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大家好!《阿摩司书》的第五章让我这么一讲,嘚不嘚快四五十分钟了。为啥?不好讲。但是我把这思路梳理得非常的清楚,第一:以色列啊,你们要听为你们所做的哀歌;第二:你们要寻求神就必存活。虽然哀歌响起了,突然间想到我要寻求神。存活!哀歌,停;哀乐,停,神就喊停了。就算是半个身子进到棺材里仍然可以喊停。你们要寻求神,寻求啥?第三点:要寻求神的公义,这个世代我们自以为的公义不叫公义,神的公义才叫做公义。第四点:不要用宗教仪式寻求神。听明白了吗?《圣经》告诉我们:你们的罪恶何其多。我们的罪数也数不完,不要说你了,就是使徒保罗到他服侍的末期都觉着自己是罪魁。所以今天咱们答疑解惑的时候,咱们就把我们里面的困惑讲出来,什么时候悔改,什么时候就活啦;什么时候自以为是,什么时候就灭亡啦。
【问题】1:我有2个问题:对于还不信主,想了解我们信仰的人,我们需要讲哀歌吗?我姐姐跟我分享她的倒霉事,让我用属灵的道理给她解释,我给她讲祝福和咒诅。听到咒诅的时候她很害怕,问我怎么破除?我实话实说:好像不信主怎么都没用。这样说了以后我感觉效果不是很好。
答:这个效果好!为啥?因为信主是啥意思?就是耶稣替你承担你的咒诅,就是有人帮你担了。工作组来检查的时候,有几个贪官就坐在一起商量说:哎呀,大哥,你看谁比较合适啊?大哥说:老三呐,你替我们大家都担了吧,你家里的事我们都帮你包了。结果这老三就进去了,什么罪都承认啦,都坦白啦。结果怎么着呢?有人担了,没事了,一下都揽下来了。老大、老二都老感谢老三了。
那我们今天信主以后,我告诉你这是解决问题的办法。怎么解决?耶稣替你担了,你不用害怕了,一信耶稣就归在耶稣的身上了。听明白了吗?然后你给她翻开《圣经》告诉她:耶稣诚然背负了我们的咒诅,担当了我们的忧患。这回大家觉着这个逻辑通的是吧?那人为什么还继续活在咒诅当中呢?如果有信神的事,所有的问题都得到解决,为什么还要靠自己呢?那就不用靠自己了。人听完觉着:哎呀,这么好啊!那从此以后信靠祂。是不是?
【问题】2:老师,我想对付我脑子里不合神心意的价值体系。我前几天试了一下,把我每天奇怪的想法、识别善恶的心思意念记下来,可以记二三十多条,哪一条都挺严重,我该从哪个开始对付?
答:其实不是这么整的,二三十条总结出来,其实就那么一条、两条。所有的东西它的表相,它的表现形式可能是二十条,甚至两百条。如果有两百条,我们不用那两百条,我们把这个根找到,就发现逻辑体系是这块错了,就跟我们编程编错了一样。编程编错了以后,它表现出来的错误,一编译,好家伙!我写了五行的程序,出了一百多个错误。好家伙!这可不得了,出了一百多个。如果你用Java script那玩意一编译,哎呦!我的天呐!滴了嘟了!滴了嘟了!你挨个看吧,老些个了!其实错就那么几个地方,找到了一对付,那几万条、几百条都消失。
【问题】3:请问老师,宗教仪式信主的表现形式有哪些?
答:最重要的表现形式就是自私。我告诉你基督徒是个极其自私的群体,你知道最自私的逻辑是啥吗?从信主那天开始,最自私的逻辑就是我死了可以上天堂了。听明白了吗?可是活着的时候简直像一个小魔鬼,浑身自私到离谱的地步。基督徒死了上天堂,那是不是自私?人家使徒保罗怎么说?我宁愿与神隔绝,也希望我的同胞能够得救。理解了吗?其实我们今天一开始信主就成了自私,你说这后来还能好得了吗?基督徒这种自私的想法,我告诉你今天我们做得还不够。
华人命定神学是啥?我们在活着的时候像耶稣。活着的时候像了吗?一身的恶习,那老要命了。所以说一旦这个逻辑改了,活着的时候像耶稣,不断地给出去,那和活着的时候等着上天堂差老远了,那一个在天上,一个在地上。我们今天活着到底有哪块还不像耶稣?你得列出来呀。死了以后上天堂怎么整呢?我就聚会。有的基督徒一年去一次教会,就是圣诞节的时候,圣诞节还真的不是耶稣出生的日子。哪里不像耶稣就列出哪里?最要命的根就是自私。
我们求好处是很正常的,但是你得知道你得像耶稣,你得寻求神的公义、寻求神的怜悯。神今天向我们所求的是啥呢?行公义、好怜悯、存谦卑的心与你的神同行。今天咱们看看哪一个基督徒在乎与神同行了?很少的。就在咱们当中,咱们仔细看看也跟长了一个阴阳脸似的,一会像人,一会像鬼似的,还在释放呢。宗教仪式就想透过啥呢?就想透过参加个聚会啦。你以为你坐在那就能像耶稣啦?以为你吃了个圣餐,你就像耶稣啦?有人经常跟我说:祷告会、主日、查经我都来了,你还要我怎样?我要你像耶稣,你像了吗?我说:要你不怎么样,就是照照镜子。说句不好听的话,撒泡尿照一照看自己像个啥?一照就知道。
【问题】4:老师,我就是想求自己的好处来到教会的,得到好处了,大多数时候还是求自己的好处,家里人的好处居多。虽然也在学习服侍,但是还是自私心很大的,这是不是讨神愤怒啊?
