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1. 서론
- 모세가 지은 성막은 온통 금은보화로 만들어졌으며, 모세는 열두 지파의 이름을 보석 위에 새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모두 보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 하나님의 기준은 결코 낮아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워진 교회의 보배들이지, 교회는 쓰레기를 모으는 곳이 아니며 아무나 무턱대고 끌어모으거나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2. 본문 말씀
성령으로 나를 업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태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요한계시록 21:10-12, 14-21)
3. 기도
4. 본문 배경
-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뜻이 '이김(승리)'에 있음을 깊이 깨달았기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으며,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바로 승리하는 교회입니다.
- 교회관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군대요, 새 예루살렘입니다. 교회는 승리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의 기준은 승리이며, 승리가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불가능’을 제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5. 교회관의 회복
- 오늘날의 교회는 온갖 파벌과 다툼이 일어나는 ‘춘추전국시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는 바른 교회관을 회복해야 합니다.
- 《요한계시록》은 승리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은 교회관을 회복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을 사명으로 삼습니다.
- 사람이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 속에서 자기 안의 더러움이 드러나게 되고, 이를 통해 점점 더 하나가 되며, 거룩해지고, 온전하게 세워져 갑니다.
6. 교회는 승리하는 제자들의 모임이다
- 교회는 숫자의 미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는 승리하는 제자들로 구성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한 신자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육신을 처리하고 성령께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줄 알아야 승리하는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7.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보배다
- 사람의 믿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 기꺼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석으로 교회를 세우시며, 우리가 바로 그 보석이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8. 오직 두려워하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쓰레기다
- 두려움과 불신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겁을 내는 이유는 믿지 않기 때문이지 타고난 성격 탓이 아닙니다. 타고난 것은 아무 쓸모가 없으며, 사람은 끊임없이 믿음 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 두려운 감정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는 감정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9. 결론
- 하나님의 기준이 우리 가운데 하늘에 굳게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내면의 쓰레기, 즉 두려움과 불신과 우상 숭배의 마음을 제해 버리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 하나님에 의해 다시 지음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핵심 키워드
- 교회관
- 성전 건축
- 하나님의 기준
- 하나님의 뜻
- 하나님의 기준
- 승리하는 교회
- 승리하는 제자
- 영광의 그릇
- 두려움과 불신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나눌 텐데요, 이 주제는 사실상 지난날 전했던 수많은 설교의 완벽한 총결산이기도 합니다. 바로 《보석으로 지은 성전》입니다. 며칠 전 제가 두 분의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습니다. 밥을 사면서 우리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의 핵심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보배입니다. 누구든지 화인명정신학을 따라, 즉 사도 바울이 전한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관점과 이론을 따라 교회를 세우면 반드시 세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들께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일 기도회가 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우리 교회는 매일 기도회가 있습니다. 이어서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매주 거의 20시간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섬기고,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자 또 그러는 겁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유 목사님, 목사님 교회에서는 될지 몰라도 우리 지역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왜 그곳에서는 불가능할까?' 그곳 성도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교인들이 십일조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교회입니까? 그리고 사람마다 자기 방식이 있고, 저마다 자기 사역을 만들어내며, 십일조를 교회에 온전히 드리지 않고 일부를 떼어 자기 사역을 하는 데 쓴다고 합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며 온갖 이상한 일들을 벌인다는 것입니다.
참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는 모든 사람이 치유를 받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100% 치유된다고요?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은 정예병입니다." 조금 과장처럼 들릴지 몰라도 저는 믿음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고, 사도 바울을 닮았습니다." 이것 역시 믿음으로 한 말이며, 실제로 제가 앞으로 이루어 갈 일입니다. 왜 불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도 여러분, 아십니까? 저는 불가능한 일을 해냈습니다. 하나님을 통해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이 아셔야 할 것은, 화인명정신학에서는 오직 보배만을 원하며 쓰레기는 원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엇을 감사하느냐고요? 마귀를 만드신 것을 감사합니다. 어느 날 마귀가 제게 말하더군요. "유 목사, 사실 난 네가 교회 짓는 걸 돕고 있는 거야." 제가 말했습니다. "어라? 마귀가 내 교회 개척을 돕는다고?"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저는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왜일까요? 드디어 저의 위치를 찾았고, 마귀의 위치도 찾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완성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영원 안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뜻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에서 택함 받은 보배 같은 무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보석으로 지어집니다. 즉, 여러분과 제가 바로 보석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과 제가 보석입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만약 오늘 아직 보석이 아니라면, 오늘부터 시작하여 하나님 눈에 보배가 될 때까지 만들어 가면 됩니다. 폐품 줍는 사람도 좋은 것을 골라 줍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싱가포르에서는 폐품 줍는 사람을 '가라군니(glkuni)'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일하고 있을 때 폐품 줍는 사람이 와서 묻습니다. "이 박스 버릴 겁니까?" 제가 "저건 가져가세요, 쓰레기니까 필요 없습니다" 하면 쓰레기는 안 가져가고 박스만 가져갑니다. 왜일까요?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폐품 줍는 사람도 좋은 것을 가려내는데, 하물며 우리 하나님께서 쓰레기를 주우시겠습니까? 저는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들을 보면 정말 몹시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루는 집에서 쓰지 않는 고철 덩어리를 가져와서는 "목사님, 이거 교회에 가져와도 됩니까?" 하더군요. 제가 "이게 뭡니까?" 하니 "우리 집에서 안 쓰는 겁니다"라고 합니다. 자기 집에서 안 쓰는 걸 제가 왜 받습니까?
