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大家好,《提摩太前书》第六章的主题是:“要为真道打美好的仗,持定永生”。保罗嘱咐提摩太打美好的仗,是因为他差点打不了美好的仗,如果能打的了美好的仗,咱就不讲这些。其实《提摩太前书》里头所嘱咐的这些东西不是很高大上,有些东西甚至很让人费解,但是如果套在提摩太身上,我觉得其中一个很重要的原因,就是因为提摩太差点因为钱被挪去,因为钱跌倒。现在咱们开始答疑解惑。
Q1:老师,为什么要拣选提摩太?
我稍微跟大家说一下:提摩太早先的时候有没有一颗爱神的心?有。但是有这么一颗爱神的心,然后他就特别爱服侍神,那时候他很年轻,也许他还不知道什么叫做爱钱。他那颗心就跟着保罗吃苦,提摩太因为爱神,然后跟着保罗一起服侍,学了很多东西,但是这人没见过大世面,有点悬。所以那个时候拣选他的时候,他真的爱神。
那我得跟你说,就是很多人后来做了牧师,年轻的时候都有一颗火热的爱神的心。后来就有点小问题。为啥呢?不是每场仗你都赢啊。如果每场仗都赢就厉害了,咱们就说这事儿,如果有一场仗打败了,就是钱财这一关,就完蛋,我看见这样的案例还蛮多的。所以拣选是照着你那个时候的状况拣选,后来你掉队了、跌倒了、垮下去了、打败仗了,那是后来的事儿。那你说神为什么让他打败仗?神不是让你打败仗,是你自己选择了以后就打败仗。所以我们要常常提醒自己,要为真道打美好的仗。其实现在我们很多弟兄姐妹连提摩太这个水平也达不到啊,那岂不是更要打美好的仗吗?
Q2:老师,我以前又胖又高,但容易累,现在矮了一些、瘦了,但有精神,这是好还是不好?
那你说呢?人感觉挺好就挺好。人常常感觉很累,那人其实胖了一些、矮了一些、瘦了一些,最重要的就是人得知道自己的状况。如果高能够决定人的健康,那就不太对了。但据我所知道的,很多个子很高的人身体并不一定健壮,看起来不高不矮的,浑身是劲的人还蛮多的。现在很精神,感谢主啊,我恭喜你,你现在继续不断地向前奔跑,不要以肉体为标准,多以神的敬虔为标准。
Q3:老师,胆小怎么对付?我觉得我就胆子小,遇事就害怕。
多遇点事就好了。我就给大家举个例子,我训练人考驾照有一个特点,找一个空旷地,我也不找教练,我自己带着,我就是教练。那人家说你这不是违法吗?城里的马路上有违法,高速上有违法,是吧,操场里有操场的法。我就带他去了一个空地,我在讲怎么对付惧怕啊。
这个人刚刚上车的时候呢,他就特别害怕,车已经很慢了,每小时二十公里的速度,他都觉得车是很快的,就害怕。我说:来,看到了没有,前面大概有三百米的空旷地,你啥也不用动,就抓住方向盘,反正操场上也没人,拼命踩油门,把车开到每小时七十公里。当然了,每小时七十公里,那三百米的路,他也得开一段时间呢。然后,快到那个操场的那边了,我说:刹车,停。一停,把车调过头来,嗡,又开过去了。到那头,又调过头来,嗡,又开过来。我说:咱再开每小时二十公里。他发现开每小时二十公里,哎呀,一点也不快,害怕的感觉没了。
那我想告诉大家一个什么事呢?就是人见的世面少,经历让我们害怕的东西太少了。常常经历很害怕很害怕的东西,后来没事,后来你再遇到那些小事就不害怕了。那最近因为我的服侍,其实我们以前的小牧者服侍了好多个月,该有大半年了吧。哎呀,这个人惧怕就是除不掉。她躺在床上就害怕,需要有人陪她睡觉。可是老公又车祸死了,就她一个人,没有人陪,经常找人,人家都烦她,哪有时间陪你睡觉。结果呢,我这一服侍,服侍完了,这一两天,啥事没有了,什么也不怕了。她妈也是害怕,然后我也服侍了一下她,她妈也好了。这个小牧者说:老师,你咋服侍的?
我咋服侍的?其实我告诉你,惧怕它一定是个灵界的东西。就是个感觉,你别怕。惧怕的人觉得不行,那个感觉很真实,因为它是个属灵的世界。悟性上要通,这是第一件事,第二件事就得自己去操练。我想你害怕是很容易胜过的,害怕是个很小的鬼,就是个感觉而已。
Q4:老师,请讲讲提摩太是怎么死的,《圣经》里有吗?