答:那肯定是讨神愤怒,想都不用想,你肯定已经亏欠自己很久了。你要知道一个人如果寻求的都是自己的好处,那能不讨神愤怒吗?我们已经错过神给我们很多的恩典。听明白了吗?一开始求神的好处是OK的,但是读了神的话还是这样,那成了啥了?我们从神得好处是正常的,但是从神得好处怎么才能得呢?就是谨守遵行神的话。神要我们付出,我们愿意付出了吗?一看要付出就觉着那多难呐,那就麻烦了。其实付出就是恩典,服侍也是恩典呐。
我想你一开始这么做神不怪你,神要让你经历祂,但是一次又一次经历神还活在这样的状况当中你怎么办啊?那不就跟死在旷野的以色列人没什么两样吗?而且求的还真的就是今生的好处。如果我们求的是永生的好处,永恒里的荣耀,那还真的不算是自私。为啥?因为你一旦立定在永恒里的好处,你就会谨守遵行神的话。你就会把自己塑造成一个有耶稣基督的形象的人。耶稣是啥?为众人而死,为了我们的过犯甘愿舍弃自己的性命,然后成就了一个救恩给我们。
今天基督教传递的信息有多少是自私的信息啊?就想:神啊!祝福我!祝福你干啥呀?今天基督徒到教会里坐一坐就想得好处的多呀。阿摩司那个年代的以色列人也一样,就想着神你不是要祝福我吗?祝福我呀;你不是说你要打开天上的窗口吗?打开呀。但是神要我们求的是惟愿公平如大水滚滚,使公义如江河滔滔。我们心里的格局从一个很低的层次,在像耶稣的路上不断地提升,你不能老停留在那个很愚蠢的阶段。
【问题】5:最近我也开始明白了我自己总是识别善恶,别人总是惹我,是我没有做好在先,非常自私。有的时候事情做完了才反应过来自己做错了,我觉得我心里、意念里明白了这个道理,但是遇到事情怎么能一下子就反应过来呢?
答:人有一个特点,今天我才学的一个功课,我就问一个同工:这人怎么这次做对了,下次也对了,再做一次就做错了呢?他说:他在辅导他儿子的时候他也悟出了这么个道理,就是做对了,然后再做就做错了。做对了怎么又做错了呢?他说:手比脑袋快。那怎么解决这个问题呢?就是无论做什么事走脑、走心。听明白了吗?想一想,别着急,如果手比脑快,肯定顺着自己的感觉走;嘴比脑袋快,肯定信口开河瞎说。
所以最近我就训练咱们同工做啥呢?训练咱们同工写计划,做什么东西别着急,计划好了照着计划去实施。你有的是时间,你着什么急呀?遇到事,不是要死的吧?不用做人工呼吸吧?如果需要做人工呼吸的其实就不用做了。你说:那啥意思?那就不用做了,就完事了。如果说不是那种要死的事,你急啥呀?好好地计划一下。我们当中很多人脑袋不好使的,经常做一些毫无果效的事,还花很多的钱,付很大的代价。有用吗?没用。那没用为什么要做呢?为什么要花这么多钱呢?有的人不但被骗,还被忽悠,反正就是没有经过脑子,没有真正地思考过。所以有的时候家人看咱们当中的基督徒,就觉着傻不拉几的。是不是啊?有用吗?没用。没用为什么要花这么多钱呢?所以不是一下子反应过来,你急啥呀?做啥事能不能回家琢磨一下?