해괴망측하지 않습니까? 기름때가 덕지덕지 끼고 끈적거리는 고장 난 전자레인지나 인덕션을 가져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여기가 고물상인 줄 아십니까? 당장 치우세요! 나가세요." 너무하지 않습니까? 다 떨어진 이불, 낡은 요, 헌 옷가지들, 우리에게 이런 게 필요합니까? 여기는 그런 게 필요 없습니다. 이곳은 고물 줍는 곳도, 쓰레기를 받는 곳도 아닙니다.
여러분, 오늘날 알리바바가 만든 쇼핑몰 이름이 '타오바오(淘宝, 보물을 찾다)'라는 것을 아십니까? 알리바바가 세운 것은 '타오바오'지, 알리'똥똥'이 세운 '타오스(淘屎, 똥을 찾다)'가 아닙니다. 보물을 찾는 것이지 똥을 찾는 게 아니며, 알리바바지 알리똥똥이 아닙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만약 이름을 알리똥이라고 짓는다면 그게 뭐가 되겠습니까? 로고를 바꾼다고 해봅시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보낸 이모티콘을 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꽈배기 모양의 똥 그림이더군요. 저를 불쾌하게 하려고 보낸 건가 싶어 참 기가 찼습니다.
타오바오의 이름을 타오스로 바꾸고 색깔은 주황색 그대로 둔 채, 모양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꽈배기 똥 모양으로 바꾼다면 거기서 물건이 팔리겠습니까? 물건이 안 팔립니다. 하나님은 오직 보배만을 원하십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요? 불가능해 보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보배만을 원하십니다! 제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 제가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회를 세우려 할 때 사람들은 제게 말했습니다. "유 목사님, 그렇게 교회를 세우면 절대로 교회가 안 세워집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회를 세우는데 왜 안 세워진다는 말입니까? 나는 보배만을 원하고 쓰레기는 원치 않는다는데, 그게 안 됩니까? 그들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들 같은 교회를 세울 바에는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습니다.
저는 일찍이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나 혼자만 남는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기준을 절대로 낮추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기준과 결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년의 세월을 지나오며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런 결단을 주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오직 보배만을 원하십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오직 보배만을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분의 교회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 아주 유명한 목사님 한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목사님은 어떤 교인이든 가리지 않고 다 받았습니다. 예배당 복도를 사이에 두고 이쪽 줄 의자에는 방언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앉고, 저쪽 줄 의자에는 방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세상에, 제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참 안타깝습니다. 설교를 어떻게 하십니까?" 저는 도대체 어떻게 설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아침 예배 때는 방언과 치유 축사를 반대하고, 저녁 예배 때는 방언과 치유 축사를 찬성한다고 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싶어 매우 의아했습니다.
그 유명한 목사님이 제게 말하기를, 자기 교회의 사역자들끼리 죽기 살기로 물어뜯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님, 참 딱합니다. 어떻게 교회를 이렇게 만드셨습니까?"라고 하니, 그는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방법입니까?" 물으니 "그 세 사람을 갈라놓아서 각자 자기 교회를 세우게 할 겁니다"라고 하더군요. 그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 일치됨이 없다면 쪼개 놓아도 여전히 불일치일 뿐입니다. 엉망진창이고 온갖 잡음이 가득했습니다.