没有,后来提摩太在《圣经》里的贡献是零。为啥呢?我也不知道,为什么他没写什么东西?后来他写没写什么东西我们就不知道了。但是呢,我查一些有人记载,至于是不是真的我也考察不了,就是他是在拜偶像的人,扛着他们的偶像游行的时候,拦阻人家,结果被人打死了。
你要问我要不要干这样的事?我觉得干这样的事,是不是脑袋不太好使?这什么脑子去干这事呢?人家妈祖绕境,你去拦人家,那不是没事找事吗?我脑袋里头很清楚,我来到这世上,我只有一个命定:建造神荣耀的教会。至于那些不信的人愿意干啥干啥。他们同性恋,好好地去恋吧,跟我没关系。那我干啥?我管理教会,牧养神的群羊,我只干这事,别的我不干,扯淡的事我不干。
我猜提摩太为什么那么死的?因为是保罗殉道以后,其实提摩太大概又服侍了二十年。这二十年没有保罗的提醒,没有保罗的管理,其实脑袋有点乱。
Q5:老师,建教会不收奉献是不是就容易避免贪财,好打美好的仗?
建教会不收奉献,那问题是神让你收,所以说,你到底是自己发明了一套东西呢,还是照着神的话做?我可告诉你,为什么神要收奉献,神不怕有几个教会的牧师跌倒,真的不在乎,谁跌倒就跌倒。为啥呢?因为建造教会希望每个人都在神的荣耀上有一份,听明白了吗?
建教会,你奉献,神的荣耀有你一份。比如说,摩西建造帐幕,鼓励大家奉献,为啥?神的荣耀每个人有份,你不奉献就没有你的份,不带你。如果你说:那我不奉献,你还服侍我吗?这话说的,我服侍你也不是为了钱哪,我服侍你,是希望你能够认识真神,我不是为了你的钱,为了你的钱,我干这事干啥呢?没有必要。
当然了,服侍神是所有世上最好的事,服侍神是世上最好的工作。但是你真的不能为了钱。那如果教会的牧者,至于咱们当中的小牧者,在这个事上跟我有没有同样的看法,我也不知道。但你问我,我一定告诉你真话,我真的不希望大家不明不白地非要奉献。不明不白地非要奉献,整完了干啥呢?咱们其实千万别搞错,奉献是你奉献给神,奉献不是奉献给牧师。
Q6:老师,我与人交流和文字的阅读特别容易生成画面。一段恐怖的文字,我妻子读就是文字而已,我读完脑子就直接生成恐怖的画面,经常这样都是负面的画面,把自己搞得挺痛苦。
我跟你讲,你跟灵界的接触,尤其是跟鬼的灵界的接触很近。像你这样的人必须必须好好信主。我跟你讲,信着信着,这些东西就不能够搅扰你。你会发现生成了,它也不能把你怎么样,不生成也不能把你怎么样,听得懂吗?
你要开始在悟性中快速地成长,多梦和多言,其中多有虚幻。比如说,我做梦,我手拽着一个人,在楼空的那个地方,在楼梯的那个扶手拽着一个人,他的手好滑,我的手也好滑,做了一个梦,呲溜一下,没抓住,然后就从那个很高很高很楼空的地方,然后"啪",“啪”完了,我醒了,妈呀,吓我一身冷汗,因为我都死了,多死一个不多,少死一个不少。我就想这个事瞎做了一个梦,多有虚幻,我不受这东西的影响。所以你开始养成不受这影响,鬼再释放这东西就没有用了。
Q7:老师,外面有一些基督徒的商人团契,他们是通过《圣经》学到如何做生意的心态,然后像这样的聚会有必要去参加吗?目的就是带人,也有拉人头,没什么特别的。
我告诉你,啥都可以去。如果你是个生意人,你得做生意啊,你得做事啊,扩大一点接触面,他们做他们的,你也做你的。商人团契嘛,所以做一个小平台挺好,该去的就去。
比如说,像校友,大家一起上学,然后同学聚会。大家互相交流:哎呀,你做啥的,我做啥的,然后能不能介绍一下,人家有介绍当然好了。所以这些事虽然它不是耶稣基督的道,但是做一个事是可以的。
所以去参加也别听他们讲那些乌烟瘴气的东西,讲的东西也没什么体系。我自己就去过,跟他们也保持了一些联系。我也不太需要做啥,但人家如果要透过那个团契卖我保险、卖我P2P的产品,那我不买,我也不太容易上当。所以你们去呢,第一,要小心别被人家骗了;第二,好好利用这种团契的关系,该做啥做啥。能做点生意做点生意,能卖点啥就卖点啥。
Q8:老师,我要参加技能比赛,心里想着不用怕,但是想到那么多人看着还是提前害怕,怎么对付才能不那么想?
