 지역 사람들에게 복을 주면서도 자신을 작은 자로 여긴다면, 누구에게 복을 주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러 다니실 때 “나는 작은 자이니 물 한 잔을 달라”고 하신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논리 체계를 교회 안으로 모두 가져왔으니,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제 말을 듣고 이런 일을 보게 되면, 작은 자가 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고! 언젠가 제가 여러분에게 “작은 자에게 물 한 잔을 주십시오”라고 말하더라도 절대로 저에게 주지 마십시오. 그 작은 자에게 주십시오. 여러분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선택하고 대통령을 뽑는 일에 그렇게 마음을 쓰며, 영적인 분위기가 그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예를 들어 저를 반박할 수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사람의 논리 체계가 어떤 것인지 말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과거에 오랫동안 연구했습니다. 깨달은 후에는 하나님 앞에서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하듯 제 안의 세상에 속한 관념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한 관념을 없애자 하나님께서 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제가 돈이 부족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돌보실 것입니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부요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무엘 같은 사람이 사람들에게 돈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며 이익을 탐해야 하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거대한 염색통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들어 있다면, 그 머리를 마늘처럼 되도록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며칠 전 어떤 사람이 한 나라의 목회자에 관한 영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목회자는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 지회를 세웠고, 수십만 명을 데리고 그 나라에 모였습니다. 그 나라 정부조차 이 교회를 도왔습니다. 입장할 때는 100여 개의 국기가 줄지어 서 있어 아주 대단한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한마디 묻고 싶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여러분은 이게 무슨 일인지 보이십니까? 이것이 어떻게 영광스러운 일이 됩니까? 제가 보기에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하나씩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데, 기도원을 연 사람들은 큰돈을 거두고 있습니다. 집회가 장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일깨워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한 번에 오천 명을 모으신 다음 “나는 생명의 떡이니 너희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고 어리둥절해하며, 그분의 말에 문제가 있고 미쳤다고 생각한 뒤 모두 떠났습니다.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그들을 떠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가려거든 빨리 가 버려라!” 물론 뒤의 말은 제가 한 말이지만, 대략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후에 베드로의 시대가 되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본받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다녔다고 해서 예수님을 배운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걸러 내셨습니다. 오천 명이 왔을 때 그중 수십 명만 남아도 잘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오천 명이 오는 것을 보고 헌금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헌금하니 얼마나 멋진 광경이었겠습니까! 누가 부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이후 교회는 타락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사무엘 시대에 있었던 일이지만, 오늘날에도 우리 가운데 적용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잘못된 세상에 속한 관념을 지니지 마십시오. 100여 개 국가의 국기라니요! 그래서 어쨌다는 것입니까? 저는 그런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유명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무슨 목사라고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저에게는 명성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받은 목사라고 부릅니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불러도 됩니다. 나중에 베드로를 만나면 그가 제 앞에서 조금 난처해할 것입니다. 그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성경을 해석할 때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억지로 풀지 말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풀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게 됩니다.” 무슨 멸망입니까? 어떻게 멸망하게 됩니까? 일을 정직하지 않게 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교회가 이것을 배우고 예수님은 배우지 않습니다. 베드로를 본받는다면 예수님과는 너무나 멉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우리 자신에게 잘 물어봅시다.