가장 기가 막힌 일은, 어떤 쓰레기 같은 사람이 교회를 떠났는데 목사가 그 사람을 다시 달래서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별일이 다 있습니다. 우리 동역자 중 한 분은 이전 교회에 있을 때, 교회를 떠났던 어떤 사람이 돌아오자 담임목사가 그 사람을 붙잡기 위해 우리 형제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그 사람 앞에 사과하라고 강요했다고 합니다. 쓰레기를 붙잡으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는 보배만을 거둡니다. 많은 교회의 보배들이 쓰레기더미 속에 묻혀 있기에, 우리는 쓰레기더미에서 보배를 건져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저의 이런 목회관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온전한 이론적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모세가 지은 성막은 온통 금은보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에봇을 아십니까? 그 흉패에 앞면 6개, 뒷면 6개의 보석이 박혀 있고, 그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즉, 열두 지파 모두가 하나님 눈에 보배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조약돌을 줍지 않으셨을까요? 버려진 박스 조각을 주워 열두 지파의 이름을 써서 에봇을 만들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박스 조각에 매직펜으로 열두 지파의 이름을 써서 가슴과 등에 걸치고 있다면 딱 봐도 고물 줍는 사람이지 모세가 아니라 '지공(济公, 중국 설화 속 누더기를 걸친 기행의 승려)' 같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할 때를 보십시오. 대단했습니다. 온통 보배였습니다. 수백 톤의 금을 사용했습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지금 시대에도 한 국가의 금 보유량이 수백 톤이면 대단한 일인데, 수백 톤의 금을 성전 짓는 데 썼으니 얼마나 많은 재물이 들어갔겠습니까?
우리가 타일을 깔 때 줄눈을 메우려고 시멘트나 줄눈제를 사다 쓰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이 지은 성전의 줄눈제는 순금이었습니다. 순금으로 틈을 메웠습니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상을 금으로 싸고, 채(봉)를 금으로 쌌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이 다윗의 성전과 모세의 성막에 가득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세우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한다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왜 불가능합니까? 절대적으로 가능합니다! 오늘 저는 불가능해 보였던 그 일을 이미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도 좋은 자재를 써서 인테리어를 하는데,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을 짓는데 쓰레기와 폐품으로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까지 인색하게 줄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데 그런 방식을 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갇혀 계시지 않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결코 낮아진 적이 없습니다!
저는 평신도 시절부터 성경을 치열하게 읽으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시려는지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보배'입니다. 평당 100만 원짜리 집이 있고, 1,000만 원짜리 집이 있으며, 1억 원짜리 집도 있습니다. 평당 10억 원짜리 집이 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모를 뿐이지 존재합니다. 바닥과 벽을 금으로 도배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성경을 매우 꼼꼼히 읽는 편인데, 읽다 보니 뭔가 이상한 부분들이 보였습니다. 아마 제 현재의 인식 수준으로는 역사상 제가 처음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처음이냐고요? 베드로가 교회를 세운 논리 체계를 철저히 부정했다는 점입니다. 베드로가 교회를 세울 때, 기도 한 번에 3천 명이 주를 믿고, 설교 한 번에 5천 명이 주를 믿었습니다. 훗날 많은 신학교에서 이를 '교회 부흥'의 모범 사례로 삼았습니다.
'Church Growth(교회 성장학)'라는 과목을 개설하기도 했는데, 저는 그때부터 그것이 무엇인가 싶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반면교사(反面敎師)'입니다. 만약 베드로의 방식이 옳았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바울을 택하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3천 명, 5천 명이 모이는가 하는 교회 성장의 사례들을 자세히 연구해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많아 의자가 꽉 차니 좋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개척 초기에 저도 하나님께 하소연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성도는 겨우 서너 명뿐입니다. 고작 서너 명입니까?" 하나님은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당시 우리는 "교회를 세울 120명의 정예병!"을 외쳤지만, 몇 년이 지나도 120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몹시 서늘하고 낙심되었습니다. 비록 120명이 안 되었지만 그 시절 성도들은 큰 은혜를 누렸습니다. 제가 믿음도 잘 세워주고 비전도 뜨겁게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속은 타들어 갔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언제 사람이 모입니까?" 그런데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었고, 다들 온라인으로 흩어졌습니다.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인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저의 기준이 높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극도로 황량했던 시절, 제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솔직히 제 눈에 차는 교회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보았습니까?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성도들은 "아멘!" 했습니다. "나 혼자 남는다 할지라도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것이며, 하나님의 기준을 영원히 낮추지 않겠다!" 수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어떻게 그런 믿음이 있었을까요?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본래 뜻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가 하나님의 기준을 낮출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도 기준을 낮추지 않으십니다. 많은 교회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모으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사람을 밖으로 밀어냅니다. 