其实不用管,等你站在那个台上一比赛,一专心做事的时候,好像也没什么好怕的。很多人考试,说:老师,我害怕。走到那考场里头,啥事没有了,考完了就完了。想不想都没关系,想就想点呗。其实人活着很多时候,这个争战就是跟自己呀。
Q9:老师,问一个属灵的问题,有一位顾客晕车,我说很简单,走之前我带你做一个祷告就好了,他说可以提前一天祷告吗?我不知道怎么回答他了。
提前一天,提前两天,提前半个月都行。我告诉你,你凭着信心,神会照着你所信的成就。
Q10:老师,我不想因为服侍跌倒,在属灵高度还不太够的时候做一个小牧者,不领教会的工资是不是容易避免贪财?
贪财是个心态,跟我们领还是不领一点关系也没有,该领的领吧,你不领,别人领。而且我还有一个很重要的逻辑,这个大家一般的人不认同,但如果你是不一般的人,你应该没啥太大的问题。世上的钱财在耶稣的眼里叫做不义的钱财。
世上所有的钱财,不管是红色的还是绿色,不管是人民币还是美金,在耶稣眼里都是不义的钱财。如果我们把钱财这东西看得稍微透一点,拿了就拿了,不拿就不拿,其实大家千万不要太在意这事。人不会因为拿了这个就变富有,也不会因为不拿变贫穷,大家得接受。
我们有几个很重要的逻辑,是一般的人没有办法去想,也很少去想。一个是人活着是虚空,那你问我钱是不是虚空?是啊!那不义的钱财是虚空,当钱财无用的时候就是你死了、离开这个世界的时候,钱财无用,真的是虚空,也就是个不义的钱财。这不义的钱财能为你延长寿命吗?不能。能为你得永生吗?不能啊。
所以说,人把这个钱财看得再透一点,再透一点。我鼓励大家别那么计较这玩意儿。有了也不会富有,没有也不会穷的,拿了就拿了,不拿就不拿。我是不觉得这是一个什么了不起的事,跟贪财没有关系。可能有的时候,不拿更容易变得贪财。当然你如果还有其他的问题,你可以安排你的牧者,我单独可以给你做答疑。
Q11:老师,上次在工作中领导故意找事,提出无理的要求为难我,违背了我的工作职责,我不愿意去顺服。有时候祷告神赐智慧,不去搭理,但怒气来的时候就管不住自己跟他理论,然后心里就有各种不舒服、纠结,觉得自己缺乏智慧。最近在这样的事上操练自己,怎样才能活得不认真,不被人拿捏?
哎呀,我想我教你的可能会让你难落实。如果难落实,不要怕,一点一点琢磨。这个领导难为你为啥呢?为什么提无理的要求为难你呢?你得问这个问题。因为你就是这样的人,他不提无理的要求为难你,他总觉得难受。听明白了吗?
比如说,我以前管员工,我看着一些人不顺眼,他也真是让人不顺眼,那我为难他不正常吗?我要让一个员工难受,那是很容易的。上司要让一个下属难受,那是很容易的,除非你离开。那我呢,我必须跟我的上司把关系搞好。就算是我在这个地方干,不知道干多久,只要我还在那儿干的时候,我跟我上司的关系必须搞好。听明白了吗?
那他为什么会难为你?因为关系不好。有一个老牧师曾经教我一句话,挺有意思,他说:有关系了就没关系,没关系了就有关系。大家听得懂这种话吗?大概只有中国人能够明白这句话。如果你跟你上司关系很好,然后你犯了错就没关系。如果你跟你的上司的关系不好,那你没犯错,也有关系。中国人这词翻译不了,很难。也只有中国人能讲出这种弯弯绕,但事实上它却是非常好的一个逻辑。
那我们人一定要学会搞好关系。我想你应该不是一个会搞关系的人。全世界的公司,不管是国内的还是国外的,你到哪儿都会遇到这样的事。那遇到这样的事,咱怎么能够解决根本问题?根本问题跟老板的关系、上司的关系搞好。
那我曾经说,哎呀,我是共产主义接班人,但是很多人就觉得,谁是我的国家?谁是我的公司?谁是我的雇主?我问你,新加坡政府是我的雇主,那新加坡政府是谁呢?难道是最上边的那个总理吗?他也不认识我。
其实没那么远,我告诉你,对我来讲,新加坡政府就是我的上司,充其量就是我上司和上司的上司。如果他们就是我的新加坡政府,就是我的雇主,就是我工作的公司、工作的企业。我的上司和我上司的上司,其他人跟我没关系。那我跟我上司和上司的上司搞好关系,我在这间企业里,工作就开心。听明白了?