제가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을 때에는 매우 아름다운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거하시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가? 내가 직접 해 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왔습니다. 한 사람씩 데려왔지만 결국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소망이 없었습니까?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큰 감회를 느꼈습니다. “내가 직접 해야 하는구나. 정말 힘들다!” 흘린 눈물을 모으면 아주 많았을 것입니다.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하듯 제 안의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철저히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이미 사무엘상을 한 번 살펴보았고, 이제 다시 전하면서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 안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려 살고자 하는 욕망이 매우 강한데도 여전히 사람의 논리 체계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사람이 인생과 죽음을 꿰뚫어 본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체계를 따라가게 됩니다. 인생과 죽음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정말 너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게 좋으면 계속 그렇게 살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출애굽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러했다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항상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으므로 그들이 네게 행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사무엘상 8:8)
“늘 그러했다”는 말은 바로 그랬고 계속 변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바꾸기 어렵습니다**. 출애굽 때부터 지금까지, 출애굽할 때의 모습이 오늘날에도 그대로입니다.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도 그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 모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목양하는 사람들, 우리 가운데 있는 작은 목회자들과 작은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사실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세상의 일들, 곧 돈과 가정과 직장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드리라고 하면 매우 어렵습니다. 누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정말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면, 제가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복된 사람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은 늘 그러했습니다. 태어날 때 어떤 모습이었으면 그대로입니다. 본래의 모습은 세상에 속한 모습입니다. 오늘날에도 게으른 그리스도인이 아주 많고 세상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도 아주 많습니다. 사실 그들은 세상을 사랑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변화할 때마다 하나의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것이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린 육체에 속한 것들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바꾸려면 반드시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해야 합니다. 한 번 껍질을 벗기고 또 한 번 벗겨야 변화됩니다. 그렇게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정말 들불은 꺼지지 않고 봄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늘 그러했습니다.
당신과 제가 사무엘상 8장을 읽었다면, 반드시 자신에게 자주 일깨워야 합니다.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나도 뼈를 깎고 독을 제거해야겠다.”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여러분은 한 단계 올라가게 됩니다. 다시 전쟁에서 승리하면 또 한 단계 올라갑니다. 마침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충만해지고 예수님처럼 살아갈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까?
사람이 세상에 속한 논리는 매우 혼란스럽다
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섬기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꿰뚫어 보지 못했다면 제 마음은 벌써 벌집 석탄처럼 구멍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상처 입히는 것이 습관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칼과 창이 뚫지 못하는 훈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그에게 잘해 주면 그는 당신이 자신을 속이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듣기 좋은 말로 그를 속이면, 그는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늙었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를 다스릴 왕을 세워 주십시오. 모든 나라와 같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였더라. (사무엘상 8:5)
사무엘이 늙자 이스라엘 백성은 “당신의 아들들이 당신의 길을 따르지 않으니 우리를 위해 왕을 세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일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나쁜 왕을 세우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무엘의 아들처럼 왕을 세우면 결국 똑같지 않습니까? 이것은 전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주 서로 전혀 관계없는 일을 꾸며 냅니다.
사무엘이 늙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필요 없어집니까? 사무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에 속한 왕, 다른 나라들의 왕과 같은 왕을 세우면 됩니까? 이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아야 합니다.
너희를 다스릴 왕은 이러할 것이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를 어거하게 하며 말을 어거하게 하고 그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좋은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사무엘상 8:11-20)
제가 한 암 환자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소소한 삶을 더 이상 살아서는 안 됩니다. 모두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잠재력을 잘 사용할 수 없겠습니까?” 저는 그가 복을 받기를 바랐지만,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보답도 없는 엉망진창인 일들만 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권하고 또 권했고, 장비까지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좀 편하게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말한 편하게 하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부담 없이 조금씩 해 나가라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죽음을 향해 가는 모습입니다! 사실 이것이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제 일이 아닙니다.