밀려나지 않고 남아 계신 여러분을 축하합니다! 베드로가 세운 교회는 결국 쓰레기를 모으는 너절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수준 낮은 목사가 수준 낮은 교회를 세우니, 3천 명, 5천 명이 모였다 한들 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타협하지 않는 기개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도 다소 담대하게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육신을 위하는 목사가 육신적인 교회를 세우고, 육신을 따르는 교인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가 저주를 받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온갖 저주는 다 있으면서 오직 하나님만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이 기준대로 세워갈 때 그분의 임재와 영광을 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오늘도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쓰레기 같았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되어 새로운 피조물, 즉 보배로 변화되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 보배입니다. 지금 거울을 보거나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고 거울 속의 자신을 가리키며 말해 보십시오. "너는 하나님 눈에 보배다!" 아멘! 어떻게 보배가 될 수 있냐고요? 말씀을 선포하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가능해집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 제가 전한 설교의 상당수는 여러분이 보배가 되도록 격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왜 버리라고 하겠습니까? 그것들이 쓰레기요 배설물이기 때문입니다. 배설물을 꽉 쥐고서 무엇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보배인데 그런 배설물이 필요하겠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얼마 전 전했던 《영광의 그릇이 되라!》는 설교를 기억하십니까? 기억이 안 나시면 다시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영광의 그릇입니까?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라!》는 설교는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의 보배만이 그런 일을 사모합니다. 우리는 보물을 찾는 자들이지 배설물을 줍는 자들이 아닙니다.
또한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전했습니다. 여러분이 저처럼 오랜 세월 믿음으로 굳게 서면 하나님의 영광을 눈으로 보게 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기에 제 생각 속에는 '불가능', '어떻게 가능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저는 매일 성도님들을 어떻게 하나님 눈의 보배로 세울까 고민합니다. 결국 모두가 보배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를 전했습니다. 왜입니까? 이곳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총명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온전한 믿음을 가지며, 가장 좋은 몫을 선택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보배가 되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이제는 "선생님, 어떻게 하나님 눈에 보배가 됩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충분히 전했습니다. 가장 좋은 몫을 선택하십시오. 하나님의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것이며, 우리를 재료로 삼아 지으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눈의 보배요 보석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쓰레기로 성전을 짓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쓰레기로 성전을 지으려 한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데, 그리스도의 몸에 오물을 바르고서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직 보배임을 명심하십시오. 문제는 사람이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모두 유황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제게 이런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성경 요한계시록 21장 10절을 읽겠습니다.
2. 본문 말씀
성령으로 나를 업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태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요한계시록 21:10-22)
3.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 가운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시고, 주님의 선하신 뜻을 밝히 보여 주옵소서. 주님의 영으로 우리 안에 임하셔서 우리의 육신을 쳐 복종시키고, 오직 주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빚으사 주님 보시기에 보배가 되게 하시고, 생각과 마음속의 쓰레기를 제하여 주셔서 영적 총명으로 주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게 하옵소서. 마지막 날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게 하시며, 어린 양의 신부로 온전히 서게 하옵소서. 오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로 굳게 결단하오니 주여 역사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본문의 배경은 《요한계시록》입니다. 성경에는 매우 중요한 두 권의 책이 있는데, 하나는 《창세기》이고 다른 하나는 《요한계시록》입니다. 시작과 끝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는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깊이 읽어야 합니다. 몇 년 전 저는 요한계시록 강해집을 썼는데, 제목이 바로 《승리하는 교회의 계시》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승리하는 교회에 대한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이김(승리)'이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한데, 계시록에는 승리에 관한 말씀이 가득합니다. 요한은 계시록을 쓸 때 과거 베드로와 함께 겪었던 너절했던 교회의 모습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요한 역시 그 과정을 지나며 마음 깊이 실망과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 후 요한은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양을 먹이는 '목양'을 매우 강조합니다. 베드로 시절의 교회는 목양이 부재하여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거듭 당부하셨지만, 그는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전후서에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라"고 썼지만, 정작 실천이 따르지 않은 채 말만 앞섰던 것입니다.