前几天有一个人打电话给我说:哎呀,你的飞机班机被取消了。我就想:你有这么好啊?我的班机取消了,你来打电话给我呀?后来我们的那些大学同学教我一个功课,对方一打过来说:你是某某某吗?你的机票被取消了。我上来就是where are you speaking?Hello !mike home mide go to joy jiu.还带点英文腔调。一听是个讲英文的呀,骗子就算了,一般的就别接了。所以我想急啥呀?我的飞机票要取消了,干啥呀?是不是?别着急。一着急就把这号那号都给人家,然后再欠一屁股债,就是着急着的。你计划一下,这是啥玩意?有的人点吧、点吧,点出好几十万元的债来。你说这是什么脑子?啥也没干点出好几十万元的债。有的人忙活、忙活好几年欠了一百万;有的人忙活忙活一年欠了一千万。我就在想这是什么脑子?着急,没有计划,就得训练呐。
【问题】6:老师我有一个疑惑,我来这里时间很长了,我也想让自己的家人信主,过去我也有试过,但是都倒下来,甚至都些负面的情况,我就放弃了。现在和家人相处的时候,基本不讲福音这些问题,我做自己的,他们就做他们的。请问如果我还想做这个工作,应该从什么地方开始?
答∶先把你的糊涂脑袋改一改,脑袋像个糊涂虫,怎么讲?有一次我们当中一个姐妹的老公对我讲∶刘牧师,你帮她赶一赶愚蠢的灵。我说∶我是赶鬼的。他说∶你帮她赶赶愚蠢的鬼。人家就这样说,家里人就这么说你。我们不需要反思吗?我们需要反思呀。就我们现在的学习程度,难道我们不需要改变我们学习的状况吗?我们做了多少愚蠢的事,一件一件的列出来,能不能在悟性上整通它。这回听得懂吗?就是我们在人面前都是愚蠢的人,我们跟人家讲福音,你快拉倒吧。怎么讲?讲不了啊,一整就露怯!
从哪开始?有的人说∶老师,我也有同样的问题。对,说的就是你们这些人。真的,我跟大家说,就是看到我们当中的姐妹又固执又愚蠢,我都急坏了。我就在想方设法证明你很愚蠢。但是我问你∶我要证明你很愚蠢,你会不会跟我翻脸?会呀。你看咱俩面对面,我说∶你咋这么愚呢?你会说∶你才愚呢。下次拉倒吧,以后我不再跟你说话了。我还得拐弯抹角地说∶不太聪明。要了命了,真难为我了。
先提升自己,基督徒悟性不通的是海量啊。基督徒就像阿摩司时代的以色列人,唱哀歌他们也不听,奏哀乐他们也不唱哀歌,自我感觉超及良好。就是我们要常常反思我们哪块没做对?最怕的就是我们又爱面子、又笨。你说怎么办?说也不行,不说也不行,哎呀,一下子就被套住了。你像我这脸皮厚的,我整错了,我说∶大家听听看看我哪块整错了?听明白了吗?我一看这家伙,整错了再欲盖弥彰呀,下次人家就不找我培训了,这单就完蛋了。接下来咱们就重新调整,别自以为是,一定要调整!
【问题】7∶老师,约伯完全正直,敬畏神,远离恶事,他是一个寻求神的人。那他为什么会遇到那么多灾祸呢?该如何理解?
答∶你觉得他完全正直吗?你认为他完全正直吗?敬畏神,那是谁说的?后来约伯悔改了没有?约伯已经自以为是到了什么程度!世上都是恶人都是罪人。听得懂吗?哦,完全正直,敬畏神,远离恶事,拉倒吧,没有良善。人家说:良善的夫子啊,耶稣说:拉倒吧,良善的只有神一位。你看这人得多坏呀,就喜欢带一个这样的帽子。你说他不遭遇这些事,谁遭遇呀?他活该。你知道他为啥活该吗?他里头害怕失去这些东西。每天就献上燔祭,宗教解决问题吗?不解决问题。我说的没错吧?直到今天我们大家读《圣经》是不是读反了。
【问题】8:我感觉先自己学习神的话,有一些变化。然后慢慢的家人有问题了,才愿意跟我们分享。 用神的话来解释可能好点。比较烂的时候,家人都懒得搭理我,自己还稀烂,帮不了人家。
答:这活是对的,所以咱们要好好装备自己。我跟你讲:我就觉得基督徒自我感觉良好的超多。有一次我的一个朋友带着一个癌症患者来找我,是一个其它教会的基督徒,他带着一个癌症患者来找我。我就说:癌症是一个咒诅。哇,这下他不干了。我说:癌症是个鬼,是个死亡的灵。他不干了,他说:我是约伯。我说:哦,你是个约伯呀?那我是个罪人。我怎么可以服侍你呢?那你来服侍服侍我吧,我很需要你来释放我。他自高自大,那自以为站立得稳的要小心,那这些人自以为站立得稳的还是以为自己站立得稳。所以说:自己觉得自己稀烂就有希望啦。先别老琢磨传福音,自己先要像跟耶稣一样,你如果像耶稣人家能不知道吗?