如果将来有一天你做到省长了,哎呀,那就更模糊了。谁是你的上司?很乱。一百来个部委,你说哪个不打点好都不行,所以说不是人家要拿捏你,是你经常愿意、喜欢把自己搞到被人拿捏。
所以我想今天一旦有裂痕,好好的去修复,学会夹着尾巴做人。整天尾巴翘得老高的人,不修理你修理谁?就在老板面前认怂,你怎么整?我怂,我夹着尾巴做人。
你说:老师,那叫神的尊贵吗?不,这叫做智慧,听懂了吗?别翘尾巴,别以为自己了不起,就觉得自己是个狗屎,就好办了。
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디모데전서 6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6장에 이르러 저는 바울이 왜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는지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디모데라는 청년은, 제 생각에 이때 이미 나이가 적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20대 젊을 때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지만, 40대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할까요, 아니면 사랑하지 않게 될까요? 제가 말씀드리자면, 슬슬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왜 문제가 생길까요? 40대가 되었을 때, 바울은 왜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을까요? 디모데가 돈 때문에 넘어질 뻔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20대는 뜻과 열정이 넘쳐서 재물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40대쯤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60대가 되면 또 다른 형편에 처하고, 70~80대가 되면 또 전혀 다른 형편이 됩니다. 40대가 되면 이 사람도 돈이 있고 저 사람도 돈이 있는 것을 보며 몹시 부러워하게 됩니다.
디모데는 이때 싸움을 싸워야 했습니다. 어떤 싸움을 싸워야 했을까요? 진리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해야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진리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쓴 것을 두고, 마치 디모데가 이미 선한 싸움을 잘 싸운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디모데라는 인물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 이를 때, 디모데는 재물에 대한 관점에 변화가 생겼던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와, 젊을 때는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나와서 하나님을 위해 죽겠노라 굳게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개척하고 40대쯤 되었을 때, 무너져 버렸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목회하는 40대 목사는 참 매력적입니다. 강단에서 설교할 때 손을 한번 휘젓고, 찬양 인도를 할 때 얼마나 멋집니까! 의기양양한 모습에 아래에 있던 자매들의 마음이 사로잡히고 맙니다.
제가 알기로 이런 상황에 처한 목회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짝사랑하는 사람도 많고, 드러내놓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고, 차마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고백을 받으면 끝장나고 무너져서 사랑에 빠져 버립니다. 사랑에 빠지면,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만, 연애하는 데 돈 안 드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다 돈이 필요합니다.
디모데도 과연 그랬을까요? 제 추측으로는 그랬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그 목사님들도 40대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아, 아이가 자라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끝난 것입니다! 이러면 선한 싸움을 제대로 싸우기가 어려워집니다. 마음에 걸리는 염려가 생기면 승리하겠습니까, 패배하겠습니까?
예전에는 혼자였지만, 아내가 생겨 둘이 되고, 아이 둘이 생겨 넷이 되고, 아이가 셋이면 다섯 명이 됩니다. 혼자일 때는 나 하나 배부르면 온 가족이 배부른 법이라, '내가 죽어도 20년 뒤면 다시 당당한 대장부로 태어날 것이다' 하겠지만, 자식을 보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 이때 디모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쓸 때, 디모데는 이미 바울과 약 20년을 함께 사역했습니다. 디모데가 20세에 사역을 시작했으니 20년이 지났다면 40세 안팎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때는 디모데가 하나님을 아주아주 사랑하고 있어서가 아니었고, 이미 선한 싸움을 훌륭하게 싸웠기 때문도 아니었으며, 사역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온전히 합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참 충성스러웠지만, 이제는 물음표가 붙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내 아들 디모데야, 너는 진리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라." 결국 나중에 디모데는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그래도 잘 고쳤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디모데후서가 나오지 못했을 테니까요.
돈을 탐내다가 미혹을 받아 진리에서 떠난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돈을 탐내다가 미혹을 받아 진리에서 떠났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진리에서 떠난 사람이 스스로 진리에서 떠났다고 느낄까요?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말합니다. "나는 여전히 주님을 믿고, 여전히 내게 주신 사명이 확실하며, 여전히 내 하나님을 깊이 사랑합니다." 그러나 뼛속으로는 돈을 탐내다가 미혹을 받아 진리에서 떠났다는 것을 남들은 다 아는데, 오직 자기 자신만 모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9-10)
나중에 저는 묵상해 보았습니다. 돈을 탐내다가 미혹을 받아 진리에서 떠난다는 것 말입니다. 관직에 오른 어떤 사람은 돈의 유혹에 빠져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부패로 인해 진청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진청은 감옥입니다. 돈을 탐내는 것에 대해 여러분께 말씀드리자면, 돈을 탐내는 것은 만악의 근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돈을 탐내게 될까요? 반드시 마음에 얽매인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주님을 믿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자가 되려 하며, 부자가 되려 하면서도 주님을 믿으려 합니다. 여러분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그가 전하는 말씀은 분명 진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들만 조심해야 할 뿐 아니라 여러분도 조심해야 하고, 저 자신도 몹시 조심해야 합니다. 왜입니까? 재물은 정말로 사람을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 감사하게도, 사도 바울은 혼자 먹고살면 온 가족이 배부른 처지였으니 돈을 가져서 무엇하겠습니까? 그에게 돈은 별 쓸모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자녀가 여럿 있다면 필요하게 됩니다.