요한은 뼈아픈 반성을 통해 승리하는 교회의 계시를 기록했습니다. 오직 '이기는 자'만이 인정받습니다! 바리새인 같은 무리를 모아놓고 남을 무너뜨리는 교회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세웠던 교회는 사람들을 실족하게 했습니다. 사람을 넘어뜨리는 교회가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요한은 하나님의 뜻이 '승리'에 있음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7-8)
요한은 바울의 서신들을 읽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쓸 때, 이전의 방식들이 잘못되었음을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베드로와 함께했던 시절의 사역들이 온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시 요한은 야고보와 베드로의 잘못을 보면서도 분란을 피하려 침묵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처럼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 순종한다"는 식이었지만, 그런 무조건적인 침묵과 순종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야고보와 베드로가 순교한 후 홀로 남은 요한은 비로소 승리하는 교회의 계시를 기록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새 예루살렘이자 하나님의 지혜의 결정체입니다. 여러분, 교회관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혼자만의 영적 수련에 머무는 길을 가지 마십시오. 그것은 저주의 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새 예루살렘이고, 승리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오직 이기는 자만이 계수됩니다. 구약 《민수기》에서도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자만이 계수되었고, 《여호수아》에서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자만이 인정받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핵심 주제는 '승리'입니다. 승리하는 교회의 계시가 바로 우리 교회가 붙들고 있는 핵심입니다.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는 식의 인간적인 잣대를 완전히 버리십시오. 내 생각에 가능한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이 어떠한가가 중요합니다. 화인명정신학은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성경의 가장 본질적인 진리를 깨달으면 세상의 헛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거리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도시락을 나누어주며 영접 기도를 시키고는 "오늘 세 명이 구원받았다(Salvation)"고 자랑합니다. 밥을 주니 따라 하는 것뿐인데, 그것을 참된 구원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의 기준을 높이면 예수님께서 행하지 않으신 헛된 사역들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길거리에서 밥만 나눠주러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승리하는 교회는 일곱 인을 뗄 권세를 가집니다. 일곱 인이 떼어질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밝히 드러나 우리 안에 뿌리내리며 세상에는 심판이 임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인을 뗄 때마다 교회는 전진합니다. 일곱 인에 이어 일곱 나팔이 불릴 때 세상에 재앙이 임하는 것은 교회의 승리의 역사와 맞물려 있습니다.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승리한 성도들은 공중으로 휴거되어 주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이르러 교회가 휴거될 때 들림 받지 못하면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 12장 이후에는 순교하지 않으면 둘째 사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교회가 들림 받을 때 함께 들림 받아야 합니다. 한번은 어느 자매님이 예배 시간을 착각하고 메신저 방에 아무도 없자 "모두 휴거되고 나만 남겨진 줄 알았다"며 울먹인 적이 있습니다. 남겨진 자에게 남은 길은 순교뿐입니다.
일곱 대접의 심판이 쏟아진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과 함께 천 년 동안 이 땅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천 년이 찬 후 사탄이 잠시 놓여 미혹할 때, 끝까지 충성을 지킨 승리자들은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전말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성곽은 보석으로 지어지며, 그 보석이 바로 여러분과 저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쓰레기로 성전을 짓지 않으십니다. 인류 역사 6천 년이 지나고 천년왕국을 거쳐 영원한 새 예루살렘이 임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소망입니다.
5. 교회관의 회복
교회관의 회복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승리하는 교회를 증언합니다. 오랫동안 단순한 '개인 구원'의 개념이 교회의 본질을 가려왔지만, 화인명정신학은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회복했습니다. 승리와 교회의 개념 없이 그저 형식적인 영접만 강조하는 것은 온전한 복음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의 고백처럼, 성도들이 십일조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각자 자기 소견대로 사역을 벌인다면 그 교회는 영적 전쟁을 치를 수 없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숫자에만 연연하고 승리하는 자가 몇 명인지, 참된 보배가 누구인지에는 관심이 없는 교회는 무기력할 뿐입니다.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성전이며, 그분의 몸입니다. 승리는 영적 전쟁을 의미하며, 교회는 하나님의 군대로 세워져야 합니다. 오늘날 교계는 각자 나뉘어 다투는 춘추전국시대와 같습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참된 교회관을 회복해야 합니다.
화인명정신학에서 바른 교회관 없이 머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면 저와 함께 한마음으로 거룩하고 연합된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부딪힐 때 자신의 옛 성품과 이기심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자기 뜻대로만 행하려 하면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불일치와 깨어진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자신의 더러움을 발견하고 회개할 때, 쓰레기 같은 모습이 벗겨지고 보배로 빚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목양입니다.