【问题】9:老师,我家里父母和兄弟姐妹一家人聚在一起就会争吵,每回面上都是妈妈在那里挑剔引起,然后父母之间吵;儿女和妈妈也争吵;每次节假日都会聚在一起,然后每回都很不愉快。我不参加吧好像不合群,参加吧,看到这种状况很是难过,我也很想帮助家庭好起来。老师,我该怎么办呢?也是从提升自己开始吗?
答:那当然。一个人一定要在自己的家族里头开始逐渐竖立自己那种形像,你要有耶稣一样的形像呀。有一个牧者,我把他稍微训了一顿。为啥训了他一顿呢?因为他牧养的一个人非常自以为是,很思辨。以前在群里还经常问我一些很尬古的问题,现在不问了。结果咱们这个牧者他就得过且过,就那么过也不知道该怎么整。我说你怎么不整?他说:怎么整?我就把他训了一顿,我就教他怎么整。这一教不要紧,我的天!在灵界里发生了一种事。这个弟兄突然间打电话给他,说:他要悔改。你说神奇不?很神奇。因为我就跟他说:他如果再继续这样就告诉他别来了。因为他比较适合做我的牧师,他来牧养我都合适,那脑袋多好使。
就是人一定要开始在灵界里得胜,然后你就会制伏在这个家里头制造纷争这种邪灵。如果你真能干得过这种邪灵,我告诉你:你语言里的这种你说的话都是带着权柄带着智慧。如果你真的像耶稣,你站在他们当中你试试看,很快这种背后的这些邪灵,咣!咣!咣!就会灭了。为啥?因为你够厉害。反正你要问我:我在我们家中往那一站,肯定不会出这种事。我在我们家中,我也会说话,一般人也说不过我。记住!说话是属灵的事。不单单要讲道理而且要狠,要厉害!他们说的那种露怯的话,上来我就把他干趴下。我就让他们觉得自己很low,他们在我面前就觉得自己很low就对啦。哎呀,那你这人怎么老是爱抬举你自己。那我不抬举自己怎么祝福他们呀?是不是?耶稣也是这么干的。
【问题】10:老师,我最近在自己身上看到很多妈妈身上的恶习,比如抱怨。每当妈妈一开口抱怨,我就在琢磨为什么要抱怨?背后的逻辑是什么?琢磨到是喜欢用自己的观点去说事实,就是识别善恶。当再遇到一样的事情,我脑海里就自动浮出夏娃吃识别善恶的果子,也是看起来是事实,要抱怨出来的话就自动消失了。这是悟性上开始通透了吗?
答:哎,通透一点了。我告诉你,这仅仅是上了一个台阶,那最后其实要学会把她里面的这个卡点给解开。就是你妈妈她里面有扣,她把扣解开了,她就:啊,我这么干很愚蠢呐。她里面有很愚蠢的东西卡在那个地方,她不知道。你看:妈,你这么干是不是很生气呀?你妈说:我是很生气呀,我都气得不行啦。你说:妈,我太理解你了,气得都不行了。但是你生气有用吗?是吧?哪天在给自己气出个病来,你说图啥呢?你妈说:是呀,图啥呀?
你说:妈,我跟你一样,我是你女儿,是不是?咱俩不是经常对着干了吗?你最近有发现我进步了吗?你妈说:哎,好像有点呀,以前你很像我,最近好像有点不太像了。怎么整的?你说:妈,我解开了一个扣,我自己整天这么整,整得我很难受,我不想再难受了。如果你想继续难受,OK,加油!她会这么说:哎?我傻呀。她以后再生气,你说:加油!使劲把自己气个好歹的,那不把自己气病了能对得起自己吗?你妈说:你说啥呢?你咋这么坏呢?你说:我没说啥?我只是看你生气,想帮帮你呀。如果你一个人生气,气不够我陪你,怎么样?