디모데가 갓 사랑에 빠졌을 때, 노래 가사처럼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당신은 나를 선택했고, 나는 당신을 선택했네." 바다와 산에 맹세하듯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뒤, 여러분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앞으로의 삶과 나날들을 계획해야 하고, 결국 어떻게 됩니까? 재물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문턱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며, 왜 진리에서 벗어났을까요? 다 이 길을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사랑을 위해, 사랑과 재물을 위해 진리를 배반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돈을 탐내다가 미혹을 받아 진리에서 떠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일까요? 혹시 디모데가 연애하던 상대방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니 자세히 살펴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사람이 돈이 없을 때의 고통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서 돈을 사랑하면 고통이 배가 됩니다. 그러다 돈이 생기면 돈을 잃을까 두려워 고통이 또 배가 됩니다. 가끔 보면 참 흥미로운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살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1억 달러의 재산이 있었는데 이리저리 굴리다 100만 달러만 남게 되자 자살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니, 아직 100만 달러나 남았는데 왜 자살을 하지? 그 100만 달러를 다 쓰고 나서 자살하면 안 되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100만 달러 때문이 아니라, 1억에서 100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억과 100만은 차이가 큽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돈이 없으면서 돈을 사랑하면 근심이 깊어지고 매우 괴로워집니다. 만약 가난하기만 하다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며 약간의 근심, 기껏해야 가난으로 인한 근심일 뿐입니다. 하지만 가난하면서 돈을 사랑하면 근심이 배가 되고, 가난하지 않고 돈이 있는데 그 돈을 지키려 하면 근심이 또 배가 됩니다. '당신은 남 일처럼 쉽게 말한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말씀드리건대 이것이 바로 돈을 탐내다가 미혹을 받아 진리에서 떠나는 일입니다.
무슨 진리에서 떠난 것입니까? 바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잊어버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왜 사는지 모른 채, 돈을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인 줄 압니다. 그렇게 계속 살아보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고, 삶의 구멍이 점점 더 커집니다. 구멍이 커지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돈이 더 많아지면 구멍은 더 커집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으면서 돈까지 탐낸다면 결코 하나님의 진리를 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입니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삼는 자들
저 사람을 보십시오, 참 경건해 보입니다. 그런데 왜 경건할까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돈의 복을 더 많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둘러보면 누가 돈을 사랑하고 누가 주님을 믿는지 정말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싸움은 바로 돈과의 싸움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돈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이미 돈을 사랑하기로 선택했지만, 교회를 떠나고 싶지는 않다.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합니다. 끝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진리에서 떠났습니다. 진리에서 떠났으면서도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스로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승리하는 교회도 떠날 수 없어.' 왜 그렇습니까? '여기 있으면 축복을 조금이라도 더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이 내게 더 많은 재물의 복을 주실 수 있으니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디모데전서 6:3-5)
이해가 되십니까? 그 사람, "그"는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 안의 부자들입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돈이 있고, 돈을 사랑하며, 그러면서 주님도 믿습니다. 부자들은 걸음걸이부터 다릅니다.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오직 변론과 언쟁만을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디모데가 교제하던 자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었고, 교회 안에서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삼는 자들이었습니다.
제 마음에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예전에 제가 계산을 한번 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들을 보면 밖으로 나가 설교하는 것을 유독 좋아합니다. 이 교회에서 설교하고 저 교회에서 설교하며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려 합니다. 왜 지명도를 높이려 할까요? 유명해지는 것은 돈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유명해지면 많은 교회에서 설교 청빙을 합니다. 그 교회가 작은 교회면 가지 않습니다. 500명, 5,000명, 1만 명, 3만 명 규모의 교회라면, 한 주 가서 설교 한 편 하거나 수련회를 인도할 때 뒤에서 사례비 액수를 흥정합니다. 다 정해진 몸값이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강사를 초청하지도 않고 그럴 돈도 없으니 제가 직접 설교합니다. 이것이 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설교에 5천 위안이라면, 열 번 설교하면 5만 위안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교회가 어떤 판으로 변하기 쉬운지 보게 됩니다. '당신이 우리 교회 와서 설교하면 내가 사례하고, 내가 당신 교회 가서 설교하면 당신이 사례하고', 이렇게 이익의 방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례비를 안 주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않느냐' 하겠지만, '우리는 둘 다 영생을 추구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이니 이번에는 그냥 무료로 설교해 주십시오' 하면 죽을 맛이 아니겠습니까?