혼자만의 신앙생활에서는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교회를 함께 세워갈 때 비로소 내면의 오염이 드러납니다. 남의 문제는 잘 보아도 자신의 문제는 보지 못하기에, 목양을 맡겨 서로를 온전케 세워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목양은 양육받는 자뿐 아니라 양육하는 자 자신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루터의 이신칭의 이후 개인 구원에만 치우쳐 무너진 교회관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인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는 자만이 하나님 눈의 참된 보배가 될 수 있습니다.
6. 교회는 승리하는 제자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승리하는 제자들의 모임입니다. 단순한 무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을 먹고 배부른 것에만 만족하며 따르던 무리를 흩으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대가를 치를 마음 없이 기적과 떡만을 바라는 자들에게 주님은 제자의 길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 모임 역시 그저 은혜나 혜택만을 바라는 곳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부모, 형제, 처자, 전토를 주님보다 앞세우지 않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불신앙의 반응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보배는 흔하지 않습니다. 광석 1톤을 파내야 겨우 몇 그램의 금을 얻듯, 보석은 귀하고 드뭅니다.
하나님은 오합지졸의 무리를 원치 않으십니다. 교회는 단순한 자선단체나 육적인 병원이 아닙니다. 병을 고침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질병의 뿌리가 되는 내면의 죄성과 육신을 철저히 다루어 보배로 빚어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암 세포를 만들어내는 내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사람의 수효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리에 앉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참된 보배가 되는 거룩하고 연합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목표입니다.
사람 수와 재정에만 눈이 멀어 타협하는 목회는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숫자의 미혹을 깨뜨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석으로 성전을 지으십니다.
성경에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반석들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3천 명, 5천 명이 회개했다는 기록을 표면적으로만 보고 군중 중심의 부흥만을 좇는다면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껍데기만 화려하고 내면은 어지러운 교회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세우신 이유는 명확합니다. 바울은 사람의 수단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도를 따라 육신을 쳐 복종시키고 성령을 따르는 영적 원리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육신을 처리하고 성령께 순종하는 것만이 승리하는 제자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도는 평생 육신적인 옛 사고방식을 깨뜨려 나가야 합니다. 사역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자기 고집을 부릴 때 낙심될 때도 있지만, 제 뜻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끝까지 믿음으로 성도들을 권면합니다. 우리 가운데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의 보배임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활용하여 목양의 시스템을 끊임없이 혁신하고 성도들이 말씀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헌신한 참된 제자들의 공동체입니다.
7.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보배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어 11:6)
육신을 이기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 참된 믿음을 가진 자가 하나님 눈의 보배입니다. 아브라함부터 바울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람의 지식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말씀으로 훈련받고 목양받아 영광의 그릇으로 빚어져야 합니다. 불평이나 의심을 버리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그릇, 보배가 되기를 결단하십시오.
8. 오직 두려워하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쓰레기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8)
두려워하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악을 행하는 자들은 보배가 아닌 쓰레기이며 불못에 던져질 대상입니다. 두려움은 선천적인 성격이 아니라 불신앙의 열매입니다. 사람은 믿음 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두려움과 불신은 하나이며, 참된 믿음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육적인 두려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석으로 그분의 성전인 교회를 지으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 보석이요 성전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영광, 하나님께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사망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연합의 날을 사모하십시오. "어떻게 가능하겠는가"라는 불신앙의 언어를 제해 버리고 능히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는 전능자이십니다.
9. 결론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이 우리 가운데 굳게 서서, 내면의 두려움과 불신과 불의를 털어내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성전 건축 헌금에 동참하는 성도들의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눈에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헌신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은혜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형식적인 헌신에 머물러 멸망하는 자가 되지 말고, 여러분 자신을 온전한 산 제물로 드려 새로운 피조물, 영광의 그릇으로 빚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준비한 찬양 《이미 내려놓았네》를 부르며 헌금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 찬양은 저의 목회 여정을 지켜본 한 자매님이 써준 곡으로,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헌금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면 헌금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지나간 상처와 세상의 헛된 애착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이 우리 안에 발붙일 곳이 없도록 온전히 내려놓고, 오직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일에 마음을 다합시다.
아직 상처와 염려를 내려놓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오늘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바라보며 자녀, 배우자, 직장, 사업 등 모든 염려를 주님 발앞에 내려놓으십시오.
함께 손을 들고 기도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라! 나는 하나님 눈의 보배가 될 것이며,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심으로 따르리라. 영원한 소망을 품고 달려가 마지막 날 주의 성전과 그리스도의 몸의 온전한 지체로 서리라. 주여, 나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상처를 치유하시며 나를 온전한 산 제물로 받아 주옵소서!"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