这单口相声讲得怎么样?还行吧。妈,我来陪你生气来了。然后你在她侧面,她在你右边,你在她左边,你小眼睛一邪,小嘴巴一噘。你妈说:气人呐,哎呀你要干啥?你笑话我呀?你说:没有,没有,我憋不住,我跟你一起生气。她的注意力就转移了不是?哎呀,闺女你还真变聪明了。然后有的时候:傻不拉几的,再来一句。
学的还挺好听的吧?咱们今天的答疑就到这。弟兄姐妹加油!好好寻求神,阿们!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모스》 5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너희는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반드시 멸망하게 되며, 그저 평범한 멸망이 아니라 매우 비참한 멸망을 맞이하게 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아모스 5:6)
1. 이스라엘아, 너희를 위하여 지은 애가를 들으라
아모스가 5장을 기록한 내용은 사실 앞의 장들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찾으면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참된 선지자가 되는 것은 길한 말은 하지 않고 오직 흉한 말만 전하는 것인데, 이는 사람이 행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날 하나님께 죄를 짓고도 다음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며 별일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날 이 세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여러분을 위하여 지은 애가를 들어야 합니다. 다른 교회를 차치하고 우리 교회의 그리스도인들만 보더라도, 머릿속에 품은 생각을 꺼내어 보면 쓰레기가 너무 많이 들어 있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 셀 수 없이 많으며, 온통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여러분을 위해 지은 애가를 들어야 합니다. 사실 아모스는 이스라엘에게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지 이미 2,600~2,700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아모스 5:1)
이 말씀은 모두 우리를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애가를 지어 부르신다면 그것은 참으로 비통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있고 듣지 않을 때도 있으니, 도대체 언제쯤 온전히 귀 기울여 들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재앙을 겪어야 사람이 죄악에서 돌이키겠습니까? 길한 말은 듣지 않고 흉한 말만 듣는다면 차라리 쉬울 텐데, 참선지자들이 귀에 거슬리는 말을 몇 마디 던져 여러분의 폐부를 찌른다면 그것이 바로 맞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중에 오직 흉한 말만 전하고 길한 말을 하지 않는 자가 얼마나 됩니까? 더 이상 목회자가 그들을 위해 애가를 부르는 것을 들으려 하지 않고, 실제로 애가를 부르면 목회자에게 대들기까지 합니다. 듣고 나서도 깨닫지 못하고, 다들 지금 잘 살고 있으며 성공했고 자신이 꽤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우리의 이러한 상태야말로 진정 애가를 들어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맹세하고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맹세하고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모스 5:2-3)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그분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미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논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은 결코 충분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의 선지자들은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을 합니까? 예를 들어 “하나님은 당신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내일은 어제보다 나을 것이며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꼴을 보십시오. 과연 내일이 더 나아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자신이 괜찮고 꽤 훌륭하다고 여길 때,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아지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위해 애가를 지으실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 여러분의 삶에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십시오. 천 명이 나갔다가 백 명만 돌아오고, 백 명이 나갔다가 열 명만 돌아오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이 괜찮다고 여깁니까?
사람들은 왜 이런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나는지 하나님께 자주 묻지만, 이는 모두 자신이 자초한 결과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상태가 어떠한지, 하나님의 요구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오늘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언제든 자신이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 이 애가는 바로 여러분을 위해 부르는 노래가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자기 상태가 매우 좋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모스는 목이 쉬도록 외쳤고, 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에게 시원한 차 한 잔이라도 건네주고 싶을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자신이 괜찮다고 여긴다면 도대체 언제 진보하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들은 다 제가 양육한 이들이며, 제가 누군가 자신을 자랑하고 사역을 얼마나 잘하는지 늘어놓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오직 그들이 겪은 문제만을 듣고 싶어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말하기를 좋아하며, 장점을 뽐내는 것이 마치 살아가는 용기이자 이유인 것처럼 여깁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계속 그렇게 고집한다면 애가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장송곡이 울리면 사람이 죽은 줄 알듯이, 듣기만 해도 처량합니다. 일본의 애가만 듣기 싫은 줄 알지 마십시오. 세상 어디의 애가든 듣기 싫은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2. 너희는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까? 바로 자신이 아직 부족하고, 하나님을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육신을 따르는 요소들이 많으며, 하나님께서 다루어 주셔야 할 부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닮지 않은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하물며 전혀 닮지 않은 부분이 수두룩함에 있어서야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거울을 보면 그야말로 절반은 귀신 같고 절반은 하나님 같은 음양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괜찮다고 여깁니다. 설령 겉모습이 그럴싸해 보여도 그것은 성형한 것이요 가짜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제 하나님을 찾은 이유가 자신이 아직 하나님을 닮지 못해서라거나, 어느 부분이 부족하여 하나님께서 다루어 주시기를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됩니까? 그런 사람은 참으로 안타까울 정도로 적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아모스 5:4-8)
여호와께서 여전히 재앙을 내리실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는 이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한 사람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아모스의 말씀은 오늘날 이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핵심 이익이 조금만 건드려지면 발끈하면서도, 하나님이 건드려질 때는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그 차이는 실로 너무나 큽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살게 될 터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죽음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생명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하나만 보아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이른바 저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의 한심한 모습과 같다면, 오늘날 그 불쌍한 그리스도인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 안에 담긴 것과 다른 교회들이 내세우는 것들을 보십시오. 부부 세미나를 연다고 하면 열정이 넘쳐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는 알지도 못합니다. 온갖 행사를 열어 먹고 마시고 즐기지만, 그것이 머지않아 비극의 서막을 열게 될 줄은 생각조차 못합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며, 왜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닌지, 종교적인 외식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매번 성경공부에 참석한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매번 꼭 참석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공부조차 꾸준히 하지 못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꾸준히 해낼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재앙이 임할 것입니다. 누구에게 닥치든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며, 이는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리라 하셨으니, 그렇다면 어떻게 찾아야 하겠습니까?