나중에는 그 사람도 저를 상대하기 싫어했고, 저도 그를 상대하기 싫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다만 그를 섬기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섬기고 나서도 도저히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다면 그만두면 됩니다. 사람 안의 논리는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오히려 저에게 “왜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십니까?”라고 합니다. 어떤 때는 우리 동역자들이 섬기는 사람에게 “당신이 이 일을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럼 내가 그 일은 제대로 했다는 말입니까!”라고 반응합니다. 동역자가 “당신이 이 일을 그다지 지혜롭게 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내가 그 일은 아주 지혜롭게 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논리입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는 정말 극도로 혼란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셔도 그들은 알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주 사람을 시험하신다
사무엘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은 강성한 나라였지만, 누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까? 여러분에게 숨기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저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가운데 평안하고 안정된 날들이 오래 지속되면, 이것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까?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다스리던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흐름을 따라 매우 형편없는 사무엘의 아들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성경에 기록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좋은 교재가 되게 하셨고,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아들이 매우 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못된 사람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이 논리 체계에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엄격하시고, 누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왕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사실 이런 문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발전해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주 사람을 시험하십니다. 그래서 나쁜 사사를 세워 그들에게 핑계를 주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시험을 받을 때 여러분에게는 천 가지, 만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어떤 환경에 있든, 어떤 상황에 있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우리를 저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를 저버린 것은 언제나 우리 자신입니다. 그런 삶에 싫증이 나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무엘이 등장하기 전 2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습니다. 사람은 늘 그러합니다. 사람의 논리는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그저 잘살고 싶어 하지만 결국 잘살지 못합니다. 20년 동안 고난을 충분히 겪고 나서야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늙자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하나님에게서 떠났습니다. “사람에게 견디지 못할 죄는 없지만, 누리지 못할 복은 있다”는 말이 정말 맞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사람이라면 고생을 톡톡히 하게 됩니다. 복을 누리다가 마음이 떠나 버립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자신의 목회자에게 자신은 하나님을 별로 경험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목회자는 매우 의아해했습니다. 사실 그 자매는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했지만, 순식간에 잊어버린 것입니다. 사람의 논리 체계가 혼란스러워지면 하나님의 시험을 받을 때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됩니다. 복을 누릴 수 있는데도 굳이 고난을 당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을 내려놓자마자 하나님까지 내려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단지 한 번 시험하셨을 뿐인데도 여러분은 미끼를 물어 버립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사무엘의 아들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곳에 두신 것입니다. 여러분을 시험해 보려 하신 것입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그야말로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무너져 참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하나님께서는 히틀러의 손을 통해 600만 명의 유대인을 죽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삶을 매우 중시했고 돈을 아주 잘 벌었습니다.
어떤 환경에 있든, 어떤 시험을 받든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여러분의 왕으로 선택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 안으로 들어가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죽으며, 생사 문제를 꿰뚫어 보십시오. 영원한 세계에서 썩지 않을 복을 추구하기 시작하십시오. 썩지 않을 복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영생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수십 년 동안 누릴 사소한 일들을 추구하면 하나님께서 진노로 갚으실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좋은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좋은가
여러분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자주 하나님을 버립니다. 그러니 다음 세대는 더욱 하나님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여러분이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좋은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면 무기를 발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말과 병거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강한 몸을 단련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싸우게 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마음이 완고한 대로 내버려 두신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어 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항상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으므로 그들이 네게 행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들어 주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려 주라 (사무엘상 8:7-9)
당신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두 주십니다.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저에게 “선생님, 이렇게 해도 됩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됩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은 본질적으로 얼마나 완고합니까!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들고 싶은 예도 많았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다시 일깨워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요구를 들어주신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완고하고 이미 자기 선택과 자기 판단을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 “하나님, 왜 저를 막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사실 여러분은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어떤 때는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제가 조상의 묘에 가도 됩니까?” 저는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정말 가도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까? 또 “이것을 진멸해야 할 물건으로 여기지 않고 제 손에 가지고 있어도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됩니다.” 제가 “안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사실 당신은 이미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묻겠습니까? 사람은 생사 문제를 꿰뚫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생사 문제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살아 있는 것에 관한 사소한 일 때문에 마음이 괴로워집니다! 마음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하십시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하나님을 선택하며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논리 체계를 계속 우리 안에 받아들이고 우리 안에 있는 논리 체계를 제거하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상 8장 본문
8: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더라.
8: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8: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8:4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
8: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이제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8: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는 그들의 말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8: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어 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항상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으므로 그들이 네게 행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8: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들어 주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려 주라.
8:10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다 전하여
8: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를 어거하게 하며 말을 어거하게 하고 그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며
8: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8:13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8:14 또 너희의 좋은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8:15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8:16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8: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8: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8:19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왕이 있어야 하리니
8: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8:21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8:2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주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