자기 교회는 제대로 돌보지 않고 온종일 밖으로 돌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돈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럴듯하게 "하나님 나라 사역을 추구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경건 때문이다"라고 포장합니다. 사실은 무엇입니까? 겉으로는 경건의 모양을 띠고 실상은 이익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속의 비밀을 깊이 알고 있지만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고상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다가 점점 돈을 사랑하는 자로 변해버린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심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목숨을 거두어가실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왜 이런 글을 썼을까요? 디모데가 바로 이 부분에서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돈 문제에 관해 많은 사람이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다면, 이런 혼란스러운 꼴을 보지 않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만약 다른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신다면 천천히 묵상해 보십시오. 참 기막힌 일들이 많지만, 여러분 눈에는 잘 보이지 않거나 온전히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매우 치열하고 엄중합니다. 말씀드리자면, 한 청년이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장차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왜 목사가 되고 싶으냐?"라고 물었더니, "부모님이 전도자가 되면 돈을 아주 많이 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부모님이 그걸 어떻게 아시더냐?" 물었더니, "우리 고향 시골 마을 목사님들을 보면 다 큰 집을 지었거든요"라고 하더군요. 물론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일 수도 있으니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청년의 마음가짐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이 아셔야 합니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싸워야 할 선한 싸움 중 가장 훌륭한 싸움은 바로 맘몬을 이기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맘몬을 이길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맘몬을 이길 수 있습니까? 이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 말하자면 온갖 구린 구석들이 많습니다. 국내에서 목사들이 유독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에서 "나 전도하러 떠납니다"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전도하러 가는 데 경비가 필요하니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돈을 헌금합니다. 한 바퀴 돌고 돌아오면 교인들이 묻습니다. "목사님, 사역은 어떠셨습니까?" 그러면 "아주 좋았습니다. 많은 간증이 있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면 또 떠납니다. 얼마나 위대해 보입니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참 기막힙니다.
어떤 이들은 개인에게 헌금하는데, 명심하십시오. 교회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개인이 제게 주는 헌금을 절대 받지 않으며, 우리 교회에는 그런 관습이 없습니다. 헌금하려면 교회에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지금 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 집안에 디모데를 몹시 사랑하는 딸이 있고, 집안에 돈이 많아 담대함과 자신감이 넘쳐 디모데에게 고백했는데, 디모데가 보기에 그 혼처가 꽤 괜찮아 보였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러저러하게 물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쓸 때, 디모데는 약간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이 집안은 참 좋은 분들인데. 교회에서 물질로 헌신하고 수고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왜 저들을 가리켜 교만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며,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잃어버린 자들의 다툼이라고 하시는 걸까?' 디모데는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그 가족은 참 좋아 보이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다 좋아 보이는 법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유한 자들에게 명하라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6:17-19)
이 세상에서 부유한 자들에게 명하라 했는데, 누구에게 명하라는 것입니까? 바울도 야고보서처럼 부유한 자들을 보며 속이 불편해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이들이 돈이 있어서 교만해지고, 쓸모없는 재물을 의지하며, 만물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선을 행하도록 명하라고 했는데, 만약 디모데가 이미 그렇게 권면하고 명했다면 바울이 굳이 이 말을 쓸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그들에게 이렇게 명하지 못했습니다. 그 집안에 대고 그렇게 명할 담력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 집안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큰 사업가들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이른바 언쟁과 변론거리를 수없이 만들어 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전한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순종하지 않으며, 온통 뒤틀린 것들만 가르쳤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상황은 지금까지도 흔하게 존재합니다. 왜입니까? 그들이 교회 안에서 헌금을 많이 내는 큰손이면서도, 정작 자주 전하는 것은 그럴싸하지만 틀린 이론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디모데가 싸워야 할 그 선한 싸움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순전한 복음을 굳게 지켜내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순전한 복음이 교회 안에서 온전히 보존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돈 있는 자들을 보면 누구나 높여주고 존경하며 "와, 대단한 사장님이다!"라고 치켜세웁니다. 그러나 실상은 디모데가 이런 일들을 피하고 도망해야 하며, 그들에게 명해야 했던 것입니다.
디모데는 본래 담력이 작았는데, 부자들을 보면서 "이보십시오, 당신은 온전히 선을 행해야 합니다"라고 명할 담력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디모데에게 간이라도 두 배로 부어주지 않는 한 감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물며 그 집안사람들과 모종의 관계까지 얽혀 있었으니, 그로 인해 상황은 더욱 뒤틀렸고 디모데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디모데가 훗날 행한 몇몇 일들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디모데는 길거리와 큰 도로에서 신전 사람들이 우상을 메고 행진하는 것을 보고 달려들어 싸움을 벌이다가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저는 참 의아했습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메고 길을 가든 말든 그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거긴 왜 뛰어듭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지, 왜 거기에 뛰어듭니까? 담력을 키우려고 그랬습니까? 참으로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모습입니다.