3.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라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아모스 5:14-15)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사람은 뼛속까지 이기적입니다. 한 가지 일에서 이기적이지 않다고 해서 사람이 이기적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열 가지 중 한 가지가 이기적이지 않다면 나머지 아홉 가지는 여전히 이기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돌아보고 자신을 깊이 성찰하십시오. 자신의 일이라면 몹시 신경 쓰면서도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금 자신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모스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도 스스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고, 매번 주일 제사에 참여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했지만, 정작 그들이 행한 일은 매우 사악했습니다.
너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아모스 5:10-13)
어떤 이는 자신은 이런 일들을 행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아직 그렇게 행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며 기회가 주어지면 분명히 행했을 것입니다. 공평과 정의를 구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최우선에 둔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우리 안에서도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했던 말들을 다시 돌아보십시오. 입을 열기만 하면 자신을 칭찬하고 스스로 괜찮다고 여깁니다. 본문 말씀에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고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 안에 담겨 있는 것들은 재앙이 임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꼴이며, 일단 재앙이 임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 두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는 포로로 잡혀가게 되며, 그때는 이미 죄악이 가득 차서 더 이상의 기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세상일을 위해 쓰는 힘의 십분의 일이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데 쏟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계속해서 그렇게 행하십시오. 하나님의 공평과 공의를 구하려면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온종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면서 그것을 정상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이전에 제가 사역했던 사람 중에도 그런 이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바쁘게 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바쁜 이유는 천 명이 나갔다가 백 명만 돌아오듯, 분주하게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둔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늘의 문을 여시고 그분의 복을 우리에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만약 여전히 그렇게 분주하기만 하다면 큰일 날 것입니다. 집값이 가장 비쌀 때 34선 도시의 부동산을 샀다가 최소 35년 동안 헛고생만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을 겪었다면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툭하면 남에게 수천, 수억 원을 사기당하거나 투자에 실패하여 진탕 고생하고도 돈을 날리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속이 타들어 갑니다. 제발 그렇게 바쁘게 설레발치지 말라고 거듭 당부해도 도무지 듣지 않습니다.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여기지만, 그것이 돈을 날릴 기회라는 사실은 보지 못합니다. 며칠 전 한 자매에게 몇 년 전에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 최소한 500만 위안은 더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매는 마음의 상처를 건드린다며 제발 그 이야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군요. 말하자면 다 눈물뿐인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당시에 자신이 내린 결정이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도 분주함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고집을 부립니다. 사실 사람이 사는 것은 분주함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분주함으로 인해 마음이 번민하고 답답하다면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애가와 장송곡을 아직 덜 들었습니까? 어쩌면 정말 우리 자신을 위해 연주될 장송곡이 한 곡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회개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본성 속에는 묘하게 삐딱한 구석이 있어서, 일이 없으면 괜히 일을 만들어 냅니다. 누구에게는 죄를 지을지언정 하나님께만은 결코 죄를 지어서는 안 됨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마다 번번이 틀리게 정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현지의 시장이나 시 서기가 당신을 만나자고 한다면, 밤 8시든 한밤중 12시든 분명 시간을 낼 것이며 한 달 전부터 준비할 것입니다. 도지사나 중앙 지도자, 혹은 샤오미의 창업자 레이쥔이 만나자고 한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 텐데, 왜 유독 하나님만은 번번이 놓치는 것입니까? 우리 내면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신을 위해 진노를 쌓는 날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전심전력을 다해 추구해도 충분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충대충 얼버무리며 시늉만 내고, 턱없이 부족하게 행하면서도 태도는 매우 불량하여 온갖 핑계를 늘어놓기 일쑤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구해야 합니다. 물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해서 언짢아하지는 마십시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은 이미 다른 교회의 성도들보다 잘하고 있지만, 여전히 예수님을 닮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갈 길이 멀기에 더욱 힘써 좇아가야 합니다. 부족한 이들은 지적을 받을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만약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께 직접 말씀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도 하나님께 온갖 핑계를 대었으며, 자신들도 하나님을 몹시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장송곡을 울리고 애가를 들으며 그 숱한 재앙을 겪을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을 몹시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직 한참 멉니다. 결코 스스로 상태가 좋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도 스스로 괜찮다고 자만하다가 결국 모두 장송곡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위해 이미 장송곡과 애가를 준비하셨는데, 이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게 하기 위함입니다.
4. 종교적인 의식으로 하나님을 찾지 말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아모스 5:5)
이곳들은 모두 종교적으로 대단한 의미를 지닌 장소들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성지순례라며 이스라엘에 가기를 유독 좋아합니다. 하지만 성지순례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그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일찍이 우리에게 벧엘로 가지 말고 길갈이나 브엘세바로도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돌을 베개 삼아 누워 잠들었을 때 사닥다리 위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을 선포하신 곳으로, 야곱이 하늘의 문이요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른 곳입니다. 길갈은 사무엘이 사역했던 곳이며, 브엘세바는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신 곳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에 왔고 승리하는 교회에 속해 있으니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무 소용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어야만 유익합니다. 나팔 소리가 울리면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 모여야지, 잠이 들어서 갈 수 없다고 핑계 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종교적인 형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고, 하나님을 우리 생명의 첫 자리에 두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종교적인 행위는 매우 가증한 것입니다. 어떤 교회들은 종교 의식을 아주 훌륭하게 갖추고 있지만,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목회자에게 가장 먼저 임합니다.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여러분에게 흉한 말을 하고 싶지 않고 길한 말을 해주고 싶지만, 저는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죄를 나누어 지는 처지에 빠져서는 안 되며, 그것은 실로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전에 어떤 목회자가 전한 설교는 순전히 영적 감성팔이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고, 여러분을 후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내일은 반드시 더 나아질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만 늘어놓았습니다. 설교는 참으로 유창했고, 아래 앉아 듣던 사람들은 여호와의 날을 몹시 사모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아모스 5:18-20)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고 하십니까? 그것이 온통 종교적 의식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자신의 모습에 대해 자신만만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 모든 사람에게 좋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아모스 5:21-23)
사람들은 온갖 이러한 방법들을 쓰며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줄 알지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
여기까지 들으셨다면 다들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아모스 5:25-26)
여기서 말씀하는 것 역시 종교적 의식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의식이 있다 한들 사람의 뼛속에 깊이 박힌 세상에 속한 논리를 막아서지는 못했고, 결국 그들은 애굽에서 나왔으나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을 세 부류로 나눕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 광야에서 죽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떤 이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도 여전히 이기적인 동기를 품고 있는데, 그런 상태로 어찌 여호와의 날을 사모한단 말입니까?
우상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우리 내면에 담긴 것이 과연 무엇인지 돌아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저와 영적 진리를 두고 논쟁하려 한다면, 저는 여러분과 논쟁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섬겨온 이 길에서 행한 바를 비교해 보십시오. 저는 제 자신이 잘했다거나 못했다고 자랑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이 본받을 만한 한 가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힘써 추구해 왔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며, 이는 제게 주신 은혜입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에 의해 일으켜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것들로 저와 논쟁하려 하지 말고, 저와 함께 하나님의 뜻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기를 힘쓰십시오.
그런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변화, 그리고 우리 마음에 진정 무엇이 담겨 있는가가 핵심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여러분의 사역의 열매를 보십시오. 과연 누구를 섬겼고 누구를 축복했습니까? 심지어 부모님을 우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싶어 하지만 사역의 열매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에 비친 여러분의 모습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부모님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재산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참으로 많지만, 마음속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입니다. 사실 사람의 죄악은 실로 너무나 많습니다.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아모스 5:12)
5. 너희의 죄악이 어찌 그리 많은가
너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아모스 5:10)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점이 지적당하기만 하면 반박하려 듭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더 정확히 보는지, 아니면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를 더 정확히 보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입가에 밥풀이 하나 붙어 있었고, 그렇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온종일 거리를 돌아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을 볼 수 있다면 거울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요즘은 핸드폰도 거울로 쓸 수 있지만 사람들은 쓰지 않습니다. 남이 입가에 밥풀이 묻었다고 알려주어도 듣기 싫어하지만, 닦아보면 실제로 묻어 있습니다. 바지 지퍼가 열린 사람을 보아도 감히 말해주지 못하는 것은 그가 도리어 당신을 원망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란 다 이렇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하나님을 섬기려면 끊임없이 장송곡을 울리고 애가를 불러야 하며, 사람을 섬길 때도 돌려돌려 조심스럽게 말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큰 사달이 납니다. 저처럼 온갖 언어의 기술을 터득한 사람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데, 그러한 지혜가 없는 사람이 지적했다가는 상대방이 당장이라도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관념이 우리 안에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은 온통 불신앙뿐이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라 착각하지만, 뼛속에 담긴 것은 온통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뿐입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다 그렇게 산다고 장담하지만, 사실 그들은 진정으로 알지 못합니다. 저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어도 믿지 않습니다. 제 전화기는 24시간 켜져 있어서 언제 걸려오든 전화를 받습니다. 때로는 특정인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을 때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분명 이렇게 사역하지 못할 터이니, 누구나 다 여러분과 같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제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랑하는 자는 오직 주 예수님만을 자랑해야 하며, 이것이 사람에게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사업과 직장 생활은 여러분 자신의 노력을 의지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여전히 자신의 노력을 의지하고 자신의 능력을 근본으로 삼아 나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요 세상의 관념입니다. 어떤 이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계속해서 자신을 의지하며 애가가 울려 퍼지기만을 기다리십시오. 사실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내려놓으면 참으로 죽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자신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을 지극히 완벽하게 해내고 나서는 다른 사람을 사사건건 트집 잡기 시작하며, 심지어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도 불만을 갖습니다. 우물쭈물하느라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잘되면 기고만장해지고 안 되면 풀이 죽습니다. 잘 안될 때는 남 앞에 내놓지 못하고, 잘될 때는 남과 비교하려 듭니다.