만약 사람이 돈을 벌 능력이 있다면 돈을 탐내겠습니까? 돈을 벌 줄 아는 사람은 돈에 그리 집착하지 않습니다. 돈 벌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엉뚱한 짓을 하니 얼마나 치명적입니까? 돈 벌 능력이 없으니 돈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형제자매들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저에게 "선생님, 저 사람들이 선생님을 이렇게 저렇게 이용해 먹고 돈을 어떻게 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내가 돈을 사랑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내 자신이 곧 돈이고, 나는 돈보다 훨씬 값진 존재인데 내가 왜 돈을 사랑하겠습니까?"라고 답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역자가 능력은 없고 오직 설교만 할 줄 안다면 참으로 골치 아파집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느헤미야가 돈을 사랑했겠습니까?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황제로부터 인사 발령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서 유다 총독이 되었습니다. 그가 돈이 부족했겠습니까?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사랑했겠습니까?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그는 무슨 일을 하든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형제자매들에게 권면합니다. 겉으로만 경건한 모양을 꾸미고 실제로는 아무 일도 못 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 사역자들은 반드시 일도 잘해야 합니다. 가난하면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오직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것만 할 줄 안다면 완전히 망하는 길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느헤미야와 같은 시대에 에스라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학자로서 성경을 가르치고 강론할 줄만 알았지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하는 데 있어서 에스라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유한 자들에게 명하여 조심하게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많은 사람이 돈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모른 채 헤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디모데가 여러분의 온전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모데라는 사람에게는 종교적 색채가 너무 짙은 면모가 있었습니다.
네게 위탁한 것을 지키라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디모데전서 6:20-21)
또다시 진리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 때, 정말 심장과 간이라도 다 꺼내 보여주고 싶은 심정으로 디모데에게 더 이상 그 길로 가지 말라고, 더 가면 망하고 완전히 무너진다고 간절히 권면한 것입니다. "네게 위탁한 것을 지키라." 본래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라고 사명을 맡겼는데, 거기에 가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세속의 헛된 말"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세속의 헛된 말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돈 이야기를 빼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세속의 헛된 담론입니다.
"선생님, 돈 버는 것이 문제란 말입니까?"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돈을 버는 것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버느냐에 달려 있으며, 돈 버는 방법 중에는 매우 위험한 것들이 많습니다. 한번은 제가 몇몇 교인들에게 일하는 법을 배우라고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쓴 『왜 일하는가(干法)』라는 책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쓴 책은 일하는 태도 면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고 꽤 탄탄하고 실용적입니다. 저는 어떤 자매가 매사에 무능력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들을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가 디모데와 비슷했던 것입니다. 책을 다 읽더니 이나모리 가즈오를 위대한 대가로 여기며, 그때부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이나모리 가즈오를 신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나모리 가즈오가 암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암으로 죽을 때는 몹시 고통스럽습니다. 일하는 방식을 배우라고 했지, 그를 따라가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만이 참된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나모리 가즈오도 암에 걸려 죽었는데, 당신이 암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명심하십시오. 일하는 법은 그런 사람들에게서 배울 수 있지만, 그것을 '진리의 도'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도의 차원이 아니며 기껏해야 일하는 '방법(술)'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온통 이나모리 가즈오에게 바쳐버렸습니다.