오늘날 우리가 감당하는 사역이든 섬김이든, 서로 다투고 비교하기 위함이 아니요 자신의 능력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일을 잘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불완전함을 용납하는 사람인데, 저의 논리는 ‘성장’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일을 잘하지 못해도 괜찮으니, 현재 자신의 수준이 이것뿐이며 여기까지밖에 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 됩니다. 어떤 이들은 제가 책을 쓸 수준이 못 된다고 하기에, 저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가장 엉망인 책을 한 권 써보겠다고 했더니 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잘 쓰게 되었는데, 제게는 성장하는 관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제 능력이 그 정도에 불과함을 인정합니다. 얼마 전 훈련 중에 양육 과정에서 말문이 막히거나 명백한 실수를 범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다들 듣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반도체 회사에 가서 여러 고급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프로세스 로봇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강의를 하다가 문득 제가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억지로 계속 밀고 나가다가는 완전히 빗나가게 될 판이었습니다. 저는 넉살 좋게도 제가 틀렸다는 말은 하지 않고, 도리어 청중들에게 제가 어디를 틀리게 말했는지 아시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쳐다보기만 했고, 저는 이어서 “10분간 휴식할 테니 제가 어디를 잘못 짚었는지 정리해 볼 테니, 돌아오셔서 저와 함께 연구해 봅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대단한 방법입니다. 저는 낯가림도 없고 신경 쓰지도 않기에,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쉬는 틈을 타 재빨리 연구하여, 사람들이 돌아온 후에 오류를 바로잡았습니다.
사람이 일생 동안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만약 강사가 완벽하게만 가르쳐 준다면, 여러분이 돌아가서 혼자 해보다가 틀렸을 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틀려 주면 여러분은 돌아가서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고수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부족함을 인정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풍성히 베풀어 주십니다. 어떤 이는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인지 아니면 저의 잔꾀인지 의심하지만, 사실 이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지혜와 총명입니다. 제가 평소에 스스로 부족함을 자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제가 설교 중에 제 자신이 부족하다고 말했더니, 어떤 사람이 저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데 왜 자신들이 저를 따라야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 바로잡으려 애썼고, 결국 나중에는 바르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처럼, 혹은 성경에 언급된 어떤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없으면서 있는 줄로 착각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짓입니다. 저는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지금까지도 제 자신의 문제를 아주 명확하게 보고 있고 결코 과장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살피다 보니 제게 문제가 참으로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 전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들에게 양육 계획을 세우는 법을 훈련했습니다. 이 계획은 수년 동안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야 비로소 제대로 다듬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는 지난 수년간의 양육이 엉터리였고 이제야 제대로 깨달은 것이냐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온전히 깨달은 것만을 여러분에게 가르치며, 온전히 깨닫지 못한 것은 감히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기에,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만이 바로잡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고 다 제대로 하고 있다고 여기면 도리어 스스로를 속이는 꼴이 됩니다. 결코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데 으뜸이었고, 그 결과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메섹으로, 이방인의 손에 넘겨버리셨습니다.
오늘 저는 다시 한번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아모스 시대의 하나님이시며, 《아모스》에 기록된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스스로 옳다 여기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에 의해 이방인의 손에 넘겨질 것이며, 이방인들 앞에서 반드시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계속해서 스스로 잘났다고 여긴다면, 그 결말은 생각해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사 그 산성으로 황폐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아모스 5:9)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아모스 5:27)
《아모스》는 우리의 좌우명이며, 날마다 우리 곁에 붙여두어야 할 말씀입니다. 오늘부터 잘난 체하지 말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지도 마십시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어느 부분에서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수시로 적어보십시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분주할 수 없으며, 오직 에서와 같은 자들만이 정신없이 바쁠 뿐입니다. 오늘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살 것입니다. 아멘!