또 어떤 자매는 종종 저에게 "선생님, 쩡스창이나 이나모리 가즈오 같은 분들을 보세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끝난 것입니다. 이미 디모데처럼 된 것입니다. 당신에게 온전히 맡겨진 진리의 도는 제대로 믿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 사람들은 다 암으로 죽었습니다! 쩡스창이나 이나모리 가즈오를 배우려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암에나 걸리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참으로 마음 깊이 탄식이 나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일도 잘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도'가 아니라 기껏해야 '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술은 단지 일하는 요령일 뿐이며, 도와 술은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생명의 도입니다. 돈 있는 몇몇 사람을 보면 넋을 잃고,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을 보면 또 넋을 잃어서,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의 도마저 세속의 헛된 담론에 다 날려버립니다. 제가 분류해 보자면, 쩡스창이나 이나모리 가즈오의 이론은 기껏해야 일하는 요령을 가르쳐주는 '술'에 불과하며 그렇게 대단하고 고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주 예수님은 전무후무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다리 저는 자를 걷게 하시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보다 더 뛰어나신 분이 어디 있습니까? 왜 예수님을 옆으로 밀쳐두고 그런 사람들을 가져다 놓습니까?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네게 위탁한 것을 지키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진리를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디모데전서 6:11-14)
이것이 바로 참된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까?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생명의 도이며, 영생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이생에만 머물러 있다면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의 삶은 헛된 것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임을 여러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살아가는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이런 헛된 일들을 피하고 세속의 헛된 담론을 피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다 세속의 헛된 담론이 아닙니까? 다 이생에 뿌리를 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생의 기초는 헛되고 헛되며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언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까? 재물의 유혹에 직면했을 때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고 무능력할 때도 참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왜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습니까? 사실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일할 때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절대 이상한 사람이 되어 일은 하나도 못 하면서 입으로만 "할렐루야" 1등을 외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렇게 해서는 싸울 수가 없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능히 일을 잘 해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혜를 주시려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것입니다. 육신을 위하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육신을 위하다 보면 결국 어디에 도달합니까? 하나님의 진노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사역하면서 마음에 탄식이 가득할 때가 많습니다. 난소암과 장폐색에 걸린 분이 계셨는데, 어젯밤에 우리 청년 목회자가 밤새 그분을 섬겼습니다. 열도 나고 통증도 심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살 날이 며칠이나 남았겠습니까?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돈을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뼛속 깊이 여전히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참으로 마음에 탄식이 넘쳐납니다. 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며, 여전히 이 땅에서 살고 싶어 안달합니다. 살고 싶다고 해서 오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100세까지 산다 해도 결국 이 문제를 마주해야 합니다.
이생의 삶에 너무 목숨을 걸고 집착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일을 열심히 해야 할까요? 맡은 일을 성실히 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이며, 세상에서 수고하는 중에 낙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수고하여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돈만 벌다 끝나는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당부합니다. 이런 것들을 피하십시오. 다 헛된 이야기입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을 살려낸 대단한 사람 아닙니까?"라고 하겠지만, 다 헛된 담론입니다! 왜 헛된 담론입니까? 인생 자체가 헛되고 헛된 것인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느 날 제가 비행기를 타고 내려 핸드폰을 켜니 첫 번째 뉴스로 이나모리 가즈오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떴습니다. 그는 일생에 걸쳐 '위대한 헛됨' 하나를 완성했을 뿐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이 기초 위에 신앙을 세우지 않는다면 제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그럴듯한 것들이 많아서 이 일로 흔들리고 저 일로 요동하며 온갖 것들에 흔들리지만, 정작 예수님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사람이 이생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주님을 온전히 믿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 위에 진노를 더할 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미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 아래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고집을 부립니다. 하나님과 씨름하고 다투어본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생명을 취하고자 하실 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결코 막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왜 스트레스를 받습니까? 왜 불안해합니까? 왜 괴롭습니까? 다 이생의 하찮은 일들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허무에 빠져 속세를 떠나 은둔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에서 살아가되,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을 위해 살 때 여러분은 영생 안에 거하게 됩니다. 진리를 위하여 이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참되신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참 하나님을 알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디모데전서 6:15-16)
바울은 글을 써 내려가며 감격에 찼습니다. 기약이 이르면, 당신에게도 당신의 때가 있고, 저에게도 저의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세상을 떠난 자들이 당신 곁에 보인다면 기약이 이른 줄 아십시오. 천군 천사들이 당신을 둘러싸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 한다면 그때가 이른 줄 아십시오.
인생이란 것을 꿰뚫어 본 사람이라면 더 이상 이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기 위해 힘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위대하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영생이라 부르고, 마귀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영원한 죽음이라 부릅니다. 이생의 삶은 단지 무대 위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나뉘게 됩니다. "너는 저기로 가라" 하실 때 "저는 안 갑니다!" 해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이들에게는 "너는 여기로 오라" 하실 것입니다. 여기가 될지 저기가 될지는 당신의 선택과 삶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믿지 않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의사를 떠올립니다. 살고 싶다면 의사를 온전히 의지해 보십시오. 의사를 의지하면 그에 따른 결말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을 굳게 의지합니다. 말씀드리지만, 선한 싸움을 싸울 때 가장 치열한 싸움은 바로 돈과의 싸움입니다. 돈을 위해 살면 돈 때문에 죽게 됩니다. 돈이 약속하는 것들 중 그 어느 하나도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다 실제로 이루어지고 성취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디모데전서 6:1-2)
우리의 삶은 이생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의 집에서 종으로 일하고 있는데 마침 주인이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인의 인도로 우리도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시다. '오, 이제 형제님이 되었네?' 하고 함부로 대하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이생의 일들을 다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비록 내 육신은 종의 신분이라 내 뜻대로 할 수 없을지라도 영원 안에서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세상을 꿰뚫어 본 사람은 이와 같이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